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처: 봄툰

분량: 본편 74화

point1: 한 컷

point2: 줄거리

: 친일파 관료 최기호의 차남, 최호윤은 아버지에게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당하지만, 기껏 할 수 있는 반항이란 종로 남창 거리에서 몸을 팔아 그의 명성에 먹칠하는 것뿐이었다. 그마저, 첫 손님으로 검사인 형, 최태주의 친구 이세환을 만나면서 끝난다. 아편 무역으로 큰돈을 번 거상의 아들인 세환은 호연의 복수를 도와주겠다며 동업을 제안한다. 그 첫 단계는 최기호의 후계자인 태주를 아편으로 중독시켜 그 자리를 호윤이 대신하는 것이었다.

승: 호윤은 태주에게 접근한다. 호윤의 친모 정혜인은 유쾌하고 예쁜 사람이었다. 하지만, 최기호의 동생 최기윤과 야반도주를 하다 발각되면서, 최기윤은 즉살되고 호윤은 기윤의 아들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 후 태주는 호윤을 살리기 위해, 최기호에게 이용당하는 한편, 호윤을 모른척할 수밖에 없었다. 호윤을 누구보다 아꼈던 태주는 늘 죄책감에 시달렸고, 그래서 호윤이 주는 것이 아편인 줄 알면서도 먹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호윤을 기꺼워한다.

전: 한편, 세환은 태주가 칼에 찔리도록 꾸미고, 의사를 매수해 진통제도 맞지 못하게 한다. 아편에 중독된 채 고통에 시달리는 태주는 무의식중 세환을 찾는다. 과거 세환은 왜곡된 애정으로 일을 꾸며, 태주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진실을 안 태주는 세환을 떠났고, 세환은 태주를 되찾기 위해 호윤을 이용했던 것이었다. 호윤이 최기호의 후계자가 되면서 세환과의 거래는 끝난다. 한편, 호윤은 태주의 동료 사사키를 통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

결: 호윤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태주를 세환에게서 구한다. 오해를 푼 두 사람은 합심하여, 최기호에게 복수하는데 성공한다. 한편, 또 태주를 잃은 세환은 폭주해서 호윤을 납치하지만, 태주는 호윤을 구하고 세환을 체포한다. 세환은 모든 죄를 시인하고 감옥에서 자살한다. 그 후 태주는 아편 부작용을 치료받으며 변호사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호윤은 복학한다.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두 사람은 형제가 아닌 연인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살아나간다.

point3 진지충의 review: 그 시대를 산 사람들(feat. 연출력 대박)

BL소설을 읽다 보면, 때때로 이것을 문자로만 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애정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완벽하게 이 세계를 구체화시켜 보고 싶어지죠. 그래서, 음성은 '드씨', 이미지는 '웹툰'이 돼요. 그런데, 음성은 소설과 거의 동일한 스크립트인데 반해, 웹툰은 좀 많이 다릅니다. 소설의 모든 구문들을 다 연출할 수 없으니, 생략되고 재편되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원작의 변질이 생깁니다.

'웹툰'자체가 독립된 하나의 작품이니, 다른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주요 줄거리 이외의 부분에서 많은 생략이 발생하고, 표현이 까다로운 부분은 재편집이 발생하다 보니, 원작의 감동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잔잔한 장면이 쌓여야 느낄 수 있는 깊이 있는 감동들이 소실되기도 하죠. 차라리 원작을 몰랐다면 지나칠 수 있지만, 소설 팬심으로 시작한 독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죠. 특히나 웹툰화 되는 작품들의 원작이, 대작들이 많아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기존 팬층을 쉽게 끌어들이는 대신, 그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부담도 있는 듯합니다.

서두가 길었지만, 결국 요점은 이런 이유로 '원작 수준의 웹툰'이 참으로 귀하는 것이죠. 그러니, '원작은 뛰어넘는 웹툰'의 발견이 얼마나 벅찬 일이겠습니까? 저에게 '부서진 소년'은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그럼, '부서진 소년'이 무엇이 특별하냐! 연출력이 대박입니다. 이런 장면이 있었나? 소설에서 찾아볼 정도였죠. 좀 가혹하게 표현하자면, 소설 '부서진 소년'이 중작이라면 웹툰 '부서진 소년'은 대작에 반열입니다. 특히나, 인물 표현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사고는 남자가 치고, 수습은 여자가 한다. 해결사 신여성들!

