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9.09.09

분량: 본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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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하언아. 흠이 아닌 것도 내가 흠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흠이 되더라."

"......"

"그러니까 너는, 나를 좋아하는 너를 흠으로 여기지만 않으면 돼."

서노영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가 코끝을 찡그리며 장난스레 웃어 보였다.

"그거면 돼. 그러니까 맞고 다니지 말고."

서노영의 시선이 검붉게 물든 내 광대 위를 안타깝게 맴돌았다. 그의 머리 위로 달빛이 번져 보였다. 문득, 이 사람을 좋아하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멈춰 섰다. 하고 싶은 말은 무척 많았다. 생각을 정리하느라 잠시 까맣게 물든 호수 위로 시선을 던졌지만, 어떤 말도 섣불리 꺼낼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을 단박에 부정하고 싶었으나 망설여지는 것은 내가 여전히 무언가를 걱정하고 있기 때문일까? 단지 상대의 성별이 바뀐 연애일 뿐인데 보통의 연애와는 완벽히 다른 지점이 생긴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서노영의 잘못이 아니었다.

가슴이 아릿했다. 안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속상한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 콕 짚을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너를 좋아하는 나를 흠으로 여기지 말라니. 그가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도록 내가 상처를 준 걸까. 아니면 그의 일상에 자연스레 쌓인 버석버석한 모래일 뿐인 걸까. 슬펐다.

point 2 줄거리

기: 복학 후 자취방을 찾던 정하언은 보증금 오백에 월세 삼십, 풀옵션인 반옥탑방을 발견한다. 잘생긴 주인은 성격도 좋았고, 월세도 5만 원이나 깎아줬다. 이웃이랑 친구가 하고 싶었다는, 옆집에 사는 주인의 첫인상은 좋았다. 하지만, 게이인 이웃집 집주인은 하언에게 추파를 던지기 시작한다. 소심한 하언은 좋은 조건에 호의적으로 집을 빌려 준 주인, 서노영에게 갖은 희롱을 당하면서도 제대로 대거리를 하지 못한채 피해만 다닌다.

승: 하언은 서노영을 밀어내기 위해 무례한 행동을 하지만, 서노영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이 하언의 주위를 맴돌았다. 사실, 서노영은 이것만 빼면 최고의 형이었다. 배려심 깊고, 센스 있고, 세심한 이웃이었다. 하언은 점점 노영에 마음을 알고도 애매하게 대하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하언의 학교 축제에 오게 된 노영은, 하언의 친구들이 하언의 여자친구에 대해 떠드는 것을 듣는다.

전: 사실, 하언과 같이 알바하는 윤희가 과팅에 나오고, 하언의 친구들은 다정한 두 사람을 보고 사귄다고 오해한 것이었다. 노영은 하언에게 묻고, 하언은 노영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한다. 하언은 화를 내는 노영에게 그간 참았던 이야기를 쏟아낸다. 이후, 노영의 하언을 무시하고 투명하게 대한다. 노영의 태도가 변하고서야, 하언은 노영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죄책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 한편, 사이가 안 좋던 강준수는 하언에게 게이 아니냐고 비꼬고, 순간 욱한 하언은 강준수와 주먹다짐하다 경찰서에 가게 된다. 터진 얼굴로 돌아온 하언을 본 노영은 집에 불러 치료해 주고, 하언은 여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 한 사실을 고백한다. 노영은 하언의 마음을 알아챈다. 그리고, 하원과 노영은 조심스럽게 연애를 시작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사랑은 불편함을 싣고

다른 리뷰어님들은 어떻게 작품을 선정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경우는 <매우 별로, 별로, 보통, 좋음, 매우 좋음> 5 단계로 작품을 구분한다면, <좋음>과 <매우 좋음>은 왠만하면 쓰고, <별로>는 때때로 쓰고, <보통>과 <매우 별로>는 왠만하면 쓰지 않아요. 좋은 작품은 수다 거리가 많고, 또 살짝 아쉬운 작품도 이야깃 거리가 많습니다. 하지만, <매우 별로>는 욕만 하게 되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보통>은 할 말이 없어요.

