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모드

출간일: 2020.07.15

분량: 본편 5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생일 축하한다, 명하야."

"네?"

"하순이잖니. 그러니 네 생일이라고 하자."

"오늘을요?"

"오늘을."

명하는 실낱과 사훤을 번갈아 보다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저한테 생일이 있다고요?"

"내가 정해준 거라도 괜찮다면."

"너무 좋아요! 네! 좋아요, 저하!"

좋아서 명하가 사훤을 부르는 호칭이 또 멋대로 바뀌었다. 사훤은 명하가 기뻐하는 것이 가슴이 저미도록 좋았다. 고작 날짜를 정한 것 하나로 좋을까. 그럼 안 되는데. 오늘은 비록 준비가 부족했지만 다음부터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건데.

"다음 달 하순에도 네 생일이 있을 거야."

"생일은 한 번이죠, 저하."

"나한테는 매달 네 생일이 있는데."

시훤이 명하를 감싸 안으려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실로 묶은 손을 단단히 잡았다.

"나는 모든 하순을 좋아할 거다. 모든 하순에 네가 태어난 걸 기억하며 살 거야. 그러면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다시 행복해지겠지. 나는 슬프고 불행할 틈이 없을 거야. 네 덕에."

명하는 주변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던 순간부터 아무도 자신이 태어난 걸 기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강 진사는 사훤에게 살아있는 살로써 보낼 용도를 떠올리다가 명하의 존재를 기억했다. 죽어야만 의미가 있는 존재였다.

그런 명하가, 명하의 태어남이 사훤에게는 불행하지 않을 이유란다. 가슴이 설렁설렁 부풀었다. 연이 되어 하늘 높이 날 수 있을 것 같다.

point 2 줄거리

기: 강 진사의 서자로 태어난 명하는,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한 채 선산 무덤지기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강진사는, 명하에게 아들로 인정해 주겠다며 심부름을 시키고, 동생 청하를 아꼈던 명하는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수락하지만, 곧 우수꽝스러운 여장을 당한 채 사지로 던져졌음을 깨닫는다. 명하는 절망하며 죽음을 각오한다. 그때 나타난 사훤은 명하를 풀어주며 다정하게 대해준다. 명하는 좌의정의 계략으로 대군저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승: 사훤은 좌의정의 살을 맞아 귀문이 반쯤 열렸고, 밤이 되면 광인이 되어 괴행을 일으켰다. 처음이자 유일하게 상량함을 보여준 사훤이었기에, 명하는 사훤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밤이면 정염에 젓어 명하를 찾는 사훤에게 몸을 내어주었고, 자신이 사훤의 귀문을 완전히 열기 위한 아기살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살을 뒤집어 사훤의 귀문을 대신 받기로 한다. 그렇게, 명하는 죽음을 선택한다.

전: 명하와의 밤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사훤은 순리처럼 명화를 사랑하게 된다. 사훤은 건강해지고, 명하는 병들어갔다. 결국 진실을 안 사훤은 괴로워하지만, 위태로움 속에서도 두 사람의 마음은 깊어만 졌다. 한편, 병약해진 왕은 동생 사훤에게 보위를 부탁하고, 사훤은 왕세제로 책봉된다. 동시에 사훤이 책봉식으로 대군저를 비운 사이, 명하는 좌의정에 모략에 의해 대군저를 나와 붙잡혀 갇히고, 불타는 집에서 강진사를 뿌리친 채 간신히 도망친다.

결: 사훤은 무사히 왕이 된다. 그리고, 명하를 찾지 못한 지옥 같은 시간을 가까스로 견디고 있었다. 한편,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한 명하는, 마지막으로 사훤을 위해 좌의정과 모반을 공모했다며 스스로를 관에 고발한다. 때마침 사훤의 호위 영욱이 명하를 찾지만, 이미 명하는 삼도천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때, 늙은 산파로 둔갑한 가믄장아기의 도움으로 명하는 아들 이강과 자신의 명줄을 붙잡는다. 살아난 명하는 사훤의 곁붙이가 되어 살아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내 곁붙이

대부분 동양풍 BL은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세계관은 중국 명청시대를 토대로 할 때가 많습니다. 그 때의 관직명이나 복식, 소품들이 차용되곤 하죠. 간간이 원을 배경으로 할 때도 있지만, 주로 이민족과 맞닿은 변방으로 친정도 가야하고, 제후국과 긴장관계도 필요하다 보니, 아무래도 제약이 많죠. 그래서, 중국 배경의 동양품 BL은 스케일이 큰 대신 디테일이 부족하고, 전형성이 강해 뻔한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그런 이유로, 한국 배경의, 특히나 민속 신앙이나 설화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이 느는 추세가 매우 신납니다. 알게 모르게 자주 접해 왔고, 싫으나 좋으나 배울 수밖에 없었기에, 확실히 구성이 더 탄탄하고 어색함이 적죠. 소재도 신선하고, 클리셰를 벗어난 전개의 자유도도 높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풍 동양 판타지 BL에서 심심치 않게 명작 타는 냄새를 맞곤 해요. 완결 난 작품으로는 '저승꽃감관,' 미완결 작품으로는 '혼불'이나 '단밤술래' 등등이 있죠.

'열병'도 그중 한 작품입니다. 물론, '열병'이 설정에 몰빵한 작품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열병'의 포인트는 공수의 '애절함'이에요.

명하는 강진사댁 서자로 태어나지만, 명하 생모의 저주로 대과에 합격 못했다는 찌질한 생부로 인해,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합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종인 줄 알았다면 덜 비참하거나 도망치기라고 했을 텐데, 명하에게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친애하는 동생 청하가 있었어요. 청하를 보기 위해, 곁에 있기 위해, 멍석말이 당하고, 종놈에서 괄시당하고, 배곯는 외로운 무덤지기로 선산에 버려져도, 꿋꿋이 버텨냅니다.

