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미열

출간일: 2020.11.06

분량: 본편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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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나를 떠나지 마!"

아케론이 루키우스를 올려다보았다. 일그러진 얼굴이 눈물로 물들어 있었다.

"제발...... 제발......"

마부가 당황하여 말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서서히 멈추는 마차. 사내의 발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루키우스의 창백한 입술이 달싹거렸다.

"아케론."

사내는 흐느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죽을 테니까."

피로 물든 몸.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는 흙투성이 위에 무릎을 꿇었다. 마차의 틀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무너져 내리는 혼이 그것에 있었다. 루키우스가 얼어붙을 그 순간에 아케론의 입술 밖으로 헐떡거리는 숨이 흘렀다.

"죽을 거야."

충혈된 눈.

흐르는 눈물.

"죽을 테니까......"

고통에 쩍쩍 갈라진 목소리를 사내는 힘겹게 토해 냈다.

"내가 죽을 테니까."

고꾸라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척추가 도드라지게 몸을 웅크린 사내가 이마를 땅바닥에 깊이 박고 흐느꼈다. 그는 절규했다.

"...... 가지 마."

루키우스의 푸르스름한 입술이 달싹이는 순간, 마차를 움켜쥔 손이 흘러내렸다.

"책임져......"

거구의 몸이 애처롭게 떨렸다. 가늘게 떨리는 어깨가 늘어져 있었다. 사내는 더 이상 말을 내뱉지 못했다. 처참한 모습을 루키우스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숨을 멈추었다.

point 2 줄거리

기: 검투사 아케론, 집정관 마르쿠스의 노예, 이스카리아의 왕이라 불리는 그는 섬에 팔려 온 3년간 단 한 번의 패배도 없는 절대 승자였다. 검투장의 주인이기도 한 마르쿠스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아케론을 결코 팔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마르쿠스는 절벽 위 로마식 저택의 주인에게 아케론을 팔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아케론은 검투장을 떠나 저택의 주인, 루키우스의 노예가 된다. 그가 아케론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 매일 밤 자신을 안으라는 것!

승: 노예가 된 지 7년, 하지만 아케론은 로마의 개선장군 게르마니쿠스였다. 아케론은 금발의 가녀린 소년 루키우스를 안으면서도, 그를 창부마냥 무시했다. 반면, 루키우스는 아케론에게 시중들 노예를 붙여주고, 별채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해 준다. 한편, 아케론은 나날이 변해가는 마음을, 루키우스의 몸에 미혹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저택을 찾은 원로원 의원인 달마티카가 루키우스를 겁간하려 하고, 분노한 아케론은 그를 죽인다.

전: 아케론은 루키우스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편, 루키우스는 아케론을 살리고자 재판장에서 신분을 밝힌다. 그는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사촌이자 아케론의 원수, 포스투무스의 친동생이었다. 풀려난 아케론은 루키우스의 출신에도 불구하고 구애하지만, 루키우스는 아케론의 사랑을 냉정하게 쳐낸다. 아케론은 그런 루키우스를 술에 취해 잔인하게 강간하고, 후회하며 자해한다. 루키우스는 아케론을 용서하지만, 사랑은 인정하지 않았다.

결: 7년의 시간이 흐른 뒤 저택에 불이 나고, 루키우스는 갑자기 저택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여름, 루키우스가 돌연 나타나 아케론의 신분을 해방시키고 그를 로마로 보낸다. 작가 우티스가 쓴 로마사 '네체시스타스'가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었고, 그 책엔 누명을 쓴 게르마니쿠스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었다. 포스투무스를 경계한 황제의 도움이 더해져, 게르마니쿠스는 복권된다. 1년 뒤, 게르마니쿠스에게 아이깁투스로부터 온 루키우스의 편지가 도착한다.

point 3 전지 충의 Review: 숙명

'아울루스 셈프로니우스 달마티카' '우티스 루키우스 아르카디우스 풀케르'..... 주문 아닙니다. 사람 이름입니다. '게르마니쿠스 막시무스', 10글자 이름이 짧게 느껴지는 신비! 서양풍, 특히나 유서 깊은 가문 귀족님들이 많이 등장하는 소설은 눈이 뱅뱅돌아요. 그래서 손이 잘 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제 서재에는 동양풍이 서양풍에 비해 3배 정도가 많아요. 그럼에도, 서양풍을 완전히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역시 좋은 작품이 너무 많기 때문일 거예요.

'네체시스타'는 게르마니쿠스의 '노예 14년'입니다. 포스투무스에 의해 몰락해서 루키우스에 의해 부활 할 때까지, 노예 검투사 아케론이 잃어버린 자유와 숙명을 찾는 이야기죠. "로마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다."라는 작중 루키우스의 말처럼, 자유가 있어야만 숙명을 증명할 수 있을 테니, 결국 '존재하는 인간'과 '소유되는 노예'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자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 시민들의 유희를 위해 잔인하게 죽임 당하는 노예의 서사로 시작하지만, 사실 '네체시스타'는 고요한 절벽 위 저택을 배경으로 한 잔잔하고 애절한 서사를 메인으로 합니다. 스펙타클하다기보다는 서정적이예요.

게르만족의 정벌자, 그래서 게르마니쿠스가 된 (구)개선장군, (현)노예 아케론! 유례없는 승리와 수려한 외모로 로마인들의 영웅이 된 게르마니쿠스! 그의 개선식은 성대했습니다. 모두가 광란에 도가니였죠. 그리고 이 개선식은 아르카디우스 풀케르가의 두 사람의 인생을 바꿉니다.

