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미열

출간일: 2020.11.06

분량: 본편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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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나를 떠나지 마!"

아케론이 루키우스를 올려다보았다. 일그러진 얼굴이 눈물로 물들어 있었다.

"제발...... 제발......"

마부가 당황하여 말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서서히 멈추는 마차. 사내의 발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루키우스의 창백한 입술이 달싹거렸다.

"아케론."

사내는 흐느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죽을 테니까."

피로 물든 몸.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는 흙투성이 위에 무릎을 꿇었다. 마차의 틀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무너져 내리는 혼이 그것에 있었다. 루키우스가 얼어붙을 그 순간에 아케론의 입술 밖으로 헐떡거리는 숨이 흘렀다.

"죽을 거야."

충혈된 눈.

흐르는 눈물.

"죽을 테니까......"

고통에 쩍쩍 갈라진 목소리를 사내는 힘겹게 토해 냈다.

"내가 죽을 테니까."

고꾸라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척추가 도드라지게 몸을 웅크린 사내가 이마를 땅바닥에 깊이 박고 흐느꼈다. 그는 절규했다.

"...... 가지 마."

루키우스의 푸르스름한 입술이 달싹이는 순간, 마차를 움켜쥔 손이 흘러내렸다.

"책임져......"

거구의 몸이 애처롭게 떨렸다. 가늘게 떨리는 어깨가 늘어져 있었다. 사내는 더 이상 말을 내뱉지 못했다. 처참한 모습을 루키우스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숨을 멈추었다.

point 2 줄거리

기: 검투사 아케론, 집정관 마르쿠스의 노예, 이스카리아의 왕이라 불리는 그는 섬에 팔려 온 3년간 단 한 번의 패배도 없는 절대 승자였다. 검투장의 주인이기도 한 마르쿠스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아케론을 결코 팔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마르쿠스는 절벽 위 로마식 저택의 주인에게 아케론을 팔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아케론은 검투장을 떠나 저택의 주인, 루키우스의 노예가 된다. 그가 아케론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 매일 밤 자신을 안으라는 것!

승: 노예가 된 지 7년, 하지만 아케론은 로마의 개선장군 게르마니쿠스였다. 아케론은 금발의 가녀린 소년 루키우스를 안으면서도, 그를 창부마냥 무시했다. 반면, 루키우스는 아케론에게 시중들 노예를 붙여주고, 별채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해 준다. 한편, 아케론은 나날이 변해가는 마음을, 루키우스의 몸에 미혹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저택을 찾은 원로원 의원인 달마티카가 루키우스를 겁간하려 하고, 분노한 아케론은 그를 죽인다.

전: 아케론은 루키우스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편, 루키우스는 아케론을 살리고자 재판장에서 신분을 밝힌다. 그는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사촌이자 아케론의 원수, 포스투무스의 친동생이었다. 풀려난 아케론은 루키우스의 출신에도 불구하고 구애하지만, 루키우스는 아케론의 사랑을 냉정하게 쳐낸다. 아케론은 그런 루키우스를 술에 취해 잔인하게 강간하고, 후회하며 자해한다. 루키우스는 아케론을 용서하지만, 사랑은 인정하지 않았다.

결: 7년의 시간이 흐른 뒤 저택에 불이 나고, 루키우스는 갑자기 저택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여름, 루키우스가 돌연 나타나 아케론의 신분을 해방시키고 그를 로마로 보낸다. 작가 우티스가 쓴 로마사 '네체시스타스'가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었고, 그 책엔 누명을 쓴 게르마니쿠스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었다. 포스투무스를 경계한 황제의 도움이 더해져, 게르마니쿠스는 복권된다. 1년 뒤, 게르마니쿠스에게 아이깁투스로부터 온 루키우스의 편지가 도착한다.

point 3 전지 충의 Review: 숙명

'아울루스 셈프로니우스 달마티카' '우티스 루키우스 아르카디우스 풀케르'..... 주문 아닙니다. 사람 이름입니다. '게르마니쿠스 막시무스', 10글자 이름이 짧게 느껴지는 신비! 서양풍, 특히나 유서 깊은 가문 귀족님들이 많이 등장하는 소설은 눈이 뱅뱅돌아요. 그래서 손이 잘 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제 서재에는 동양풍이 서양풍에 비해 3배 정도가 많아요. 그럼에도, 서양풍을 완전히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역시 좋은 작품이 너무 많기 때문일 거예요.

'네체시스타'는 게르마니쿠스의 '노예 14년'입니다. 포스투무스에 의해 몰락해서 루키우스에 의해 부활 할 때까지, 노예 검투사 아케론이 잃어버린 자유와 숙명을 찾는 이야기죠. "로마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다."라는 작중 루키우스의 말처럼, 자유가 있어야만 숙명을 증명할 수 있을 테니, 결국 '존재하는 인간'과 '소유되는 노예'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자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 시민들의 유희를 위해 잔인하게 죽임 당하는 노예의 서사로 시작하지만, 사실 '네체시스타'는 고요한 절벽 위 저택을 배경으로 한 잔잔하고 애절한 서사를 메인으로 합니다. 스펙타클하다기보다는 서정적이예요.

