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블랙아웃

출간일: 2019.04.15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해 준 게 없다는 말 하지 마세요."

"......"

"이따위 세상인데도."

"......"

"형은 나를 살게 하니까.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니까."

이윽고 그가 고개를 들었다. 창백한 얼굴이 온통 젖어있었다.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저로 괜찮으냐고 했던 말이 한낱 투정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지유환은 넉넉한 손으로 백성현의 얼굴을 감쌌다.

"형 말대로 안 괜찮아요."

"... 응."

안 괜찮은 현실. 이제껏 그런 현실을 발버둥 치며 살아왔다. 괜찮다고, 괜찮아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그런 게 어떻게 괜찮아질 수 있겠어요."

애써 괜찮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과거의 기억들이 범람하듯 넘쳐흘렀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서 시설을 전전한 일. 누군가 쓰다듬어주지 않아도, 사랑받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밤들. 혼자서 이겨낸 스스로가 씩씩하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던 날들.

"......"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같이 괜찮지 않은 것들 투성이었다. 버려지고 싶지 않았고, 누구라도 저를 쓰다듬어 주길 바랐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혼자서 이겨내고 싶지 않았다. 애초부터 자신은 그다지 씩씩하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안 괜찮아도 돼요. 우리는 이대로도 충분히......"

지유환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행복할 수 있을 거예요."

백성현은 햇빛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눈앞의 사람을 응시했다. 이 조악한 방과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던 그는 어느새 이 방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point 2 줄거리

기: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봄 학기, 말아 먹은 수강 시간표 탓에 백성현은 팔자에도 없는 문예과 교양을 듣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같은 수업을 듣는 청각 장애우 지유환의, 월 8회, 150만 원의 고액 노트테이킹 알바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유환은 9살에 첫 시집을 낸 등단 시인이자, 190cm의 잘 생긴 외모, 천재 화가인 친모의 자살과 그로 인해 얻게 된 장애, 비사교적 태도로, 이미 유명인이었다.

승: 성현과 유환은 밥을 먹고, 미술관을 가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성현은 자신에게 다정한 유환을 짝사랑한다. 하지만, 고아원으로 찾아온 친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유환에게 전화해 듣는 이 없는 고백을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현은 감기로 결석한 유환의 집에 찾아가고, 그때 마침 출판사 전화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유환의 휴대폰이 걸려 온 전화를 자동으로 저장하도록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 그와 동시에 녹음된 '그날' 성현의 고백이 부지불식간 공개된다. 성현은 순간 절망한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유환은 성현을 좋아해왔고 숨긴 적 없다고 대답한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한편,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유환은 보청기마저 잘 적응하지 못하면서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지만, 성현에게는 좋아지고 있다고 거짓말한다. 반면, 성현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고장 난 라디오를 알아채지 못하는 유환을 보며 그의 상태를 짐작한다.

결: 그러던, 성현에게 친부의 부고가 들려오고, 성현은 쓸쓸한 장례식장에서 무기력했던 친부와의 마지막 대면을 떠올리며 후회한다. 성현은 유환을 찾아가 유환의 상태를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무능을 고백한다. 상처 많은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의 상처를 내보인다. 한 층 더 단단해진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한다.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봄이 찾아온다. 25살 성현은, 처음으로 축하받는 생일을 맞이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초봄, 봄비는 차갑다.

'꼴라쥬'를 초봄 제철 소설이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사실 '꼴라쥬'는 봄에 만난 주인공들이 여름에 이루어져서, 가을에 동거를 시작해, 뜨거운 겨울을 보내고, 다시 함께 봄을 맞이하는 이야기예요. 사계절을 모두 배경으로 하는 셈이죠. 그럼에도, '꼴라쥬'를 초봄에 읽어 줘야 돼!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성현의 생일이 4월 8일이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무슨 덕후성 발언인가!!! 혹시, 주인공 발 사이즈, 시험 점수, 최애 브랜드명까지 외우시나요? 물으신다면,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기억 안 난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다만, 성현의 생일은 '꼴라쥬'에서 아주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꼴라쥬는 작은 조각들을 모아 부치는 일종의 미술기법입니다. 그리고, 아시나요? 꼴라쥬는 심리치료에도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스스로 솔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상처를 드러내는 일은 더욱 힘들겠죠. 하지만, 하나하나의 시리고 아픈 편린들이 모아보면, 의외로 '끔찍한 자신'이 아닌 '굳세고 단단해진 인생'이라는 작품이 될 수 있잖아요. 소설 '꼴라쥬'에서 성현의 그런 눈부신 꼴라쥬 작품이, 바로 유환과 함께한 '생일 하루'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토록 눈부시게 빛나는 삶의 한조각.

이런 순간을 위해서 그렇게나 어두웠던 밤들을 견뎌왔음을.