한 사람은 당연히, 루키우스에요. 약한 몸을 가진 루키우스는 명문 풀케르의 흠이었고, 어머니는 루키우스를 절벽에 던져 죽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때마침 개선식을 열리고, 어머니는 루키우스를 놓고 개선식을 가요. 그 개선식이 루키우스를 살린 셈이죠. 다른 이는 포스투무스예요. 그는 동생을 살린 개선식을 보고, 개선식에 대한 선망과 집착을 갖게 돼요. 그리고, 이 꿈에 방해가 되는 상사 게르마니쿠스를 고발하기에 이릅니다.

"더 찾아봐라. 신이 너를 세상에 내린 이유가 한 가지는 있겠지." 연회에서 만난 로마의 영웅 게르마니쿠스는 어린 소년 루키우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루키우스는 자신의 숙명이 게르마니쿠스에게 닿아 있음을 확신하죠. 신이 세상에 나를 내린 이유, 그것이 진짜 숙명이라면 말이에요. 반면, 게르마니쿠스의 숙명은 '생존'이었어요.

과거 게르마니쿠스는 승리에 기쁨에 도취되어 보지 못한, 전쟁의 참상을 직시하게 됩니다. 게르마니쿠스는 더 이상 영토를 넓히기 위한, 무용한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쟁을 하지 않으면 개선식도 없죠. 게르마니쿠스의 부관인 포스투무스는 겁쟁이가 되어버린 상관에 크게 실망합니다. 왜냐면, 포스투무스의 숙명이 바로 '개선식'이었으니까요. 결국 포스투무스는 게르마니쿠스를 이민족과 밀회하여 로마를 배신한 반역자로 몰고, 게르마니쿠스는 소중한 벗 군나르를 남기고 홀로 도망칩니다. 그리고, 반드시 살아남으라는 그의 유언이, 살아남은 게르마니쿠스의 숙명이 되죠.

그런데 문제는, 게르마니쿠스와 포스투무스의 숙명이 명료한 데 비해 루키우스의 숙명이 모호하는 거예요. 루키우스는 자신의 영웅, 구원자, 사랑하는 게르마니쿠스를 위해 남은 수명을 쓰려 합니다. 그러면서도, 검투장에서 환호 받는 게르마니쿠스를 보고, 가지고 싶은 욕망도 생기죠. 결국, 루키우스는 게르마니쿠스를 옆에 두고 아끼며, '네체시스타'를 통해 그의 명예를 찾아주려고 합니다. 좋은 음식, 편안한 잠자리, 안온한 생활, 그리고 자유를 주려 해요.

하지만, 루키우스의 계획이 어그러집니다. 창부같이 구는 자신을 혐오해 마지않던 게르마니쿠스가 점점 변하면서요. 그가 절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노예 아케론을 주인으로서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대쪽 같은 장군 게르마니쿠스는 사랑에 있어서도 우회로를 몰랐어요. 사랑을 자각한 게르마니쿠스는 폭풍처럼 루키우스를 몰아칩니다. 그의 형과 사촌, 심지어 신분도 막을 순 없었죠. 루키우스가 애타게 부르던 '장군'이 자신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그'라는 것만이 중요했어요.

루키우스의 몸에는 종양이 자라고 있었고, 로도스 섬의 밀교조차도 치료에 도움이 되지 못했죠. 간신히 위험한 진통제를 먹으며 '네체시스타'에 몰두 하던 루키우스에게, 아케론은 사랑하지만 사랑하면 안되는 사람이었어요. 게다가, 게르마니쿠스의 복권은 포스투무스의 몰락을 의미하죠. 루키우스는 게르마니쿠스가 마땅히 해야 할 복수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루카우스는 결국 이 사랑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네체시스타'는 전형적인 비극의 서사를 가지고 있어요. 병약한 주인공과 원수의 혈연, 생명을 태워 숙명을 이룬 헌신적 사랑... 하지만, 놀랍게도 '네체시스타'는 해피엔딩입니다. 포스투무스는 죽거나 노예가 되지 않고, 루키우스도 아이깁투스에서 수술을 받아요. 흐름상 튀는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급건강해진 주인공과 쉽게 벗은 복수의 고리,,, 그럼에도 왜일까요? 어색해도 해피엔딩이라 좋아요. 정말, 죽~~도록 마음 고생한 둘의 행복한 모습이 흐뭇해요.

이번 리뷰를 쓰면서, 정말 이름... 후덜덜하네요. 웬만해선 4글자를 넘지 않는 동양의 작명 전통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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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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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처: 레진코믹스

분량: 본편 70화

point1: 한 컷

 

point2: 줄거리

 

기: 불의 나라는 불을 숭배하는 7국의 맹주였던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대륙의 패권을 쥔다. 그 힘의 근원은 불의 악마와 불의 악마가 알려준 화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의 악마가 납치되고, 불의 나라 주단왕은 악마를 찾는 공문를 붙인다. 그리고, 한 왕조의 후손이지만 천한 돗자리 장수로 살고 있던 유하는 들판에서 그 불의 악마를 발견한다. 유하는 불의 악마를 궁에 데려다준 대가로 입궁을 요청하고, 허드레 일꾼으로 궁에서 일하게 된다.

 

승: 불의 나라는 과거 7나라 중 최약소국으로 차별받으며 비굴하게 살고 있었다. 타국에 굽신거리는 것이 일상인 왕족들은, 민생은 버려두고 자신들의 향락만 찾았다. 막내였던 주단은 핍박받는 백성을 구하고자 홀로 고군분투했고, 그러던 중 사랑하는 불의 악마를 형제들이 해하려 들자, 그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되어 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화약을 이용해 최강국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살아남은 5국 위에 군림하게 된다. 하지만, 그 후 주단은 화약 개발에 집착하며 불의 악마를 홀대하기 시작한다.

