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9.02.14

분량: 본편 5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창밖으로는 어느새 짙은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9월이 되면서 거짓말처럼 해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저녁 8시면 해가 저물기 시작해서 9시가 지나면 완전히 어두워졌다. 이제 매일 조금씩 더 짧아지겠지. 11월이 되면 오후 네 시만 돼도 어두워질 것이다. 그리고 12월이 되면 오후 3 시에 해가 진다. 극야가 시작되는 것이다.

백야가 강제로 며칠씩 현실에 붙들려 있는 느낌이라면, 극야는 반대로 종일 꿈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다.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고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깨어 있기 위해 커피를 물처럼 마신다. 거리의 악사들은 흥겨운 곡을 연주하고 네온사인 불빛은 더욱 화려해진다. 극한의 밤을 견뎌내기 위해, 다들 필사적이 된다.

point 2 줄거리

기: 북유럽 연맹 수장국인 에시르는 강력한 전제정을 유지하고 있다. 에시르의 왕세자 리욘은, 군주의 덕목을 두루 갖춘 완벽한 후계자였지만, 병약한 선왕이 중국계 제노스 라우지엔을 왕비로 맞이하면서 위기를 겪는다. 제노스는 염동력과 정신감응능력을 지닌 초능력자였고, 라우지엔은 친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리욘의 형을 죽이고, 리욘 역시 제거하려 한다. 리욘은 대관식까지 왕비로부터 자신을 지켜 줄 제노스 경호원 제이를 부른다.

승: 7년 전, 2황자였던 리욘은 왕립 사관학교 방학 때 제이를 고용한 적 있었다. 리욘은 왕비에 대한 반발과 남성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거부감에, 제노스인 제이를 박대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그를 믿게 된다. 하지만, 리욘은 왕자비 베아테에 의해 미약을 먹고 심신상실에 빠져, 제이를 강간하게 되고, 오해를 풀 기회도 없이 둘은 헤어진다. 이후, 제이는 리욘의 딸 시그니를 낳아 키우고, 약속대로 왕세자가 된 리욘은 제이를 호위로서 궁에 부른다.

전: A급 제노스인 제이는, S급 제노스로 추측되는 왕비와 싸우기 위해, 몸에 맞지 않는 호르몬제를 투입하고, 하혈하는 모습을 리욘에게 들킨다. 리욘은 왕비는 제노스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제이에게 키스한다. 리욘은 제이와 헤어진 뒤에 계속 제이를 그리워했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었다. 한편, 제이는 왕비를 돕는 진짜 제노스 앨런을 만나고, 자신보다 뛰어난 앨런으로부터 리욘을 지키기 위해, 리욘의 아이를 가지려 한다.

결: 제이는 임신하고, 앨런에게 큰 부상을 입히는데 성공하지만, 본인도 만신창이가 된 채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그동안 제이는 리욘에게 임신과 유산, 그리고 시그니의 존재도 들킨다. 리욘은 제이에게 청혼하고, 시그니를 후계자로 만들려 한다. 한편, 버림받은 베아테와 왕비 라우지엔은 제이를 노리고, 리욘은 왕비를 총살한다. 분노한 앨런은 리욘을 대관식에서 죽이려 하지만, 리욘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하고, 무사히 왕의 자리에 오른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디테일 갑, 설정 덕후, 탄탄한 세계관, '대화'는 보너스예요~

과학시간, 처음 본 프리즘의 참 신기했습니다. 세모 같기도 하고, 네모 같기도 한 두툼한 유리 조각은 심심하기 그지없는데, 빛을 비추니 물감을 쏟아 낸 것처럼 선명한 색들이 하얀 바닥 위에 번졌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럼에도 어떤 책을 보면 그 프리즘이 떠오릅니다. 책을 열어보기 전까지, 북 커버로 예상 가능한, 그 이상을 보여주는 책들이 꼭 오색 빛깔을 숨긴 시크한 유리 덩어리 같아서요. 빛이 비추기 전까지, 내가 읽기 전까지, 평범함을 가장하죠.

