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1 책갈피

" 빛이 하연준 씨를 좋아하나 봐요. 예뻐서 자꾸 보고 싶은 거겠지, 내가 그런 것처럼."

"......"

"하연준 씨는 내가 알고, 또 내가 생각하던 모든 걸 다 바꿨어요."

"......"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했던 것들이 다 기억이 안 나... 널 본 그 순간만 또렷해."

"저도... 저도 그래요. 배우님을 처음 봤던 그 순간이 아직도 또렷해요. 배우님만 보였어요. 다른 건 하나도 안 중요했어요."

연준의 초점이 평생 저에게만 맞기를 바랐다. 서정원은 식탁 위로 손을 뻗어 저를 향해 손을 내미는 연준의 손가락 끝을 살짝 문질렀다. 고작 손가락이 닿고, 얽혔을 뿐인데 긴장하는 얼굴이 예뻐 눈을 뗼 수가 없었다.

point 2 줄거리

기: 하연준의 삶은 불행했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만, 고모가 가해자에게 합의금을 받아 처벌하지 못했다. 고모는 연준 부모님의 보험금과 합의금을 받고도, 연준에게 눈치를 주며 박대했고, 사이코 사촌 형은 밤마다 연준의 방 문고리를 흔들어댔다. 결국, 연준은 지옥 같은 고모의 집을 나와 달동네에 혼자 살고 있었다. 사촌 형이 달동네 집으로 찾아올까 봐 무서웠던 연준은, 알바비 중 월 15만원만 남기고 모두 고모한테 보내며, 궁핍한 생활을 이어갔다.

승: 그런 연준에게 유일한 행복은 배우 서정원이었다. 중학교 2학년, 따돌림으로 극한에 몰린 연준은 정원의 드라마를 보며 위로받았고, 그 이후로 정원에 골수팬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정원이 연준 앞에 나타난다. 달동네 연탄봉사를 나온 것이었다. 정원의 회사는, 이미지 관리차, 예쁘장한 달동네 팬과 정원의 식사 자리를 마련한다.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는 정원 앞에서도, 좋아한다는 티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연준의 모습에 정원은 죄책감을 느낀다.

전: 인간 자체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던 정원은, 연준에게 마음을 쓰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죄책감이라고 생각하고 잘 대해줬지만, 그 후에도 계속 연준이 떠올랐다. 그리고, 연준이 자신의 손을 어설프게 잡은 날, 연준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한다. 정원은 연준를 집에 감금하고, 매일 좋아한다는 말을 들을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연준을 집에 들이지만, 정원의 사랑은 예상보다 격정적이었고, 연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욕심조차 접게 된다.

결: 한편, 정원은 연준의 사촌 형을 들쑤시고, 결국 공개석상에서 자신을 찌르게 만든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연준은, 정원을 다치게 만든 죄책감에 집을 나와 달동네로 돌아간다. 하지만, 연준과 정원도 이미 서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정원은 연준을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연준의 고모와 사촌 형의 목줄은 정원이 쥐고 있었고, 정원은 연준이 받았어야 할 것들을 받게 해 준다. 두 사람의 격정멜로는 현재 진행 중이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격. 정. 멜.로.

'멜로'... '멜로'의 역사를 풀자면, 근대 유럽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물론, BL을 리뷰하면서, 가치관 전복과 여성운동까지 거론할 필요는 없겠지만, 확실한 건 '멜로'라는 장르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왔다는 것이고, '시대의 거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죠. '여자들의 최루탄' '골 빈 통속 장르'로 비하 될 만한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 요즘은 그마저도 찾아보기 힘든, 화석 같은 존재가 되긴 했지만요.

'로맨스'와 '멜로'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신파'적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파'를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작위적 설정'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확실히 '신파'가 감정의 폭이 크고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는 극적 전개이다 보니, 세련미나 개연성이 떨어져 보이기도 합니다. 죽을 만큼 사랑하고, 죽을 만큼 슬퍼하고, 죽을 만큼 그리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죠. 왜, 어떻게, 무엇을 같은 질문은 미뤄두고, 오로지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격정'이라는 수식어가 '멜로'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클레어님은 다작의 네임드 작가님이시지만, 개인적으로 저와는 잘 안 맞았습니다. 그럼에도 '격정 멜로'라는 제목에 꽂혀서 읽었고, 결론적으로 만족했어요. 제목을 보고 예상했던 재미를 발견할 수 있었죠. 물론, 그간의 클레어님 작품을 읽을 때면,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요소들이 없기도 했고요. 설정만 잘난 공, 신경과 진료가 필요한 수, 해저터널 같은 고구마 전개 말이에요.

'격정 멜로'는 지독하게 불행한 삶 속에서, 동아줄 마냥 서정원이란 배우를 좋아하는 힘으로 살았던 연준이, 우연히 봉사활동 차 달동네를 찾은 정원을 만나 성덕이 되는 이야기예요. 전형적인 할리킹이죠. 그래서, '격정 멜로'의 포인트는 연준이 아닌 정원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원은 연준과 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집 안이 부유해 가난을 모르고, 넘치는 인기를 누리며,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죠. 하지만, 역시 불행했어요. 부모에게 비난받고, 인간을 혐오함에도 사랑하는 척 연기하고 살아야만 했으니까요. 정원은 거짓말 잘하는 기술을, 최고로 인정받은 셈이었어요.

정원은 까칠하지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런대로 배우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오기로 시작해, 큰 목표나 야망 없이 사는 무미건조한 삶... 너무 오래 사랑을 안 해서, 사랑할 수 있는 줄도 몰랐다... 어느 소설의 대사처럼 말이에요. 그러다, 흔들림 없이, 자신을 좋아하는 연준을 보게 됩니다. 싸가지 없게 굴어도, 욕을 해도, 심지어 아프게(?) 해도 한결 같이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사람... 일생 정원의 심장을 묶은 고삐가 풀립니다.

