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블릿

출간일: 2021.04.06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기분 좋아도 돼요. 괜찮아요. 쾌락에 약한 건 잘못이 아닌데. 누구나 약한 부분도 자신 없는 일도 있는 거니까."

"그런-."

"취향은 다들 다르다면서요. 그걸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좋아져 버린 건, 그래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건 누구 잘못도 아니잖아. 어쩔 수 없는 거지."

잘못이 아니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이현의 나직한 목소리가 주원의 머릿속을 바삐 돌아다녔다. 멋대로 물 안을 걷어내고 쿵, 쿵, 차게 가라앉아 있던 심장을 뜨겁게 뛰게 만들었다.

취했기 대문일 것이다. 눈시울이 뜨거운 것은, 온몸에 견딜 수 없을 만큼 열이 오르는 것은.

이현이 주원의 머리를 감싸 느릿하게 끌어당겼다. 힘없이 축 안기는 주원을 다독여주었다. 평소처럼 야릇하고 끈적이는 손길이 아닌 탓에 주원은 그에게 더 매달리고 말았다.

"하지만 전부, 다... 망쳐버렸......"

"타이밍이 나빴을 뿐인데요, 뭐.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고 생각해요.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그날 날씨 탓이라고 치고."

"윽......"

목 언저리에 맴도는 말들 대신 틀어막힌 작은 소리만이 새어 나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현은 늘 주원이 원하는 말을 해줄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필요한 말을 해줄 수 있는지.

이현이 품에 안아줘서 다행이었다.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주원은 알고 싶지 않았다.

point 2 줄거리

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건물 옥상, 주원은 쾌감에 취해 자위를 하고 있었다. 분출하지 못한 열감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건물 1층 카페 바리스타 이현이 나타난다. 이현은 대뜸 주원을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능숙한 손짓(?)과 자연스럽게 이어진 삽입까지 이어지자, 주원은 서서히 정신이 돌아온다. 두 사람은 옥상 아래, 카페 위층에 있는 주원의 직장으로 가 젖은 옷을 갈아입는다. 주원은 이현에게 감기에 걸리지 말라며 비타민을 잔뜩 쥐여 준다.

승: 이현은 자신이 게이라는 것과, 주원이 완벽한 이상형의 몸을 가지고 있어 평소에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후로 두 사람은 이전과 같은 일상을 보낸다. 주원은 무뚝뚝한 회사원이 되었고 이현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 낮은 빗소리가 잔잔히 귓가를 두드리는 어느 날, 이현은 어두운 휴게실 구석에서 자위하는 주원을 발견한다. 주원은 이현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두 번째 섹스였다.

전: 그날 이후, 두 사람은 한결 가까워진다. 화창한 날에도 만나, 식사를 하고 호텔도 갔다. 또 비가 내렸다. 이번엔 주원이 먼저 이현에게 건물 화장실로 와달라고 연락한다. 이현은 '비'가 아닌 '이현'에게 흥분하는 주원을 보고 싶다고 욕심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현은 비가 내릴 때마다 주원과 급하게 몸을 섞으며, 비가 오지 않은 주말에도 주원을 만나 격한 정사를 벌였다.

결: 과거 엄한 아버지에게 통제 속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야만 했던 주원은, 우연히 비 내리는 날 자위를 하다 짜릿한 해방감을 느꼈다. 이후 비가 내리면 지독한 쾌락에 휩싸였다. 주원은 변태 같은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이현에게 빠진다. 그러다 주원의 맞선과 이현의 재산(?)이 알려지면서 두 사람은 다투지만, 눈치 빠른 매니저의 도움으로 곧 화해한다. 주원은 비가 내리지 않는 날, 이현에게 이제 연애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개취를 존중해 주세요!

여기 남다른 개취를 가진 두 주인공이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소리, 습기, 냄새, 촉감에 쾌락이 끓어오르는 비페티시 주원! 그리고 근육질 몸에 꼴리는 게이 이현! 평범하지 않은 두 사람의 만남은 비범했어요.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는 옥상, 끙끙 앓으며 자위하는 주원과 냉큼 나쁜 손부터 나가는 이현이 만났죠. 장마철, 집중 호우 예보가 연일 이어지는 기간, 같은 건물 1층과 3층에 일하는 두 사람은, 그 건물 음침한 어딘가에서 은밀한 만남을 계속해요.

이현이 주원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주원이 이현의 이상형이었기 때문이에요. 바로, 탄탄한 근육질 몸매 말이에요. 하지만, 주원이 열심히 몸을 단련한 이유는, 주원의 특수한 성향 때문이었어요. 비 속에서 긴(?) 시간 진을 빼야 했던 주원은, 쉽게 감기에 걸렸죠. 하지만, 비가 매일 내리면, 또 비를 맞아야 하는 주원에게 선택권은 없었어요. 결국, 평소 운동을 통해 몸의 내성을 기릅니다.

결과적으로 그 성향 때문에 주원은 이현에게 도움받을 수 있었고, 이현은 이상형인 '이성애자'와 썸띵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거죠. 비페티시는 어쩌면, 주원에게는 숨 막히는 입시와 아버지의 기대 속에서 탈출할 수 있는 임시 방공호였을지도 몰라요. 주원은 비만 내리면 흥분하는 자신을 변태 같다며 괴로워했지만, 그건 불편할 뿐이지 잘못된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주원의 숨 통을 잠시나마 트이게 해줬고, 주원과 이현 모두에게 기적 같은 연인을 선물했죠.

