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조은세상

분량: 본편 1권

point 1 한 컷

point 2 줄거리

기: 미대 동기인 미키 히라쿠와 츠루마 류, 츠루마는 미키를 10년간 짝사랑 중이다. 물론, 여러번 고백하긴 했지만, 서글서글한 미키는 두리뭉실하게 대답을 회피했고, 그렇게 둘은 친구 관계를 유지해왔다. 30살인 된 미키는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 츠루마는 촉망받는 화가가 되었다. 그리고, 츠루마는 미키에게 마지막 고백을 건넨다. 더 이상 친구로 있기 힘들어진 츠루마는, 미키에게 이별을 고한다. 미키는 충격을 받는다.

승: 미키는 할머니 핑계를 대고 츠루마를 집으로 부른다. 그리고, 츠루마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한다. 미키는 츠루마를 남에게 빼앗기기 싫었고, 츠루마가 고한 대로 '이별'한 채로 살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미키는 츠루마의 마음에 응하고, 두 사람은 사귄다. 하지만, 10년 차 사랑과 1년 차 사랑의 속도를 달랐고, 두 사람은 10년간의 일상과 같은 듯 다른 나날을 보내게 된다.

전: 한편, 츠루마의 그림이 전시되고, 미키는 인기 화가 츠루마의 일면을 보게 된다. 친구였을 때는 자랑스럽기만 한 재능 있는 화가 츠루마가, 연인이 되고 나니 프로페셔널하게 감상자와 갤러리 관계자를 대하는 모습에 괜히 뾰루뚱해졌다. 그제서야 미키는 대학교 시절부터 늘 있었던 츠루마의 여자친구에게 질투심을 느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 미키와 츠루마의 마음은 닮아가기 시작하고, 둘은 드디어 거사(?)를 치른다. 미키는 그제서야 츠루마에 대한 감정을 확실히 알게 된다. 둘은 온천여행을 떠나고, 그 료칸에 걸린 츠루마의 그림을 본다. 미키는 츠루마가 탄생시키는 화폭 속 세상을 계속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60이 넘어서도, 계속 그림 그리는 츠루마와 함께 있을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한편, 누나의 임신 소식과 함께 미키는 독립을 결심한다. 미키와 츠루마는 새로운 일상을 함께 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어리버리 친구들

최근 읽은 찐친들의 리얼 러브 라이프! 소설로는 '짝사랑의 비밀', 만화로는 이 작품이 있습니다. 명대사 명장면은 없지만, 잡스런(?)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있죠. 물론, 미키를 좋아하는 츠루마는 제법 멋지게 보이려 노력합니다만... 이미 서로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쉽지 않아요. 결국, 츠루마는 미키와의 이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죠. 아무리 긴 시간이 있어도, 관계가 변하긴 어려울 테니까요.

누가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하던가요? 미키는 츠루마가 없는 생활을 상상하니 너무 어색했습니다. 곁에 있는 것이 너무 당연해 갑자기 두근두근해지기 힘든 관계, 하지만 떨어지고 나니 곁에 없으면 너무 허전한 사람이 된 거죠. 미키는 츠루마와 사귀기로 합니다. 다소, 그 결정이 의아한 츠루마였지만,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남자였어요.

그런데 어찌 보면 '평생 같이 있고 싶다.' '이 사람이 없으면 나는 너무 외롭다.'라는 감정은, 친구나 연인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결국, 미키는 츠루마가 자신을 좋아하는 감정과, 자신이 츠루마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 같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다만, 그전에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었죠. 바로 스킨쉽입니다. 연인이라면 해야 하는 것! 츠루마는 아리까리 우왕좌왕하는 미키를 몰아붙여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남자였거든요.

고비(?)를 넘고 나니, 다음은 쉬웠습니다. 두 사람은 10년 넘게 친구로서 함께 해온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을, 연인으로 함께 할 당연하고 평범한 미래의 자양분으로 삼습니다.

사실, 어떤 계기가 있기 전에는, 결코 깨닫기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황사 철이 돼야만 느껴지는 맑은 공기의 참맛이라든가, 외지 생활을 하고 나서야 그리운 집 밥이라든가, 떠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인연이라든지요. 당연히 후회를 피할 순 없지만, 의미 없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가령, 비 온 다음날 아침 공기를 좋아하게 되거나, 엄마표 집 밥을 따라 만들다 보니 제법 요리 재주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처럼, 나에게 어떤 흔적으로 남아있죠.

