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문라이트북스

출간일: 2020.04.06

분량: 본편 1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스탠리, 이제 알겠어?

그녀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넌 나를 좋아하지 않아."

"... 그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좀 더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충동적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노라 하트가 뒷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라이터로 담배를 태우면서 그녀가 씁쓸하게 말했다.

"가끔 우리는 과거의 기억, 감정까지 꾸며내곤 하잖아?"

point 2 줄거리

기: IT업계의 신화, SNS 플랫폼 '와이퍼'의 창업자인 스탠리 제이미슨! 그는 고향으로부터 온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하이스쿨 내내 짝사랑했던 노라의 결혼 소식이었다. 백만장자인 스탠리는 철저한 관리를 통해 번듯한 외모를 가지게 됐지만, 고등학교때는 다리 교정기를 낀 채 두꺼운 안경을 쓰고 컴퓨터 책을 들고 다니는 왕따였다. 특히, 마을 유지의 아들인 척 앤더슨과 그 패거리는 스탠리를 때리고, 가두고, 모욕했으며, 다른 클래스 메이트는 방관했다.

승: 스탠리는 승승장구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향 밸린저 시티로 돌아간다. 하지만 가는 도중 차가 고장 나고, 도착한 견인차에서 첫 번째 동창을 만난다. 하이스쿨 프롬킹, 미식축구부 쿼터백, 그리고 노라의 남친이었던 리처드 베켓이었다. 리처드는 다리 부상을 입어 운동을 그만두고, 마을 정비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밸린저 시티로 돌아온 스탠리는 조금씩 과거 일을 떠올렸고, 동창들은 예상대로 성공한 스탠리에게 굽신거렸다.

전: 한편, 스탠리는 충격적 진실도 연이어 알게 된다. 노라와 결혼하는 사람이 '그' 척 앤더슨이고, 노라는 사실 자신을 미워했으며, 리처드를 좋아하지만 리처드는 다른 사람을 좋아해서 헤어졌다. 그 다른 사람이 스탠리다. 그리고, 스탠리는 사실 노라를 좋아한 게 아니었다. 등등. 스탠리는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면서도, 오해와 편견의 안경을 벗고 본 리처드에게 마음이 쏠리기 시작하고, 술에 취해 리처드를 유혹한다.

결: 섹스 후 스탠리는 리처드와의 관계 설정을 망설인다. 한편, 노라의 결혼식에 간 스탠리는 리처드가 부상당한 사연을 알게 되고, 그 자리에서 신랑인 척을 폭행한다. 이후 뉴욕으로 돌아간 스탠리는 리처드를 잊지 못했고, 이모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자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다. 스탠리는 리처드에게 고백한다. 리처드와 사귀는 것을 주저하지만, 결국 스탠리에게 3일 카운트 다운에 넘어간다. 리처드는 벨린저 시티를 떠났고, 곧 스탠리와 함께 살 예정이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삶이 그대에게 레몬을 준다면,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백포백은 봐주는 게 인지상정! 하지만, 개인적으로 하이틴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너무 오글거려서, 잘 못 보겠더라고요. 그냥, 풋풋하고 예쁘게 사랑하는 거면 좋은데, 저세상급 위대한 고딩들의 러브 스토리는 공감도 안 되고 부끄럽기만 해요. 아직 때묻고 마모되지 않은 순수의 영역, 학교라는 곳이 가지는 로망이 있기 때문일 테지만, 사실 그것도 때묻고 마모되봐야 아는 것 같아요. 학생들끼리는 결코 서로를 순수하다고 느끼지 못할 테니까요.

그런데, 읽고보니 '하이스쿨 랑데부'는 학원물이 아니었습니다. 대도시에서 성공한, 34살의 스탠리가 짝사랑했던 동창의 결혼식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 겪게 되는 이야기니까요. 다만, 회상하는 부분에서 학창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주로 스탠리가 잊었거나, 왜곡했거나, 모르고 있던 사실 위주로 나와요. 그러니까 결국 학교내 일화는 스탠리가 척 무리에게는 순수한 피해자였지만, 그 역시 노라나 리처드에게는 가해자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인 거죠.

스탠리의 학창 시절은 누가 봐도 지옥이었어요. 그래서, 스탠리는 많은 기억들을 잊거나, 자기방어를 위해 변형시켰죠. 그렇게 들어낸 덩어리에 리처드도 있었어요. '나는 노라를 사랑한다.' 스탠리에게 이 불변의 진실은, 어쩌면 유쾌함이라곤 조금도 없는 학교에 스탠리를 묶어 둘 수 있는 유일한 밧줄 같았을 거예요. 하지만, 수많은 불친절 속에 노라가 보인 찰나의 호의를 사랑이라고 착각한 스탠리의 맹신이, 노라와 리처드를 아주 많이 불행하게 만들었어요.

리처드는 빚더미에 앉은,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아버지 때문에 벨린저 시티에 오게 됩니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척 앤더슨의 부친이 돈을 빌려줬거든요. 리처드는 척의 부친이 내주는 학비로 학교를 다닌 거였어요. 리처드는 스탠리를 괴롭히는 척이 혐오스러웠지만, 이미 척과는 '을'일 수밖에 없는 관계였죠. 또, 리처드는 아버지를 닮은 외모, 그리고 폭력성과 충동성 역시 혐오합니다. 리처드는 자신 안에 들끓는 감정들을 미식축구로 발산하려해요.

스탠리는 리처드를 다 가진 인싸로 기억하지만, 사실 스탠리보다 리처드가 훨씬 위태로웠어요. 그런데 그 간당간당한 균형마저 스탠리가 무너트려버립니다. 스탠리를 좋아하게 된 후, 리처드는 척의 괴롭힘을 묵인하는 것도 노라를 좋아하는 스탠리를 지켜보는 것도 괴로웠어요. 결국, 척과 완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척은 빚을 탕감해 주겠다며 리처드를 폭행합니다. 그때 다리가 부러진 리처드는 정비공이 되죠. 또, 노라와의 기만적 연애도 상처뿐인 결말을 맞아요.

