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요미북스

출간일: 2017.09.28.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당연한 교육을 받으며 컸잖아."

"환경 탓인가요. 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저보다 잘 된 놈들을 여럿 아는데요."

강기혁이 비웃었을 때 갑자기 담배가 날아왔다. 힘이 없어 강기혁에게 닿지 못하고 중간에 떨어졌지만 엄연히 불이 붙어 있는 담배였다.

"선배님!"

"시발 새끼야."

이해 못 하겠다고 한 말이 전부였는데 선배는 서슬이 퍼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기혁은 엉겁결에 정자세를 취했다.

"예?"

"넌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행운'을 느껴보지 못한 인생이라는걸, 상상이나 할 수 있겠냐?"

"...... 예?"

"행운이 뭔지, 아예 알지도 못하는 그런 인생을, 네가 상상이나 할 수 있냐고."

"그런 인생이 어디 있어요. 누구나 한 번쯤은."

"그 애가 그랬어. 자긴 태어나서 한 번도 행운을 본 적 없대. 정말 그런 게 있냐고 물어보더라. 상상할 수 있겠냐, 어?"

없다. 강기혁은 확신했다. 자신은 행운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생이라는 걸 상상할 수 없다.

point 2 줄거리

기: 10살 실어증에 걸린 문정인을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고아원을 찾아온다. 우람한 덩치, 무표정한 얼굴의 장범영이 무서웠던 정인은 범영을 거부하고, 범영은 다음날 오겠다고 약속하며 고아원을 떠난다. 그리고 그날, 정인은 다른 원생의 괴롭힘과 교사의 학대로 굶은 채 창고에 갇힌다. 그때 범영이 문을 부수며 나타나 정인을 구한다. 정인은 범영을 따라간다. 범영은 과묵했지만, 꿈속 괴물에게 쫓기며 공포에 떠는 어린 정인의 곁을 다정하게 지켰다.

승: 정인은 자라 수능을 본다. 예쁜 얼굴, 게임 폐인, 말이 없는 정인은 못된 아이들의 표적이 되었지만, 범영의 비호하라 무사히 졸업을 한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정인은 꿈속 범영을 보며 첫 몽정을 경험할 정도로 그를 좋아했지만, 후견인인 범영과의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아 마음을 숨겼다. 하지만, 곳곳에 비치된 CCTV, GPS, 복제폰 등을 통해 정인을 감시하고 있던 범영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곧 성인이 될 정인과 범영사이엔 묘~한 기류가 흐른다.

전: 한편, 정인에게 형사 강기혁이 나타난다. 그는 정인의 꿈속 괴물을 알고 있었고, 그 괴물이 장범영이라고 알려 준다. 범영은 24명을 살해했고, 그 자리에 유일한 생존자가 정인이었다며 각종 증거들을 안겨준다. 정인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범영을 믿고 싶었고, 그럴수록 범영에게 더 간절히 안긴다. 그러던 중 강기혁이 사고로 죽고, 그 소식을 들은 정인은 경찰병원 빈소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규환에게 납치당한다.

결: 정인은 가평 창고로 끌려간다. 그리고, 6살, 그 창고에서 벌어졌던 참사의 기억을 되찾는다. 범영은 정인은 구하러 오고, 자신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정인과 범영이 서로 총구를 들이밀고 대치하고 있을 때, 최호석의 헛짓(?)으로 정인의 총이 발사된다. 범영은 큰 부상을 입지만, 다행히 살아나고, 곧 회복한다. 그리고 정인은 그날의 '진실'을 듣는다. 정인은 자신을 지금까지 보호해 줬던 다정한 괴물과 함께, 계속 살아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행운'을 가져 본 적 없는 사람들

'다채'로운 것과 '산만'한 것의 차이가 뭘까요? 물론, 기술적 역량도 중요하지만, 저는 어울림의 방향을 더 주요하게 봅니다. 가령, 이전에 리뷰한 '수렵'에서 많은 인물들은 나름의 애환과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삽니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이 어떤 시점, 특정 장소에 만나 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어우러지죠.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선택을 하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것, 저는 이것이 소설 속 다채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선셋 인 워터'는 산만합니다. 기술적인 면에서, 서술 시점이 수시로 바뀝니다. 공, 수, 과거, 현재 정도의 시점 변화가 아니라, 엑스트라급 조연도 갑자기 서술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공, 수를 판단합니다. 또, 어울림의 면에서,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선택을 하고, 이것이 다소 작위적입니다. 그 다양한 출신과 사정들은 모두 정인이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범영이 얼마나 충실한 부하들을 가진 카리스마 있는 리더인지, 마치 그들이 이야기하는 그들의 삶은 그것을 위해 쓰인 것 같죠.

개인적으로, 정인이 게임폐인인 설정도 의아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나가는 문조차 잠그고, 자위하는 것까지 CCTV로 촬영, 몸속에 GPS 삽입, 정인을 괴롭히는 선배들을 사고와 자살로 위장해 죽인, 10살의 정인을 입양해 키운 후원자... 키잡물 특유의 배덕감 요소를 극대화하는 장치들이 이렇게 많은데, 정인이 게임폐인이라 모두 묻힙니다. 정인은 움직이지 않고 콕 박혀,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오덕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죠.

