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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20 [김경미 시집] 카프카식 이별

커피를 좋아하면 카페를, 빵을 좋아하면 동네 베이커리를 꿈꾸게 됩니다. 우주소년이었던 CEO의 우주여행 취미나, 초호화 PC방을 차려 팀 FPS 게임을 즐기는 가수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일에 가까운 일을 하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이 되는 순간 겪어야 하는 무수한 '불쾌'도 알고 있기 때문에, 실현가능해 질 수록 실현하지 않게 되는 아이러니함은 무엇일까요?^^

저에게는 동네서점이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책만 모아두고, 그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맛있는 차한자 다과 몇개 팔면서 생활 할 수 있다... 크~ 생각만 해도 배부르네요. 저는 물건을 늘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거의 이북으로 읽긴 하지만, 책방을 가는 날은 손에가는 종이책을 사곤 합니다.

주말에 방문한 동네서점은 진보적 여성작가 책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대형서점에서도 보기힘든 희귀 도서들도 제법 눈에 띄었습니다.

비판적 여성작가의 건조한 시각과 비판적 남성작가의 염세적 시각이 보여주는 날섬의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칼과 도끼같다고 느끼는데, 호불호와 상관없이 다양성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여성작가님들 책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카프카식 이별은, '김미숙의 가정음악'라는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 오프닝 시를 모아 놓은 시집입니다. 1일 1시라는 점에서 작가의 일기와 같은 시이기도 하고, 라디오 오프닝이라는 점에서 청취자를 위한 사연 소개글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작가 본인의 이야기도 있고, 듣고 본 이야기로 쓴 시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 끝에 짤막하게 코멘트를 남겼죠. 저는 그 부분이 좋았습니다. 쉬우나 어려우나, 시라는 것은 짧고 내용은 깊어, 읽고 머리 속으로 그릴 수 있는 이야기는 많잖아요. 그러다보니, 어떤 시는 읽고 나면, 누군가와 마구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작가의 코멘트가 남아 있으니, 아쉬운대로 작가와 짧은 수다를 떤 기분이 들어습니다.

'카프카식 이별'이라는 시는 수록 된 시 한편의 제목입니다. '카프카'라고 하면 연상 되는, 실존주의, 허무주의, 비극적 삶이 아니라, 5번의 파혼을 불러 온 사랑에 대한 예민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시는 주로 '서민'적 '일상'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교통 수단으로 비유하자면 새벽녁 버스, 술로 비유하자면 한강변 깡맥주, 옷으로 비유하자면 몇군데를 돌고 돌아 없는 애교를 다 떨며 몇푼 깍아 산 티셔츠 같은 시입니다. 너무 뜨겁지 않고, 너무 차갑지 않고, 하지만 때론 뜨거운 눈물이 나고, 때론 현실이 너무 차갑게 느껴지는 시집이었어요.

그래서, 시집의 커버에 적힌 홍보 문구가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김경미 시인은 파괴자입니다. 삶에 매설된 불안과 우울, 불확실성이란 지뢰를 시로 파괴하는 미의 전사입니다.'라고 되어 있었거든요. 심지어 '심금을 울리는 시를 들으며 카프카를 만나고...'라는 구절도 있어서... 음???? 카프카가 나오긴 하지만... 뭐, 스친것도 만나긴 한거지.. 하고 혼자 떨떠름 했죠. 그 커버지는 바로 떼내 버렸습니다.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시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오는 가을이 조금 덜 춥지 않을 것 같습니다. 책만 읽고 살고 싶다는 소망은 요원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오늘은 책을 읽습니다.

책갈피 1:

용서의 냄새

 

아침에게서 수박 냄새가 난다

장미 냄새 같기도 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머리가 찢기듯

천벌 속이었는데

갑자기 이유도 없이

아무 이유도 없이 말끔해졌다

용서 때문이다

누가 나를 용서한 거다

나 때문에 상처받은 누군가가

여태 날 요서 않고 벼르다가

오늘 마악 날

용서한 거다 깨끗이

틀림없다

용서받은 냄새

누군가가 날 용서한 거다

책갈피 2:

나를 위한 시

 

불안과 포기를 걷어낼 것

화나 미움은 대개 열등감의 한 분출 방식임을 기억 할 것

어리석고 인색하니 헛짚는 법

끝없이 지혜와 덕을 구할 것

모든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 때문에

마음 아플 일도 많겠지만

받지 않아야 할 상처에 지나치게 오래 자신을 방치하지 말 것

넓은 바다와 들,

높은 산과 정다운 골목들을 철학의 기준으로 두고

새와 나비처럼 자유롭고 독자적이고 독립적일 것

고유할 것

고유하되

타인의 손, 끝까지 놓지 말 것

매사 순한 마음이 불러오는 순조로움을 믿을 것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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