노라는 그럼에도 리처드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리처드가 미워서 척과 결혼하지만, 결국 척과 파혼하고 다시 리처드에게 함께 마을을 떠나 살자고 찾아와요. 하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리처드는 스탠리만을 사랑하고 있었죠. 스탠리가 노라에게 느낀 '사랑'이 환상이었다면, 리처드가 스탠리에게 느낀 '사랑'은 고통이었어요. 리처드는 노라를 배신하고, 척에게 굴욕적으로 무릎을 굻고, 동창들에게 타락한 쿼터백으로 각인됐지만, 17년간 스탠리를 잊지 못했어요.

그러다 17년 만에 나타난 스탠리는 리처드를 더 괴롭게 만들죠. 이룰 수 없는 사랑과, 실패한 사랑은 다르니까요. 리처드는 스탠리를 밀어냅니다. 그러다가도, 자신을 유혹하는 스탠리에게 넘어가죠. 리처드는 아버지와 닮은 자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탠리의 부를 강박적으로 거부하고, 그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주저해요. 그건, 스탠리가 노라를 사랑한다고 스스로 세뇌하고, 리처드와의 좋은 기억을 의도적으로 망각한 것과 같은 기저였어요.

소설은 단권답게, 두 사람이 마음 속 장애물을 뛰어넘어 사랑에 골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학원물이 아니기 때문에, 동창들의 이야기는 잘 수습되지 않아요. 두 사람이 서로 이루어지는 순간, 그들 중간에 있던 척이나 노라, 가족들은 모두 생략되죠. 분량을 생각하면 똘똘한 구성이라고 생각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 맞춰가며 성장하는 러브 스토리가 있었다면 더 탄탄했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찌 보면, 두 사람이 한건 '오류 수정'과 '진실 확인'뿐이니까요. 물론, IF 외전처럼, 리처드가 고등학교 때 스탠리에게 고백하고 집안 사정을 솔직히 말했다면, 두 사람은 더 빨리 이루어졌겠죠. 하지만, 언제든 기억의 왜곡을 걷어 낼 수 있다면, 그 아래 애정과 관심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을 거예요. 두 사람은 아주 어려운 한 발짝 나아갔지만, 근본적인 불안이 해소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짜 연애'는 처음인 두 사람의, 서툴면서 열혈한 동거기가 보고 싶습니다.

나름 깔끔한 마무리긴 한데, 그래도 질척거리고 싶은 마음을 지울 수가 없네요. 3권 분량에 1권이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아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시크노블

출간일: 2019.01.11

분량: 본편 3권 + 외전 1권

​​

 

point 1 책갈피

"이주."

그리 딱딱하지 않은 효운의 목소리에 이주의 손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러나 효운의 입에서 이어지는 물음은 날을 숨기지 않은 칼과 같았다.

"네가 조금 미쳐 있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굳게 다물렸던 이주의 입이 조금 벌어지더니 곧장 대답했다.

"예."

무서우리만치 서슴없고 선선한 대답이었다. 왜 아니겠냐는, 약간의 웃음기도 섞인 목소리였다. 이리 미쳐 있는데 스스로 모를 리가 있는가. 자신의 광증을 서슴없이 인정하는 이주의 목소리에 웃음이 터져 버린 효운은 잡혀 있던 팔 한쪽을 들어 그의 곧은 턱뼈를 길게 쓸어 올렸다.

"오해받는 건 익숙한 일이지만 이런 오해는 또 처음이군. 내가 너를 미워할 일은 없다고 분명 말했건만."

확실히 안심시켜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내 의지로 너를 떠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 확실하게 말했는데 참 어지간히도 말을 듣지 않는 아이였다. 턱 끝에서 떨어진 효운의 손이 이주의 목을 훑어 내리곤 가슴 한가운데에 닿았다.

"몇 번을 말해야 여기에 닿는 거지?"

숨을 멈추고 있던 이주의 목 너머로 꿀꺽 소리가 났다.

"혹 네가 정말 미쳤다 해도, 앞으로 더욱 미쳐 갈 거라고 해도."

"...... 효운 님."

"다신 날지 못하게 내 날개를 자른다고 해도 내가 너를 미워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주가 고개를 들었다. 불안함과 조급함, 그리고 죄스러움으로 물들어 있던 눈동자의 테두리 속으로 밤 하늘 별이 우수수 쏟아져 들어왔다.

"너를 물어 와 키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이미 그리되어 있었어."

point 2 줄거리

기: 푸른 깃털의 흑매를 신수로 모시는 교국, 어느 날 신수가 태자를 물고 사라져 버렸다. 신수 효운은, 무인 영손과 산속을 떠돌며 태자 이주를 키웠다. 황손 중 등에 매흔을 가진 자만이 황제가 될 수 있는 신수에 나라, 이주는 가장 완벽한 매흔을 가지고 태어난 4번째 태자였다. 외숙부 좌상을 등에 업은 둘째 태자 이견은, 황태자 이현에게 누명을 씌워 폐위시키고, 황제를 중독시켜 병들게 했다. 그가 이주를 쫓고 있었던 것이다.

승: 신수는 황가와 이어져 있었고, 황족이 죽거나 다치면 신수도 신력을 잃고 병들었다. 이견이 횡포를 부린 22년간, 효운의 상태도 나날이 악화되어 갔다. 그러다 황제의 죽음이 다가오자, 이견은 노골적으로 이를 드러내, 황위 계승권도 없는 황자까지 죽인다. 신수의 신력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그가 보호하는 이주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원래 황제의 무인이었던 영손은 이주와 효운을 지키기 위해, 폭죽으로 위치를 노출시켜 우상과 환국의 신수 미송을 부른다.