'결정 멜로'는 고구마 구간이 없습니다. 이것저것 눈치 보고, 복잡한 관계와 복층적 감정에 혼란스러워하고, 이리저리 찔러보는 과정이 없습니다. 가장 긴 삽질 구간이 사촌 형이 정원을 찔렀다는 것을 알게 된 연준이 죄책감에 달동네로 돌아온 부분인데, 하루 만에 해결돼요. 함께 있고 싶으면 동거하고, 걱정되면 물어보고, 화가 나면 복수하고, 미안하면 사과하죠. 사랑을 표현할 때는 사랑하는 만큼, 자존심이나 체면 따위는 관여치 않습니다. 그래서 사건 전개는 단순하고, 캐릭터는 일차원적이에요. 나쁜 놈의 이면도 없고, 좋은 놈이 변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에너지는 '사랑하는 데'만 씁니다. 절절하게 고백하고, 애절하게 만지고, 격정적으로 사랑하죠. 그냥, 연준과 정원의 삶 자체가 한편의 멜로드라마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원의 모든 관심사는 연준이었고, 연준의 유일한 중요사항은 정원이었어요. 연준을 감금할 계획을 세우던 집착공은, 자신이 없는 시간 동안 자신을 홀로 기다릴 연준을 가슴 아파하며, 연준이 원하는 수능 공부를 지원해 줍니다. 또, 대학은 안 보내리라 계획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연준을 보며 아직 나오지도 않은 장학금에 질투도 하죠. 정원의 계획, 살아왔던 삶의 방식, 모두 '연준' 앞에선 무효가 됩니다.

이런 사랑을 받으면, 조금은 변할 것도 같지만, 연준은 오로지 정원만 봅니다. 정원이 하자고 하는 건 무조건 좋고, 정원이랑 같이 있는 시간은 무조건 행복하고,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언제나 뿅~가죠. 연준은 절대적 약자이자 모순 없는 선인이고, 고모와 사촌 형은 반전 없는 악역이자 전형적 속물이에요. 그래서 정원은 밑도 끝도 없이 연준에게 빠져들 수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엔 오해도, 갈등도, 실망도 없거든요. 오로지, 두 사람을 둘러싼 적들이 있을 뿐!

하지만, 이런 점이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매일 연재로 볼 때는 '오늘도 그들을 달달하였다!'지만, 한꺼번에 보자면 씬+애절+씬+애절+씬+애절의 무한 루프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격정적 감정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싶은 날에 선순위로 떠오를 작품임에도, 정주행을 생각하면 망설여집니다. 공수가 예쁘게, 한결같이, 사랑하는 모습만 보고 싶다! 하는 독자에게는 최적의 선택이 될 것이고, 사랑도 좋지만 내용도 필요해!라는 독자에게는 다량의 스킵 구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격정 멜로'는 회당 4천 자 이상의 분량을, 주 7일 연재(초반부는 주 5일 연제)로 휴재 없이, 100화 이상의 장편으로 마무리 한 작품입니다. 물론, 할리킹 클리셰를 '멜로'로 풀어낸 시도도 좋았지만, 작가님의 성실함과 책임감에도 감동받았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진지충의 Review에서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인성이 좋은 작가의 작품이 꼭 '좋은 작품'은 아니지만,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면 작가의 인성은 상관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작가님의 좋은 면이, 작품을 읽을 때 독자에게 주는 선한 영향력이 있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많이 기대하게 되었어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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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시크노블

출간일: 2019.02.21

분량: 본편 1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아직 안 잡아먹어."

그 말에 나는 안심을 해야 할지 아쉬워해야 할지 구분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조금 더 컸던 것 같기도 하다.

사장님은 손가락 끝으로 내 턱을 부드럽게 쓸어 갔다. 차갑던 손은 나를 자극하던 혀끝만큼이나 뜨거워져 있었다. 뜨거운 손은 목덜미를 타고 쇄골로, 쇄골을 타고 가슴으로, 가슴에서 다시 옆구리와 배꼽을 지나 골반 근처에 머물렀다. 나는 그 손을 따라 느리게 시선을 옮겼다.

양손으로 내 골반을 쥔 사장님이 자신의 허리 짓에 맞춰 내 허리도 살살 돌렸다. 아찔한 자극이다. 얇은 천 하나를 두고 사장님의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형태도, 열감도.

사장님은 다시 한번 내 이마와 코, 그리고 입술에 입을 맞췄다. 꼭 나를 안심시키려는 사람 같았다. 고개를 들어 사장님을 바라봤다. 사장님이 예쁘게 웃는다. 그래서 눈치채지 못했다. 시각적인 자극에 정신이 팔려, 육체적인 자극에 정신이 팔려, 사장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가 무슨 의미인지를.

"대신 맛만 볼께."

point 2 줄거리

기: 더운 여름, 3개월 남짓 남은 입대를 핑계로 주유소 알바를 그만둔 강승태! 승태는 카페를 지나다 우연히 아르바이트 모집공고가 붙은 것을 본다. 그리고 홀린 듯 조건도 맞지 않는 알바를 충동적으로 지원한다. 당연히 면접은 순탄치 않았다. 그때, 한량 같은 사장이 나타나, 덜컹 승태를 채용하고, 승태는 매니저의 한숨과 함께 카페 알바를 시작한다. 서툰 승태를 언제나 미소로 지켜보며, 늘 피곤한 듯 게으름을 피우는 사장! 승태는 그가 궁금했다.

승: 일이 익숙해지자, 까칠하고 꼼꼼한 매니저는 승태를 남동생처럼 챙겨주는 정 많은 누나가 되었고, 사장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된다. 부티 나게 팔리는, 많은 양의 디저트를 새벽같이 나와 혼자 만들고, 그 와중에도 푸드뱅크에 기부할 빵까지도 챙긴다는 것,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 취한다는 것, 그리고 고등학교 때 아웃팅 후 집에서 쫓겨나 바닥부터 시작한 자수성가형 사업가는 것까지! 의외로 사장은 성실하고 멋졌다. 그리고, 자상하고 다정했다.