그날도, 청하에게 줄 다람쥐를 잡아 밥을 구걸하러 강진사 집에 가요. 그런 명하를 불러, 강진사는 문중에 이름을 올려주겠다며 심부름을 시킵니다. 명하는 양반이 되는 것보다 청하의 형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무조건 하겠다고 해요. 하지만, 곧 강진사는 애당초 자신을 아들로 인정해 줄 생각은 없었고, 자신은 죽으러 가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요.

그런 명하에게 사훤은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유일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자신이 추울까, 배고플까 물어주고 챙겨주는 이도, 다정하게 말 걸어주고 웃어주고, 글을 알려주는 이도, 오로지 사훤 하나였죠. 그래서, 명하에게 사훤을 위해 죽고 병드는 것은 전혀 힘든 선택이 아니었어요. 어차피, 가치도 없이 버려진 목숨, 사훤을 위해 쓸 수 있다면, 오히려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면, 기쁜 일이라고 말이에요.

명하가 간과한 것은, 사훤의 마음이었어요. 명하는 자신처럼 하찮은 존재를 고귀한 사훤이 좋아할 리 없다고 단정하죠. 사휜의 애정은 살에 휘말린 일시적인 착각일 거라고 말이에요. 자신의 마음은 거짓 일 수 없는 진심이라고 믿으면서, 자신이 죽어도 사훤은 왕으로서 반려를 맞아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명하는 너무 쉽게 비밀을 만들고, 도망치고, 죽기로 결심해요. 사훤이, 그저 명하의 생사를 확인할 때까지, 고통뿐인 생의 시간을 잠시 유예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해요.

'열병'은 폐지된 소격서 무당과 도사가 살을 날리고, 인외존재들이 조연으로 등장하며, 명계의 신들이 위기를 반전시켜요. 오메가버스가 아님에도 명하가 임신을 하고, 원자를 낳은 남자 중전을 궁인들과 신료들은 결국 받아들이죠. 저는 조선 초를 떠올리며 읽었는데, 솔직히 세계관을 넘기더라도 감상에 크게 지장은 없습니다. 정쟁이나 갈등이 촘촘하고 밀도 있게 짜여 있다기보다는, 사훤과 명하의 애절한 사랑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거든요.

그래서, 10년을 넘겨 끌어온 좌의정과의 갈등 해결은 의외로 쉽게 풀리고, 임금이 된 후에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에요. 사훤의 뜻대로 모두 진행됩니다. 반면에, 생과 사의 경계에서 돌아오는 명하의 여정이나, 사훤과 명하가 함께 있는 일상과 감회에 관해서는 깊이 있고 세밀하게 다루고 있어요. 문맹의 무덤지기는 사랑을 지키는데 단호하고 헌신적이었고, 왕의 자질과 운명을 타고난 대군은 사랑 앞에서 초조하고 위태로웠죠.

사훤의 그림자에 묶여 명하는 살아납니다. 하지만, 선산을 뛰어다니면서도 감기 한 번 안 걸렸던, 건강하고 윤기나던 명하는 더 이상 없어요. 사훤 대신 밤이면 악몽에 시달리고, 수시로 열이 나고 길게 잠들며 수척해졌죠. 그럼에도 두 사람은 분명 행복합니다. 명하는 더 이상 내리는 눈을 맞으며 하루 종일 비질을 할 순 없지만, 이불에 꽁꽁 쌓여 사훤에게 안긴 채로 눈 구경을 합니다. 다정을 나누고, 짓궃은 농담에 삐지면서도, 결국은 하루도 떨어질 수 없는 내 곁붙이가 되어서 말이에요.

짧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읽었어요. 소조금님의 문체와 내용이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새벽에 읽으려면 각오가 필요해요. 감수성의 바다에, 심해어가 될 수 있습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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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9.02.14

분량: 본편 5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창밖으로는 어느새 짙은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9월이 되면서 거짓말처럼 해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저녁 8시면 해가 저물기 시작해서 9시가 지나면 완전히 어두워졌다. 이제 매일 조금씩 더 짧아지겠지. 11월이 되면 오후 네 시만 돼도 어두워질 것이다. 그리고 12월이 되면 오후 3 시에 해가 진다. 극야가 시작되는 것이다.

백야가 강제로 며칠씩 현실에 붙들려 있는 느낌이라면, 극야는 반대로 종일 꿈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다.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고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깨어 있기 위해 커피를 물처럼 마신다. 거리의 악사들은 흥겨운 곡을 연주하고 네온사인 불빛은 더욱 화려해진다. 극한의 밤을 견뎌내기 위해, 다들 필사적이 된다.

point 2 줄거리

기: 북유럽 연맹 수장국인 에시르는 강력한 전제정을 유지하고 있다. 에시르의 왕세자 리욘은, 군주의 덕목을 두루 갖춘 완벽한 후계자였지만, 병약한 선왕이 중국계 제노스 라우지엔을 왕비로 맞이하면서 위기를 겪는다. 제노스는 염동력과 정신감응능력을 지닌 초능력자였고, 라우지엔은 친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리욘의 형을 죽이고, 리욘 역시 제거하려 한다. 리욘은 대관식까지 왕비로부터 자신을 지켜 줄 제노스 경호원 제이를 부른다.

승: 7년 전, 2황자였던 리욘은 왕립 사관학교 방학 때 제이를 고용한 적 있었다. 리욘은 왕비에 대한 반발과 남성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거부감에, 제노스인 제이를 박대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그를 믿게 된다. 하지만, 리욘은 왕자비 베아테에 의해 미약을 먹고 심신상실에 빠져, 제이를 강간하게 되고, 오해를 풀 기회도 없이 둘은 헤어진다. 이후, 제이는 리욘의 딸 시그니를 낳아 키우고, 약속대로 왕세자가 된 리욘은 제이를 호위로서 궁에 부른다.

