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쉬(DASH) 본편 Review

2021.05.02 - [BL 소설] - [오메가버스/스포츠물/달달물] DASH - 이젠(ijen)

 

[오메가버스/스포츠물/달달물] DASH - 이젠(ijen)

​ ​ ​ ​ point 1 책갈피 ​ ​ 그래, 어떻게든 방법은 생기겠지. 찾아보면 어딘가에는 있겠지, 둘 다에게 좋은 방법이. ​ 생각하며 지헌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터널을 지나듯 짧은

b-garden.tistory.com

 

 

point 1 책갈피

"엄청 따뜻해."

"그치? 엄청 따뜻하고 포근하지?"

지헌은 웃으면 말했다. 재경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불편하게 꼬인 팔을 조심조심 움직여 마침내 바른 자세로 아이를 안았다. 그대로 자신의 품에 더욱 꼭 끌어안으며 그가 말했다.

"뭔가 안심돼요."

"그래? 난 너무 작아서 불안하던데. 내가 좀만 잘 못 안으면 숨도 잘 못 쉴 것 같아."

"그런 뜻이 아니라."

재경이 뭔가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왜, 얘기해봐."

지헌이 부추기자 재경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조금 전에요, 형이 아기 안고 있을 때."

"응."

"형이 진이 보면서 웃는데, 갑자기 이 상황이 너무 꿈같고 실감이 안 나는 거예요."

지헌은 이번에도 웃으며 응, 했다.

"진짜 갑자기 이게 말이 되나 싶으면서, 이거 혹시 정말로 꿈이면 어떡하지, 나 지금 꿈꾸고 있는 거면 어쩌지, 그 생각이 드는 거예요."

"뭐?"

생각도 못 한 이야기에 지헌은 그만 크게 웃음 터뜨리고 말았다.

"아니, 진짜요."

재경이 웃지도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

"나 호주 처음 갔을 때 그런 꿈 되게 많이 꿨거든요. 형이 은퇴 안 하고 계속 수영해서, 형이 같이 전지훈련도 가고 대회도 나가고 그러는 꿈."

그래서 혹시 이것도 그런 꿈이 연장일까 봐 겁이 났다는 거다. 사실 나는 지금 중학생이고 이제 막 호주에 도착한 참인데, 그냥 한국에 가고 싶고 형이 너무 보고 싶어서 내 멋대로 주제넘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봐.

"...... 같이 전지훈련 가는 꿈이랑 결혼해서 아기까지 낳는 꿈은 장르가 좀 다르지 않아? 너무 급발진인데."

"네? 네, 그런데 꿈은 원래 그런 거니까."

개연성도 없고 자기 멋대로잖아요. 재경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제 품 안의 자그마한 존재를 소중히 보듬었다.

"그래서 아기 안자마자 안심했어요. 이렇게 따뜻하고, 아기 냄새도 나고... 이 정도로 감각이 선명한 거면 꿈은 아니겠구나 싶어서."

point 2 줄거리

COMBI 상&하: 2차 선발전 이후부터 지니 탄생까지의 에피소드: 투혼의 올림픽 2차 선발전 이후, 재경은 재활 치료에, 지헌은 카바와의 '문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한편, 입원 생활이 심심했던 재경은 각종 앱과 동영상, 검색을 통해 임신과 육아 정보를 습득하고 있었다. 다행히 괴물 같은 회복력과 환자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재경은 예정된 일정보다 일찍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편, 8개의 금메달을 지헌에게 걸어주며 프러포즈 하고 싶었던 재경은, 부상으로 기권한 접영 대신 계영에 나가기로 한다. 겸사겸사 진천 전지훈련에도 참석한다. 한편, 지헌은 재경의 부재, 연달은 소송, 호르몬 급변으로 감정이 널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올림픽 직전인 재경에게 이런 상태를 말할 수 없었고, 상태는 점점 심해진다. 그러던 차에, 재경과 통화하게 된 지헌은 울컥하는 마음에 폭발하고 만다. 재경은 사실, 지헌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FISH 상&하: 4살이 된 지니와 그의 아빠들, 예능에 출연하다: 지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겠다며 은퇴를 미룬 재경! 올림픽이 끝나고, 임신 중 지헌에게 약속한 대로 육아에도 금메달감 아빠가 된다. 더불어, 선수로도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광고를 비롯한 기타 등등의 스케줄을 소화하며, 세계선수권, 범태평양 대회, 아시안 게임에서도 본인의 기록을 경신했고, 그건 세계신기록 경신을 의미하기도 했다. 당연히 대중들의 관심도 커졌다.

그러니, 재경의 판박이, 태명 지니, 본명 권진에 대한 궁금증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때, 지헌은 인엽이 프로듀싱하는 예능 제의를 받고, 단발성 출현, 촬영지는 보라카이 풀빌라, 그리고 본인의 꿍꿍이가 보태져 출연을 결정하게 된다. 사실, 지헌은 재경에게 지니의 동생을, 서프라이즈 선물로 가질 계획을 세운다. 지헌은 비밀스럽게 히트를 보낼 준비를 한다. 한편, 이런 아빠의 속셈을 모르는 지니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웠고, 그 모습은 방송을 통해 낱낱이 공개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보낼 수가 없다!!!

말잇못... 어디서부터 운을 떼야 할지... 일단, 작가님 감사합니다. 16만 자 외전을 내주신 것도 감사하고, 효자 지니를 세상에 보여주신 것도 감사하고, 무엇보다 일러스트... 정말 감동입니다. 연재 표지모델인 재경을 보면서, 내심 단행본 표지모델로는 지헌을 바라던 간절한 독자의 희망사항을... 아니, 그런데 정장 입고 풀 들어간 건 자극이 너무 쏀거아닙니까? ㅠ.ㅜ 흑, 둘 다 물 안에 있는 거... 너무 좋아요 ㅠ.ㅜ 흑..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감격한 상태예요.

몸살에도 참을 수 없는, 리뷰 본능을 자극하신 작가님!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이렇게 끊으시면... 외전2 완전 땡큐합니다. 예... 정신줄, 흡! 정신줄을 잡아 볼게요.

대쉬 본편은, 성격파탄자이자 불세출의 수영 천재인 재경이 10년간 짝사랑하던 형 지헌과 우연히 재회한 후, 얼굴과 능력과 정력과 끈기로 '형의 남편'이 된 이야기예요. 다만, 그 과정에서 대형 스포츠 레이블 카바의 존심을 건드립니다. 카바는 재경이 꼴 보기 싫었지만, 재경의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기에는 그의 실력은 넘사벽이었고, 결국 온갖 더러운 술수를 다 부리게 됩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내유외강 지헌은 재경이 몸담을 '수영장'을 깨끗이 정리해 주죠.

