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1 책갈피
"억울해요."
그리고 유영의 답변이었다.
'억울해?'
희릉사의 몸이 우뚝 굳었다.
얼이 나간 그를 위로하고 유영은 서러운 말을 이어 나갔다.
"왕야가 이렇게 젊고 훌륭한데, 저도 어리도 혈기가 넘치는데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다니!"
그것은 실로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으므로. 희릉사는 그 순간 머리가 새하얘지는 느낌을 받고 몸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억울해요. 왕야. 저는 너무 억울해요."
말을 하지 않아도 그런 것 같았다.
유영은 실로 분통한 듯 의자를 부여잡고 울었고, 그 모습은 심지어 나라를 잃은 충신과도 같아 보였으니까.
'도대체, 유영아!'
이건 도저히 멀쩡한 정신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희릉사가 할 말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애끓는 읍소는 이어져 나갔다.
"조금이라도 기력이 좋을 때 많이 즐겨 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그 말을 내뱉을 때 유영은 의자의 팔걸이를 부여잡은 손에 힘을 주며 울먹거리고 있었다. 하도 기가 막힌 말에 잠시 생각이 정지되어, 희릉사는 꾀나 시간이 흘러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부인은 참 엉뚱해."
point2 줄거리
기: 황후의 아비 무구국은 사별한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3명의 아름다운 음인 자식들에게 최고의 혼처를 찾아주려 한다. 그래서, 무구국은 아이들을 외부와 단절시키고, 규방에 가두어 길렀다. 무구국 황제조차 경계하는 혈통과 권력을 지닌 초왕을 둘째 사위로 정하지만, 정인이 있는 차녀 무유완은 혼례를 피하기 위해 평인이 되는 약을 마신다. 어쩔 수 없이 막내 무유영은 누이를 대신 혼례 하기로 하고, 마지막 자유를 허락받아 연등회에 참석한다.
승: 그리고 유영은 그곳에서 천상의 외모의 벙어리 귀공자 '사무'에게 한눈에 반한다. 본인을 '기유유'라 소개한 유영은 본능(?)에 충실하여 실수를 연발하지만, 사무는 한심하게 쳐다보면서도 연등회 내내 유영과 어울려 주었다. 그리고, 연등회 마지막날, 누이 대신 아버지에게 맞아 퉁퉁 부은 얼굴로 나타난 유영은, 사무의 밤을 간청한다. 두 사람은 연리강 변 오두막에서 애절한 하룻밤 보낸다. 그리고, 다음날 유영은 가면을 쓰고 나온 초왕과 혼례를 치른다.
전: 유영은 초왕에게 버림받는다. 1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유영은 왕부를 벗어나지도, 초왕을 만나지도 못했다. 그리고, 유영은 간신히 시비의 도움을 받아 사무와 추억이 담긴 연리강을 찾고, 기적처럼 사무를 만난다. 하지만, 초왕이 사무를 해칠까 무서웠던 유영은 사무를 거부하고, 사무는 짙은 양인의 향기를 풍기며, 그런 유영의 모습에 화를 내며 거칠게 다뤘다. 유영은 사무가 '신방'이라 부르는 대나무숲에 속 전각에서 감금 당한채, 강간당한다.
결: 유영은 말을 잃고 초왕은 자해를 하며 서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유영은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을 놓아주려는 초왕에게, 결국 임신 사실과 사랑을 고백한다. 그때, 그들의 전각에 황제와 무영의 가족들이 들이닥친다. 사무와 유영이 갇혀 있는 동안, 초왕과 초왕비에 대한 관한 흉흉한 소문이 퍼졌고, 이에 분노하며 쳐들어 온 것이었다. 이로 인해 서로가 초왕과 초왕비였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은 기쁨에 젖는다. 그들은 오해를 풀고, 행복한 신혼을 보낸다.
point3 진지충의 Review: "우리가, 우리가 있어!"(feat.염병천병 주접부부)
주접... 좋아하시나요? 만약, 지금 옆에서 지인이 주접을 떨고 있다면... 절로 한심한 표정이 나올 것 같습니다. 주접, 아무 말 대잔치, 아재개그, 부장님 농담... 극혐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랜선 상 주접은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요? 가끔 리뷰어들의 기상천외한 주접 댓글들을 보면, 나에게는 왜 저런 주접력(?)이 없을까? 심지어 부럽기까지 합니다. 현생에서 '뭔 소리야?'싶은 것도, 글로 읽으면 입꼬리를 활짝 올리고 웃게 돼요.
