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블리스

출간일: 2020.10.01

분량: 본편 4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이리 오렴."

헤리엇은 작은 고양이에게 손짓하며 다가 오라고 속삭였다.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느라 몸을 둥글게 말고 계속해서 속삭였다.

작은 아이는 감각이 뛰어난 모양인지 본인의 상태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경계하면서도 헤리엇에게 다가왔다. 물그림자 속에 집어삼켜질 것처럼 어린 날의 엔저가 조금씩.

어린아이는 조금 소심해 보였다. 하지만 아주 아름답고 빛나는 루비를 가지고 있었다. 붉은색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걸 본 헤리엇은 눈을 휘면서 활짝 웃었다.

"나는 궁금했어.

그러니까,

나를 사랑해봐."

"전부 선배가 만든 거죠??"

엔저 맥과이어는 손을 뻗어 헤리엇의 하얀 얼굴을 잡고 격정적이고 난폭하게 입술을 부딪쳤다. 얼굴에 피가 여기저기 묻어났다. 목구멍으로 엔저의 피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럼에도 엔저는 너무나도 황홀하다는 듯 어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잡았다... 헤리엇. 나의 신."

헤리엇은 사랑이 궁금했다.

point 2 줄거리

: 땅에는 인간들이, 바다에는 인어들이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인간들의 대표 단테 막심의 아들 알시타가 타고 있는 거대 무역선이 동쪽바다 인어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단테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인어들은 잔혹하게 그 배를 침몰시킨다. 많은 인간들이 죽고, 분노한 단테 막심과 인간들은 인어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군병기로 출전한 헤리엇은 동쪽 바다의 인어들로부터 큰 승리를 얻어내지만, 한 쪽 꼬리를 크게 다치고 조절능력을 잃게 되어, 군에서 쫒겨나 변방 시골로 좌천된다.

승: 초능력자들을 모아 놓은 군부 아카데미, 그 시절부터 헤리엇을 사모했던 엔저는 인어들과의 전쟁에서 단연 두각을 들어내는 전쟁 영웅이었다. 그리고, 대통령 단테 막심은 그 공로를 등에 업고 20년간 장기 집권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단테는 잔인한 인체실험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성공한 군병기 헤리엇을 자신의 초능력인 정신지배로 세뇌한 뒤, 인질 삼아 엔저를 이용했다. 엔저는 헤리엇에겐 온갖 변태짓을 다 하면서도, 한편으로 단테를 칠 기회를 벼른다.

: 그러던 어느날 헤리엇이 있는 시골로 인어들의 대표 앤이 찾아와 알시타의 유언을 전해 준다. 그리고, 길고 험난한 인간과 인어와의 전쟁이 모두 단테의 음모와 계략이었고, 인어들의 무역선 침몰은 조작이며, 알시타 역시 단테에 의해 죽은 것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리고 알시타를 사랑했고, 알시타와 함께 헤리엇을 입양했던 제이든의 도움으로, 헤리엇과 엔저는 엔저의 보좌관인 안쉘을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한다.

결: 우여곡절 끝에, 단테의 악행을 밝히고 선거를 통해 안쉘을 대통령이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이든이 죽고, 단테가 인어와 낳은 아이가 알시타이며, 알시타의 친아들이 헤리엇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 단테 막심은 자신을 버린 인어를 원망하며 인어를 말살시키고자, 자신의 손자인 줄도 모르고 헤리엇에게 끔찍한 실험을 했던 것이었다. 안쉘은 고군분투하며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엔저와 헤리엇은 늘 그렇듯 둘만의 세계에서 행복하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무엇을 느끼고 있습니까?

'루비를 삼킨 인어'를 연재로 보았던 계절은 여름이었습니다.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저는 제가 더위를 먹어서, 뭘 잘 못 본 줄 알았습니다. 그간, 꾀나 많은 변태물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제 자만이 지나쳤습니다. 원래 일탈을 모르는 모범생은 술만 마시면 '과음'이라고 하지만, 물과 술을 구분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음주란 생활인 것을요. '과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재하죠. 그렇습니다. 진짜 변태들 사이에서는 '변태적' 행위 자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잘 모으고, 잘 빨고, 잘 듣고, 잘 보여 주는 것이 '변태적'이라 생각하셨다면, 아마 그 사상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공중 댄스씬에 버금가는 공중 정사씬과 더불어, 삐짐을 부르는 정액과 가장 로맨틱한 도청기를 감상 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것은 '이 곳'에서 만큼은 참신도 높은 부류가 아님을 다시 한번 꼭! 말씀 드리고 싶네요.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병맛 코믹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단행본을 물론, 외전까지 나온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물론, 진짜 현실은 아니고 '그 곳'에서의 현실을 다룬 다큐죠. 단순히 비정상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정상적 일상을 누렸어야 하는 대다수의 사람과 인어들의 '현실'이 '단테 막심'일가에 의해 어떻게 통제 되었는지 보여주는 기록물처럼 느껴졌습니다.