본편 중, 2차 선발전과 올림픽 출전 사이는 짤막한 서사로 처리돼 있었어요. 외전의 절반은 바로, 그 공백을 다룹니다. 지헌은 노 입덧의 행운과 우울증이라는 불운을 겪어요. 올림픽을 앞둔 재경의 부재는 빈번했고, 지헌은 그런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때때로 주체할 수 없는 파도에 휩쓸렸죠. 자기통제에 능숙한 지헌이었기에, 변하는 몸, 낯설어지는 성격, 컨트롤 안되는 감정들이 혼란스러웠죠. 사실, 이 부분 묘사가 너무 리얼해서, 전 좀 마음이 꺼슬꺼슬해졌었어요.

하지만, 출산 육아 앱을 9개나 깔아 놓고, 각종 사이트와 동영상을 통해 온갖 지식을 섭렵해 온 재경은 지헌의 상태를 알아챕니다. 그리고 지헌의 변화를 기민히 살피며 기다려주죠. 그리고, 지헌이 재경을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줍니다. 진천 합숙소를 탈출(?) 하면서까지 말이이요. 재경의 우선순위는 늘 지헌이었고, 지헌 역시 마찬가지로 재경이었어요. 그리고 결과는 아시다시피! 재경은 8개의 메달을 따고 지헌은 무사히 우울증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드디어!!! 사람은 하난데 부르는 이름은 각양각색인, 진짜 지니, 권진이 태어납니다. 권진은 이상적이었어요. 재경의 껍데기에, 지헌의 내용을 담고 있는, 완벽한 피조물!!! 당연히, 재경과 지헌의 가족들 모두, 그 사랑스러운 아가의 열혈한 팬이 됩니다. 그리고, 모두들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죠. 심지어, 재경마저도!!! 하지만, 예능이 내키지 않았던 지헌은 수없이 받은 제의를 모두 거절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인엽이 등장합니다. 이직한 인엽은 본인이 프로듀싱 한 '아빠하고 나하고'에 재경의 가족을 출연시키려고 하죠. 그리고, 제2의 적동참 사태가 발발합니다. 재경 지헌 커플의 염병 첨병은 여전했고, 지헌에게만 반전 매력이 있는 줄 알았던 재경은, 진이에게도 반전의 아버지였죠. 아이에게 너무나도 다정하고 상냥한 재경의 모습은, 또 대박을 터트립니다. 물론, 재경에게도 대박은 있었습니다. 몰디브는 아니었지만, 진이에게도 새 가족이 생길 예정이거든요.

본편에서 지헌은 외롭지 않은 수영장을 꿈에서 봅니다. 재경이 계속 함께 있겠다고 말하는 수영장이었죠. 지헌은 수영을 포기한 후회와 열등감을 어린 후배에게 보였던, '그날'을 더 이상 꿈꾸지 않습니다. 외전에서 재경은 외로운 꿈에서 벗어납니다. 지헌이 재경을 사랑한 이후에도, 재경은 불안했어요. 지헌을 홀로 사랑했던 시간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절망감도 길었으니까요. 하지만, 진이를 안은 지헌을 보며, 이제 재경은 이 행복이 '진짜 현실'이라고 실감하죠.

사랑이 이루어지기도 힘들지만, 일생의 대부분을 지고 있던 마음의 짐이나 상처를 내려놓는 건 더 힘든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결말이 가장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닌가 싶어요. 이제는 5살이 된 권진이랑 지헌이 닮은 새침데기 여동생 이야기만 들려주시면 되겠네요? 이번엔 지헌 껍데기에 재경 내용이겠죠? 질척거리고 싶진 않지만!!! 전 아직 작가님을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1.03.21 - [BL 소설] - [서양풍/초능력물/시리어스물] 극야 - 이젠(ijen)

 

[서양풍/초능력물/시리어스물] 극야 - 이젠(ijen)

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9.02.14 분량: 본편 5권 + 외전 1권 ​ ​ ​ ​ ​ point 1 책갈피 ​ ​ 창밖으로는 어느새 짙은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9월이 되면서 거짓말처럼 해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b-garden.tistory.com

2020.09.29 - [BL 소설] - [수인물/동양풍/인외존재] 금슬지락 - 이젠

 

[수인물/동양풍/인외존재] 금슬지락 - 이젠

제목: 금슬지락 작가: 이젠 출판사: W-Beast 출간일: 2016.1212 분량: 본편 2권 #point 1 한 줄 "아니, 왜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거요." 이야기를 듣던 태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가 잘못을 했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연필

출간일: 2020.06.26

분량: 본편 2권

​​

 

point 1 책갈피

"진짜 맞으면서 운동했어요? 이제는 그런 거 없어진 줄 알았는데."

사진 보는 도중 프레임에 걸려 있는 선배나 코치가 보일 때마다 가리키며 '어, 이 새끼도 나 존나 많이 팼는데.' 같은 소리를 하기에 이경은 좀 놀라서 물었다. 선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없어졌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지. 나 초딩 때도 박지성이 막 자기 선배들한테 이유도 없이 맨날 맞았던 거 자서전에 써서 운동부 부모들이 난리 나고 그랬었어. 근데 눈치 보고 고치는 사람은 소수고, 대부분은 그냥 계속하던 대로 하니까. 위에서 한번 싹 잡아 족쳐야 되는 건데."

"얘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이경이 사진 속 조그만 선호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해가 뜨거워서 그런지 인상을 한껏 찡그리고 팔짱을 낀 채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는 차선호. 이경은 언젠가 선호가 얘기했던 것들을 떠올린다.

그냥, 형에 비해 좀 못한 애 취급을 받았단 거나 생긴 거 때문에 얼마나 구박받고 산 줄 아냐며 하소연했던 거. 그런 걸 생각하다 제 옆에 앉아 남의 어깨 위에 고개를 걸쳐 놓고 있는 차선호의 뺨을 살살 쓰다듬었다. 앨범에 박혀 있던 선호의 시선이 느리게 올라와 이경을 향했다.

"예쁨 좀 받고 살지 그랬어요."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닌 건 알지만, 그래도 말한다. 좀 속상하니까. 선호가 한쪽 입술 끝을 비스듬히 올렸다.

"네가 좀 일찍 나타나지 그랬어."

