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7.01.13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감정이 깊어지면 후에 겪을 괴로움과 상실감도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깊이 빠져드는 걸 경계하게 되는 법이다. 여유가 생기고 현명해지는 거라고들 하지만 실상은 그저 겁이 많아지는 것뿐이야."
잠시 말을 끊은 태해랑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일단 빠지고 나면 절대 물러서지 않지. 내 인생에 다시 이런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될 수 있을지 어떨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못할 짓이 없어진다."
point 2 줄거리
기: 정복왕조 현은 소국인 아라국을 멸망시키며, 아라인들은 비참한 처지에 내몰린다. 그중 역경을 딛고 성공한 아라인 중, 공녀로 받혀져 태후가 된 흔씨와 무역으로 부상이 된 란씨가 있었다. 란씨는 고아가 된 아라인 이사야를 데려와 키우고, 자색 눈을 가진 미인으로 자란 이사야는 황후의 오라비인 타이지 타무르 눈에 든다. 타무르는 란가를 겁박하고, 이사야는 타무르에게 자신을 판다. 그리고, 1년간 이사야는 황제 하슬라의 대체품으로 타무르에게 안긴다.
승: 흑발과 자색 눈을 지닌, 잔혹하고 변덕스러운 황제 하슬라를 사랑한 타무르는, 똑같은 얼굴의 이사야를 다정하게 대해준다. 그 사실을 알고도 이사야는 타무르를 연모한다. 그러던 중 이사야의 이야기를 들은 하슬라는 이사야를 불러 모욕을 주고, 타무르는 묵인한다. 상처 입어 울고 있는 이시야는, 태해랑을 타무르로 착각하고 안긴 채 쓰러진다. 한편, 타무르를 이용해 온 하슬라는 이사야에게 흥미를 느끼고, 낙인을 찍은 채 자신의 대역으로 활용한다.
전: 그러던 어느 날 이사야는 하슬라가 란가와 자신을 도륙할 것이라는 급보를 받는다. 이사야는 황가의 혈통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알게 된 하슬라는 관련인들을 제거하려 한 것이었다. 이사야는 란가를 지키기 위해, 하슬라를 죽이고 황제가 되려 한다. 그리고, 뒤늦게 이사야에 대한 연정을 깨달은 타무르가 하슬라를 죽이고 이사야를 돕는다. 하지만, 이사야는 타무르를 용서하지 못했고, 자신에게 구애하는 태해랑을 이용해 타무르를 견제하려 한다.
결: 태해랑과 타무르에게 공평히 몸을 나누면서, 후궁전에 발을 끊은 황제를 려귀비는 의심한다. 려귀비는 자신의 가문인 아젠타의 힘을 빌려, 타무르, 태해랑, 황제를 이간질해 분열시키고, 반정을 일으켜 자신의 아들을 황위에 올리려 한다. 하지만, 이사야는 이미 이를 간파하고 있었고, 모반은 실패로 끝난다. 타무르는 안정적인 황권을 확립한 이사야가 태해랑에게 고백하는 모습을 보며, 이사야를 떠나려 한다. 하지만, 이사야는 타무르를 놓지 못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아픈 뿌리
뜅굴이님의 소설은, 좋은 말로 군더더기가 없고 나쁜 말로 생략이 많습니다. '어떻게'라는 부분이 매우 간소하고, 메인 갈등이외에 잔 갈등도 거의 없습니다. 얼기설기 얽혀 있는 다사다난한 궁중물을 원하신다면, 만족도가 높지 않을 수 있어요. 이런 나쁜 짓을 했고, 그래서 위기가 생겼으며, 황제는 이 사실을 알고 있고, 문제는 잘 해결되었다!를 좀 길게 쓴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엉성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암투나 정쟁을 심플한 뼈대로 세워두고, 그 위에 화려한 인물들을 장식해 놓은 느낌이랄까요. 선택과 집중! 하지만, 그 선택과 집중된 부분 이외의 요소들을 보는 편이라면, 아쉬움은 있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캐릭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재미있게 봤습니다.
제일 매력적인 인물은 타무르였습니다. 이사야 일 듯도 하지만, 그보다는 저에겐 타무르!였습니다. 타무르는 과묵한 외골수예요. 무재인 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은 훌륭한 무인이었고, 황후의 오라비이자 2황자의 외숙이었죠. 명실상부 최고의 명문가, 짐승 같은 몸에 미형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치적 행보만큼은 늘 한걸음 물러나 있었습니다. 바로, 황제인 하슬라를 사랑했기 때문이죠. 그는 탄탄한 배경을 내려놓고, 폭군의 사냥개로 사는 것을 선택합니다.
