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1 책갈피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여자가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좀 전의 조율사가 다시 나타나서 연주자를 그 자리에서 껴안는 거예요. 그다음 하는 첫마디가 뭐였을 것 같아요.'
'음...'
''괜찮아.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배 터질 때까지 당신이 먹고 싶은 거 먹자.'였던 거죠.'
이상하게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이 꽂혀도 채우는 개의치 않았다. 솟아 나오는 환한 소태를 감출 수 없었다.
지난날 햄버거 매장에서 의건이 했던 이야기가 점점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그가 오랫동안 바라왔던 그 이상적인 커플이...
"설채우?"
채우는 고개를 저으며 아빠를 지그시 관찰했다.
불공평한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나 공평한 세상이라니. 의건이 깊이 원하던 것 중 하나가 제게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우연치고는 절묘하다. 위태위태하게 삐걱거리면서도 균형을 맞춰가는 이 세상의 이치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니 웃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point 2 줄거리
기: 사업가 아버지, 음악교수 어머니, 우수한 음악적 재능, 우성 오메가 형질과 더불어 아름다운 외모까지 지닌 채우는 완벽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사고로 어머니가 죽고, 보험금은 지급에 문제가 생기며, 아버지는 쓰러지고, 사업은 망해 거액의 빚이 생겼다. 밀린 아버지의 병원비와 사채 빚 독촉에 시달리는 삼촌을 본 채우는, 우성 알파의 아이를 낳아주는 리셋파트너 계약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계약 당사자는 같은 학교 후배인 범의건이었다.
승: 비혼주의자 범의건은, 부모님의 요구에 따라 리셋 파트너를 계약하고 인공수정을 하기로 합의한다. 하지만, 채우의 히트에 휘말리고, 성교를 모르는 정순한(?) 채우의 맛을 알아 버린 의건은, 임신 시까지 섹스 파트너가 되기로 내용을 바꾼다. 계약금 일부를 써 버린 채우는, 정기적으로 의건과 잠자리를 가진다. 한편, 의건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채우는 의건을 좋아하게 된다. 의건 역시, 채우에게 집착하며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허락한다.
전: 채우는 결국 의건에게 고백을 한다. 채우에게 좋은 것을 입히고, 먹이고, 알파로서 자신의 오메가를 보호하듯 행동하던 의건 역시 채우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애당초 합의된, 깔끔한 파트너 관계 이상을 원하는 채우를 이해하지 못한다. 상처 입은 채우는 의건을 피하고, 설상가상 주변의 상황도 채우를 비침하게 만든다. 지쳐 버린 채우는 마음을 접은채 의건을 완전히 떠나고, 취업을 준비한다. 한편, 이번엔 의건의 러트에 우연히 채우가 휘말리게 된다.
결: 뒤늦게 깨달은 연심으로 힘들어하던 의건은 유학을 준비하고, 채우는 스탠 브리지스의 오디션을 본다. 유학 전 채우를 찾던 의건은 채우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지만, 채우는 오민성의 아이라고 속인다. 한편, 어머니의 보험금 받게 되며 재정적 문제가 해결되고,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채우는 계속 성악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채우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의건은 결국 채우에게 돌아간다. 채우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채우는 아이의 아빠가 의건이라고 알려준다.
point 3 전지 충의 Review: 못~~~~~~된 놈!!!
'캠퍼스 트랩'은 흡입력 있는 도입부로 대작의 향기를 풍기며 시작합니다. 귀하게 자란 도련님의 추락, 악인도 선인 아닌 도도한 후배와의 치욕적 계약, 노골적 괴롭힘은 없지만 수치심을 후비며 채우를 수세에 몰아 넣죠. 신분의 벽 같은 공간에 분리, 결벽적 태도, 궁벽한 채우에게 기분 내킬 때마다 시혜를 베풀며 자기만족을 즐기는 모습들은 정말 따갑습니다. 피폐물에 나오는 폭력씬보다, 더 잔인하고 비참하게 느껴요.
채우는 부유한 집안에, 예쁜 외모를 지닌, 재능 있는 오메가로서 과잉 보호를 받고 자랐죠. 성교 경험은 고사하고, 오메가라는 사실조차 숨긴 채 '베타'로 살아왔으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무런 대비 없이 험한 환경 속에 내몰리게 돼요. 리셋 파트너를 계약하며 임신 준비를 시작한 채우는, 갑자기 터진 히트를 처리하는 방법도 모르고,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나마 자신이 오메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의건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의건은 채우를 돕는 것을 번거롭고 귀찮아했지만, 어쩌다 안게 된 채우의 몸은 상성이 좋았죠. 오로지 그 흥미만으로 거부할 수 없는 채우의 상황을 볼모로 계약 변경을 몰아 붙힙니다.