전: 승태는 물 흐르듯 사장 신이헌을 좋아하게 된다. 누가 봐도 첫사랑에 빠진 소년이었지만, 고작 스무 살, 한 번도 사랑을 해 보지 않은 순둥이는 그 감정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그저, 카페로 찾아온 이헌의 옛 연인이 불쾌하고, 사장님의 '날 좋아해?'라는 질문에 콩닥거릴 뿐! 그렇게 카페의 나날들은 계속되고, 이윽고 승태의 입대 날이 다가온다. 마지막 회식, 술 취한 승태는 이헌과 제대로 대화를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도망치듯 카페를 나온다.

결: 드디어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승태! 하지만, 입대 일주일 전... 뒤숭숭한 승태는 만취해 카페로 가고, 눈을 떴을 때 곁에 이헌이 있었다. 그리고 승태는 술에 취해, 제발 기다려 달라고 빌며, 나오면 정말 잘 해주겠다고 고백을 했던 것을 기억해 낸다. 승태는 흑역사가 생겼지만, 덕분에 연인을 얻는다. 그렇게 이헌의 곰신 라이프는 시작되고, 1년 반이 지나 제대한 승태는 이헌에게 어른들의 연애를 배워나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연상과 연하의 연애란...

마음이 흑화 할 것 같은 날, 판타지급 달달한 일편단심 순애보와 저세상급 귀욤쿤의 재롱으로 백화하고 싶어집니다. 마침, 얼마 전 이웃 블로거님의 리뷰를 보고 흥미가 생겨서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소설이 마크다운 행사에 나왔더군요. 그래서 냅다 구매를 했죠. 물론, 기대와는 약~간 달랐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디저트로 비유하자면, 달콤하고 퐁실한 수플레를 먹고 싶었는데, 제법 잘 만들어진 새콤한 레몬 타르트를 먹은 기분! 음료로 비유하자면, 휘핑이 잔뜩 올라간 프라푸치노도 아니고 향이 짙은 에스프레소도 아닌, 카페라테!

분위기는 잔잔과 달달 사이, 인물은 발랄과 진지 사이였어요. 유명 디저트 카페의 일상, 스물살 대학생의 순수 라이프, 외유내강 사장의 씁쓸한 과거가, 플래터처럼 단권의 책에 모두 들어있고, 또, 애정사가 늦게, 서서히 전개 됩니다. 그리고, 수와 공의 온도차도 좀 납니다. 이헌은 승태의 감정을 알고 계속 힌트를 주지만, 적극적인 액션은 취하지 않고 관조하죠. 만약, 승태가 그대로 군대에 갔다고 하더라도, 굳이 상관하지 않았을 것 같은... 집착하는 연상, 순진순수 연하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꽁냥, 귀욤, 므흣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오히려, 그 자체로만 보면 더 이상적인 연상 연하의 조합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연상은 여유롭고, 연하는 호기심이 많죠. 연상은 선을 지킬 줄 아는 겁쟁이고, 연하는 선이 뭔지 모르는 무대포구요. 표현은 다양하겠지만, 별별 일을 다 겪으면서 교훈과 상처를 적립하는 것이 '나이가 든다.'라는 걸 테니, 미지의 미래가 불안하면서도 기대되고, 교훈이든 상처든 적립할 에너지가 넘쳐나는 연하와의 온도차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레몬트리'는 입대 3개월 전, 운명처럼 시작된 아르바이트로 사랑을 발견한 승태의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일들이 처음인 승태 일상은, 서툴면서 풋풋하고, 동공 지진과 두근두근의 반복이죠. 그런 승태의 눈에 사장 이헌은, 커피를 마시면 취하고, 알바생이 자신의 카드를 허락 없이 긁어도 관여치 않고, 나무 늘보 마냥 게으르면서도 훌륭한 카페를 가지고 있는, 신비의 생명체였죠. 시작은 순수한 호기심이었습니다.

고작 2개월 남짓 밖에 일하지 못하면서, 카페 알바 경험은 없어 가르칠 것은 많은, 0점짜리 알바생을 뽑았을 때부터 시작이었어요. 심지어, 그 다음날은 자신이 뽑았다는 사실도 기억 못 하는 이 남자! 하지만, 의외로 자상하고 상냥했어요. 실수도 너그럽게 넘겨주고, 날씨가 궂은 날에는 부러 카페까지 돌아와 집까지 데려다줍니다. 매일 새벽 엄청난 양의 디저트를 직접 만들고, 강의도 나가면서 봉사활동도 하는, 부지런쟁이에 능력자였고요. 승태의 호기심은 점점 관심으로 바뀌죠.

승태는, 대부분이 '처음'이었어요. 이헌의 전 남자친구에게 느끼는 이 불편함이 질투라는 것도, 눈이 가고 생각이 늘어가는 현상이 사랑이라는 것도 말이에요. 하지만, 사람의 무의식에는 '정답지'라도 있는 걸까요? 술에 취한 승태는 용기를 냅니다. 이헌을 찾아가고, 기다려 달라고 빌죠. 염치없고, 이기적이지만, 기꺼이 자존심을 버리고 온 힘을 다해 매달릴 수 있는 순수! 이것이 바로 연하 파워 아니겠습니까? 이헌은 기꺼이 곰신의 대열에 합류합니다.

다만,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줄 것처럼, 떡밥도 깔고 카페도 찾아온 전 남친에 대한 언급 없이 본편이 끝납니다. 승태는 궁금해하지만 묻지 않고, 이헌은 굳이 말하지 않아요. 외전에서 이헌이 승태에게 전 남친의 이야기를 말해주긴 하지만, 다소 수습성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분량을 좀 더 늘려, 승태의 좌충우돌 카페 알바기와 우여곡절 많은 사장님의 진면모를 좀 더 깊이 다뤘다면, 훨씬 풍부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어요.

