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미담드디카

출간일: 2018.11.09

분량: 본편 1권 + 외전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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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윤회가 가장 좋지 않을까?"

강은 한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다정히 물었다.

"왜요?"

"글쎄다...... 다음 생에도 다시 태어나 새로운 세상을 살아 보고 싶어서. 궁금하잖아, 미래에는 어떤 세상이 되어 있을지."

"꼭 인간으로 태어나리란 법이 없잖아요."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지. 인간은 너무 골치 아픈 존재야. 머릿속에 잡생각이 많아서 평생을 어지럽게 살아야 해."

한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만약 짐승으로 태어난다면...... 그래, 새가 좋겠다.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니까."

"......"

"이런 이야기 별론가?"

"아뇨."

강이 미소 지었다.

"상상이 되어서 좋아요. 이런 이야기 싫어하면 전 시를 쓰지 못했을걸요."

한도 마주 웃었다. 강은 아까보다 한층 밝아진 음색을 내었다.

"저도 그럼 새가 되는 게 좋겠네요."

"왜?"

"선생님이 새가 되고 싶다 하셨으니까."

"나 말고 네 생각을 해야지."

"네, 생각한 거예요. 뭐가 되었든 선생님 곁에 있으면 좋겠거든요."

강은 한의 손등을 자신의 입가에 갖다 댔다. 그리고 한의 손에 입술을 도장 찍듯이 누른 다음 읊조렸다.

"제 마음 아시죠?"

한은 강의 애정이 마음을 충만하게 만드는 걸 천천히 느꼈다. 한은 강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는 만족감과, 안도, 그리고 기쁨 속에서 담담히 말했다.

"알다마다."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한참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생에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나누는 두 시인의 얼굴은 즐거움이 가득했다. 어느덧 잔별이 하나둘씩 뜰 때까지 두 사람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point 2 줄거리

기: 문학계의 전설인, 시인 한은 북향 작가 강의 시집을 발간한다. 북향 작가에 대한 해금 조치는 풀렸지만, 아직 빨갱이 취급 일색인 부정적 분위기 속에서도 강의 시집은 큰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고령의 대문호 한은 강에 대한 인터뷰에서 과거 이야기를 푼다. 1935년 경성, 25세 한은 경성 멋쟁이로 불리는, 잘나가는 시인이자 기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의 신문사로 무명작가의 시들이 도착한다. 평안도 말씨의 부드러운 시들, 특히 '길'은 큰 파문을 낳았다.

승: 한은 신원불명의 천재 시인 강을 만날 날을 고대했다. 그러나, 실제 신문사에 찾아온 강은 18세의 학생이었고, 한은 어린 천재 시인에게 강한 열등감을 느껴 매정하게 대한다. 하지만, 한을 동경해 시를 쓰게 됐다는 강은, 끈질기게 한을 쫓아다닌다. 그리고, 마치 사고처럼 술에 취한 한은 강을 유혹하고, 몸을 섞게 된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되지만, 강은 곧 시인으로서 한계에 부딪히고, 시인 강의 성장을 바라는 한은 그를 일본 동경으로 유학 보낸다.

전: 한편, 일제의 문화 말살정책이 심화되고, 친일로 돌아선 문학계 변절자들은 그럴싸한 자리를 받아 권력을 누린다. 반면, 사회주의 반일 작가 인혁은 일장기가 뒤덮인 경성을 떠나고, 한은 붓을 꺾는다. 물론, 경성 대표 시인이었던 한에게 친일 전향 압박과 검열은 계속된다. 그렇게 3년이 흘러, 21살의 강이 돌아온다. 그리고, 북녘 고향을 읊은 강의 시는, 1938년 경성에서 최고의 호황을 누린다. 그러던 어느 날, 병든 인혁은 한을 찾아와 소설 한편을 맡기고 떠난다.

결: 한편, 고향을 소재로 시를 쓰던 강은 경성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점점 고향을 잊어갔고 그 불안감은 시에 나타난다. 하지만, 강은 한의 곁을 떠날 수 없었고, 결국 한은 강과 함께 북향을 선택한다. 둘은 산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 그러던 중 한에게 형이 아프다는 전보가 오고, 한은 경성으로 향한다. 강과 한은 서로의 시를 주고받고, 한은 곧 돌아오겠노라 약속한다. 하지만, 곧 전쟁이 터지고 38선이 남과 북을 가른다. 한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딜레마

BL에 배드 엔딩은 드물어요. 하드코어와 극피폐물조차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죠.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를 넣어라서도 말이에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쁨이라는 감정보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강렬하고 여운이 길기 때문에, 사람들은 희극보다는 비극에 더 감명받는다고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받아온 명작들 중에는 비극이 더 많고, 심지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댄스보다 발라드가 더 많은 표를 받는다고해요.

하지만, 저만해도 BL 소설을 선택할 때 배드 엔딩은 쉽게 손이 가지 않습니다. 아마도, BL이라는 장르소설이 감동보다는 오락의 목적이 더 강해서 그런 것 아닌가 예상해 봅니다. 물론, 그 목적에도 불구하고 흠결 없는 설정, 완벽한 구조, 풍성한 줄거리도 요구하죠. 감동적인 버라이어티쇼와 대중적인 예술작품을 바라는 것처럼요. 웃으려고 본 쇼프로에서 울고, 깊이를 바라는 작품이 쉬웠으면 좋겠고... 딜레마는 이렇게 사소한 곳에도 있습니다.