다만, 클라이맥스인 '갈등'이 아쉬웠습니다. 이현은 주원의 성벽을 기꺼워하고, 주원은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인 이현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현이 건물주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쉽게 여겼다고 화내는 주원과, 그런 주원에게 이현이 당신도 취향을 어쩌지 못했으면서 나는 게이인 걸 받아들이기 쉬웠는 줄 아냐고 싸우는 것이... 설득력 없게 느껴졌어요. 두 사람 모두 사소한 질투가 쌓였다고 쳐도, 좀 잉?스러웠죠.

너무 큰 개취를 쉽게 이해해서, 작은 오해를 어렵게 풀 수밖에 없었나? 싶기도 했지만, 그다지 끄덕여지지는 않더라고요. 하필(?) 장마철이라 씬의 비중이 높다 보니 서사가 다소 약한 경향이 있었죠. 하지만, 참신한 소재와 떡대수 미인공의 귀한 조합에, 우수한 가독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어요. 플러스마이너스 해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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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문라이트북스

출간일: 2019.03.15

분량: 본편 2권 + 외전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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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나는 꼭 오늘 밤을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게 보내고 싶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까지 내내 안락하고 행복해서 태어나 가장 행복한 밤이었다고 느끼고 싶었다. 20년 뒤, 30년 뒤에도 꼭 오늘 밤처럼 따뜻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정한 차현재의 목소리와 함께 그의 품으로 얼굴을 더 깊게 묻었다. 그리고 빠르게 뛰는 심장 위로 입을 맞췄다.

너와의 미래를 사랑한다. 감히 기대도 할 수 없고, 꿈도 꿀 수 없는 저 먼 미래를 사랑한다. 그 미래의 현재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의 기억 속에 있는 모든 과거의 현재를 사랑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지금의 너.

현재의 현재.

우두커니 선 나의 감정들이 그의 품에서 다정히도 무너졌다. 너의 온기는 틀리지 않았다.

point 2 줄거리

기: 이연하는 OT 때 자신을 대신해 술을 마셔준 차현재에게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차현재는 빛, 이연하는 어둠, 연하는 어둠 속에서 현재를 바라만 봤다. 하지만, 제대 후 복학한 학교에서 다시 만난 차현재는, 그 각오를 허물어트렸다. 현재는 자신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 연하의 시선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연하에게 이유를 묻자, 연하는 물건을 모두 떨어뜨릴 정도로 과하게 떨며, 연신 사과만 하다 도망쳐 버렸다.

승: 현재는 연하와 친하지 않았지만, OT에서 만난 예쁜 연하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하가 도망친 이후, 현재는 연하가 신경 쓰였고 지켜보기 시작한다. 연하는 시키면 다 한다고 '콜'이라 불리며, 커피 셔틀, 책 반납, 조별 과제 등 자잘 자잘 한 심부름을 도맡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은 얼굴에 멍을 달고 나타나기도 했다. 현재는 연하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연하를 무시하는 동기들에게 쪽을 주며, 연하를 챙기기 시작한다.

전: 그러던 어느 날, 안진수가 연하를 희롱하고, 보다 못한 다른 동기가 말리면서 싸움이 벌어진다. 그때 연하는 갑자기 뛰쳐나가 창밖으로 투신하려하고, 현재는 급하게 연하를 잡는다. 연하는 공포에 떨며 아버지에게 용서를 빈다. 그제서야 현재는 연하의 상처와 불안의 원인이, 그의 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연하의 아버지는 연하를 폭행하고, 모욕하고, 갈취했다. 고립된 환경 속에서 오랜 학대에 시달린 연하는, 여러 정신이상 증세를 홀로 견디고 있었다.

결: 현재는 연하를 더 적극적으로 보호한다. 연하의 고독하고 검은 우주를, 현재라는 빛이 밝혀주고 있었다. 연하는 용기를 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심한 폭행을 당한 채 현재를 찾아간다. 그 후 연하의 아버지는 학교까지 찾아와 연하를 다시 폭행하고, 그의 동기들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수감된다. 그 후 아버지는 다른 수감자와 다투다 죽고, 연하는 비로소 아버지에게 벗어난다. 연하는 현재와 동거를 시작한다. 연하는 처음으로 설레는 미래를 떠올린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저는 재탕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냥 뭐든 반복해서 보는 걸 좋아해요. 3년 내내 한 시즌 미드만 본다든지,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책은 20번, 좋아하는 영화는 10번 이상 봐요. 참고로 최다는 1작 100번입니다. 그래서, 발 빠르게 최신작을 섭렵하거나, 많은 작품을 보지는 못하죠. 장단이 있습니다. 저는 저의 상황과, 나이와, 경험이 바뀌어 같은 작품에서 다른 감상을 느낄 때, 보물찾기 한 것 같은 짜릿함이 느껴져요. 재발견의 묘미죠.

'우두커니 나의 우주는'도 그중 하나예요. '격정 멜로' 리뷰 때도 잠시 언급했지만, 저는 원래 클레어님 작품과 잘 안 맞았어요. 저는 강수를 좋아하는데, 클레어님의 수는 예쁘고 유약해요. 결정적으로... 그 수가 고구마 100만 개 먹은 것 같은 생각이 나 행동을 계속하죠. 그나마 나은 수가 '언제나 타인'의 '태이'나 '러브론'의 '유현'인데, 그들도 딱히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어요. 약간의 분열증, 망상증, 맹목적 복종, 흡사 사이비 종교 추종자 같다고 할까요.