이헌의 카페에 베스트셀러 디저트가, 무설탕 스콘인데 말이죠... 왠지, 소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담백한 디저트처럼, 크게 호불호 갈리지 않는 무난한 소설이었어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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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더클북컴퍼니

출간일: 2018.07.05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제일 새로운 건 뭐였어?"

"글쎄요...... 새와 뱀은 워낙 달라서 이곳에 온 뒤로 새로운 게 한둘이 아니었지만, 처음에 오자마자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것은 숲이었습니다."

"숲"

"예, 이렇게 넓은 숲은 이곳에 와서 처음 봤거든요. 제가 살던 곳에도 숲이나 산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도록 광활한 숲은 본 적이 없어요. 그게 꼭,"

혼잣말처럼 읊조리는 뒷말은 그의 입속에서 끊겼다.

천창 위로 기울어진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나무를 거쳐 숲, 그리고 그 바깥의 어느 먼 곳을 본다. 사화현이 불현듯 중얼거린 것은 그 눈동자가 물빛이었던 탓이었다.

"바다 같았어?"

야휼이 사화현을 돌아보았다. 뜻밖인 듯 웃음이 사라진 얼굴이다. 사화현은 기묘하게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는지 아닌지 미묘하게 턱을 기울인 그의 낯에 이내 웃음이 다시 돌아왔다.

point 2 줄거리

기: 600년간 이어진 용족과 붕족의 전쟁은, 두 왕의 평화협정으로 끝났다. 그리고, 두 나라는 오랜 반목 관계를 청산하고 공존과 공영을 위해, 양국의 군사 협력 훈련을 합의 후 붕족의 땅 남단에 첫 훈련소를 개설한다. 그리하여 붕족의 남방신장이 다스리는 광활한 숲속, 붕족과 용족의 젊은 장교들이 냉정한 사화현 교관 아래 훈련 받게 되었다. 남방신장의 최측근 가신이자 죽마고우인 사화현은, 전쟁에서 6개의 날개 중 한 장이 찟긴 큰 부상을 입었다.

승: 한편, 술 게임 벌칙으로 '담당교관에게 한달간 음란 편지 쓰기'가 걸린 훈련병은, 담당 교관인 사화현에게 매일 연애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사화현의 사택으로 심부름을 간 훈련생 창틈에 끼여 있던 그의 마지막 연애편지를 우연히 줍는다. 사화현은 그 편지를 들고 있는 야휼을 보고 대답하려 하지만, 말을 맺기 전에 나타난 훈련생들로 인해, 그 편지가 벌칙의 일부였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야휼은 사화현의 마음을 눈치채고, 사화현은 야휼이 알았다는 걸 안다.

: 야휼은 언제나 자신을 쫓는 사화현의 눈빛을 느끼고 있었고, 그날 그 의미를 알게 됐다. 두 사람의 성격은 과묵하고 무덤덤했고, 훈련생과 교관으로서만 서로의 일상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한편, 남방신장 고도가 자리를 비운 사이 눌린 흉신이 풀리면서, 고도는 제도에서 급하게 복귀한다. 용족을 끔찍이 혐오한 고도의 등장으로, 훈련소 내 두 종족 간의 대형 사건사고가 터지기 시작하고, 사화현이 마음을 준 야휼은 고도에게 경계와 미움을 동시에 받는다.

: 그리고 용족의 북방신장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야휼의 정체가 알려지면서, 깊어지기 시작한 야휼과 사화현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그러던 중 사화현은 야휼의 마지막 탈피에 휘말리면서 함께 고치에 갇히게 되고, 7번째 용으로 변태한 야휼의 격렬한 사랑을 받는다. 용이 된 야휼은 사화현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 프러포즈한다. 첫 군사 협력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사화현은 제대 후 용족의 북방신장의 땅, 야휼이 가꾼 숲에서 야휼의 반려로서 산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평화

평화가 뭘까요? 총포가 쏟아지고 지뢰가 널리지 않은 땅에 태어났거나, 굶거나 맞거나 얼어 죽을 위기에 처해 있지 않다면, 평화로운 걸까요? 그럼, 지금 평화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평화병'에 걸려 태만해졌기 때문일까요? 원래, 동서고금 막론하고 살만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큽니다. 살만하지 않은 사람들은 목소리를 낼 힘도, 기회도, 여유마저 없으니까요. 극한에 몰리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을 향해 비명을 지르죠. 그래서, 어쩌면 세상은 살만한 것처럼 보이고, 그 정도가 '일반적'이 되어, 마치 그런 것처럼 보이도록 가장하며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재해와 전쟁은 명확합니다. 모두에게 살만하지 않은 세상이죠. 그래서, 모두가 평화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상실한 것들을 기억하고, 엇물린 것들을 풀어내며, 무너진 것들을 재건해요. '평화'에 대해 고민하고, 그렇기에 평화를 느끼기도 할 거예요. 밉상스러운 말 한마디, 예상에 못 미치는 결과, 막연한 불안감으로, 깨지지 않는 평화 말입니다.

용족과 붕족은 무려 600년간 전쟁을 치러왔습니다. 몰살된 마을이나 전쟁고아에 대한 이야기는 흔했죠. 재능 있는 자들은 모두 전장으로 모이고, 세상에 모든 승리와 성취는 그곳에서만 이루어져요. 학교도, 연구실도, 아틀리에도, 경기장도 아니라요. 전쟁터는 집 앞에 있었고, 누구나 그곳에서 친구나 가족을 잃을 수 있었어요. 600년이라는 시간은, 그 모든 현실이 무감해질 만큼의 긴 시간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평화가 찾아옵니다.

