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8.03.09

분량: 본편 3권 + 외전 2권

​​

 

point 1 책갈피

"현성이 형!"

현재는 고개를 들었다. 불이 켜져 있는 원룸 건물의 4층을 흘끔 쳐다보았다. 현재는 여전히 그 안에 있을 선교를 생각했다.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을지, 불안해하고 있을지. 결국 어쩔 수 없이 이런 새끼인가 싶다가도, 이 상황에서도 선교가 걱정되는 스스로를 어찌할 수 없었다.

"형, 선교는?"

자괴감에 좀먹은 목소리로 현재가 현성에게 질문했다. 현성이 현재를 흘긋 돌아보았다. 현성이 조금 지친 듯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다.

"현재야. 형은 더 이상 걔 얼굴 볼 생각 없어."

현성이 형은 절대로 나 버릴 일 없어. 다짐하듯 말하던 선교의 얼굴이 현재의 눈앞에 빠르게 스쳐 갔다. 현재는 심장이 아플 정도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형, 선교 안 사랑했어?"

"사랑했지."

현성의 말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과거형이었다.

"현재야,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야."

"......"

"형은 나 두고 바람피운 애인 다시 만날 생각 없어."

"......"

"그런데 현재야."

당연하게 여겨 왔던 기존의 상식이 파괴되는 순간, 현재는 온통 혼란스러운 얼굴로 현성을 올려다봤다.

"너랑 나는 평생 볼 사이잖아."

현성이 단언했다.

point 2 줄거리

기: 교수인 부모님과 모범적인 형, 풍족한 환경과 꿀리지 않는 외모를 가진 현재는 권태롭게 살고 있었다. 여자친구 적당히 사귀다 질리면 헤어지기를 반복했더니 유명한 "개새끼"가 되어 있었지만, 그조차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런 현재의 삶은 형의 애인, 이선교를 만나며 뒤바뀐다. 현재는 처음부터 자신을 불편해하는 선교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후 소개팅녀를 통해 이선교가 게이란 소문을 듣고, 얼마 뒤 주차장 차 안에서 형과 키스하는 선교를 본다.

승: 선교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충동을 느꼈던 현재는, 선교에게 한 번만 대주면 형에게 '자신이 봤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의외로 쉽게 승낙하는 선호를 보며, 현재는 역시 형이 '씨발년'에게 잘 못 걸린 거라고... 속 깊이 끓어오른 감정을 분노라고 치부한다. 현재는 선교를 걸레 취급하며, 틈날 때마다 다리를 벌리고, 거부하면 윽박지르며 막무가내로 들이댔다. 그때마다 선교는 못 이기는 척 결국 현재를 받아 줬다.

전: 선교는 과거 한 교수와 사랑을 나눴지만, 들키자마자 잔인하게 버려졌다. 이후 계속 쓰레기들만 만나며 살다, 휴학 후 현성을 만나 구원받았다. 선교는 현성에게만은 절대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선교는 가족인 현재에게 자신의 존재가 들키면, 현성이 자신을 버릴까 봐 불안했다. 더불어, 자신에 대한 현재의 흥미는 얼마 안 갈 거라고 생각하고, 현재의 요구를 받아줬던 거였다. 하지만, 현재는 관심은 오히려 사랑이 됐다.

결: 현재는 선교에게 사랑을 애걸했지만, 선교는 그 '사랑'이란 것이 얼마나 가벼운지 잘 알고 있었다. 선교는 현성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인생의 마지막 기회인 양 붙들면서도, 현재에게 흔들리는 마음도 무시하지 못했다. 그러다 선교는 현재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하자 병수발을 들고, 둘은 가까워진다. 선교는 현재와 현성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다가, 결국 현성에게 외도 장면을 들켜버린다. 현성은 선교를 버린다. 그리고 남겨진 선교에게, 현재가 찾아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모럴리스한 구원자

퇴폐미가 폴폴 풍기는 블랙 사이키, 달달 촉촉 몽실몽실한 화이트 사이키, 아수라 백작처럼 두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사이키님의 작품은 뭐든 재밌습니다. 그럼에도 어찌어찌하다 보니, 사이키님의 작품은 첫 리뷰예요. 스스로는 좀 멋쩍기도 합니다. 사실, 5점짜리 작품은 뭔가 흡! 정신을 가담고 써야 할 것 같아, 미루게 돼요. 그래서, 쌓여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 5점... 쿨럭... 예, 구차한 변명이네요. 반성하겠습니다. 제가 그냥 게을러요. 흑...