그러다, '결정 멜로'를 보고 다시 클레어님의 작품을 복기해 봤습니다. 저는 성실한 연재 작가님들을 아주 높이 평가하거든요. 그러다 발견 한 작품이 '우두커니 나의 우주는'이었어요. 이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연하의 심리 묘사 때문이에요. 내용은 불쌍하지만 착하고 예쁜 수가 공에 의해 행복해지는 일방적 구원물로, 다소 뻔합니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이것이 연하가 본 현재가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연하는 무중력, 무호흡, 무광의 우주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뿌리내릴 힘도 없고, 숨 쉴 수도 없으며, 한 줄기의 빛도 없는, 어둡고 추운 우주에 연하는 외롭게 부유하고 있어요. 족쇄에 묶여 자유를 빼앗긴 사람에겐 '해방'이라는 희망이 있지만, 연하의 고립은 탈출이 불가능하죠. 다만, 연하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별, 지구를 꿈꿀 뿐이에요.

잘라내야지, 포기해야지, 가질 수 없다는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연하는 그곳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어요. 그때 그 찬란한 빛이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옵니다. 연하는 겁이 났어요. 그래서 열심히 피해 다니죠. 연하의 아버지는 연하가 예쁜 얼굴로 몸을 팔고 다닌다는 망상을 떠벌리고 다녔고, 연하는 자신에게 호의를 가진적 있던 사람들이 보내는 혐오의 눈빛을 기억해요. 진실이든 아니든, 연하는 자신의 얼굴과 존재가 죄스러웠어요. 현재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았죠.

하지만, 연하는 너무 눈에 띄었어요. 늘 주눅 들어있었고, 부당한 대우에 익숙해 보였고, 무엇보다 자주 다쳤어요. 게다가 자신을 노골적으로 피해하는 것까지 느껴지는데, 성격 급한 현재가 가만있을 리 없었죠. 그리고 현재는 연하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도, 자신이 연하에게 과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됐다는 것도, 일찍 알아채요. 하지만, 연하는 목까지 올라온 말들을 꾹 눌러 담기만 하죠.

현재는 연하에게 막연히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지만, 굳이 헤집지는 않았어요. 연하는 늘 위태로워 보였으니까요. 그러다, 연하가 투신을 시도하고 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상처의 뿌리가 매우 깊다는 걸 알게 돼요. 그리고, 그런 연아를 더 소중히 감싸줘요. 현재는 연아를 먼 우주로부터 조금씩 끌어안아요. 그리고, 그럴수록 현재의 중력은 연하를 더 잡아당기고, 연하는 서서히 현재에게 정착하죠.

연하는 자신의 두려움이 아버지를 더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것도, 동기들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 줄수록 점점 심해진다는 것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연하에게 두려움을 이기거나 불편함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죠. 그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우주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거든요. 연하는 현재에게 이상한 자신을 숨기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건 당연한 거였어요. 우주인은 지구인이 아니니까, 지구인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밖에요.

하지만, 현재를 만나고 연하의 우주는 무너집니다. 연하는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동기들에게 자신을 더 이상 '콜'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선언하죠. 현재에게 아프다고, 못하겠다고, 용서가 아니라 진심을 입 밖으로 끄집어 냅니다. 태아가 세상에 나와 첫 울음을 울 듯, 옹알이만 하던 아가가 첫 단어를 내뱉듯, 연하는 그렇게 지구인이 됩니다.

저는 현재라는 이름을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했어요. 과거의 현재는 연하에게 '이상'이었어요. 만질 수 없는 별이었고, 삼키면 안 되는 빛이었죠. 가질 수 없기에 체념해야 했지만, 바라보는 걸 멈추지 못했어요. 그래서 고통스러웠지만, 그랬기 때문에 현재에게 발견됩니다. 그리고 현재의 현재는, 연하에게 살아있는 사람이 돼요. 만지고, 대화하고,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는 실체! 연하는 미래의 현재를 그리며 비로소 우두커니 선 우주에서 지구를 향해 걷기 시작합니다.

솔직히 다시 봐도 클레어님 작품은 분열증 환자의 일기 같은, 공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답답한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가 아예 '진짜 환자'인 '우두커니 선 우주'는 오히려 집중하기 쉬웠죠. 물론, 클레어님은 굉장히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비정상적 수가 바라보는 정상적 공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고, 이 강점이 새롭게 비춰질 시점이 저에게 찾아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탕은 무한히 필요하다는 자기 합리화를 해 봅니다.(끄덕)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1.03.27 - [BL 소설] - [현대물/할리킹/달달물] 격정멜로 - 클레어

 

[현대물/할리킹/달달물] 격정멜로 - 클레어

​ ​ ​ ​ ​ ​ point 1 책갈피 ​ ​ " 빛이 하연준 씨를 좋아하나 봐요. 예뻐서 자꾸 보고 싶은 거겠지, 내가 그런 것처럼." ​ "......" ​ "하연준 씨는 내가 알고, 또 내가 생각하던 모든 걸 다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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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문라이트북스

출간일: 2020.04.06

분량: 본편 1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스탠리, 이제 알겠어?

그녀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넌 나를 좋아하지 않아."

"... 그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좀 더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충동적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노라 하트가 뒷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라이터로 담배를 태우면서 그녀가 씁쓸하게 말했다.

"가끔 우리는 과거의 기억, 감정까지 꾸며내곤 하잖아?"

point 2 줄거리

기: IT업계의 신화, SNS 플랫폼 '와이퍼'의 창업자인 스탠리 제이미슨! 그는 고향으로부터 온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하이스쿨 내내 짝사랑했던 노라의 결혼 소식이었다. 백만장자인 스탠리는 철저한 관리를 통해 번듯한 외모를 가지게 됐지만, 고등학교때는 다리 교정기를 낀 채 두꺼운 안경을 쓰고 컴퓨터 책을 들고 다니는 왕따였다. 특히, 마을 유지의 아들인 척 앤더슨과 그 패거리는 스탠리를 때리고, 가두고, 모욕했으며, 다른 클래스 메이트는 방관했다.

