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글로번
출간일: 2021.03.29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저 진짜 말 안 하려고 했어요! 노력하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자초한 거예요! 저 진짜 안 숨겨요. 이제 진짜 안 숨긴다고요! 후회해도 소용없어요!"
"아가."
"아가라고 부르지 마세요! 저 열여덟 살이에요! 알 거 다 아는 나이고 이년 뒤면 성인이니까!"
"......"
"이렇게 된 거 아저씨가 저 좋아하게 만들 거예요. 안된다고 하지 마세요! 아저씨가 저 거둔 거 후, 후회하고 다시 내...... 내쫓는다고 해도 저 취소 안 할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황급히 몸을 돌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허둥거리는지 뒤를 돌아 걸어가다 제 발에 꼬여 넘어지고, 자신이 당기는 문에 이마를 박아 가며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다. 문을 듣기 전에 일하는데 방해해서 죄송하는 말을 끝으로 희서는 완전히 남자의 사야에서 사라졌다.
문이 닫혔음에도 밖에서 요란하게 들리는 우당탕 소리를 들으며 박중권은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꼬았다.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고 나서야 웃고 있다는 걸 깨달은 그는 결국 드물게 소리 내어 짧게 웃음 터트렸다가 아, 하고 자신의 앞머리를 위로 쓸어 올렸다.
"귀여워 죽겠네."
point 2 줄거리
기: 18살, 전 재산 5천 원인 이희서는 5일째 거리를 배회하다, 덩치 큰 박중권과 부딪친다. 배고픔과 추위에 지친 희서는 충동적으로 돈을 구걸하고, 박중권은 그런 희서를 집으로 데려와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 중권의 따뜻한 호의에 마음이 풀린 희서는, 보육원 원장에게 정착 지원금을 뺏기고 술집에 팔렸다가 도망쳤다고 털어놓는다. 중권은 원장 문제를 처리해 주고, 자신에 집에서 살자고 말한다. 희서는 갑작스러운 행운에 의아해하면서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승: 희서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고, 18살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다. 온몸엔 원장의 학대로 인한 멍 자국이 남아 있었고, 중권에게 버림받을까 늘 긴장했다. 중권은 그런 희서가 작은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자신의 처지가 떠올라 거두었고, 예쁘고 귀여워 아껴주었다. 하지만, 희서는 그런 친절하고, 잘생기고 몸도 좋은 중원에게 설레며, 사랑을 깨닫는다. 중원에게 욕정까지 느끼기 시작한 희서는, 곧 마음을 들키고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전: 첫사랑에 스트레스 받은 희서는 쓰러지고, 이를 본 중권은 희서를 잃을까 두려워졌다. 그래서, 희서에게 사랑한다고 거짓말하며 연인이 된다. 희서는 중권과 매일 꿈같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친구도 사귄다. 그러던 어느 날, 희서는 우발적으로 중권의 회사에 가고, 그곳에서 중권과 그의 친구 주산호의 다툼을 엿듣는다. 그리고, 중권이 사랑한다고 거짓말했음을 알고 충격받는다. 반면, 중권은 갑자기 나타난 희서를 보고 당황한다.
결: 중권은 이미 희서를 사랑하게 됐지만, 희서는 중권에게 화를 내며 그의 진심을 믿어주지 않는다. 중권은 끊임없이 희서에게 구애하고, 희서는 중권을 의심하며 계속 시험한다. 그리고, 끝내 중권이 정말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한 희서는, 중권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서로가 서로를 감금하고 싶은 두 사람은, 결박 플레이를 즐기며 사랑(?)의 지평을 넓힌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MSG가 필요합니다!
댕댕함이 가득한 아공&키잡물이 보고 싶어서 충동적으로 선택한 책이었습니다. 여리고, 어리고, 순수한 아가가 나에게만은 상량한 아저씨를 만나서, 아낌없이 사랑받는 이야기! 그 다정한 연애담을 기대했었죠. 물론, 내가 키운 아가에게 조금씩 홀려 드는 아저씨의 격세지감(?)도 말이에요. 역키잡인 듯한 키잡 작품이라, 피폐가 없는 달달 일상물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요? 뭐랄까요... 좀 많이 비어 보이는 느낌입니다.
3권의 분량이면, 줄거리 대비 적지 않은 분량인데도, 진행되다 만 것 같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희서의 건강, 중권과 아버지의 과거, 중권과 산호 사이에 그녀, 보육원 원장의 말로, 중권의 사업 등등... 시작은 있는데, 끝이 애매한 것들이 제법 됩니다. 오랜 폭력에 시달린 데다가 몸이 약해 자낮일 수밖에 없었던 희서의 캐붕도 조금 당황스러웠고요.