결핍을 메우면, 의미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허전하고, 후회되고,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그건 내가 소홀히 여겼던 내 안에 땜빵들이 보내는 신호 일지도 몰라요. 나도 의미가 되고 싶다! 땜질을 해달라!!! 라면서요. 저는 가끔 제 안에 파업 중인, 징글징글한 그들의 이미지를 그릴 때가 있어요. 이렇게 좋을 줄 알았다면, 10년 전부터 사귈걸!이라고 말할 만한 촉촉한 후회가 없다는 것이 현생과 가상세계의 차이긴 합니다...... 조금 슬프네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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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주)현대지능개발사

분량: 본편 1권

point 1 한 컷

point 2 줄거리

기: 어릴 때부터 게임이 만들고 싶었던 미사키는 전문학교에 입학한다. 제법 재능도 있기에 자신만만했지만, 그곳엔 카나메라는 진짜 천재가 있었다. 하지만, 카나메는 사회성이 없었고, 덕분에 쉽게 미움을 샀다. 그러다 과제 USB가 도난당하면서 진급을 못할 위험에 처하고, 그때 마사키가 카나메를 도우면서 간신히 진급 과제를 제출한다. 성격 좋은 노력파 마사키를 카나메는 좋아하게 되고, 두 사람은 친해진다.

승: 카나메는 점점 마사키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었지만, 마사키는 점점 열등감에 시달린다. 마사키에게 카나메는 더 이상 대단한 동기도 라이벌도 아니었다. 그냥 넘을 수 없는 절벽이었고, 마사키는 점점 좌절에 빠진다. 그러다, 카나메는 마사키가 동경했던 '골드 게임스'에 스카우트되고, 마사키는 더 절박한 심정으로 '골든 게임스' 입사를 준비한다. 그런 마사키를 도우려다 카나메는 마사키의 열등감을 자극하고, 마사키는 폭발한다. 둘은 그 상태로 졸업한다.

전: 그 후 미사키는 원래 하고 싶었던 모델러는 아니지만 언젠가 모델러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CG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형 프로젝트에서 마사키가 아닌 '골드 게임스'를 나와 프리로 일하던 카나메가 모델러를 맡게 된다. 둘은 그렇게 재회하게 된 것이다. 카나메는 여전히 뛰어났고, 또 여전히 마사키를 좋아하고 있었다. 마사키는 한결같은 카나메의 마음에 넘어가고, 프로젝트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연인이 되어 있었다.

결: 두 사람은 함께 게임을 제작하기로 하지만, 마사키는 극복하지 못한 카나메에 대한 질투심과 깊어지는 사랑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결국 마사키는 게임을 그만두고 도망친다. 그 후 편의점에서 일하던 마사키는 카나메가 모델링 한 게임을 하고, 잊었던 꿈을 떠올리게 된다. 마사키는 다시 시작한다. 게임회사에 재취업해서 실력을 키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사키는 카나메가 만든 게임 회사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point 3 전지 충의 Review: 지긋지긋한 열등감!

오게레츠 타나카님 하면, '이스케이프 저니'나 '플레잉☆보이부'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물론, 저의 원픽은 '이스케이프 저니'지만, 모두 사랑스러운 작품이에요. 오게레츠 타나카님 작품의 특징은 섬세한 심리묘사라고 생각합니다. 캠퍼스물이든 뽕빨물이든 시리어스물이든, 뻔한 스토리를 오게레츠 타나카답게 만드는 매력이기도 하죠. '데이지 젤러시'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스토리는 전형적인 '그'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까칠한 성격의 천재와 사교성 좋은 범재의 만남, 그리고 천재의 순애보에도 열등감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는 범재의 이야기... 둘의 갈등은 범재의 폭발로 시작해서 극복으로 봉합되죠. 연애에 서툴지만 사랑에 우직한 천재와, 연애엔 능숙하지만 사랑엔 우왕좌왕하는 범재의 좌충우돌 연애담이에요. 다만, 오츠카레 타카가님이 그 뻔한걸 뻔하지 않게 쓰시는 금손이시죠. 역시, 차별점은 디테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사키는 어릴 때부터 게임이 좋았어요. 게임을 즐겼고, 또 모델링을 취미 삼아 할 정도로 재능도 있었죠. 하지만, '나 좀 한다.'고 생각한 마사키는 전문학교에서 진짜 천재를 만났습니다. 처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좋은 자극제라고... 세상은 넓고, 저렇게 잘하는 사람도 있으니, 분한 마음에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말이에요. 그 천재는 말만 하면 주변에 미움을 샀고,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어요. 재능 이외에는 분명 부족한 부분도 있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진급과제도 도와준 거였어요. 열심히 하는 카나메가, 열심히 하지 않는 동료들의 시기로 진급이 누락되는 것이 싫어서... 노력하는 자는 노력하는 만큼 인정을 받아야 분하지 않은 거니까요.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카나메의 첫사랑은 시작되지만, 미사키의 열등감은 본격화돼요. 어깨너머로 보던 천재성을 가까이서 보니, 애당초 카나메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것 조차 어불성설이었죠. 마사키는 더더더 노력합니다. 주변에 걱정을 살 정도로 피폐해지지만, '골드 게임스'가 선택한 사람은 결국 카나메 뿐이었어요.