'극야'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공을 돋보이게, 수를 불쌍하게 만들기 위해, 피폐는 더 피폐하고, 달달은 더 달달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에피소드와 줄거리가 독주하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현재-과거-현재의 구도 중, 과거 부분이 설정 설명과 맞물려서 있어, 다소 장황해 몰입감이 떨어질 수 있어요.

많은 설정을 포함한 세계관과 강한 디테일은 강점이자 단점이 되는 셈이죠. 첫 장면이 7년 뒤 제이가 신분세탁을 당하고(?) 경호원으로서 리욘을 만나러 가는 씬인데, 제노스의 탄생 배경과 제노스가 고용되어야 하는 왕실 사정, 그리고 리욘이 제노스인 제이를 신뢰하게 된 과거사가 나열된 뒤에야, 비로소 대관식까지 리욘을 지켜야 하는 제이의 고군분투기가 이어지죠. 본격적인 전개는 2권부터 진행된다고 보심 될 듯합니다.

사건과 사건을 잇는 전개는 빠릅니다. 공이 수를 만났고, 공이 비운의 과거를 가진 황자여서 수를 거부했다가, 우연히 수와 뜨밤을 보낸 뒤 잊지 못해, 수를 경호원으로 불렀고, 알고 보니 딸이 있었다! 사건을 보면서, 다음 사건을 추측하게 되죠. 하지만, '극야'는 사건을 '잇기'보다는 서사를 '쌓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전개가 느립니다. 하지만, 탄탄해요. 글 초반에 제이가 되뇌는 마키아벨리의 명언은 극 후반에 리욘의 '결정'을 암시하고, 부녀의 다정한 시간을 묘사했던 장면 속 시그니의 행동은, 리욘이 딸의 존재를 알아채는 결정적 계기가 되죠.

'극야'에서 킬링 포인트나 감정 폭발 장면, 명대사는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은 계속 일상적 대화를 충실히 적립합니다. 흡사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극야'는 낮은 계단을 꾸준히 밟아 올라 절정으로 향한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쳐지거나 지루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 전개가 촘촘하고 짜임새 있어서, '아! 그래서!!!'라는 보물 찾기와 같은 쾌감을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디테일도 감동적입니다. BL이 대부분 가상의 세계관을 설정하고 있고, 내용이 클리셰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디테일이 약하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많아요. 가령, 집착광공 황제라고 설정해 놓지만, 보다 보면 말만 쎈 순둥이예요. 캐릭터를 뒷받침 할 디테일은 없고, 그러다 보니 사건마다 행동엔 일관성이 없고... 킬탐용이라고도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볍고 캐주얼하다는 게, 헐겁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유쾌한 명작들도 많아요. 그런 점에서 '극야'는, 조사한 자료를 다 쏟아 놓겠어!라는 정보 자랑 한마당도 아니고, 캐릭터에 맞게 필요한 설명을 잘 녹여 넣었죠. 균형이 맞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리욘은 절대적 권위를 지닌, 저세상급 고귀한 왕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리욘은 북유럽 연맹의 수장국이자, 강한 왕권을 유지하고 있는 에시르의 왕세자지만, 세계엔 '상징적' 왕만 존재하거나, 아예 왕이 없는 국가도 많습니다. 물론, 2021년을 사는, 에시르 국민들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리욘은 왕권을 휘두르면서도 대중 '정치'를 하고, 초법적 결정으로 베아테를 죽이면서도, 에시르 국적이 아닌 제이에게는 양육권 소송을 하겠다고 말해요. 리욘은 치열한 모략의 한복판에서도, 대외적 품격을 잃지 않죠. 리욘은 차가운 듯, 뜨거운 듯, 강압적인 듯, 회유하는 듯, 왕도 되고 제이도 얻어요.