저에겐 선명님 작품이 대부분 <보통>이었죠. 네임드 작가님이고, 유명한 작품도 많은데... 저는 다소 심심하더라고요. 아마도 저와 잘 안 맞았었나 봅니다. 돈이 아까운 작품은 없었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도 꼽기 어려웠죠. 몇 작품은 리뷰를 쓰다가, 중도 하차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집 집주인'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작품이었어요. 완전 잊고 있었죠. 그러다 핑크빛 표지가 갑자기 눈에 띄어 재탕하게 됐는데... 또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갈등을 푸는 동기! 저는 '불편하기 싫어서'가 가장 많은 것 같아요. 껄끄러움을 피하려고, 원만한 해결을 고심하죠. 그런데 가끔 그것이 불가능한, 제대로 꼬인 관계가 있어요. 대다수가 지극히 감정적으로 촉발 된 것들인데, 그냥 싫거나 그냥 좋은 경우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해요. 특히나, 한쪽만 그냥 좋은 경우는... 무시조차 할 수 없는, 진정 곤란한 사태를 야기합니다. 그 어색함이 싫어, 내가 나를 설득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해요.

하언의 경우가 그렇죠. 노영은 하언에게 '매우' 공을 들입니다. 노영은 하언의 서툰 삽질조차도 사랑스럽게 감싸주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요즘은 열 번 찍기 전에 경찰서행이겠지만, 어쨌든 노영은 하언을 열심히 찍습니다. 그리고 잘 나가는 미남 작곡가, 돈도 많고 센스도 있는 이 남자! 게이인 것만 빼면 완벽한 이 남자에게 하언의 마음은 점점 기울어요. 하지만, 하언에게 '동성애'는 넘사벽이었고, 결국 노영을 밀어내기로 결정하죠.

'우리애기~ 우리애기~'하던 노영은 '너가 어떻듯 나랑 무슨 상관?'으로 돌변합니다. 노영은 취향인 하언에게 한눈에 반했고, 열심히 어필했어요. 하지만 하언은 노영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호하게 피하는 태도로 일관했죠. 그것이 하언 딴에는 간접적 거절이었겠지만, 분명 노영에게 예의 있는 태도는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노영은 받아줬습니다. 이상한 옷을 빌려 입고 왔을 때도, 타박하기보다는 잘 어울리는 옷을 사주면서요. 하지만, 여자친구건은 확실한 기만이었어요.

노영은 폭발합니다. 하언도 폭발해요. 그런데, 두 사람의 대화가 오묘합니다. 노영은 하언의 행동에 대해 화를 내지만, 하언은 횡설수설해요. 하언은 후한 형과 잘 지내며, 조건 좋은 자취 집에서 살고 싶었지만, 게이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노영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않고, 상황만 모면하려 해요. 결국, 노영은 그런 하언의 태도에 폭발했고, 하언은 이런 상황에 이르러서도 궤변을 늘어 놓습니다. 물론, 하언은 실패하고, 노영과는 불편한 관계가 돼요.

하언은 냉정해진 노영를 보며 못 견뎌해요. 무시 받는 것이 서러워 술 먹고 우는소리도 해보지만, 노영은 더 이상 다정하게 하언을 받아주지 않아요. 그러다 강진수 사건을 겪으면서, 하언은 확신합니다. 게이가 되는 것보다, 노영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걸 말이에요. 하언은 노영에게 다가갑니다.

노영의 계기는 하언의 외모였고, 하언의 계기는 불편함이었죠. 하지만, 계기가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두 사람은 서로 알아 갈수록 깊이 빠져듭니다. 애당초 하언을 좋아했던 노영조차도 놀랄 정도로요. 노영은 연애 순둥이 하언을 잘~ 리딩 합니다. 연상 다운 노련함과 편견을 먼저 경험한 선배의 현명함으로, 당근과 채찍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죠. 물론, 쩔쩔매면서도, 노영에게 매달리는 연하남 하언에게도 귀여움이라는 큰 무기가 있고요.

하언은 '성장했다.'보다 '철들었다.'가 더 잘 어울리는 수였어요. '이웃집 집주인'이 수시점이기 때문에 더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문득, 선명님 작품이 거품은 없지만 심심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서재에 방치된 선명님의 작품을 차근차근 재탕해 봐야겠어요. 첫 정독에는 몰랐던 재미를 발굴하는 묘미! 이것이 재탕의 매력이죠.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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