승: 스탠리는 승승장구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향 밸린저 시티로 돌아간다. 하지만 가는 도중 차가 고장 나고, 도착한 견인차에서 첫 번째 동창을 만난다. 하이스쿨 프롬킹, 미식축구부 쿼터백, 그리고 노라의 남친이었던 리처드 베켓이었다. 리처드는 다리 부상을 입어 운동을 그만두고, 마을 정비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밸린저 시티로 돌아온 스탠리는 조금씩 과거 일을 떠올렸고, 동창들은 예상대로 성공한 스탠리에게 굽신거렸다.

전: 한편, 스탠리는 충격적 진실도 연이어 알게 된다. 노라와 결혼하는 사람이 '그' 척 앤더슨이고, 노라는 사실 자신을 미워했으며, 리처드를 좋아하지만 리처드는 다른 사람을 좋아해서 헤어졌다. 그 다른 사람이 스탠리다. 그리고, 스탠리는 사실 노라를 좋아한 게 아니었다. 등등. 스탠리는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면서도, 오해와 편견의 안경을 벗고 본 리처드에게 마음이 쏠리기 시작하고, 술에 취해 리처드를 유혹한다.

결: 섹스 후 스탠리는 리처드와의 관계 설정을 망설인다. 한편, 노라의 결혼식에 간 스탠리는 리처드가 부상당한 사연을 알게 되고, 그 자리에서 신랑인 척을 폭행한다. 이후 뉴욕으로 돌아간 스탠리는 리처드를 잊지 못했고, 이모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자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다. 스탠리는 리처드에게 고백한다. 리처드와 사귀는 것을 주저하지만, 결국 스탠리에게 3일 카운트 다운에 넘어간다. 리처드는 벨린저 시티를 떠났고, 곧 스탠리와 함께 살 예정이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삶이 그대에게 레몬을 준다면,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백포백은 봐주는 게 인지상정! 하지만, 개인적으로 하이틴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너무 오글거려서, 잘 못 보겠더라고요. 그냥, 풋풋하고 예쁘게 사랑하는 거면 좋은데, 저세상급 위대한 고딩들의 러브 스토리는 공감도 안 되고 부끄럽기만 해요. 아직 때묻고 마모되지 않은 순수의 영역, 학교라는 곳이 가지는 로망이 있기 때문일 테지만, 사실 그것도 때묻고 마모되봐야 아는 것 같아요. 학생들끼리는 결코 서로를 순수하다고 느끼지 못할 테니까요.

그런데, 읽고보니 '하이스쿨 랑데부'는 학원물이 아니었습니다. 대도시에서 성공한, 34살의 스탠리가 짝사랑했던 동창의 결혼식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 겪게 되는 이야기니까요. 다만, 회상하는 부분에서 학창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주로 스탠리가 잊었거나, 왜곡했거나, 모르고 있던 사실 위주로 나와요. 그러니까 결국 학교내 일화는 스탠리가 척 무리에게는 순수한 피해자였지만, 그 역시 노라나 리처드에게는 가해자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인 거죠.

스탠리의 학창 시절은 누가 봐도 지옥이었어요. 그래서, 스탠리는 많은 기억들을 잊거나, 자기방어를 위해 변형시켰죠. 그렇게 들어낸 덩어리에 리처드도 있었어요. '나는 노라를 사랑한다.' 스탠리에게 이 불변의 진실은, 어쩌면 유쾌함이라곤 조금도 없는 학교에 스탠리를 묶어 둘 수 있는 유일한 밧줄 같았을 거예요. 하지만, 수많은 불친절 속에 노라가 보인 찰나의 호의를 사랑이라고 착각한 스탠리의 맹신이, 노라와 리처드를 아주 많이 불행하게 만들었어요.

리처드는 빚더미에 앉은,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아버지 때문에 벨린저 시티에 오게 됩니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척 앤더슨의 부친이 돈을 빌려줬거든요. 리처드는 척의 부친이 내주는 학비로 학교를 다닌 거였어요. 리처드는 스탠리를 괴롭히는 척이 혐오스러웠지만, 이미 척과는 '을'일 수밖에 없는 관계였죠. 또, 리처드는 아버지를 닮은 외모, 그리고 폭력성과 충동성 역시 혐오합니다. 리처드는 자신 안에 들끓는 감정들을 미식축구로 발산하려해요.

스탠리는 리처드를 다 가진 인싸로 기억하지만, 사실 스탠리보다 리처드가 훨씬 위태로웠어요. 그런데 그 간당간당한 균형마저 스탠리가 무너트려버립니다. 스탠리를 좋아하게 된 후, 리처드는 척의 괴롭힘을 묵인하는 것도 노라를 좋아하는 스탠리를 지켜보는 것도 괴로웠어요. 결국, 척과 완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척은 빚을 탕감해 주겠다며 리처드를 폭행합니다. 그때 다리가 부러진 리처드는 정비공이 되죠. 또, 노라와의 기만적 연애도 상처뿐인 결말을 맞아요.

