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B&M

출간일: 2019.05.08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속마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 것도 모르고 은형은 말갛게 태범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상체를 완전히 기댄 탓에 높은 코끝이 턱 아래에 닿았다. 태범의 턱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짧은 숨을 내쉰 강태범이 얇은 허리를 감싸고 천천히 밀었다. 덕분에 은형의 발뒤꿈치는 바닥에 닿았지만, 뒤로 물러나며 태범의 목을 붙잡는 바람에 이제는 코끝이 맞닿았다. 정은형은 눈을 깜빡거리며 강태범의 눈동자를 보았다. 지금 막 생각난 말이 입 밖으로 툭 던져졌다.

"진짜 나를 좋아하면 어떡하지?"

"말했잖아."

"생각 안 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아래로 내리 깔린 태범의 눈동자가 은형의 얼굴을 바삐 담았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에 낮은 목소리가 은형의 귓속을 파고 들었다.

"좋아해 줘."

"......"

"나 좀 좋아해 줘, 은형아."

point 2 줄거리

기: 잘 생기고, 공부도 운동도 잘하는 인싸 강태범과 이불 밖은 위험한 앗싸 정은형은 베프다. 같은 대학, 같은 과, 같은 집, 심지어 듣는 수업도 모두 같을뿐만 아니라, 어디든 붙어 다닌다. 하지만, 이 들의 속 사정은 좀 다르다. 강태범에게 정은형은 공부시켜 대학까지 합격시킨 짝사랑 상대였고, 정은형에게 강태범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자신을 방셔틀, 부하로 부리다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부하 같은 친구로 승격시켜 준 무서운 친구였다.

승: 사실, 일찍이 자신의 성향을 깨달은 은형에게 태범은 첫사랑이었다. 반면, 태범은 은형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어느날 태범은 장난을 치는 은형을 위압적으로 대하고, 은형은 갑자기 변한 태범을 무서워하며 그만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은형과 계속 같이 있고 싶었던 태범은, 은형과 같은 대학을 가기 위해 은형을 공부시키고, 체력을 보충시키기 위해 아침 운동과 먹을 것을 챙겨 준다. 물론, 은형에게는 모두 태범의 괴롭힘 일 뿐이었다.

전: 은형은 태범 몰래 입대를 하고, 제대 후 태범의 노력(?)으로 태범과 동거하게 된다. 은형은 본격적인 게이 라이프를 즐기기 위해 게이바를 가고, 그곳에서 대학동기인 박원진을 만난다. 한편, 은형이 게이인 줄 모르는 태범은 원진과 게이바를 다니는 은형이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오해를 한다. 그 사이 원진은 은형을 꼬시지만, 은형은 뒤늦게 난 춤바람에 본 목적(?)을 잊는다. 태범의 마음 고생은 점점 심해지던 어느날, 은형은 게이라는 사실을 들킨다.

결: 태범은 바로 은형에게 고백하지만, 은형은 노멀인 태범이 게이인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하다가, 태범의 신체적 변화(?)를 목격하나서야 고백의 진실성을 믿어준다. 하지만, 첫사랑 태범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경험한 적 있던 은형은, 태범을 선뜻 받아드리지 못한다. 태범은 묵묵히 직진하고, 술에 취한 은형은 고등학교 시절 태범에게 받았던 상처의 기억들을 토로한다. 태범은 은형에게 용서를 구하고, 오해를 푼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그 날, 그 한마디

'오래된 오해'는 정말 제목에 충실한 소설입니다. 주제이자, 소재이자, 줄거리이자, 심지어 메세지까지 '오해'로 함축하죠. 은형과 태범의 시점이 무차별적으로 섞여 있어, 두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오해들을 병렬적으로 보여줍니다. '오해인 것 같은데...' 추측 할 수 있는 여지를 조금도 남겨 두지 않아요. 그래서, 고조감과 긴장감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장점은 삽질물 치고는 목막힘이 적고, 달달함이 많다는 거예요. 은형의 시점에서 꼼지락 꼼지락 거리며 태범을 피해다니게 되는 사건이, 바로 태범의 시점에서는 눈물겨운 희생의 스토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단지, 챕터나 섹터가 별도로 나누어 져 있지 않은채 시점이 섞여 있기 때문에, 다소 번잡해 보일 수는 있습니다. 게다가, 큰 줄기는 '오해로 삽질해 온 두 사람이 오해를 풀고 서로에 대한 오랜 사랑을 확인 하는 것'이지만, 에피소드로 전개 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낱알처럼 흩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오래된 오해'의 감상 포인트는, 그냥 이 삽질 자체를 귀엽다! 깜찍하다! 풋풋하다! 즐기셔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폼리스'에 희운이가 술 먹고 하는 요망짓만 모아 놓으면 '정은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희운이가 처한 극한 상황이나 흥미진진한 사건 전개가 없다보니, 아무래도 매력은 좀 떨어지는 감이 있었습니다. 단짠과 단단의 차이랄까요.