더불어, 사건물이라고 하기에는, 의미심장한 초반부터 '범영'이 괴물이라는 것이 예측 가능합니다. '네가 원하는 걸 해라.''괴물이 나타나면 내가 먼저 죽여 줄께''알게 되면 처리한다.'라는 대사가 매우 반복되기 때문이죠. 독자는 쉽게 범영이 괴물이고 정인이 목격자, 정인이 기억을 찾으면 처리한다고 말은 하지만, 정인이 원한다면 기꺼이 죽어 줄 준비를 하는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납치당한 악인을 구한, 학대받은 어린아이, 그 악인은 어린아이를 학대한 부모를 죽이고, 그 장면을 본 아이는 충격에 기억을 잃죠. 그리고, 외롭게 자란 아이는 막연히 부모의 존재를 그리워하고, 그 모습을 본 악인은 '진실'을 말하지 못해 오해를 키웁니다. 클리셰죠. 악인은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고,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주기에, 아이는 오해를 짐작하고 혼란스러워하죠. 그 모습을 본 악인은, 더욱 진실을 알려주지 않고, 아이에게 정보를 주는 사람들만 죽입니다. '선셋 인 워터' 역시 철저히 이 클리셰를 따라갑니다.

하지만, '선 셋 인 워터'는 감상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행운'을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서브공인 줄 알았지만 너무 허망하게 생을 떠난 강기혁과 그의 선배가 나눈 대화가 가장 기억나는 책갈피였는지도 모릅니다. 강기혁은 첫 사건인 '가평 창고'의 피해자 문정인의 존재를 우연히 발견합니다. 그래서 정인에게 접근하지만, 그가 가해자 범영에게 신뢰와 호의를 가지는 것을 보고 복잡한 감정을 느끼죠. 그래서, 선배에게 잊히지 않은 피해자가 있냐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선배는 성폭행 당한 아이를 파양한 양부모를, 18살이 된 아이가 찾아가 죽인 사건을 말해 줍니다.

근래, 양부모에게 입양돼 끔찍한 학대를 받다가 죽은 정인이 사건과, 아이를 장기간 정기적 학대했던 보육교사나 방임학대를 자행한 친부모의 이야기가 떠올라서였을까요? 양부모를 죽인 아이가, 형사에게 '다행이다.'라고 말했다는 부분에서 눈을 뗄 수가 없더라고요. 그 아이는 자신이 성폭행 당한, 그 교회에 양부모가 자신들의 친딸을 절대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자신이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양부모가 믿었다는 것, 그것으로 살인자가 된 18살 소년은 자신의 인생이 좀 덜 불행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안도하죠. 행운이라고 단 한 번도 없었던 내 삶에, 그나마 유일한 행운인 것처럼요.

범죄자가 된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고, 분명히 피해자가 있습니다.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면, 사회는 불안정해지겠죠.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있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없어져야 할 무엇인 듯 말이에요. 그러면서, 그들이 불우한 환경이나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들어 변명하면, 더 악조건 속에서도 훌륭하게 성공한 모범 사례들로 반박합니다.

하지만, 제3자가 보지 못하는 그 삶 안에는, 단 한 번의 행운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피해자든 가해자든 말이에요. 이 지옥을 탈출할만한, 뜻하지 않은 만남이나 우연히 알게 된 방법, 또는 불현듯 깨어난 인식이나, 어떠한 변화가 촉발한 긍정적 반사이익조차 얻지 못한 삶이 있을 수도 있어요. 행운이 없는 삶의 끝은 비극적이지만,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겠죠. 그 씁쓸함을 곱씹으며, 기혁의 선배도 마음의 짐을 덜고자 기혁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일지도요.

범영과 정인은 모두 서로의 유일한 '행운'이었습니다. 선택 없이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조폭으로 살던 범영은, 대학 입학 후 일반인의 삶을 꿈꾸다가 좌천되듯 군대에 가고, 제대하자마자 아버지에게 납치되어 감금되죠. 그리고, 납치범 부부가 학대해, 온몸이 멍들고 더러워 진 정인을 만납니다. 정인은 먼 길을 걸어, 범영의 사람들을 창고로 데리고 오죠. 그 후 학살을 목격하고, 실어증이 걸린 채 고아원에게 훈육이라는 이름의 학대를 받으며 정인은 비참한 삶을 삽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해 준 사람은, 자신의 '행운'을 찾아온 범영이었어요.

'행운'과 '기회'를 잡기는 힘듭니다. 놓치고 나서야, 그것이 행운이나 기회였음을 알게 되죠. 하지만, 어쩌면 행운과 기회를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어느 16개월 아이에게, 어떠한 행운이나 기회도 없었던 것처럼요. 하지만, 이 나라와 어른들에게는, 고통받는 아이를 구해 낼 수 있었던 '행운'도 그 비극을 방지할 '기회'도 있었죠. 행운을 놓친 사람들은 불평과 후회가 많습니다. 하지만, 행운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말이 없고, 무엇을 불평하고 후회해야지조차 알지 못할 테니까요.

장르소설 속 불행을 본 뜬 가상 인물조차 '한 번'은 가질 수 있었던, 그 '행운'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쥐지 못한 현실 속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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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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