게르만족의 정벌자, 그래서 게르마니쿠스가 된 (구)개선장군, (현)노예 아케론! 유례없는 승리와 수려한 외모로 로마인들의 영웅이 된 게르마니쿠스! 그의 개선식은 성대했습니다. 모두가 광란에 도가니였죠. 그리고 이 개선식은 아르카디우스 풀케르가의 두 사람의 인생을 바꿉니다.

한 사람은 당연히, 루키우스에요. 약한 몸을 가진 루키우스는 명문 풀케르의 흠이었고, 어머니는 루키우스를 절벽에 던져 죽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때마침 개선식을 열리고, 어머니는 루키우스를 놓고 개선식을 가요. 그 개선식이 루키우스를 살린 셈이죠. 다른 이는 포스투무스예요. 그는 동생을 살린 개선식을 보고, 개선식에 대한 선망과 집착을 갖게 돼요. 그리고, 이 꿈에 방해가 되는 상사 게르마니쿠스를 고발하기에 이릅니다.

"더 찾아봐라. 신이 너를 세상에 내린 이유가 한 가지는 있겠지." 연회에서 만난 로마의 영웅 게르마니쿠스는 어린 소년 루키우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루키우스는 자신의 숙명이 게르마니쿠스에게 닿아 있음을 확신하죠. 신이 세상에 나를 내린 이유, 그것이 진짜 숙명이라면 말이에요. 반면, 게르마니쿠스의 숙명은 '생존'이었어요.

과거 게르마니쿠스는 승리에 기쁨에 도취되어 보지 못한, 전쟁의 참상을 직시하게 됩니다. 게르마니쿠스는 더 이상 영토를 넓히기 위한, 무용한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쟁을 하지 않으면 개선식도 없죠. 게르마니쿠스의 부관인 포스투무스는 겁쟁이가 되어버린 상관에 크게 실망합니다. 왜냐면, 포스투무스의 숙명이 바로 '개선식'이었으니까요. 결국 포스투무스는 게르마니쿠스를 이민족과 밀회하여 로마를 배신한 반역자로 몰고, 게르마니쿠스는 소중한 벗 군나르를 남기고 홀로 도망칩니다. 그리고, 반드시 살아남으라는 그의 유언이, 살아남은 게르마니쿠스의 숙명이 되죠.

그런데 문제는, 게르마니쿠스와 포스투무스의 숙명이 명료한 데 비해 루키우스의 숙명이 모호하는 거예요. 루키우스는 자신의 영웅, 구원자, 사랑하는 게르마니쿠스를 위해 남은 수명을 쓰려 합니다. 그러면서도, 검투장에서 환호 받는 게르마니쿠스를 보고, 가지고 싶은 욕망도 생기죠. 결국, 루키우스는 게르마니쿠스를 옆에 두고 아끼며, '네체시스타'를 통해 그의 명예를 찾아주려고 합니다. 좋은 음식, 편안한 잠자리, 안온한 생활, 그리고 자유를 주려 해요.

하지만, 루키우스의 계획이 어그러집니다. 창부같이 구는 자신을 혐오해 마지않던 게르마니쿠스가 점점 변하면서요. 그가 절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노예 아케론을 주인으로서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대쪽 같은 장군 게르마니쿠스는 사랑에 있어서도 우회로를 몰랐어요. 사랑을 자각한 게르마니쿠스는 폭풍처럼 루키우스를 몰아칩니다. 그의 형과 사촌, 심지어 신분도 막을 순 없었죠. 루키우스가 애타게 부르던 '장군'이 자신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그'라는 것만이 중요했어요.

루키우스의 몸에는 종양이 자라고 있었고, 로도스 섬의 밀교조차도 치료에 도움이 되지 못했죠. 간신히 위험한 진통제를 먹으며 '네체시스타'에 몰두 하던 루키우스에게, 아케론은 사랑하지만 사랑하면 안되는 사람이었어요. 게다가, 게르마니쿠스의 복권은 포스투무스의 몰락을 의미하죠. 루키우스는 게르마니쿠스가 마땅히 해야 할 복수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루카우스는 결국 이 사랑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네체시스타'는 전형적인 비극의 서사를 가지고 있어요. 병약한 주인공과 원수의 혈연, 생명을 태워 숙명을 이룬 헌신적 사랑... 하지만, 놀랍게도 '네체시스타'는 해피엔딩입니다. 포스투무스는 죽거나 노예가 되지 않고, 루키우스도 아이깁투스에서 수술을 받아요. 흐름상 튀는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급건강해진 주인공과 쉽게 벗은 복수의 고리,,, 그럼에도 왜일까요? 어색해도 해피엔딩이라 좋아요. 정말, 죽~~도록 마음 고생한 둘의 행복한 모습이 흐뭇해요.

이번 리뷰를 쓰면서, 정말 이름... 후덜덜하네요. 웬만해선 4글자를 넘지 않는 동양의 작명 전통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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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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