전: 신력은 바닥나고 생명이 위태로웠지만 효운은 이주를, 이주는 효운을 서로 놓지 않았다. 이견의 추적으로부터 이주를 보호하고 효운을 살리기 위해, 우상과 미송은 둘을 떼어 놓아야 했다. 결국, 신수의 무기를 써서 효운을 해치고, 정신을 잃은 효운을 이주에게 빼앗은 미송은 효운을 데리고 선운산으로 사라진다. 한편, 황제의 붕어와 동시에, 우상과 첫째 태자 이현은 이견과 죄상을 낱낱이 밝혀 퇴출시킨다. 이견은 망국 환국의 잔당을 모아 교국을 공격한다.

결: 이들로 인해 교국은 크고 작은 내전에 시달렸고, 이주는 그 선봉에 서서 승리를 거두며 백성의 신임을 받았다. 그날 이후 4년, 이주는 드디어 황제 즉위식을 올린다. 그때, 이견은 또 교국을 공격하고, 이주는 검은 새의 무리를 이끌고 나타난 효운과 재회한다. 효운은 갓난 이주를 데리고 궁을 떠나야 했던 이유를 알려준다. 어느덧 완연한 성인이 된 이주에게, 효운은 쓰~윽~한다. 이견 무리를 발본색원한 뒤, 이주는 이현에게 양위하고 효원과 산속으로 들어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비빔밥 소설(이것저것 섞였다 + 맛있다.)

연휴 마지막 날이네요. 흑... 그래도 대체 공휴일에 감사드립니다.(꾸벅) 책은 '또' 여름휴가의 동반자였죠. 불안한 것은, '또' 추석의 동반자도 될 거 같다는... 취미가 여행인데, 취미를 몇 년간 못하면 그것도 취미라고 할 수 없겠죠. 여권은 갱신하자마자 '보관 중'이고, 곧 쓰겠지 싶어 환전 안한 외폐들은 파우치 안에 쿰쿰한 냄새를 풍기고 있네요. 3배 정도 증가한 독서량과 2차 대유행 전후로 시작한 블로그 정도가, 그나마 위로라면 위로예요. ㅠ.ㅜ

저의 마지막 동반자, 주효록입니다. 주효록은 출판 당시부터 눈여겨봤지만 손이 가진 않았어요. 바로, 리뷰 때문에요. 주효록의 호불호 리뷰는 대게 필력과 설정이 좋거나 지루하다고 나뉘더라고요. 제 당시 느낌은, 배경과 문체에 엄청 힘이 들어가서 잘 쓴 것 같긴 한데, 역키잡이라는 자극적 소재와 호감형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몰입감이 낮은 작품! 여유로울 때 읽으면 풍성하지만, 지쳤을 때 읽으면 더 지치게 하는 작품! 이었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주효록... (쌍따봉) 물론, 쎅턴이 약해 5점을 주진 못했지만, 색이 분명한 작품이었습니다. 비슷한 클리셰 중에 제일 재밌는 작품이 아니라, 특정 키워드로 분류하긴 애매하지만 매력적인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왜 리뷰들이 그렇게 쓰였는지도 충분히 공감하겠더라고요. 틀을 살짝 비껴간 작품은, 기대한 바가 명확한 독자에게는 혹평의 대상이 되고,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유레카가 되니까요. 호불호는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초반 - 잔잔물: 긴 세월을 산 신수도 아이를 키우는 건 처음이었죠. 다행히 영손이 있었지만, 그래도 철렁하는 일들이 연속인 서툰 양육자였어요. 초반은 이런 에피소드들로 채워져있습니다. 가령, 효운의 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이주를 보며 어쩔 줄 모르는 동안, 이주가 앞으로 넘어져 이마에 멍이 들고, 효운은 머리를 짧게 자릅니다. 또, 효운은 따뜻한 방을 이주와 영손에게 내주고 자신은 냉방을 썼는데, 이를 몰랐던 이주가 시모방만 불 빼는 악덕 며느리마냥 영손을 세모나게 쳐다보기도 하죠. 산속에 사는 순박한 남자 셋의, 잔잔한 일상물이라고 보시면 될 듯해요.

2) 중반- 애절물&시리어스물: 평화로운 일상은 황제가 실권하고, 이견이 본격적 사냥에 나서면서 박살 납니다. 이견은 황제가 되려는 행보를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첫째 이현은 이견의 모함에 억울하게 쫓겨나고, 셋째 이운은 이견이 무서워 도망갈 준비를 하죠. 이견은 이제 성군의 매흔을 가졌다는, 실종된 동생 이주를 사냥하러 나섭니다. 이를 위해, 경쟁자조차 되지 못한 막내에게 독이 든 탕약을 내리죠. 막내는 섧게 울며 독을 마셔요.

여기서부터 일반적인 궁중 암투물과 좀 다른데요, 보통은 이견 vs 반이견으로 나뉘잖아요. 하지만, 이주와 효운은 '황제'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상과 이현은 '황제'가 될 이주를 이견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효운이 이견을 숨겼다고 믿었죠. 하지만, 20년을 약속했던 효운은 22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어요. 효운은 미친개 잡는 사냥개로 이주를 쓰는 게 싫었고, 이주 역시 관심사라곤 오로지 효운 하나였으니까요. 둘은, 그들로부터도 도망칩니다.

궁에 돌아간 뒤에도 이주는 마찬가지였어요. 반면, 옹립할 태자도 있고 황제도 서거했으니, 우상과 이현은 굴욕의 시간을 견디며 모은 증거들로 이견을 단죄합니다. 무소 불이의 권력에 취해 오만방자였던 이견은 손쉽게 쓸려 나가죠. 이 과정이 빈약하긴 하지만, 대안도 없고 반역죄로 역공 당할 위험도 큰 상황! 그때 최선은 숨죽여 '준비하는 것' 뿐이라는 점에서 설득력 있었어요. 물론, 이때도 이주는 노~관심으로 관여하지 않습니다.