 

 

그 후 4년의 시간이 흐릅니다. 마사키는 원하던 모델링일은 하지 못했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었어요. 언젠가 이렇게 성장하다 모델링 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희망하면서... 하지만, 그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을 때, 신예 프리 모델러 카나메가 등장합니다. 마사키는 어른이 됐고, 비록 자신이 바라던 일은 카나메가 하게 됐지만, 학교를 다닐 때처럼 심한 열등감이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간 한 번도 변한 적 없다는 카나메의 일편단심에 감동을 하죠.

두 사람은 연인이 되어 행복한 연애를 합니다. 프로젝트는 끝나고, 마사키와 카나메는 게임을 만들기로 해요. 하지만, 마사키의 열등감은 극복된 게 아니었어요.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카나메와의 실력차는 절실히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카나메가 자신에게 실망을 해주길 바랍니다. 카나메는 연인으로서, 동료 개발자로서, 마사키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그런 카나메의 모습이 오히려 마사키를 더 비참하게 만들어요. 마사키는 결국 평생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선택을 하게 됩니다. 바로, 게임을 포기하는 거 말이에요.

 

 

물론, 마사키는 극복합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초심으로 돌아가죠. 사실, 마사키가 전문학교에 간 건,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지 카나메만큼 모델링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잖아요. 하지만, 어느 순간 카나메라는 목표가 생기고, 아무리 노력해도 마사키는 초라해지기만 하고 더 나아지지는 않는 것 같았죠. 하지만, 사실은 열심히 나아지고 있는 거였어요. 별에 닿지 않아도 별을 향해 나아가는 우주선처럼, 위대한 도약을 하고 있는 중이었던 거였죠.

참 어렵습니다. '목표'라는 것이 생기면, '실패'가 생기는 까닭에요. 그리고, '실패'라는 것은 그간의 노력을 무효화할 뿐만 아니라, 초심과 자존감마저 앗아갑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이것만 해도 훌륭하다! 스스로를 다독여도 안되니, 자기개발서 좀 읽는다고 '나는 이미 충분하다.'는 마음이 생길리가 없습니다. 1%의 성공률이면, 사실상 성공할 수 없다는 문장의 숫자적 표현인데도, 1%는 성공한다. 나도 1%가 될 수 있다.는 해석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 가끔 경악스럽습니다. 열등감은 학습되고, 학습된 열등감은 체화되죠. 어느 순간 내 영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샴쌍둥이같이 되어 버려요.

정말 지긋지긋한 열등감입니다. 저 역시 '극복'이라는 단어를 쓰긴 했지만, 열등감이 극복의 대상은 아니죠. 마사키도 정확는 '극복'을 한건 아닙니다. 단지, 익숙해진 거죠. '인정'해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괴로운 게 열등감이니까요. 마사키는 초심으로 돌아갑니다. '나, 마사키는 게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건 목표도 아니고 비교할 필요도 없지만, 가장 흔들림 없는 진심이었어요. 나의 초심은 무엇인가? 나의 '열심히 사는 방법'은 틀리지 않았나? 저에겐 이런 질문들이, 지긋지긋한 열등감과 익숙해지는 노력인 것 같아요.

더불어, 천재 여러분! 열등감을 느끼는 존재의 일을 대신해 주거나 섣불리 위로하려 들면, 그들은 존재가 지워지는 절망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카나메 역시 '골드 게임스' 입사 준비로 무리하는 미사키에게 그냥 본인의 모델을 쓰라고 하고, 게임 개발할 때에도 본인과의 실력차로 힘들어하는 줄도 모르고 계속 위로하려 합니다. 이로 인해 두 번이나 이별을 겪어야 했고, 카나메는 교훈을 얻습니다. 그 후엔, 그냥 기다려 줍니다. 미사키가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말이죠.

결론은 해피엔딩입니다. 해피엔딩인 줄 알았지만, 해피엔딩이라 정말 다행이에요. 열등감을 너무 리얼하게 다룬 작품이어서, 열등감쟁이인 저는 너무 몰입해 버렸거든요.

※ 동일 작가의 다른 만화 리뷰

 

2020.08.19 - [BL 만화] - [현대물/일상물/잔잔물] 오게레츠 타나카 - 이스케이프 저니

 

[현대물/일상물/잔잔물] 오게레츠 타나카 - 이스케이프 저니

제목: 이스케이프 저니 작가: 오게레츠 타나카 출판사: (주)현대지능개발 출간일: 2017.03.24 분량: 본편 3권 ​ # point 1 한 컷 # point 2 줄거리 기: 사교성 갑인 나오토는 자신과 같은학교 같은학과에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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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BIBLOS

분량: 본편 1권 + OVA

point 1 한 컷

point 2 줄거리

기: 쿠로다는 인형사다. 그가 만드는 인형은 하이브리드 차일드(HC)! 기계도 사람도 아닌, 주인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명문가 이즈미가의 예비 당주 코타로는 HC 하즈키의 주인이다. 어느 날 하즈키가 쓰러지고, 코타로는 하즈키를 데리고 HC 인형사인 쿠로다를 찾는다. 하즈키는 초기 모델로 수명이 다 한 상태였고 고칠 수 없었다. 코타로는 새로운 HC를 구매하라고 조언했지만, 코타로는 한사코 하즈키만을 원했다. 결국, 쿠로다는 하즈키의 수명이 끝나기 전에 달의 물방울을 구해오라고 시킨다.