 

전: 1000년 전 , 불의 산에서 홀로 살던 불의 악마는 인간 세계를 가고 싶어, 불을 품을 수 있는 자를 불렀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응답한 자가 척이었다. 불의 악마를 얻은 척은 6명의 인재를 모아 혼란한 세상을 평정하고, 척의 한나라를 비롯해 대륙엔 7개의 나라가 건국한다. 그러다 척이 죽고 불의 악마는 또다시 불을 품을 자를 부르지만, 1000년이 지나서야 주단이 나타났다. 불의 악마와 주단은 서로 사랑에 빠지고, 악마는 주단과 불의 산으로 함께 돌아가길 원했지만, 주단의 점점 변해갔다.

 

결: 주단은 천재 화약 개발자 지율과 함께 더 강한 화약을 만들어, 계속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결국 주변국들은 주단에게 반기를 드는 지하 모임을 만든다. 중간에 지율의 고발로 작전이 실패해 우나라 왕자 무기가 목숨을 잃지만, 한나라의 왕족인 유하와 척의 유지가 보태지면서 결국 주단은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모든 대륙의 왕이 된 유하는 주단의 시신을 악마에게 주고, 약속한 대로 악마를 불의 산으로 데려다준다.

 

point3 전지 충의 review: 홀로 타는 불은 없다.

 

비교적 비슷한 시기에 신유리님의 세편의 작품이, 각각 다른 플랫폼에 완결 났습니다. 봄툰에서 '수라의 연인', 리디북스에서 '후안무치', 레진코믹스에서 '불이 부르는 소리에'가 말이죠. 모두 동양풍 BL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후안무치'는 진양님의 소설을 웹툰화한 개그물인 반면, '수라의 연인'과 '불이 부르는 소리에'는 시리어스물입니다. 강렬한 색채로 인간의 잔인성을 묘사한 피폐물이기도 하죠. 그 중 원픽은 단연 '불이 부르는 소리에'입니다.

 

'불이 부르는 소리에'에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불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거였어요. 활활 타오르는 불의 산, 그곳에서 사는 불의 악마는 인간 세상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세상으로 옮겨 줄 이를 애타게 부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거나, 자신의 욕망을 찾았거나, 일생에 한 번 가슴속에 불꽃을 태울 사람을 말이에요. 그때, 정의로운 돗자리 장수 척은 무가의 장군 무장운을 만나 어지러운 세상을 바꿀 꿈을 꾸고 있었죠. 척은 그 불꽃으로 인재를 모으고, 불의 악마의 부름에 응답 할 수도 있게 되요.

 

불의 악마는 척에게 지혜를 빌려줍니다. 뜻을 함께한 6명과, 척의 한나라... 불을 숭배하는 대륙의 7개의 나라는 이렇게 탄생한 거죠. 불의 악마는 아름다웠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기꺼이 알려 줍니다. 많은 이들이 불의 악마를 사랑했고, 척 역시 불의 악마에게 깊이 빠집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사람들은 척을 시기하며 악마를 빼앗으려 들고, 다른 쪽에선 불의 악마를 왕을 꼬신 요물이라고 비난해요. 불의 악마는 돌연 바뀌는 사람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고 깊이 상처 입습니다.

 

불의 악마는 자신을 원하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 모두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곧 사랑이 하고 싶어졌죠. 사랑하는 사람과 불의 산으로 돌아갈 꿈을 꾸게 됩니다. 불의 악마를 세상으로 옮겨준 불이 '욕망'이었다면, 불의 산으로 돌아가게 해줄 불은 '사랑'이길 바란 거죠. 하지만, 현명하고 의로운 왕, 척이 죽자 불의 악마는 곤궁엔 처해요. 불의 악마를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누구의 가슴도 불타지 않았거든요. 불의 악마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1000년간 철창 안에 방치돼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는 불꽃이 한 사람의 가슴속에서 타오릅니다. 최약국, 불의 나라의 막내 왕자 주단이었어요. 7개의 나라는 건국 신념 따위는 모두 망각하고, 부패와 일그러진 욕망만이 가득한 혼돈이 되었죠. 한나라는 힘으로 약소국을 핍박하고, 그 약소국들은 더 약소국을 유린했어요. 최약국인 불의 나라 백성들의 삶은 당연히 가장 처참했죠. 주단은 그들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주단은 자신을 부르는 악마에 소리에 이끌립니다.

 

불의 악마와 주단은 서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척과 불의 악마 역시 '사랑'했지만, 그때 불의 악마는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죠. 불이 악마를 불타게 해줄 사람은, 작품에 3명 등장합니다. 그들은 모두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불의 악마를 사랑하게 됐지만, 결국 악마가 '진짜' 사랑했던 사람은 주단뿐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긴 기다림, 정의롭고 약한 왕자, 불의 악마는 주단에게 화약에 대해 알려 줍니다.

 

화약을 이용하면서 주단은 삽시간에 대륙의 절대 강자가 됩니다. 불의 나라 백성들은, 괄시받는 존재에서 괄시하는 위치에 오른 것을 기뻐하며, 주단과 불의 악마를 칭송했어요. 화약으로 죽어간 사람이나, 초토화된 한나라 땅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 서러운 삶을 살았을 그들에게는 타고 남은 잔열처럼, 잔잔히 깔리 분노가 있었으니까요. 반면, 주단은 초조했습니다. 그래서, 주변국이 감히 따라하지 못할, 더 강하고 오래 타는 화약을 개발하려고 골몰하죠.

