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이클립스

출간일: 2019.09.02

분량: 본편 1권 + 외전 2권

 

 

 

 

 

 

 

 

point 1 책갈피

우리라니. 네겐 처음인 단어다. 내 첫사랑이, 첫 남자가, 또 처음인 것을 주려한다.

"네가 있어야 의미가 있어."

마치 눈앞에서 영화 필름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주인공은 결말만을 앞두고 있다. 내결정이 엔딩을 장식하겠지. 아니, 영화는 끝이 있지만 에버 애프터는 이제 시작이라는 걸 안다. 진짜 엔딩이 어떻게 될지는, 신조차 모를 것이다.

"그럼....."

내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얼굴이 너무 초조해 보여 안쓰러웠다. 그런 표정을 짓게 하는 존재가 나란 사람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이 과분한 선물을 받아도 될까?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

아니, 솔찍해지자. 뻔뻔하고 욕심 많다고 손가락질해도 모른척, 받고 싶다. 가지고 싶다.

"그럼,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가."

당신이 날 버려도 그 푸른색을 보며 떠올릴 수 있게. 이 버석버석한 황무지와 사막을 모두 소금물로 채워 버릴 수 있을 만큼 넓은 바다로.

point 2 줄거리

기: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도로, 그 한 중간에 오래된 휴게소가 있다. 레미는 난봉꾼 아버지의 소유인 그 낡은 가게에서 일하고, 아버지는 때때로 들러 레미가 번 돈을 들고 놀러 나갔다. 아버지는 여러 여자와 살았지만, 그 중 레미를 학교에 보내주고 다정하게 대해 준 여자는 도라뿐이었다. 하지만, 도라는 어느날 휴게소를 자주 오던 트레커와 함께 떠났다.

승: 레미는 어느날 자신의 이상형인 카일이 휴게소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한 눈에 반한다. 그를 잡기 위해 커피를 무료로 제공해 아버지에게 욕을 먹지만, 한달에 두번 오는 그를 기다리는 것이 레미의 유일한 행복이었다. 레미는 카일과 더 깊은 관계가 되고 싶어 매춘을 제안하고, 엉성하고 서투른 레미의 제안에 카일은 응한다. 그 후 카일은 레미를 '첼시'라 부르며, 휴게소에 올 때마다 두둑한 화대를 내고 레미를 안는다.

전: 어느날 우연히 CCTV를 보게 된 아버지는 남자와 섹스를 하는 레미를 보고 분노해 폭력을 휘두른다. 그리고, 그때 카일이 나타나 레미를 구하고 아버지를 총으로 쏘려한다. 아버지는 도망치고 레미는 카일을 대피시키려 하지만, 카일은 오히려 레미에게 함께 휴게소를 떠나자고 한다. 카일은 레미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며,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했다. 레미는 카일과 함께 그 오래된 휴게소를 떠난다.

결: 두 사람은 해변가에 살며, 레미는 카페에서 카일은 식당에서 일한다. 그러던 중 카일의 가족들이 두 사람을 찾아온다. 카일은 자수성가하여 성공한 레스토랑 오너의 아들로 기대를 받았고, 그런 카일을 동생 멜빈은 시기했다. 결국 멜빈은 카일이 아끼던 개 첼시를 죽이고, 그 사건을 계기로 카일은 집을 나왔던 것이다. 가족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카일은 새로운 가족인 레미와 사는 것을 선택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문장이 좋아서 아쉬움이 더 큰...

장르소설과 문학소설은 문장의 결이 다릅니다. 장르소설 안 에서도 BL, 로맨스, 판타지 각각 문장의 결이 또 달라요. 콕찝어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 메세지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가장 '그 소설'다운 문체가 있습니다. 그러면에서 bise님 글에는 참 좋은 문장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문학, 로맨스, BL의 교집합 혹은 경계선 어디 즈음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색하지 않고 특색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붕우유신' 같은 작품은 김유정 소설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현대 문학 향기가 나고, 그 외 작품들도 단어 선택이나 문풍이 그랬습니다. 반면에 스토리는 좀 약한 편이죠.