승: 도련님 코타로는 손에 피가 나도록 바닷가 땅을 파, 달의 물방울을 찾지만 끝내 실패한다. 그렇게 하즈키를 눈물로 떠나보내고 1년이 지나 쿠로다에게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그리고, 청구서를 든 하즈키가 집으로 돌아온다. 은둔 무사 이치는, 또 다른 HC 유즈의 주인이다. 유즈는 이치님과 나란히 서고 싶지만 계속 키가 크지 않아 속상하다. 유즈는 깊은 밤, 정원에서 괴로운 표정을 짓는 이치님의 버팀목이 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즈는 끈적한 스킨십이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듣고 이치를 찾는다.

전: 이치에게 키스+a를 받은 유즈는 키가 조금 컸다. 신이 난 유즈는 이치와 함께 새로 옷을 맞추러 시장으로 나가고, 이치는 괴한의 공격을 받아 두 눈을 잃는다. 유즈는 이치님의 과거를 듣고, 키가 안 크는 이유를 알게 된다. 유즈는 다정한 이치님이 아닌, 어떠한 이치님도 모두 알고 싶다고 말한다. 이치는 유즈의 말에 치유받는다. 이치는 과거 막부 세력과 반막부세력 간의 전쟁에 참전했다. 번의 가로인 츠키시마를 총지휘관으로, 소꿉친구인 쿠로다와 이치 역시 잔혹한 전장의 선봉에 섰다.

결: 하지만, 전쟁은 패하고, 영지를 지키기 위해 츠키시마는 할복을 요구받는다. 쿠로다는 츠키시마의 할복에 수긍하지 못하고, 할복 전날 츠키시마를 찾는다. 쿠로다와 츠키시마는 생애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고, 다음날 아침 츠키시마는 할복한다. 쿠로다는 폐인이 되어 시간을 보내다, HC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완성한 HC, 츠키시마와 닮은 그 인형은 과거 츠키시마가 건넨 벚꽃 가지 한 줄기를 꺾어 쿠로다에게 건넨다. 쿠로다의 마음을 비춘 거울, HC에 비친 건 츠키시마에 대한 사랑이었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마음을 비추다.

떠올리려고 떠올리려고 해도, 도무지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 작품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청했고, 한 이웃님이 댓글로 작품명을 알려 주셨어요. 정말, 집단 지성의 힘이란! 이렇게 위대합니다. 그 작품은 나카무라 슌기쿠님의 하이브리드 차일드! 급한 일만 마무리되면 찾아보겠노라 벼르고 있다가, 오늘 일어나자마자 영접했죠. 일단, 만화책은 원서밖에 구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나는 어떻게 봤었던 걸까요?

하지만, OVA를 발견한 호재도 있었습니다. 만든지 제법 되는지, 올드 한 느낌이긴 했지만... 엄청 울었습니다. 퀄리티보다는, 원작의 감성을 충실하게 표현한 것으로 10점 만점에 10점이었어요. 다만, 원작 만화에는 있던 외전이 없는 것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사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부분이었거든요. 츠키시마가 좋아하는 만쥬를 사기 위해, 쿠로다는 비 오는 날 긴 줄을 섰다가 감기에 걸리죠. 그런 쿠로다를 츠키시마가 병문안을 가는 이야기인데, Point1: 한 컷의 원어 만화가 그 장면이에요.

하이브리드 차일드는 크게 3편의 짧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어요. 하지만, 실은 앞에 2편은 마지막 이야기의 후일담이죠. 그 이후에도, 우리는 잘 살고 있어요~라는 말이에요. 츠키시마, 쿠로다, 이치는 신분은 다르지만 단짝 친구들이었어요. 몸이 약하고 소심한 츠키시마, 말은 걸걸하지만 다정한 쿠로다, 차분하고 진중한 이치, 이들은 만쥬와 꽃놀이를 즐기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죠. 하지만 전쟁이 터지고, 가로 집안의 츠키시마와 무사 집안의 쿠로다와 이치는 선택 없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결과는 처참했어요. 쿠로다는 전신에 큰 부상을 입고, 이치는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츠키시마는 모든 책임을 지고 할복하죠. 츠키시마는 야망도 없고 건강하지도 못했지만, 가로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그런 츠키시마를 구원해 준게 쿠로다였죠. 쿠로다는 다들 피하는 가로 집 도련님의 손을 잡고 산속을 뛰어다닙니다. 그 차가운 손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지길 바라면, 조급한 마음에 속도를 높여요.