어릴 때와 똑같은 얼굴로 웃으면서 말해 놓고는 한 박자 늦게 좀 머쓱한 듯 뺨을 긁적이며 눈길을 돌려 버린다. 나 보고 오글거리는 말 잘한다며 뭐라고 하더니. 이경의 어깨가 작게 들썩거렸다.

"뭘 웃어."

선호가 검지로 이경의 입술을 툭 쳤고, 그게 또 약속된 신호인 것처럼 다시 입술을 맞댔다. 뭘 했다고 이렇게 좋은가, 차선호가 고등학생 때까지 누워 자던 침대 위에서 혀를 얽으면서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좋을 일인가? 연애가 원래 이랬나?

point 2 줄거리

기: 입대 전 가끔 인사나 나누던 선배 차선호, 하지만 복학 후 수업이 겹치면서 친분이 쌓였고, 얼떨결에 자취방을 빼게 된 윤이경의 새로운 집주인이 되었다. 월 50의 좁은 방에서, 월 40의 쾌적한 오피스텔에 살게 된 이경은 차선호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차선호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참아줬다. 매주 다른 남자와 거실에서 질펀하게 섹스를 해도, 혐오의 시선이나 가식적 태도가 없는 이경에게 선호 역시 호감을 느낀다.

승: 선호는 소꿉친구 배우 강태주를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주는 선호와 냉정하게 선을 긋고, 친구이길 강요했다. 선호는 태주에 대한 마음을 죽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선호와 친해진 이경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호는 매번 상대를 바꾸기가 번거롭다며, 이경에게 섹스 파트너를 제안한다. 이경은 어이없으면서도 한 번의 시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한다. 둘은 술을 마시고 첫 섹스를 한다.

전: 몸에 상성이 좋았던 선호와 이경은, 때때로 서로의 파트너가 되어 준다. 이경은 여전히 세심히 집안일을 챙기고, 선호를 돌봤다. 선호 역시 이경에게 여전히 경제적으로 후한 선배였다. 먼저 마음이 바뀐 건 이경이었다. 이경은 선호의 가정환경과 운동선수 시절 이야기, 특히 태주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알아 갈수록 선호가 좋아졌다. 이경은 태주에게 상처 입은 선호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친절에 굶주린 선호에게 다정한 두 번째 사람, 선호는 흔들린다.

결: 이경은 선호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한편, 태주는 이경과 부쩍 가까워진 선호를 보며 불안해하다, 결국 선호에게 고백한다. 이경은 태주의 등장으로, 자신이 모르는 두 사람만의 세계를 실감하고 역시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선호는 결단의 시간이 찾아왔음을 직감한다. 선호는 이경에게 시간을 달라고 하고, 태주와는 관계를 친구로 정리한다. 선호는 이경에게 찾아가 꽃다발을 건넨다. 선호와 이경은 낭만적 연애를 시작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낭만을 위하여

낭만... '현실에 매이지 않은'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태도나 심리, 영어로는 roman! 그래서, 로맨스 소설은 판타지인가 봐요. 현실에 얽매이지 않아서 말이죠. 현실에서 묶이면 묶일수록 사람들은 낭만과 멀어집니다. 그리하여 이 시대를 '몰낭만적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거예요. 소설 속 선호는 '낭만'을 꿈꾼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경이 아는 한, 선호는 몰낭만적 시대에, 가장 몰낭만적 연애를 하는 사람이었죠.

왜냐면, 선호는 몰낭만적 환경에서 살고 있었거든요. 선호의 삶은 건조했지만, 어찌 보면 평범했습니다. 딱히 선호의 부모님이 선호를 학대한 것도, 방치한 것도 아니고, 썩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어쨌든 선호는 하고 싶었던 축구도 했었죠. 대학 입학 이후에는 재정적 지원도 빵빵하게 받아요. 다만, 선호가 못 받은 것은 '마음'이었고, 그래서 선호는 겪어보지 못한 낭만을 갈구하게 됩니다. 문제는 '낭만'이 뭔지 모른다는 거죠.

저는 언제나, 효율적으로 시간관리하는 밀도 높은 생활을 하고 싶어!라고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 이유는, 한 번도 효율적으로 시간관리를 하는 밀도 높은 생활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늘 정신없이 바쁘고, 정신을 차리며 계절이 바뀌어 있고, 연말에는 허무감에 시달립니다.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바라지만,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어요. 이때는 뫼비우스 띠를 끊어주는, 띠 밖에 도우미가 필요합니다. 저는 없었고, 선호는 있었죠. 바로 이경말입니다.

선호가 태주를 7년간 짝사랑했던 계기는, 어이없게도 '낙지'였습니다. 선호와 태주의 기호는 상관없이 부모님은 큰 형이 좋아하는 낙지를 사와요. 태주는 선호가 곤란하지 않도록 낙지를 맛있고 감사하게 먹고, 부모님의 눈을 피해 살며시 뱉어요. 그건 선호가 경험한 첫 번째 '낭만'이었어요. 그리고, 대학생이 되고서야 두 번째 '낭만'이 찾아옵니다. 시키지 않은 집 안일을 하는 이경의 모습에서요.

이경은 친해진지 얼마 안 된 선배의 도움으로, 곤란 없이 적은 돈에 좋은 집에서 살게 되었으니,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선호는 굳이 요청하지도 할 필요도 없는 일을, 자신을 위해 스스로 나서서 해주는 이경의 모습이 생경했어요. 게다가, 난잡한 자신의 섹스 라이프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방 값을 반으로 깎아줬지만, 이경은 원래의 금액으로 입금해요. 자주 밥을 사주는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에서였죠. 이경이 아무렇지 않게 베푸는 친절이, 선호에게 낭만으로 다가옵니다.

사실, 이경에게 섹파를 제안한 것은 태주 때문이었어요. 배우 태주의 소꿉친구가, 문란한 성생활을 한다는 것이 이슈가 될까 봐 무서웠거든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단순한 룸메이트 이상으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이경과, 좀 더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기도 했죠. 이경 역시 벽 넘어 소리로만 듣던, 그 실체를 경험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있었어요. 그리고 몸정에서 맘정으로 먼저 바뀐 건, 다정한 이경씨였어요.

이경은 할 말을 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상처 주지 않는, 원만하고 사교적인 성격을 소유자예요. 게다가 연애 경험도 몇 번 있었죠. 하지만, 선호는 운동하느라, 생긴 게 사나워서, 아웃팅을 경계해서 등등등 언변이 좋지 못하고, 연애 경험도 없었어요. 당연히 둘의 관계는, 이경이 보듬어 주고, 선호가 기대오는 형태로 발전합니다. 이경은, 아직 태주를 좋아하지만 안 좋아해 보도록 노력하겠다는 선호와 사귀기 시작해요. 투투를 챙기고 싶다는 선호에게 선물을 챙기는 것도, 이경의 일이었죠.