 

주단은 불의 악마를 밀실에 가두고 더 좋은 화약을 만들 지혜를 강요합니다. 인간성을 상실한 지율을 이용해 살상력이 높은 화약을 개발하죠. 사랑을 갈구하는 악마를 누르고, 통제하고, 함부로 대하면서, 나를 이렇게 대하지 말라는 악마의 눈물 어린 호소를 듣지 않아요. 화약에 대한 주단의 집착은, 그를 불안과 광기밖에 남지 않은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의 가슴에 불꽃은 꺼져가고 있었어요. 악마는 살기 위해, 새로운 불꽃으로 갈아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새로운 불꽃 유하가 나타나죠. 유하는 숨겨진 척의 유지를 찾기 위해 궁으로 들어갑니다. 더불어 하찮은 돗자리 장수에게 불씨를 옮겨 준, 불의 악마를 사랑하게 돼요. 불의 악마는 주단에게 당하면서도, 주단을 사랑하는 마음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죠. 그리고, 유하가 찾은 척의 유지에는, 자신이 죽고난뒤 영겁의 시간을 홀로 살아가야 하는 악마에 대한 염려가 가득 담겨 있었어요. 유하는 주단에게서 악마를 구하기로 합니다.

 

 

작품 속 모두가 자신의 '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불의 악마를 불의 산으로 데리고 가 줄 그릇은, 오로지 세 사람뿐이었죠. 그럼, 다른 사람들의 불은 왜 악마에게 선택받지 못한 걸까요? 왜 척이나 주단, 유하처럼 전쟁의 신, 승리의 증표, 제왕의 증거를 가지지 못한 걸까요? 그건 아마도, 그것이 세상을 비추는 불이 아니라, 자신만을 태우는 불이기 때문일 거예요. 모두 스스로 죽음으로 가거나, 타인을 죽음으로 몰기 위해 불타고 있었죠. 때론 알면서도, 때론 모르기 때문에...

 

불의 악마가 '악마'로 불리는 설정도 흥미로워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인간'들은 복잡하고, 잔인하고, 남 탓도 잘합니다. 화약 개발에 재능이 있는 지율은, 과거 왕족들의 장난감으로 학대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자학을 반복해요. 그럼에도 그들이 아닌, 단 한번 자신을 모른척했던 악마를 증오하고, 많은 무고한 이들을 태워 죽이죠. 무기도, 심지어 불의 나라 궁인들도, 상황과 사정이 바뀌면, 거침없이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얼굴을 바꿔요. 오로지 악마만이 변함없이 선의를 베풀며, 계속 한결같이 사랑만을 바랍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는 뿔을 가진 악마와, 사람을 죽이는 뿔이 없는 인간인 셈이죠.

 

불은 인력이 있습니다. 붉은색이 퍼지는 모습이 꽃 같기도 하고,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습이 춤사위 같기도 하고, 타오르다 허공에서 소멸하는 부티는 신기루 같기도 합니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에 열기도 잊고 가까이, 가까이, 다가가게 되죠. 사람 안의 불도 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연정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굳건한 의지의 발현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요. 하지만, 선을 넘어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불은 돌연 광기가 되어 뜨거운 열기로 덮쳐 올지 모릅니다. 재가 될 때까지 모든 걸 태워야, 비로소 꺼지는 그 속성대로 말이죠.

 

사람과 어울려 살며 사랑하고 싶었던 악마가 끝내 깨달은 것은, 불은 불의 산에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불은 홀로 타지 않습니다. 많은 것들을 태우고, 멀리멀리 옮겨붙습니다. 재가 되지 않고, 불을 품을 수 있는 강한 사람조차 광기에 취하게 하는... 불이란 그런 거니까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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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너굴스토리

출간일: 2019.08.01

분량: 본편 1권 + 외전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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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주명운이 내미는 술잔을 받으며 남청인은 행복하게 웃었다. 해맑은 얼굴로 칵테일을 마시던 남청인은 전 애인과 눈이 마주쳤다. 의외로 얼마 전 바람을 피웠으면서 되려 엉뚱하게 화내던 전 애인의 경악에 찬 얼굴은 남청인에게 큰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다. 후련하리라 생각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남청인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랑받는다는 감각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주명운과 주고받는 질량이 남청인을 채워 다른 감정은 들어올 자리가 부족했다. 남청인은 행복했다.

"난 형을 만나서 정말 좋아."

주명운도 남청인의 뺨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웃었다.

point 2 줄거리

기: 남청인, 27세, 수려한 외모를 가진 유능한 직장인이자 게이바 헤로스 정의 단골! 청인은 많은 찌질이들에게 새 삶을 열어 줬지만, 헌신적인 연애 패턴과 넓은 오지랖으로 처참하게 차이기 일쑤다. 청인의 전 연인들은, 올챙이 적 생각하지 못하고 청인에게 고마워하긴커녕 청인을 무시한다. 하지만, 청인은 그들을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웃으며 받아준다.

승: 그러던 어느 날 하이패션을 구사하는, 패션 테러리스트 주명운이 바 헤로스 정에 나타난다. 헤로스 정 게이들은 그런 주명운을 비웃지만, 제 버릇 남 못 준 청인은 또 주명운을 변신시켜 준다. 때 빼고 광낸 주명운은 그야말로 역작이었다. 그 후 친해진 청인과 명운은 함께 술을 하시고, 명운은 헤로스에 첫사랑을 만나러 온 거라고 말한다. 청인은 첫사랑에 대해 말하는 명운이 너무나 부드럽고 달콤해서, 명운이 사랑하는 그 사람이 부러워졌다.

전: 결국 과음까지 한 청인은 명운에게 부축받으며 호텔로 간다. 그리고, 선물도 하나 받게 되는데... 그것은 남사스러운 여성 란제리였다. 청인은 당황하지만, 명운은 돌연 저급한 말을 내뱉으며 청인을 침대 위로 몰아붙인다. 그리고, 청인이 자신이 찾던 바로 그 첫사랑이라고 고백한다. 과거 명운은 후계자 자리를 두고 이복동생과 칼부림을 하고, 등이 찔리는 부상을 입는다. 그리고, 비는 내리는 길거리에 쓰러진 명운에게 말을 건 사람이 있었으니, 남청인이었다.

