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BLYNUE블리뉴

출간일: 2019.08.08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사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그대로였다.

임신으로 살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높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으니까. 다만 상처받아 망가진 역우를 못 본 척 할 수 없었다. 분명 지금도 자신을 임신시켰다는 죄의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할 텐데. 그 죄의식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게 도와주어야 했다. 아마 임신한 저를 곁에서 보살펴주게 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지 않을까 싶었다. 전처럼 살도 찌우고 회복도 하며 꿋꿋하게 살아있는 것이 서역우를 살리는 길이었다.

요리하던 역우가 갑자기 민에게 다가갔다. 침대에 걸터앉은 민 앞에 쪼그려 앉아 불안한 시선으로 마주 보왔다.

"...진짜야? 그냥 한 말 아니야?"

"진짜야. 안 죽어."

"진짜? 진짜로?"

"응. 서역우랑 같이 살거라니까."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

역우는 아직도 믿기 힘든지 불안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민의 마음을 아프게 짓눌렀다. 역우가 민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민은 역우의 불안함이 사라질 때까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침 식사는 뒤로 미뤄두고 두 사람은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생존을 약속하듯,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 살아 있음을 한껏 느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꼭 살아야 했다.

point 2 줄거리

기: 바이러스 감염으로 좀비화가 진행된 지 반년, 항체를 지닌 극소수의 사람만 살아남고 지구는 폐허가 된다. 서역우는 3명의 생존자와 함께 모여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총을 든 위민이 고기를 훔치러 오고, 무장한 민의 패거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나머지 사람들은 민을 죽이려한다. 그 날, 갑작기 러트가 터진 알파 역우와 죽기 전에 섹스가 하고 싶은 오메가 민은 뜨밤을 보낸다. 역우는 민을 데리고 무리를 떠나고, 살림꾼 농부 역우와 솔찍 발랄한 공돌이 민은 함께 지내며 서로 좋아하게 된다.

승: 어느날 민의 핸드폰을 가지러 역우는 옛 무리가 있었던 장소로 간다. 그리고, 총에 맞아 전멸한 사람들, 사라진 민의 옷과 핸드폰으로 민의 무리가 일으킨 참변이라고 추측한다. 역우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민을 죽였어야했다며 악담을 한다. 민은 그런 역우의 모습을 보고, 임신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못한채 홀로 떠난다. 역우는 후회하며 민을 찾아해메고, 두 달뒤 딸기 밭에 비쩍 말라 죽어가는 민을 발견한다. 임신한 민은 죽여달라고 부탁하고, 역우는 일주일의 시간을 달라고 한다.

전: 민은 임신 후 온갖 통증에 시달렸고, 의사도 의료시설도 없는 상황에서 죽을거라고 확신한다. 역우는 약속대로 민을 죽여야 한다는 괴로움에 자해를 시작하고, 그런 역우를 보며 민은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잡는다. 역우는 민과 아이를 위해, 이동생활을 포기하고 터를 잡는다. 그리고 물건을 구하러 간 길에서 생존자를 줍는다. 그리고, 민과 함께 다녔던 박대위가 그들의 터전으로 찾아온다. 박대위는 민의 찢어진 옷과 핸드폰, 총을 보고 역우 무리가 민을 강간 후 죽였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죽였다.

결: 민은 이 사실을 알면 역우가 자신을 버릴 거라는 두려움에, 박대위와의 관계를 숨긴다. 한편, 생존자가 의사라는 것을 알게 된 역우와 민은, 출산을 도와달라고 빈다. 박대위, 의사 유재, 민과 역우는 함께 산다. 역우에게 비밀이 있는 민은 역우를 피하고, 그 모습을 보고 오해한 역우는 민이 의사인 유재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커져가는 오해로 두사람은 힘든 시간을 보낸다. 역우는 과다복용한 수면제로 몽유병에 걸리고, 그를 본 민은 사실을 고백한다. 역우와 민은 오해를 풀고, 무사히 '베리'를 낳고 결혼도 하고 돌잔치도 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

대학교 때 과외를 많이 했습니다. 단체로도 하고, 개인으로도 하고, 돈받고도 하고, 봉사로도 하고... 깨달음 하나는, '모든 학생들을 공부를 하기 싫어한다.'는 겁니다. 중고생은 "대학가야지" 판타지적 캠퍼스 생활을 읊으며 달래는데, 초등학생들은 쉽지 않아요. 설득보다는 그냥 앉혀 놓는게 쉽지 않죠. 그래서 "훌륭한 사람 되려면 공부해야지" 그냥 많이 들었던 말로 달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가 "훌륭한 사람은 왜 되야 되는데요?"라고 묻더라고요. 공부하기 싫어 부리는 투정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말문이 막혔습니다.

훌륭한 사람... 학교 다닐때는 선생님 말 잘 듣고, 집에서는 부모님 말 잘 듣고, 회사가서는 상사 말 잘 듣는 사람... 적재적소에 맞는 커리어 밟아 안정적이게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사람... 저에게 '훌륭한 사람'을 말했던 이들이 바랐던 모습이 아닐까요. 제가 '말 좀 듣고 공부 좀 해'란 의미로 그 말을 썼듯이 말이죠. 그런데, 그런 훌륭한 사람이 '사회'도 없고 '남'도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아포칼립스물을 볼 때마다 그 질문이 생각이 납니다.

