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연필

출간일: 2020.06.26

분량: 본편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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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진짜 맞으면서 운동했어요? 이제는 그런 거 없어진 줄 알았는데."

사진 보는 도중 프레임에 걸려 있는 선배나 코치가 보일 때마다 가리키며 '어, 이 새끼도 나 존나 많이 팼는데.' 같은 소리를 하기에 이경은 좀 놀라서 물었다. 선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없어졌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지. 나 초딩 때도 박지성이 막 자기 선배들한테 이유도 없이 맨날 맞았던 거 자서전에 써서 운동부 부모들이 난리 나고 그랬었어. 근데 눈치 보고 고치는 사람은 소수고, 대부분은 그냥 계속하던 대로 하니까. 위에서 한번 싹 잡아 족쳐야 되는 건데."

"얘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이경이 사진 속 조그만 선호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해가 뜨거워서 그런지 인상을 한껏 찡그리고 팔짱을 낀 채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는 차선호. 이경은 언젠가 선호가 얘기했던 것들을 떠올린다.

그냥, 형에 비해 좀 못한 애 취급을 받았단 거나 생긴 거 때문에 얼마나 구박받고 산 줄 아냐며 하소연했던 거. 그런 걸 생각하다 제 옆에 앉아 남의 어깨 위에 고개를 걸쳐 놓고 있는 차선호의 뺨을 살살 쓰다듬었다. 앨범에 박혀 있던 선호의 시선이 느리게 올라와 이경을 향했다.

"예쁨 좀 받고 살지 그랬어요."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닌 건 알지만, 그래도 말한다. 좀 속상하니까. 선호가 한쪽 입술 끝을 비스듬히 올렸다.

"네가 좀 일찍 나타나지 그랬어."

어릴 때와 똑같은 얼굴로 웃으면서 말해 놓고는 한 박자 늦게 좀 머쓱한 듯 뺨을 긁적이며 눈길을 돌려 버린다. 나 보고 오글거리는 말 잘한다며 뭐라고 하더니. 이경의 어깨가 작게 들썩거렸다.

"뭘 웃어."

선호가 검지로 이경의 입술을 툭 쳤고, 그게 또 약속된 신호인 것처럼 다시 입술을 맞댔다. 뭘 했다고 이렇게 좋은가, 차선호가 고등학생 때까지 누워 자던 침대 위에서 혀를 얽으면서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좋을 일인가? 연애가 원래 이랬나?

point 2 줄거리

기: 입대 전 가끔 인사나 나누던 선배 차선호, 하지만 복학 후 수업이 겹치면서 친분이 쌓였고, 얼떨결에 자취방을 빼게 된 윤이경의 새로운 집주인이 되었다. 월 50의 좁은 방에서, 월 40의 쾌적한 오피스텔에 살게 된 이경은 차선호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차선호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참아줬다. 매주 다른 남자와 거실에서 질펀하게 섹스를 해도, 혐오의 시선이나 가식적 태도가 없는 이경에게 선호 역시 호감을 느낀다.

승: 선호는 소꿉친구 배우 강태주를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주는 선호와 냉정하게 선을 긋고, 친구이길 강요했다. 선호는 태주에 대한 마음을 죽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선호와 친해진 이경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호는 매번 상대를 바꾸기가 번거롭다며, 이경에게 섹스 파트너를 제안한다. 이경은 어이없으면서도 한 번의 시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한다. 둘은 술을 마시고 첫 섹스를 한다.

전: 몸에 상성이 좋았던 선호와 이경은, 때때로 서로의 파트너가 되어 준다. 이경은 여전히 세심히 집안일을 챙기고, 선호를 돌봤다. 선호 역시 이경에게 여전히 경제적으로 후한 선배였다. 먼저 마음이 바뀐 건 이경이었다. 이경은 선호의 가정환경과 운동선수 시절 이야기, 특히 태주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알아 갈수록 선호가 좋아졌다. 이경은 태주에게 상처 입은 선호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친절에 굶주린 선호에게 다정한 두 번째 사람, 선호는 흔들린다.

