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1 책갈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귀족들. 어떤 평민들. 헤베 덕분에 목숨을 건진 이들.

어떤 반골 기질의 일종인지, 소문은 황제가 헤베 뮨을 북국으로 유배 보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시작되었다. 일부러 소문을 널리 퍼뜨려 헤베 뮨의 이미지를 쇄신하겠다는 거창한 목적도 없이. 자연이 스스로 정화하듯이 그렇게 퍼져나간 것이었다.

'흑마법사로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그런 소문이나 퍼졌으면 좋겠어.'

언젠가 헤베가 퍼지길 바랐던 소문과는 정반대였다.

헤베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으나 저택에만 머물러 실감이 나지 않는지 반응은 미미했다. 반대로 테이든은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울컥할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다. 같이 빵을 만들다가도 눈시울을 붉히고, 정원을 산책하다가도 콧등이 빨개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헤베는 매우 놀랐다.

테이든이 그렇게 상처받은 줄 몰랐던 것이다.

'내가 너만큼 이기적이지는 않으니 말이다...'

헤게르미의 말이 옳았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했다.

헤베는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든 말든, 타락한 배신자라고 부르든 얼마나 증오하든 상관없었다. 그러나 이것을 상관없어하는 건 아주 이기적인 행동이었고, 그를 사랑하는 이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누군가 나를 아끼는 이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았다. 타인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면서 진심을 인정하지 않고 외면했다. 결국 중요했던 건 자신 안의 감정일 뿐이었다.

'나는 이기적이었어.'

인정하고 나니 홀가분한 동시에 무거워졌다.

죄책감을 자극하는 부담스러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헤베를 세상에 붙들게 하는 다정한 무게였다.

point 2 줄거리

기: 비센티아는 마물과의 전쟁으로 위기를 맞는다. 그때 나타난 최연소 대 마법사 헤베 뮨, 이어 헤게르미의 신탁을 받은 초월자 테이튼은 전쟁은 마무리 짓고 인간들에게 승리를 선물한다. 하지만, 종전 전 헤베 문은 돌연 흑마법을 받아들이고, 타락자로 지탄받으며, 흑마법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 후 1년 반 뒤 헤게르미는 헤베를 깨운다. 헤베 사후 헤베를 사랑한 테이튼은 세계를 멸망시켰고, 헤베는 회귀해 테이튼이 헤베를 사랑하지 않도록 만들라는 것이다.

승: 회귀한 헤베는 테이튼에게 매정하게 굴지만 그런 헤베의 태도는 너무 어색했다. 헤베의 눈치는 뮨치만큼도 없었고, 테이튼의 머리는 심하게 좋았으며, 뮨의 친위대는 헤베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헤베의 이상 변화를 감지한다. 과거 헤베는 뛰어난 재능으로 여덟 살 어린 나이 참전하고, 선황과 궁사는 헤베를 정신적으로 학대하며 전쟁터로 내몰았다. 덕분에 승리는 거뒀지만, 헤베는 극도의 피해 망상과 자기혐오에 시달리며,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전: 한편, 헤베는 갖은 노력을 다해도 테이든의 사랑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반면, 테이든과 뮨의 친위대는 헤베의 행동을 유도하며, 헤베가 숨기고 있는 비밀을 파헤친다. 헤베는 회귀 전 피해 망상과 자기혐오로 오해하고 있는 친위대나 테이든에 대해 진실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왜곡된 착각을 바로잡은 헤베는, 테이든과 친위대에게 흑마법으로 인해 곧 죽는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즈음 테이든은 헤베의 회귀 사실을 짐작한다.

결: 헤베는 자기 사후 세상을 멸망시키지말라고 설득하지만, 그들은 무시하고 헤베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럼 모습을 보며, 헤베는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였던 회귀 전과 달리, 살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예정된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고, 절망에 빠지기 직전, 헤베가 기억상실 마법을 걸었던 의원이자 전 부궁사였던 하베트가 나타나 중화제를 건네준다. 살아난 헤베는 테이든에게 흑마법을 받아들인 이유와 죄책감을 고백한다. 모두들 행복해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불행은 뮨치만큼만 있고, 행복은 테친놈처럼 와라!

 

소림님의 소설은 긴장하고 읽어야 합니다. 깜찍한 먕먕이, 귀여운 헤베, 개그콤비 같은 테이든과 친위대를 보며 태평하게 웃다가는, 감동 크러쉬에 심장 직격탄을 맞습니다. 방어 가드를 올리지 않고 맞는 훅은 제법 아려요. 하지만,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뮨의 그늘'은 헤베 뮨에게 빚을 진 세계가, 온힘을 다해 합심하여 그에게 빚을 갚는 내용이니까요. 신도, 황제도, 각각의 사람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말이죠.

