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1 책갈피

"너, 나랑 끝까지 갈래?"

"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나 미워했으니까, 이번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나 사랑 해 볼래?"

나는 범사준이 무슨 말을 하는건가 싶었다. 당연히도 실없는 농담 따윈 아니었고, 밑바닥을 드러낸 끝에 흘러나온 진심일 터였다.

point 2 줄거리

: 김유완은 1년간 짝사랑한 선배 이경에게 술김에 고백하고 사귀게 된 날 범사준에게 납치 당한다. 눈을 떳을 때 유완은 호텔 스위트룸에 감금 된 채, 한번 시작하면 도저히 멈추지 않는 하반신 절륜 괴물에게 학대(?)당하며 '사랑'을 강요당한다. 탈출을 계획하던 유완은 사준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가 원하는 연인을 연기하지만, 거짓말은 들키고 폐소공포증으로 인해 탈출도 실패한다. 재벌3세, 미친집착남, 스토커 사준에게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유완은 그를 죽이려 목을 조르다 돌연 떠오른 기억에 쓰러진다.

승: 유완이 다시 눈을 떳을 때는 저택 침실이었다. 그리고 유완은 사준을 보고 선배 이경이라고 생각한다. 사준은 호텔에서와 다르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유완을 보며, 사준은 죽었고 자신이 이경이라고 말한다. 유완은 살인자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이경의 노력에 감동하며 저택에 갇혀지낸다. 유완은 정서가 불안정하고 폭압적 행동을 하는 사준을 사랑으로 포용한다. 사준은 한편으로 불안하지만, 늘 꿈꿔왔던 연인 유완과 애정이 넘치는 동거를 이어간다.

전: 어느날 유완은 데이트 중 사준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대학 친구 곽지훈을 만난다. 그 날 이후 극도로 초조해하는 사준을 보며, 유완은 사준이 뭔가 숨기고 있다고 추측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사준의 핸드폰에서 위치추적 지표를 보고 무작정 찾아간다. 그곳에서 진짜 못생긴 이경을 보고, 유완은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이경이 범사준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분노한 유완한 자택을 부시며 폭주하다 지하실에서 10년전 사준과 자신의 접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유완은 자살시도를 하고 쓰러진다.

결: 유완은 10년 전 과거를 기억해낸다. 그리고 사준이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계속 찾던 구원자였고, 이경을 좋아한다는 감정은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깨어난 유완은 유완이 몰랐던 사준의 11년 간의 이야기 듣는다. 그리고, 자신이 이경에게 느꼈던 애정, 그리고 함께 지내면 쌓아온 사랑이 모두 사준임을 깨닫지만, 납치, 강간, 폭압을 자행한 사준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음을 숨기려한다. 하지만, 이미 자각한 마음을 숨기기 힘들었던 유완은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사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사준과 행복해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파랑새

'기억'과 '실제'는 얼마나 동일할까요? 사실, 무엇이 '실제'라고 정의 할 수 있는지부터 복잡해지는 문제이긴 합니다. 근래 핫하다는 뇌과학 서적마다 공통된 의견이 있다면 '기억'과 '실제'는 많이 다르다는 거예요. 9.11테러 피해자들은 실제하지 않는 사람이나 연기, 장소를 경험했다고 확고히 믿기도 한다죠. 멀리서 찾지 않아도, 똑같은 사건을 겪은 다수의 완전 다른 해석은 드물지 않게 경험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란 이렇게 불확실함에도, 그 기억을 통해 판단하고 느낀 것이 진짜라고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나의 일생을 지켜 본 절대자가 있다면, 나의 '회고집'은 그의 '소설'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것이 아무리 나 스스로 진실하게 쓴, 여과없는 사실의 기술일지라고 말입니다.