3) 후반-달달물: 즉위식 날, 효운과 이주는 재회합니다. 또, 여기서부터 일반적인 역키잡과 다릅니다. 역키잡이란, 음흉한 어린아이가 '아저씨는 내 거야!' 혹은 다정한 아저씨가 '내가 어떻게 너와!!!'라며 갈등하게 되고, 곧 피폐와 집착, 광기에 휩싸이게 되죠. 하지만, 효운과 이주의 관계는 늘~ 온유합니다. 이주가 효운을 너무 꽉 껴안아, 허리에 멍이 하나 들긴 해요. 이주는 효운에게 집착하지만, 광기는 밖에다 부리고, 이조차 효운이 무마시키기 일쑤죠. 결정적인 것은! 효운이 먼저 이주를 좋아했었다는 것!!! 효운은 이주에게 '이제 그럴 마음이 사라진 줄 알았다.'며 은근한 유혹을 해요. 매 아닌 여운 줄 알았다는!

4) 외전-오~예!물: 황제위에 오른 지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이주는 양위의 의사를 밝힙니다. 사실, 이견의 모략만 아니었다면 황제가 되었을 첫째 이현은, 이주만큼 매흔이 뚜렷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황제가 되고 싶었고 자질도 충분했죠. 아쉽긴 했지만, 이주를 황제로 올리는 일에 사심을 부리지도 않았어요. 즉위 후 3년 뒤, 이주는 효운과 사랑을 확인한 그 산속 너와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해요. 드디어, 섹턴다운 섹턴이 등장하지만... 솔직히 많이 약합니다. 섹턴이 점잖다! 그래도, 없으면 서운할 뻔했다! 정도였어요.

전체적으로 '멋진 여자 캐릭터'들이 많은 것도 좋았어요. 황제가 된 첫째 이현은 여자예요. 이주의 어머니인 모영도 왈패였지만, 현명하고 사랑받는 황후였죠. 신수가 없기에 황족들이 신력을 가진 나라, 누국의 공주답게, 이주의 미래를 예지하고 효운에게 부탁합니다. '제 아들을 살려 주세요!'가 아니라, '신수님의 권태에 이주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유언을 남기면서요. 의리파 미송도 빠질 수 없죠. 환국이 망한 뒤, 미송은 선운산으로 가지 않고 이견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교국에 남습니다. 미송은 생존한 환국의 황족 서단을 걱정했으니까요. 물론 실수도 하지만, 미송은 서단의 유해를 수습해 줘요.

주효록에 익사이팅은 없습니다. 자극적인 사건들은 '묘사'가 아니라 옛이야기로 전달되거나 짧은 서사로 요약되죠. 공과 수가 편하게 살지도 않습니다. 달달하고 잔잔하기에는, 많이 다치고, 도망치고, 울고, 속앓이해요. 참... 어떻다고 줄여 말하긴 힘든데, 생각해 보면 그게 주효록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래서, 주효록의 장르는 주효록인 것으로...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더클북컴퍼니

출간일: 2018.07.05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제일 새로운 건 뭐였어?"

"글쎄요...... 새와 뱀은 워낙 달라서 이곳에 온 뒤로 새로운 게 한둘이 아니었지만, 처음에 오자마자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것은 숲이었습니다."

"숲"

"예, 이렇게 넓은 숲은 이곳에 와서 처음 봤거든요. 제가 살던 곳에도 숲이나 산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도록 광활한 숲은 본 적이 없어요. 그게 꼭,"

혼잣말처럼 읊조리는 뒷말은 그의 입속에서 끊겼다.

천창 위로 기울어진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나무를 거쳐 숲, 그리고 그 바깥의 어느 먼 곳을 본다. 사화현이 불현듯 중얼거린 것은 그 눈동자가 물빛이었던 탓이었다.

"바다 같았어?"

야휼이 사화현을 돌아보았다. 뜻밖인 듯 웃음이 사라진 얼굴이다. 사화현은 기묘하게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는지 아닌지 미묘하게 턱을 기울인 그의 낯에 이내 웃음이 다시 돌아왔다.

point 2 줄거리

기: 600년간 이어진 용족과 붕족의 전쟁은, 두 왕의 평화협정으로 끝났다. 그리고, 두 나라는 오랜 반목 관계를 청산하고 공존과 공영을 위해, 양국의 군사 협력 훈련을 합의 후 붕족의 땅 남단에 첫 훈련소를 개설한다. 그리하여 붕족의 남방신장이 다스리는 광활한 숲속, 붕족과 용족의 젊은 장교들이 냉정한 사화현 교관 아래 훈련 받게 되었다. 남방신장의 최측근 가신이자 죽마고우인 사화현은, 전쟁에서 6개의 날개 중 한 장이 찟긴 큰 부상을 입었다.

승: 한편, 술 게임 벌칙으로 '담당교관에게 한달간 음란 편지 쓰기'가 걸린 훈련병은, 담당 교관인 사화현에게 매일 연애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사화현의 사택으로 심부름을 간 훈련생 창틈에 끼여 있던 그의 마지막 연애편지를 우연히 줍는다. 사화현은 그 편지를 들고 있는 야휼을 보고 대답하려 하지만, 말을 맺기 전에 나타난 훈련생들로 인해, 그 편지가 벌칙의 일부였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야휼은 사화현의 마음을 눈치채고, 사화현은 야휼이 알았다는 걸 안다.

: 야휼은 언제나 자신을 쫓는 사화현의 눈빛을 느끼고 있었고, 그날 그 의미를 알게 됐다. 두 사람의 성격은 과묵하고 무덤덤했고, 훈련생과 교관으로서만 서로의 일상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한편, 남방신장 고도가 자리를 비운 사이 눌린 흉신이 풀리면서, 고도는 제도에서 급하게 복귀한다. 용족을 끔찍이 혐오한 고도의 등장으로, 훈련소 내 두 종족 간의 대형 사건사고가 터지기 시작하고, 사화현이 마음을 준 야휼은 고도에게 경계와 미움을 동시에 받는다.