 

- 뮨치: '헤베 뮨의 눈치'의 줄임말; 동의어-거의 없음: 활용 - '눈치가 뮨치만큼 있네.' '이번 달 잔고가 뮨치만큼 남았다' '님 양심이 뮨치네'

- 테친놈: '테이든 미친놈'의 줄임말: 동의어-세상 멸망급 사랑꾼, 다른 동의어-본태성 스토커; 활용 - '이런 테친놈 같으니라고!(칭찬)' '이 사랑은 정말 테친놈급이야!(칭찬)'

 

'뮨의 그늘'은 헤베의 죽음과 함께 시작합니다. 헤게르미는 마지막힘을 다해 헤베를 회귀시킵니다. 그리고 헤베는 주어진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테이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도록 만들어야하죠. 하지만, 헤베 뮨의 눈치는 뮨치였어요. 테이든이 사랑하는 줄도 몰랐는데, 사랑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을 알 리가 없죠. 하지만 그런 헛된 노력은, 헤베가 과대망상과 자격지심으로 알지 못했던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키가 돼요. 이것이 헤게르미가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내고, 죽음조차 희생에 불과했던, 대마법사 헤베 뮨에게 빚을 갚는 방법이었어요.

 

오랜 전쟁으로 인간들은 수세에 몰리고, 매일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 자들 역시 많아집니다. 끝을 알 수 없는 막막한 전쟁터, 그 지리멸렬한 악몽을 끝내 줄 대마법사의 등장에 모두가 환호할 수밖에 없었죠. 다만, 그 대마법사의 나이가 고작 8살이었다는 것만 빼면요.

 

선황과 궁사는 쓰레기가 맞습니다. 어린 헤베를 정서적으로 학대하며, 정신통제를 일삼죠. 그 덕분에 무시무시한 전쟁터에서 어린아이는 도망칠 수 없었고, 부작용으로 끔찍한 피해 망상과 자기혐오에 빠져요. 그들은 헤베에게 전장을 '일상'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칭찬도 보상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책임감과 죄책감을 지우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지만, 헤베에겐 상처를 치유하는 최소한의 휴식조차 '나 때문에 사람들이 죽은 것이다.'라는 자책이 되고 말아요. 헤베는 뼈가 부러지는 상처 입어도, 쉬지 않고 전장에 나갑니다.

 

'한 개인이 지독하게 불행해지면, 세상이 평화로워질 수 있다.' 지배자는 그 선택을 안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 개인이 순수한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말이에요. 그래서, 테이든과 뮨의 친위대가 등장합니다. 세상의 평화나 다수의 행복 따위는 조금도 관심 없는, 오로지 헤베 뮨을 위해 움직이는, 헤베 뮨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요. 하지만, 회귀 전 헤베는 그들의 사랑을 곡해하고 인정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을 싫어하고 몰아내려 한다고 생각하죠. 그들이 보여준 올곧은 진실은, 전쟁후울증으로 망가진 헤베의 눈에는 깨진 잔상처럼 흩어지기만 했어요.

 

천재 대마법사 헤베 뮨이 그토록 연구해도 발견하지 못한, 중화제가 어떻게 하베트에 의해 짜잔! 하고 등장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이야기는 세상이 헤베 뮨에게 빚을 갚는 내용이니까요. 헤베는 회귀를 통해, 선황과 궁사가 헤베에게 씌운 고문과 같았던 편견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마땅히 헤베가 가지고 있었던, 헤베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깨닫죠. 그리고, 헤베가 실패라고 자책했던 작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간호과 보살핌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헤베 뮨은 살고 싶어 한다. 이 간단한 진심 하나를 깨닫습니다.

 

'뮨의 그늘'을 읽으면, 모든 등장인물이 '이기적'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아이러니하죠? 이 이야기 속 전쟁 영웅들은 세상을 구한 '이타적'인물들이 아니던가요? 황제는 뮨의 희생을 알았지만, 보상을 해주면 된다는 합리화로 방치합니다. 테이든은 뮨의 친위대가 헤베의 방황을 보고 분열 할 때, 이를 악용해서 헤베 곁에 남는 유일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뮨의 친위대는 헤베 주변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차단하고, 가득이나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헤베를 독점하려듭니다. 마지막으로 헤베는, 자신을 고통 속에 몰아넣으므로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큰 절망으로 밀어 트리죠.

 

하지만 솔직해지자고요. 사람은 이타적이기보다는 이기적인 존재예요. 다만, 이기적인 것이 '권리'는 아니기에, 이기적으로 구는 것이 합리화되지 않을 뿐이죠. '뮨의 그늘'에 인물들은 모두 이기적이지만, 이타적인 선택을 합니다. 황제는 헤베의 숨은 조력자로 많은 도움을 주고, 테이든과 뮨의 친위대는, 헤베를 살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죠. 헤베는 이제, 자신의 곁을 묵묵히 지켰던 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동화 같은 이야기! 하지만 그늘 없는 빛은 없죠. 본편에서 테이든의 숨겨진 무기는 끝내 빛을 보지 못합니다. 왜냐면, 15세거든요. 헤베와 테이든은 키스를 하거나, 입을 맞추거나, 숨결을 나누기만 합니다. 네... 키스만해요. 그래서, 외전을 기대했지만... 테이든의 단도는 빛을 보되 독자들은 보지 못합니다. 19세일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또 15세였거든요. 다만, 키스와 뜨밤을 즐기는, 요망한 헤베를 보면... 너는 좋았구나. 나도 좋고싶다... 라는 씁쓸함만 곱씹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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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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