결: 남청인은 누가 봐도 수상한 명운을 집으로 데리고 와 치료해 준다. 이후, 아버지와 이복동생의 장례를 마친 명운은 자신을 구해준 파란 우산의 남자를 찾는다. 그리고, 남청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면 알수록, 남청인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어느덧 명운에게 청인은 설렘으로 스며들었고, 삭막한 명운의 인생에 유일한 사랑이 되었다. 명운은 청인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를 가질 계획을 세운다. 물론, 청인의 전 남자친구들에 대한 복수도 잊지 않는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호인 아닌 호구의 임자!

남청인은 호인이 아니라 호구였다. 남들 좋은 일은 잔뜩 해 주고 정작 자신은 손해를 보기 일쑤였다. 그런데 연애를 포기 못 해 짧은 간격으로 여럿을 사귀니 좋은 사람은 떨어져 나가고 갈수록 평가는 박해졌다. 뒤에서는 남청인을 조금만 잘해 주면 무료로 꾸며 주는 부티크 취급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문제는 남청인이 제가 차일 때까지 거기에 질질 끌려다닌다는 점이었다. 애정 결핍 기미까지 있었다. (......) 즉 남청인의 애정 결핍은 그 본래의 성격과 갈수록 나빠지는 주변 환경의 굴레였다.

주명운의 남청인에 대한 평가... 지나치게 냉혹한 것 같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좋은 사람에게 좋음 삶, 나쁜 사람에게 나쁜 삶이 배정되면 좋겠지만, 아주 많은 경우 그 반대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요. '요정 대모의 봄날은 오는가'에서 10번 약속을 어긴 청인의 전 남친은, 한 번 약속을 어긴 청인에게 대노하며 이별을 통보합니다. 본인이 어긴 10번의 약속을 떠올리지 못하는가? 그때 명운은 이런 말을 합니다. 그렇게 역지사지할 수 있었다면, 애당초 10번이나 약속을 어기지도 않았을 거라고...

오해 없이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대화가 통하는 상대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사태에 직면하면, 참~~~ 난감합니다. 물론,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저도 매일 받던 배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정당한 대우를 못 받는 것 같은 불쾌감이 들곤 합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그것이 누군가의 선의였음을 쉽게 잊게 해요. 그래서 관계는 빛바래지 않도록 계속 갈고닦아야 한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청인이 전 남자친구들에게 받는 대우가 너무 어이없고 화나긴 하지만, 현실감이 없진 않아요. 우유 없이 밤고구마를 먹는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지죠. 청인이 " 자기가 바람피워서 헤어지는 주제에 염치도 없기는! 나 아니었음 바람은 고사하고 동정사 할 찌질이가 은혜도 모르고 무슨 주제넘은 소리야?"라고 제대로 대거리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청인은 부당한 것들에 익숙해져 있었고, 익숙한 오류란 스스로 벗어나기가 참 힘들어요.

그리하여 요정 대모님의 봄엔 음험한 악인이 필요합니다! 더티톡크와 변태적 호기심이 가득한 두목님 말입니다. 가족들에게조차 칼 맞을 걱정을 해야 하는, 검은 세계의 주인! 그래서 주명운은 냉정한 시선으로 청인을 볼 수 있었죠. 청인의 오지랖, 외로움, 그리고 조건 없는 선의 말이에요. 청인은 있는 그대로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전 남친들은 청인이 준 호의에 취해, 청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보내 못하고 있었던 거죠. 명운은 청인을 가져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청인은 명운의 생각에 한치 엇나감 없이 움직였습니다. 피 흘리는 거구의 남자를 기꺼이 도왔던 청인은, 게이바에 창의적(?) 추리닝을 입고 등장한 명운을 당연히 돕습니다. 비웃지도 않고, 가장 잘 어울리는 옷과 헤어스타일, 렌즈를 맞춰주죠. 그리고 청인의 주변인들도 명운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청인을 습관처럼 조롱하고, 청인이 변신시켜 준 명운에게 추파를 던지고, 청인과 명운이 그림 같은 연인이 되자 질투심에 청인을 짓밟으려 해요.

그리고, 명운은 그 계획대로 연인의 복수를 대신해 주는 정의의 사도가 됩니다. 여장조차 명운의 취향이라면 맞춰보겠다고 비장하게 말하는 연인에게, 마땅한 대우였죠. 그래서, 청인에게 약을 먹이고 강간을 계획한 쓰레기 전 남친과 그의 친구들은, 명운에 의해 합당한 대가를 받습니다. 비로서, '요정 대모의 봄날은 오는가'에 사이다가 터지는 순간입니다.

사실, '요정 대모의 봄날은 오는가'는 산 줄도 몰랐던 책입니다. 분량과 가격을 봤을 때,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포인트가 있었거나 이벤트 조건을 맞추는데 다소 금액이 부족했던 경우가 아닐까 싶어요. 단편과 장편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지만, 그래도 5만자 미만의 책을 자의로 잘 하진 않거든요. 잊고 있다가 우연히 본 작품치고, 저는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작위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저는 독특한 인물들과 권선징악, 고진감래 클리셰 모두 좋아합니다. 의외로 횡재한 기분도 드네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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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처: 봄툰

분량: 본편 49화 + 외전 13화

point1: 한 컷

​point2: 줄거리

기: 정민은 신입생 환영회에서 자신을 도와준 이룸을 좋아하게 됐고, 이후 우연히 술 취한 이룸의 실수로 얼떨결에 뜨밤을 보냈다. 그리고, 정민은 짝사랑 상대 이룸과 섹파라는 애매한 관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룸과 섹스를 마치고 돌아오는 씁쓸한 길, 한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가 정민의 몸의 손을 대자 오색빛깔 산호가 피어나고, 그는 그 산호를 떼어먹었다. 그는 학교 선배 사로였다. 그 후, 정민은 사로 제안에 요상한 아르바이트도 시작한다.