노라는 그럼에도 리처드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리처드가 미워서 척과 결혼하지만, 결국 척과 파혼하고 다시 리처드에게 함께 마을을 떠나 살자고 찾아와요. 하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리처드는 스탠리만을 사랑하고 있었죠. 스탠리가 노라에게 느낀 '사랑'이 환상이었다면, 리처드가 스탠리에게 느낀 '사랑'은 고통이었어요. 리처드는 노라를 배신하고, 척에게 굴욕적으로 무릎을 굻고, 동창들에게 타락한 쿼터백으로 각인됐지만, 17년간 스탠리를 잊지 못했어요.

그러다 17년 만에 나타난 스탠리는 리처드를 더 괴롭게 만들죠. 이룰 수 없는 사랑과, 실패한 사랑은 다르니까요. 리처드는 스탠리를 밀어냅니다. 그러다가도, 자신을 유혹하는 스탠리에게 넘어가죠. 리처드는 아버지와 닮은 자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탠리의 부를 강박적으로 거부하고, 그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주저해요. 그건, 스탠리가 노라를 사랑한다고 스스로 세뇌하고, 리처드와의 좋은 기억을 의도적으로 망각한 것과 같은 기저였어요.

소설은 단권답게, 두 사람이 마음 속 장애물을 뛰어넘어 사랑에 골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학원물이 아니기 때문에, 동창들의 이야기는 잘 수습되지 않아요. 두 사람이 서로 이루어지는 순간, 그들 중간에 있던 척이나 노라, 가족들은 모두 생략되죠. 분량을 생각하면 똘똘한 구성이라고 생각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 맞춰가며 성장하는 러브 스토리가 있었다면 더 탄탄했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찌 보면, 두 사람이 한건 '오류 수정'과 '진실 확인'뿐이니까요. 물론, IF 외전처럼, 리처드가 고등학교 때 스탠리에게 고백하고 집안 사정을 솔직히 말했다면, 두 사람은 더 빨리 이루어졌겠죠. 하지만, 언제든 기억의 왜곡을 걷어 낼 수 있다면, 그 아래 애정과 관심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을 거예요. 두 사람은 아주 어려운 한 발짝 나아갔지만, 근본적인 불안이 해소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짜 연애'는 처음인 두 사람의, 서툴면서 열혈한 동거기가 보고 싶습니다.

나름 깔끔한 마무리긴 한데, 그래도 질척거리고 싶은 마음을 지울 수가 없네요. 3권 분량에 1권이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아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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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최정은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긍정적이었나 생각했는데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박태서를 만나고부터였고, 긍정적인 건 박태서와 관련된 일뿐이었다. 예를 들어 영상 통화하며 밥을 먹자는 말도 다른 사람에겐 평생 못 할,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말이다.

 

태서는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언제나 이런 사람이 필요했다.

 

내게 관심을 갖고, 걱정을 아끼지 않는 사람.

 

'백태서가 날 길들였어.'

 

불안해야 할까. 이렇게 길들이고 떠나 버리면 전보다 더 크게 외로워질 테니까.

 

하지만 불안하기보다는 홀가분히 미소 지었다. 이 순간만을 즐기고 싶었다. 살면서 별로 느껴 본 적 없는 행복한 시간이니까.

 

 

 

point 2 줄거리

 

 

기: 20살 박태서는 악인 그 자체였다. 마약을 비롯한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하지만, 그는 세계 굴지의 대기업 고성의 막내아들이었고, 수려한 외모를 지녔으며, 부모와 형제들에게 절대적 애정을 받고 있었다. 고로, 그의 악행은 모두 무마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서는 음주운전 후 할머니를 치고, 이에 태서의 부모들은 '힘겹게' 태서의 카드 정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용서문을 받아오지 않으면 카드 정지를 풀어주지 않겠다고 한다.

 

승: 할머니는 자살한 최정의 셋방을 정리해 주면 용서문을 써주겠다고 하고, 태서는 바로 업체를 부른다. 작고 낡은 방엔 최정의 유서와 소소한 그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문득 호기심이 든 태서는 최정의 pc를 가져오고, 최정이 요리 레시피 카페에 올린 게시글을 보게 된다. 그렇게 알게 된 최정은 태서와 동갑인 고아였고, 제대로 배우지 못해 맞춤법도 다 틀리며, 바보같이 사기나 당하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당차고 성실하며, 수다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전: 태서는 재력을 쏟아부어 최정을 찾지만, 속초를 마지막으로 그의 자취는 끊겨 버렸다. 하지만, 태서는 최정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그가 기뻐할 만한 것들을 준비하고, 부끄럽지 않도록 좋은 사람이 되려 한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런 태서의 변화를 반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최정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었고, 태서는 나날이 최정을 그리며 우울증에 빠진다. 그렇게 먹지 못하고, 슬픔에 침식돼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실종 5년, 최정은 법적으로 죽은 사람이 된다.

 

결: 태서는 최정을 따라 죽기 위해, 속초 바다로 뛰어든다. 그 순간 태서는 기적을 만난다. 최정이 태서를 구한 것이다. 최정은 그동안 속초에서, 자신을 구해준 부부에게 갈취당하는 줄도 모른 채 착취 당하며 살고 있었다. 언뜻 행복해 보이나, 최정은 여전히 외로웠다. 그러다 은인의 추한 민낯을 보게 된 최정은, 태서와 함께 서울로 온다. 그곳엔 태서가 공들여 만든, 최정만을 위한 세상이 있었다. 물론, 잠시의 위기는 있었으나, 두 사람은 결국 완벽한 행복을 찾는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악인에게 가장 행복한 세상, 선인에게 가장 불행한 세상

 

 

미지의 절대자가 세상을 운영할 때, 좋은 사람에게 좋은 삶을, 못된 사람에게 나쁜 삶을 매칭 시켜 주면 좋을 텐데... 그전에 절대자가 선의를 가진 합리적 존재라면, '못된 사람'과 '나쁜 삶' 자체가 없겠죠. 인간이 괴로운 건 인간 탓이라고 발 빼서 그런가요. 뭐.. 어쨌든, 저는 원죄도 기적도 운명도 천국도 윤회도 믿지 않습니다. 그저, 이 세상은,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좌충우돌 굴러가고 있을 뿐... 그리하야, 세상은 요지경이죠.