블랙 사이키님 작품의 최강점은 '배덕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모럴리스한 요소는 대부분 '부정한 관계'에게 비롯돼요. 약을 먹이고, 감금, 학대, 가스라이팅 등의 비정상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아도, 그 맞물린 관계에서 촉발되는 심리적 긴장감을 쫀쫀하게 풀어내시죠. 과장되지 않되, 부족하지 않은, 찐 배덕감의 명수시죠. 그중 저의 원픽은, 단연 '데카당스'입니다.

'데카당스'를 '형의 애인을 빼앗은 동생의 이야기'라고 평하시는데, 저는 현재가 현성에게 선교를 빼앗은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협박은 했지만요. 오히려, 현성은 선교를 버릴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고, 선호는 현성과 현재라는 선택권이 있었지만, 실제로 현재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어요. 나중에 현성에서 외도가 들켰을 때도 선교를 대신해 변명하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죠. 그래서, 현재는 '결과'에 대해서는 완벽한 피동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데카당스'를 '선교가 불러온 두 형제의 비극'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현재와 현성이 말한 대로, '키스한 장면을 봤으니 나한테 한번 대줘!'란 협박은 거절하는 게 맞거든요. 하지만, 선교는 수락했고 비극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현성에겐 변명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버려지죠. 그럼, 왜 선교는 그 별것도 아닌 협박을 받아들였을까요? 선교가 원래 걸레기 때문에, 모럴리스해서, 몸을 함부로 굴리는 걸까요?

하지만, 현성과 현재의 대화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현성은 선교를 사랑했지만, 동생과 외도한 애인을 단칼에 버립니다. 그리고, 동생을 용서하죠. 동생은 가족이고, 버릴 수 없으니까요. 선교는 바로 그게 두려웠어요. 현재는 모험을 시도할 수 있지만, 선교는 그럴 수 없었어요. 동생에게 게이라는 것을 들켰다는 이유로, 현성이 선교를 버릴 수도 있었으니까요. 바로, 딸에게 들키자 가차 없이 선교를 버린, 그 교수처럼요.

물론, 선교의 예상을 완전히 빗겨 납니다. 현재의 돌발행동에 불안해하며 줄타는 심정으로 살던 선교는, 버려질 각오를 하고 현성에게 아웃팅을 하고 싶다고 말해요. 그러면, 가족에게 들킬 수 없다면, 이별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현성은 기꺼이 선교를 현재에게 소개해 줘요. 현재가 나가면, 함께 살 자로도 제안도 하고요. 선교는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현성과, 그토록 바라던 가족이 되는 거였죠.

문제는 자신에게 곧 흥미가 떨어질 거라 여겼던 현재가, 정말 선호를 사랑하게 됐다는 거예요. 이 부분에서 사이키님의 필력이 빛나요. 현재는 '개새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사람을 하찮게 대합니다. 적당히 풀고, 질리면 버리고, 싫지도 좋지도 않은, 무감한 대상... 하지만, 선호를 대하는 현재는 늘 뜨겁고 절절하죠. 그래서 자칫 캐붕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변화가 오히려 '현재 답다.'고 느껴지는 것이 작가님의 필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성의 '모럴'은 선호를 버릴 이유가 되죠. 동생과 외도한 애인은 보지 않는다. 현성은 고민하지 않아요. 하지만, 현재의 '모럴리스'는 선호를 계속 사랑할 힘이 돼요. 현재는 형을 사랑하고, 형과 잠을 자고, 형과 사귀면서도 나랑 질펀하게 뒹굴었지만, 그 망가진 선교를 사랑하는데 당당합니다. 현재의 모럴리스는 사랑이 없을 때는 기본도 모르는 새끼지만, 사랑을 할 때는 견고한 성벽이 돼요. 그래서, 선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죠.

선교는 제대로 살고 싶었어요. 불행히도 그 방법이 '제대로 된 선교'를 연기하는 거였지만요. 선교는 현성에게 불행한 과거, 그로 인한 불안함과 공포, 심지어 끈질기게 찾아오는 쓰레기 전 남친에 대해서도 모두 숨겨요. 왜냐면, 현성이 사랑해 주는 애인 선교는, '그런 선교'가 아닐 테니까요. 실제로, 현재가 현성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알려줬을 때, 현성은 '그럼에도' 외도는 용서할 수 없다며 선교를 이해해 주지 않습니다.

저는 외전에서,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불안을 떨치지 못한 선교가 안쓰러웠어요. 선교는 걸레 취급을 받을 정도의 많은 관계를 하면서도, 먼저 버린 적이 없었어요. 술을 마시고 섹스하지 않는다. 그렇게 정한 선교의 마음은, 버림받더라도 약한 소리는 하지 않겠다는 처절한 자기방어 같기도 했고요. 그래서, 분명, 선교와 현재의 사랑은 모럴리스하지만, 선교를 진짜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결국은 현재였던 거죠.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