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1 책갈피

 

 

최정은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긍정적이었나 생각했는데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박태서를 만나고부터였고, 긍정적인 건 박태서와 관련된 일뿐이었다. 예를 들어 영상 통화하며 밥을 먹자는 말도 다른 사람에겐 평생 못 할,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말이다.

 

태서는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언제나 이런 사람이 필요했다.

 

내게 관심을 갖고, 걱정을 아끼지 않는 사람.

 

'백태서가 날 길들였어.'

 

불안해야 할까. 이렇게 길들이고 떠나 버리면 전보다 더 크게 외로워질 테니까.

 

하지만 불안하기보다는 홀가분히 미소 지었다. 이 순간만을 즐기고 싶었다. 살면서 별로 느껴 본 적 없는 행복한 시간이니까.

 

 

 

point 2 줄거리

 

 

기: 20살 박태서는 악인 그 자체였다. 마약을 비롯한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하지만, 그는 세계 굴지의 대기업 고성의 막내아들이었고, 수려한 외모를 지녔으며, 부모와 형제들에게 절대적 애정을 받고 있었다. 고로, 그의 악행은 모두 무마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서는 음주운전 후 할머니를 치고, 이에 태서의 부모들은 '힘겹게' 태서의 카드 정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용서문을 받아오지 않으면 카드 정지를 풀어주지 않겠다고 한다.

 

승: 할머니는 자살한 최정의 셋방을 정리해 주면 용서문을 써주겠다고 하고, 태서는 바로 업체를 부른다. 작고 낡은 방엔 최정의 유서와 소소한 그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문득 호기심이 든 태서는 최정의 pc를 가져오고, 최정이 요리 레시피 카페에 올린 게시글을 보게 된다. 그렇게 알게 된 최정은 태서와 동갑인 고아였고, 제대로 배우지 못해 맞춤법도 다 틀리며, 바보같이 사기나 당하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당차고 성실하며, 수다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전: 태서는 재력을 쏟아부어 최정을 찾지만, 속초를 마지막으로 그의 자취는 끊겨 버렸다. 하지만, 태서는 최정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그가 기뻐할 만한 것들을 준비하고, 부끄럽지 않도록 좋은 사람이 되려 한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런 태서의 변화를 반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최정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었고, 태서는 나날이 최정을 그리며 우울증에 빠진다. 그렇게 먹지 못하고, 슬픔에 침식돼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실종 5년, 최정은 법적으로 죽은 사람이 된다.

 

결: 태서는 최정을 따라 죽기 위해, 속초 바다로 뛰어든다. 그 순간 태서는 기적을 만난다. 최정이 태서를 구한 것이다. 최정은 그동안 속초에서, 자신을 구해준 부부에게 갈취당하는 줄도 모른 채 착취 당하며 살고 있었다. 언뜻 행복해 보이나, 최정은 여전히 외로웠다. 그러다 은인의 추한 민낯을 보게 된 최정은, 태서와 함께 서울로 온다. 그곳엔 태서가 공들여 만든, 최정만을 위한 세상이 있었다. 물론, 잠시의 위기는 있었으나, 두 사람은 결국 완벽한 행복을 찾는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악인에게 가장 행복한 세상, 선인에게 가장 불행한 세상

 

 

미지의 절대자가 세상을 운영할 때, 좋은 사람에게 좋은 삶을, 못된 사람에게 나쁜 삶을 매칭 시켜 주면 좋을 텐데... 그전에 절대자가 선의를 가진 합리적 존재라면, '못된 사람'과 '나쁜 삶' 자체가 없겠죠. 인간이 괴로운 건 인간 탓이라고 발 빼서 그런가요. 뭐.. 어쨌든, 저는 원죄도 기적도 운명도 천국도 윤회도 믿지 않습니다. 그저, 이 세상은,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좌충우돌 굴러가고 있을 뿐... 그리하야, 세상은 요지경이죠.

 

'만약 널 만난다면'의 세상도 요지경입니다. 악인은 행복하고, 선인은 불행하죠. 모든 걸 가진 악인은, 살면 살수록 더 가지고, 빈손으로 태어난 선인은, 살면 살수록 간신히 가진 그 '조금'조차 가차 없이 빼앗깁니다. 악인은 사람을 이용하고, 선인은 사람에게 이용당해요. 그러다 요지경의 요지경이 발생합니다. 바로 그 악인이 본 적도 없는 그 선인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어요.

 

태서의 세상은 완벽합니다. 넘치는 돈, 자신과 닮은 친구들, 천사 부모님과 다툼 없는 형제들, 거기다 조각 같은 외모까지! 넘치는 돈은 태서에게 편하고 호의적인 세상을 주었고, 자신과 닮은 친구들 때문에 막 나가는 삶을 살아도 태서는 외롭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넘치는 애정으로 태서가 친 사고를 모두 수습해 주었고, 막내가 귀엽기만 한 형제들은 뭘 해도 우쭈쭈였어요. 대가는 없고, 무한한 혜택만 있는 삶인 셈이죠.