 

'만약 널 만난다면'의 세상도 요지경입니다. 악인은 행복하고, 선인은 불행하죠. 모든 걸 가진 악인은, 살면 살수록 더 가지고, 빈손으로 태어난 선인은, 살면 살수록 간신히 가진 그 '조금'조차 가차 없이 빼앗깁니다. 악인은 사람을 이용하고, 선인은 사람에게 이용당해요. 그러다 요지경의 요지경이 발생합니다. 바로 그 악인이 본 적도 없는 그 선인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어요.

 

태서의 세상은 완벽합니다. 넘치는 돈, 자신과 닮은 친구들, 천사 부모님과 다툼 없는 형제들, 거기다 조각 같은 외모까지! 넘치는 돈은 태서에게 편하고 호의적인 세상을 주었고, 자신과 닮은 친구들 때문에 막 나가는 삶을 살아도 태서는 외롭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넘치는 애정으로 태서가 친 사고를 모두 수습해 주었고, 막내가 귀엽기만 한 형제들은 뭘 해도 우쭈쭈였어요. 대가는 없고, 무한한 혜택만 있는 삶인 셈이죠.

 

반대로 최정의 세상은 무한 대가를 치름에도, 혜택은 전혀 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어요. 고아인 최정은 시설에서 나오자마자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 밤낮없이 일합니다. 학교도 못 다니고, 놀러 다닐 시간도 없는 최정은 언제나 혼자였어요. 그리고, 그나마 그렇게 일해 번 돈조차, 믿었던 형에게 배신 당해 뺏기죠. 최정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나이지는 건 없었어요. 그런 최정의 유일한 위안처는 요리 레시피 카페였죠.

 

하지만, 그 조차 녹녹하진 않았어요. 처음에 카페 회원들은 수다스럽게 일상을 올리는 최정을 귀여워합니다. 엄마는 왜 입양이 안되냐는 글에 위로해 주고, 추위에 떨면서도 성실하게 돈 버는 모습을 기특해하며, 때때로 기프트콘도 보내 줍니다. 그러나 분위기는 서서히 변합니다. 맞춤법을 고의로 틀리는 관종이다, 괜히 카페 분위기 어둡게 무거운 이야기만 쓴다면서, 점점 최정의 글에 늘어가는 죽음의 메시지를 알아채지 못하죠. 결국, 최정은 그 유일한 동아줄마저 놓아버립니다.

 

최정이 삶을 포기하고 난 뒤, 우연히 태서는 최정의 그 글들을 보게 돼요. 그리고 태서는 최정이 입고 싶었던 롱패딩, 먹고 놀랐던 마카롱, 부럽기만 했던 벌꿀 인형, 그런 하찮은 것들조차 가지지 못한 최정을 안타까워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태서의 일상 속에 최정은 서서히 물들어 갑니다. 태서는 자주 최정을 떠올렸고, 최정이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게 됐어요. 최정의 유서를 보고, 그의 방을 정리까지 했지만, 태서는 어느덧 가상의 최정과 함께 살고 있었죠.

 

뒤틀리기 시작한 태서의 일상은 호재처럼 보였어요. 태서는 최정이 그토록 원하지만 가지지 못한 가족과 친구들에게 친절해집니다. 최정이 자신을 형편없게 보는 것이 두려워, 과거의 잘못을 만회하려고 노력하죠. 그래서 소망 재단 이사가 되어 선행을 베풀며, 사고도 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최정이 없다는 거였어요. 비록 시체가 없어 실종 상태였지만, 넘치는 재력을 쏟아부어도 도저히 최정은 찾을 수 없었고, 끝내 법원마저 최정의 사망을 선고합니다.

 

태서는 살려고 발버둥 칩니다. 최정의 콜센터 통화 파일을 구해 AI 음성도 만들고, 최정과의 합성 사진은 물론 DNA 모형까지 제작해요. 그렇게나마 최정의 존재를 메꾸려고요. 어쩌면 최정이 인어가 되었거나 아틀란타스에 갔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며, 사후세계와 오컬트에 관한 책들도 읽죠. 더불어 우울증 치료도 꾸준히 받아요. 하지만, 최정이라는 구멍은 태서의 마음속에서 커지기만 합니다. 태서는 외로워졌고, 그 외로움은 죽음으로 이르는 병이었어요. 최정이 그러했듯 말이죠.

 

최정의 죽음 후 태서의 사랑은 시작됐듯, 태서의 죽음 후 최정의 행복은 발동을 겁니다. 태서는 자살하러 간 속초에서 살아있는 최정을 만나요. 그리고 태서를 비롯한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최정을 포획(?)하기 위한 필사의 전략을 펼칩니다. 처음 태서는 최정이 행복해졌다고 생각하고, 함께 속초에 살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참으로 가관이었죠. 최정은 여전히 잘 먹지 못했어요. 휴일은 한 달에 단 하루뿐이었고, 비정상적 저임금에, 그나마 그 돈조차 오롯이 최정의 것이 아니었어요. 무수한 무임 노동에 머슴처럼 부려지기도 했고요.