: 그리고 용족의 북방신장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야휼의 정체가 알려지면서, 깊어지기 시작한 야휼과 사화현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그러던 중 사화현은 야휼의 마지막 탈피에 휘말리면서 함께 고치에 갇히게 되고, 7번째 용으로 변태한 야휼의 격렬한 사랑을 받는다. 용이 된 야휼은 사화현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 프러포즈한다. 첫 군사 협력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사화현은 제대 후 용족의 북방신장의 땅, 야휼이 가꾼 숲에서 야휼의 반려로서 산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평화

평화가 뭘까요? 총포가 쏟아지고 지뢰가 널리지 않은 땅에 태어났거나, 굶거나 맞거나 얼어 죽을 위기에 처해 있지 않다면, 평화로운 걸까요? 그럼, 지금 평화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평화병'에 걸려 태만해졌기 때문일까요? 원래, 동서고금 막론하고 살만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큽니다. 살만하지 않은 사람들은 목소리를 낼 힘도, 기회도, 여유마저 없으니까요. 극한에 몰리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을 향해 비명을 지르죠. 그래서, 어쩌면 세상은 살만한 것처럼 보이고, 그 정도가 '일반적'이 되어, 마치 그런 것처럼 보이도록 가장하며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재해와 전쟁은 명확합니다. 모두에게 살만하지 않은 세상이죠. 그래서, 모두가 평화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상실한 것들을 기억하고, 엇물린 것들을 풀어내며, 무너진 것들을 재건해요. '평화'에 대해 고민하고, 그렇기에 평화를 느끼기도 할 거예요. 밉상스러운 말 한마디, 예상에 못 미치는 결과, 막연한 불안감으로, 깨지지 않는 평화 말입니다.

용족과 붕족은 무려 600년간 전쟁을 치러왔습니다. 몰살된 마을이나 전쟁고아에 대한 이야기는 흔했죠. 재능 있는 자들은 모두 전장으로 모이고, 세상에 모든 승리와 성취는 그곳에서만 이루어져요. 학교도, 연구실도, 아틀리에도, 경기장도 아니라요. 전쟁터는 집 앞에 있었고, 누구나 그곳에서 친구나 가족을 잃을 수 있었어요. 600년이라는 시간은, 그 모든 현실이 무감해질 만큼의 긴 시간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평화가 찾아옵니다.

용족과 붕족 모두, 한 명의 왕과 사방을 지키는 네 명의 신장들을 주축으로 서열이 매겨집니다. 소수의 용들이 다수의 뱀들을, 날개가 많은 새들이 적은 새들을 지배합니다. 용>반 용>이무기>큰 뱀>작은 뱀, 날개8장>6장>4장>2장 정도가 되겠네요. 사회현은 8장의 날개를 가진 남방신장의 최측근 가신이자 소꿉친구로, 6장의 날개를 가진 강한 붕족이었어요. 그러다 날개 한장이 전장 중 뜯겨 나갑니다. 사경을 헤매다 간신히 정신이 들었을 때, 전쟁은 끝나있었죠.

전쟁고아이자 상흔 군인인 사회현은, 종전 후 제대하려합니다. 하지만, 남방신장이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용족과 붕족이 최초로 시도하는 군사 협력 훈련의 담당 교관이 되어, 양 종족의 장교들을 가르치게 되죠. 언제나 무표정인, 유명한 전쟁 영웅... 사화현은 훈련생들에게 여러모로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현 역시 낯선 평화가 어려웠습니다.

'숲바다'는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엉뚱한 해프닝에 휘말려, 절대 고백 할 일 없는 수가 공에게 마음을 들키게 됩니다. 사화현은 한 달 내내 받았던 러브레터를 들고 집 앞에 서 있는 야휼을 보자, 얼떨결에 대답의 서두를 내뱉습니다. 하지만, 야휼은 떨어진 편지를 주웠을 뿐이고, 진짜 편지를 쓴 이는 곧 발각됩니다. 심지어 그가 편지를 쓴 이유마저요. 사화현의 고백은 온전하지 않았고, 야휼 역시 되묻지 않은 채,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지나가요.

하지만, 둘 사이는 미묘하게 바뀝니다. 교관과 훈련생, 감정 표현이 서툰 두 사람은, 대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산책을 하고, 사소한 관심사를 주고받고, 작은 약속들을 해요. 사화현은 야휼이 지나는 시간에 맞춰 산책을 하고, 야휼은 붕족의 무기를 사화현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죠. 사화현은 휴가를 맞아 집으로 돌아가는 야휼을 마중하고, 야휼은 사화현의 곁을 맴돌고, 틈이 날 때마다 노래를 불러달라고 해요. 두 사람은 훈련이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죠.

남방신장이 다스리는 광활한 숲에서 사화현은 숲지기를 꿈꾸고, 야휼은 고향의 푸른 바다를 떠올려요. '숲바다'의 풍경 속 두 사람은 '새로운' 평화를 경험합니다. '숲바다'의 갈등은, 오로지! 단 한 사람으로부터 발생합니다. 바로, 남방신장 고도 말입니다. 8장의 날개를 가진, 최연소 신장, 잘 생기고 카리스마 있는 의리남이죠. 하지만, 감정적이고, 입이 험하며, 일중독자예요. 그리고... 용족을 혐오하는 '뱀 포비아'입니다.

고도는 마치 끝나지 않은 전쟁 같아요. 고작 두 왕이 만나서 서명했다고 진정한 평화는 오는 게 아니라는 듯 말이에요. 용족 훈련병들에게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폭력적으로 행동하며, 간신히 만들어 놓은 유대감을 송두리째 뽑아 버리죠. 사화현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사화현의 부상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도, 심지어 사화현을 죽을뻔하게 만든 용족에 대한 복수심도 버리지 못합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고도의 등장으로, 잔잔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매사 무감한 인생을 살았던 야휼에게 격정적 분노와 독점욕, 힘에 대한 절실함이 생겨나죠. 얼음 같던 사화현이 화를 내고, 실망 하고, 욕구하게 돼요. 죽고 사는 전장에서, 딱딱해 굳어 마비되었던 감정들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감각'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평화의 시기가 되어서야 바랄 수 있는 소소하지만 위대한 미래를 함께 꿈꾸기로 해요. 고도의 목적과는 다르지만, 고도가 있었기에 얻을 수 있는 '평화'였던 셈이에요.

