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8.01.19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헤이든 머피가 살을 뺐단 사실이 싫었다.

'내가 도와주려고 했는데.'

이안이 꿈꿨던 그림은 이게 아니었다. 처음 계획 - 헤이든 머피 친구 만들기 - 을 세울 적에, 이안은 통통한 헤이든과 함께하길 원했었다. 통통한 헤이든이 그 자체로 친구를 사귀고 '헤더의 양 날개'가 되건 뭐가 되건 숨지 않고 다니길 원했었다.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되게 만들거라고 확신했었다.

'내가 바보 같았어. 좀 더 일찍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갑작스럽게,

'뚱뚱한 공주 같은 건 없어!'

언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잊고 있던 기억 안에서,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어떤 남자아이가 그런 말을 외쳤었다.

그때부터 이안은 다소 염세적인 아이였다. 이안은 세상이 부정하는 모든 것을 한 번 더 부정하곤 했었다. 뚱뚱한 아이도 원한다면 공주가 될 수 있고 크림 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맨하튼의 유기견 이백 오십 마리에게 행복할 자격이 있고, 자신은 여자가 아닌 남자와 결혼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안은 헤이든 머피가 부정당하는 현실이 싫었다. 헤이든 머피 스스로가 변화를 원했단 것이 싫었다. 이안이 반했던 통통한 헤이든 머피를, 헤이든 머피 본인조차 부정하고 떠나버린 것이 싫었다. 무엇보다 이안은 자기 자신이 싫어졌다.

'내가 뭐라고.'

이안은 회의에 빠졌다. 우드 집안의 귀한 도련님이라는 입자에서 이뤄 온 일들이 의미를 잃어버렸다. 모든 것이 그저 자만 같았다. 그는 헤이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언지에 대한 의문을 가져 본 적 없었다. 뭘 원하느냐고 물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 주제에 '헤이든 머피 친구 만들기'라니, 계획을 세웠던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point 2 줄거리

기: 헤이든 머피는 심장에 선천적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다. 부와 애정이 넘쳤던 헤이든의 부모는 아픈 외동아들을 과보호 속에 키웠고, 헤이든은 '돼지'라는 별명 속에 외로운 학교생활을 해야 했다. 그리고, 루이스 고교 입학 후 와이어트 존슨을 만난 후 헤이든의 불행은 정점을 찍는다. 와이어트는 헤이든은 '붉은 돼지'라 부르며, 때리고, 모욕하고, 부려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헤이든은 우연히 이안의 도움을 받고, 다정한 이안, 이안의 친구들과 친구가 된다.

승: 생에 첫 친구 이안을 위해 헤이든은 지옥의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고 난 뒤 헤이든은 완벽한 '인싸'가 되어 루이스 고교에 나타난다. 하지만, 이안은 헤이든의 다이어트를 반기지 않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름다운 외모로 주목받았던 이안은, 평범한 원생으로 자신을 대해주는 뚱뚱한 크림 선생님을 좋아했다. 이후, 게이인 이안은 루이스 고교 입학식에서 꿈에 그리는 이상형을 발견한다. 바로, 다이어트 '전'의 헤이든이었다.

전: 하지만, 헤이든과 이안은 반이 갈리면서, 이안은 헤이든에게 다가가는 데 시간이 걸렸고, 헤이든은 '붉은 돼지'가 되어 있었다. 한편, 이안의 노력과 헤이든의 바뀐 외모로, 헤이든은 즐거운 고교 생활을 누린다. 한편, 살 빠진 헤이든에게 차인 와이어트는, 다시 살이 쪘다며 헤이든을 괴롭힌다. 헤이든은 강박적으로 무리한 다이어트를 밀어붙이다, 쓰러진다. 고통에 허덕이며 깨어난 헤이든에게, 이안은 뚱뚱하든 아니든, 어떤 헤이든이든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결: 학교로 돌아 간 이안은 와이어트에게 보복하고, 와이어트는 어쩔 수 없이 헤이든에게 사과하기 위해 병원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헤이든은 지독히 괴로웠던 시간의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 헤이든은 이안에게 고백한다.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한편, 주지사 선거를 앞 둔 이안의 아버지와, 머피 일가가 모두 참석한 자선 파티에서 두 사람은 연인 선언을 한다. 다소의 우여곡절은 있지만, 이안은 큰 무리 없이, 무사히 머피가 이 예비(?) 데릴사위(?)가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붉은 돼지'를 사랑해주세요.