하슬라는 아라인 흔씨의 소생으로, 아라인다운 작은 체구, 아름다운 얼굴, 고운 흑발과 자색 눈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하슬라에게 이런 외모는 멸망한 나라의 흔적이었고, 공녀로 태후에 오른 어머니의 존재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슬라는 변덕쟁이 폭군으로 잔인한 성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뒤처리는 타무르의 몫이었죠. 필요가 있다면 죽이지 않는다. 그만큼의 가치인 것을 알면서도, 한길밖에 모르는 타무르는 기꺼이 하슬라에게 이용당해 줍니다.
결코 가질 수 없는 존재, 그렇게 생각했던 하슬라와 꼭 닮은 이사야를 발견하죠. 타무르는 협상을 모르는 남자였어요. 그리고, 이사야는 장사꾼이었죠. 타무르는 란가를 멸문시키겠다고 협박 하고, 이사야는 란가를 지키기 위해 돈을 받고 자신을 팔아요. 타무르는 이사야를 소중히 대해줍니다. 하지만, 안을 때면 언제나 하슬라의 이름을 부르죠. 거금을 받고 내어 준 몸이니, 연심이 깊어져도 이사야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다만, 속은 점점 곯아갔죠.
하슬라는 타무르가 그토록 아낀다는 이사야에게 흥미를 느낍니다. 그리고, 이사야를 불러내고, 타무르의 진심을 알게 돼요. 하슬라는 자신이 싫어하는 아라인의 특징을 빼다 박은 이사야에게 모욕을 줍니다. 그리고 하슬라의 잔인함을 알고 있는 타무르는 이사야를 살리기 위해 입을 닫아요. 하슬라의 대체품으로 산 것은 '화대'의 대가라지만,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은 '연심'의 대가였어요. 설상가상 황명을 거부할 수 없었던 타무르는, 상처 입은 이사야를 황제에게 바치기 까지 합니다. 그렇게 이사야는 사랑하는 남자에 의해 궁에 갇히고, 노예처럼 몸에 낙인이 찍히죠.
타무르는 하슬라를 사랑했고, 이사야를 하슬라의 대신으로 삼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슬라와 이사야는 만났고, 하슬라는 이사야를 괴롭힙니다. 그 모습을 보며, 미묘한 틈이 생겨요. 둔한 남자는 그 균열의 답을 찾지 못하고, 고통을 토하는 이사야에게 무언의 긍정을 보냅니다. 그리고, 늦된 남자의 깨우침은 이사야와 타무르를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만들었죠. 타무르는 이사야에게 구애하고, 용서를 구하고, 심지어 하슬라를 죽이기까지 하지만, 이사야는 타무르를 믿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타무르를 견제 할 수 있는 태해랑을 곁에 둡니다. 타무르는 이사야를 위해 짝사랑 상대를 죽이고, 가족 역시 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위기를 몇 번이나 넘으면서도 이사야를 충실히 지켜내죠. 수완 좋고, 말 재주 있는 태해랑이 이사야를 녹여 가졌다면, 타무르는 깨지고 부서지고 나서야 이사야 곁에 설 수 있게 됩니다. 이사야는 타무르는 빼 낼 수 없이 깊이 박힌 가시라고 말하고, 타무르는 진심으로 기꺼워하죠.
부상의 막내아들, 혹은 사위가 되어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사야... 하지만, 타무르에 눈에 띄었다는 것으로, 운명은 배배 꼬여 버립니다. 친모가 숨겨 온 자신의 혈통을 알게 되고, 죽지 않기 위해서 가짜 황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죽입니다. 천성이 장사꾼인 이사야는, 현명하게 위기를 모면하지만, 불안과 불행의 나날을 견뎌내야만 했어요. 비록 타무르가 욕심낸 것은 이사야 하나뿐이었지만, 타무르는 이사야에게 애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죠.
다공일수에서, 유혹수가 아니라면 칼자루는 공들이 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여왕수가 아님에도 정치적으로 두 공을 이용하고, 감정적으로 통제하는 노련함을 보입니다. 두 사람을 저울질해서 원하는 행동을 유도하면서도, '애정'이라는 보상도 적절히 분배해 주죠. 이 보수적인 무인 남자들은, 그렇게 이사야를 나누어 가지게 됩니다.
이사야는 황궁을 내려다보며, 금빛 밀림 속에서 자신을 황제로 지탱해 주는 두 뿌리의 존재를 생각합니다. 다정한 뿌리 태해랑, 아픈 뿌리 타무르... 타무르는 이사야에게 상처 없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태해랑을 부러워하고, 태해랑은 자신이 모르는 이사야와 타무르만의 시간을 인정해요. 화려한 잎사귀를 자랑하는 나무는, 어둡고 습기진 흙 속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타무르가 이렇게까지 개발싸개가 되어야 하는가? 타무르는 억울할지 모르겠지만, 원래 인생은 타이밍이니까요. 그래도, 아프게라도 이사야의 한 뿌리가 될 수 있었으니, 결국은 해피엔딩이라고 봐야겠죠? 물론, 지분은 1/2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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