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필연매니지먼트

출간일: 2020.11.01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 주인아, 문자를 너무 맹신하지마. 우린 단편적인 마음의 한 가닥만 읽을 수 있을 뿐이야. 문자를 바탕으로 타인의 마음을 짐작한다고 해도 얼마든지 각색될 수 있다는 소리고."

지친듯 잠시 소파에 주저앉은 남자는, 삼십 대 중후반쯤으로 보였던 얼굴이 일순간 쉰 살은 넘은 것처럼 느껴졌다.

"향현사...... 그게 저 밖에서 우리를 부르는 용어야."

"네?"

"향현사들은 사이코메트리스트보다 훨씬 드물거든. 우린 'snare'로 불리기도 해."

새로운 지식은 늘 그렇듯 놀라움을 불러온다.

"한국말로는 향현이란 뜻을 가졌지. 죽은 지 수십 년은 더 됐지만 영국 수사관으로 알려진 한 남자가 있어. 그 남자도 우리와 같이 문자를 읽을 수 있었고, 그는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내서 그렇게 물렀어. 'snare'라고. 그건 향현이라는 뜻과 더불어 덫이나 올가미라는 뜻도 가지고 있지. 주인이 네가 보는 문자도 참 아름답지?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는 문자는 아름다운 음악을 울리는 향현줄 같은 게 아니라 덫이기도 해.

point 2 줄거리

기: 이주인은 강한 사념을 형상화한 글자를 볼 수 있다. 어느 날, 주인이 운영하는 조용한 시골 카페로 원두로 둔갑한 마약 K3 오배송 된다. 폭력조직 사파의 이사, 묵야는 그 K3를 회수하기 위해 경찰인척 주인의 카페를 방문하고, 무채색의 세계에 오색빛을 뿜어내는 주인에게 한눈에 반한다. 주인 역시 글자를 읽을 수 없는 묵야에게 관심이 생기고, 둘의 관계는 급진전된다. 주인은 서울로 올라와 형사 태형의 수사를 도우며, 사파의 전무가 된 동생 주율을 만난다.

승: 주율 역시 주인처럼 글자를 볼 수 있었다. 과거 두 사람은 그 이유로 친부에게 학대를 당해 왔고, 동시에 주율은 주인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주인은 주율을 동생으로만 대했다. 그러던 어느날 사고로 부모가 죽고, 주율은 잠적했다. 한편, 주인이 시골로 내려간 사이, 태형의 의붓동생이자 사이코메트리스트인 유진은 주인의 집에 살고 있었고, 돌아온 주인과 주율은 유진과 어색한 동거를 시작한다. K3수사를 돕는 주인은, 번번히 묵야의 흔적을 발견한다.

전: 묵야는 주인에게 거짓이 없었고, 주인은 '읽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묵야에게 안식을 느낀다. 주인은 묵야와의 신뢰가 쌓이는 반면, 점점 변해가는 태형의 모습를 보며 실망한다. 결국 주인은 태형에게 수사에서 손을 떼겠다고 말한다. 태형은 글자로 주인을 힐난하고, 주인은 깊은 상처 입는다. 한편, 과거 친부의 학대 트리거가 되었던 '이성일'이 나타난다. 인터폴인 성일은 친부의 동생이었고, 친모의 연인이었으며, 친부를 사랑한 마음을 접기 위해 도망쳤었다.

결: 성일은 주인의 집에서 우연히 만난, K3 유통책 유진을 알아보고, 놀란 주인은 태형과 묵야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하지만, 실제 배후인 태형이 보낸 가출 청소년들에게 납치당한다. 그리고 K3 사건 이면에, 묵야를 실각시키려는 사이남과 태형의 공모가 있었음이 밝혀진다. 다행히 묵야는 주인을 구하고, 사건을 정리한다. 한편, 성일의 비극을 목격한 주인은 단호한 결단을 내리고, 그 결정 따르기로한 주율은 집을 떠난다. 주인은 다시 시골 카페로 내려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말'의 굴레

힘들면, '힘들다.'라는 말 해야할까? 언젠가 이런 생뚱맞은 주제로 지인들과 대화 한 적 있습니다. 한 미식축구 감독은, '남에게 힘들다고 말하면, 그들 중 98%는 관심이 없을 것이고 2%는 고소해 할 것이다. 그러니까 타인에게 힘들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확실히, 입버릇 처럼 '힘들다.'고 하는 사람과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 집니다. 피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공연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뒤늦게 죄책감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죠. 무엇보다, 속이 곪아요.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힘들다.'라는 '말'에는 '힘'이 있다는 겁니다.

채팔이님의 소설은, 세상을 비틀어, 세상을 직시하는 작품들이 많아요. 비현실적인 설정들이, 되려 신랄하게 현실의 민낯을 보여주는 이야기들 말이에요. '향현문자' 역시 그렇습니다.