면역력이 떨어지는 계절이면, 잠잠했던 고질병이 고개를 듭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허리가 시큰거리고, 잇몸이 욱신거리고, 승모근이 뭉치고, 무릎이 삐꺽거리고... 어떻게 그렇게 약한 부분만 기가 막히게 악화되는지 신기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약해지기에 약점이라 불리기도 하는 거겠지만, 때론 감기만 걸려도 아파지는 허리를 부여잡고 있다 보면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 때가 있습니다. 부딪친 것도 아닌데!!!

마음도 그런 것 같아요. 꼭꼭 숨겨 둔 상처는 아주 사소한 노출에도 쉽게 공격당하고, 지치고 힘든 날이면 유독 더 심하게 곪죠. '이곳이 제일 약한 곳'이라고 표지판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닌데, '악의'와 '불안'은 그곳을 기가 막히게 찾아냅니다.

'마이 펫보이'는 밝고 명쾌한, 전형적 청게물이자 성장 소설이에요. 얼마나 전형적이냐 하면, 스토리가 한 줄 요약이 됩니다. '다이어트 후 미녀가 된 뚱뚱보 공주님은, 외모가 아닌 공주님 자체를 사랑해 준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공주님은 심장병이 있고, 재벌가 외동에, 부모님의 절대적 애정을 받으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괴롭힘을 당하지만 사랑스럽고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어요. 살을 빼니, 절.세.미.녀가 됩니다. 참, 어디서 본 것 같은 내용이죠.

하지만, 김아소님의 소설이 그러하 듯, '마이 펫 보이' 역시 단순한 스토리 아래 흥미로운 설정과 뼈 있는 메세지가 심어져 있습니다.

일단, 동전의 양면 같은 이안이 있습니다. 이안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름다운 외모로 의사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이안은 완전무결한 왕자님으로 보일 수 있는 법, 즉 젠틀하게 웃고, 말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기대와 환상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었죠. 이안에게 이 세상은 꼭 맞았고, 이안이 이 사회의 브라만으로 사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안의 뒷면에는, 이런 사회에 대한 반발감이 있었어요. 이안은 뚱뚱한 크림 선생님이 아름다웠고, 뚱뚱하지만 유일하게 손을 든 친구가 공주 역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여자가 아닌 남자를 좋아했죠. 이안의 이런 반항심은 어느 순간 꿈속 완벽한 이상형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루이스 고교 입학식에서 그 꿈속 주인공을 만나게 됩니다. 이안에게 '그' 수드라 붉은 돼지는, 나의 공주님이 되어야 했어야만 했어요. 헤이든 폴더가 이안의 컴퓨터에 만들어지는 순간이었죠.

전교 1등 헤이든이 있는 A 반에 배정받지 못한 이안은 헤이든의 끔찍한 불행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와이어트의 체육복을 빌려준 사건을 계기로 드디어 헤이든과 친분을 만들기 시작해요. 이안은 헤이든 앞에서는 다정하고 상냥한 친구, 뒤에서는 숨은 해결사가 되어 주었죠. 이안과 친구가 되고 헤이든은 행복해졌고, 이안을 절대 잃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몇 번이고 실패하고, 그토록 고통스러우면서도 결심하지 못했던, 다이어트를 성공해요. 그리고, 이안은 깊은 회의에 빠집니다. 물론, 이안이 '어떤 헤이든이든 사랑해!'로 마음이 굳어졌기에, '전형적인' 청게물이 되긴 합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문득 불편한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마이 펫 보이'의 경우는, '빨간 돼지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였습니다.