승: 사로의 일족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저주에 걸렸고, 부득불 타인의 감정으로 피어난 산호를 먹으며 생명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순수한 감정으로 피어난 산호는 맛있지만 희귀했기에, 사로는 맛없는 산호를 먹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후배 정민은, 산호를 눈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순수하고 맛있는 '짝사랑'의 감정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로는 정민에게 맛있는 산호를 얻어 내기 위해 알바를 제안한다.

전: 이룸은 정민의 마음을 알고 정민에게 독점욕도 느끼지만, 금기를 넘을 용기가 없었다. 그러던 중 사로의 계략에 말려 여자친구를 사귀고, 그 모습을 본 정민은 크게 상처 입는다. 짝사랑에 힘겨운 정민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로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반면, 정민이 가진 이룸에 대한 지고 지순한 사랑의 감정을 지켜본 사로는, 정민을 사랑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그래서, 사로는 일족의 저주를 풀기 위해 어머니를 만나고, 진짜 저주의 실체를 알게 된다.

결: 한편, 사로의 계략을 알게 된 이룸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정민에게도 이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정민에 대한 이룸의 집착은 나날이 심해진다. 한편, 사로는 정민을 이룸에게서 구하겠다며 정민을 감금한다. 하지만, 비극적인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사로는 정민을 놓아 준다. 이룸은 사로의 집을 나오는 정민을 보고 흥분해 도로로 밀치고, 그 순간 사로는 정민을 구하고 대신 죽는다. 그때 용왕이 나타나 사로의 저주를 풀어준다.

point3 진지충의 review: 감정의 맛

욕구의 종류는 많지만, 결국 그 본질은 대동소이한 것 같습니다. 때론 서로 간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는데, 제일 범용적으로 쓰이는 욕구가 식욕! 바로 맛! 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BL에서도 제법 많은 맛집들이 존재하지요~ 집착광공은 매운맛, 대형견공은 달달구리, 쌍방구원물 속 공수는 쓰지만 중독성 짙은 에스프레소가 연상되기도 해요. 여기 감정을 느끼고, 보고, 맛보는 초능력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언어가 아닌 방법으로 정보를 얻는 초능력자들을 많습니다. 문자를 읽는 향현사나, 이미지를 읽는 사이코메트리스트, 타인의 감정에 동화할 수 있거나 이세계 존재와 소통할 수 있는 신력을 지닌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 능력으로 인해 힘든 삶을 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소재가 꾸준히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진의'를 알고 싶은 보통 사람들의 간절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맛보는' 초능력까지 등장했습니다. 두둥! 저는 굉장히 신선했어요. 그런데, 이 능력... 정말 보통 사람보다 우월한 걸까요? 물론, 웹툰 속에서 사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정민의 감정을 맛본 덕분에, 능수능란하게 이룸과 정민 사이를 이간질 하긴 합니다. 하지만, 감정의 산호를 먹지 않으면 죽으니까 손해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애당초 이 능력은 용왕의 산호 정원을 망친 죄로 내려진 벌이니,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로는 999년을 산 예비 용이었어요. 하지만, 거사를 1년 앞둔 검은 뱀은, 용왕의 산호 정원을 가꾸는 아름다운 정원사에게 첫눈에 반하죠. 하지만, 정원사는 사로를 거절했고, 분노한 사로는 정원 깊숙이 숨겨진 진주를 훔쳐 먹습니다. 불행히도, 그 진주는 가장 순수한 사랑을 모아 만들어진 보옥이었고, 엇나간 연심으로 가득 찬 사로에게 그 결정체는 독이었어요. 용왕은 꾀씸한 뱀에게 벌을 내리려 하지만, 그때 정원사가 앞으로 나섭니다. 그리고 뱀의 죄를 함께 지기를 청합니다. 그 모습을 갸륵하게 본 용왕은, 진정한 사랑을 깨우치게 되면 저주를 풀어주겠노라 선처를 베풀어, 두 존재를 인간 세계로 떨굽니다.

사로의 일족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저주에 걸려있기에, 타인의 감정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저주의 실체는 '사랑하면 미치는 저주'였어요. 수없이 반복되는 윤회 속에서, 사로는 환생한 정원사를 만나고 필연인 듯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집착과 광기로 인해 진정한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결국 미쳐 환생한 정원사를 죽이고 맙니다. 이번 생에 정민으로 환생한 정원사 역시 또 같은 위기에 처하게 되죠. 물론, 결말은 달랐지만 말이에요.

'산호가 피는 소리'에 재미있는 설정 중 하나는, 역시 '맛'인데요. 집착, 독점욕, 질투 같은 악의적 감정들은 흔히 독처럼 묘사되잖아요. 하지만, '산호가 피는 소리'에서 맛은, 순수할수록 좋습니다. 그 감정이 무엇이든 꾸미지 않을수록 맛있다는 거죠. 사로는 이룸의 독점욕을 보고 입맛을 다시고, 상처 입은 정민의 감정은 맛난 아이스크림이 돼요. 부산물이 뒤섞이지 않은 질 좋은 재료들은, 밀폐용기에 잘 보관되어 훌륭한 음식으로 재탄생하기도 합니다.

 

맛없는 음식도 있습니다. 바로 거짓이 섞인 감정이요. 상대방을 위해 인내하고 희생하는 사랑, 상처 입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한 위로, 이런 것들은 맛이 없습니다. 신선하죠? 단순한 욕구보다 고차원적인, 흔히 어른스럽고 성숙하다고 불리는 감정들인데 말이에요. 하지만, 결국 이런 감정들은 이기심, 사랑받고 싶은 욕구, 혹은 미움이나 슬픔 따위의 '진짜' 감정에, 불순물을 잔뜩 첨가한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짝퉁이라는 거죠.