분명, 그때부터 쿠로다는 츠키시마를 사랑했지만, 쿠로다는 끝끝내 츠키시마에게 그 말을 건네지 못합니다. 심지어, 마지막 밤 서로의 체온을 나누면서도, 둘은 서로에게 그 말을 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흘러 인형사가 된 쿠로다는 츠키시마의 얼굴을 잊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치는 쿠로다가 만든 HC를 보고 츠키시마를 떠올리지만, 쿠로다는 단호히 아니라고 해요. 잘 생각이 나지도 않는 과거일 뿐이라 여기면서요. 하지만, 쿠로다의 HC는 정확히 쿠로다의 마음을 비춥니다.

HC에 비친 것은 자신을 위해 벚꽃나무 가지를 가지고 와 건네 던 츠키시마의 모습이었어요. 쿠로다는 그날의 여름풀 향기, 하얀 구름과 바람, 그곳에 서 있던 츠키시마의 모든 것을 하나도 잊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건 뇌리가 아니 마음에 사무친 쿠로다의 연정이었으니까요. 쿠로다는 그 장면 속 자신이 느낀 강렬한 감정을 잃어 본 적이 없었던 거죠. 언제나 있었던 '사랑'이라는 것 말이에요. 쿠로다는 츠키시마에게 해주지 못한, 그 고백을 츠키마시를 닮은 하이브리드 차일드에게 드디어 건넵니다.

OVA는 없지만 원작에는 있는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수다스러운 두 사람은 말하지 않습니다. 시답지 않은 질문과, 핑계인 게 뻔한 답변만을 하죠. 비가 내려서, 수리를 맡긴 우산이 돌아오지 않아서, 비가 그칠 때까지는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간절히 여기며, 결코 말할 수 없는 연인의 시간을 보냅니다.

가끔, '나는 참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소름 끼칠 때가 있어요. 절대 흥분하지 않겠노라 그토록 많이 다짐했음에도 또 욱하고 마는 자신을 바라볼 때, 해는 바뀌어도 침대에 녹은 인절미처럼 박제한 듯 빈둥거릴 때,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같은 작품 같은 장면을 보고 질질 짜는 자신을 볼 때, 과거의 내가 데칼코마니처럼 묻어 나온 형체가 지금의 나인 것 같이 느껴져요. 참... 무섭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한 경험이 아닐 수 없네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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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주)현대지능개발사

분량: 본편 1권

point 1 한 컷

point 2 줄거리

물에 빠진 물고기: 매일 싸우는 부모를 피해 키시가 피한 곳은 욕실이었다. 키시는 바깥세상과 격리된 물속에 잠기는 버릇이 생겼고, 고등학생이 되어 수영부에 들어간다. 키시는 우사미 유키히코와 같은 반이었다. 호텔 재벌의 사생로 태어나 뒤늦게 생부에게 입양된 우사미는, 바람둥이 탕아로 살고 있었고,키시는 그런 우사미를 싫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의 지시라며 우사미를 강제로 차에 태우는 장면을 목격하고, 욱한 키시는 우사미를 데리고 도망친다.

그 이후 두 사람을 급격히 친해진다. 두 사람 중 사랑을 먼저 깨달은 것은 키시었다. 하지만, 키시는 사랑과 함께 실연을 깨닫는다. 우사미는 자신에게 냉정한 키시를 좋아했고, 키시는 우사미에게 마음을 속이며 수영장 깊이 잠수한다. 한편, 키시의 부모님은 이혼을 결정한다. 키시는 그날도 수영장 물속 깊이 잠수하고, 익사 할 뻔한 순간 우사미에게 구출된다. 순간 감정을 숨기지 못한 키시는 우사미에게 안기고, 혼란스러웠던 우사미는 키시를 떠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수영장에 있는 키시에게 우사미가 다시 찾아온다. 우사미는 키시에게 네가 원하는 내가 되겠다며, 사랑을 고백한다. 키시는 그런 우사미를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처음으로 '진실'해진다. 키시는 수영부를 그만두고 알바를 시작하고, 우사미는 명문고에 편입을 한다.

낙타 지기와 왕자의 밤: 사막을 횡단하던 캐러밴 무리는 쓰러진 알파르드를 발견하지만, 내버려 두고 떠나려 한다. 그때, 그 캐러밴에 일하던 낙타 지기 카마르는 그를 구하고 정성껏 간호한다. 깨어난 알파르드는 카마르를 도둑으로 오해하지만, 곧 사실을 깨닫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 그래서 알파르드는 아픈 카마르를 자신의 저택에 데리고가 요양하도록 돕는다. 알파르드는 거부 무역상의 아들, 카마르는 사막에 남겨진 청나라 이방인이었다.