전: A급 제노스인 제이는, S급 제노스로 추측되는 왕비와 싸우기 위해, 몸에 맞지 않는 호르몬제를 투입하고, 하혈하는 모습을 리욘에게 들킨다. 리욘은 왕비는 제노스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제이에게 키스한다. 리욘은 제이와 헤어진 뒤에 계속 제이를 그리워했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었다. 한편, 제이는 왕비를 돕는 진짜 제노스 앨런을 만나고, 자신보다 뛰어난 앨런으로부터 리욘을 지키기 위해, 리욘의 아이를 가지려 한다.

결: 제이는 임신하고, 앨런에게 큰 부상을 입히는데 성공하지만, 본인도 만신창이가 된 채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그동안 제이는 리욘에게 임신과 유산, 그리고 시그니의 존재도 들킨다. 리욘은 제이에게 청혼하고, 시그니를 후계자로 만들려 한다. 한편, 버림받은 베아테와 왕비 라우지엔은 제이를 노리고, 리욘은 왕비를 총살한다. 분노한 앨런은 리욘을 대관식에서 죽이려 하지만, 리욘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하고, 무사히 왕의 자리에 오른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디테일 갑, 설정 덕후, 탄탄한 세계관, '대화'는 보너스예요~

과학시간, 처음 본 프리즘의 참 신기했습니다. 세모 같기도 하고, 네모 같기도 한 두툼한 유리 조각은 심심하기 그지없는데, 빛을 비추니 물감을 쏟아 낸 것처럼 선명한 색들이 하얀 바닥 위에 번졌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럼에도 어떤 책을 보면 그 프리즘이 떠오릅니다. 책을 열어보기 전까지, 북 커버로 예상 가능한, 그 이상을 보여주는 책들이 꼭 오색 빛깔을 숨긴 시크한 유리 덩어리 같아서요. 빛이 비추기 전까지, 내가 읽기 전까지, 평범함을 가장하죠.

'극야'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공을 돋보이게, 수를 불쌍하게 만들기 위해, 피폐는 더 피폐하고, 달달은 더 달달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에피소드와 줄거리가 독주하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현재-과거-현재의 구도 중, 과거 부분이 설정 설명과 맞물려서 있어, 다소 장황해 몰입감이 떨어질 수 있어요.

많은 설정을 포함한 세계관과 강한 디테일은 강점이자 단점이 되는 셈이죠. 첫 장면이 7년 뒤 제이가 신분세탁을 당하고(?) 경호원으로서 리욘을 만나러 가는 씬인데, 제노스의 탄생 배경과 제노스가 고용되어야 하는 왕실 사정, 그리고 리욘이 제노스인 제이를 신뢰하게 된 과거사가 나열된 뒤에야, 비로소 대관식까지 리욘을 지켜야 하는 제이의 고군분투기가 이어지죠. 본격적인 전개는 2권부터 진행된다고 보심 될 듯합니다.

사건과 사건을 잇는 전개는 빠릅니다. 공이 수를 만났고, 공이 비운의 과거를 가진 황자여서 수를 거부했다가, 우연히 수와 뜨밤을 보낸 뒤 잊지 못해, 수를 경호원으로 불렀고, 알고 보니 딸이 있었다! 사건을 보면서, 다음 사건을 추측하게 되죠. 하지만, '극야'는 사건을 '잇기'보다는 서사를 '쌓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전개가 느립니다. 하지만, 탄탄해요. 글 초반에 제이가 되뇌는 마키아벨리의 명언은 극 후반에 리욘의 '결정'을 암시하고, 부녀의 다정한 시간을 묘사했던 장면 속 시그니의 행동은, 리욘이 딸의 존재를 알아채는 결정적 계기가 되죠.

'극야'에서 킬링 포인트나 감정 폭발 장면, 명대사는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은 계속 일상적 대화를 충실히 적립합니다. 흡사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극야'는 낮은 계단을 꾸준히 밟아 올라 절정으로 향한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쳐지거나 지루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 전개가 촘촘하고 짜임새 있어서, '아! 그래서!!!'라는 보물 찾기와 같은 쾌감을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디테일도 감동적입니다. BL이 대부분 가상의 세계관을 설정하고 있고, 내용이 클리셰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디테일이 약하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많아요. 가령, 집착광공 황제라고 설정해 놓지만, 보다 보면 말만 쎈 순둥이예요. 캐릭터를 뒷받침 할 디테일은 없고, 그러다 보니 사건마다 행동엔 일관성이 없고... 킬탐용이라고도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볍고 캐주얼하다는 게, 헐겁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유쾌한 명작들도 많아요. 그런 점에서 '극야'는, 조사한 자료를 다 쏟아 놓겠어!라는 정보 자랑 한마당도 아니고, 캐릭터에 맞게 필요한 설명을 잘 녹여 넣었죠. 균형이 맞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리욘은 절대적 권위를 지닌, 저세상급 고귀한 왕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리욘은 북유럽 연맹의 수장국이자, 강한 왕권을 유지하고 있는 에시르의 왕세자지만, 세계엔 '상징적' 왕만 존재하거나, 아예 왕이 없는 국가도 많습니다. 물론, 2021년을 사는, 에시르 국민들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리욘은 왕권을 휘두르면서도 대중 '정치'를 하고, 초법적 결정으로 베아테를 죽이면서도, 에시르 국적이 아닌 제이에게는 양육권 소송을 하겠다고 말해요. 리욘은 치열한 모략의 한복판에서도, 대외적 품격을 잃지 않죠. 리욘은 차가운 듯, 뜨거운 듯, 강압적인 듯, 회유하는 듯, 왕도 되고 제이도 얻어요.

