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1 책갈피

"아버님께서는 항시 전장에 계셔 길게 뵌 일이 없으나, 집에 돌아오면 꼭 저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항상 무인은 자신을 쓸 주인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생의 의미를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도 언젠가는 충정을 바치고 싶은 주인을 만날 거라고 하시었습니다. 그런 주인을 어찌 찾느냐 여쭈었더니, 아버님께서는 그저 보는 순간 알게 된다 하셨지요.

"......"

태자는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것은 얼마 전 비빈 첩지를 받은 소녀가 할 만한 말이 아니었다. 이것은 무가에서 나고 자란 사내아이가 할 법한 말이었다. 그것도 제법 자란 사내아이.

"떠오르는 나라와 저무는 나라 간의 전쟁은 제가 어찔할 일이 아닙니다. 아버님과 형님들께서는 스스로 선택한 주인을 위해 죽음을 택하셨으니 그 또한 그대로 존중할 일입니다. 채왕이 제 가문을 멸문시켰으나 저무는 해는 알아서 저물어 사라질 테니 제가 따로 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태자 전하를 제 주인으로 정했으니 태자 전하 곁에 있을 것입니다."

평소 거의 말을 하지 않던 단율이 길고 긴 말을 단 한 번 끊거나 망설이지 않고 마친 뒤 태자를 똑바로 응시혔다. 까만 눈동자는 흔들림이라고는 일절 없이 고요했고, 또한 망치로 때려도 작은 흠집조차 나지 않을 것처럼 단단했다.

point 2 줄거리

기: 건나라 태자 유담은 무위가 높은 단평장군을 선망하고 있었다. 채나라의 마지막 충신 단평장군은 주지육림에 빠진 채왕을 대신해 전장에 서고, 채나라 정벌에 나선 유담은 몇번이고 단평장군을 회유하려 들지만, 그는 그의 장성한 아들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다. 하지만, 채왕은 충신인 단평장군 일가를 왕의 뜻을 거스른 역적으로 몰며, 유담에게 구차한 목숨을 구걸한다. 그런 채왕을 보며 유담은 분노한다.

승: 한편, 단평장군의 유일한 핏줄인 단율을 살리고자 환관은 단율을 여아라 거짓으로 고하고, 그 의도를 알아챈 유담은 단율을 데리고 건나라로 돌아온다. 유담은 단율을 적당한 때 궁 밖으로 보내, 단평장군의 가문을 연명해 주고자 귀하게 키운다. 한편, 황제의 임종이 다가오자 기귀비는 2황자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 모반을 꾸민다. 유담은 위기에 직면하지만 잘 극복하고, 이런 혼란을 틈타 단율을 궁 밖으로 내보낸다.

전: 하지만, 단율은 마차에서 탈출해 종적을 감춘다. 유담이 단율을 찾았을 때, 단율은 얼어 죽을지언정 유담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매달리고, 유담은 단율을 원하는 바를 들어준다. 한편, 서쪽 제후국인 하나라가 건나라를 침범하자, 유담은 친정에 나선가. 그리고, 몰래 따라나선 단율을, 유담을 구한다. 하지만, 이 사건과 숙비의 모략으로 단율이 남자라는 소문이 돈다. 유담은 슬기롭게 대처하여, 단율을 남자 귀비이자 의덕장군으로 만들어 준다.

결: 한편, 둘째를 임신한 덕비는 갑자기 귀비가 된 단율을 경계하고, 유담을 따라 하나라 정벌에 나선 단율을 죽이려 계략을 세운다. 그 계확은 실패하지만, 단율은 큰 부상을 입는다. 유담은 덕비의 계책을 간파할 뿐 아니라, 증거까지 모아 그녀를 냉궁으로 유폐한다. 더불어, 하나라 정벌에 큰 공을 세운 단율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라 하고, 단율을 유담을 청한다. 유담은 단율의 것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NO 소스, JUST 재료 맛!

