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블릿

출간일: 2021.04.06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기분 좋아도 돼요. 괜찮아요. 쾌락에 약한 건 잘못이 아닌데. 누구나 약한 부분도 자신 없는 일도 있는 거니까."

"그런-."

"취향은 다들 다르다면서요. 그걸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좋아져 버린 건, 그래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건 누구 잘못도 아니잖아. 어쩔 수 없는 거지."

잘못이 아니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이현의 나직한 목소리가 주원의 머릿속을 바삐 돌아다녔다. 멋대로 물 안을 걷어내고 쿵, 쿵, 차게 가라앉아 있던 심장을 뜨겁게 뛰게 만들었다.

취했기 대문일 것이다. 눈시울이 뜨거운 것은, 온몸에 견딜 수 없을 만큼 열이 오르는 것은.

이현이 주원의 머리를 감싸 느릿하게 끌어당겼다. 힘없이 축 안기는 주원을 다독여주었다. 평소처럼 야릇하고 끈적이는 손길이 아닌 탓에 주원은 그에게 더 매달리고 말았다.

"하지만 전부, 다... 망쳐버렸......"

"타이밍이 나빴을 뿐인데요, 뭐.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고 생각해요.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그날 날씨 탓이라고 치고."

"윽......"

목 언저리에 맴도는 말들 대신 틀어막힌 작은 소리만이 새어 나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현은 늘 주원이 원하는 말을 해줄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필요한 말을 해줄 수 있는지.

이현이 품에 안아줘서 다행이었다.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주원은 알고 싶지 않았다.

point 2 줄거리

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건물 옥상, 주원은 쾌감에 취해 자위를 하고 있었다. 분출하지 못한 열감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건물 1층 카페 바리스타 이현이 나타난다. 이현은 대뜸 주원을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능숙한 손짓(?)과 자연스럽게 이어진 삽입까지 이어지자, 주원은 서서히 정신이 돌아온다. 두 사람은 옥상 아래, 카페 위층에 있는 주원의 직장으로 가 젖은 옷을 갈아입는다. 주원은 이현에게 감기에 걸리지 말라며 비타민을 잔뜩 쥐여 준다.

승: 이현은 자신이 게이라는 것과, 주원이 완벽한 이상형의 몸을 가지고 있어 평소에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후로 두 사람은 이전과 같은 일상을 보낸다. 주원은 무뚝뚝한 회사원이 되었고 이현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 낮은 빗소리가 잔잔히 귓가를 두드리는 어느 날, 이현은 어두운 휴게실 구석에서 자위하는 주원을 발견한다. 주원은 이현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두 번째 섹스였다.

전: 그날 이후, 두 사람은 한결 가까워진다. 화창한 날에도 만나, 식사를 하고 호텔도 갔다. 또 비가 내렸다. 이번엔 주원이 먼저 이현에게 건물 화장실로 와달라고 연락한다. 이현은 '비'가 아닌 '이현'에게 흥분하는 주원을 보고 싶다고 욕심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현은 비가 내릴 때마다 주원과 급하게 몸을 섞으며, 비가 오지 않은 주말에도 주원을 만나 격한 정사를 벌였다.

결: 과거 엄한 아버지에게 통제 속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야만 했던 주원은, 우연히 비 내리는 날 자위를 하다 짜릿한 해방감을 느꼈다. 이후 비가 내리면 지독한 쾌락에 휩싸였다. 주원은 변태 같은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이현에게 빠진다. 그러다 주원의 맞선과 이현의 재산(?)이 알려지면서 두 사람은 다투지만, 눈치 빠른 매니저의 도움으로 곧 화해한다. 주원은 비가 내리지 않는 날, 이현에게 이제 연애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개취를 존중해 주세요!

여기 남다른 개취를 가진 두 주인공이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소리, 습기, 냄새, 촉감에 쾌락이 끓어오르는 비페티시 주원! 그리고 근육질 몸에 꼴리는 게이 이현! 평범하지 않은 두 사람의 만남은 비범했어요.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는 옥상, 끙끙 앓으며 자위하는 주원과 냉큼 나쁜 손부터 나가는 이현이 만났죠. 장마철, 집중 호우 예보가 연일 이어지는 기간, 같은 건물 1층과 3층에 일하는 두 사람은, 그 건물 음침한 어딘가에서 은밀한 만남을 계속해요.

이현이 주원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주원이 이현의 이상형이었기 때문이에요. 바로, 탄탄한 근육질 몸매 말이에요. 하지만, 주원이 열심히 몸을 단련한 이유는, 주원의 특수한 성향 때문이었어요. 비 속에서 긴(?) 시간 진을 빼야 했던 주원은, 쉽게 감기에 걸렸죠. 하지만, 비가 매일 내리면, 또 비를 맞아야 하는 주원에게 선택권은 없었어요. 결국, 평소 운동을 통해 몸의 내성을 기릅니다.

결과적으로 그 성향 때문에 주원은 이현에게 도움받을 수 있었고, 이현은 이상형인 '이성애자'와 썸띵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거죠. 비페티시는 어쩌면, 주원에게는 숨 막히는 입시와 아버지의 기대 속에서 탈출할 수 있는 임시 방공호였을지도 몰라요. 주원은 비만 내리면 흥분하는 자신을 변태 같다며 괴로워했지만, 그건 불편할 뿐이지 잘못된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주원의 숨 통을 잠시나마 트이게 해줬고, 주원과 이현 모두에게 기적 같은 연인을 선물했죠.

다만, 클라이맥스인 '갈등'이 아쉬웠습니다. 이현은 주원의 성벽을 기꺼워하고, 주원은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인 이현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현이 건물주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쉽게 여겼다고 화내는 주원과, 그런 주원에게 이현이 당신도 취향을 어쩌지 못했으면서 나는 게이인 걸 받아들이기 쉬웠는 줄 아냐고 싸우는 것이... 설득력 없게 느껴졌어요. 두 사람 모두 사소한 질투가 쌓였다고 쳐도, 좀 잉?스러웠죠.

너무 큰 개취를 쉽게 이해해서, 작은 오해를 어렵게 풀 수밖에 없었나? 싶기도 했지만, 그다지 끄덕여지지는 않더라고요. 하필(?) 장마철이라 씬의 비중이 높다 보니 서사가 다소 약한 경향이 있었죠. 하지만, 참신한 소재와 떡대수 미인공의 귀한 조합에, 우수한 가독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어요. 플러스마이너스 해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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