 

서울이 최정을 외롭게 만든 사람들의 도시였다면, 속초는 최정의 외로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죠. 최정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어찌 보면 '기만' 당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나빠졌죠. 태서는 최악의 끝에서 다시 최악으로 빠진 최정을 구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최정에게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행복을 주려해요. 최정이 가장 행복한 세상이, 태서에게도 가장 완벽한 세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진실로, 그 세상은 '완벽'했어요.

 

소림님 작품이 늘 그러하듯, '만약 널 만난다면' 역시 엉뚱 발랄 캐릭터와 유쾌한 서사, 통통 튀는 사건들로 웃으며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묵직하게 가슴 한편을 누르는 '현실 비틀어보기'도 있습니다. 다만, 최정이 태서의 오랜 스토킹에 대해서 알게 되는 부분이, 다소 잉?스럽게 마무리되어 허무했어요. <완결>를 보고 냉수 먹고 띵한 기분이었죠. 그리고, 외전에서 태서에게 완전히 정착한 최정의 일상은 므흣했지만, 결혼까지 가지 못한 점은 아쉬웠어요.

 

북적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위로가 늘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은 아닌 듯해요. 얼마나 '나'를 알고 싶어 하는가? 이해하려고 하는가? 이것을 가능케 하는 진실로 순수한 '관심'... 그것이 그토록 어렵고 희귀해 사람은 외롭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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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글로번

출간일: 2021.03.29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저 진짜 말 안 하려고 했어요! 노력하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자초한 거예요! 저 진짜 안 숨겨요. 이제 진짜 안 숨긴다고요! 후회해도 소용없어요!"

"아가."

"아가라고 부르지 마세요! 저 열여덟 살이에요! 알 거 다 아는 나이고 이년 뒤면 성인이니까!"

"......"

"이렇게 된 거 아저씨가 저 좋아하게 만들 거예요. 안된다고 하지 마세요! 아저씨가 저 거둔 거 후, 후회하고 다시 내...... 내쫓는다고 해도 저 취소 안 할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황급히 몸을 돌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허둥거리는지 뒤를 돌아 걸어가다 제 발에 꼬여 넘어지고, 자신이 당기는 문에 이마를 박아 가며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다. 문을 듣기 전에 일하는데 방해해서 죄송하는 말을 끝으로 희서는 완전히 남자의 사야에서 사라졌다.

문이 닫혔음에도 밖에서 요란하게 들리는 우당탕 소리를 들으며 박중권은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꼬았다.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고 나서야 웃고 있다는 걸 깨달은 그는 결국 드물게 소리 내어 짧게 웃음 터트렸다가 아, 하고 자신의 앞머리를 위로 쓸어 올렸다.

"귀여워 죽겠네."

point 2 줄거리

기: 18살, 전 재산 5천 원인 이희서는 5일째 거리를 배회하다, 덩치 큰 박중권과 부딪친다. 배고픔과 추위에 지친 희서는 충동적으로 돈을 구걸하고, 박중권은 그런 희서를 집으로 데려와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 중권의 따뜻한 호의에 마음이 풀린 희서는, 보육원 원장에게 정착 지원금을 뺏기고 술집에 팔렸다가 도망쳤다고 털어놓는다. 중권은 원장 문제를 처리해 주고, 자신에 집에서 살자고 말한다. 희서는 갑작스러운 행운에 의아해하면서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승: 희서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고, 18살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다. 온몸엔 원장의 학대로 인한 멍 자국이 남아 있었고, 중권에게 버림받을까 늘 긴장했다. 중권은 그런 희서가 작은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자신의 처지가 떠올라 거두었고, 예쁘고 귀여워 아껴주었다. 하지만, 희서는 그런 친절하고, 잘생기고 몸도 좋은 중원에게 설레며, 사랑을 깨닫는다. 중원에게 욕정까지 느끼기 시작한 희서는, 곧 마음을 들키고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전: 첫사랑에 스트레스 받은 희서는 쓰러지고, 이를 본 중권은 희서를 잃을까 두려워졌다. 그래서, 희서에게 사랑한다고 거짓말하며 연인이 된다. 희서는 중권과 매일 꿈같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친구도 사귄다. 그러던 어느 날, 희서는 우발적으로 중권의 회사에 가고, 그곳에서 중권과 그의 친구 주산호의 다툼을 엿듣는다. 그리고, 중권이 사랑한다고 거짓말했음을 알고 충격받는다. 반면, 중권은 갑자기 나타난 희서를 보고 당황한다.

결: 중권은 이미 희서를 사랑하게 됐지만, 희서는 중권에게 화를 내며 그의 진심을 믿어주지 않는다. 중권은 끊임없이 희서에게 구애하고, 희서는 중권을 의심하며 계속 시험한다. 그리고, 끝내 중권이 정말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한 희서는, 중권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서로가 서로를 감금하고 싶은 두 사람은, 결박 플레이를 즐기며 사랑(?)의 지평을 넓힌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MSG가 필요합니다!

댕댕함이 가득한 아공&키잡물이 보고 싶어서 충동적으로 선택한 책이었습니다. 여리고, 어리고, 순수한 아가가 나에게만은 상량한 아저씨를 만나서, 아낌없이 사랑받는 이야기! 그 다정한 연애담을 기대했었죠. 물론, 내가 키운 아가에게 조금씩 홀려 드는 아저씨의 격세지감(?)도 말이에요. 역키잡인 듯한 키잡 작품이라, 피폐가 없는 달달 일상물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요? 뭐랄까요... 좀 많이 비어 보이는 느낌입니다.