'몰낭만 시대의 낭만적 연애'는 일상물입니다. 중간에 태주가 사실은 선호를 좋아했었다!는 위기가 있긴 하지만, 큰 영향 없이 지나가요. 하지만, 선호와 이경의 일상은 이가 썩을 정도로 달달합니다. 덩치 큰 선호는 점점 대형견수가 되죠. 그래서 저는 '낭만적 연애'라기보다는 '낭만적 일상'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산 없는 순수함으로 매일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것! 정말 낭만을 위하여네요.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0.10.31 - [BL 소설] - [현대물/잔잔물/힐링물] 당신의 서정적인 연애를 위하여 - 김모래

 

[현대물/잔잔물/힐링물] 당신의 서정적인 연애를 위하여 - 김모래

출판사: 시크노블 출간일: 2016.07.15 분량: 본편 2권 ​ ​ ​ ​ ​ ​ point 1 책갈피 ​ ​ 어쩌면...... ​ "그러니까 같이 가요." ​ 꿈결같은 목소리 하나가 맴돈다. ​ '사랑이라면, 네가 알 거야.'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미담드디카

출간일: 2018.11.09

분량: 본편 1권 + 외전 1권

​​

point 1 책갈피

"윤회가 가장 좋지 않을까?"

강은 한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다정히 물었다.

"왜요?"

"글쎄다...... 다음 생에도 다시 태어나 새로운 세상을 살아 보고 싶어서. 궁금하잖아, 미래에는 어떤 세상이 되어 있을지."

"꼭 인간으로 태어나리란 법이 없잖아요."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지. 인간은 너무 골치 아픈 존재야. 머릿속에 잡생각이 많아서 평생을 어지럽게 살아야 해."

한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만약 짐승으로 태어난다면...... 그래, 새가 좋겠다.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니까."

"......"

"이런 이야기 별론가?"

"아뇨."

강이 미소 지었다.

"상상이 되어서 좋아요. 이런 이야기 싫어하면 전 시를 쓰지 못했을걸요."

한도 마주 웃었다. 강은 아까보다 한층 밝아진 음색을 내었다.

"저도 그럼 새가 되는 게 좋겠네요."

"왜?"

"선생님이 새가 되고 싶다 하셨으니까."

"나 말고 네 생각을 해야지."

"네, 생각한 거예요. 뭐가 되었든 선생님 곁에 있으면 좋겠거든요."

강은 한의 손등을 자신의 입가에 갖다 댔다. 그리고 한의 손에 입술을 도장 찍듯이 누른 다음 읊조렸다.

"제 마음 아시죠?"

한은 강의 애정이 마음을 충만하게 만드는 걸 천천히 느꼈다. 한은 강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는 만족감과, 안도, 그리고 기쁨 속에서 담담히 말했다.

"알다마다."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한참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생에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나누는 두 시인의 얼굴은 즐거움이 가득했다. 어느덧 잔별이 하나둘씩 뜰 때까지 두 사람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point 2 줄거리

기: 문학계의 전설인, 시인 한은 북향 작가 강의 시집을 발간한다. 북향 작가에 대한 해금 조치는 풀렸지만, 아직 빨갱이 취급 일색인 부정적 분위기 속에서도 강의 시집은 큰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고령의 대문호 한은 강에 대한 인터뷰에서 과거 이야기를 푼다. 1935년 경성, 25세 한은 경성 멋쟁이로 불리는, 잘나가는 시인이자 기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의 신문사로 무명작가의 시들이 도착한다. 평안도 말씨의 부드러운 시들, 특히 '길'은 큰 파문을 낳았다.

승: 한은 신원불명의 천재 시인 강을 만날 날을 고대했다. 그러나, 실제 신문사에 찾아온 강은 18세의 학생이었고, 한은 어린 천재 시인에게 강한 열등감을 느껴 매정하게 대한다. 하지만, 한을 동경해 시를 쓰게 됐다는 강은, 끈질기게 한을 쫓아다닌다. 그리고, 마치 사고처럼 술에 취한 한은 강을 유혹하고, 몸을 섞게 된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되지만, 강은 곧 시인으로서 한계에 부딪히고, 시인 강의 성장을 바라는 한은 그를 일본 동경으로 유학 보낸다.

전: 한편, 일제의 문화 말살정책이 심화되고, 친일로 돌아선 문학계 변절자들은 그럴싸한 자리를 받아 권력을 누린다. 반면, 사회주의 반일 작가 인혁은 일장기가 뒤덮인 경성을 떠나고, 한은 붓을 꺾는다. 물론, 경성 대표 시인이었던 한에게 친일 전향 압박과 검열은 계속된다. 그렇게 3년이 흘러, 21살의 강이 돌아온다. 그리고, 북녘 고향을 읊은 강의 시는, 1938년 경성에서 최고의 호황을 누린다. 그러던 어느 날, 병든 인혁은 한을 찾아와 소설 한편을 맡기고 떠난다.

결: 한편, 고향을 소재로 시를 쓰던 강은 경성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점점 고향을 잊어갔고 그 불안감은 시에 나타난다. 하지만, 강은 한의 곁을 떠날 수 없었고, 결국 한은 강과 함께 북향을 선택한다. 둘은 산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 그러던 중 한에게 형이 아프다는 전보가 오고, 한은 경성으로 향한다. 강과 한은 서로의 시를 주고받고, 한은 곧 돌아오겠노라 약속한다. 하지만, 곧 전쟁이 터지고 38선이 남과 북을 가른다. 한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딜레마

BL에 배드 엔딩은 드물어요. 하드코어와 극피폐물조차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죠.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를 넣어라서도 말이에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쁨이라는 감정보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강렬하고 여운이 길기 때문에, 사람들은 희극보다는 비극에 더 감명받는다고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받아온 명작들 중에는 비극이 더 많고, 심지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댄스보다 발라드가 더 많은 표를 받는다고해요.

하지만, 저만해도 BL 소설을 선택할 때 배드 엔딩은 쉽게 손이 가지 않습니다. 아마도, BL이라는 장르소설이 감동보다는 오락의 목적이 더 강해서 그런 것 아닌가 예상해 봅니다. 물론, 그 목적에도 불구하고 흠결 없는 설정, 완벽한 구조, 풍성한 줄거리도 요구하죠. 감동적인 버라이어티쇼와 대중적인 예술작품을 바라는 것처럼요. 웃으려고 본 쇼프로에서 울고, 깊이를 바라는 작품이 쉬웠으면 좋겠고... 딜레마는 이렇게 사소한 곳에도 있습니다.