여기에 진정한 주접 커플이 있습니다. 현재 채련담 2부인 '채련담 하화원앙'이 연재 중인데, 완결된 1부 속 초왕비의 주접이 '성격'이었다면, 2부에서는 초왕의 사랑과 응원에 힘입어 업그레이드돼요. 1부에서는 목구멍이 갑갑할 정도의 삽질 구간과 절절함과 빻빻함이 넘치는 피폐 구간이라도 있었으나, 2부는 이들 주접 부부의 민폐상이 연이어 펼쳐지고 있습니다. 물론, 갑자기 위기가 시작될 수 있겠으나.. 어쨌든, 2부도 완결되면 리뷰 하겠습니다.
채련담은 사건이 마무리됐는데도, 분량에 한참 남아있는 신비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죠. 작가님은 애당초 이런 심각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게 아니셨어요. 그저 본격적인 주접을 위해, 잠시 밑 밥을 깔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죠. 엉뚱 발랄 초왕비는, 홀로 규방에 갇혀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야 했던 긴 유년기에 대한 보상과, 오해로 인해 초왕비에게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른 초왕의 전폭적 지지로, 정말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초왕은 적통성을 지닌 유일한 황자였지만, 선황이 부고했을 당시 너무 어려 보위에 오르지 못합니다. 그 대신 황제가 된 삼촌은, 조카를 경계해 북방의 전장으로 보내 버리죠. 하지만, 어린 조카는 총명하고 아름다운 무재로 자라, 군부 세력의 정점이 돼요. 황제는 초왕이 권세가 외척을 만드는 것도, 통제 밖 먼 변방에서 강력한 군벌로 성장하는 것도 싫었어요. 그래서, 황후의 동생과의 혼례를 주선해, 초왕을 수도로 부릅니다.
수도로 올라오자마자 초왕은 추억이 서린 연리강을 찾아가요. 친모가 일찍 별세하자 초왕은 양모 슬하에서 자랍니다. 태후의 꿈을 안고 있던 양모는 초왕을 정성 다해 기르지만, 양모가 친모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초왕에 의해 비극을 맞이하고, 이후 초왕은 잔악무도한 냉혈한으로 여겨져요. 아무도 그의 곁에 다가오지 못하죠. 초왕은 연리강을 보며, 자신이 죽였으나 잊지 못한 양모를 떠올립니다.
유영은 상큼 발랄 엉뚱한 4차원 소년이었지만, 아버지에 의해 조신한 규방 규수로서 길러지죠. 그리고, 지기 한 명 없이, 자신 안에 가득한 주접력을 억누른 채, 최초이자 최후의 휴가로 연등회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연리강에서 우수에 젖은 귀공자를 만나죠. 고삐 풀린 유영은 말실수와 손(?)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자신을 한심하고 추잡스럽게 바라보는 사무를 보기 위해 매일 연리강을 찾습니다.
초왕은 그런 유영에게 대꾸도 하기 싫어 벙어리인 척하면서도, 연등회 내내 함께 시간을 보내줍니다. 모두가 경외하는 자신에게 무례를 범하는 하룻강아지, 어째 귀엽기도 하고 챙겨 줘야 할 것도 같고... 초왕은 그의 삶에 없었던 낯선 감정을 느끼죠. 그리고, 초왕은 유영에게 각인이 되고서야 그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깨달아요. 초왕은 동상이몽 같은 초야를 보내지만, 유영만을 진정한 반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초왕비에게 더욱 모질 수 있었던 거죠.
