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BLYNUE블리뉴

출간일: 2021.01.14

분량: 본편 4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 달래 줄 수 없으니, 울지 마십시오."

그리 말하면서, 태윤은 묘한 손길로 이세희의 고운 손등을 문질렀다. 다행이었다. 바깥쪽에서 볼 때는 발목을 잡는 자신의 손만 보이기에. 이세희와 태윤은, 몸에 가려진 그 틈 사이에서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지마. 네 아버지를 닮은 얼굴로..."

태윤이 쓰게 웃었다. 그네를 타듯, 흔들거리는 이세희의 눈빛에 태윤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의 흔들림이 이리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이세희가 멀어질수록 자신의 죽음을 가까워질 테지만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전 아바마마를 닮았지만 아바마마와 다릅니다."

태윤은 웃음을 슬그머니 지우고서, 충직한 얼굴로 이세희를 응시했다.

"세희 널 지킬거야. 난 어차피 잃을 게 없어. 너만, 날 기억해주면 돼."

"건방지게, 누구 이름을 함부로..."

이세희가 입술을 깨물며 토라진 듯 중얼거렸다. 태윤은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의식하며 이세희의 손을 미련 없이 놓았다. 그의 발목에 천을 맞댄 채, 몸을 일으키며 그의 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너무 늦어서 미안해."

이세희가 눈을 감았다. 눈물이 넘쳐흐를 것 같은 위태로움에 태윤은 가슴이 아파와 눈을 내리떴다. 안아주고 싶은 손은 주먹을 쥐었고, 뒤로 물러났다.

이세희를 만난 것이 우연이라면, 그를 지켜주는 것은 필연이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태윤은 담담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장마가 끝난 하늘이 참으로 맑았다.

point 2 줄거리

기: 황제 태공은 천민인 이세희의 외모에 반해 그를 화비로 삼는다. 하지만, 강간으로 시작해, 감금, 폭행, 협박으로 이어진 황제의 집착과 광기는, 화비를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들었다. 세희는 황제를 증오하며 반발하고 도망친다. 결국 태공은 세희에게 음심을 품지 않는 아들 태윤을 금군대장으로 봉하고, 세희를 감시하도록 한다. 공노비인 모친의 핏줄을 타고난 탓에, 황제가 될 수 없었지만, 태윤은 바르고 착하게 자라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한 아들이었다.

승: 너그러운 아버지가 세희에게만은 잔혹한 구는 것을 보며, 태윤은 세희에게 연민이 생기고, 곧 이 감정은 사랑으로 바뀐다. 그러다 황후의 절일, 세희는 급습을 당하고, 그 틈을 타 절벽에서 자살하려 한다. 태윤은 세희에게 울며 살아달라고 빈다. 순하고 맑은 눈으로 자신에게 연정을 고백하는 태윤을 보며, 세희는 태윤과 함께 살고 싶어진다. 장마로 길이 막힌 별궁에서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비가 그치고 태윤은 황제에게 세희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전: 태윤은 가산을 정리해 자금을 마련하고, 황가 제사일에 맞춰 세희와 그의 가족들을 도망시키려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태윤의 애정을 보며, 세희는 태윤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세희는 태윤을 황제로 만들려 한다. 세희는 망설이는 태윤을 설득하고, 태자 태경을 이용하여 황제의 광기를 부축인다. 결국 태경은 자승자박하여 사약을 받고, 태경의 친모인 황후 역시 목을 매단다. 그리고, 황제 역시 세희가 먹인 독으로 쓰러진다.

결: 졸지에 황제와 태자의 자리가 빈 혼란의 정국, 황자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모반을 일으키고, 태윤은 아우들을 목숨을 스스로 거두며 황제에 오른다. 태윤은 화비가 훔친 옥쇄로 황제의 유언을 가짜로 작성하고, 황제는 화비와 사이좋게 저주를 주고받으며 죽는다. 한편, 태윤은 자신이 죽인 동생 태건의 아들을 데려와, 자신의 아들로 삼는다. 태윤은 악습을 타파하고 혼란을 바로잡아 성군에 이르고, 그 옆에서 세희는 반려로서 자리를 지킨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유아르님은 진화중!

