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시크노블

출간일: 2019.01.11

분량: 본편 3권 + 외전 1권

​​

 

point 1 책갈피

"이주."

그리 딱딱하지 않은 효운의 목소리에 이주의 손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러나 효운의 입에서 이어지는 물음은 날을 숨기지 않은 칼과 같았다.

"네가 조금 미쳐 있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굳게 다물렸던 이주의 입이 조금 벌어지더니 곧장 대답했다.

"예."

무서우리만치 서슴없고 선선한 대답이었다. 왜 아니겠냐는, 약간의 웃음기도 섞인 목소리였다. 이리 미쳐 있는데 스스로 모를 리가 있는가. 자신의 광증을 서슴없이 인정하는 이주의 목소리에 웃음이 터져 버린 효운은 잡혀 있던 팔 한쪽을 들어 그의 곧은 턱뼈를 길게 쓸어 올렸다.

"오해받는 건 익숙한 일이지만 이런 오해는 또 처음이군. 내가 너를 미워할 일은 없다고 분명 말했건만."

확실히 안심시켜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내 의지로 너를 떠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 확실하게 말했는데 참 어지간히도 말을 듣지 않는 아이였다. 턱 끝에서 떨어진 효운의 손이 이주의 목을 훑어 내리곤 가슴 한가운데에 닿았다.

"몇 번을 말해야 여기에 닿는 거지?"

숨을 멈추고 있던 이주의 목 너머로 꿀꺽 소리가 났다.

"혹 네가 정말 미쳤다 해도, 앞으로 더욱 미쳐 갈 거라고 해도."

"...... 효운 님."

"다신 날지 못하게 내 날개를 자른다고 해도 내가 너를 미워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주가 고개를 들었다. 불안함과 조급함, 그리고 죄스러움으로 물들어 있던 눈동자의 테두리 속으로 밤 하늘 별이 우수수 쏟아져 들어왔다.

"너를 물어 와 키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이미 그리되어 있었어."

point 2 줄거리

기: 푸른 깃털의 흑매를 신수로 모시는 교국, 어느 날 신수가 태자를 물고 사라져 버렸다. 신수 효운은, 무인 영손과 산속을 떠돌며 태자 이주를 키웠다. 황손 중 등에 매흔을 가진 자만이 황제가 될 수 있는 신수에 나라, 이주는 가장 완벽한 매흔을 가지고 태어난 4번째 태자였다. 외숙부 좌상을 등에 업은 둘째 태자 이견은, 황태자 이현에게 누명을 씌워 폐위시키고, 황제를 중독시켜 병들게 했다. 그가 이주를 쫓고 있었던 것이다.

승: 신수는 황가와 이어져 있었고, 황족이 죽거나 다치면 신수도 신력을 잃고 병들었다. 이견이 횡포를 부린 22년간, 효운의 상태도 나날이 악화되어 갔다. 그러다 황제의 죽음이 다가오자, 이견은 노골적으로 이를 드러내, 황위 계승권도 없는 황자까지 죽인다. 신수의 신력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그가 보호하는 이주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원래 황제의 무인이었던 영손은 이주와 효운을 지키기 위해, 폭죽으로 위치를 노출시켜 우상과 환국의 신수 미송을 부른다.

전: 신력은 바닥나고 생명이 위태로웠지만 효운은 이주를, 이주는 효운을 서로 놓지 않았다. 이견의 추적으로부터 이주를 보호하고 효운을 살리기 위해, 우상과 미송은 둘을 떼어 놓아야 했다. 결국, 신수의 무기를 써서 효운을 해치고, 정신을 잃은 효운을 이주에게 빼앗은 미송은 효운을 데리고 선운산으로 사라진다. 한편, 황제의 붕어와 동시에, 우상과 첫째 태자 이현은 이견과 죄상을 낱낱이 밝혀 퇴출시킨다. 이견은 망국 환국의 잔당을 모아 교국을 공격한다.