평화는 전쟁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과 평화'... '신과 바늘'같이 한 쌍 일 때 의미가 있는 존재 말이에요. 어쩌면, 나에게 평화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내가 진정으로 치열한 전투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지치고, 힘들고, 만성 두통에 시달리는 이유는, '치열의 대가'라기보다는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기다리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후회 없이 싸운 전사는 평화를 얻고, 미련과 후회가 많은 전사는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건지도요. 마치, 사화형과 고도처럼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모드

출간일: 2018.03.05

분량: 본편 4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폐하께서 용왕이 아니고, 제가 용왕비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아니, 만났더라고 하더라도 친구가 되었을 겁니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귀엽지 않은 사내에게 어찌 연심을 품겠습니까. 전 이렇게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시얀은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있는 자신이 우스웠다. 반편이 왕족으로 태어나 온갖 구박을 받고 자라면서 이렇게 태어나지 않았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그런데도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랑한다고 고백을 받고, 또 그런 그를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면서 끌어안을 수 있어서 눈물이 날 만큼 기쁘니 말이다.

point 2 줄거리

기: 치엔리운 왕세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기녀인 어머니와 불길한 검은 머리를 타고난 반편이 왕족 세시얀은, 로말쉰에서 차별을 받으며 궁핍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붉은 사막 너머에 국가 랑쿤이 로말쉰의 요충지 유스투안을 공격하고 점령한다. 랑쿤은 유스투안의 반환 조건으로 국혼을 요구하고, 그 대상으로 세시얀을 지목한다. 로말쉰은 치욕스러운 조건이지만 거부하지 못하고, 세시얀은 자예린 한 명만을 데리고 이국의 왕비로 팔려간다.

승: 세시얀은 무리한 일정을 강행하며 제대로 된 설명도 없는 호위대장에게 폭발하고, 랑쿤에 도착해서야 그가 왕인 슈카이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용의 나라 랑쿤은, 호수에 깃든 용이 선택한 용왕비가 없으면 비가 내리지 않는다. 세시얀과 슈카이란이 혼례를 올리자, 3년간 비가 내리지 않은 랑쿤에 단비가 내린다. 로말쉰에서 냉대 받던 세시얀은 랑쿤에서는 너무도 귀한 사람이었고, 만인의 호의 속에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전: 슈카이란과 세시얀은 랑쿤의 평화를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좋아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결실로 부부다운 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슈카이란은 세시얀에게 숨기는 것이 많았고, 세시얀은 그 점이 늘 불만이었다. 한편, 로말쉰은 남자로서 타국의 왕비가 된 세시얀이 수치라며 자살을 종용하는 사신을 보내고, 슈카이란은 상처 입은 세시얀을 위로하고 보호한다. 로말쉰은 자살을 거부한 세시얀을 죽이기 위해 계략을 세우고, 두 사람은 위기에 빠진다.

결: 미래를 보는 보석안을 가진 세시얀은 슈카이란이 절규하는 모습을 보고 알려주지만, 슈카이란은 또 설명 없이 세시얀의 조언을 무시한 채 궁을 비우고, 그 틈을 노린 암살자를 피해 달아나던 세시얀은 오른손을 잃는다. 한편, 세시얀이 죽었다고 생각한 슈카이란은 용의 본신으로 폭주하고, 그런 슈카이란을 세시얀은 따뜻하게 안아준다. 슈카이란은 세시얀을 위험에 몰아넣은 로말쉰과 전쟁을 하고, 승전보를 울린다. 그리고, 용신은 세시얀의 오른손을 돌려준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어른들을 위한 동화

불면증을 앓은지도 제법 시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소싯적 머리만 대면 기절하는 능력으로 많이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숙면 도우미들은 많지만, 제가 애용하는 것은 수면유도제도 라벤더 티도 아닌 바로, 이 책 '꿈꾸는 용이 잠든 나라'입니다. 지루하다고 이해하시면 안 됩니다. 좋은 꿈을 가져다줄 것 같은, 포근한 이야기거든요! 누워 읽다 보면 소록소록 잠에 빠져들어요.

'꿈꾸는 용이 잠든 나라'는 꿈과 희망을 보여주는 예쁜 동화도 아니고, 현실의 이면을 풍자한 신랄한 글도 아닙니다. 비정한 환경에, 현실적 이득을 계기로, 눈치 보고 노력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예요. 다만, 색골 오골계가 사과 덕후이고, 용왕비가 용왕에게 원펀치를 날려요. 태양신에게 받은 보석안으로 미래를 보고, 손짓으로 만든 태양신의 화살을 쏘며, 절대 무적 신체를 가지고 있는 용왕이 나오죠. 그래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표현이 제일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시얀의 아버지는 비극적 죽음을 맞고, 어머니에게 한 아버지의 언약을 지켜지지 못해요. 천한 신분의 어머니는 왕족의 아이인 세시얀을 낳습니다. 하지만, 세시얀은 불길한 검은 머리와, 신성한 보석안을 가지고 태어나죠. 혼란과 갈등은 있었지만, 세시얀은 왕족으로 인정받고 로말쉰 왕자에게 입양됩니다. 그리고, 그 전날 증인 없는 사고로 어머니는 죽어요. 그 후, 떼쟁이 공주에 의해 세시얀의 출생이 폭로되면서, 반편이 왕족으로 조롱당하며 삽니다.

