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문라이트북스

출간일: 2020.04.06

분량: 본편 1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스탠리, 이제 알겠어?

그녀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넌 나를 좋아하지 않아."

"... 그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좀 더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충동적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노라 하트가 뒷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라이터로 담배를 태우면서 그녀가 씁쓸하게 말했다.

"가끔 우리는 과거의 기억, 감정까지 꾸며내곤 하잖아?"

point 2 줄거리

기: IT업계의 신화, SNS 플랫폼 '와이퍼'의 창업자인 스탠리 제이미슨! 그는 고향으로부터 온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하이스쿨 내내 짝사랑했던 노라의 결혼 소식이었다. 백만장자인 스탠리는 철저한 관리를 통해 번듯한 외모를 가지게 됐지만, 고등학교때는 다리 교정기를 낀 채 두꺼운 안경을 쓰고 컴퓨터 책을 들고 다니는 왕따였다. 특히, 마을 유지의 아들인 척 앤더슨과 그 패거리는 스탠리를 때리고, 가두고, 모욕했으며, 다른 클래스 메이트는 방관했다.

승: 스탠리는 승승장구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향 밸린저 시티로 돌아간다. 하지만 가는 도중 차가 고장 나고, 도착한 견인차에서 첫 번째 동창을 만난다. 하이스쿨 프롬킹, 미식축구부 쿼터백, 그리고 노라의 남친이었던 리처드 베켓이었다. 리처드는 다리 부상을 입어 운동을 그만두고, 마을 정비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밸린저 시티로 돌아온 스탠리는 조금씩 과거 일을 떠올렸고, 동창들은 예상대로 성공한 스탠리에게 굽신거렸다.

전: 한편, 스탠리는 충격적 진실도 연이어 알게 된다. 노라와 결혼하는 사람이 '그' 척 앤더슨이고, 노라는 사실 자신을 미워했으며, 리처드를 좋아하지만 리처드는 다른 사람을 좋아해서 헤어졌다. 그 다른 사람이 스탠리다. 그리고, 스탠리는 사실 노라를 좋아한 게 아니었다. 등등. 스탠리는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면서도, 오해와 편견의 안경을 벗고 본 리처드에게 마음이 쏠리기 시작하고, 술에 취해 리처드를 유혹한다.

결: 섹스 후 스탠리는 리처드와의 관계 설정을 망설인다. 한편, 노라의 결혼식에 간 스탠리는 리처드가 부상당한 사연을 알게 되고, 그 자리에서 신랑인 척을 폭행한다. 이후 뉴욕으로 돌아간 스탠리는 리처드를 잊지 못했고, 이모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자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다. 스탠리는 리처드에게 고백한다. 리처드와 사귀는 것을 주저하지만, 결국 스탠리에게 3일 카운트 다운에 넘어간다. 리처드는 벨린저 시티를 떠났고, 곧 스탠리와 함께 살 예정이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삶이 그대에게 레몬을 준다면,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백포백은 봐주는 게 인지상정! 하지만, 개인적으로 하이틴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너무 오글거려서, 잘 못 보겠더라고요. 그냥, 풋풋하고 예쁘게 사랑하는 거면 좋은데, 저세상급 위대한 고딩들의 러브 스토리는 공감도 안 되고 부끄럽기만 해요. 아직 때묻고 마모되지 않은 순수의 영역, 학교라는 곳이 가지는 로망이 있기 때문일 테지만, 사실 그것도 때묻고 마모되봐야 아는 것 같아요. 학생들끼리는 결코 서로를 순수하다고 느끼지 못할 테니까요.

그런데, 읽고보니 '하이스쿨 랑데부'는 학원물이 아니었습니다. 대도시에서 성공한, 34살의 스탠리가 짝사랑했던 동창의 결혼식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 겪게 되는 이야기니까요. 다만, 회상하는 부분에서 학창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주로 스탠리가 잊었거나, 왜곡했거나, 모르고 있던 사실 위주로 나와요. 그러니까 결국 학교내 일화는 스탠리가 척 무리에게는 순수한 피해자였지만, 그 역시 노라나 리처드에게는 가해자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인 거죠.