사로는 정민을 만나기 전, 그 맛없는 산호들만 먹으며 살고 있었어요. 불순물들이란, 결국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필요해 생긴 것들일 테니, 자의든 타의든 '우리' 주변에 널려 있을 거예요. '우리'로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맛 좋은 산호를 먹기는 힘들었겠죠. 그러다 순수한 짝사랑의 산호를 퐁퐁 내뿜는 정민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날 사로가 맛본 정민의 산호는, 냉동 닭 가슴살만 삶아 먹다 튀긴 치킨을 먹었을 때만큼 충격적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사로는 말도 안 되는 알바를 제안하고, 뒷수작을 부려 정민을 곁에 붙들어 놓죠. 포기할 수 없는, 한 번 맛본, 그 환상적인 맛 때문에...

 

그러다 사로는 정민의 그 순수한 애정을 먹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지길 원하게 됐죠. 오랜 짝사랑에 지친 정민은, 마음속에서 이룸을 끊어 내고 싶어졌고요. 결국, 사로와 정민은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 보기로 해요. 물론, 그전에 먼저 사로의 저주를 풀어야 했어요. 두 사람은 사로의 어머니를 만나 저주의 진실을 듣게 됩니다. 한편, 부쩍 가까워진 사로와 정민을 보는 이룸의 질투는 한계에 다다릅니다. 결국, 이룸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정민에게 고백합니다. 동시에, 사로의 뒷공작(?)이 들키면서, 정민은 사로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이룸을 선택합니다. 이후, 장르는 급 피폐물의 길을 걷게 되죠.

마무리는 좀 아쉬웠습니다. 폭행, 감금, 탈출, 사고, 깨달음...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느린 템포로 섬세하게 다루던 초중반과 다르게, 후반부는 대형 사건들이 몰아칩니다. 물론, 빠른 템포가 긴장감을 고조시킬 때도 있지만, 인물의 심리 중심이던 '산호가 피는 소리'가 후반부로 가면서, 사건 중심으로 급변하는 모양새다 보니... 전 좀 잉?했어요. 지리멸렬한 몇 갑절의 시간 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저주의 굴레가, 너무 툭 끊어진 느낌이랄까요. 사로가 정민을 위해 희생하는 건 그렇다 쳐도, 사로가 정민을 죽이지 않고 이룸에게 보내주는 장면은 이해가 안 갔어요. 과거의 사로와 현재의 사로가 반대의 결정을 하는, 엄청나게 위대하고 핵심적인 심리 변화가 빠져 있는 느낌이랄까요.

공들인 밑 작업의 마지막 화룡점정이 초큼 부족한 것 같은... 이어지는 외전에서 용왕이 등장해 과거 스토리의 여백을 메꿔주고, 서툰 사로와 정민의 연애 분투기가 본편에서 중단된 '사랑하기 위한 노력'을 보충해 주긴 하지만, 저의 갈증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죠. 그래도, 이제는 사로와 정민을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이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ㅠ.ㅜ 미련 많은 이 여자의 아쉬움은, 정민의 귀욤 귀욤 짤로 달래보도록 하겠습니다.

 

 

※ 동일 작가의 다른 웹툰 리뷰

 

2020.10.24 - [BL 웹툰] - [SF물/시리어스물/애절물] 별이 잠들 때 - TOU, 상혁

 

[SF물/시리어스물/애절물] 별이 잠들 때 - TOU, 상혁

연재처: 봄툰 분량: 본편 54화 + 외전 10화 ​ ​ ​ point1: 한 컷 ​ ​ ​ ​ ​ ​point2: 줄거리 ​ ​ 기: 2020년 가을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지고 , 소행성을 파괴하기 위해 쏘아 올린 수 많은 미사일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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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주)현대지능개발사

분량: 본편 1권

point 1 한 컷

point 2 줄거리

물에 빠진 물고기: 매일 싸우는 부모를 피해 키시가 피한 곳은 욕실이었다. 키시는 바깥세상과 격리된 물속에 잠기는 버릇이 생겼고, 고등학생이 되어 수영부에 들어간다. 키시는 우사미 유키히코와 같은 반이었다. 호텔 재벌의 사생로 태어나 뒤늦게 생부에게 입양된 우사미는, 바람둥이 탕아로 살고 있었고,키시는 그런 우사미를 싫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의 지시라며 우사미를 강제로 차에 태우는 장면을 목격하고, 욱한 키시는 우사미를 데리고 도망친다.

그 이후 두 사람을 급격히 친해진다. 두 사람 중 사랑을 먼저 깨달은 것은 키시었다. 하지만, 키시는 사랑과 함께 실연을 깨닫는다. 우사미는 자신에게 냉정한 키시를 좋아했고, 키시는 우사미에게 마음을 속이며 수영장 깊이 잠수한다. 한편, 키시의 부모님은 이혼을 결정한다. 키시는 그날도 수영장 물속 깊이 잠수하고, 익사 할 뻔한 순간 우사미에게 구출된다. 순간 감정을 숨기지 못한 키시는 우사미에게 안기고, 혼란스러웠던 우사미는 키시를 떠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수영장에 있는 키시에게 우사미가 다시 찾아온다. 우사미는 키시에게 네가 원하는 내가 되겠다며, 사랑을 고백한다. 키시는 그런 우사미를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처음으로 '진실'해진다. 키시는 수영부를 그만두고 알바를 시작하고, 우사미는 명문고에 편입을 한다.

낙타 지기와 왕자의 밤: 사막을 횡단하던 캐러밴 무리는 쓰러진 알파르드를 발견하지만, 내버려 두고 떠나려 한다. 그때, 그 캐러밴에 일하던 낙타 지기 카마르는 그를 구하고 정성껏 간호한다. 깨어난 알파르드는 카마르를 도둑으로 오해하지만, 곧 사실을 깨닫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 그래서 알파르드는 아픈 카마르를 자신의 저택에 데리고가 요양하도록 돕는다. 알파르드는 거부 무역상의 아들, 카마르는 사막에 남겨진 청나라 이방인이었다.