두 사람을 서로에게 물들어 갔다. 알파르드는 카마르를 사랑하게 되고, 카마르는 사막에 수로를 건설하려는 알파르드의 꿈을 지지해 줬다. 그러던 어느 날 카마르는 알파르드와 그의 형의 대화를 엿 듣는다. 그리고, 사막은 몰락하고 바다의 시대가 왔다는 것, 알파르드는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사막의 사람들을 버릴 수 없어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카마르는 알파르드가 그러하듯, 사막 낙타 지기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알파르드를 떠나 마을로 돌아온다.

마을로 돌아온 카마르는 가축을 팔고, 캐러밴을 해체한 뒤 마을을 떠나려는 계획을 듣게 된다. 그리고, 카마르는 유일한 이해자이자 친구였던, 낙타 사딕을 팔수 없었다. 카마르는 사딕과 함께 거친 사막으로 도망치다가 모래 폭풍이 휘말리고, 알파르드의 저택에서 눈을 뜬다. 카마르는 사딕이 자신을 알파르드에게 데려다준 후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막의 배, 낙타는 사막을 건너 카마르를 알파르드에게 이어주고 떠났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갈 때를 아는 자의 뒷모습

'낙타 지기와 왕자의 밤'은 두 편의 짧은 이야기를 묶은 단편집입니다. 오가와 치세님의 대표작은, 착각 시리즈에요. '내가 너 따위를 좋아할 리 없어' '착각의 하트' '끝없는 불행에 관한 이야기' '착각과 불행의 사랑 이야기'로 이어지는, 개성 강한 두 커플의 밝고 유쾌한 연애담이죠. 이외도 주로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발칙한 이야기들을 많이 쓰셨어요. 그런 점에서 '낙타 지기와 왕자의 밤'은 기존 작품과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잔잔하고 여운이 긴 이야기였어요.

모든 역사는 역사가의 역사라고 합니다. 역사를 쓴 사람의 주관적 이야기라는 거죠. 국사 시험으로 울고 웃은 경험이 있는 대한민국 공교육 경험자 1인은, 그럼 내가 그토록 외웠던 것들이 객관적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외칩니다. 물론, 불변의 '정보'도 있죠. 하지만, 모든 시간에 대한 모든 장소의 기록이 아닌 만큼, 선택과 정의, 명명과 해석을 거치지 않은 역사란 없고, 따라서 역사를 확정적 진리라고 주장하긴 힘들거예요. 그리고, 그 역사는 주로 승자들이 씁니다.

그래서, 마지막보다는 시작을 부각합니다. 망한 것은 망할 만했고, 메시아적 영웅이 나타나 새로운 세상을 연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시대의 마지막을 지켰던 사람들은 어리석고, 부패하고, 수구적인 것처럼, 시대의 처음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깨어있고, 후덕하고, 진보적이라고 여겨요. 하지만, 역사를 잘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시류의 흐름에 읽고 새 시대의 빗장을 열어주지만, 스스로는 마지막 사람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도 많고, 전 시대에 벌린 부패와 과오를 덮기 위해, 새 시대의 깃발을 꽂은 자들도 있어요.

다만, 마지막 사람들의 이야기는 시작하는 사람에 의해 쓰일 뿐이고, 그래서 갈 때는 아는 자의 뒷모습은 너무나 쉽게 묵살되죠. 그것이 참 많이 아쉽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마지막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유독 더 감동받는 것 같아요. '낙타 지기와 왕자의 밤'처럼요.

카마르는 청나라 어머니의 뱃속에서, 사막을 건넙니다. 그리고, 3살이 됐을 때, 카마르는 캐러밴 마을에 유일하게 남은 이방인이 되죠. 카마르는 가족이자, 친구이자, 이해자인 낙타 사딕에게 위로받으며, 낙타 지기로 사막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얗고 여린 피부의 카마르는 자주 아팠고, 마을의 짐처럼 여겨져요. 하지만, 캐러밴 대장은 사막의 시대는 끝나가고, 카마르는 이후 새 시대를 살아가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알파르드 역시 무역로가 육로에서 해로로 바뀌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사막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살고 있었고, 알파르드는 그들을 지키고 싶었죠. 하지만, 먹고 살 길이 바다로 돌아서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사막의 마을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갔어요. 사막의 주민은 더이상 주인공이 아니고, 낙타도 필요 없는 시대 오고 있었어요. 그 갈림길에 선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죠.

카마르는 그 선택들의 집약체 같아 보입니다. 캐러밴 대장은 카마르에게 마지막에서 시작으로 이어지는 바통을 건네 주었고, 사딕은 마지막 낙타 지기를 새로운 동반자에게 건네며 생을 마감합니다. 사막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알파르드는, 카마르와 함께 살아갈 바다로 눈을 돌립니다. 아마도, 여름이 되어 카마르가 동행한 알파르드의 새로운 터전은, 황금빛 모래가 아니라 푸른 수평선이 펼쳐진 곳이겠죠.