용족과 붕족 모두, 한 명의 왕과 사방을 지키는 네 명의 신장들을 주축으로 서열이 매겨집니다. 소수의 용들이 다수의 뱀들을, 날개가 많은 새들이 적은 새들을 지배합니다. 용>반 용>이무기>큰 뱀>작은 뱀, 날개8장>6장>4장>2장 정도가 되겠네요. 사회현은 8장의 날개를 가진 남방신장의 최측근 가신이자 소꿉친구로, 6장의 날개를 가진 강한 붕족이었어요. 그러다 날개 한장이 전장 중 뜯겨 나갑니다. 사경을 헤매다 간신히 정신이 들었을 때, 전쟁은 끝나있었죠.

전쟁고아이자 상흔 군인인 사회현은, 종전 후 제대하려합니다. 하지만, 남방신장이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용족과 붕족이 최초로 시도하는 군사 협력 훈련의 담당 교관이 되어, 양 종족의 장교들을 가르치게 되죠. 언제나 무표정인, 유명한 전쟁 영웅... 사화현은 훈련생들에게 여러모로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현 역시 낯선 평화가 어려웠습니다.

'숲바다'는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엉뚱한 해프닝에 휘말려, 절대 고백 할 일 없는 수가 공에게 마음을 들키게 됩니다. 사화현은 한 달 내내 받았던 러브레터를 들고 집 앞에 서 있는 야휼을 보자, 얼떨결에 대답의 서두를 내뱉습니다. 하지만, 야휼은 떨어진 편지를 주웠을 뿐이고, 진짜 편지를 쓴 이는 곧 발각됩니다. 심지어 그가 편지를 쓴 이유마저요. 사화현의 고백은 온전하지 않았고, 야휼 역시 되묻지 않은 채,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지나가요.

하지만, 둘 사이는 미묘하게 바뀝니다. 교관과 훈련생, 감정 표현이 서툰 두 사람은, 대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산책을 하고, 사소한 관심사를 주고받고, 작은 약속들을 해요. 사화현은 야휼이 지나는 시간에 맞춰 산책을 하고, 야휼은 붕족의 무기를 사화현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죠. 사화현은 휴가를 맞아 집으로 돌아가는 야휼을 마중하고, 야휼은 사화현의 곁을 맴돌고, 틈이 날 때마다 노래를 불러달라고 해요. 두 사람은 훈련이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죠.

남방신장이 다스리는 광활한 숲에서 사화현은 숲지기를 꿈꾸고, 야휼은 고향의 푸른 바다를 떠올려요. '숲바다'의 풍경 속 두 사람은 '새로운' 평화를 경험합니다. '숲바다'의 갈등은, 오로지! 단 한 사람으로부터 발생합니다. 바로, 남방신장 고도 말입니다. 8장의 날개를 가진, 최연소 신장, 잘 생기고 카리스마 있는 의리남이죠. 하지만, 감정적이고, 입이 험하며, 일중독자예요. 그리고... 용족을 혐오하는 '뱀 포비아'입니다.

고도는 마치 끝나지 않은 전쟁 같아요. 고작 두 왕이 만나서 서명했다고 진정한 평화는 오는 게 아니라는 듯 말이에요. 용족 훈련병들에게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폭력적으로 행동하며, 간신히 만들어 놓은 유대감을 송두리째 뽑아 버리죠. 사화현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사화현의 부상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도, 심지어 사화현을 죽을뻔하게 만든 용족에 대한 복수심도 버리지 못합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고도의 등장으로, 잔잔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매사 무감한 인생을 살았던 야휼에게 격정적 분노와 독점욕, 힘에 대한 절실함이 생겨나죠. 얼음 같던 사화현이 화를 내고, 실망 하고, 욕구하게 돼요. 죽고 사는 전장에서, 딱딱해 굳어 마비되었던 감정들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감각'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평화의 시기가 되어서야 바랄 수 있는 소소하지만 위대한 미래를 함께 꿈꾸기로 해요. 고도의 목적과는 다르지만, 고도가 있었기에 얻을 수 있는 '평화'였던 셈이에요.

평화는 전쟁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과 평화'... '신과 바늘'같이 한 쌍 일 때 의미가 있는 존재 말이에요. 어쩌면, 나에게 평화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내가 진정으로 치열한 전투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지치고, 힘들고, 만성 두통에 시달리는 이유는, '치열의 대가'라기보다는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기다리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후회 없이 싸운 전사는 평화를 얻고, 미련과 후회가 많은 전사는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건지도요. 마치, 사화형과 고도처럼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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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주)현대지능개발사

분량: 본편 1권

point 1 한 컷

point 2 줄거리

기: 교실에서 BL을 읽던 이마이에게 코노스가 말을 건다. 코노스도 사실 BL을 읽고 있었던 것! 이마이는 자신이 게이인 것 같다고 고백을 하게 되고, 비밀을 공유한 이마이는 부모님의 사이가 안 좋아 늘 혼자인 코노스에 집에 드나들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코노스는 이마이에게 애무해 준다. 이마이는 다정한 코노스와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코노스를 좋아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코노스는 이마이에게 섹스를 제안한다.

승: 코너스와 첫 경험을 끝낸 이마이는 코노스에게 자신과 잠을 잔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코노스는 이유는 필요 없다며, 남자랑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이에 상처를 받은 이마이는 코노스에게 화를 내고, 때마침 부모님의 이혼 때문에 코노스가 이사 가게 되면서, 두 사람은 오해를 풀지 못한채 헤어진다. 그 후 이마이는 BL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이마이는 새로 이사 한 집의 이웃 주민인, 코노스를 만난다.

전: 이사하자마자 이마이의 집에는 물이 새고, 이마이는 코노스의 신세를 지게 된다. 어색한 이마이와 다르게 코노스는 한결같이 다정했고, 남자를 찾으러 니초메로 간다는 이마이의 섹파도 되어 준다. 집이 수리하는 동안 코노스의 집에 머물면서, 회계사가 된 이마이와 웹디자이너가 된 코노스는 서로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물들어 간다. 그리고, 이마이가 감기에 걸린 날, 두 사람은 묵혀 둔 진심을 토로하게 된다.