한 소설가가 "왜 작가님 소설에는, 그렇게 정상적인 사람이 안 나오고 어둡기만 해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답하죠. 현실에서는 아주 많은 사람이 "그럴 수 있지" 하는 것도 "뭐야? 절대 용서 못 해!"라고 반응하는 것이 소설이라고요. 소설은, 갈등에 집중하고, 그래서 인물들 역시 과장될 수밖에 없다고 말이에요. 확실히, 장르소설에서 이런 극화는 더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강한 감정들이 쉴 새 없이 몰아쳐요.

자극의 역치는 점점 높아지고, 상업 소설의 자극도 역시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단순한 싸패는 다정공으로 불리고, 왠만한 미친놈이 아니고서 감히 '광공'을 칭하기도 민망해졌어요. 감금과 강간만 있어도 유교걸들이 눈살을 찌푸리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 피폐물의 클리셰는... 정말 다양해졌지요. 그런 면에서 '귀비장군'은 참 독특한 작품이었어요.

황제와 후궁의 로맨스는 현대물보다 감정이 더 큰 폭으로 날뜁니다. 일단 궁중암투나 정쟁, 전쟁으로 헤비급 일촉즉발의 상황들이 발생하고, 그 속에 신파, 애절, 감동의 희생은 필연적입니다. 일단, 귀비와 친한 황후는 없습니다. 또 황제의 권력을 탐하는 외척은 태자라는 혈통을 얻으면 무소 불이의 존재로 급부상합니다. 그리고 황제는 신물 나는 구중 심천에 순수하고 한결같은, 꽃 한송을 발견하고 깊이 애정 합니다. 하지만, 그 총애를 입고 귀한 신분이 되면, 그때부터는 온갖 구설수와 위기에 휘말죠. 그럴 때마다 주변 시비들의 희생은 늘고, 황제는 난폭해져요.

'귀비장군'의 자극도는 매우 낮습니다. 현명하고 인자한 황제, 하지만 소신과 카리스마도 있죠. 외척인 모용가는 그런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고, 황후도 태후도 황제의 적극적 우군이 되어 줍니다. 현숙하고 노련한 정치적 동반자 황후와, 그 업그레이드 버전인 태후로 인해, 드센 외척도 없고, 공연한 정쟁도 없습니다. 그리고, 단율을 키우면서도, 틈틈이 비빈들의 숙소를 열심히 드나들고, 후궁들은 공평하게 자녀를 나누어 가졌죠.

태자인 유담은 황제의 사랑을 받는 기귀비와 그의 아들 2황자로 인해 위기에 몰리지만, 황제는 연정에 눈이 멀어 미숙한 2황자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기귀비는 모략을 꾸며 태자를 죽이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가는 황제는 유담에게 기귀비와 2황자를 살려달라고 부탁하고, 유담도 기꺼이 그렇게 합니다. 황후는 배신감을 느끼지 않고, 황제의 마지막을 오래 산 부부의 정다움으로 보내줘요. 궁중암투, 정쟁, 전쟁 모두 등장하지만,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선상에서 마무리됩니다.

19세 외전에서 유담의 어신을 맛본 단율이 다소 표독스럽고 음흉해지긴 합니다. 하지만 유담이 그런 모습조차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용해 주기 때문에, 그다지 감정 고조가 일어나지는 않아요. 여러모로 담담하고 담백한 소설, 하지만 밍밍하거나 싱겁다기보다는 재료 맛에 충실한 느낌이랄까요. MSG 없는 건강하고 정직한 맛입니다.

욕심은 있지만, 인정도 있고, 타인을 도우면서도, 적당히 자신의 잇속도 차리고, 위기에 대처할 정도로 영민하지만, 완벽하지는 않고, 이성을 따라 감정을 자제하기도 하지만, 감정을 따라 우발적인 결정도 하는... 원래 사람은 그런 존재잖아요. 물론, 독사 같은 악인이나 신념을 기계처럼 밀어붙이는 충성봇이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MSG는 마시쪙! 하지만 가끔은 담백한 순두부에 드레싱 없는 샐러드를 먹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순~하지만 단맛도 적은, 담백한 한끼 BL로는 추천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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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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