그래서, 저에게 bise님의 소설은, 신선하고 잘 쓰여진 문장, 도전적 소재에 비해 힘 없는 전개, 임팩트 있는 도입부와 아쉬운 결말, 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비유하자면, 일러스트 수준의 고퀄리티 작화에 다소 미진한 스토리의 만화를 보는 것 같은... 내용이 뻔하거나 평범, 무난해서라기보다는 전개 지구력이나 설정 내구도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 자체를 읽는 맛이 있어서 챙겨보는 편입니다.

'트럭 스탑'은 광활한 벌판 한 중간에 '갇힌' 레미의 이야기입니다. 레미가 있는 오래된 휴게소 사방에는 레미의 발을 묶는 어떠한 벽도 없고, 그곳을 들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유로운 영혼들이죠. 레미의 아버지 역시 평소 레미를 방치하다가 돈이 필요할때만 휴게소로 돌아와요. 그렇기 때문에 레미가 시트콤에서나 만담을 볼 수 있는, 혼자만의 외롭고 작은 세계에 갇힌다는 설정은 흥미로워 보입니다. 맥주 한 잔을 위해 찾아 온 트레커 오토바이 뒷자리만 빌려도 언제든 떠날 수 있었을 테니까요.

레미를 가둔 건, '도라'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도라는 무서운 아버지와 싸워 레미를 학교에 보내줬고, 레미가 따돌림을 받자 학교로 쳐들어와 아이들과 아이들의 드센 어머니를 눌러버리죠. 하지만, 그런 도라조차도 레미의 가족만은 되어 주지 않았습니다. 도라와 트레커 남자의 거친 정사를 훔쳐 보내 된 날, 레미는 도라에게 그 남자를 사랑하냐고 묻지만 도라는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남자와 홀연히 휴게소를 떠나요.

나를 좋아했지만 가족이 되어 주지 않았던 도라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 남자와 가족이 되어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레미는 자신이 가족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그 도라마저 떠나 버린 자신 곁에 머물로 주지 않을거라고 믿게 되었는지도요. 레미는 아버지가 싫었고,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도 아니지만, 휴게소 밖에서의 삶은 꿈꿀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유일한 자리는, 이 낡은 가게 밖에 없다고 체념했을거예요.

그런 레미에게 카일이 나타납니다. 레미는 영혼까지 끌어와 모든 용기를 다해 카일을 꼬십니다. 좋아한다고 말했다면 기나긴 삽질은 시작하지 않았겠지만, 도라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레미는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사람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죠. 레미는 카일이 자신을 떠나지 않도록, 매춘을 선택합니다. 카일 역시 레미에게 한 눈에 반하지만, 몸을 팔겠다고 말하는 레미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서툰 정사를 나누며, 카일은 레미에게 못된 포주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카일은 레미가 포주에게 모진일을 당하지 않도록 많은 돈을 주고, 그 돈을 벌기 위해 휴게소를 드물게 찾으며 일을 합니다. 레미는 그런 카일을 기다리며 불안해하고, 카일이 준 돈은 아버지에게 고스란히 뜯겨버리죠.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지 않고, 오로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만을 원하며, 8개월간 꾸준히 삽질해요.

그 뒤 아버지가 두 사람의 사이를 알고, 카일이 레미를 구해내고, 카일이 레미를 부르던 '첼시'라는 이름의 주인을 알게 되고, 카일이 트럭운전수가 아니라 반듯한 레스토랑 오너의 아들로서 모범적이게 살아왔던 과거나, 그의 가족들이 카일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 놓고 싶어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카일의 레미에 대한 굳은 사랑으로 해결 됩니다. 좀 힘 빠지는 전개였어요.

황무지 휴게소를 벗어 날 수 없었던 사람과, 그 사람을 위해 다시 휴게소를 떠나야 하는 사람, 이름 밖에 몰라도 멈출 수 없었던 아슬아슬한 연정이 아스라이 묘사된 초반에 비해서요. 카일 가족의 등장은 레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지만, 이 위기도 허무하게 마무리 됩니다. 마지막에 레시피를 두고 도망치는 카일 아버지의 뒷모습은 귀엽기까지 하죠. 그냥, 레미가 행복해져서 다행이구나... 나의 수어메로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한달까요.

정말 한 끗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글 무기'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더 기대하고 그래서 섭섭한 마음도 드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하게 등장해서 짧게 끝나는 패턴보다, 흥미로운 시놉시스보다, 탄탄한 골자로 무장한 진득한 장편이 보고 싶습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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