만약 누가 저에게 이런 딜레마 상황에서 지금 당장, 하나만,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고 강요한다면... 멘붕에 빠질 것 같습니다. 더욱이, 이 문제가 여가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이고 영향력 강한 사안이라면, 그리고 그 선택이 불시에 빈번히 강제된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미치거나 자포자기하겠죠. 불행히도, 이 고약한 가정은 누군가에겐 현실이었습니다. 사회의 지식인과 한 명의 작가, 모두를 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들 말이에요.

1935년 경성... 어떤 분위기였을까요? "일본이 어찌 망하겠습니까! 망할 일이 없는 나라에 언제까지 반항하시려고요." 소설 속 젊은 시인 서주영은 한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아마도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 일본이나 조선인 모두 식민지가 끝날 거라고 믿진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분명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 불평등은 있었지만, 조선인들의 숨통은 막진 않았어요. 길들이는 방식일지라도 공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교과서에서 소히, 문화통치라고 불렀던 시기요. 조선인 지주가 더 나쁘냐? 일본인 소작농이 더 나쁘냐? 최인혁도 그때라 이런말을 할 수 있었을테고요.

하지만, 1929년부터 사정이 급격히 바뀝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부자가 된 일본의 돈줄이 세계 대공황 이후 막히고, 1931년 만주에 괴뢰정부를 만들면서 일본은 내선일체를 강요하기 시작해요. 1941년 진주만까지, 창씨개명 같은 사상 탄압의 수위가 점점 높아집니다. 1941년부터는... 정말 개싸움이었죠. 추락하는 일본은 조선의 젊은 남자는 징용 징병으로, 젊은 여자는 위안부로, 조선에 있는 것은 문고리까지 떼어가며 바락을 합니다. 1945년 광복까지요.

1935년 경성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30년 뒤의 세상입니다. 어쩌면, 그 사이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그 세상은 만족스럽지는 않았어도 나름대로 적응했을지도 모릅니다. 조선인 한은 경성에서 인정 받는 문학가이자 인기인이었고, 집안은 부유했죠. 한과 형일은 신문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한의 최고 관심사는 어떤 무명작가의 시였어요. 1935년은 숨통을 서서히 조이기 시작한, 하지만 아직은 버틸만한 그 어디쯤 되는 시기였을 거예요.

그리고 드디어 막다른 시기가 옵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흑과 백, 양극단에 섭니다. 박영후나 서주영를 포함한 많은 문인들은 친일을, 최인혁은 항일을 선택해요. 박영후나 서주영은, 뛰어난 글재주를 지닌 작가이자 영향력 있는 경성의 엘리트로서, 교과서나 선동문을 써요. 물론, 내용은 황국신민의 강령이었지만요. 반면, 최인혁은 한에게 작가로서 빛보지 못할 마지막 소설을 맡기고, 독립운동을 하다 광복도 보지 못한 채 차가운 이국땅에서 죽고 말죠.

어떤 이들은 회색 지대에 서 있습니다. 한과 형일처럼 붓을 꺾는 작가들이나, 강처럼 자연과 전통시를 쓴 작가들 말이에요. 이들은 검지도 않았지만 하얗지도 않았어요. 한과 형일은 신문사가 폐관된 이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본이 배급해 주는 쌀 한 자루를 받으러 긴 줄을 섭니다. 그리고, 경찰서에 잡혀간 한을 구한 것 역시, 매섭게 내쳤던 친일파 서주영이었어요. 무엇도 선택하고 싶지 않지만, 무엇인가를 선택하길 강요받는, 고뇌하는 지식인들이었죠.

사실, '1935년, 경성'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씬은, 피난길 찾아간 교회, 무너진 십자가 앞에서 한이 오열하는 장면이었어요. 1938년 28살이었던 한은,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식민지 조선에서 시인이 된, 모던보이였어요. 비판의식이 투철한 깨어있는 지식인이었지만, 어쩌면 한이 경험한 '진짜 상실'은 조국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강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상실감, 그것이 가슴으로 맞는 첫 상실이었을지도요. 그 순수한 절망을 말이죠.

그럼에도 책갈피에는 강과 한의 가장 행복한 시기를 넣고 싶었습니다. 1935년 경성에서 최인혁은 강의 시를 보고 비평하고, 한은 강의 성장을 바라며 그를 동경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3년 뒤 강의 시를 본 최인혁은, 또 한에게 강이 고향을 잊어가고 있다고 말해요. 하지만, 이때는 한이 강과 함께 떠납니다. 추운 북녘의 산속, 강의 시에 녹아 있는 그의 고향, 둘만의 세상으로 말이죠.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었습니다. 읽으면서, 각각의 인물들과 연상되는 현실 속 시인들도 생각나고 말이죠. 그리고, 윤동주 유고 시집에 정지용이 쓴 서문도 떠올랐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구절 담아봐요.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었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일제 시대 날뛰던 부일문사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뿐이나,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가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point 1 책갈피

그래, 어떻게든 방법은 생기겠지. 찾아보면 어딘가에는 있겠지, 둘 다에게 좋은 방법이.

생각하며 지헌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터널을 지나듯 짧은 어둠이 지나가고, 다시 환한 수영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발치에는 어린 재경이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여기서 뭐해요?

웬일로 먼저 말을 건담. 지헌은 신기해하며 대답했다.

-너 보고 있었다, 왜.

나를요? 하듯 재경이 눈을 깜박였다. 곧바로 뭐야, 하고 작게 웅얼거리며 새침 떠는 표정이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보고 있노라니 지헌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왜 몰랐을까.

재경은 정말 자신만 보고 있었다. 한결같이 자신만 보면서도 한결같이 서툴러 표현도 한 번 못 했다. 그게 새삼 사랑스럽기도 하고, 조금 마음이 아프기도 해서 지헌은 살짝 목멘 소리로 물었다.

- 너 혼자 심심하지도 않냐?

- 수영하는데 왜 심심해요?

재경이 질문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다시 눈을 비비며 지헌에게 물었다.

- 형은 수영할 때 심심해요?

- 아니, 나도 심심하진 않아.

지헌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아무도 없는 풀을, 그 고요한 수면 위로 하염없이 반짝이는 빛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그런데 가끔 외롭긴 해.

곧바로 재경이 말했다.

