[인외존재/동양풍/시리어스물/피폐물] 불이 부르는 소리에 - 신유리
연재처: 레진코믹스
분량: 본편 70화
point1: 한 컷
point2: 줄거리
기: 불의 나라는 불을 숭배하는 7국의 맹주였던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대륙의 패권을 쥔다. 그 힘의 근원은 불의 악마와 불의 악마가 알려준 화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의 악마가 납치되고, 불의 나라 주단왕은 악마를 찾는 공문를 붙인다. 그리고, 한 왕조의 후손이지만 천한 돗자리 장수로 살고 있던 유하는 들판에서 그 불의 악마를 발견한다. 유하는 불의 악마를 궁에 데려다준 대가로 입궁을 요청하고, 허드레 일꾼으로 궁에서 일하게 된다.
승: 불의 나라는 과거 7나라 중 최약소국으로 차별받으며 비굴하게 살고 있었다. 타국에 굽신거리는 것이 일상인 왕족들은, 민생은 버려두고 자신들의 향락만 찾았다. 막내였던 주단은 핍박받는 백성을 구하고자 홀로 고군분투했고, 그러던 중 사랑하는 불의 악마를 형제들이 해하려 들자, 그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되어 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화약을 이용해 최강국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살아남은 5국 위에 군림하게 된다. 하지만, 그 후 주단은 화약 개발에 집착하며 불의 악마를 홀대하기 시작한다.
전: 1000년 전 , 불의 산에서 홀로 살던 불의 악마는 인간 세계를 가고 싶어, 불을 품을 수 있는 자를 불렀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응답한 자가 척이었다. 불의 악마를 얻은 척은 6명의 인재를 모아 혼란한 세상을 평정하고, 척의 한나라를 비롯해 대륙엔 7개의 나라가 건국한다. 그러다 척이 죽고 불의 악마는 또다시 불을 품을 자를 부르지만, 1000년이 지나서야 주단이 나타났다. 불의 악마와 주단은 서로 사랑에 빠지고, 악마는 주단과 불의 산으로 함께 돌아가길 원했지만, 주단의 점점 변해갔다.
결: 주단은 천재 화약 개발자 지율과 함께 더 강한 화약을 만들어, 계속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결국 주변국들은 주단에게 반기를 드는 지하 모임을 만든다. 중간에 지율의 고발로 작전이 실패해 우나라 왕자 무기가 목숨을 잃지만, 한나라의 왕족인 유하와 척의 유지가 보태지면서 결국 주단은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모든 대륙의 왕이 된 유하는 주단의 시신을 악마에게 주고, 약속한 대로 악마를 불의 산으로 데려다준다.
point3 전지 충의 review: 홀로 타는 불은 없다.
비교적 비슷한 시기에 신유리님의 세편의 작품이, 각각 다른 플랫폼에 완결 났습니다. 봄툰에서 '수라의 연인', 리디북스에서 '후안무치', 레진코믹스에서 '불이 부르는 소리에'가 말이죠. 모두 동양풍 BL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후안무치'는 진양님의 소설을 웹툰화한 개그물인 반면, '수라의 연인'과 '불이 부르는 소리에'는 시리어스물입니다. 강렬한 색채로 인간의 잔인성을 묘사한 피폐물이기도 하죠. 그 중 원픽은 단연 '불이 부르는 소리에'입니다.
'불이 부르는 소리에'에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불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거였어요. 활활 타오르는 불의 산, 그곳에서 사는 불의 악마는 인간 세상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세상으로 옮겨 줄 이를 애타게 부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거나, 자신의 욕망을 찾았거나, 일생에 한 번 가슴속에 불꽃을 태울 사람을 말이에요. 그때, 정의로운 돗자리 장수 척은 무가의 장군 무장운을 만나 어지러운 세상을 바꿀 꿈을 꾸고 있었죠. 척은 그 불꽃으로 인재를 모으고, 불의 악마의 부름에 응답 할 수도 있게 되요.
불의 악마는 척에게 지혜를 빌려줍니다. 뜻을 함께한 6명과, 척의 한나라... 불을 숭배하는 대륙의 7개의 나라는 이렇게 탄생한 거죠. 불의 악마는 아름다웠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기꺼이 알려 줍니다. 많은 이들이 불의 악마를 사랑했고, 척 역시 불의 악마에게 깊이 빠집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사람들은 척을 시기하며 악마를 빼앗으려 들고, 다른 쪽에선 불의 악마를 왕을 꼬신 요물이라고 비난해요. 불의 악마는 돌연 바뀌는 사람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고 깊이 상처 입습니다.
불의 악마는 자신을 원하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 모두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곧 사랑이 하고 싶어졌죠. 사랑하는 사람과 불의 산으로 돌아갈 꿈을 꾸게 됩니다. 불의 악마를 세상으로 옮겨준 불이 '욕망'이었다면, 불의 산으로 돌아가게 해줄 불은 '사랑'이길 바란 거죠. 하지만, 현명하고 의로운 왕, 척이 죽자 불의 악마는 곤궁엔 처해요. 불의 악마를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누구의 가슴도 불타지 않았거든요. 불의 악마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1000년간 철창 안에 방치돼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는 불꽃이 한 사람의 가슴속에서 타오릅니다. 최약국, 불의 나라의 막내 왕자 주단이었어요. 7개의 나라는 건국 신념 따위는 모두 망각하고, 부패와 일그러진 욕망만이 가득한 혼돈이 되었죠. 한나라는 힘으로 약소국을 핍박하고, 그 약소국들은 더 약소국을 유린했어요. 최약국인 불의 나라 백성들의 삶은 당연히 가장 처참했죠. 주단은 그들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주단은 자신을 부르는 악마에 소리에 이끌립니다.