결: 오해를 풀게 된 두 사람은, 삽질 구간을 지나, 고백을 하고 연인이 된다. 이마이는 코노스와 함께 BL을 고르러 서점에 가며, 즐거운 데이트를 즐긴다. 한편, 과거와 다르게 BL 수위는 과격해져 있었고, 두 사람은 첫 경험을 막 끝낸 풋내기가 아닌 야한짓에 목마른 성인이 되어 있었다. 이때도, 두 사람은 다소 과한 삽질을 하지만, 결국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즐거운 BL라이프를 즐기는 것으로 Happy ending!

point 3 진지충의 Review: Fac, si facis.(만일 그 일을 하고자 한다면, 그 일을 하라!)

만약, 쉽다면 이런 라틴 속담이 있지도 않겠죠. 다이어트를 하려면 식사량을 줄이거나 운동을 해야 하지만, 피트니스센터를 끊거나, 운동복을 사고, 다이어트 보조제를 깊이 연구합니다. 공부를 하려면 책상에 앉아 문자를 눈에 비추고 뇌에 새겨 넣는 작업을 해야 하지만, 왜 책상 청소나 카페인 한 잔이 먼저 생각날까요? 의외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고자 하는 일과 비슷하거나, 하고자 하는 일과 간접적으로 연관있는 일을 하면서,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알고 있어요. 분명히 다르다는걸...

제3자 관찰자 시점에서 이런 모습을 본다면, 참 한심스러울 것 같아요. 바로, 삽질물을 보는 독자1의 시점이죠. 그럼에도, 삽질물을 보는 이유... 세상은 모호하고, 감정은 애매하고, 선택한 되돌릴 수 없으니, 결단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어려운 일이기에, 뻔히 보이는 길도 돌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에 공감하고, 안따까워 하는 거겠죠. 그리하야, 삽질물의 묘미는, 고구마 뻑뻑미와 답답 귀욤 멍충미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들을 위한 권장도서'는 가는 선을 잘 쓰시는 요시다 유코님의 작품답게, 단정하고 깔끔한 작화가 소소한 일상을 배경으로 담백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림 보는 맛이 있죠. 반면, 서로 좋아하는 게 뻔하지만, 공연한 삽질로 시간을 보낸 주인공들이, 재회 후 오해를 풀고 꽁냥꽁냥하며 사는, 단순하고 전형적인 클리셰를 다루고 있어요. 내용은 딱 그 한 줄 요약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수줍음 많은 이마이 자리에 찾아가 아는 척을 했을 때부터, 누가 봐도 코노스는 이마이를 좋아하는 거였지만... 뒤돌아 걷는 코노스가 자신을 돌아 봐주길 바랄 때부터, 누가 봐도 이마이는 코노스를 좋아하는 거였지만... 이마이는 코노스에게 몸을 내주면서도 고백하지 않고, 이마이를 늘 탐하는 코노스는 이마이에게 '남자'랑도 상관없다는 식의 객기를 부립니다. 두 사람이 하고 싶은 건 연애지만, 두 사람이 실제 하는 일은 삽질인 셈이죠.

물론, 두 사람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습니다. 코노스는 불편한 가정사로 여유가 없었고, BLer인 이마이는 연애에 대한 환상이 있었죠. 그래서 코노스는 이마이에게 느끼는 감정에 대해 고민 없이 경솔하게 대답했고, 이상적 연인을 꿈꿨던 이마이의 첫사랑은 시작도 못 해 보고 꺾여버립니다. 코노스는 화를 내는 이마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현실의 비정함을 깨달은 이마이는 BL을 끊고 니초메로 가죠. 하지만, 이마이에게 누구도 코노스와 같은 마음이 되진 않았어요.

 

이마이는 '게이'이라는 정체성과 '연애'에 대한 환상으로 BL을 봤지만, 사실 코노스에겐 그런 것이 없었어요. 그저, 이마이에게 관심이 갔고, 어느새 눈으로 좇고 있었으며, 스킨십 욕구도 나날이, 충실히, 늘어갔죠. 하지만, 남자가 아니라 '이마이'에게만 가지게 되는 이 특별한 감정에 이름을, 삽질공답게 코노스는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리고, 둘은 성인이 돼서 재회를 해요.

코노스가 '네가 좋아.' 한 마디를 못해서 먼 길을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BLer들은 연애 이론만큼은 동서고금,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전천후의 전문가들 아닌가요? 하지만, 이마이는 '나를 좋아해?' 대신에 '나를 왜 잤어?'를 물어봅니다. 선수조차도 임자 앞에서는 서툴러지는 BL계에서, 일편단심 직진공도 그 질문에만큼은 달변가가 의외로 적지만... 어쨌든, 이론과 실전을 모두 경험할 수 있었던 BLer는 상처받습니다. 참 이상하죠. 연애를 하고 싶었던 이마이는, 그토록 상처받았지만 실제로 코노스에게 고백은 한 적은 없었어요.

이렇게 불안 하고, 간절히 원하고, 중요한 일인데도, 왜 회피하거나 미루는 걸까요? 오히려, 일상적인 사건사고들은 번거롭고 사소해도 기계적으로 해결하고 있는데 말이죠. 나는 왜 하고자 하는 일을, '지금' 안하고 있을까? 싫은가? 괴로운가? 끔찍한가? 생각해 보면, 의외로 그 일 자체는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미루고 피하는 동안 겪게 되는 부채감과 초조함이 더 큰 문제죠.

