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돔성 본편 Review
2020.08.31 - [BL 소설] - [현대물/피폐물] 소돔성 - Dips
point 1 책갈피
걸음을 돌릴까 망설이던 우진은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홀린 듯이 그곳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성도가 있었다. 그는 미친 듯이 별장 안을 헤집으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우진은 헛숨을 삼키며 이성을 잃은 성도와 별장의 내부를 응시했다.
바닥에는 핏자국이 낭자했고, 충혈된 눈으로 성도는 바짓단에 피가 묻은지도 모르고 별장의 모든 방을 들쑤셨다. 우진과 함께 잠들었던 침실, 서재, 거실, 화장실 그리고 옷방까지. 바지에 이어 웃옷까지 전부 피범벅이 된 그는 이내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꼭 이 눈 덮인 별장에 갇힌 것만 같았다. 흡사 광인처럼 빈 정원을 홀로 걸으며 연신 사람을 찾았다. 돌아가려던 우진은 망설여졌다. 온동 눈으로 휩싸인 이곳의 풍경이 어느 전설 속의 장면처럼 신비로웠기 때문이다. 앙상한 나뭇가지들과 황폐한 호수, 삭막하기만 하던 별장 건물이 눈부실 정도로 고독하고 아름다웠다.
어쩌면 나를 찾고 있는지도 몰라. 우진은 제 품에서 꼬물거리는 아이의 온기를 느끼고 이내 그곳에서 걸음을 돌렸다. 아니야. 저쪽으로 가면 나와 아이에게 너무 추울 거야.
별장에서 등을 돌린 채 우진이 다시 눈보라를 헤치고 걸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배경이 뒤바뀌더니 따뜻한 실내로 변했다.
살을 엘 듯 휘몰아치던 바람도 몸에 올라앉아 쌓이던 눈송이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대신 따뜻한 공기와 침대, 그 옆 의자에 앉은 남자가 보였다.
이번에도 성도였다. 성도는 병실에 가만히 누운 자신을 보며 애원하고 있었다. 그가 뚝뚝 흘리는 눈물이 침대에 누운 제 볼 위로 떨어지자, 뒤에서 지켜보던 우진의 볼에도 따뜻한 액체가 묻어 나왔다.
우진은 그것을 손으로 닦아 만져 보았다. 가슴이 아팠다.
"형이 널... 네가...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 예뻐서...'
절망으로 타들어 가는 목소리는 끝을 맺지 못했다. 우진은 슬프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모든 것이 꿈이란 것을 깨달았다.
point 2 줄거리
기: 남성 임신이 늘고 있는 시대, 남성 임신 테스트가 버젓이 약국에서 팔리고 있었지만, 우진은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가 될 줄 몰랐다. 하지만, 임신 테스트기와 다수의 산부인과 의사들은 우진이 임신한 것이 맞다고 재차 확인해 주었고, 곧 우진도 성도와의 아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문제는, 우진이 산부인과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성도가, 우진의 외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성도는 우진이 어떤 여자를 임신시킨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승: 성도는 매정하게 아이를 지우라고 말하자, 우진은 상처 입은채 가출한다. 성도는 결국, 여자에게 양육권을 받아와 자신과 키우자고 빌게 되고, 그제서야 우진은 성도가 오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성도는 오해를 풀고 헌신적으로 우진의 임신 수발을 든다. 하지만, 남자의 몸으로 임신을 한 우진은 많이 아팠고 불안정했다. 성도는 남자 임신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는 한편, 우진의 상태는 자연히 호전된다.
전: 다시 평화로운 생활, 그러던 어느날 돌연 주양그룹 본부장인 이성도의 결혼 발표가 방송 된다. 패닉에 빠진 우진은 성도에게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성도는 결혼은 그저 프로젝트라며 우진을 달랜다. 분노해 성도를 떠나려는 우진을, 성도는 강제로 집에 가두고, 그 안에서 우진의 배는 부풀어만 갔다. 결국, 우진은 쓰러지고 의식불명에 빠진다. 그때, 우진은 꿈을 꾼다. 성남 별장에서 괴로움과 광기에 삼켜진 성도의 모습을, 성도는 울고 있었다.