두 사람을 서로에게 물들어 갔다. 알파르드는 카마르를 사랑하게 되고, 카마르는 사막에 수로를 건설하려는 알파르드의 꿈을 지지해 줬다. 그러던 어느 날 카마르는 알파르드와 그의 형의 대화를 엿 듣는다. 그리고, 사막은 몰락하고 바다의 시대가 왔다는 것, 알파르드는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사막의 사람들을 버릴 수 없어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카마르는 알파르드가 그러하듯, 사막 낙타 지기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알파르드를 떠나 마을로 돌아온다.

마을로 돌아온 카마르는 가축을 팔고, 캐러밴을 해체한 뒤 마을을 떠나려는 계획을 듣게 된다. 그리고, 카마르는 유일한 이해자이자 친구였던, 낙타 사딕을 팔수 없었다. 카마르는 사딕과 함께 거친 사막으로 도망치다가 모래 폭풍이 휘말리고, 알파르드의 저택에서 눈을 뜬다. 카마르는 사딕이 자신을 알파르드에게 데려다준 후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막의 배, 낙타는 사막을 건너 카마르를 알파르드에게 이어주고 떠났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갈 때를 아는 자의 뒷모습

'낙타 지기와 왕자의 밤'은 두 편의 짧은 이야기를 묶은 단편집입니다. 오가와 치세님의 대표작은, 착각 시리즈에요. '내가 너 따위를 좋아할 리 없어' '착각의 하트' '끝없는 불행에 관한 이야기' '착각과 불행의 사랑 이야기'로 이어지는, 개성 강한 두 커플의 밝고 유쾌한 연애담이죠. 이외도 주로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발칙한 이야기들을 많이 쓰셨어요. 그런 점에서 '낙타 지기와 왕자의 밤'은 기존 작품과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잔잔하고 여운이 긴 이야기였어요.

모든 역사는 역사가의 역사라고 합니다. 역사를 쓴 사람의 주관적 이야기라는 거죠. 국사 시험으로 울고 웃은 경험이 있는 대한민국 공교육 경험자 1인은, 그럼 내가 그토록 외웠던 것들이 객관적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외칩니다. 물론, 불변의 '정보'도 있죠. 하지만, 모든 시간에 대한 모든 장소의 기록이 아닌 만큼, 선택과 정의, 명명과 해석을 거치지 않은 역사란 없고, 따라서 역사를 확정적 진리라고 주장하긴 힘들거예요. 그리고, 그 역사는 주로 승자들이 씁니다.

그래서, 마지막보다는 시작을 부각합니다. 망한 것은 망할 만했고, 메시아적 영웅이 나타나 새로운 세상을 연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시대의 마지막을 지켰던 사람들은 어리석고, 부패하고, 수구적인 것처럼, 시대의 처음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깨어있고, 후덕하고, 진보적이라고 여겨요. 하지만, 역사를 잘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시류의 흐름에 읽고 새 시대의 빗장을 열어주지만, 스스로는 마지막 사람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도 많고, 전 시대에 벌린 부패와 과오를 덮기 위해, 새 시대의 깃발을 꽂은 자들도 있어요.

다만, 마지막 사람들의 이야기는 시작하는 사람에 의해 쓰일 뿐이고, 그래서 갈 때는 아는 자의 뒷모습은 너무나 쉽게 묵살되죠. 그것이 참 많이 아쉽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마지막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유독 더 감동받는 것 같아요. '낙타 지기와 왕자의 밤'처럼요.

카마르는 청나라 어머니의 뱃속에서, 사막을 건넙니다. 그리고, 3살이 됐을 때, 카마르는 캐러밴 마을에 유일하게 남은 이방인이 되죠. 카마르는 가족이자, 친구이자, 이해자인 낙타 사딕에게 위로받으며, 낙타 지기로 사막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얗고 여린 피부의 카마르는 자주 아팠고, 마을의 짐처럼 여겨져요. 하지만, 캐러밴 대장은 사막의 시대는 끝나가고, 카마르는 이후 새 시대를 살아가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알파르드 역시 무역로가 육로에서 해로로 바뀌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사막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살고 있었고, 알파르드는 그들을 지키고 싶었죠. 하지만, 먹고 살 길이 바다로 돌아서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사막의 마을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갔어요. 사막의 주민은 더이상 주인공이 아니고, 낙타도 필요 없는 시대 오고 있었어요. 그 갈림길에 선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죠.

카마르는 그 선택들의 집약체 같아 보입니다. 캐러밴 대장은 카마르에게 마지막에서 시작으로 이어지는 바통을 건네 주었고, 사딕은 마지막 낙타 지기를 새로운 동반자에게 건네며 생을 마감합니다. 사막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알파르드는, 카마르와 함께 살아갈 바다로 눈을 돌립니다. 아마도, 여름이 되어 카마르가 동행한 알파르드의 새로운 터전은, 황금빛 모래가 아니라 푸른 수평선이 펼쳐진 곳이겠죠.

알파르드는 마을로 돌아가는 카마르에게 아스트롤라베를 건네 줍니다. 아스트롤라베는 별을 읽는 도구예요. 그렇게 별을 읽어서, 시간이나 위치를 알아내요. 아스트롤라베는 사막에서도, 바다에서도 오랫동안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줬습니다.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하늘 아래 어느 곳이든 별은 뜨고, 별이 뜨는 어느 곳이든 사람은 살아가고 있어요. 갈 때를 알고 떠나가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는, 빈자리를 채워 올 누군가를 희망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진짜 승자들을 떠올려 봅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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