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유즈

출간일: 2019.06.07

분량: 본편 3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단 한번만. 내게 천 년을 날아가자 약조했던 그 사내를 보여줘. 마지막으로

원제의 입술을 물었다. 입술도 손처럼 떨렸다. 곡여흔은 다물려 있는 입술을 비집고 혀를 넣었다. 꺼져가는 체중이 온전히 그에게 매달렸다. 목을 양팔로 감아쥐고 입을 탐했다.

말을 할 걸 그랬지. 네가 만지면 싫으냐 묻던 그때. 싫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네게 닿고 싶은 것을 감추려 필사적이었노라고.

말을 하지 않길 잘했지. 내가 먼저 너를 좋다 했으면 네가 어찌 굴었을지를 겪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형님의 말대로 내가 너를 미치게 한 것인지, 아니면 네가 원래 미친 자였던 것인지 끝까지 알지 못한 것 하나는 다행이다. 내가 미치게 한 것이었다면 안타까웠을 것이고, 원래 미쳤다 한다면 자괴했을 것이다. 이도 저도 모를 지금은 허무하기만 하니 다행이다.

내가 네게 바라던 것이 있다. 네가 부수었지만 지금은 덧없다.

내가 네게 바라는 것이 있다. 우리 둘, 다시는 어떻게라도 엮이지 말자.

나는 이제 새가 되겠다. 다시 나를 본다면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활로 내 날개를 뚫어 죽여라......

공들여 입술을 적셔 놓은 곡여흔이 입술을 미끄러트리며 요대를 풀었다.

point 2 줄거리

: 북방출신 원제가 세운 파국에는 오왕이라 불리는 오대세가가 황실과 위태로운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 적대적 토착세력 오대세가 중 하나인 곡가 장남 흔은 5세부터 모각에 갇혀 살았다. 원제의 궁을 지었고 무품의 귀인이었지만 광인이 되어 죽은 곡여흔과 같은 푸른눈을 띠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곡흔을 대신해 소가주가 된 동생 곡진성은 모각을 찾아 흔에게 일방적 애정을 강요했고, 그것을 알게된 가주는 흔을 노역장으로 보낸다. 그리고 그곳에서 황제 강제를 만나다.

승: 동침한 여자를 죽이는 괴벽이 생긴 강제는, 무너진 성터 노역장에서 파란눈의 흔을 본다. 광인의 환생이라 곡가에서 버린 장남 흔, 그을 궁으로 데리고 온다. 하지만, 곡흔에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끌림을 느끼는 강제를, 곡흔은 원제와 비교하며 계속 밀어낸다. 강제는 그런 흔에게 미약을 먹여 몸을 취하려하지만, 그때 불현듯 전생을 떠올리게 되고 자신이 원제의 환생임을 알게 된다. 강제는 원제의 실수를 다시 하지 않기위해, 흔의 눈치를 보며 곁을 맴돈다.

전: 전생, 원제는 천재 건축가이자 곡가의 소가주 곡여흔을 아꼈지만, 형인 곡진성의 왜곡된 애정으로 상처 받은 적 있던 곡여흔은 원제가 다가 올 수록 피한다. 어느날 원제는 곡여흔이 형과 불순한 관계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여 곡여흔을 강제로 취한다. 그리고, 10년간 폭력과 미약으로 여흔은 망가트려서라도 곁에 두었다. 그리고 여흔은 모반을 꾸미는 오대세가로부터 원제를 살리기 위해 대신 죽는다. 한편, 곡진성은 술사가 피술사의 신체를 조종 할 수 있는 벌레 '고'를 가지고 곡흔을 찾아 간다.

결: 곡흔을 만난 곡진성은 곡여흔의 형이었던 전생의 기억을 찾은 뒤였다. 곡진성은 여흔에게 '고'를 먹이고, 독이든 병을 주며 강제에게 먹이라고 한다. 전생에 실패한 모반과 다르다며 설득하지만, 이미 흔은 강제의 옆에 남기로 결정한 뒤였다.여흔은 곡진성과 강제 모두 살리려 하지만, '고'에 의해 몸을 가누지 못한 흔은 강제에게 독을 뿌리고, 곧 자신이 그 독을 빨아 먹고 쓰러진다. 강제는 흔에게 자신의 피를 먹여 살리고, 흔과 명줄이 엮인다. 살아난 흔은 강제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는 방법

바르도의 궁은 사연이 많은 책입니다. 오래전 종이책으로 발간 된 후 단종이 되었던 소설이 웹툰화가 되면서 관심을 끌게 됩니다. 하지만, 어디서도 바르도의 궁을 찾을 수가 없다보니, 암암리에 단종 된 책을 돌려보는 기현상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다, 리디북스에 짠~하고 이북으로 발간됩니다. 그때는 리디only 작품이어서 바르도의 궁을 읽기 위해 리디북스 아이디를 만들기도 했다는... 나름 전설의 회귀라고 말 할 수 있는, 힘겨운 재등판인 셈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화선이 되었던 바르도의 궁 웹툰은 이후 연출상 부족함이 거론 되곤 했죠. 저 역시 새로 연재되고 있는 외전까지 보고 있지만, 솔찍히 아쉬움이 많습니다.