로맨틱 크라임... '잘생긴 미저리가 사랑한다고 이쁜이 감금하고 잉야잉야하고, 이쁜이는 처음엔 거부하다 결국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구만....' 역시나, 첫장이 납치 1일째,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미쳐버리겠는데, 납치, 감금, 강간 말고 방법있어?' 돈 많고, 잘 생기고, 힘 쎄고, 절륜한 전형적 집착광공이 등장합니다. 오히려 수가 납치 당하고도 어물전 망둥이처럼 날뛰는데 되려 머리가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보면 볼 수록 요 작품이 물건이데요~

일단, 가스라이팅이 없습니다. 처음엔 소심했던 자낮수가 마지막에 굳세어라 금순이로 변신하는 캐붕도 없습니다. 이 작품에서 포인트는 육체적 '감금'이 아니라 기억의 '감금'이거든요. 마치, 파랑새를 찾아 긴 여행에서 돌아와보니, 이미 나의 집에 파랑새가 있었던 것 처럼... 소설은 유완과 사준이 다시 만난 감금1일째, 이미 해피엔딩입니다. 단지, 돌고 돌아와서야 깨닫게 될 뿐이죠.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어린 유완은 어느날 아버지가 아이를 납치해 컨테이너에 묶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죠. 유완은 그런 아버지를 말리다 무참히 폭행 당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컨테이너에 함께 갇혀요. 어둠의 공포 속에서, 유완의 손을 꼭 잡고 위로해 준 것은 납치 된 어린 사준이었습니다. 이미 풍부한(?) 납치경험이 있던 냉철한 사준은 무사히 탈출하지만, 그 과정에서 유완의 아버지는 산채로 불에 타 죽고 어린 유완은 그 장면을 목격합니다.

오랜 폭력에 방치 된, 어둠을 무서워 하는, 착한 아이 유완은 충격에 기억을 잃어버리죠. 사준은 그런 유완에게 진실을 알려 줄 수 없었고, 결국 둘은 그렇게 헤어집니다. 그리고, 유학을 떠난 사준은 유완이 쉽게 잊혀질 인연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11년간 혼자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사랑'을 하며 유완을 지켜만 봅니다.

유완은 대학교 엘레베이터가 멈추면서, 과거와 같은 경험을 합니다. 그때 역시 손을 잡아 준 사람은 사준이었지만, 이경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의식이 기억하고 있는 사준에 대한 감정을 이경에 대한 사랑이라고 오해하고, 1년간 짝사랑하죠. 처음부터, 유완의 무의식과 의식이 찾았던 사람은 모두 사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예요. 이 비극적 고백은 사준의 11년의 인내에 종말을 고합니다.

소설 속에서 유완은 사준과 이경의 얼굴을 계속 겹쳐봅니다. 하지만, 사준은 매끈한 미남인데 이경은 믹서기에 갈다만 구황작물처럼 생겼어요. 생긴게 그 모양인데, 성격은 그보다 못합니다. 갈다만 구황작물은 그래도 식품이지만, 이 자식은 정말 타지않는 쓰레기거든요. 어찌 조리해도 먹을 수 없죠. 이렇게 다른데, 유완에게는 무의식과 기억의 간극에 갇힌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 입니다.

이경으로서 서준이 유완과 함께 지내는 동안, 알콩달콩 깨 볶던 생활은 '거짓'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이 '진짜'였던거죠. 그래서, 이 작품은 감금이되 감금이 아닌듯한 인상을 줍니다. 유완은 언제나 사준을 바랐지만 기억하지 못했고, 그저 그 작은 분출구 언저리에 이경이 있었을 뿐이죠. 사준 역시 유완을 언제나 바라고 기억했지만, 유완이 원했던 사람이 자신인줄은 알지 못했고요. 둘은 이미 서로가 찾던 파랑새였습니다.

그래서 재탕할때가 처음 읽을 때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단순히 결말이 궁금한, 흥미진진함 이외에도 즐길 수 있는 재료들이 많은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초반이 너무 뻔하길래 만만히 보고 자기 전에 시작했다가 밤을 꼴랑 세워 하루내내 두통에 시달렸어요. 개인적으로도 단짠이라고 할 수 있죠.

어릴때 파랑새의 결말이 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원하는 것은 가까이 있다!'라는 것이 설렘반 두려움반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을 '어리석은 행동가'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요. 별을 보다 눈 앞에 웅덩이를 빠진 천문학자 더러 '하늘 볼 생각하지 말고 땅이나 제대로 봐!'라고 한다면, 천문학자는 넘어지지 않는 일반인이 되겠죠. '쓸데없는 시도'가 '하지 않은 실패'보다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하지만, 문득 내가 가지고 있었지만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채 하늘로 날아가 버린 파란새가 얼마나 많을까?란 생각이 드네요. 내가 괴씸하다 끊어낸 인연 중에, 실제로 파란새가 있었을지도...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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