결: 이들로 인해 교국은 크고 작은 내전에 시달렸고, 이주는 그 선봉에 서서 승리를 거두며 백성의 신임을 받았다. 그날 이후 4년, 이주는 드디어 황제 즉위식을 올린다. 그때, 이견은 또 교국을 공격하고, 이주는 검은 새의 무리를 이끌고 나타난 효운과 재회한다. 효운은 갓난 이주를 데리고 궁을 떠나야 했던 이유를 알려준다. 어느덧 완연한 성인이 된 이주에게, 효운은 쓰~윽~한다. 이견 무리를 발본색원한 뒤, 이주는 이현에게 양위하고 효원과 산속으로 들어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비빔밥 소설(이것저것 섞였다 + 맛있다.)

연휴 마지막 날이네요. 흑... 그래도 대체 공휴일에 감사드립니다.(꾸벅) 책은 '또' 여름휴가의 동반자였죠. 불안한 것은, '또' 추석의 동반자도 될 거 같다는... 취미가 여행인데, 취미를 몇 년간 못하면 그것도 취미라고 할 수 없겠죠. 여권은 갱신하자마자 '보관 중'이고, 곧 쓰겠지 싶어 환전 안한 외폐들은 파우치 안에 쿰쿰한 냄새를 풍기고 있네요. 3배 정도 증가한 독서량과 2차 대유행 전후로 시작한 블로그 정도가, 그나마 위로라면 위로예요. ㅠ.ㅜ

저의 마지막 동반자, 주효록입니다. 주효록은 출판 당시부터 눈여겨봤지만 손이 가진 않았어요. 바로, 리뷰 때문에요. 주효록의 호불호 리뷰는 대게 필력과 설정이 좋거나 지루하다고 나뉘더라고요. 제 당시 느낌은, 배경과 문체에 엄청 힘이 들어가서 잘 쓴 것 같긴 한데, 역키잡이라는 자극적 소재와 호감형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몰입감이 낮은 작품! 여유로울 때 읽으면 풍성하지만, 지쳤을 때 읽으면 더 지치게 하는 작품! 이었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주효록... (쌍따봉) 물론, 쎅턴이 약해 5점을 주진 못했지만, 색이 분명한 작품이었습니다. 비슷한 클리셰 중에 제일 재밌는 작품이 아니라, 특정 키워드로 분류하긴 애매하지만 매력적인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왜 리뷰들이 그렇게 쓰였는지도 충분히 공감하겠더라고요. 틀을 살짝 비껴간 작품은, 기대한 바가 명확한 독자에게는 혹평의 대상이 되고,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유레카가 되니까요. 호불호는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초반 - 잔잔물: 긴 세월을 산 신수도 아이를 키우는 건 처음이었죠. 다행히 영손이 있었지만, 그래도 철렁하는 일들이 연속인 서툰 양육자였어요. 초반은 이런 에피소드들로 채워져있습니다. 가령, 효운의 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이주를 보며 어쩔 줄 모르는 동안, 이주가 앞으로 넘어져 이마에 멍이 들고, 효운은 머리를 짧게 자릅니다. 또, 효운은 따뜻한 방을 이주와 영손에게 내주고 자신은 냉방을 썼는데, 이를 몰랐던 이주가 시모방만 불 빼는 악덕 며느리마냥 영손을 세모나게 쳐다보기도 하죠. 산속에 사는 순박한 남자 셋의, 잔잔한 일상물이라고 보시면 될 듯해요.

2) 중반- 애절물&시리어스물: 평화로운 일상은 황제가 실권하고, 이견이 본격적 사냥에 나서면서 박살 납니다. 이견은 황제가 되려는 행보를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첫째 이현은 이견의 모함에 억울하게 쫓겨나고, 셋째 이운은 이견이 무서워 도망갈 준비를 하죠. 이견은 이제 성군의 매흔을 가졌다는, 실종된 동생 이주를 사냥하러 나섭니다. 이를 위해, 경쟁자조차 되지 못한 막내에게 독이 든 탕약을 내리죠. 막내는 섧게 울며 독을 마셔요.