유아르님... '격리실', '둘만의 밤' 같은 배덕감이 절정에 이른 근친피폐물에서, 배경과 설정같은 디테일의 풍미를 더한 '홍염'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이후 발표된 '광염' '허락된 불온' '폐월' 등등의 작품에서는, 전자도 후자도 아닌 애매~한 맛이었습니다. 이전작을 충분히 즐긴 독자로서는 아쉬웠어요.

금단의 관계에서 공의 독한 집착과 수의 체념, 둘 사이에 애증을 감칠맛 난 나게 묘사한 작품! 하지만 한계가 있는 반복적 소재이다 보니, '전개'에서도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하는데, 왠지 그 단계가 '홍염'을 끝으로 정체되어 있다고 느꼈거든요. 하지만, 저는 '화비설화'에서 유아르님의 진화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화비설화'도 재미있었지만, 저는 이다음 작품이 더 기대가 되더라고요.

분명히 유아르님 스타일이 있습니다. 태공과 태윤을 보면 어떤 부자들이 떠오르고, 태건과 태윤을 보면 어떤 형제들이 떠오르죠. 태자와 황후를 보면, 또 작은 계기 하나 던져 주고 퇴장한 어떤 악역들이 떠오릅니다. 작품마다 다른 색으로 변신하는 작가님들이 있는 반면, 잘하는 스타일을 고수하는 작가님도 있죠. 단지, 후자의 경우는 더 깊어지거나 다채로워지는 것처럼 상승적 변화가 있어야, 그전과 동일한 만족감을 느끼는 듯합니다.

'화비설화'에서는 '극복'이라는 설정이 등장합니다. 기존의 유아르님 작품의 빻빻한 빨간맛은 수의 모럴을 붕괴하는데 이용되었죠. 이렇게 뜨겁고 강력한 애정이, 그간 수가 쌓아온 인생이나 도덕관을 부시고 길들이는 부분에서, 극적으로 발발했습니다. 그런데, '화비설화'의 집착과 광기는 수를 '체념'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극복'의 동기를 부여해 주기 위해서 역할합니다. 물론, 그 굴림수가 절륜공이 되는 변화도 있습니다.

요는, 메인 공과 수 사이에는 큰 자극의 요소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애틋하고 애절한 사랑을 나눕니다. 희생과 구원이라는 신실하고 순수한 애정의 형태를 띠고 있죠. 반면, 매운맛 사랑은 태공이 담당합니다. 뜨겁고 지독하게 사랑했지만, 배신당하고 씁쓸한 최후를 맞이하는 황제 말입니다. 사랑의 방법이 잔혹하더라도, 사랑의 내용이 절실하다면, 공 혹은 수의 해피엔딩으로 끝났던 전작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또, '홍염'에서 붉은 홍염과 하얀 설원, 푸른 원림 같은 강렬한 색채대비가 공수의 감정 변화를 대변했다면, '화비설화'에서는 청명한 하늘과 장마와 같은 날씨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많은 소설에서 맑게 갠 하늘은 주인공의 밝은 미래를 상징하지만, '화비설화'에서는 반대에요. 거리길 것 없는 화창한 하늘은 세희와 태윤을 가려주지 못합니다. 가림막 없는 세상에서, 천민 출신에 두 사람은 태생적 약자이고 숨죽인 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장마가 내려 길이 막히고, 세상에 그들을 보지 못할 때에야, 비로소 오롯이 '세희' '태윤'이라는 사람으로서 서로를 마주할 수 있죠.