알파르드는 마을로 돌아가는 카마르에게 아스트롤라베를 건네 줍니다. 아스트롤라베는 별을 읽는 도구예요. 그렇게 별을 읽어서, 시간이나 위치를 알아내요. 아스트롤라베는 사막에서도, 바다에서도 오랫동안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줬습니다.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하늘 아래 어느 곳이든 별은 뜨고, 별이 뜨는 어느 곳이든 사람은 살아가고 있어요. 갈 때를 알고 떠나가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는, 빈자리를 채워 올 누군가를 희망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진짜 승자들을 떠올려 봅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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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주)현대지능개발사

분량: 본편 1권

point 1 한 컷

point 2 줄거리

기: 교실에서 BL을 읽던 이마이에게 코노스가 말을 건다. 코노스도 사실 BL을 읽고 있었던 것! 이마이는 자신이 게이인 것 같다고 고백을 하게 되고, 비밀을 공유한 이마이는 부모님의 사이가 안 좋아 늘 혼자인 코노스에 집에 드나들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코노스는 이마이에게 애무해 준다. 이마이는 다정한 코노스와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코노스를 좋아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코노스는 이마이에게 섹스를 제안한다.

승: 코너스와 첫 경험을 끝낸 이마이는 코노스에게 자신과 잠을 잔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코노스는 이유는 필요 없다며, 남자랑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이에 상처를 받은 이마이는 코노스에게 화를 내고, 때마침 부모님의 이혼 때문에 코노스가 이사 가게 되면서, 두 사람은 오해를 풀지 못한채 헤어진다. 그 후 이마이는 BL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이마이는 새로 이사 한 집의 이웃 주민인, 코노스를 만난다.

전: 이사하자마자 이마이의 집에는 물이 새고, 이마이는 코노스의 신세를 지게 된다. 어색한 이마이와 다르게 코노스는 한결같이 다정했고, 남자를 찾으러 니초메로 간다는 이마이의 섹파도 되어 준다. 집이 수리하는 동안 코노스의 집에 머물면서, 회계사가 된 이마이와 웹디자이너가 된 코노스는 서로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물들어 간다. 그리고, 이마이가 감기에 걸린 날, 두 사람은 묵혀 둔 진심을 토로하게 된다.

결: 오해를 풀게 된 두 사람은, 삽질 구간을 지나, 고백을 하고 연인이 된다. 이마이는 코노스와 함께 BL을 고르러 서점에 가며, 즐거운 데이트를 즐긴다. 한편, 과거와 다르게 BL 수위는 과격해져 있었고, 두 사람은 첫 경험을 막 끝낸 풋내기가 아닌 야한짓에 목마른 성인이 되어 있었다. 이때도, 두 사람은 다소 과한 삽질을 하지만, 결국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즐거운 BL라이프를 즐기는 것으로 Happy ending!

point 3 진지충의 Review: Fac, si facis.(만일 그 일을 하고자 한다면, 그 일을 하라!)

만약, 쉽다면 이런 라틴 속담이 있지도 않겠죠. 다이어트를 하려면 식사량을 줄이거나 운동을 해야 하지만, 피트니스센터를 끊거나, 운동복을 사고, 다이어트 보조제를 깊이 연구합니다. 공부를 하려면 책상에 앉아 문자를 눈에 비추고 뇌에 새겨 넣는 작업을 해야 하지만, 왜 책상 청소나 카페인 한 잔이 먼저 생각날까요? 의외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고자 하는 일과 비슷하거나, 하고자 하는 일과 간접적으로 연관있는 일을 하면서,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알고 있어요. 분명히 다르다는걸...

제3자 관찰자 시점에서 이런 모습을 본다면, 참 한심스러울 것 같아요. 바로, 삽질물을 보는 독자1의 시점이죠. 그럼에도, 삽질물을 보는 이유... 세상은 모호하고, 감정은 애매하고, 선택한 되돌릴 수 없으니, 결단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어려운 일이기에, 뻔히 보이는 길도 돌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에 공감하고, 안따까워 하는 거겠죠. 그리하야, 삽질물의 묘미는, 고구마 뻑뻑미와 답답 귀욤 멍충미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들을 위한 권장도서'는 가는 선을 잘 쓰시는 요시다 유코님의 작품답게, 단정하고 깔끔한 작화가 소소한 일상을 배경으로 담백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림 보는 맛이 있죠. 반면, 서로 좋아하는 게 뻔하지만, 공연한 삽질로 시간을 보낸 주인공들이, 재회 후 오해를 풀고 꽁냥꽁냥하며 사는, 단순하고 전형적인 클리셰를 다루고 있어요. 내용은 딱 그 한 줄 요약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수줍음 많은 이마이 자리에 찾아가 아는 척을 했을 때부터, 누가 봐도 코노스는 이마이를 좋아하는 거였지만... 뒤돌아 걷는 코노스가 자신을 돌아 봐주길 바랄 때부터, 누가 봐도 이마이는 코노스를 좋아하는 거였지만... 이마이는 코노스에게 몸을 내주면서도 고백하지 않고, 이마이를 늘 탐하는 코노스는 이마이에게 '남자'랑도 상관없다는 식의 객기를 부립니다. 두 사람이 하고 싶은 건 연애지만, 두 사람이 실제 하는 일은 삽질인 셈이죠.