세시얀은 로말쉰 왕국의 계륵이었고, 그래서 왕족이었지만 가난하고, 똑똑하고 아름다웠지만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는 허락되지 않았죠. 심지어, 세시얀이 국익을 위해 타국에 팔려 국혼을 맺을 때도, 로말쉰 왕은 세시얀을 비난하고 상처 줘요. 랑쿤의 왕비가 된 이후에도, 스스로 자진하라며 여러 번 단도를 보냅니다.

세시얀은 스스로 태생을 선택한 적이 없고, 미움받을 행동을 저지른 적도 없지만, 불길하고 수치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어요. 그리고, 자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슈카이란도, 세시얀이란 사람이 아니라 비를 내리는 용왕비가 필요했던 거였죠. 슈카이란이 세시얀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것은, 사과농장의 풍작을 바라고, 랑쿤의 평강과 안녕이 간절했기 때문이었어요.

그 자체로 귀한 존재,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나 일편단심 연심을 받고, 노력하면 끝내 인정받고 살 수 있는 세계! 아이들에겐 동화 속 현실, 어른들에겐 현실 속 동화죠. 어쩌면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은 어른들의 마음은, 그 유통기간이 결코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치열한 행복이 삭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시얀은 랑쿤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호의적인 이유가 비 때문인 것을 알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계기는 이득이라도, 세시얀이 얼마나 현명한고 귀여운지 알게 된 사람들은, 어느 순간 용왕비가 아닌 세시얀을 좋아해요.

슈카이란은 용왕비가 랑쿤을 버릴까봐, 많은 것들을 숨깁니다. 알을 낳아야 한다는 것도, 용신의 가호를 받은 괴물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말이에요. 또,

슈카이란은 연애 경험이 많았고, 세시얀은 외롭고 차별받으며 자랐으니, 굉장히 쉽게 꼬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시얀이 바란 건 크리스탈 성과 황금 드레스가 아니었고, 신뢰와 진실이었어요. 사람은 쉽지 않고, 사랑하기는 더 쉽지 않아요. 세시얀과 슈카이란은, 서로 맞춰가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시얀은 아플 정도로 강력하게 느껴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경험해요.

세시얀과 슈카이란은 완벽한 용왕비와 용왕이 아니었고, 그들 주변의 사람들 역시 내기를 하고, 질투하고, 실수하며,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따뜻한 볕처럼 머릿속에서 그려지며, 나른한 기분이 들어요. 분명 이 세계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친구의 연애담처럼 저 세상의 이야기도 아니죠. 물론, 왕자님이 엑스칼리버를 뽑고 마왕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하는, 화려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색골 오골계는 겁이 많습니다.

그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면, 계단을 밟아 수면에 세계로 내려가는 것 같아요. 그 끝에는 랑쿤의 일상이 있을 것 같은...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꿈을 꾼 적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꿈꾸게 된다면, 용왕과 용왕비의 동침 내기판이었으면 좋겠네요. 저는 결론을 알고 있고, 판돈은 크니, 그곳에라도 부자가 되지 않을까요? 어른의 해석법이라고 구차한 변명을 첨언해 봅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고렘팩토리

출간일: 2020.07.03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열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경기를 운용할 때는 한 가지 자세를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

인파이팅만 하기에는 경기가 너무 길고, 아웃파이팅만 하기에는 링이 너무 넓어. 상대에 따라서 또 상황에 따라서, 치고 들어갈 때가 있는가 하면 빠져야 할 때도 있어.

상대가 강한 펀치를 날리면 쓰러질 수도 있어. 괜찮아. 녹다운된다고 해서 진 게 아니야.

물론 일어나는 건 힘들지. 링 위에서 다시 일어난다는 건 앞으로의 라운드, 거기에 맞을 펀치를 다 감수하겠다는 뜻이니까. 무겁지.

그래도 일어날 때는 일어나는 것만 생각해야 해. 링 밖에 네 팬들, 상금, 앞으로 이어질 라운드...... 다른 건 다 일어나고 생각해. 일어날 건지 아닐 건지, 그것만 생각하는 거야.

point 2 줄거리

기: 정열의 여자친구 이유진은 졸업식 날, 정열에게 정열의 소꿉친구이자 슈퍼스타 최수호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정열의 첫 연애는 장열하게 끝나고, 정열은 쿨한 척 수호에게 유진을 부탁한다. 하지만, 수호는 그 이유진을 까고 정열에게 숨겨왔던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수호의 뒤 공작(?)을 깨달은 정열은 수호에게 펀치를 날린다. 그 후, 수호는 정열에게 폭주하듯 구애하고, 정열은 가족과 다름없는 수호를 매몰차게 밀어내지 못한다.

승: 수호는 홍희백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어머니 윤서화가 제작한 대형작을, 성인으로서 참여하는 첫 작품으로 선택한다. 수호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수호 친부에게 버림받은 후 어렵게 재기에 성공한 윤서화는 좋은 어머니가 되어 주지 못했다. 한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정열의 형, 정진이 경기 중 사고로 장애를 입고, 가족들은 정열이 복싱하는 것을 반대한다. 결국, 전도 유망한 복서였던 정열은, 재수학원을 등록한다.

: 그러던 어느 날 황춘식 감독이, 주인공이 복서인 퀴어 영화 <록키 키드> 시나리오를 들고 정열과 수호 앞에 나타난다. 황춘식 감독은 홍희백 감독에게 아웃팅 후 절교 당했고, 그 후 계속 영화를 만들지 못하다가, 자신의 자전적 스토리를 다룬 <록키 키드>로 복귀하려 한 것이었다. 때마침 수호를 좋아하기 시작한 정열과, 일편단심 직진남 수호의 연애 상담사가 되어 준다. 삽질과 밀당을 반복한 두 사람은, 결국 결혼을 전제로 한 예비(?) 연인이 된다.

