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BLYNUE 블리뉴
출간일: 2021.04.14
분량: 본편 4권
point 1 책갈피
라핀은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눈을 커다랗게 뜨며 말을 떠듬거렸다.
"꼭지는... 설마, 씨도 먹었어요?"
"응? 응."
"그, 그건 먹는 거 아니에요! 사과씨에는 독도 들어 있다고요! 어른 뱉어요!"
라핀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누아의 등을 퍽퍽 때리듯 두들겼다.
도대체 꼭지랑 씨는 왜 먹은 거야? 딱딱하고 맛도 없어서 먹기 힘든 것도 있지만, 사과 씨앗에는 독성이 있었다.
독이라니. 누아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어제는 총에 맞아서 돌아오더니, 오늘은 독에 중독돼서 죽게 생겼다니. 그를 좋아한다고 자각하자마자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모르겠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이와는 함께 하지 못할 운명인 걸까.
라핀은 울먹거리며 그의 등을 열심히 두드리자, 누아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한쪽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아니, 켁, 독?"
"네! 그러니까 얼른요!"
"아냐, 잠깐. 때리지 말아 봐. 씨앗 한두개 먹는 정도론 어떻게 안돼. 여태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그, 그래요?"
라핀이 목소리를 벌벌 떨며 등을 때리던 손을 멈췄다. 어디선가 사과 씨앗에는 독성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하나를 먹는 정도로는 치명적이지 않은 건가? 정말인가?
point 2 줄거리
기: 수토끼 수인 라핀는 두 성의 성기를 가지고 있다. 인간들의 실험체로 신체 개조 당한 채 방생된 라핀은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지만, 토끼 무리는 괴물이라며 라핀을 따돌리고 끝내 버린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라핀은 검은 늑대 리더 누아와 은빛 늑대 리더 블란에게 사냥 당한다. 누아와 블린은 라핀이 자신의 먹잇감이라며 다투지만, 결국 라핀은 누아의 것이 된다. 토끼 고기를 좋아하는 누아는 라핀을 먹는 대신 암토끼를 잡아와 토끼 농장(?)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승: 얼떨결에 늑대 굴에 살게 된 라핀은 신체의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오히려 블린의 호기심을 자극해 비밀을 들키고 강간 당한다. 반면, 라핀과 뜨밤을 보낸 블린은 라핀이 제 짝이라고 확신하고, 누아에게서 라핀을 빼앗을 계획을 세운다. 블린은 라핀의 비밀을 빌미로 라핀에게 성관계를 계속 강요하고, 누아에게 말도 못 하고 블린에게 시달린 라핀은 시름시름 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마신 누아는 우연히 라핀의 비밀을 알게 되고, 누아를 강간한다.
전: 블린은 라핀이 점점 더 좋아졌고, 누아 역시 라핀에게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누아는 사냥 때마다 라핀을 데리고 다니고, 그런 누아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라핀을 싫어하는 검은 늑대들이 생긴다. 한편, 블린과 누아의 마음과 다르게, 틈만 나면 달려드는 늑대들로 라핀의 몸은 고통받는다. 그러다 블린과 누아가 함께 덤벼(?) 드는 사태까지 터지자, 라핀은 탈출을 결심한다. 그리고, 두 늑대 수장이 조상에게 의식을 치르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도망친다.
결: 두 늑대 중 누아가 먼저 라핀을 찾는다. 그리고, 라핀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누아는 라핀을 별장에 숨긴다. 누아는 무리로 돌아가 몬드에게 리더 자리를 물려준다. 누아는 라핀의 반려로서, 라핀이 블린의 아이를 낳는다고 하더라고 함께 키우려 한다. 라핀은 자신을 자상하고 헌신에게 돌보는 누아를 좋아하게 된다. 한편, 라핀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고, 누아도 방법을 찾아주지만, 결국은 아이를 낳는다. 라핀은 블린의 구애를 거절하고, 누아와 가족을 만든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좀... 애매합니다.