단테 막심은 '정신 지배' 초능력과 대중들을 선동 할 수 있는 화술, 대통령이라는 지위와 정치력을 사용해서 인어를 몰살 시킬 계획을 세우고, 은밀하고 주도면밀하게 실행하죠. 그리고, 단테 막심의 아들 알시타는 선의와 우정으로 그런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며 인어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다 죽고, 그런 전말을 알지 못하는 단테 막심의 손자 헤리엇이 그 꼬인 실타레를 끊어내는 이야기죠. 삼대의 걸친 사건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루비를 삼킨 인어'에 '변태'적 인물과 '심각'한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엔저는 헤리엇에 대해 절대적 사랑을 느낍니다. 그리고,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헤리엇은 엔저만은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헤리엇은 알시타의 친자이지만, 헤어져 고아원에서 자랍니다. 그리고, 제이든과 알시타에 의해 입양 되었을 때 헤리엇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죠. 그런 헤리엇을 알시타는 애정과 관심을 다해 돌봐 줍니다.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를 이상하게 생각하게 여기지 않도록, 언젠가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말이예요. 하지만, 알시타를 태운 무역선은 침몰하고, 사랑하는 알시타를 잃은 제이든이 실의에 빠져 정신을 놓은 사이, 헤리엇은 실험실 차가운 수조 속에 갇혀 버리죠.

인어의 피를 가진 헤리엇은 그 잔인한 실험에서 살아 남지만, 머리가 하얗게 새 버릴 정도로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웅크리고 지친 몸을 물 속에 띄우고 있을 때, 루비를 박은 듯 빛을 내는 고양이를 보게 되죠. 그때 헤리엇이 느꼈던 감정은 분명 사랑이 아니었을 거예요. 하지만, 마지막 힘을 써서 이룬 하나의 소망이 흔한 것, 쉬운 것, 값싼 것일 수도 없습니다. 사랑하고 싶은 바람, 그 것이 꼭 그 고양이이길 바라는 희망, 그 희망이 이루어 지길 바라는 간절함, 헤리엇은 몇번이고 몇번이고 속삭이죠. '나를 사랑해봐' 그 세뇌가 어린 고양이에게 꼭 삼켜 질 수 있도록...

그리고, 엔저는 그 뒤로 헤리엇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방법에 있어서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마음 자체에 대해서 만큼은 논란의 여지가 없죠. 그리고 엔저는 훗날 헤리엇이 자신에게 '사랑하라'는 세뇌를 걸었다는 암시를 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엔저는 헤리엇을 사랑한 적이 없고, 헤리엇도 엔저를 사랑한 적이 없는 걸까요?

'순수한 사랑'이라는 것은, '사랑'을 주제로 한 모든 문학 작품에 주된 갈등 소재로 등장합니다.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내 옆에 있는 커플도 이런 이유로 싸우고 있죠. "정말 날 사랑하는게 맞아?"라고요. '순수한 사랑'이 무엇인지 논한다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은 아닙니다. 사람은 왜 존재 하는지, 왜 태어나서 죽는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고민이 빵도 밥도 떡도 주지는 않지만, 분명 이런 질문들은 삶을 바라보는 시야와 깊이를 넓고 깊게 해 줄테닌까요. 하지만, 정답을 바라고 시비를 따지는 일은 정말 어리석은 일 입니다. 저는 '순수한 사랑' 역시 그렇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보지 않으면 보고 싶고, 울고 있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웃고 있을까 생각하면 웃음이 나고, 배고플까 생각하면 걱정이 되고, 오늘 먹은 점심 메뉴는 잊어버려도 당신에 대해서 들은 것은 조금도 흘려듣지 않게 되는 것... 그런게 사랑이라는 것은 어린 아이도 알고 있지 않나요? 엔저는 세뇌의 사실을 깨닫고 사랑하는 헤리엇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나의 신의 실체를 찾았을 뿐이고, 헤리엇 역시 꿈 속을 걷는 고양이가 덩치 큰 후배가 되었을 뿐이었죠. 그런 마음을 부를 단어는 하나 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느끼는대로 행동하면 그건 동물이지!" 저 고등학교 다닐 때, 담임 선생님이 입버릇 처럼 하셨던 말씀입니다. 그런데, 자주 쓰는 감각은 발달 되는 거 알고 계시나요? 흔히 눈치라고 말하는, 부정적 시그널도 사회생활의 소산이죠. 그런데, 정작 내가 느끼는 수 만가지 긍정적인 감정은 그 순수성을 따지며, 의심하고 계산하며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정상이고 상식적이지만 잿빛 세상을 살아가는지도요.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까?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헤리엇보다 더 느끼고 살고 있는 것은 맞나요? 변태적 행위는 노노노지만, 그래도 그 원인이 '무감'이라면 조금은 슬퍼 질 듯 합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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