필사의 각오를 다지게 되는 중요한 일일수록, 완전무결한 '상태'를 필요로 한다고 여기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늘 부족하고, 불안한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번지점프대에 오르는 것처럼, 막상 시작하지 못하고 그 근처만 계속 맴돌게 되는 거죠. 그러다 때론 그 일은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꼭 '안 한 것'이 아닌 다른 원인을 들어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이대로도 괜찮아.' '꼭 타인의 기준을 맞춰 살 필요는 없지.' '나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야.' '어차피 이 사회는 뭘 해도 희망이 없어.' '올해는 삼재래'

이마이는 코노스와 섹스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스킨십을 욕구한 적이 없었죠. 다만, 상냥하고 다정한 코노스와의 시간이 좋았고, 자신의 비밀을 유일하게 공유한 사람이 코노스라서 더 좋았어요. 하지만, 코노스는 이마이에게 먼저 키스하고, 먼저 방으로 가자고 하고, 먼저 애무하고, 먼저 섹스하자고 했죠. 이마이는 코노스의 요구를 거부하고 싶지 않았고, 계속 좋은 관계이고 싶었어요. 그건 분명 '연인'을 바란 거였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준비' 되어야 할 게 있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 '염려'가 핵심을 빗나가 제대로 헛다리를 집게 만듭니다. 이마이는 BL를 끊을 필요도, 니쵸메를 갈 이유도 없었어요. 코노스는 이마이와의 관계를 몸뿐인 관계로 정의 한 적도 없고, 이마이가 자신을 좋아하는 줄도 몰랐을 테니까 말이죠.

'Just do it' 그냥 좀 해! 왠지 영어로 해야 더 있어 보이는 까닭은 나이키의 영향일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는 법은 없습니다. 말을 해야 오해가 풀리고, 고백을 해야 연애를 하죠. 하지만, 이마이를 삽질이라 탓하는 마음 한켠이 찜찜한 이유는, 저 역시 지금 리뷰로 도피 중이기 때문일 거예요. 물론, 제가 해야 할 일을 해도 권장하는 도서 속 주인공이 될 순 없겠지만, 배드 엔딩을 피하려면 이제 just do it! 해야겠죠................. ㅜ.ㅜ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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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블랙아웃

출간일: 2019.04.15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해 준 게 없다는 말 하지 마세요."

"......"

"이따위 세상인데도."

"......"

"형은 나를 살게 하니까.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니까."

이윽고 그가 고개를 들었다. 창백한 얼굴이 온통 젖어있었다.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저로 괜찮으냐고 했던 말이 한낱 투정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지유환은 넉넉한 손으로 백성현의 얼굴을 감쌌다.

"형 말대로 안 괜찮아요."

"... 응."

안 괜찮은 현실. 이제껏 그런 현실을 발버둥 치며 살아왔다. 괜찮다고, 괜찮아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그런 게 어떻게 괜찮아질 수 있겠어요."

애써 괜찮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과거의 기억들이 범람하듯 넘쳐흘렀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서 시설을 전전한 일. 누군가 쓰다듬어주지 않아도, 사랑받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밤들. 혼자서 이겨낸 스스로가 씩씩하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던 날들.

"......"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같이 괜찮지 않은 것들 투성이었다. 버려지고 싶지 않았고, 누구라도 저를 쓰다듬어 주길 바랐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혼자서 이겨내고 싶지 않았다. 애초부터 자신은 그다지 씩씩하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안 괜찮아도 돼요. 우리는 이대로도 충분히......"

지유환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행복할 수 있을 거예요."

백성현은 햇빛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눈앞의 사람을 응시했다. 이 조악한 방과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던 그는 어느새 이 방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point 2 줄거리

기: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봄 학기, 말아 먹은 수강 시간표 탓에 백성현은 팔자에도 없는 문예과 교양을 듣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같은 수업을 듣는 청각 장애우 지유환의, 월 8회, 150만 원의 고액 노트테이킹 알바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유환은 9살에 첫 시집을 낸 등단 시인이자, 190cm의 잘 생긴 외모, 천재 화가인 친모의 자살과 그로 인해 얻게 된 장애, 비사교적 태도로, 이미 유명인이었다.

승: 성현과 유환은 밥을 먹고, 미술관을 가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성현은 자신에게 다정한 유환을 짝사랑한다. 하지만, 고아원으로 찾아온 친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유환에게 전화해 듣는 이 없는 고백을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현은 감기로 결석한 유환의 집에 찾아가고, 그때 마침 출판사 전화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유환의 휴대폰이 걸려 온 전화를 자동으로 저장하도록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 그와 동시에 녹음된 '그날' 성현의 고백이 부지불식간 공개된다. 성현은 순간 절망한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유환은 성현을 좋아해왔고 숨긴 적 없다고 대답한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한편,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유환은 보청기마저 잘 적응하지 못하면서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지만, 성현에게는 좋아지고 있다고 거짓말한다. 반면, 성현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고장 난 라디오를 알아채지 못하는 유환을 보며 그의 상태를 짐작한다.

결: 그러던, 성현에게 친부의 부고가 들려오고, 성현은 쓸쓸한 장례식장에서 무기력했던 친부와의 마지막 대면을 떠올리며 후회한다. 성현은 유환을 찾아가 유환의 상태를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무능을 고백한다. 상처 많은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의 상처를 내보인다. 한 층 더 단단해진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한다.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봄이 찾아온다. 25살 성현은, 처음으로 축하받는 생일을 맞이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초봄, 봄비는 차갑다.