결: 정열은 복싱을 포기하지 못하고, 가출 해 천관장의 체육관에서 훈련을 시작한다. 그리고, 메달을 따고 수호를 책임지겠다고 공언한다. 수호는 홍희백 감독의 영화가 아닌 황춘식 감독의 영화를 찍기로 결정하고, 어머니 윤서화에게 제작을 요청한다. 그리고 두 모자는 묵은 대화를 하고, 윤서화는 수호의 부탁을 수락한다. 정열과 수호는 서로의 가족과 상견례(?)를 마치고, 정열은 복서로서, 수호는 배우로서 치열한 삶을 함께 살아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boys be ambitious!

성장 소설을 읽다 보면, 심장이 간질간질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절대적 신뢰와 애정을 받으며, 시련을 극복하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자의 뒷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해 줍니다. 다만, 쏟아지는 명언들과 소나기처럼 내리붓는 애정의 말들은... 조금 쑥스럽습니다. 광대를 치솟게 하는 뿌듯함과 손발이 오그라드는 민망함... 그 어느 즈음에 있는 듯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치한 응원이 필요한 날이 있습니다. 노골적인 동기부여가 간절한 순간이 있습니다. 무기력에 한없이 가라앉는 시간들 말이에요. 이럴 때 불끈하는 소년들의 성장담은, 극약처방으로 꾀나 효험이 있습니다.

<록키>를 대 놓고 오마주 삼은 <록키 키드>! 이 소설은 바닥에서 일어난 인물들의 감동 스토리를 쓰겠노라 강한 의지를 보입니다. 물론, 성장하는 주인공은 정열과 수호지만, 성공신화의 대상은 비단 이 두 사람만이 아닙니다. 황춘식, 윤서화, 정진 같은 꾀 굴직한 조연들도 포진해 있거든요.

윤서화는 유부남이었지만, 그 사실을 속인 수호의 친부를 믿고, 수호를 가집니다. 하지만, 결국 남은 것은 제기 불능한 여배우로서의 삶과 아들 수호였죠. 미숙한 엄마였던 윤서화는 수호의 친부가 받았어야 하는 원망을 어린 수호에게 내뱉어요. 그래서, 수호는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사랑받을 수 없다고 느낍니다. 수호는 애정에 늘 목말랐고, 그런 수호에게 정열은 오아시스였죠. 수호는 정열에게 정말 미움받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고백하지 못한 채 친구의 자리를 지킵니다.

하지만, 정열이 여자친구를 사귀고 졸업이 가까워오면서, 수호의 마음은 급해집니다. 그 절박함에 수호는 오래 참아 왔던 고삐를 풀고, 무소의 뿔처럼 정열을 향해 돌진합니다. 정열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라기에, 좋아해 보려 노력은 하지만, 결국은 더 뜨거워진 애정을 가지고 정열에게 돌아가죠. 물론, 중간에 열이 들뜬 정열의 고백을 듣고 착각한 정진에 의해, 잠시 나쁜 남자(?)가 되기도 하지만... 웃픈 에피소드로 끝납니다.

황춘식 감독의 <록키 키드>는, 작게 보면 홍희백 감독에 대한 황춘식 감독의 대답이었고, 크게 보면 수호와 정열에게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 준 '오답노트'였습니다. 황춘식 감독은 수호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지만, 실상 수호와 황춘식 감독에게는 큰 차이가 있었어요. 황춘식 감독이 가지지 못한 '정열'이 수호에게는 있었고, 황춘식 감독은 수호와 정열의 해피엔딩을 감히 꿈꿀 수도 없었죠.

물론, 황춘식 감독은 제기에 성공합니다. 홍희백 감독에게 인정받는 영화를 만들죠.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기도 합니다. 크리스천인 홍희백 감독이 황춘식의 고백을 받아들이는 세계는 없을지라도, 그것이 황춘식 감독이 당당히 살아갈 세계를 부정한 것 아닐 테니 말이에요. 황춘식 감독은 홍희백 감독 앞에서 바로 서기 위해, 스스로를 숨기지 않기로 합니다.

스포츠물은 역경을 이겨낸 승리의 드라마를 연출하곤 합니다. 그리고, '스윗하게 녹다운' 역시 사각 링 안에서 벌어지는 한 판 승부를 통해, 링 밖에 세상에 문제를 해결하는, 극적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정열이 재수학원 낙제를 받고 돌아서는 장면이 유독 기억이 남았습니다.

정열은 형이자 영웅이었던 정진의 추락, 뇌출혈, 재활, 장애, 그리고 은퇴를 지켜봅니다. 정열은 사고로 선수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위험보다, 복서 동생을 바라보는 형의 마음을 걱정해요. 물론, 눈물로 결사반대를 외치는 어머니도 마음에 걸렸지만요. 결국, 전도 유망한 복싱 선수는 생전 해 본 적 없는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는 '일반' 학생의 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 받은 성적표는 '낙제'였죠. 복싱의 '녹다운'말이에요.

물론, 녹다운은 경기의 끝이 아니고, 일어나서 다시 경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죠.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내가 '선택'한 경기에 한 합니다. 일어 날 의지가 없는 선수에게 녹다운은 패배의 다른 말일지도 모릅니다. 재수학원은 정열이 선택한 경기장이 아니었고, 정열은 그곳에서 어떠한 투지도 느끼지 못해요. 배우인 수호를 위해 좋아하는 마음을 접을 수 없는 것처럼, 가족들을 위해 복싱을 포기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수호와 복싱은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쌈빡한 진실을 발견해요.

노력하면 성공한다. 적게 먹고 운동을 하면 살이 빠진다. 관대하고 여유로운 사람의 주변엔 사람이 모인다. 안다구욧!!!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 정말 의지만 있으면 되는 걸까요? 정열도 낙제로 들어간 재수학원에서 수능 대박을 이룬, 전설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두근거리지도, 뿌듯하지도 않을 거예요.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의지보다 중요한 건 야망일지도 모릅니다. 수없이 녹다운 되고 일어나고 싶은 원동력 말이에요.

소년은 아니어도 야망이 필요합니다. 심장박동이 불안이 아닌 설렘으로 가열하게 운동을 해봤으면 좋겠네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