많은 자낮수들이, 어마 무시한 사랑을 쏟아붓는 공을 통해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행복해지는 이야기! 흐뭇하죠. 하지만, 독자가 공감하는 부분은 해피엔딩이 자체가 아니라 시련을 극복하고 정상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축적된 세월과 상처로 상실된 자존감이, 그만큼의 세월이 흐르고 문제가 해결된다고 높아지는 건 아니에요. 일단, 기존의 자아를 깨부술 강한 계기와 두려움을 마주하려는 굳건한 의지, 그 의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지해 주고 응원해 줄 사람과 상황도 있어야 하죠.
희서의 정착 지원금을 빼앗기 위해, 원장은 잠시 친절을 가장합니다. 거기에 감동받은 희서는, 돈 500만 원을 건네죠. 하지만, 그때 원장이 한 일은 때리지 않고, 욕하지 않고, 굶기지 않고, 일상적 염려 몇 마디를 건넨 것뿐이었어요. 희서가 중권의 집에 들어가고 사정을 털어놓은 후, 중권은 희서와 함께 보육원 원장을 찾아갑니다. 술 먹은 원장의 고함 소리에, 희서는 학습된 공포와 더불어 중권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공황증을 일으키고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죠. 희서는 극도의 애정결핍과 강박, 망상을 겪고 있었고, 그래서 자존감은 바닥이었어요.
희서가 중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떨결에 중권에게 고백을 하고 난 뒤, 희서는 스트레스로 코피를 흘리며 쓰러집니다. 그만큼 첫사랑은 절실했고, 또 그만큼 희서의 심신은 약했던 거겠죠. 여기까지는 일관된 희서가 갑자기 환골 탈퇴합니다. 특히, 중권과 산호의 대화를 엿듣고, 중권을 거부하는 부분은 놀라워요.
중권은 곧 산호와의 대화가 과장이었음을 설명하고, 지금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희서는 중권과 한 집에서 태연히 일상을 살면서, 중권을 사랑하지만 중권을 믿지 않는다는 우월적 밀당을 합니다. 심지어, 주변인을 이용해서 중권의 진심을 시험하고, 용서의 시점을 계산하죠. 아저씨가 나를 버린다고 하더라도 꼬실 거라고 했을 때부터 의아했지만... 자낮이, 일생 유일한 선의이자 사랑을, 심판대에 올릴 수 있는... 그 설득력 있는 개연적 사건과 사고의 과정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전개도 다소 싱거웠습니다. 희서는 계속 코피를 흘립니다. 건강검진에서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위기에 몰리는 순간이면 희서는 혼절하며 코피를 흘리죠. 그래서 저는 이것이 큰 병의 단초나 무시할 수 없는 트라우마의 발현이어서, 희서가 묻어 둔 상처를 지각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자주 등장했거든요. 그런데, 중권이 희서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계기... 정도로 쓰인 듯합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코피는 흘립니다.
중권이 희서를 줍게 된 계기인 아버지와의 과거사나, 지금은 잠잠한(?) 가업이나, 산호가 좋아하고 중권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없는 그녀나, 분명 감칠맛을 증폭시켜줄 매력적인 설정들이었는데도, 잘 쓰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인기 배우인 산호는 초반부터 예쁜 희서를 연예인 만들자 불타오르지만, 어느 순간 그마저 사라져버립니다. 차라리 중권이 극렬히 반대했거나, 희서가 생각조차 안 했다면 모르겠지만, 그 의지의 정도에 비해 포기는 과정조차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웠어요.
결박플에 대해서는... 좀 생뚱맞은 감이 있지만, 서로를 너무나도 독점하고 싶은 욕구의 구현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뽀뽀만 연신하더니, 막판에 온갖 장난감들이 총 출현합니다. 어찌보면 몰라 순수한 것과, 정직(?)해 순수한 것을 모두 맛볼 수 있는 셈이죠.
'길 위의 강아지'는 신선했습니다. 희서가 중권에 대한 사랑도 빨리 자각하고, 삽질 구간도 매우 짧아 고백도 빠릅니다. 중권이 싫어해도 친구는 열심히 사귀고, 아저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일을 돕지도 않아요. 게임을 열심히 합니다. 전체적으로, 시놉시스를 보고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저는 좋았습니다. 정말 말 그래도 '순수'해 보였거든요. 사실, 의무라는 거도 학습이잖아요. 다만, 좀 많이 싱거웠어요. 스토리를 쫀쫀하고 찰지게 만들어 줄 디테일이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작가님의 의도를 모르겠더라고요. 초점이 강아지의 구원기 혹은 성장기인지, 강아지와 아저씨의 배덕한 사랑인지, 법대로 처리한다고 원래 스타일도 아닌데 욕은 바가지로 얻어먹으며 길게 끌다가 결국은 섬으로 팔아버린 원장의 응징기인지, 뒤늦게 사랑을 깨달은 아저씨의 변화인지... 뭔가 조금씩 다 있고, 전체적으로는 다 없는 느낌이에요.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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