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시크노블

출간일: 2019.04.18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주군."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유안이 겨울 입을 뗐다. 그는 꼭 속삭이듯 륜을 불렀다.

"제게 왜 돌아오지 않았냐 묻지 마시고, 왜 돌아왔냐 물어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유안의 물음은 어딘가 애처로웠다. 울고 있지 않으나 그의 말끝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듯도 하였다. 그것이 가슴을 애틋하게 움켜쥐었다. 목이 타는 듯함에도 술잔에 손을 가져다 대지 못한 륜이 물었다.

"유안. 왜 내게 돌아왔지?"

곧은 시선이 륜의 눈, 코, 입을 천천히 훑었다. 그의 눈에 자신이 담기고 있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가슴이 둔중하게 뛰었다.

"주군의 곁에 있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문득 거창한 생각이 들었다. 제 짧지만 길었던, 어떤 날은 보잘것없고 어떤 날은 지대하게 느껴졌던 그 오 년이라는 시간은, 이 말을 듣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럼 그가 전장에서부터 이곳까지 쉼 없이 달려온 연유는, 저 말을 전하기 위함이었나.

그만 잊자면서도 다짐밖에 하지 못하였던 케케묵은 감정들이 진실로 한봄의 눈처럼 녹아내렸다.

point 2 줄거리

기: 폐위된 륜의 자택에 다리를 저는 유안이 나타난다. 유안은 륜의 오랜 호위무사였다. 그리고 반정의 날에 원의 옆에 서 있던 사람도, 황궁에 남은 륜의 세력을 잔혹하게 학살한 것도 모두 유안이었다.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날, 배신자에게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유안은 무릎을 꿇었고, 마음이 순하고 약한 륜은 결국 유안을 집으로 들인다. 유안은 륜에게 금족령이 풀렸음을 알려준다. 유안과 륜은 함께 시장에 가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풍등을 날린다.

승: 륜의 어머니인 황귀비가 황제의 총애를 얻고 세를 불리면서, 황후의 적장자이자 문무를 겸비한 원은 북부 변방으로 자진 출정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원을 지지하는 대장군 금서목의 아들 금유안에게 목숨을 빚지고, 유안은 원의 사람이 되어 혈맹을 맺는다. 한편, 뛰어난 무재인 유안을 눈여겨 본 황귀비는 륜의 호위로 유안을 지명하고, 유안은 륜의 곁에서 원의 긴자 노릇을 한다. 하지만, 유안이 가까이서 본 륜은 착하고 순한, 황귀비의 희생양일 뿐이었다.

전: 황귀비로 인해 고립되어 외롭게 살던 륜은 유안에게 연심을 품고, 유안의 마음의 주인 역시 원이 아닌 륜이 된다. 륜은 황귀비에게 소극적 저항을 하지만, 황기 비는 황제의 유언을 고쳐 기어코 륜을 황제로 만든다. 한편, 유안의 변화를 알아챈 원은, 륜이 황귀비가 부정을 저질러 낳은 자식임을 유안에게 알려 준다. 유안은 원에게 륜의 목숨을 구걸하며, 스스로 배신자가 되어 반정이 앞장선다. 그리고, 전장에서 한 다리를 잃고서야 륜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결: 금족령이 풀린 륜의 집에는 손님이 들고 난다. 유안은 살얼음판 같은 황궁에서 꿈꾸지 못했던 평화로운 생활을 륜에게 주려 한다. 그리고 유안과 륜은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고 연인이 된다.

point 3 전지 충의 Review: 돌아가는 길

사진 잘 찍는 사람들이 참 많아졌습니다. 물론, 저는 잘 못 찍습니다. 특히, 인물 사진! 그래서, 웬만하면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같이 여행을 가도, 제 친구가 1000장을 찍을 때 저는 10장 정도를 찍죠. 그나마 그 10장도, 모두 '길' 사진입니다.