제노스도 단순히 연구소에서 양산된 불쌍한 초능력자로 그리지 않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염동력과 정신감응능력을 지닌 돌연변이가 출현했고, 국가들은 그들을 '개발'하려 합니다. 하지만, 1세대를 통해 만든 2세대가, 2세대보다 3세대의 능력이 확연히 떨어졌죠. 그리고, 연구소가 해체된 뒤, 그들의 '이능'은 텔레키네시스 신드롬이라는 질병으로 명명되고, 제노스는 일반인 사회에서 함께 살게 돼요. 물론, 다름에 대한 차별은 존재했고, 제노스들끼리 뭉쳐 용병부대를 만들기도 하지만, 21세기에 사회는 그들을 '특이한 일반인'으로만 여겨요. 21세기 상식에 맞춰서 말이에요.

물론, 아쉬운 디테일들도 있습니다. 제노스의 힘을 증폭시키기 위해서 호르몬제를 투입하거나 임신을 해야 하는 설정은... 정말 BL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설정이 있어서, 사랑스러운 시그니가 태어나고, 리욘을 거부했던 제이가 그와 뜨밤을 선택하게 되는 거지만!!! 다소 제노스의 탄생 배경에 비춘 다른 능력들과 결이 달라 튀는 느낌이었어요.

또, 앨런도요! 앨런은 제이의 존재를 알고 지켜보고 있었지만, 동시에 제이가 자신과 죽고 죽이는 관계가 되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게다가 먼저 적의를 밝히고, 수락할 수 없는 협상을 시도하죠. 앨런은 얼굴을 바꾸고, 신분을 위장하고, 왕과 카이옌 왕세자를 해치며, 긴 시간 공을 들여 라우지엔의 세력을 형성합니다. 하지만, 제이에게는 지나치게 여지를 남기는 일들을 해요. 물론, 똑같은 A급 능력자지만, 장기간 투여한 호르몬제로 인해 제이를 이길 자신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라우지엔을 위해 살았던 절실하고 처절했던 앨런의 삶에 비추어 봤을 때, 의아했어요. 절실함이 밀당이 되던가 싶고 말이죠.

마지막으로, 제이와 리욘의 첫 만남! 여러 번 반복되기도 하고, 중요한 설정이기도 하죠. 제이가 아이슬란드를 찾는 이유이고, 그때 리욘이 제이를 위로했던 동화 속 주문은 잊을 만하면 나옵니다. 또, 그 동화 속 주인공 '시그니'는 두 사람의 소중한 딸의 이름이, '리니'는 아들의 애칭이 돼요. 하지만, 리욘은 마지막까지 그 '첫 만남'을 모릅니다. 좀 더 극적 장면을 연출하는데 활용되거나, 후발 사건에 연쇄적 효과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 거라고 예상했고 읽었던 지라, 아쉬움이 남았어요.

소설은 '백야' 파트와 '극야' 파트로 나뉘어 있어요. 백야는 7년 전 2황자와의 일화를, 극야는 7년 뒤 왕세자가 된 리욘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그리고, 작가님은 '백야'는 '강제로 붙들려진 현실', '극야'는 '갇힌 꿈'이라고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그 극야를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이 된다고도요. 어쩌면, 돈 때문에 고용된 용병이자 혐오스러운 에일리언 제노스, 유약한 형을 방패로 살아남아 왕이 되어야만 하는 2왕자, 미약을 먹여서라도 아이를 가져 왕비가 되고 싶은 왕자비, 이것들이 그들의 현실이었을지 모릅니다. 어둠이 없는 밤처럼, 숨을 곳도 쉴 곳도 없는 명확한 현실이요.

하지만, 사고에 휘말려 제노스는 부모가 되고, 비정한 현실을 살던 2왕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습니다. 그리고 7년 뒤 두 사람은 만나죠. 현실의 이탈이 꿈이라면, 분명히 두 사람의 재회는 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야, 극야, 오로라, 인간에게는 기적 같은 현상이지만 자연에게는 당연한 일상들이, '극야'의 내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북유럽... 가보고 싶네요. 뜬금포 결말로 마무리 지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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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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