'마이 펫 보이'를 읽다 보면, '헤이든은 '빨간 돼지'가 자신이라는 것을 몰랐다.' '헤이든은 '빨간 돼지'를 미워하고 있었다.'라는 식의 서술이 자주 등장합니다. 헤이든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이안에게도 눈물을 흘리며, '나도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죠. 분명, 헤이든은 '빨간 돼지'를 아주 싫어합니다.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빨간 돼지'를 싫어할까요?

거울에 비친 뚱뚱보가 보기 싫어서? 예쁜 옷을 입을 수가 없어서? 외모가 하고 싶은 직업이나 취미에 방해가 돼서? 아닙니다! 헤이든이 빨간 돼지를 싫어하는 '빨간 돼지'가 자신의 삶은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어요. 헤이든은 사과를 위해 병문안 온 와이어트가, 살이 쪄서 헤이든을 괴롭힌 것이 아니라 반응이 재밌어서 괴롭힌거라고 말하자 발작적 공황 증세를 보여요. 와이어트가 자신을 괴롭힌 이유는 반드시, 자신이 뚱뚱하기 때문이어야 한다는 듯이 말이에요.

헤이든이 외로운 학교생활을 한 이유는 심장병으로 학교를 자주 빠져서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숫기가 없는 성격이라 '헤이트 헤이든'이라는 놀림을 당해도 잘 받아치지 못했을 거예요.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혼자'라는 것에, '뚱뚱하다는 것'에 의기소침해 있던 헤이든의 '약점'에 와이어트라는 '악의'가 들러붙으면서, 살이 쪘다는 것은 모든 불행의 원인이 되어 버립니다.

진짜 가해자는 와이어트인데도, 헤이든은 '빨간 돼지'라는 가해자에게 괴롭힘받고 있었어요. 그래서, 헤이든은 와이어트를 부모님이나 학교에 알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계속 그 고통을 감내합니다. 하지만, 헤이든은 살이 빠지자마자 이안의 도움 없이 혼자서, 와이어트에게 물세레를 내립니다. '붉은 돼지'는 사라졌고, 그래서 헤이든은 더 이상 괴롭힘당할 이유가 없었죠.

그런 헤이든에게 다시 살이 찐다는 건 그 불행의 구렁텅이로 회귀하는 것이었고, 와이어트의 '살이 찐 것 같다.'라는 흘린 말에도 먹지 못하고, 잠을 줄여 무리하게 운동하며, 심지어 출처 불명의 다이어트 약을 사 먹기 시작해요. 결국, 쓰러져 입원한 헤이든은 와이어트에게 화를 냅니다. 나는 살이 빠졌는데, 더 이상 괴롭힘 당할 이유가 없는데, 와이어트는 자신을 괴롭게 하고 있으니까요. 동물처럼 학대할 때도, 한마디 하지 못했던 화를 이제서야 말이죠. 하지만 돌아온 건, 그렇게 오래토록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가 존재한 적 없다는 대답이었어요.

'오컴의 면도날'을 아시나요? 가장 간단한 대답이 옳다는 이론인데요, 뻔한 말 같지만 의외로 현실에선 잘 적용이 안 돼요. 교통사고가 났다면, 원인은 중앙차선을 넘어온 상대방 차량일 텐데, 그날 약속 시간을 변경해서 그 차량과 마주쳤다며, 원래 지하철을 타는 거린데 마침 파업이 일어나서 차를 몰고 왔다며, 가해자와 죄책감을 양산해내죠. 그렇게 따진다면, 사고가 난 이유는 '태어났기 때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몰라요.

보이는 것을 보이는 데로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어갑니다. 아는 것이 많아지고, 그래야 하는 것이 많아져서 그런 걸까요? 바다처럼 푸른 눈을 올망 거리며 샐러드를 양볼에 넣고 뇸뇸거리는 헤이든은 사랑스럽습니다. 안경을 쓰고, 조금 큰 바지를 입었지만 붉은 돼지도 사랑스럽습니다. 붉은 돼지는 아무도 괴롭힌 적 없고, 어떤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으며, 언제나 헤이든 안에 함께 살고 있었으니까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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