태범과 은형의 관계에서, 태범은 늘 손해만 봅니다. 하지만, 태범의 희생과 배려에도, 은형은 늘 괴롭힘 당한다고 생각하죠. 그 갈림길의 시초는 고등학교 교실, 사소한 장난으로 폭팔한 첫사랑의 혼란이었어요. 단 하루, 한 순간, 태범이 도망쳐버린, 은형이 태범을 무서워하기 시작한 날 말이예요.

태범의 시련은 그 날 하루 은형의 손목을 세게 쥐고, 밀친 죄의 대가로는 가혹했을지도 모릅니다. 태범은 은형을 공부시키기 위해 함께 과외를 하고, 다닐 필요 없는 과학 학원도 다녔죠. 이미 취미인 운동으로 넘치는 체력을 가지고 있지만, 공부 할 체력도 없는 은형을 위해 매일 새벽 일어나 은형을 깨워 운동을 시킵니다. 그리하여 8등급 은형을 기어이 명문대에 합격시키고만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런 태범이 은형을 챙겨 먹이고, 어지르기 바쁜 은형의 뒷 정리를 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태범이 좀 더 솔찍했더라면, 태범의 속 앓이는 좀 더 일찍 끝낼 수 있었겠지만, 결국은 그 하루에 대한 대가를 치루지 않을 방법은 없었을 거예요. 은형이 게이이고 심지어 태범이 은형의 첫사랑이라는 것 역시 밝혀 진 후에도, 태범은 은형과 사귀지 못합니다. 은형은 늘 다정하게 웃어주던 태범이 폭력을 휘두를 것 처럼 무시무시한 기운으로 자신을 위협했던 순간을 기억해요. 그리고 은형은 다시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어요. 혼자 좋아했던 그 시절보다, 서로 좋아하는 지금, 돌연 사나워지는 태범의 변화가 더 큰 상처로 남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태범은 자신이 그 날 도망치지 않았다면, 5년의 기나긴 오해는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후회의 눈물을 흘리죠. 다행히, 은형은 태범의 셔틀로 살았던 불우한 학창시절의 기억을 가볍게 드러냈고, 태범은 켜켜이 쌓인 오해를 한 장씩 풀고 용서를 구합니다.

그 날 이후 갈래길에 나뉘어 진 채 점점 멀어지던 두 사람은, 다시 하나의 기점에서 새롭게 출발합니다. 연인이 되어서요.

가끔 천청벽력 같은 사건을 맞닥드릴 때가 있습니다. 부지불식 간에 들이 닥쳐 무슨 사태인지 파악하기 전에, 나의 멘탈을 탈탈 털고 폭풍처럼 지나가는... 정신이 들면 떨리는 손으로 소주 한 잔을 쥐고 있죠. 물론, 기가 빨린 그 날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원인인지 따져보면, 의외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시초가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뭔가 삐그덕거리는 사소한 불협화음, 그 이후 같은 사건을 겪어도 해석이 다르고, 그래서 다른 감정이 쌓이게 되죠. 그 발전 과정은 예측 할 수 없습니다. 태범이 본인의 배려와 인내를 은형이 괴롭힘으로 여기고 고통 받았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알 수 있는 건, 그 '시초'뿐입니다. 살짝 불편하고, 달그닥 거리는 마음을 무시했던 그 날, 그 한마디가 긴 시간이 지나면 불어난 눈덩이가 일으키는 산사태처럼 재난이 되곤 합니다. 춤바람 난 은형을 기다렸던, 태범에게는 눈에 핏줄서도록 지옥같았던 밤처럼요.

외전에서 태범은 그 날로 돌아가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태범은 바로 은형에게 사과하고 고백하죠. 물론, 꿈에서 깨어난 태범 옆에도, 은형은 사부작거리며 한껏 귀여움을 난발하고 있습니다. 같은 결말이지만, 그래도 꿈 밖에 33살 태범은 꿈 속 17살 태범에게 머리를 쥐어 박으며 이렇게 소리치고 싶지 않았을까요. "너는 하루 용기를 못 낸 값으로 5년의 행복을 놓쳤다! 멍청아!"라고요. 멍충수와 더불어 멍충공 키워드도 추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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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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