색채와 결이 다른 삶을 살고 있던 당신을 찾아내기 위해서,

내 삶의 많은 조각들을 비워뒀음을. - <꼴라쥬>

이 소설은 서로를 위해 비워둔 조각조각의 빈자리를, 너덜너덜한 삶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꼭 맞는 한 편의 꼴라쥬가 되어 주는 이야기입니다.

'꼴라쥬' 는 우연히 문예과 교양 수업을 듣게 된 수가, 시인인 공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예상가능하다시피 매우 서정적이에요. 두 사람은 시를 주제로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며, 낭만적 시야로 잿빛 세상을 바라봅니다. 유환과 성현의 가정사, 떠나 버린 부모와, 남겨진 상흔,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은 그대로지만, 그들은 만났고 변했죠. 유환의 세상은 더 이상 냉소적이지 않고, 사랑니와 비를 핑계로 소리 죽여 서럽게 울던 성현은 서툴게나마 섭섭함을 토로하고 소리 내서 울 수 있게 돼요.

저는 이런 유환과 성현의 변화가 '봄비'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 어느 리뷰에서도 말한 적 있지만, 저에게 봄은 낭만의 계절이 아니라 '증명'의 계절입니다. 그 전 해의 '성적표'를 받고, 무엇인가 새로 시작해야 하는 압박의 시기지요. 어느 때는 박수를, 어느 때는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모두 긴장과 불안이 따릅니다. 학생 때는 시험을, 사회에 나와서는 때마다의 과업을 이유로, 봄마다 안도와 회한의 한숨을 많이 쉬었었죠.

어쨌든, 그래서 저는 멍~ 놓고 볼 정도 봄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저들이 모두 '금메달리스트'이기 때문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많은 씨앗이, 봉우리가, 혹은 묘목이 있었을 테지요. 그들 중에 씨앗 표피를 뚫고, 겹싼 잎사귀를 세차게 밀치고, 찬 땅에 굳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틔운 승자만이 단상에 올라 찬사 받는 무대가 봄 같거든요. 그렇다면, '봄비'는 그들에게 마지막 스퍼트를 내야 하는, 결승선 직전에 가장 가혹한 시련일 거예요.

그때 어쩌면 씨앗은 흙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몰라요. 어차피 겨우내 어둠 속에서 살았는데, 굳이 차가운 비를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지상으로 가고 싶지 않아! 나는 그냥 이대로 계속, 축축하지만 안전한 흙 속에 있고 싶어!라고 말이에요. 그렇게 살아왔다는 건, 살아 본 적 없는 희망보다 강한 관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변화란 늘 쉽지 않은데, 가장 삭막한 계절에서 가장 화려한 계절로의 포문을 여는 '봄비'가 호락호락 할 리가 없겠죠.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그리는 미술 시간이 곤란했던 성현은, 스스로를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 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4살까지 산타클로스를 믿었던 순수함은, 모두가 아는 진실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겪어야만 했던 고독으로 이어집니다. 성현을 찾아온 생부는 반성을 하며 살았노라 용서를 빌지만, 성현은 그 중년의 남성에게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어렸던 어느 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길 바랐었다고... 긴 시간 참고 눌러 온 외로움에 대해 어설픈 투정만 어설프게 남겨요. 그리고, 얼마 뒤 생부의 부고를 듣습니다.

24번이나 돌아왔던 생일마다 축하받고 싶었지만, 축하받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던 외로운 아이는, 그 외로움이 굳어져 숨구멍을 막아도 벗어나는 법을 모릅니다. 그래서 생부에게 당신의 칭찬이, 애정이 절실했었다고 원망도 제대로 못하고, 용서할 수 있는 기회조차 상실해 버리죠. 그래서, 성현은 고장 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유환을 보며 덜컥 겁이 납니다. 분수에 맞지 않은 사랑을 탐내다, 유환을 망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죠. 숨겨 곪은 상처는 아프지만, 그건 익숙한 고통이니까요. 그래서, 유환의 상태를 모른척하며 불안해합니다. 그리고, 생부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성현의 둑은 터져버립니다.

성현과 유환은 괜찮지 않습니다. 괜찮아질리 없는 상황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괜찮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은 '괜찮아질리 없는 삶을 이어가는 것'과는 다른 어려움이었어요. 유환이 성현을 믿지만 적응하지 못한 보청기에 대해 고백하지 못한 것처럼, 성현이 유환을 사랑하지만 생부에 관해 언급 한 적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건 두 사람에게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고, 해 본 적 없는 힘든일이지만, 진실로 안온한 땅에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난관이었죠. 마치 봄비처럼요.

봄비는 우아하거나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차갑고 다급하죠. 그 부지런한 알람은 '타닥타닥' 거칠고 지면을 난타하는 터프함을 보이며, 많은 생명들에게 '마침내 곧 너희들의 시절이 도래할 것이다!'라며 준비 사인을 보내는지도요. 그래서인지, 저는 봄꽃을 보면 대견스럽습니다. 예쁘게 펴줘서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올해도 펴줘서 말이에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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