- 나랑 같이 있는데 왜 외로워요?

그 뜻밖의 말에 지헌은 다시 고개를 숙여 눈앞의 아이를 내려다봤다. 어느새 다 커버린 재경이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형 혼자 아니잖아요, 이제.

그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하더니 손을 뻗었다. 지헌이 그 손을 붙잡자 재경이 그대로 끌어당겼다. 지헌은 미끄러지듯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따뜻한 물이 순식간에 온몸을 감쌌다. 차가울 줄 알고 겁먹었던 지헌은 그 익숙한 온도에 곧 마음을 놓고 더 깊이 가라앉았다. 물속은 언제나처럼 평화롭고 안온해서 그저 가만히 잠겨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

이 상냥한, 마치 위로 같은 포옹을 지헌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받아들여 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고 다정한 온기, 바로 재경의 품이었다.

point 2 줄거리

기: 그랜드슬램 달성을 목전에 둔, 천재 수영선수 권재경은 슈퍼스타다. 당연히 권재경과 계약하려는 에이전시 간 경쟁은 치열했고, 국내 최대 스포츠 에이전시 '카바'는 거액의 계약금을 제시한다. 하지만, 재경은 뜻밖에 소형 에이전시 '스포인'과 계약을 체결한다. 이유는 스포인 정지헌 대리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면 계약 때문이었다. 재경은 어릴 적 우상이자 첫사랑인 지헌에게, 광고를 찍을 때마다 소원을 한 가지씩 들어달라고 한다.

승: 지헌은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딴 국가대표였지만, 오메가 발현과 어깨 부상으로 인해 수영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계속 후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자신을 기억하는 재경의 애정공세가 불편했지만, 사회성 갑인 지헌은 재경과 그럭저럭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카바'의 더러운 뒤 공작에 휘말려, 재경이 불명예스럽게 은퇴를 할 위기에 처하자, 지헌은 재경에게 다음 올림픽을 나가자고 애원한다.

전: ​재경은 올림픽에 나가는 조건으로 지헌에게 섹스를 요구하고 지헌은 수락한다. 원래 지헌바라기인 재경과 재경을 아끼는 지헌은 몸정을 쌓으며, 감정 역시 깊어진다. 그러던 중 재경과 지헌은 스타와 매니저가 함께 하는 버라이어티를 찍는다. 한편 지헌의 페로몬이 재경에게 영향을 주자, 지헌은 무리하게 칩을 사용하다 쓰러지고, 그런 지헌을 보며 괴로워하는 재경에게 지헌은 고백한다. 때마침 쇼프로가 방송되면서 둘은 공인커플이 된다.

결: 지헌과 재경은 히트와 러트를 함께 보낸다. 한편, 재경이 올림픽에 나가게 되면서, 역공을 당했던 카바와 수영연맹은 원한을 품는다. 올림픽 1차 선발전에서 재경을 흔들려고 수작을 부리다, 지헌이 폭행당하는 사건이 터지고, 2차 선발전에서는 지헌의 페로몬을 걸고넘어진다. 하지만, 지헌의 임신 사실일 밝혀지면서 완전 실패로 돌아가고, 재경은 올림픽에서 메달 8개를 획득하는 쾌거를 이룬다. 재경과 지헌은 서로에게 청혼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반드시 이긴다.

아직까지 리뷰하지 않았지만, 저는 이젠님의 최고작은 '프라우스 피아(Fraus pia)'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DASH'로 바뀌었어요. 'DASH'라는 명작을 만난 것도 매우 기쁜 일이지만, 이젠님의 다음작이 나올 때마다 '최고작'이 바뀔 것 같다는 기대감이 더 기분이 좋습니다. 구작을 재탕하며 그리워하는 것보다, 새 작품을 고대하며 느끼는 설렘이 더 즐거운 법이죠.

저는 이젠님의 강점이, 탄탄한 구성력과 세심한 디테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서사를 쌓아 올린 것 같다. 반면, 강렬함은 적다. 이젠님 작품에 대한 기존 저의 감상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DASH'는 머리에 각인되는 장면이 제법 많습니다. '책갈피'를 선택할 때, 떠오르는 씬이 없어 어려운 작품이 있는 반면, 너무 많아 어려운 작품도 있는데, 'DASH'는 후자였습니다. 정말 어려웠어요.

물론, Killing point가 많은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사만 힘준 작품들은... 부끄러워요. 수치심과 오글거림은 독자의 몫인가? 싶죠. 하지만, 인상적인 장면이 없는 작품들이 오래 기억되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DASH'는 이젠님의 강점에 다른 강점까지 더한 셈이죠.

'DASH'의 줄거리는 뻔하고 간단합니다. 천재적 재능과 우성알파의 형질, 잘생긴 외모, 강철 멘탈을 지닌 재경이 사랑과 금메달 모두 성취하는 내용이죠. 아마, 이 이야기를 보며 지헌과 재경이 맺어지지 않는다든가, 재경이 올림픽을 나가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카파의 수작과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위기는 맞지만, 의외성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DASH'가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그 '과정'이 뻔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일단, 재경과 지헌의 캐릭터가 재미있습니다. 재경은 수영 1등인 사회성 파탄자에요. 지헌은 수영을 포기한, 사회성 갑 인기인이죠. 재경은 사랑은 아는 반면 연애는 모르고, 지헌은 사랑은 초보, 연애는 만랩이에요. 재경은 이기는 것만 관심이 있고, 지헌은 실패하지 않는 것만 골몰합니다. 재경은 서툴지만 안하무인이고, 지헌은 노련하지만 겁쟁이에요. 두 사람은 홈과 고리가 맞닿은 퍼즐처럼, 서로의 부족과 과잉이 정확히 맞아떨어져요. 물론, 다른 말로 하자면, 삶의 방식이 완전 반대라는 거죠.

상극인 공수가 맞춰간다고 하면 배틀연애나 티키타카를 떠올리기 쉬워요. 하지만, 놀랍게도 'DASH'에서는 그것들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두 사람도 말싸움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한 쪽이 다른 쪽을 설득하는 것이 내용이고, 두 사람은 반드시 합의점을 찾습니다. 평행선, 삽질, 고구마, 밀당, 요런거 없습니다. 이렇게 다름에도, 치고받는 열전이 없는 이유... 재경은 한결같이 지헌을 원하고, 지헌은 늘 재경을 위하기 때문이죠.