결: 이경은 선호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한편, 태주는 이경과 부쩍 가까워진 선호를 보며 불안해하다, 결국 선호에게 고백한다. 이경은 태주의 등장으로, 자신이 모르는 두 사람만의 세계를 실감하고 역시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선호는 결단의 시간이 찾아왔음을 직감한다. 선호는 이경에게 시간을 달라고 하고, 태주와는 관계를 친구로 정리한다. 선호는 이경에게 찾아가 꽃다발을 건넨다. 선호와 이경은 낭만적 연애를 시작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낭만을 위하여

낭만... '현실에 매이지 않은'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태도나 심리, 영어로는 roman! 그래서, 로맨스 소설은 판타지인가 봐요. 현실에 얽매이지 않아서 말이죠. 현실에서 묶이면 묶일수록 사람들은 낭만과 멀어집니다. 그리하여 이 시대를 '몰낭만적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거예요. 소설 속 선호는 '낭만'을 꿈꾼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경이 아는 한, 선호는 몰낭만적 시대에, 가장 몰낭만적 연애를 하는 사람이었죠.

왜냐면, 선호는 몰낭만적 환경에서 살고 있었거든요. 선호의 삶은 건조했지만, 어찌 보면 평범했습니다. 딱히 선호의 부모님이 선호를 학대한 것도, 방치한 것도 아니고, 썩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어쨌든 선호는 하고 싶었던 축구도 했었죠. 대학 입학 이후에는 재정적 지원도 빵빵하게 받아요. 다만, 선호가 못 받은 것은 '마음'이었고, 그래서 선호는 겪어보지 못한 낭만을 갈구하게 됩니다. 문제는 '낭만'이 뭔지 모른다는 거죠.

저는 언제나, 효율적으로 시간관리하는 밀도 높은 생활을 하고 싶어!라고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 이유는, 한 번도 효율적으로 시간관리를 하는 밀도 높은 생활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늘 정신없이 바쁘고, 정신을 차리며 계절이 바뀌어 있고, 연말에는 허무감에 시달립니다.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바라지만,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어요. 이때는 뫼비우스 띠를 끊어주는, 띠 밖에 도우미가 필요합니다. 저는 없었고, 선호는 있었죠. 바로 이경말입니다.

선호가 태주를 7년간 짝사랑했던 계기는, 어이없게도 '낙지'였습니다. 선호와 태주의 기호는 상관없이 부모님은 큰 형이 좋아하는 낙지를 사와요. 태주는 선호가 곤란하지 않도록 낙지를 맛있고 감사하게 먹고, 부모님의 눈을 피해 살며시 뱉어요. 그건 선호가 경험한 첫 번째 '낭만'이었어요. 그리고, 대학생이 되고서야 두 번째 '낭만'이 찾아옵니다. 시키지 않은 집 안일을 하는 이경의 모습에서요.

이경은 친해진지 얼마 안 된 선배의 도움으로, 곤란 없이 적은 돈에 좋은 집에서 살게 되었으니,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선호는 굳이 요청하지도 할 필요도 없는 일을, 자신을 위해 스스로 나서서 해주는 이경의 모습이 생경했어요. 게다가, 난잡한 자신의 섹스 라이프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방 값을 반으로 깎아줬지만, 이경은 원래의 금액으로 입금해요. 자주 밥을 사주는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에서였죠. 이경이 아무렇지 않게 베푸는 친절이, 선호에게 낭만으로 다가옵니다.

사실, 이경에게 섹파를 제안한 것은 태주 때문이었어요. 배우 태주의 소꿉친구가, 문란한 성생활을 한다는 것이 이슈가 될까 봐 무서웠거든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단순한 룸메이트 이상으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이경과, 좀 더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기도 했죠. 이경 역시 벽 넘어 소리로만 듣던, 그 실체를 경험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있었어요. 그리고 몸정에서 맘정으로 먼저 바뀐 건, 다정한 이경씨였어요.

이경은 할 말을 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상처 주지 않는, 원만하고 사교적인 성격을 소유자예요. 게다가 연애 경험도 몇 번 있었죠. 하지만, 선호는 운동하느라, 생긴 게 사나워서, 아웃팅을 경계해서 등등등 언변이 좋지 못하고, 연애 경험도 없었어요. 당연히 둘의 관계는, 이경이 보듬어 주고, 선호가 기대오는 형태로 발전합니다. 이경은, 아직 태주를 좋아하지만 안 좋아해 보도록 노력하겠다는 선호와 사귀기 시작해요. 투투를 챙기고 싶다는 선호에게 선물을 챙기는 것도, 이경의 일이었죠.

'몰낭만 시대의 낭만적 연애'는 일상물입니다. 중간에 태주가 사실은 선호를 좋아했었다!는 위기가 있긴 하지만, 큰 영향 없이 지나가요. 하지만, 선호와 이경의 일상은 이가 썩을 정도로 달달합니다. 덩치 큰 선호는 점점 대형견수가 되죠. 그래서 저는 '낭만적 연애'라기보다는 '낭만적 일상'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산 없는 순수함으로 매일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것! 정말 낭만을 위하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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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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