 

 

'사고는 남자가 치고, 수습은 여자가 한다.'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산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다만, 그들은 전면에 나서지 못했고, 이름을 남기지 못해요.

'부서진 소년'의 최고 능력자는 '할멈'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할멈'의 이름을 알지 못하죠. 할멈은 이세환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아편을 실제로 다루는 사람이며, 의사 면허가 없는 의사이기도 합니다. 세환이 한 것은 '지시'이고, '실현'한 것은 할멈이니, 세환은 업적은 할멈의 업적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또, 스스로 판단해서, 세환이 극한에 치달을 때 브레이크를 걸어 준 것도, 세환이 죽은 후 뒷수습을 했던 것도, 모두 할멈이었죠.

악역 같은 우군, 미에코도 있습니다. 일본 명문가에서 태어난 미에코는 조선인이 싫었지만, 돈이 권력인 시류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친일파 관료 최기호 집안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미에코는 이세환은 비정상적 집착, 최 씨 집안의 뒤틀린 관계, 유약한 태주의 성격을 알고 있었죠. 하지만, 태주를 성공시키고, 태주의 아이를 낳아, 최 씨 집안에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고군분투하죠. 그러나 미에코는 결국 세환과 맞서, 중독된 태주를 피난시킵니다. 그리고, 호윤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돌아온 남편에게 쿨하게 이혼을 요구하죠. 그리고, 전남편 태주가 호윤에게 숨겨왔던, 아편 후유증을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할멈과 미에코가, 위기의 남성 동지들을 직접 구했다면, 그들에게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여인도 있습니다. 호윤과 태주의 동생 은수말이에요. 최기호는 동생과 달아난 아내를 잡아온 뒤 겁탈하죠. 그 흔적으로 생긴 아이가 은수였어요. 하지만, 은수는 자신을 죄의 흔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우울에 빠지지 않습니다. 은수는 순진한 아이를 연기하며, 오랫동안 최기호가 벌인 부정의 증거를 수집하고, 엄마의 약을 바꿔치기하죠. 결국, 태주와 호윤은 은수가 모아둔 증거를 통해 최기호를 고발하고 제거합니다.

이 여자들은, 그의 아내이자 오빠이자 도련님이 혼란 속에 정신을 못 차릴 때, 냉정하고 조용하게 해결책을 찾아 준비합니다. '부서진 소년'을 보면, 남자 캐릭터는 뜨겁고, 여자 캐릭터는 차갑습니다. BL에는 멋진 여자 캐릭터가 잘 안 나와요. 그래서, 저는 멋진 친구이자 현명한 가족으로서, 여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이 매우 반가워요. '부서진 소년'은 시대와 상황에 굴하지 않, 의지의 신여성들을 미화 없이 보여줍니다. 꾸미지 않아도, 조연이어도, 충분히 멋지니까요.

그들도 변한다.

하지만, '부서진 소년'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3명의 남자들입니다. 게다가, 앞서 '부서진 소년'의 연출력이 대박이라고 했는데, 특히나 이들의 '씬'이 국보급입니다.

 

'부서진 소년'의 '소년'은 호윤입니다. 어머니의 야반도주가 발각되어 아버지가 즉살 당하자, 어머니는 호윤을 원망합니다. 왜 혼자 살아남았냐고요. 그리고 최기호는 자신이 괴롭혀 온 입양아 동생, 그 부정한 사생아 자식을 죽이고 싶어 합니다. 태주를 부리려는 미끼로 호윤을 살려주긴 하지만, 수시로 서재에서 폭행하고 지지고 모욕을 주죠. 호윤이 종로 남창가에 갔었다는 소문을 들은 후로는, 강간도 서슴지 않습니다. 호윤은 그렇게 부서져 갔지만, 호윤의 살 타는 냄새가 진동해도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유일한 구원자는 세환이었어요.