물론, 두 사람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습니다. 코노스는 불편한 가정사로 여유가 없었고, BLer인 이마이는 연애에 대한 환상이 있었죠. 그래서 코노스는 이마이에게 느끼는 감정에 대해 고민 없이 경솔하게 대답했고, 이상적 연인을 꿈꿨던 이마이의 첫사랑은 시작도 못 해 보고 꺾여버립니다. 코노스는 화를 내는 이마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현실의 비정함을 깨달은 이마이는 BL을 끊고 니초메로 가죠. 하지만, 이마이에게 누구도 코노스와 같은 마음이 되진 않았어요.

 

이마이는 '게이'이라는 정체성과 '연애'에 대한 환상으로 BL을 봤지만, 사실 코노스에겐 그런 것이 없었어요. 그저, 이마이에게 관심이 갔고, 어느새 눈으로 좇고 있었으며, 스킨십 욕구도 나날이, 충실히, 늘어갔죠. 하지만, 남자가 아니라 '이마이'에게만 가지게 되는 이 특별한 감정에 이름을, 삽질공답게 코노스는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리고, 둘은 성인이 돼서 재회를 해요.

코노스가 '네가 좋아.' 한 마디를 못해서 먼 길을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BLer들은 연애 이론만큼은 동서고금,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전천후의 전문가들 아닌가요? 하지만, 이마이는 '나를 좋아해?' 대신에 '나를 왜 잤어?'를 물어봅니다. 선수조차도 임자 앞에서는 서툴러지는 BL계에서, 일편단심 직진공도 그 질문에만큼은 달변가가 의외로 적지만... 어쨌든, 이론과 실전을 모두 경험할 수 있었던 BLer는 상처받습니다. 참 이상하죠. 연애를 하고 싶었던 이마이는, 그토록 상처받았지만 실제로 코노스에게 고백은 한 적은 없었어요.

이렇게 불안 하고, 간절히 원하고, 중요한 일인데도, 왜 회피하거나 미루는 걸까요? 오히려, 일상적인 사건사고들은 번거롭고 사소해도 기계적으로 해결하고 있는데 말이죠. 나는 왜 하고자 하는 일을, '지금' 안하고 있을까? 싫은가? 괴로운가? 끔찍한가? 생각해 보면, 의외로 그 일 자체는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미루고 피하는 동안 겪게 되는 부채감과 초조함이 더 큰 문제죠.

필사의 각오를 다지게 되는 중요한 일일수록, 완전무결한 '상태'를 필요로 한다고 여기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늘 부족하고, 불안한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번지점프대에 오르는 것처럼, 막상 시작하지 못하고 그 근처만 계속 맴돌게 되는 거죠. 그러다 때론 그 일은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꼭 '안 한 것'이 아닌 다른 원인을 들어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이대로도 괜찮아.' '꼭 타인의 기준을 맞춰 살 필요는 없지.' '나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야.' '어차피 이 사회는 뭘 해도 희망이 없어.' '올해는 삼재래'

이마이는 코노스와 섹스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스킨십을 욕구한 적이 없었죠. 다만, 상냥하고 다정한 코노스와의 시간이 좋았고, 자신의 비밀을 유일하게 공유한 사람이 코노스라서 더 좋았어요. 하지만, 코노스는 이마이에게 먼저 키스하고, 먼저 방으로 가자고 하고, 먼저 애무하고, 먼저 섹스하자고 했죠. 이마이는 코노스의 요구를 거부하고 싶지 않았고, 계속 좋은 관계이고 싶었어요. 그건 분명 '연인'을 바란 거였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준비' 되어야 할 게 있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 '염려'가 핵심을 빗나가 제대로 헛다리를 집게 만듭니다. 이마이는 BL를 끊을 필요도, 니쵸메를 갈 이유도 없었어요. 코노스는 이마이와의 관계를 몸뿐인 관계로 정의 한 적도 없고, 이마이가 자신을 좋아하는 줄도 몰랐을 테니까 말이죠.

'Just do it' 그냥 좀 해! 왠지 영어로 해야 더 있어 보이는 까닭은 나이키의 영향일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는 법은 없습니다. 말을 해야 오해가 풀리고, 고백을 해야 연애를 하죠. 하지만, 이마이를 삽질이라 탓하는 마음 한켠이 찜찜한 이유는, 저 역시 지금 리뷰로 도피 중이기 때문일 거예요. 물론, 제가 해야 할 일을 해도 권장하는 도서 속 주인공이 될 순 없겠지만, 배드 엔딩을 피하려면 이제 just do it! 해야겠죠................. ㅜ.ㅜ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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