스탠리의 학창 시절은 누가 봐도 지옥이었어요. 그래서, 스탠리는 많은 기억들을 잊거나, 자기방어를 위해 변형시켰죠. 그렇게 들어낸 덩어리에 리처드도 있었어요. '나는 노라를 사랑한다.' 스탠리에게 이 불변의 진실은, 어쩌면 유쾌함이라곤 조금도 없는 학교에 스탠리를 묶어 둘 수 있는 유일한 밧줄 같았을 거예요. 하지만, 수많은 불친절 속에 노라가 보인 찰나의 호의를 사랑이라고 착각한 스탠리의 맹신이, 노라와 리처드를 아주 많이 불행하게 만들었어요.

리처드는 빚더미에 앉은,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아버지 때문에 벨린저 시티에 오게 됩니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척 앤더슨의 부친이 돈을 빌려줬거든요. 리처드는 척의 부친이 내주는 학비로 학교를 다닌 거였어요. 리처드는 스탠리를 괴롭히는 척이 혐오스러웠지만, 이미 척과는 '을'일 수밖에 없는 관계였죠. 또, 리처드는 아버지를 닮은 외모, 그리고 폭력성과 충동성 역시 혐오합니다. 리처드는 자신 안에 들끓는 감정들을 미식축구로 발산하려해요.

스탠리는 리처드를 다 가진 인싸로 기억하지만, 사실 스탠리보다 리처드가 훨씬 위태로웠어요. 그런데 그 간당간당한 균형마저 스탠리가 무너트려버립니다. 스탠리를 좋아하게 된 후, 리처드는 척의 괴롭힘을 묵인하는 것도 노라를 좋아하는 스탠리를 지켜보는 것도 괴로웠어요. 결국, 척과 완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척은 빚을 탕감해 주겠다며 리처드를 폭행합니다. 그때 다리가 부러진 리처드는 정비공이 되죠. 또, 노라와의 기만적 연애도 상처뿐인 결말을 맞아요.

노라는 그럼에도 리처드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리처드가 미워서 척과 결혼하지만, 결국 척과 파혼하고 다시 리처드에게 함께 마을을 떠나 살자고 찾아와요. 하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리처드는 스탠리만을 사랑하고 있었죠. 스탠리가 노라에게 느낀 '사랑'이 환상이었다면, 리처드가 스탠리에게 느낀 '사랑'은 고통이었어요. 리처드는 노라를 배신하고, 척에게 굴욕적으로 무릎을 굻고, 동창들에게 타락한 쿼터백으로 각인됐지만, 17년간 스탠리를 잊지 못했어요.

그러다 17년 만에 나타난 스탠리는 리처드를 더 괴롭게 만들죠. 이룰 수 없는 사랑과, 실패한 사랑은 다르니까요. 리처드는 스탠리를 밀어냅니다. 그러다가도, 자신을 유혹하는 스탠리에게 넘어가죠. 리처드는 아버지와 닮은 자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탠리의 부를 강박적으로 거부하고, 그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주저해요. 그건, 스탠리가 노라를 사랑한다고 스스로 세뇌하고, 리처드와의 좋은 기억을 의도적으로 망각한 것과 같은 기저였어요.

소설은 단권답게, 두 사람이 마음 속 장애물을 뛰어넘어 사랑에 골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학원물이 아니기 때문에, 동창들의 이야기는 잘 수습되지 않아요. 두 사람이 서로 이루어지는 순간, 그들 중간에 있던 척이나 노라, 가족들은 모두 생략되죠. 분량을 생각하면 똘똘한 구성이라고 생각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 맞춰가며 성장하는 러브 스토리가 있었다면 더 탄탄했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찌 보면, 두 사람이 한건 '오류 수정'과 '진실 확인'뿐이니까요. 물론, IF 외전처럼, 리처드가 고등학교 때 스탠리에게 고백하고 집안 사정을 솔직히 말했다면, 두 사람은 더 빨리 이루어졌겠죠. 하지만, 언제든 기억의 왜곡을 걷어 낼 수 있다면, 그 아래 애정과 관심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을 거예요. 두 사람은 아주 어려운 한 발짝 나아갔지만, 근본적인 불안이 해소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짜 연애'는 처음인 두 사람의, 서툴면서 열혈한 동거기가 보고 싶습니다.

나름 깔끔한 마무리긴 한데, 그래도 질척거리고 싶은 마음을 지울 수가 없네요. 3권 분량에 1권이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아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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