3권의 분량이면, 줄거리 대비 적지 않은 분량인데도, 진행되다 만 것 같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희서의 건강, 중권과 아버지의 과거, 중권과 산호 사이에 그녀, 보육원 원장의 말로, 중권의 사업 등등... 시작은 있는데, 끝이 애매한 것들이 제법 됩니다. 오랜 폭력에 시달린 데다가 몸이 약해 자낮일 수밖에 없었던 희서의 캐붕도 조금 당황스러웠고요.

많은 자낮수들이, 어마 무시한 사랑을 쏟아붓는 공을 통해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행복해지는 이야기! 흐뭇하죠. 하지만, 독자가 공감하는 부분은 해피엔딩이 자체가 아니라 시련을 극복하고 정상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축적된 세월과 상처로 상실된 자존감이, 그만큼의 세월이 흐르고 문제가 해결된다고 높아지는 건 아니에요. 일단, 기존의 자아를 깨부술 강한 계기와 두려움을 마주하려는 굳건한 의지, 그 의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지해 주고 응원해 줄 사람과 상황도 있어야 하죠.

희서의 정착 지원금을 빼앗기 위해, 원장은 잠시 친절을 가장합니다. 거기에 감동받은 희서는, 돈 500만 원을 건네죠. 하지만, 그때 원장이 한 일은 때리지 않고, 욕하지 않고, 굶기지 않고, 일상적 염려 몇 마디를 건넨 것뿐이었어요. 희서가 중권의 집에 들어가고 사정을 털어놓은 후, 중권은 희서와 함께 보육원 원장을 찾아갑니다. 술 먹은 원장의 고함 소리에, 희서는 학습된 공포와 더불어 중권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공황증을 일으키고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죠. 희서는 극도의 애정결핍과 강박, 망상을 겪고 있었고, 그래서 자존감은 바닥이었어요.

희서가 중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떨결에 중권에게 고백을 하고 난 뒤, 희서는 스트레스로 코피를 흘리며 쓰러집니다. 그만큼 첫사랑은 절실했고, 또 그만큼 희서의 심신은 약했던 거겠죠. 여기까지는 일관된 희서가 갑자기 환골 탈퇴합니다. 특히, 중권과 산호의 대화를 엿듣고, 중권을 거부하는 부분은 놀라워요.

중권은 곧 산호와의 대화가 과장이었음을 설명하고, 지금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희서는 중권과 한 집에서 태연히 일상을 살면서, 중권을 사랑하지만 중권을 믿지 않는다는 우월적 밀당을 합니다. 심지어, 주변인을 이용해서 중권의 진심을 시험하고, 용서의 시점을 계산하죠. 아저씨가 나를 버린다고 하더라도 꼬실 거라고 했을 때부터 의아했지만... 자낮이, 일생 유일한 선의이자 사랑을, 심판대에 올릴 수 있는... 그 설득력 있는 개연적 사건과 사고의 과정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전개도 다소 싱거웠습니다. 희서는 계속 코피를 흘립니다. 건강검진에서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위기에 몰리는 순간이면 희서는 혼절하며 코피를 흘리죠. 그래서 저는 이것이 큰 병의 단초나 무시할 수 없는 트라우마의 발현이어서, 희서가 묻어 둔 상처를 지각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자주 등장했거든요. 그런데, 중권이 희서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계기... 정도로 쓰인 듯합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코피는 흘립니다.

중권이 희서를 줍게 된 계기인 아버지와의 과거사나, 지금은 잠잠한(?) 가업이나, 산호가 좋아하고 중권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없는 그녀나, 분명 감칠맛을 증폭시켜줄 매력적인 설정들이었는데도, 잘 쓰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인기 배우인 산호는 초반부터 예쁜 희서를 연예인 만들자 불타오르지만, 어느 순간 그마저 사라져버립니다. 차라리 중권이 극렬히 반대했거나, 희서가 생각조차 안 했다면 모르겠지만, 그 의지의 정도에 비해 포기는 과정조차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웠어요.

결박플에 대해서는... 좀 생뚱맞은 감이 있지만, 서로를 너무나도 독점하고 싶은 욕구의 구현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뽀뽀만 연신하더니, 막판에 온갖 장난감들이 총 출현합니다. 어찌보면 몰라 순수한 것과, 정직(?)해 순수한 것을 모두 맛볼 수 있는 셈이죠.

'길 위의 강아지'는 신선했습니다. 희서가 중권에 대한 사랑도 빨리 자각하고, 삽질 구간도 매우 짧아 고백도 빠릅니다. 중권이 싫어해도 친구는 열심히 사귀고, 아저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일을 돕지도 않아요. 게임을 열심히 합니다. 전체적으로, 시놉시스를 보고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저는 좋았습니다. 정말 말 그래도 '순수'해 보였거든요. 사실, 의무라는 거도 학습이잖아요. 다만, 좀 많이 싱거웠어요. 스토리를 쫀쫀하고 찰지게 만들어 줄 디테일이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작가님의 의도를 모르겠더라고요. 초점이 강아지의 구원기 혹은 성장기인지, 강아지와 아저씨의 배덕한 사랑인지, 법대로 처리한다고 원래 스타일도 아닌데 욕은 바가지로 얻어먹으며 길게 끌다가 결국은 섬으로 팔아버린 원장의 응징기인지, 뒤늦게 사랑을 깨달은 아저씨의 변화인지... 뭔가 조금씩 다 있고, 전체적으로는 다 없는 느낌이에요.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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