의건은 채우를 자신의 오메가라고 인지하면서 제법 살뜰히 아끼는 것처럼 행동해요. 하지만, 그건 채우에겐 절실하고 의건에게 쉬운 것들이었어요. 그러면서, 채우의 주변 알파 친구를 심하게 경계하며, 채우가 하지도 않은 과거 경험들을 의심하고 비난하죠. 본인의 많은 오메가 경험은 당연히 논외로 하고 말이에요. 그럼에도, 가족들은 아프거나 죽고, 갑자기 생계 전선에 뛰어들게 된 채우는, 의지할 곳이자 자신을 챙겨주는 유일한 사람인 의건에게 더욱 빠져들어요. 결국, 상처받을 줄 알고도 의건을 좋아하게 되죠.
그렇습니다. 갖은 게 많아서 좀 주겠다는데, 그걸 재수 없다고 볼 필요는 없겠죠. 내로남불이라도, 그런 놈이라도 좋아한다는데 뭐라고 하겠습니까? 현실이 구차해서 구차하다 말하는데, 배려심 없는게 잘 못이라고 볼 순 없겠죠. 그런데!!! 좋아하는 하는데 사귀지 않겠다니... 술은 먹었는데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사귀지 않겠지만, 나 말고 다른 알파랑은 만나지도 말라니... 좋아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대답은 못해줘도, 계약서를 들이밀며 섹파를 강요하는 건 어느 천하에 육시할 놈이란 말입니까!!! 이렇게 관자놀이에 핏줄을 세우며 보게 됩니다.
중반부부터는 성악과 TMI가 좀 심합니다. TMI라고 생각한 이유는, 이것이 소설 전개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해, 분량이 미스매칭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서사가 공들여 배경을 설명하거나 묘사에 치중되어 있는 경우, 그것이 중요한 복선이 되거나 작가의 숨은 메시지를 전달할 중요한 메신저가라면, 저는 충분히 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멀리 도약하기 위한 뒷걸음질처럼, 깊은 맛을 내기 위해 품이 많이 드는 밑간 작업 말이에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성악과 교수들의 추잡스러운 행각이나, 다사다난한 오페라 준비, 학부생들의 트러블은 그 역할에 비해 과도한 분량을 할당 받지 않았나싶습니다. 자료조사가 부족한 작품은 주인공의 성격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배경 설명을 무시하곤 합니다. 무슨 회사인지 모르지만 바쁘고 유능한 상무님, 무슨 학과인지 모르지만 과탑인 학생회장이 설득력 있어 보이진 않죠. 반면, 작가님이 조사량에 자신감이 넘치시는 경우, 과도한 표현욕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소 쳐지는 현상이 발생하죠. 정말 오페라 준비를 보는 저의 기분은... 사막을 횡단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은 좀 허무합니다. 채우가 허덕이는 부분은 그렇게 자세히 그려졌던 것에 반해, 해소는 너무 쉬웠어요. 그냥, 의건이 유학을 포기하고 채우에게 돌아오는 것으로, 채우는 의건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민성의 아이가 아니라고 채우가 고백하자, 의건은 오랜 비혼주의 따위는 단번에 때려치우고 채우에게 청혼하죠. 꼬륵이의 존재가 그만큼 클 수도 있겠지만, 못된 놈이 못된 놈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비혼주의치고는 '좋아한다.'+'꼬륵이'='결혼'이 될 수 있는 것이 신기했어요. 캐릭터를 지킨다면, '동거'여야 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평생의 신념을 깰 만큼 사랑하는 거라고... 납득하기로 했습니다.
초반 채우와 의건의 불평등한 관계를 각인시켜주는 것 같았던 결벽적 행동도, 그냥 악기에 재능이 없었던 치부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끝나다니... 좀 여러모로 아쉬운 장치들이 있었습니다. 좀 더 극화되어 꽃처럼 필 수 있는 봉오리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분명, 전체적으로 재미있는 작품임이 틀림없지만, 1/3구간에서 가지고 있었던 기대감이 커서 그런지, 더 많은 충족감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채워지지 않은 욕심에 단비처럼 내려 줄, 꼬륵이와 채우 부부의 꽁냥거리는 육아기 외전을 기다려 봅니다. 아직 다 씻기지 않은 못된 놈에 대한 앙금을 말끔히 제거해 줄 정도로, 의건이 채우와 꼬륵이게 완전! 잘~하는 모습을 길~~~~~~~~게 보고 싶습니다! 솔찍히, 본편에서 못된놈의 후회는 너무 짧고, 응징은 없었던 것 같거든요. 수 많은 개아가공을 봤지만, 유독 범의건이 미운 이유가 뭘까요? 으~~~~~~ 못~~~~~~된놈!!!(씩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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