제노스도 단순히 연구소에서 양산된 불쌍한 초능력자로 그리지 않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염동력과 정신감응능력을 지닌 돌연변이가 출현했고, 국가들은 그들을 '개발'하려 합니다. 하지만, 1세대를 통해 만든 2세대가, 2세대보다 3세대의 능력이 확연히 떨어졌죠. 그리고, 연구소가 해체된 뒤, 그들의 '이능'은 텔레키네시스 신드롬이라는 질병으로 명명되고, 제노스는 일반인 사회에서 함께 살게 돼요. 물론, 다름에 대한 차별은 존재했고, 제노스들끼리 뭉쳐 용병부대를 만들기도 하지만, 21세기에 사회는 그들을 '특이한 일반인'으로만 여겨요. 21세기 상식에 맞춰서 말이에요.

물론, 아쉬운 디테일들도 있습니다. 제노스의 힘을 증폭시키기 위해서 호르몬제를 투입하거나 임신을 해야 하는 설정은... 정말 BL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설정이 있어서, 사랑스러운 시그니가 태어나고, 리욘을 거부했던 제이가 그와 뜨밤을 선택하게 되는 거지만!!! 다소 제노스의 탄생 배경에 비춘 다른 능력들과 결이 달라 튀는 느낌이었어요.

또, 앨런도요! 앨런은 제이의 존재를 알고 지켜보고 있었지만, 동시에 제이가 자신과 죽고 죽이는 관계가 되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게다가 먼저 적의를 밝히고, 수락할 수 없는 협상을 시도하죠. 앨런은 얼굴을 바꾸고, 신분을 위장하고, 왕과 카이옌 왕세자를 해치며, 긴 시간 공을 들여 라우지엔의 세력을 형성합니다. 하지만, 제이에게는 지나치게 여지를 남기는 일들을 해요. 물론, 똑같은 A급 능력자지만, 장기간 투여한 호르몬제로 인해 제이를 이길 자신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라우지엔을 위해 살았던 절실하고 처절했던 앨런의 삶에 비추어 봤을 때, 의아했어요. 절실함이 밀당이 되던가 싶고 말이죠.

마지막으로, 제이와 리욘의 첫 만남! 여러 번 반복되기도 하고, 중요한 설정이기도 하죠. 제이가 아이슬란드를 찾는 이유이고, 그때 리욘이 제이를 위로했던 동화 속 주문은 잊을 만하면 나옵니다. 또, 그 동화 속 주인공 '시그니'는 두 사람의 소중한 딸의 이름이, '리니'는 아들의 애칭이 돼요. 하지만, 리욘은 마지막까지 그 '첫 만남'을 모릅니다. 좀 더 극적 장면을 연출하는데 활용되거나, 후발 사건에 연쇄적 효과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 거라고 예상했고 읽었던 지라, 아쉬움이 남았어요.

소설은 '백야' 파트와 '극야' 파트로 나뉘어 있어요. 백야는 7년 전 2황자와의 일화를, 극야는 7년 뒤 왕세자가 된 리욘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그리고, 작가님은 '백야'는 '강제로 붙들려진 현실', '극야'는 '갇힌 꿈'이라고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그 극야를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이 된다고도요. 어쩌면, 돈 때문에 고용된 용병이자 혐오스러운 에일리언 제노스, 유약한 형을 방패로 살아남아 왕이 되어야만 하는 2왕자, 미약을 먹여서라도 아이를 가져 왕비가 되고 싶은 왕자비, 이것들이 그들의 현실이었을지 모릅니다. 어둠이 없는 밤처럼, 숨을 곳도 쉴 곳도 없는 명확한 현실이요.

하지만, 사고에 휘말려 제노스는 부모가 되고, 비정한 현실을 살던 2왕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습니다. 그리고 7년 뒤 두 사람은 만나죠. 현실의 이탈이 꿈이라면, 분명히 두 사람의 재회는 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야, 극야, 오로라, 인간에게는 기적 같은 현상이지만 자연에게는 당연한 일상들이, '극야'의 내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북유럽... 가보고 싶네요. 뜬금포 결말로 마무리 지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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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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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클립스

출간일: 2019.02.28

분량: 본편 1권

 

 

 

 

 

 

 

 

 

 

 

point 1 책갈피

"내 선물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할 것 같았어."

렌레이는 내 얼굴에 키스를 퍼부어 대며 다시 속삭였다.

"그래도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하루. 내가 당신을 섬기고 있잖아."

귀중한 뭔가를 아루듯 애틋한 손길로 내 얼굴을 매만진다. 렌레이는 차가운 입술을 내 입술에 맞대었다.

"......다신 나를 울리지 마."

point 2 줄거리

기: 형사이자 친형인 나루의 부탁으로, 의대생 하루는 마약 하나비라를 입수하기 위해 클럽을 찾는다. 그리고 클럽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루는 해일금융 서해일이 렌레이 조직의 보스 리자오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리자오의 어린 아들 렌레이를 구출해 달아난다. 그리고, 이 사실을 형 나루에게 알리고, 하루는 나루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레인 레이를 보호한다. 그동안 10살인 렌과 친해진 하루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으며 추억을 쌓는다.

승: 하루는 나루를 믿고 렌을 보내려 하지만, 나루가 정부에 렌을 맡기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하루는, 조부모에게 렌을 보내주기 위해 상해로 밀입국한다. 친구 태민이 만들어 준 위조 여권으로 힘겹게 상해에 도착하지만, 렌의 막내 이모 리자영은 렌과 하루를 택시에 태워 도피시킨다. 하지만, 택시는 전복되고, 하루가 깨어났을 때, 렌과 형은 죽었고, 심지어 형이 부패 형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하루는 진실을 찾기 위해 형사가 된다.

전: 14년의 시간이 흐르고, 하루는 강력계 수사 팀장이 되었다. 하루는 가짜 하나비라 유통을 조사하던 중, 하나비라를 먹고 환각 상태에서 마약상이자 사이코 연쇄살인범 김락희를 때려죽인다. 위기에 몰린 하루를 찾은 것은 마약 수사국 최 국장이었다. 하루는 형의 절친이자 짝사랑 대상인 손중원 과장과 중국 측 친이경감과 함께, 가짜 하나비라 수사팀에 참여한다. 하루는 김락희로 위장해 잠입 수사를 진행한다.