불의 악마와 주단은 서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척과 불의 악마 역시 '사랑'했지만, 그때 불의 악마는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죠. 불이 악마를 불타게 해줄 사람은, 작품에 3명 등장합니다. 그들은 모두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불의 악마를 사랑하게 됐지만, 결국 악마가 '진짜' 사랑했던 사람은 주단뿐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긴 기다림, 정의롭고 약한 왕자, 불의 악마는 주단에게 화약에 대해 알려 줍니다.
화약을 이용하면서 주단은 삽시간에 대륙의 절대 강자가 됩니다. 불의 나라 백성들은, 괄시받는 존재에서 괄시하는 위치에 오른 것을 기뻐하며, 주단과 불의 악마를 칭송했어요. 화약으로 죽어간 사람이나, 초토화된 한나라 땅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 서러운 삶을 살았을 그들에게는 타고 남은 잔열처럼, 잔잔히 깔리 분노가 있었으니까요. 반면, 주단은 초조했습니다. 그래서, 주변국이 감히 따라하지 못할, 더 강하고 오래 타는 화약을 개발하려고 골몰하죠.
주단은 불의 악마를 밀실에 가두고 더 좋은 화약을 만들 지혜를 강요합니다. 인간성을 상실한 지율을 이용해 살상력이 높은 화약을 개발하죠. 사랑을 갈구하는 악마를 누르고, 통제하고, 함부로 대하면서, 나를 이렇게 대하지 말라는 악마의 눈물 어린 호소를 듣지 않아요. 화약에 대한 주단의 집착은, 그를 불안과 광기밖에 남지 않은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의 가슴에 불꽃은 꺼져가고 있었어요. 악마는 살기 위해, 새로운 불꽃으로 갈아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새로운 불꽃 유하가 나타나죠. 유하는 숨겨진 척의 유지를 찾기 위해 궁으로 들어갑니다. 더불어 하찮은 돗자리 장수에게 불씨를 옮겨 준, 불의 악마를 사랑하게 돼요. 불의 악마는 주단에게 당하면서도, 주단을 사랑하는 마음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죠. 그리고, 유하가 찾은 척의 유지에는, 자신이 죽고난뒤 영겁의 시간을 홀로 살아가야 하는 악마에 대한 염려가 가득 담겨 있었어요. 유하는 주단에게서 악마를 구하기로 합니다.
작품 속 모두가 자신의 '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불의 악마를 불의 산으로 데리고 가 줄 그릇은, 오로지 세 사람뿐이었죠. 그럼, 다른 사람들의 불은 왜 악마에게 선택받지 못한 걸까요? 왜 척이나 주단, 유하처럼 전쟁의 신, 승리의 증표, 제왕의 증거를 가지지 못한 걸까요? 그건 아마도, 그것이 세상을 비추는 불이 아니라, 자신만을 태우는 불이기 때문일 거예요. 모두 스스로 죽음으로 가거나, 타인을 죽음으로 몰기 위해 불타고 있었죠. 때론 알면서도, 때론 모르기 때문에...
불의 악마가 '악마'로 불리는 설정도 흥미로워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인간'들은 복잡하고, 잔인하고, 남 탓도 잘합니다. 화약 개발에 재능이 있는 지율은, 과거 왕족들의 장난감으로 학대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자학을 반복해요. 그럼에도 그들이 아닌, 단 한번 자신을 모른척했던 악마를 증오하고, 많은 무고한 이들을 태워 죽이죠. 무기도, 심지어 불의 나라 궁인들도, 상황과 사정이 바뀌면, 거침없이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얼굴을 바꿔요. 오로지 악마만이 변함없이 선의를 베풀며, 계속 한결같이 사랑만을 바랍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는 뿔을 가진 악마와, 사람을 죽이는 뿔이 없는 인간인 셈이죠.
불은 인력이 있습니다. 붉은색이 퍼지는 모습이 꽃 같기도 하고,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습이 춤사위 같기도 하고, 타오르다 허공에서 소멸하는 부티는 신기루 같기도 합니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에 열기도 잊고 가까이, 가까이, 다가가게 되죠. 사람 안의 불도 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연정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굳건한 의지의 발현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요. 하지만, 선을 넘어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불은 돌연 광기가 되어 뜨거운 열기로 덮쳐 올지 모릅니다. 재가 될 때까지 모든 걸 태워야, 비로소 꺼지는 그 속성대로 말이죠.
사람과 어울려 살며 사랑하고 싶었던 악마가 끝내 깨달은 것은, 불은 불의 산에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불은 홀로 타지 않습니다. 많은 것들을 태우고, 멀리멀리 옮겨붙습니다. 재가 되지 않고, 불을 품을 수 있는 강한 사람조차 광기에 취하게 하는... 불이란 그런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