'꼴라쥬'를 초봄 제철 소설이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사실 '꼴라쥬'는 봄에 만난 주인공들이 여름에 이루어져서, 가을에 동거를 시작해, 뜨거운 겨울을 보내고, 다시 함께 봄을 맞이하는 이야기예요. 사계절을 모두 배경으로 하는 셈이죠. 그럼에도, '꼴라쥬'를 초봄에 읽어 줘야 돼!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성현의 생일이 4월 8일이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무슨 덕후성 발언인가!!! 혹시, 주인공 발 사이즈, 시험 점수, 최애 브랜드명까지 외우시나요? 물으신다면,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기억 안 난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다만, 성현의 생일은 '꼴라쥬'에서 아주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꼴라쥬는 작은 조각들을 모아 부치는 일종의 미술기법입니다. 그리고, 아시나요? 꼴라쥬는 심리치료에도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스스로 솔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상처를 드러내는 일은 더욱 힘들겠죠. 하지만, 하나하나의 시리고 아픈 편린들이 모아보면, 의외로 '끔찍한 자신'이 아닌 '굳세고 단단해진 인생'이라는 작품이 될 수 있잖아요. 소설 '꼴라쥬'에서 성현의 그런 눈부신 꼴라쥬 작품이, 바로 유환과 함께한 '생일 하루'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토록 눈부시게 빛나는 삶의 한조각.

이런 순간을 위해서 그렇게나 어두웠던 밤들을 견뎌왔음을.

색채와 결이 다른 삶을 살고 있던 당신을 찾아내기 위해서,

내 삶의 많은 조각들을 비워뒀음을. - <꼴라쥬>

이 소설은 서로를 위해 비워둔 조각조각의 빈자리를, 너덜너덜한 삶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꼭 맞는 한 편의 꼴라쥬가 되어 주는 이야기입니다.

'꼴라쥬' 는 우연히 문예과 교양 수업을 듣게 된 수가, 시인인 공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예상가능하다시피 매우 서정적이에요. 두 사람은 시를 주제로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며, 낭만적 시야로 잿빛 세상을 바라봅니다. 유환과 성현의 가정사, 떠나 버린 부모와, 남겨진 상흔,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은 그대로지만, 그들은 만났고 변했죠. 유환의 세상은 더 이상 냉소적이지 않고, 사랑니와 비를 핑계로 소리 죽여 서럽게 울던 성현은 서툴게나마 섭섭함을 토로하고 소리 내서 울 수 있게 돼요.

저는 이런 유환과 성현의 변화가 '봄비'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 어느 리뷰에서도 말한 적 있지만, 저에게 봄은 낭만의 계절이 아니라 '증명'의 계절입니다. 그 전 해의 '성적표'를 받고, 무엇인가 새로 시작해야 하는 압박의 시기지요. 어느 때는 박수를, 어느 때는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모두 긴장과 불안이 따릅니다. 학생 때는 시험을, 사회에 나와서는 때마다의 과업을 이유로, 봄마다 안도와 회한의 한숨을 많이 쉬었었죠.

어쨌든, 그래서 저는 멍~ 놓고 볼 정도 봄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저들이 모두 '금메달리스트'이기 때문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많은 씨앗이, 봉우리가, 혹은 묘목이 있었을 테지요. 그들 중에 씨앗 표피를 뚫고, 겹싼 잎사귀를 세차게 밀치고, 찬 땅에 굳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틔운 승자만이 단상에 올라 찬사 받는 무대가 봄 같거든요. 그렇다면, '봄비'는 그들에게 마지막 스퍼트를 내야 하는, 결승선 직전에 가장 가혹한 시련일 거예요.

그때 어쩌면 씨앗은 흙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몰라요. 어차피 겨우내 어둠 속에서 살았는데, 굳이 차가운 비를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지상으로 가고 싶지 않아! 나는 그냥 이대로 계속, 축축하지만 안전한 흙 속에 있고 싶어!라고 말이에요. 그렇게 살아왔다는 건, 살아 본 적 없는 희망보다 강한 관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변화란 늘 쉽지 않은데, 가장 삭막한 계절에서 가장 화려한 계절로의 포문을 여는 '봄비'가 호락호락 할 리가 없겠죠.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그리는 미술 시간이 곤란했던 성현은, 스스로를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 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4살까지 산타클로스를 믿었던 순수함은, 모두가 아는 진실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겪어야만 했던 고독으로 이어집니다. 성현을 찾아온 생부는 반성을 하며 살았노라 용서를 빌지만, 성현은 그 중년의 남성에게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어렸던 어느 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길 바랐었다고... 긴 시간 참고 눌러 온 외로움에 대해 어설픈 투정만 어설프게 남겨요. 그리고, 얼마 뒤 생부의 부고를 듣습니다.

24번이나 돌아왔던 생일마다 축하받고 싶었지만, 축하받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던 외로운 아이는, 그 외로움이 굳어져 숨구멍을 막아도 벗어나는 법을 모릅니다. 그래서 생부에게 당신의 칭찬이, 애정이 절실했었다고 원망도 제대로 못하고, 용서할 수 있는 기회조차 상실해 버리죠. 그래서, 성현은 고장 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유환을 보며 덜컥 겁이 납니다. 분수에 맞지 않은 사랑을 탐내다, 유환을 망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죠. 숨겨 곪은 상처는 아프지만, 그건 익숙한 고통이니까요. 그래서, 유환의 상태를 모른척하며 불안해합니다. 그리고, 생부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성현의 둑은 터져버립니다.

성현과 유환은 괜찮지 않습니다. 괜찮아질리 없는 상황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괜찮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은 '괜찮아질리 없는 삶을 이어가는 것'과는 다른 어려움이었어요. 유환이 성현을 믿지만 적응하지 못한 보청기에 대해 고백하지 못한 것처럼, 성현이 유환을 사랑하지만 생부에 관해 언급 한 적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건 두 사람에게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고, 해 본 적 없는 힘든일이지만, 진실로 안온한 땅에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난관이었죠. 마치 봄비처럼요.

봄비는 우아하거나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차갑고 다급하죠. 그 부지런한 알람은 '타닥타닥' 거칠고 지면을 난타하는 터프함을 보이며, 많은 생명들에게 '마침내 곧 너희들의 시절이 도래할 것이다!'라며 준비 사인을 보내는지도요. 그래서인지, 저는 봄꽃을 보면 대견스럽습니다. 예쁘게 펴줘서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올해도 펴줘서 말이에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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