문제는 그 초야가 말이죠... 상식을 배울 길이 없었던 유영은, 자신이 말술인지도 모른 채, 좋은 술이라며 합환주로 자백제로나 쓰이는, 한번 마시면 천일을 잔다고 해서 이름도 '천일취'인 독주를 가지고 옵니다. 유영에게는 애절했던 하룻밤... 초왕은 기억이 없습니다. 다음날 아침, 자신의 동정을 가져간 기유유는 없었고, 연리강변에 방치된 채 사경을 헤매게 되죠.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가면을 쓴 채 혼례식에 참석한 초왕은, 초왕비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돌아섭니다. 숙취란 것이 이리 무서운 거예요.
어쨌든, 초왕은 유영을 열심히 찾습니다. 유영은 어머니 성 '기'와 아명 '유유'를 알려줬고, 막연히 초왕이 북부 군벌이기에 그쪽에 가서 살겠지 싶어, 북쪽으로 간다고 말해요. 덕분에 초왕은 북부를 샅샅이 뒤지지만, 유영은 수도에 있는 초왕부에 있었으니 당연히 '기유유'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1년 뒤 연리강에서 유영을 만납니다. 1년간 유영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무'를 그리워하는 것뿐이었고, 1년간 초왕이 한 일은 유영을 찾는 것뿐이었어요. 두 사람의 1년이 그랬습니다.
다만, 혼례식 날 본 초왕은 인정사정없는 사내였고, 소문으로 들은 그의 일화들은 잔인하기 그지없었죠. 강간이든 감금이든 사랑하는 사무와 있는 시간은 행복했지만, 그만큼 초왕이 사무를 헤칠 거라는 두려움도 커져갔어요. 게다가, 유영은 사무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홀로 깨닫습니다. 자존심에 금이 간 초왕이 사무를 고문하고, 자신을 감금하고, 아이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하지만, 이런 속마음을 모르는 초왕은 유영이 자신의 양인을 그리워해 병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초왕은 그에게 유영을 보내주려 해요.
예, 딱 여기까지가 입니다. 다음은 정말 대환장 파티예요. 사랑스러운 주접부부는 그들만의 세상에 있죠. 무소 불이의 권력자 초왕과, 상식과 절제가 부족한 초왕비, 유영은 아버지의 훈육과 초왕비로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감춰 둔, 본인의 엉뚱미를 마음껏 들어내요. 초왕은 그저 유영이 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의 발 싸개가 되어, 황제의 진상품을 털어가며, 이루어 주죠. 때론, 임신으로 잠자리를 못하는 욕망쟁이 유영의 통곡을 들으며, 인내를 배우기도 합니다.
꽁냥꽁냥 달달물을 보면서, '더 해! 더!'를 외치는 것이 '맘'의 마음이죠. 예쁘고, 멋있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간질간질하고, 깨가 쏟아지는 그들의 모습에 광대가 승천하는 기분! 하지만, 채련담은 '더 해!'란 말이 도무지 나오지 않습니다. 정말, 이 염병천병 주접부부를 어째야 할까? 무수히 양산되는 피해자들의 어깨를 토닥이고 싶어진달까요. 참... 이것은 병맛과도 다른 개그물인... 그냥 '채련담'은 '채련담'인걸로!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1.08.07 - [BL 소설] - [시대물/서양풍/애절물] 네체시타스 - 모르고트
'BL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양풍/초능력물/시리어스물] 극야 - 이젠(ijen) (0) | 2021.03.21 |
---|---|
[인외존재/잔잔물/힐링물] 숲바다 - 유우지 (0) | 2021.03.14 |
[현대물/피폐물/달달물] 폼리스(Formless) 외전 - 원리드 (0) | 2021.03.10 |
[인외존재/피폐물/시리어스물] 광염 - 유아르 (0) | 2021.03.09 |
[캠퍼스물/잔잔물/애절물] 꼴라쥬(collage) - 미엔느 (0) | 2021.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