폐허가 된 세계에서 최고의 직업은 농부인 것 같아요. '마션'에서도 감자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요. 어차피 평생 일해도 살 수 없는 '방공호'보다, 재난에 대비해서 주말 농장이라도 다녀야 하나 싶습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멸망 후 살아 남은 생존자들의 일상물입니다. 오글거리는 대사가 일상어 수준인 깨소금 커플 민과 역우가 있어, 배경이 폐허된 지구라는 걸 잊을 때가 있습니다. 농부인 역우는 자급자족이 가능 할 뿐더러, 금손을 가진 살림꾼이죠. 하나를 해달라고 하면, 둘을 만들어 주는 요리사에다, 재료까지 스스로 제배하니 꿀 일꾼입니다. 게다가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 유재와 멧돼지도 쉽게 조달하는 공격형 노동력 박대위, 기계라면 뭐든 뚝딱 고치는 공돌이 위민까지... 완벽한 파티원이예요.

어찌 보면 지금보다는 살기 편한 세상이기도 합니다. 백화점, 마트, 병원, 서점은 모두 '나의 것'이죠. 필요한 물건은 가서 그냥 가져오면 되고, 경쟁도 없으니 불안함도 없습니다. 유재는 병원에서 초음파, 인큐베이터 다 가져 와서 개인 병실을 만들고, 역우는 비어 있는 펜션에서 살고, 민은 백화점에서 시계를 집어서 바로 역우에게 선물하죠. 기름 걱정도 없습니다. 주유소에 기름은 가득하니 그냥 쓰면 되죠. 무엇인가를 사기 위해서 일생 돈을 벌어야 하는 개미로서는, 부럽기까지해요.

하지만, 혼자 일 때, 죽음을 생각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막연히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선택하죠. 저는 좀 의외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폐허 이전에도 왜 살아야 하는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건 마찬가지니까요. 이 도시에도 고독사가 있고, 핸드폰에 연락 '해야 하는' 사람만 있고 연락 '하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군중 속 '혼자'와 폐허 속 '혼자'는 다른걸까요? 역시, 사회나 집단 속이 아니면 '의미'는 없는 걸까요? 그래서 유재와 민도 죽으려고 했던 걸까요?

민은 임신을 하고 제대로 된 관리 없이 홀로 출산의 시간을 기다리며 폐허 된 도시를 돌아다닙니다. 입덧으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다리는 끊어질 것 처럼 아팠죠. 나날이 말라가고 약해지는 신체를 보면서 아이 역시 태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힘이 없어 스스로 죽지 못하고, 역우에게 그 힘든일을 부탁해요. 역우를 만나 후, 역우는 매일 좋은 식사를 챙겨 주고 다리를 주물러 줍니다. 민의 다친 마음도 위로해주고, 수 없이 사랑을 고백하죠. 하지만, 민은 죽겠다는 선택을 번복하지 않습니다. 민이 살아야겠다고 의지를 다진건, 괴로움에 울며 자해하는 역우를 봤기 때문이었어요.

길거리에 쓰려져 죽어가는 유재를 발견한 민은, 홀로 펜션을 가꾸고 농사를 지으며 자신을 보살피는 역우를 위해 새로운 노동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위험은 높지만, 이 거지가 역우를 돕는 노동력이 되어 줄거라고 생각하고, 데려와 살립니다. 하지만, 살아난 거지는 민을 원색적으로 조롱하면서 죽여달라고 합니다. 역우가 매일 가져다 주는 죽도 물도 마시지 않은채 아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죠. 역우가 유재의 직업을 알고, 간절하게 빌때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민의 배에 올려진 손에서 꿀렁이는 태동을 느낀 이후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왜 살아야 하는지는 어렵습니다. 넘쳐나는 자기개발서에서 내놓은 대답이 많은 것은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 없기 때문일거예요.

하지만, 죽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그보다 쉬운 것 같습니다.

민은 자신이 죽은 후 따라 죽을 것 같은 역우를 살려야 했고, 유재는 모든 것이 소멸로 향하는 지구에서 태어나려하는 생명을 저버릴 수 없었어요. 그것이 두 사람에게 죽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되어 줍니다. 그리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에, 조건을 만족하면 자동 지급 되는 포인트 처럼 '희망'이 생기죠. 민에게는 역우와의 미래가, 유재에게는 '베리'의 탄생이요.

파티의 결성과 함께 네 사람은 '베리'의 출산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돌진 합니다. 모두, 자신의 장기를 살려, 바람 잘 날 없는 바쁘고 치열한 생활을 시작하죠. 갈등도 있고 해소도 있고, 웃음도 있고 울음도 있는 생활 말이예요. 그 속에, 베리가 과연 태어 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없습니다. 이들이 모두 죽고 난 뒤 베리가 혼자 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베리의 탄생이 축복 받지 못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거죠.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유'나 '의미', '가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 '당위'가 되는 것은, 그 삶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 내가 죽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건 살아봐야 아는 거죠. 결국, 계속 살아야만 합니다.

아! 글을 쓰면서 문득 과거에 받았던 질문을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았을까? 고민을 해봤는데, 역시 어렵네요. 그냥 '훌륭한 사람'보다는 까까로 꼬시는게 나았을 것 같아요.

'그들이 사는 세상'의 연작 작품 '우리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유재와 박대위의 러브를 볼 수 있습니다. 민과 역우의 사랑이 풋풋한 첫사랑이었다면, 유재와 박대위는 어른(?)들의 사랑을 하죠. 달달을 좋아하시면 '그들이 사는 세상'이 좀 더 재밌게 느껴질 듯 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이 너무 소꿉장난 같다고 느낀다면 다크초콜렛처럼 쌉싸름한 '우리들이 사는 세상'을 추천합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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