만약 누가 저에게 이런 딜레마 상황에서 지금 당장, 하나만,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고 강요한다면... 멘붕에 빠질 것 같습니다. 더욱이, 이 문제가 여가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이고 영향력 강한 사안이라면, 그리고 그 선택이 불시에 빈번히 강제된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미치거나 자포자기하겠죠. 불행히도, 이 고약한 가정은 누군가에겐 현실이었습니다. 사회의 지식인과 한 명의 작가, 모두를 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들 말이에요.

1935년 경성... 어떤 분위기였을까요? "일본이 어찌 망하겠습니까! 망할 일이 없는 나라에 언제까지 반항하시려고요." 소설 속 젊은 시인 서주영은 한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아마도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 일본이나 조선인 모두 식민지가 끝날 거라고 믿진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분명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 불평등은 있었지만, 조선인들의 숨통은 막진 않았어요. 길들이는 방식일지라도 공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교과서에서 소히, 문화통치라고 불렀던 시기요. 조선인 지주가 더 나쁘냐? 일본인 소작농이 더 나쁘냐? 최인혁도 그때라 이런말을 할 수 있었을테고요.

하지만, 1929년부터 사정이 급격히 바뀝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부자가 된 일본의 돈줄이 세계 대공황 이후 막히고, 1931년 만주에 괴뢰정부를 만들면서 일본은 내선일체를 강요하기 시작해요. 1941년 진주만까지, 창씨개명 같은 사상 탄압의 수위가 점점 높아집니다. 1941년부터는... 정말 개싸움이었죠. 추락하는 일본은 조선의 젊은 남자는 징용 징병으로, 젊은 여자는 위안부로, 조선에 있는 것은 문고리까지 떼어가며 바락을 합니다. 1945년 광복까지요.

1935년 경성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30년 뒤의 세상입니다. 어쩌면, 그 사이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그 세상은 만족스럽지는 않았어도 나름대로 적응했을지도 모릅니다. 조선인 한은 경성에서 인정 받는 문학가이자 인기인이었고, 집안은 부유했죠. 한과 형일은 신문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한의 최고 관심사는 어떤 무명작가의 시였어요. 1935년은 숨통을 서서히 조이기 시작한, 하지만 아직은 버틸만한 그 어디쯤 되는 시기였을 거예요.

그리고 드디어 막다른 시기가 옵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흑과 백, 양극단에 섭니다. 박영후나 서주영를 포함한 많은 문인들은 친일을, 최인혁은 항일을 선택해요. 박영후나 서주영은, 뛰어난 글재주를 지닌 작가이자 영향력 있는 경성의 엘리트로서, 교과서나 선동문을 써요. 물론, 내용은 황국신민의 강령이었지만요. 반면, 최인혁은 한에게 작가로서 빛보지 못할 마지막 소설을 맡기고, 독립운동을 하다 광복도 보지 못한 채 차가운 이국땅에서 죽고 말죠.

어떤 이들은 회색 지대에 서 있습니다. 한과 형일처럼 붓을 꺾는 작가들이나, 강처럼 자연과 전통시를 쓴 작가들 말이에요. 이들은 검지도 않았지만 하얗지도 않았어요. 한과 형일은 신문사가 폐관된 이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본이 배급해 주는 쌀 한 자루를 받으러 긴 줄을 섭니다. 그리고, 경찰서에 잡혀간 한을 구한 것 역시, 매섭게 내쳤던 친일파 서주영이었어요. 무엇도 선택하고 싶지 않지만, 무엇인가를 선택하길 강요받는, 고뇌하는 지식인들이었죠.

사실, '1935년, 경성'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씬은, 피난길 찾아간 교회, 무너진 십자가 앞에서 한이 오열하는 장면이었어요. 1938년 28살이었던 한은,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식민지 조선에서 시인이 된, 모던보이였어요. 비판의식이 투철한 깨어있는 지식인이었지만, 어쩌면 한이 경험한 '진짜 상실'은 조국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강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상실감, 그것이 가슴으로 맞는 첫 상실이었을지도요. 그 순수한 절망을 말이죠.

그럼에도 책갈피에는 강과 한의 가장 행복한 시기를 넣고 싶었습니다. 1935년 경성에서 최인혁은 강의 시를 보고 비평하고, 한은 강의 성장을 바라며 그를 동경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3년 뒤 강의 시를 본 최인혁은, 또 한에게 강이 고향을 잊어가고 있다고 말해요. 하지만, 이때는 한이 강과 함께 떠납니다. 추운 북녘의 산속, 강의 시에 녹아 있는 그의 고향, 둘만의 세상으로 말이죠.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었습니다. 읽으면서, 각각의 인물들과 연상되는 현실 속 시인들도 생각나고 말이죠. 그리고, 윤동주 유고 시집에 정지용이 쓴 서문도 떠올랐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구절 담아봐요.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었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일제 시대 날뛰던 부일문사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뿐이나,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가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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