강한 사념은 문자로 형상화 되어 스스로 '의지'를 가집니다. 머리에서 '뽕' 생겨난 문자들은, 자신만의 색과 기운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비슷한 기운을 가진 글자들끼리 서로 끌어 당깁니다. 가령, '자살'은 어둡고 독한 기운을 가지고 태어나서, '절망' '실패' 같은 단어들과 모입니다. 뭉칠수록 기운은 강해지고, 그 글자들은 공중을 떠다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다른 사람에게 들러붙어요. 반대로, 밝은 기운을 타고난 단어는 주변의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들어 줍니다. 상처가 나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태어난 '후시딘'은, 주인의 아픈 부위를 찾아가곤 합니다.

슬픈것은, 독기를 머금은 글자는 좋은 기운의 글자를 먹어 치운다는거에요. 글자에 있어서는 빛이 어둠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빛을 잠식시키는 거죠.

글자는 그 문자에 반응하는 사람의 '의지' 역시 반영합니다. 주율의 방에 가득 찬 단어들은 주인에게는 독이 돼요. 주인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글자들로 인해 피를 토하죠. 주율은 주인을 사랑하는 마음에 당당하고, 주인은 주율의 사랑을 집착과 광기라고 느끼니까요. 문자에 담긴 사념은 같지만, 두 사람에게 문자의 기운은 다른 셈이죠.

또, 글자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그 글자를 보관하거나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기운을 모아 놓으면 그 장소는 밝고 즐거운 기운이 만연하고, 나쁜 기운의 글자를 파괴하면 독기도 함께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파괴한 사람에게 고스라니 돌아옵니다. 안방을 가득 매운 '이성일'이라는 글자를 모두 파괴한 이성일은, 업보와 같은 고통을 스스로 감내합니다.

그리고, 문자를 많이 생성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주로, 자아가 약할수록 문자가 많이 보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머릿속으로 많은 말들을 하기 때문이죠. 반면에,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은 문자를 잘 만들지 않아요. 마치 묵야처럼요. 또, 진심과 다른 문자를 생성할 수도 있고, 회피할 수도 있어요. 형사 태형은 주인을 속이기 위해 문자를 통제하고, 주인은 말과 문자가 동일한 태형이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어버려요. 그리고 그런 맹신이 비극의 단초를 제공하죠.

사이코메트리나 독심술, 마인드 컨트롤 같은 초능력을 다룬 작품은 많습니다. 그리고, 이 '진실을 보는 무기'는 주인공에게 불행한 비밀을 무차별 노출시키기도, 거대한 사건을 풀 실마리를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자를 읽는 '향현사'의 초능력은 좀 다릅니다. 그저, 그 순간, 그 사람의 '단편'을 볼 뿐이에요. 하지만,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기 시작하면, '문자의 굴레'에 갇혀 버리고 맙니다. 마치,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면 '사실'이 되어버리는 것처럼요. 향현사였던 친부는, 부인에게서 넘쳐흐르는 '이성일'이라는 글자를 평생 보지만, 주율이 그 단어를 말하고 나서야 '이성일'이라는 존재를 현실로 끌어내요. 안개처럼 흐리기만 한 실체가, 형태를 굳혀 '진실'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예요.

나의 기억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지만, 문자로 정의되는 순간 '사실'이 돼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아주 많은 순간 '기억'이 유일한 '진실'인 마냥 상처받고 움츠려 듭니다. 평생 문자의 속성을 질리도록 접해 온 주인이, 그 문자의 굴레에 갇혀 위기에 빠지게 되는 것처럼요. 문자가 의지를 가진다는 사실을 알아도, 그 문자를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 역시, 그 문자를 그저 믿고 싶은 의지를 가지기 때문일까요?

'항연 문자'는 채팔이님의 위트 있는 서사, 금사빠 공수의 풋풋한 연애, 주율 유진의 티카타카로 유쾌하게 전개됩니다. 하지만, 주율이 주인을 이성을 잃은채 반복적으로 폭행하거나 강간하려는 장면, 가출 청소년들이 주인에게 강제로 오럴를 시키고 사진 찍는 장면을, 매우 건조한 시선으로 보여주기도 하죠. 또, 불어 선생님과의 일화나, 살인사건이 되어버린 치정사건은, 주인이 피하든 피하지 않든, 문자를 읽는 능력은 모두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냉소적 결말을 던지기도 합니다.

'향현문자'는 초능력으로 수사를 돕던 주인공이, 가장 믿었던 형사에게 배신당하는 단순한 사건물입니다. 또, 사패 소패 조폭의 첫사랑과 갑자기 키스를 하며 사귀자고 해도 오픈 마인드고 받아 주는 쿨한 연애관 등 좀 잉?스러운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향현문자'의 재미가 비단, 이런 '줄거리'에만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중이나 경중과 무관하게, 등장인물 모두가 결이 다른 메세지를 전해 주고 있고, 충돌 없는 독특한 설정들이 한걸음 물러나 현생을 관찰하게 해주죠. 정말... 채팔이님...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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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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