망태기님의 '욕망 형제' Review에서 언급한 적 있지만, 하드코어는 피폐물이나 초고수위랑은 카테고리가 좀 다릅니다.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드코어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면, 하드코어로 분류되는 듯합니다. 그 요소들이 특수한 선호를 반영하다 보니, 지뢰가 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키워드로 예상한 기대치와 실제가 일치할 확률이 높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런, 래빗, 런!'은 예상과 실제가 달랐어요. 하드코어 요소가 참 많이 들어가 있는데, 늑대의 순애보와 토끼의 귀여움이 메인이고, 다크 다크하고 자극적 분위기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선이 애매합니다. 개인적으로 하드코어물은 전개 개연성에 대한 기대치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생각해요. 왜 공과 수가 이렇게 비정상적이고,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며, 어떤 인과로 이런 사태까지 이르게 되는지, 잘 따지지 않죠. 하드코어물 자체가 비일상적 소재이기 때문에 이해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런, 래빗, 런!'은... 경계선 어드메 있는 것 같아요.
초반에는 두 늑대들이 선사하는 빻빻한 피폐물, 후반에는 토끼와 늑대의 알콩달콩 동거기를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일단, 처음부터 늑대들은 토끼에게 가장 상냥한 존재들입니다. 인간들의 실험체로 괴물 같은 몸을 가지게 된 라핀은, 동료들의 냉대와 차별 속에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도 없이 라핀을 남겨두고 모두 떠나버리죠. 홀로된 라핀은 차가운 토끼굴에서, 근근이 살아갑니다.
그러다 늑대 동굴로 갑니다. 끌려간 라핀은, 따뜻함 물에 씻고 상처 치료를 받아요. 편안하고 큰 침대에서, 라핀은 누아에게 꼭 안겨 잡니다. 누아는 본인이 먹지도 않는 토끼 먹이를 방에 가득 쌓아두고, 라핀이 먹고 싶다면 인가까지 내려가 당근과 사과를 훔쳐 오죠. 블린과 누아는 서로 라핀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데리고 가려고 신경전을 벌여요. 비록, 신분은 '먹잇감'이었을지언정, 관심과 안락함이 있는 환경인 셈이죠.
물론, 이 덩치 큰 늑대들이 작고 작은 토끼를 매우 괴롭히지만, 배덕함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늑대들이 일편단심,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이죠. 모럴리스하기엔, 매우 모럴한 캐릭터예요.
늑대는 유일한 짝만을 만들고 블린은 라핀이 바로 그 짝이라고 확신해요. 하지만, 라핀을 누아의 방에 있도록 내버려 두고, 누아가 없을 때만 누아의 방으로 가 라핀을 만납니다. 누아 역시, 자신 소유인 라핀을 블린이 계속 건드리는 것을 알고도, 싸우지 않고 피해요. 그냥, 블린과 라핀이 마주치지 않도록, 데리고 사냥하죠. 블린은 라핀이 누아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깔끔하게 라핀을 포기하기도 하죠. 그저, 처연하게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한 발 뒤에서 바라만 봅니다.
동맹을 지키려는, 두 리더의 노력인가? 보기엔, 이 리더들... 별로 리더십이 없어요. 라핀이 도망친 뒤 블린은 라핀은 제 짝이라고 말하며, 무리도 내팽개치고 계속 라핀을 찾지만, 실패합니다. 그나마, 누아가 혼란을 염려해 리더 후계자를 세우긴 하는데, 그 큰 결심의 계기가 좀.. 늑대무리에게서든, 블린에게서든, 라핀을 보호하려는 노력도 다소 어설프고요. 전체적으로 설득력이 좀 떨어집니다.
라핀은 '먹잇감'으로 잡혔을 때도 결박 당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도망친 라핀이 다시 누아에게 잡혔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단지, 누아가 라핀을 '혼자' 두고 잠시 별장을 비웠을 때, 팔을 천 조각으로 묶긴 합니다. 물론, 다리는 자유이고, 결박도 어딘가에 고정을 해 놓은 것은 아니라 무슨 의미인가 싶긴했어요. 그래서인지 누아도 돌아와, 라핀을 찾아 별장을 헤매죠. 도망수는 있는데, 감금은 없는 이 느낌...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런, 래빗, 런!'의 재미 포인트는, 라핀, 누아, 블린의 달달한 삼각관계예요. 정에 굶주린, 마음 여린 토끼가 매우 귀엽습니다. 하드코어물인데도, 이들의 몸정 스토리보다 맘정 스토리가 훨씬 예쁘게 잘 쓰여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양성구유'라는 것이 호불호가 갈리는 소재다 보니, 달달한 수인물로서 보기엔 좀 강력한 지뢰 요소가 있습니다. 차라리, 피폐를 빼고 L이 있는 다정한 다공일수 하드코어물로 가거나, 하드코어 요소를 빼고 달달한 인외존재 구원물로 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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