'공 수 관계'에 한정된 이야기도 확장적 진화를 이룩했습니다. 두둥! 세희와 태윤은 두 예언의 대상이 됩니다. 저잣거리에서 세희의 부모는, 세희의 얼굴이 드러나면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될 거라는 예언을 듣죠. 그리고, 태공은 점쟁이에게 세 아들 중 태공을 뛰어넘는 성군이 나올 거라는 말을 듣고, 그 노파를 죽입니다. 그래서, 세희의 어머니는 세희의 얼굴을 꽁꽁 쌓고, 태공은 스스로 훌륭한 황제의 자질을 갈고닦으면서, 가장 무능한 태경을 태자에 앉힙니다. 둘 모두, 정해진 미래를 거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세희는 동생 세형의 혼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물을 길어 나르고, 그 중간에 마른 목을 축이러 잠시 천을 벗었다가 황제에게 발견되죠. 당시, 강간을 당한 여자는 강간한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풍습이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 예쁜 세형은 결혼자금을 모아 야만 결혼할 수 있었어요. 큰돈을 주겠다는 소리에 혹해 물건을 나르러 간 대감집에서 세희는 황제에게 강간당하고, 이후 세희의 가족들은 볼모가 되어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태공은 자신보다 뛰어난 성군이 될 아들의 존재를 시기 합니다. 하지만, 성군의 기질을 가진 태윤은 천민의 소생이기였기에, 황제가 될 수 없었고, 시기의 대상에서 빠진 태윤은 태공에게 독점적 사랑을 받습니다. 그래서, 세희의 호위가 될 수 있었고, 몇 번의 위기에서도 태윤은 살아 남을 수 있었죠. 태공은, 태건과 태경 중 어리석은 태경을 태자에 올리죠. 예상대로 어리석은 태경은 얕은 수로 세희를 꾀어보려다 멸문을 당합니다. 그리고, 태자의 부재는 다른 황자들의 모반을 부추기고, 결국 태윤을 황제로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요.

예정된 두 미래, 하지만 모두 천민이라는 이유로 그 운명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피하기도 합니다. 황제가 된 태윤은 가장 먼저 신분의 제약을 없애 버립니다. 자신이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을 '차악'이었다 정의하며, 사병 제도도 폐지합니다. 선황의 후궁들에게 재가도 허가하고, 허례허식도 줄여갑니다. 그건 천민 출신 황제만이 생각할 수 있고, 실행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유아르님 소설에 볼거리가 풍성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다만, 아직까지 다채로운 인물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태건이나 태경, 황후나 정빈, 금군 부하들을 좀 더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작품성'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참 면구스럽습니다. '좋은 작품'이라는 것은 기준이 모호하고, 그것을 하나의 특성으로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죠. 분명, 자극을 위해 쓰인 소설이라면 '자극'이 잘 묘사된 것으로 충분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작가의 사람과 배경만 바뀐, 동일한 수준의 소재 반복은 체감적 만족이 떨어져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도들은 분명히 그 전작보다 '더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결과'들을 만들어 낼 테고요. 절대적이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작품성 있는 이야기가 완성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작 작가이신 만큼, 다음 작품도 멀지 않은 시일에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분명히, 예상컨대, 대박일 거예요!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0/10/24 - [BL 소설] - [인외존재/동양풍/피폐물] 홍염 - 유아르

 

[인외존재/동양풍/피폐물] 홍염 - 유아르

출판사: BLYNUE 블리뉴 출간일: 2019.09.19 분량: 본편 4권 + 외전 2권 ​ ​ ​ ​ ​ point 1 책갈피 ​ ​ 강은 화원에서 가장 어여쁜 자태를 하고 있다고 자부 할 수 있는 홍염을 향해 걸어갔다. 어둠

b-garden.tistory.com

2020/09/15 - [BL 소설] - [현대물/피폐물] 둘만의 밤 - 유아르

 

[현대물/피폐물] 둘만의 밤 - 유아르

출판사: BLYNUE 블리뉴 출간일: 2018.10.17 분량: 본편 2권 + 외전 2편  point 1 책갈피 종착지는 아버지였다.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렸지만,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었다. 그게 슬프고, 기뻐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