수영을 사랑했던 지헌은 국내를 휩쓴 천재였고, 최연소 세계 선수권 메달리스트였어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세계 선수권 메달은, 지헌에게 수영선수로서의 미래를 비관하게 만듭니다. 때마침 진짜 천재의 등장, 어깨 부상, 오메가 발현까지 이어지면서, 지헌은 수영을 그만두죠. 하지만, 그 결정은 연이은 악재를 핑계로 스스로 '포기'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후, 지헌은 정말 열심히 살지만, 여전히 후회스러웠고 공허했고 외로웠죠.

그런 지헌에게 재경은, 부끄러운 과거의 단편이자 이루지 못한 꿈이었어요. 지헌이 두려워 한 실패가, 수많은 연애를 통해 깨달은 무상감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지헌은 절실히 사랑했던 수영이 남긴 상흔처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재영과 헤어진 후 남을 후울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죠. 지헌은 복잡합니다. 다만, 재경이 후회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 만은 헷갈리지 않아요. 이를 위해서라면, 재경의 말도 안 되는 요구도 받아들입니다.

반면, 재경은 명료해요. 재경은 부지불식간에 지헌을 놓쳐 버립니다. 이후 지헌과 닮은 사람도 만나지만, 지헌의 자리는 조금도 메꿔지지 않았죠. 재경은 10년간, 찾을 수 없는 지헌을 홀로 사랑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지헌을 만나고, 맹렬히 DASH 해요. 골인점은 분명했고, 수영에 빽은 없습니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고 근육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은 빨리 가고 있는다는 증거고, 재경이 제일 잘하는 일이었어요.

또, 심플한 줄거리의 탄탄한 디테일도 뻔하지 않은 중요한 요인이죠. 'DASH'는 수영 선수가 엮일 수밖에 없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비교적 자세히 다룹니다. 재경이 '잘 생긴' '비인기 종목'의 '천재' '메달 사냥꾼'이니 더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간혹 박태환 선수의 인터뷰도 떠올랐습니다. 모처럼 재능 있고 성실한 선수가 생겨도, 운동이 아닌 이권 다툼의 희생양으로 도마에 오릅니다. 스포츠라는 것이, 고수익 산업이고 한철 사업인데다가, 선수는 대중적인 반면 업계는 불투명하고 수직적이고 폐쇄적이다 보니 더 심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DASH'에는 많은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열폭을 부르는 '카바'의 김기석, 한유성, 섭캐인줄 알았는데 엑스트라였던 최성현, 송연호를 비롯해 대한체육회, 수영연맹, 스포인과 재영 지헌의 가족들까지... 모두 나름대로의 성격과 이권으로 재경에게 '주장'을 합니다. 우성알파라니 비겁하다, 넌 성격이 문제다, 너 결정은 이기적이고 후배들을 생각 안 하는 거고, 운동선수의 자세는 어떻고 등등 말이 많습니다. 그리고 비난하죠. 통제하고, 흔들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재경은 일반인이 아니었고, 강철 멘탈의 소유자였어요.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고, 간혹 간헐천은 뿜어내지만 독설로 즈려밟고 깔끔하게 무시하죠. 재경은 사람을 노련히 다루고,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는 지헌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지헌은 재경의 그 드높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부러워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챙겨야 할 것은 많고 신경 써야 하는 것도 많다. 어른은 멀티태스킹을 잘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평화롭게 지지 않는 법이지, 이기는 법은 아닐지도 몰라요.

많은 스포츠 소설들은 '그래서 이겼다.'인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가지 장애물과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끝내 승리하는 성장물 말이죠. 하지만, 'DASH'를 보면 '반드시 이긴다.'가 더 어울립니다. 재경은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이길 준비만 하고, 이깁니다. 불안해하고, 백업 플랜을 세우고, 우호적 정서를 만들지 않죠. 수영도 지헌에게도 오로지 전진만 합니다. 다른 가능성은 없어요. 다만 될 때까지 할 뿐이죠. 정말 징한, 지독한, 의지의 한국인이에요.

비록 공지는 없지만, 저는 DASH가 외전이 나올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지니'랑 수영장도 가야 하고, 팔불출 아빠의 육아기도 보여줘야 줘. 그저 빨리만 나왔으면 좋겠어요. 현기증 난단 말입니다. ㅠ.ㅜ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0.09.29 - [BL 소설] - [수인물/동양풍/인외존재] 금슬지락 - 이젠

 

[수인물/동양풍/인외존재] 금슬지락 - 이젠

제목: 금슬지락 작가: 이젠 출판사: W-Beast 출간일: 2016.1212 분량: 본편 2권 #point 1 한 줄 "아니, 왜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거요." 이야기를 듣던 태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가 잘못을 했

b-garden.tistory.com

2021.03.21 - [BL 소설] - [서양풍/초능력물/시리어스물] 극야 - 이젠(ijen)

 

[서양풍/초능력물/시리어스물] 극야 - 이젠(ijen)

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9.02.14 분량: 본편 5권 + 외전 1권 ​ ​ ​ ​ ​ point 1 책갈피 ​ ​ 창밖으로는 어느새 짙은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9월이 되면서 거짓말처럼 해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민트BL

출간일: 2021.04.02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퇴원은 그렇다 쳐도, 침대에서도 못 내려올 만큼 아픈 곳은 하나도 없다니까요."

"절대로 안 돼. 너, 내 말 잘 듣겠다며. 맛있는 거로 잘 골라 올 테니까 착하게 기다리고 있어. 할 수 있지?"

"...와. 형, 진짜 치사하...아니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하하. 제가 설마 하늘 같은 형님께 치사하단 말을 했겠어요? 후. 알겠어요. 형 말대로 얌전하게 침대에 누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얼른 다녀와요."

민서는 부루퉁한 얼굴로 보란 듯이 죄 없는 이불만 끌어다 주물럭거리며 무언의 시위를 했다. 승원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서가 황급히 승원의 팔을 잡았다.

"한 번만 더 해줘요. 아니, 두 번만 더 해 주세요. 이마에만 하지 말고 입술에도 해 주세요."

"착하게 있으면 갔다 와서 해 줄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형이요."

point 2 줄거리

기: 승원은 오토바이 사고로 두 팔이 마비되는 장애를 얻는다. 명문대를 다니는, 성실하고 착한 아들의 비극에 부모님은 슬퍼하지만, 기초 생활 수급자로 생활하는 가난한 살림에 승원의 큰 수술비를 댈 수 없었다. 수술을 포기한 승원은 어머니의 수발을 받으며, 절망 역시 마주해야 했다. 결국, 승원은 중증 장애인 시설로 도망치듯 입소하고,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나온 민서를 만난다. 그리고, 유독 승원에게만 곰살맞게 구는 민서가 오는 날을, 승원은 기다린다.