결: 그리고 스셴의 차기 수장인 된 렌과 재회한다. 렌은 김락희로 위장한 하루를 강간하지만, 곧 사랑한다며 끼고돈다. 하루는 렌에게 양가적 감정을 느끼며, 렌과 수사팀 사이에서 정보를 나른다. 하지만, 수사가 계속될수록 하루는, 하나비라 이면에 모종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하루는 진실에 도달하고, 형의 누명과 중원의 모략과 부패, 렌의 계략을 확인한다. 하루는 중원을 죽이고, 렌에게로 돌아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만신창이

리다조님은 암흑가 조직을 배경으로, 쫒고 쫓기는 사건물을 참 잘 쓰시는 작가님이죠. 물론, 그래서 '적신'이 그중에 으뜸이냐? 물으신다면, 그건 아닙니다. 쫀쫀하고 밀도 높게 진행하던 사건이, 막판에 중원과 렌의 대사로 퉁쳐진 것 같은... 용두사미라는 인상을 받은 작품이었어요. 단권이라는 분량의 한계도 분명 있었을 테지만, 초중반부에 기대치를 너무 높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결론의 아쉬움을 키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렌의 태도 살짝 잉???했고요.

물론, 그럼에도 '적신'은 몰입도 높은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특히, 제목이 의미심장해요. '적신', '벌거벗은 몸' 혹은 '죽음 직전의 황폐하고 처참한 상태'... 분명히 결론을 암시하고 있지만, 그 해석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있을 듯합니다.

사건물은 해피엔딩과 배드 엔딩이 명확합니다. 해결되면 해피이고, 해결이 안 되면 배드인 셈이죠. 그러면, '적신'은 비밀이 밝혀지지 않고 베일에 가려진 끝나는가? 묻는다면, 아닙니다! 나름 결자해지, 인과응보의 결말을 맞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적신'이 해피엔딩이냐 묻는다면, 글쎄요...입니다.

수인 하루는 형 나루에게 누명을 씌운 범인을 죽였고, 공인 렌은 어머니의 원수를 갚고 스셴의 수장이 되어 하루를 가졌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하루의 모습은 '적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치, 진실의 실체가, 사람의 심연이, 세상의 본 모습이, 사실은 만신창이라는 듯 말이에요.

하루와 나루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하루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나루는, 그 집안과 의절한 채 경찰이 됩니다. 그리고, 형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을 가지고 살았던 하루가, 의사인 부모님이 바라는 의대생이 되죠. 집안 좋은 마약쟁이 친구 태민이 하루에게는 가장 큰 일탈이었었죠. 하지만 예고도 없이, 수동적이지만 평화롭던 날들의 끝이 찾아옵니다.

하루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선택합니다. 살인자들은 무서웠지만, 어린아이를 방치 할 수 없어 렌을 구했고, 형이 렌을 정부에 넘기려 했을때도, 거래의 도구로 아이를 이용하려는 어른들에게서 렌을 보호합니다. 형 나루가 부패 경찰이라는 오명을 쓰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 뒤에 있을 거대한 음모와 맞서기 위해 경찰이 됩니다. 그리고 14년,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죠.

가짜 하나비라 유통 수사를 위해 마약상 김락희로 위장 잠입했을 때도, 가장 희생적인 선택을 합니다. 하루는 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없었고, 수사를 어그러뜨릴 수도 없었죠. 그래서, 렌에게 하루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얼굴 예쁜 창남이 되어 렌에게 몸쓸 취급을 받습니다. 또,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중원이 대시 해 올 때도,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수사를 진척시켜나갑니다.

하지만, 하루는 결국 만신창이가 됩니다. 일반인이면서 동정심에, 해일 금융과 렌레이파, 크게는 상해 스셴과 엉키게 됩니다. 나루의 반대에도, 렌과 함께 상해로 가면서, 나루의 오명을 밝힐 골든타임을 놓치죠. 14년이란 시간동안 중원에게 속아, 나루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에 조금도 근접하지 못합니다. 만약, 렌이 없었다면, 하루는 마지막까지 살인자를 옆에 두고 살인자를 쫒는, 눈뜬 장님으로 살아야 했을 거예요.

그리고 진실은 더 가관입니다. 중원은 좋은 형인척하지만, 실은 금수저로 태어난 하루와 나루를 폄하하죠. 하루가 자신의 만행을 알았을 때, 하루를 향해 머뭇거리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는 비정함을 보입니다. 여자친구와 파혼의 원인도, 나루를 살해하게 된 이유도, 모두 뒷돈을 받고 범죄를 묵인해 준 부패 행각때문이었지만, 가난을 핑계 삼아 스스로를 정당화합니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하루를 흔들기 위해, 하루를 사랑하는 것 처럼, 하루의 애정을 악용해요.

결국, 이타적이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하루가 마주해야 하는 가장 날 것의 진실은, 첫사랑의 추악한 민낯이었고, 비겁하다고 비난했던 형의 정의, 삽질만 열심히 해온 무능한 자신과, 정의라는 가면을 쓴 부패한 공권력이었죠. 그리고 그 설계자는 렌이었고요. 하루의 믿음과 신념, 노력은 모두 허상이었습니다. 하루는 모든 걸을 놓아 버립니다. 그리고 렌을 선택하죠. 렌은 만신창이가 된 하루를 섬기겠다고 말합니다.