결: 한편, 성도는 피 웅덩이에 빠진 우진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후 우진이 쓰러지고 깨어나지 않자, 성도는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다. 성도는 우진이 깨어나자, 우진에게 결혼을 하지 않으면 주양그룹 입지가 좁아진다고 말하며, 그래도 나를 사랑 해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우진은 성도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빈털터리여도 사랑한다고, 그걸 여태 몰랐냐고 면박을 주며... 그 후 성도는 파혼 당하고, 우진과 행복하게 산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그때는 몰랐던, 아주 사소한 것
소돔성 외전이 나왔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외전이었죠. 작가님께서 SNS에 외전 계획이 없다고 밝히셨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고 바라고 바랬던 외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외전 발매일 13일 시작과 함께, 무한 새로 고침을 하며 외전 영접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죠. 사실, 5월 캘린더에 소돔성 외전이 나온다는 것을 보고, 저는 계속 13일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소돔성 외전의 첫인상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일단 임신 AU라는 거... 본편이 열린 결말로 마무리됐기 때문에, 그 후의 이야기를 고대했지만, AU! 게다가, 이 임신 AU는 작가님이 블로그에 올리신 적도 있었어요. 물론, 마무리가 되지 못한채 중간에 끊기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이미 본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입꼬리가 3mm 정도 쳐진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지만... 결론적으로 작가님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더라고요.
우진은 성도가 준 돈으로 사치를 부리지만, 친구의 안부도 확인 할 수 없고, 아끼던 강아지를 돌볼 수도 없었죠. 성도가 허락 한 곳에만 있을 수 있었고, 물건을 사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물론, 우진이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건, 성도에 대한 사랑때문이었어요. 그의 공간에 찾아와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상냥한 연인을 위해, 우진은 욕을 하면서도 성도의 곁에 머물러요.
하지만, 성도는 우진이 오로지 돈 때문에 자신의 곁에 있는거라고 믿습니다. 과거 우진은 돈 때문에 성도의 형 현도에게 접근했고, 집안에서 더 큰 보상을 제시하자 현도를 떠났죠. 이를 경험한 성도는 우진을 잃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더 많은 돈을 우진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는 아주 강해져야 했고, 그러려면 정략결혼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성도가 그 결혼을 선택한 순간!'소돔성'은 극피폐로 치닫게 되죠.
외전에서도 성도는 같은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외전은 결코 피폐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시리어스물과 달달물 중에서 갈등하긴 했지만, 역시 달달물로 ... 아무리 생각해도 외전은 달달물이 맞아요.(끄덕끄덕)
외전에서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기억의 단편을 봤고, 그 영상들은 끔찍하거나 고통스러웠죠. 우진은 결혼을 하겠다면 자신을 집에 가둔 성도가 미웠지만, 꿈속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성도의 모습과 자신 품 안에 안긴 '우리 아기'를 보며 그 차가운 땅으로 건너가지 않습니다. 성도는 피 범벅이 된 우진을 보며, 우진을 완전히 가지기 위해 우진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그리고, 너무 묻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회피해 온 질문, 더 강해지고 나면 덜 무서워질 거라며 미뤄왔던 질문을, 드디어 합니다. 나를 사랑하냐는 그 한마디요.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은 참 바보 같습니다. 본편에서 우진은, 그렇게 열심히 도망치다가 잡히고, 약 맞고, 감금되고, 결국 자살할 때까지, 왜 사랑한다고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을까? 헤어지지 못해서가 아니라 널 사랑해서 괴로운 거라고... 성도 역시 우진에게 어차피 돈 때문에 나랑 만나는 거 아니냐고 쏘아붙이기 전에, 돈이 없어도 나랑 만날 거냐고 빈정 되지조차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두 사람은 쿨하게 '응!'하고 행복해졌을 텐데 말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역사 속에서도 사람은 아주 당연한 질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때리는게 당연한건지, 여자가 재산으로 취급받는 게 당연한 건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존재하는게 당연한건지, 그리고 물을 때는 놓쳤던 기간만큼 많은 사람들은 죽거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 사소한 질문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분명 그 이전과 이후는 같지 않죠. 그래서 그때는 몰랐던 아주 사소한 깨달음 하나를 알고 나면, 많은 감회가 소용돌이 칩니다.
외전에서 성도와 우진은, 다른 평행 우주 어딘가에서, 그 사소한 질문을 하지 못해 불행해진 두 사람의 기억을 건네 받습니다. 그 작은 언지를 받고, 두 사람은 곧 해야 할 말을 찾아요. 더불어, 본편에는 없었던 성도와 우진의 아이가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두 사람을 묶은 닻 줄이 되어 주고, 극단적인 우진이 머뭇거릴 수 있도록 브레이크가 되어 주죠. 드디어 소돔성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도와 우진이 아픔을 딛고 성장해가는 스토리를 기대했습니다. AU에서 행복해진 이야기는, 반대로 AU가 아니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요. 본편에 남겨진 두 사람은 복구 불가능!인건가 싶어 찜찜했어요. 불행을 막을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를 잡는 것이 베스트겠지만, 만약 놓친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보고 싶어 그랬나 봅니다. 아쉬움 반, 만족감 반의, 묘한 기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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