승: 장애인인 형의 자살 이후, 3월이면 악몽에 시달리던 민서는 자원봉사 차 방문한 시설에서 형과 분위기가 비슷한 승원을 만난다. 낯을 가리고 쌀쌀맞은 민서지만, 승원에게만은 살뜰히 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승원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연이은 불행에 승원은 힘들어한다. 그 모습이 꼭 자살 전에 형 같았던 민서는 승원을 책임질 방법을 찾는다. 한편, 민서는 승원과 특별한 사이가 되기 위해 사귀자고 고백하지만, 승원에게 단칼에 거절당한다.

전: 이후 민서의 서툰 시도들은 승원을 비참하게 만들고, 충동적으로 승원의 자위를 도운 날, 승원은 폭발하고 만다. 하지만, 민서가 너무 소중했던 승원은 결국 민서를 용서하는 한편, 민서는 그 날 승원에 대한 애정이 '성애'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 번 큰 실수를 한 민서는 승원의 눈치를 보며, 승원을 애정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민서는 승원의 수술비를 지원하려 하고, 그를 알게 된 주변인들의 도움이 더해지면, 승원은 수술을 받고 회복한다.

결: 승원은 일상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 일상에는 민서가 있었다. 시설에 나온 이후 승원의 곁을 민서는 떨어지지 않고, 승원 역시 그런 민서에게 이성적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승원은 3월의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민서에게 키스한다. 이후 용기를 얻은 민서는 승원에게 고백하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한편, 민서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승원은 민서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 깨닫는다. 민서의 입대 전날, 승원은 청혼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봄을 찾아서

빗물에 떨어진 벚꽃잎이 흐르는 물길을 따라 길게 띠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처연하면서도 화사해 보입니다. 봉우리가 움 틀 때는 '곧 봄이구나!' 봄 마중에 설레었던 것 같은데, 언제 할 일을 모두 마치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걸까요? 꽃은 어느 날 문득 만개해 있다가, 알아차릴만하면 지는 것 같아요. 좋은 것들은 그렇게 오고, 그렇게 가는 것 같죠? 그래서인지 '봄' 소설도 그 양가적 심상을 모두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

'봄의 열쇠'는 연상수의 비극과 연하공의 악몽으로 시작합니다. 주변엔 모두 착한 사람들뿐이지만, 두 사람은 홀로 분노, 혼란, 체념, 죄책감을 이겨내야 했죠. 그래서 초반 분위기는 회색 도화지에 그려진 도시처럼, 차갑고 외롭습니다. 승원은 친구의 어거지로 오토바이를 타게 되고, 사고로 두 팔에 심각한 장애를 얻습니다. 원망해야 할 친구는 즉사하고, 남은 승원만이 어머니의 오열과 아버지의 줄담배, 비참한 미래를 감당해야 했어요.

가난으로 받지 못한 수술, 생리적 현상조차 처리할 수 없는 무력감, 비통함에 젖은 어머니의 얼굴... 승원은 화나고 슬프고 답답하지만, 삭혀야만 하는 생활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래서, 교회의 도움으로 장애인 시설에 들어갈 수 있게 되자, 그 도피처를 고민 없이 선택합니다.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고 후련하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얼마 뒤... 부모님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고, 장례식장을 지키는 승원은 그 순간을 떠올립니다.

승원에게 남은 건, 혈혈단신 장애인으로서 살아야 할 삶이었어요. 그리고, 민서에게 위태로운 승원은 자살 전날의 형의 모습과 겹쳐졌어요. 민서는 삶을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는 형에게, 형이 더 지긋지긋하다고 모진 말을 내뱉고 학교를 가요. 하지만, 내내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하려 하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이미 형은 돌아올 수 없는 사림이 되어 있었고, 민서에게 3월은 악몽의 달이 되었죠. 문자 그대로 말이에요.

민서는 과거의 실수를 다시 반복할 수 없었어요. 이때부터 민서의 고군분투기가 이어집니다. 소설 초반의 무거운 분위기가 유쾌하게 바뀌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할리킹인듯 할리킹 아닌 전개와 함께 말이에요. 무려 증여받은 건물로 임대료를 받는 민서는 승원을 책임지고 싶어 합니다. 친한 형 동생보다, 더 끊어 낼 수 없는 강한 유대를 원하죠. 하지만, 만 19세도 되지 않은 민서는, 결국 승원의 수술비를 지원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민서는 엉뚱하게도 승원의 연인이 되려 합니다.

BL 소설이기에, 이 발상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민서가 충동적으로 승원의 자위를 도와준 날, 민서는 손이 발이 되도록 용서를 빌고 승원에게 거부당하는 경험을 하지만, 승원에 대한 마음을 확신하기도 합니다. 민서는 승원도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동생계(?)와 우렁각시 전략을 구사하며, 정말 부지런히 뻐꾸기(?)를 날리고 가자미 눈이 되도록 눈치를 봅니다.

그리고, 민서의 노력은 성공을 거둡니다. 하지만, 승원은 자신의 처지에 민서에게 마음을 밝힌다는 것이, 이미 받은 엄청난 은혜를 악의로 갚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역시 BL 소설이기에, 악몽을 꾸며 애절하게 매달리는 민서를 쳐내지 못하고, 교통사고로 민서를 잃을 뻔한 위기를 겪으면서, 바뀝니다. 승원은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끝내 청혼까지 합니다. 시린 겨울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 주죠.

'봄의 열쇠'에서 공수의 심리와 일상의 묘사는 잔잔합니다. 그리고 연하공의 연상수에 대한 치댐은 달달해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할리킹, 구원물, 일상물, 성장물 등등 키워드로 특정하기에는, 다들 어느 정도는 있지만 완전하지 않아요. 저의 경우, 잔잔한 힐링물을 읽고 싶었는데, 승원의 수술이 성공하자 밝고 액티브한 캠퍼스물로 바뀐 것 같아 아쉬웠어요. 서정적 분위기가 안개처럼 깔려 있다가, 뚝 끊어진 느낌이랄까요.

민서는 승원과 애매한 관계일 때 미뤘던 입대를, 연인이 된 후 반년 뒤에 합니다.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보기엔 다소 가혹한 결말이죠. 입대 전날 승원이 민서에게 청혼하긴 합니다만, 결혼 반지 한 번 껴보고 군대에 못 가져간다며 다시 승원에게 맡기는 모습이... 제대 후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봐야만 이 찜찜함을 떨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작가님이 외전을 쓰고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진심으로...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