벌거벗은 몸, 적신, 죽음 직전의 황폐하고 처참한 상태, 역시 적신... 어쩌면, '꾸미지 않은 본신은 처참한 상태'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화려한 깃털로 스스로를 치장하고, 비싼 옷을 두르며 자치를 높이려는 허세가, 본질을 가린다고 여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실은 그 본질을 덮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면, 거짓은 오히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환상일 거예요. 마치, 매트리스처럼요. 빨간 알약을 드시겠습니까? 파란 알약을 드시겠습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은 기어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마는 것이, 인간의 예정된 비극일까요?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1.08.18 - [BL 소설] - [현대물/스릴러물/시리어스물] 드레스드 투 킬(Dressed to Kill) - 리다조

 

[현대물/스릴러물/시리어스물] 드레스드 투 킬(Dressed to Kill) - 리다조

출판사: 이클립스 출간일: 2016.12.20 분량: 본편 1권 ​ ​ ​​ ​ ​ point 1 책갈피 ​ ​ "악이 떠오르면 무엇이 가라앉을까요?" ​ 데라가 물었다. 간단한 질문에 반해 내 고민은 길었다. ​ "글쎄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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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6.10.28

분량: 본편 1권

 

 

 

 

 

point 1 책갈피

"귀애합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몇 번이나 말해 주어도 격은 계속 듣고 싶어 했다. 나중에는 졸음에 겨워 혀가 뭉개지는데도 졸랐다. 귀찮기 짝이 없었으나 그 한마디가 그렇게 좋다는데 어쩔 수 없지 않나. 좋다고 홰를 치는 꼴이 귀엽기도 하였다.

가물가물 거리는 와중에 격은 끊임없이 말하였다.

나도 좋아하오.

마음 깊이 귀애하고 사랑하오.

나의 황후.

나의 목단.

그래. 이리 살아도 되는 것이지. 뭐 부귀영화가 따로 있나. 나 하나 좋다고 달려드는 부군 놈 하나 붙잡고 내 성질머리 다 풀어가며 사는 길도 나쁘지 않거늘. 자손 모아 오순도순 평생을 이리 살아도 되리라.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겨 쉬이 잠드는 날이 드디어 왔다.

point 2 줄거리

기: 노비인 목단의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목단을 관리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공부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생면부지 위재상이 친부라며 나타나, 어머니의 안위로 목단을 협박하며, 목단을 여장시키고, 병약한 황제 격의 황후로 입궁시킨다. 격은 선황이 죽고, 태제를 주축으로 한 간신배들 사이에서, 독이 든 식사를 먹고 있었다. 격은 황통을 끊으려는 위재상의 수작에 격분하여 목단을 박대하고, 자신이 먹어야 할 독이 든 음식을 목단에게 먹인다.

승: 쓰러진 목단은 혼몽한 상태에서 엄마를 찾고, 이를 본 격은 목단을 멀리한다. 그 후, 목단은 건강해진 반면 격은 다시 병들었다. 그제서야 목단은 격이 위재상이 보낸 독을 먹고 있음을 알게 된다. 목단은 독이 든 격의 탕약을 자신의 것과 바꿔치기하고, 격의 식사를 먹으면서, 두 사람은 깊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테제가 낙마로 사망하면서, 위재강을 포함한 간신배들은 인과응보를 맞는다. 한편, 위재상이 준, 태를 만드는 환약을 먹은 목단은, 황제의 아이를 가진다.

전: 15년이 흘러, 30이 된 목단은 황자, 황녀를 낳아 격의 유일한 반려가 되고, 격은 격무에 시달리는 성군이 되었다. 표면상 평화로운 생활이었지만, 실상 목단의 우울은 깊었다. 격이 황후궁을 찾은 것은 2년 전, 후궁 없어 대화할 상대조차 없이 시간을 죽이던 목단은, 결국 탈출을 시도한다. 목단은 궁 밖에서 자유를 누리며, 아이들을 가르칠 조그마한 학당도 만든다. 그러던 중, 흑립을 쓴 시정잡배 흑영을 만나고, 월담할 때마다 계속 마주치는 우연이 이어진다.

결: 궁 안에서 목단의 우울은 중증에 이르고, 결국 폐위를 요청한다. 격은 격렬히 반대하지만, 단식을 하며 쓰러진 목단을 결국 외궁으로 보낸다. 목단은 건강을 찾고, 흑영의 정체가 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밝힌다. 격은 흑영으로서 목단을 찾고, 학당 선생 목련으로서 목단은 아내 흑영과 결혼한다. 격은 목단을 다시 황궁으로 부르기 위해 셋째 임신에 박차를 가하고, 성공한다. 목단은 황후궁으로 돌아가고, 격은 매일 황후궁을 찾으며 부부애를 나눈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삶은 생각보다 길다. 매~~~~우~~~~~~

'목단향'은 저에겐 '재발견' 작품입니다. '목단향'을 처음 봤을 때, 천지개벽한 듯 생경한 캐붕을 보고, 참 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목단이야 위재상도, 격도 무서웠을 것이고, 정글 같은 황궁에서 모르모트처럼 갇혀, 조정 당해야 했으니 본성대로 살기 힘들었을 거예요. 사실은 겁 없고, 걸걸한 왈패였다!고 하더라도, 이해하려면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황제는... 이렇게 방정 맞고, 찌질하며, 우유부단할 수 있는가? '목련'이 된 황후보다, '흑영'이 된 황제를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잊고 지내다가, 책장 정리 중 '목단향'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느낌이 새롭더군요. 물론, 캐릭터 변천은 여전히 놀라웠지만, 대놓고 코믹스럽게 묘사해 놓은 설정이라고 생각하니 또 납득이 갔습니다.

목단은 격처럼 귀하게 자라지도,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지도 않은, 평범한 소년입니다. 단지, 힘든 형편에도 열심히 뒷바라지해주는 어머니와 알콩달콩 살기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합니다. 험난한 궁궐에서 격에게 난폭한 정사를 강요받아도, 위재상이 이상한 약을 가지고 와 임신을 종용했을 때도, 심지어 독약을 삼키며 버틸 때도, 언젠간 이 순간이 끝나 어머니와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바보 같을 정도로 순진하고, 순수한 어린양!