 

반대로 최정의 세상은 무한 대가를 치름에도, 혜택은 전혀 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어요. 고아인 최정은 시설에서 나오자마자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 밤낮없이 일합니다. 학교도 못 다니고, 놀러 다닐 시간도 없는 최정은 언제나 혼자였어요. 그리고, 그나마 그렇게 일해 번 돈조차, 믿었던 형에게 배신 당해 뺏기죠. 최정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나이지는 건 없었어요. 그런 최정의 유일한 위안처는 요리 레시피 카페였죠.

 

하지만, 그 조차 녹녹하진 않았어요. 처음에 카페 회원들은 수다스럽게 일상을 올리는 최정을 귀여워합니다. 엄마는 왜 입양이 안되냐는 글에 위로해 주고, 추위에 떨면서도 성실하게 돈 버는 모습을 기특해하며, 때때로 기프트콘도 보내 줍니다. 그러나 분위기는 서서히 변합니다. 맞춤법을 고의로 틀리는 관종이다, 괜히 카페 분위기 어둡게 무거운 이야기만 쓴다면서, 점점 최정의 글에 늘어가는 죽음의 메시지를 알아채지 못하죠. 결국, 최정은 그 유일한 동아줄마저 놓아버립니다.

 

최정이 삶을 포기하고 난 뒤, 우연히 태서는 최정의 그 글들을 보게 돼요. 그리고 태서는 최정이 입고 싶었던 롱패딩, 먹고 놀랐던 마카롱, 부럽기만 했던 벌꿀 인형, 그런 하찮은 것들조차 가지지 못한 최정을 안타까워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태서의 일상 속에 최정은 서서히 물들어 갑니다. 태서는 자주 최정을 떠올렸고, 최정이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게 됐어요. 최정의 유서를 보고, 그의 방을 정리까지 했지만, 태서는 어느덧 가상의 최정과 함께 살고 있었죠.

 

뒤틀리기 시작한 태서의 일상은 호재처럼 보였어요. 태서는 최정이 그토록 원하지만 가지지 못한 가족과 친구들에게 친절해집니다. 최정이 자신을 형편없게 보는 것이 두려워, 과거의 잘못을 만회하려고 노력하죠. 그래서 소망 재단 이사가 되어 선행을 베풀며, 사고도 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최정이 없다는 거였어요. 비록 시체가 없어 실종 상태였지만, 넘치는 재력을 쏟아부어도 도저히 최정은 찾을 수 없었고, 끝내 법원마저 최정의 사망을 선고합니다.

 

태서는 살려고 발버둥 칩니다. 최정의 콜센터 통화 파일을 구해 AI 음성도 만들고, 최정과의 합성 사진은 물론 DNA 모형까지 제작해요. 그렇게나마 최정의 존재를 메꾸려고요. 어쩌면 최정이 인어가 되었거나 아틀란타스에 갔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며, 사후세계와 오컬트에 관한 책들도 읽죠. 더불어 우울증 치료도 꾸준히 받아요. 하지만, 최정이라는 구멍은 태서의 마음속에서 커지기만 합니다. 태서는 외로워졌고, 그 외로움은 죽음으로 이르는 병이었어요. 최정이 그러했듯 말이죠.

 

최정의 죽음 후 태서의 사랑은 시작됐듯, 태서의 죽음 후 최정의 행복은 발동을 겁니다. 태서는 자살하러 간 속초에서 살아있는 최정을 만나요. 그리고 태서를 비롯한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최정을 포획(?)하기 위한 필사의 전략을 펼칩니다. 처음 태서는 최정이 행복해졌다고 생각하고, 함께 속초에 살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참으로 가관이었죠. 최정은 여전히 잘 먹지 못했어요. 휴일은 한 달에 단 하루뿐이었고, 비정상적 저임금에, 그나마 그 돈조차 오롯이 최정의 것이 아니었어요. 무수한 무임 노동에 머슴처럼 부려지기도 했고요.

 

서울이 최정을 외롭게 만든 사람들의 도시였다면, 속초는 최정의 외로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죠. 최정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어찌 보면 '기만' 당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나빠졌죠. 태서는 최악의 끝에서 다시 최악으로 빠진 최정을 구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최정에게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행복을 주려해요. 최정이 가장 행복한 세상이, 태서에게도 가장 완벽한 세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진실로, 그 세상은 '완벽'했어요.

 

소림님 작품이 늘 그러하듯, '만약 널 만난다면' 역시 엉뚱 발랄 캐릭터와 유쾌한 서사, 통통 튀는 사건들로 웃으며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묵직하게 가슴 한편을 누르는 '현실 비틀어보기'도 있습니다. 다만, 최정이 태서의 오랜 스토킹에 대해서 알게 되는 부분이, 다소 잉?스럽게 마무리되어 허무했어요. <완결>를 보고 냉수 먹고 띵한 기분이었죠. 그리고, 외전에서 태서에게 완전히 정착한 최정의 일상은 므흣했지만, 결혼까지 가지 못한 점은 아쉬웠어요.

 

북적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위로가 늘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은 아닌 듯해요. 얼마나 '나'를 알고 싶어 하는가? 이해하려고 하는가? 이것을 가능케 하는 진실로 순수한 '관심'... 그것이 그토록 어렵고 희귀해 사람은 외롭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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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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