'길'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있습니다. 긴 전신주가 붉게 물든 노을을 어지러이 엮어 놓은 듯한 골목길, 나무 그림자가 띠를 이루는 산길, 자전거나 화분들이 낡은 철문을 지키는 주택가 앞길, 이런 길들을 보면 문득 울컥함이 샘솟을 때가 있어요.

오가는 이 없는 길은 공터가 되고, 발길이 닿는 흙무더기엔 오솔길이 나죠. 길은 목적지나 출발지가 되진 못하지만, 목적지로 향한 이야기나 출발지에서 시작한 설렘은 가지고 있어요. 얼마나 많은 발길이, 하나의 길을 만들었을까요? 물론, 이런 저에게 친구들은 인간에게서 못 느끼는 공감을 길에서 느낀다고, 길만큼 사람에게도 EQ를 발휘해보라고 놀립니다. 그래도, 저는 그들의 사진은 찍어주지 않습니다.(단호!)

유안에게 너무나 길고 멀었던, 륜에게 돌아가는 길을 생각해 봅니다. 추운 겨울 눈이 날리는 길 위, 다리를 저는 장수는 자신이 배신한 주군에게로 돌아가죠. 5년 전 마지막 봤던 그 절망적 표정을 기억하면서도, 박대 받아도, 끝내 거절당한다고 해도, 이 길을 걷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으니까요.

혈통, 재능, 기질 모두 황제감인 원은 황귀비에게 그 당연한 자리를 위협받습니다. 륜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죠. 륜은 황제가 되지 않기 위해, 문무를 멀리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죽어나는 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마음이 약한 륜은 원이 죽는 것도 싫었고, 자신의 시비들이 다치는 것도 싫었고, 황제가 되는 것도 싫었지만, 황제가 되지 않을 수도 없었죠.

륜은 그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었고, 그 길에서조차 원하는 것 하나 가질 수 없었어요. 그런 륜의 삶에 유안은,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의 주인이었고, 예정된 죽음으로부터 살고 싶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이었죠. 즉위식 전날 유서를 써요. 륜은 그곳에 적지 못한 유안의 이름을 떠올리며 글을 써 내려갑니다. 그것 유서였지만, 연서이기도 했어요.

'배반'은 현재와 과거가 번갈아 나오는 구조로 진행됩니다. 이야기를 데칼코마니처럼 같은 형태의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색도 결도 다릅니다. 황궁에서 유안과 륜은 귀한 존재였고 가진 것도 많았지만 무기력했죠. 하지만, 모친의 기일조차 숨어 지내야 하는 상황과 더 이상 전장에 나갈 수 없는 무사는 훨씬 행복해 보입니다. 시장을 가고, 책방에서 빨간책을 빌리고, 낚시를 하고, 금을 타고, 그림을 그리고, 당과를 사 먹고, 풍등을 날립니다. 사랑을 나누고, 함께 여행을 다녀요.

륜은 유안에게 배신했다고 따지지 않습니다. 유안의 주인은 원래 원이었으니, 배신한 것이 아니라고 말이죠. 유안 역시 륜에게 왜 배신할 수밖에 없었는지 변명하지 않습니다. 륜을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도박이었음에도 다리를 내어 줄 정도로 간절히 돌아오고 싶었다고 말하지 않아요. 분명히, '배신'이고, 그것이 주요 내용인데도, 저 또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륜이 황제든, 황자든, 주군이든 유안이 돌아올 장소는 필시 륜이었을 것이고, 유안이 원의 첩자든, 상흔 무사든, 반정공신이든 륜은 유안을 기다렸을 테니까 말이죠.

해외로 입양된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한군으로 돌아와 예전에 살았던 집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습니다. 공항에서는 분명 미국인 같았는데, 살던 마을로 돌아오니 과거 깡촌 꼬마가 된 것처럼 앞장서 길을 찾아가더라고요. 돌아가는 길은 그런 것 같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 어떻게 가게 돼도, 마땅하고 당연하게 나를 맞이해 주는 길이니까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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