하지만, 격은 달랐습니다. 본디 영민하고, 천재적 재능과 성실한 기질을 타고났죠. 다만,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었기 때문에, 사촌인 태제에게 너무 쉬운 먹잇감이 되었다는 것! 냉험한 황궁에서, 독이 섞인 식재료가 제 몸을 갉아먹는 줄 알고도 삼켜야 했고, 후사를 끊기 위해 사내를 여자라 우기며 신방에 들이밀어도 받아들여야 했어요. 목단은 죄가 없었지만, 목단의 존재는 격에게 모욕이고 수치였습니다. 군주의 자질을 가지고 타고났으나, 너무 일찍 혼자가 되어버린, 상처 입은 어린양!

이 두 어린양은 서로를 보듬으며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천운을 입어, 살아남습니다. 서로는 서로에게 생에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존재가 되었죠. 문제는, 목단은 평범했고, 격은 비범했다는 거예요. 또, 목단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여린 성품이었고, 격은 지나치게 말이 적고 이성적이었어요. 물론, 궁에서만! 결국, 목단은 궁을 뛰쳐나가고, 그제서야 격은 무엇인가 잘 못 됐다는 걸 깨달아요. 정말 하이퍼 리얼리즘, 부부 생활 백서 같습니다.

물론, 격은 목단을 위해서, 자존심과 권위를 빛의 속도로 내려놓을 수 있는 사내였죠. 요 부분이 판타집니다.

목단은 황후가 아니었으면 누렸을, 너무도 평범한 생활에 취합니다. 야시장에서 밀떡을 사 먹고, 시원한 냇가에서 멱을 감고, 글 모르는 아이들에게 면박 당하지 않고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그런 생활 말이에요. 목단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라고는 서상궁 한 명뿐인, 남자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기에 매번 몸을 사려야 하는, 외롭고 우울한 황궁에서 도망칩니다.

한편, 격은 간신 우두머리 위재상의 자식인 목단을 지키기 급급했어요. 격은 빨리 왕권을 강화해서, 시시각각 목단을 노리는 하이에나들로부터 목단이 위협받지 않은 생활을 만들어주어야겠다고, 온몸이 썩어가도록 일합니다. 목단의 간절한 연서도, '외로워 죽겠으니까 얼굴 좀 보자!'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되니까 열심히 일하자!'로 받아들이죠. 황자녀를 통해 황권을 위협한다는 구실에서 목단을 보호하기 위해, 아이들마저 목단에게서 떼어 놓아요. 고독의 감옥에서 목단이 질식사 할때까지도, 격은 목단을 호화로운 황후궁에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믿어요.

격은 후회공이나 발닦개공이라고 불리기엔, 조금은 억울한 면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돌아선 마음을 되돌린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죠. 격은 목단이 외간 남자를 만난다는 소식을 듣고도, 목단을 불러 따져 묻지 못합니다. 목단의 외도를 인정 할 수도 없었고, 목단을 폐비시키려는 하이에나들에게 실마리도 주고 싶지 않았어요.

격은 면피로 얼굴을 가리고, 환으로 목소리를 바꿔, 흑영이라는 사내가 됩니다. 그리고, 만난 목단은 분명히 격이 아는 목단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웠어요. 격은 목단이 황후가 됨으로써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목단이 원하는 건 탈출이었고, 격이 해줄 수 있는 건 '위로' 정도였으니, 목단에게는 한참 모자란 보상이었어요. 결국, 이 남자는 격은 발닦개가 되어, 따귀도 맞고, 걸레도 맞고, EGG도 까이고, 심지어 여장도 합니다. 참 웃기지만, 또 참 멋있어요.

이야기는 삶의 단편입니다. 가장 극적인 조각들을 모아,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연출됩니다. 하지만, 시간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공평하게 이어지죠. 똑같이 힘을 주고 살아야 하지만,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마무리 짓는 이야기는, 그대로도 완벽하다고 착각하고 맙니다.

삶의 의외로 길어요. 산 넘어 산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잘 살아야 합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멋있음과 쿨함을 내려놓고, 이야기 뒤에 이어질 훨씬 긴 시간을 동행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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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인앤아웃

출간일: 2020.05.04

분량: 본편 1권

 

 

 

 

 

 

 

 

point 1 책갈피

그 동물의 왕국에서 고고하게 동정을 유지하고, 오로지 기도와 성경 읽기로 버티던 헌터병계의 성스러운 종교인은 마의 오 년을 채우지 못하고 죽었다. 아무리 고고하게 살고 동정을 유지하고 신을 믿어도 죽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의 시체 앞에서 그를 비웃는 헌터병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신앙생활 또한 방식만 다를 뿐, 이 미쳐 돌아가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버티기 위한 발악 중 하나였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point 2 줄거리

 

기: 어느 날 갑자기 세계 곳곳에 던전이 열리며, 몬스터들이 쏟아지는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한다. 그리고, 일반인 중에 일부는 '헌터'로 발현된다. 전무후무한 사태에, 갓 발현된 헌터들과 군인, 일반인들이 희생되었다. 국가는 일반인을 보호하기 위해, 헌터로 발현한 국민은 최소 10년간 복무해야 하는 법을 제정하고, 1가정 1헌터법을 만들어 한 명의 헌터가 군 복무를 하면 형제자매는 면제해 주었다. 경제적 보상도 있었지만, 헌터들의 생존율을 극악했다.

 

승: 자신의 자녀가 이런 끔찍한 희생양이 되는 것을 막고 싶었던 부모들은, 고아를 입양해 헌터로 발현시켜 군대에 보내려 했다. 그런 목적으로 입양된 아이들은, 헌터로 발현되지 못하면 파양됐고, 길러지는 동안도 학대와 냉대를 받아야만 했다. 연우 역시 3번 파양 되었고, 4번째로 입양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정우를 보며 사랑에 빠지고, 정우를 위해 헌터로 발현하고 싶다는 소원을 가진다. 연우는 헌터로 발현된다.