여기서부터 일반적인 궁중 암투물과 좀 다른데요, 보통은 이견 vs 반이견으로 나뉘잖아요. 하지만, 이주와 효운은 '황제'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상과 이현은 '황제'가 될 이주를 이견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효운이 이견을 숨겼다고 믿었죠. 하지만, 20년을 약속했던 효운은 22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어요. 효운은 미친개 잡는 사냥개로 이주를 쓰는 게 싫었고, 이주 역시 관심사라곤 오로지 효운 하나였으니까요. 둘은, 그들로부터도 도망칩니다.

궁에 돌아간 뒤에도 이주는 마찬가지였어요. 반면, 옹립할 태자도 있고 황제도 서거했으니, 우상과 이현은 굴욕의 시간을 견디며 모은 증거들로 이견을 단죄합니다. 무소 불이의 권력에 취해 오만방자였던 이견은 손쉽게 쓸려 나가죠. 이 과정이 빈약하긴 하지만, 대안도 없고 반역죄로 역공 당할 위험도 큰 상황! 그때 최선은 숨죽여 '준비하는 것' 뿐이라는 점에서 설득력 있었어요. 물론, 이때도 이주는 노~관심으로 관여하지 않습니다.

3) 후반-달달물: 즉위식 날, 효운과 이주는 재회합니다. 또, 여기서부터 일반적인 역키잡과 다릅니다. 역키잡이란, 음흉한 어린아이가 '아저씨는 내 거야!' 혹은 다정한 아저씨가 '내가 어떻게 너와!!!'라며 갈등하게 되고, 곧 피폐와 집착, 광기에 휩싸이게 되죠. 하지만, 효운과 이주의 관계는 늘~ 온유합니다. 이주가 효운을 너무 꽉 껴안아, 허리에 멍이 하나 들긴 해요. 이주는 효운에게 집착하지만, 광기는 밖에다 부리고, 이조차 효운이 무마시키기 일쑤죠. 결정적인 것은! 효운이 먼저 이주를 좋아했었다는 것!!! 효운은 이주에게 '이제 그럴 마음이 사라진 줄 알았다.'며 은근한 유혹을 해요. 매 아닌 여운 줄 알았다는!

4) 외전-오~예!물: 황제위에 오른 지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이주는 양위의 의사를 밝힙니다. 사실, 이견의 모략만 아니었다면 황제가 되었을 첫째 이현은, 이주만큼 매흔이 뚜렷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황제가 되고 싶었고 자질도 충분했죠. 아쉽긴 했지만, 이주를 황제로 올리는 일에 사심을 부리지도 않았어요. 즉위 후 3년 뒤, 이주는 효운과 사랑을 확인한 그 산속 너와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해요. 드디어, 섹턴다운 섹턴이 등장하지만... 솔직히 많이 약합니다. 섹턴이 점잖다! 그래도, 없으면 서운할 뻔했다! 정도였어요.

전체적으로 '멋진 여자 캐릭터'들이 많은 것도 좋았어요. 황제가 된 첫째 이현은 여자예요. 이주의 어머니인 모영도 왈패였지만, 현명하고 사랑받는 황후였죠. 신수가 없기에 황족들이 신력을 가진 나라, 누국의 공주답게, 이주의 미래를 예지하고 효운에게 부탁합니다. '제 아들을 살려 주세요!'가 아니라, '신수님의 권태에 이주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유언을 남기면서요. 의리파 미송도 빠질 수 없죠. 환국이 망한 뒤, 미송은 선운산으로 가지 않고 이견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교국에 남습니다. 미송은 생존한 환국의 황족 서단을 걱정했으니까요. 물론 실수도 하지만, 미송은 서단의 유해를 수습해 줘요.

주효록에 익사이팅은 없습니다. 자극적인 사건들은 '묘사'가 아니라 옛이야기로 전달되거나 짧은 서사로 요약되죠. 공과 수가 편하게 살지도 않습니다. 달달하고 잔잔하기에는, 많이 다치고, 도망치고, 울고, 속앓이해요. 참... 어떻다고 줄여 말하긴 힘든데, 생각해 보면 그게 주효록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래서, 주효록의 장르는 주효록인 것으로...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