세환은 호윤을 성애로 길들입니다. 그리고 폐쇄된 별채에 갇혀 있던 호윤은 새로운 세계에 눈이 뜨죠. 특히, 요정에서 주화, 세환, 호윤 세명이 벌이는 정사 장면은 호윤이 세환의 세계에 갇혔다. 벗어 날 수 없다.고 느껴져 보는 동안 숨이 막혔어요. 순진하고 약한 호윤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호윤의 변화가 세환의 계획의 결정적 장애가 돼요. 역설적이게도 말이죠. 호윤은 자신의 몸을 이용해 세환을 움직이는 법을 배우고, 후엔 능수능란하게 태주를 꼬시는 유혹수로 변모합니다.

지킬 것이 많으면 움직이기 힘들죠. 그래서 소극적 지식인처럼 보이는 태주가 수동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태주는 호윤의 안위를 위해, 빨리 검사가 되어 최기호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죠. 그래서, 자신을 폭행하는 일본인들이 가득한 유도부도 꼬박꼬박 나갔어야 했고, 심지어 그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한 후에도, 최기호가 준 루틴을 어기지 않으려 몸부림칩니다. 최기호가 짜 준 틀에서 한치에 어긋남도 없어야 하는, 속박된 삶에서 유일한 피난처는 이세환이었어요. 그래서, 세환의 일방적 애정을 거부할 수 없었죠. 심지어, 세환이 자신을 강간하게 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도 말이에요.

세환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약자였던 태주는 늘 죄스러웠어요. 미에코는 괴로워하는 태주에게 위선이 뭐가 나쁘냐고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는자'는 죄책감을 떨쳐내는 말조차 스스로에게 하기 힘드니까요. 그래서, 저는 호윤의 성장보다도 태주의 성장이 더 기특했습니다. 태주가 아버지에게, 더 이상 호윤을 서재로 부르지 말라고 말하고 나오는 장면에서, 손을 덜덜덜 떠는 태주의 모습이 용자의 진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미친 듯이 두려움에도, 익숙한 체념의 굴레를 스스로 걸어 나 올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짜 용기일 테니까요.

하지만, 역시 가장 극적인 캐릭터는 이세환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세환은 진 씨 성을 가진 조선 상인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수완이 좋았던 진 씨 성의 사내는 제법 많은 부를 축적하지만, 일제의 '합법적' 갈취에 희생되어 일족은 다 죽고, 재산을 몰수돼요. 유일한 생존자인 세환은, 가상의 아버지를 만들고 그 뒤에서 부를 축적하며, 그 돈으로 권력자들을 쥐락펴락해요. 세환은 세상은 적자생존의 원리로,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어요.

그러다, 세환은 태주를 만납니다. 만나는 순간 심장이 뛰었고, 꼭 가져야 했고, 가진 뒤에는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죠. 태주는 세환에게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이유'였어요. 태주를 다시 찾기 위해 호윤을 이용하면서, 세환은 변해가는 호윤이 마치 태주와 자신을 섞은 존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세환은 분명히 호윤을 좋아했고, 최기호의 후계자로서 잘 살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태주를 다시 잃어버리자, 세환은 서슴없이 호윤의 목에 칼을 대죠. 그 후 체포된 세환은 표독스럽게 살아내던 세상을 미련 없이 떠납니다.

'삶의 이유'가 없을 때는, '살아야만 하는 이유'로 살 수 있었고, 태주를 잃었을 때는 태주를 되찾을 희망으로 살 수 있었죠. 하지만, 세환은 태주가 변했다는 것을 깨달아요. 태주는 더 이상 자신에게 도망쳐 올 유약한 사람이 아니었고, 태주의 '사랑'이라는 자리는 호윤이 차지해 버렸어요. 비로소, 세환은 태주를 완전히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삶의 이유를 잃은 세환은, 자신의 진짜 아버지가 준 유품을 손에 쥐고, 그를 만나러 갑니다.

'부서진 소년' 웹툰 작가님은 '빛'과 '구도'를 정말 잘 쓰시는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이 매우 기대가 됩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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