원작소설이 웹툰화 되면 원작 팬심에 챙겨보지만, 개인적이고 주관적으로 원작보다 재미있거나 비슷한 웹툰은 두 편입니다. 소설의 디테일을 전부 작화 할 수는 없으니 생략 및 각색 될 수 밖에 없는데, 만약 웹툰 연출이 매끄럽지 못하면 암호 같은 웹툰이 되어버립니다. 특히나, 원작의 팬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기대치가 있다보니 실망으로 이어지기 쉽죠. 그럼에도 문자를 읽으며 발동동 팔동동했던 주인공들이 이미지로 그려진다고하는데, 거부하기는 쉽지 않아요. 뭐... 그래서 대작을 발견하는 환희가 더 큰 거겠죠.

곡여흔은 전생의 업으로 다시 환생합니다. 잘 살기 위해 환생한 것이 아니라, 전생의 업을 풀지 못해 한 생을 더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난 곡흔의 삶의 목표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짧은 생을 잘 마감 할 수 있는 것 뿐이었죠. 왜냐면 자신의 업은, 사내를 미치게 하는 몸으로 원제를 만나 그로인해 많은 인명이 죽게 된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주어진 불합리와 불행을 묵묵히 받아드립니다.

불행히도 다시 시작된 삶 역시 전생과 다르지 않았죠. 형제의 비틀린 애정을 밀어내지도 못했고, 강제를 피하지도 못했고, 자신으로 인해 사람이 다치거나 죽을 위험에 몰리는 상황은 발생했으며, 강제는 흔에게 다시 미약이 든 술을 먹이고 맙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조금씩 달랐어요.

원제는 여흔의 발꿈치를 부셔 절름발이로 만들지만, 강제는 사람을 해치지 않은 대가로 흔의 발을 받아냅니다. 여흔은 원제가 아꼈던 머리카락을 잘랐지만, 흔은 강제에게 머리카락을 줍니다. 원제는 여흔에게 말을 내어준 어마감을 쓸어버리지만, 강제는 흔을 말에 태우죠. 흔은 여흔을 바라보던 원제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요. 무엇 하나 내어주는 것 없이 자신을 거부하던, 여흔을 곁에 두었던 원제의 희구를 알게 되죠. 그리고, 그 남자가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떠올립니다.

여흔은 원제의 삶에서 유일한 구증이었고, 원제는 여흔의 작은 몸짓이라도 기꺼이 받아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채찍질을 하고 사지를 결박해도, 새처럼 날아갈 것 같은 여흔의 마음만은 묶어 둘 수 없었어요. 여흔은 원제가 준 미약에 중독되었지만, 강제는 스스로 안겨오는 여흔에 중독됩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여흔이 망가진 이후에야 여흔은 미약을 끊을 수 있었죠. 이로써 원제의 미몽같은 시간도 끝나버리고 죽을듯한 후회의 시간만 남아버립니다.

북방 부족에서 쫒겨나, 죽음의 사막을 건너 중양에 황제가 된 강제가 토착 호족의 소가주이자 천재건축가로 살았던 여흔... 한 사람은 빼앗지 않으면 삶조차 가질 수 없었고, 한 사람은 이미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참고 숨기는 것에 익숙했죠. 원제는 여흔 하나를 가져야 했고, 여흔은 남자를 홀리는 요물로 살고 싶지도 않았지만 어깨에 진 가문의 영달도 버릴 순 없어요. 쫒는 호랑이와 쫒기는 사슴의 경주는, 당연히 잔인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굳이 원제가 통증을 느낄 수 없다는 설정이 필요한가 싶습니다. 일단 용서를 부르는 만능치트키인 것은 알겠지만, 좀 어울리지 않는 자기변명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장시간 우린 찐 사골국에 시판 다시다 넣는 느낌이었죠.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황제들의 후회는 남다릅니다. 하지만, 앞치고 뒷쳐도 황제인 것을... 결국은 이해하기보다는 이해받는 것이 더 많습니다. '네가 한 잔인한 일이 다 이유가 있었어.'가 환생 후 수에게는 다시 사랑 할 동력이 되죠. 하지만, 바르도의 궁에서 강제는 변명하지 않고 바뀝니다. 흔 역시 묻지 않고 봅니다. 바뀌겠다 하였으니, 정말 바뀌었는가를 지켜봅니다. 강제가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 흔에게는 다시 사랑 할 동력이 됩니다.

용서란, 이 정도는 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떤 사람이 그 순간 주어진 조건으로서 결정 할 수 있는 선택이 오직 그뿐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엄청난 고통으로 이어졌다면, 그때 필요한 건 변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악의가 없다는 설명은 기본이지 최선은 아니죠. 변명은 참작사유는 될 수 있을지언정 면죄부가 되진 않을테고요. 진심이라는 것은 보여주는 것이지, 세치혀로 하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문득, 어떤 사고를 치든 이유는 있고 본인은 잘못이 없다는 변명쟁이가 떠오르네요. 이런 사람들의 존재가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라고 하는 말이 이치에 맞다고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 이것이 진심으로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며,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 줘야하는 이유입니다. 바로 강제처럼 말이죠.

올해 나온 외전 '반월몽'이 정말 '찐'입니다. 살면시 투텀증 업! 그곳에서 여흔이 실현 될 수 없으나 간절히 바라던 것, 그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원제를 보는 것이었죠. 사람을 죽여서라도 너를 가져야만 했던, 서투른 자신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말입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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