 

전: 연우는 입대 전날, 정우를 결박하고 강압적 정사를 가진다. 그리고 지옥과 같은 던전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혹독한 부상과 공포를 견뎌내며 살아남는다. 5년 뒤, 서울 대학로에서 새로운 '타임 홀' 던전이 열리고, 정우가 입학한 대학이 있는 장소라는 것을 떠올린 연우는 투입조에 자원한다. 그리고 연우는 시간 벌기 미끼로서 역할을 하다가, 던전에서 죽는다.

 

: 연우가 눈을 떴을 때, 그 던전에 누워 있었고, 삼십 대 중반의 대령이 옆에 있었다. 그의 왼쪽 가슴에 '모정우', 동생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정우는 연우가 대학로 던전에 들어 간 직후 헌터로 발현했고, 연우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능력과 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던전의 왕들을 죽여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엘릭서'의 제작법을 손에 넣어 연우를 살린 것이다. 정우는 다시 만난 연우와 헌터는 하루에 10번 발기한다는 속설을 몸소 확인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이 불편함은 무엇?

 

 

제목을 보고 가벼운 킬탐용 게임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절륜한 헌터들의 뽕빨물을 예상했으나,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답답해졌어요. BL은 BL 일뿐이다.라고 생각하려 해보았지만,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더군요. 뭐랄까요...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런 것 같아요. 어쨌든, 저쨌든, 시리어스물입니다. 극피폐물이고요.

 

세상에 불현듯 재앙이 닥칩니다. 갑자기 던전이 열리고,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죠. 미증유의 사태, 우왕좌왕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던전과 함께 발현된 헌터들은 희생을 강요받습니다. 혼란과 혼돈 속에서, 인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묵살되고, 소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재물처럼 바쳐져요. 그리고, 늘 불행은 약자들에게 더욱 가혹했죠.

 

모든 헌터가 똑같은 처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 당 한 명의 헌터가 지옥의 무게를 지게 됩니다. 그리고, 돈 있는 사람들은 고아를 입양해 자신의 아이들을 대신할 총받이로 키워요. 그마저도, 헌터로 발현되지 않으면, 파양합니다. 헌터의 생존율은 극악, 그나마 천재 헌터가 있었던 시절 40%, 그가 제대한 이후 20%를 전전하던 생존율은 16%까지 떨어져요. 부모들은 입양한 아이들을 정성 들여 키우지 않습니다. 입양된 아이들의 미래는 죽거나, 학대 당하거나, 파양 당하거나... 차라리 고아원 생활이 더 행복했죠.

 

그래서, 연우는 4번째 입양 부모가 왔을 때, 입양되지 안길 바랍니다. 다행히, 대기업을 운영하는 부모는 돈에 관대했고, 친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입양을 계속하고 있지만, 헌터로 발현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입양한 아이들을 성인이 될 때까지는 정상적으로 키워줬어요. 연우에게는 이전 3번의 양부모에 비해, 우호적 대우였죠. 그리고, 그곳에서 정우를 만납니다.

 

연우는 한 살 어린 정우를 사랑하게 됩니다. 낯을 가리던 정우는 서서히 연우에게 익숙해져가고, 입은 거칠지만 형을 많이 좋아합니다. 연우는 정우를 살리기 위해 헌터가 되고 싶어졌어요. 열심히 훈련하며, 헌터로 발현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연우는 결국 헌터로 발현돼요. 입대하기 전날, 양부모들은 제대 후 보상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국가나 양부모의 보상은 의미가 없었어요. 어차피 살아 돌아올 확률은 희박했으니까요. 입대 전날, 마지막으로 연우는 정우를 겁탈합니다. 물론, 정우에게는 겁탈이 아니었지만요.

 

예정된 지옥이었고, 연우는 공포와 고통과 상실만이 반복된 삶을 꾸역 꾸역 버텨냅니다. 절반은 연우와 같은 입양아, 나머지는 친부모가 있는 헌터들... 그 중 연우와 같은 고아출신들은 우선 투입됐고, 그래서 생존율도 훨씬 낮았죠. 하지만, 헌터의 인권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나머지 헌터의 '가족'들이었어요.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는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에 의해 효과를 발휘합니다. 당연하게 위험에 내 몰려 죽고도,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사람들의 권리는, 이렇게 회자됩니다.

 

연우는 미쳐가는 한국사와 함께 보스몹을 잡다가, 상부에서 원했고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시간 끌기의 목적을 완수하고 죽습니다. 그리고, 정우에 의해 살아나죠. 물론, 정우는 연우가 헌터로 발현해 입대하면서, 헌터가 되더라도 지역군이나 공익근무로 대체 가능한 권리를 얻었지만, 그럼에도 연우를 구하기 위해 그 혜택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5년 동안 연우는 '소위'가, 10년 동안 정우는 '대령'이 돼요. 그리고 정우가 능력과 권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연우가 제대하고 나서야 일부 얻을 수 있었던 양부모의 부가, 정우에게는 제약 없이 주어졌기 때문이겠죠.

 

굴림수, 상처수, 빈익빈 부익부, 존잘님과 소공녀... 할리킹과 피폐물, 쌍방구원물을 만들어내는 키워드들이에요. 그런데, '헌터는 하룻밤에 10번...'은 그 제목에서 유쾌하고 가벼운 내용을 예측했었고, 소개 키워드에도 이런류의 단어들이 없었기 때문인지... 반전의 묘미를 넘어서 다소 충격을 받았습니다.

 

게임은 애당초 사냥이 목적이니 당연히 죽고 죽이는 설정과, 연하남의 형 정복기에서 볼 수 있는 배덕함도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잔인함은 사냥이 아닌 인간들에게 느껴지고, 동생의 배덕감보다 형에게 무한 연민이 생기네요. 못 쓴 글은 아닌데... 왜 이렇게 불편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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