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이색
출간일: 2019.01.29
분량: 본편 5권 + 외전 2권
point 1 한 줄
"네가 두 시간 45분 기다렸어. 레스토랑 안에서."
낮게 속삭이는 그의 말에 이유 모를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
만족스러운 듯 활짝 피어진 범영의 얼굴을 본 순간, 영우는 자신을 시험한 것에 대한 분노보다 그의 입장을 공감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더는 말을 할 수 없었다.
point 2 줄거리
기:영우는 사촌의 죄를 대신하여 교도소에 갔다. 부모 대신 미성년인 자신과 동생 영현을 키워준 작은 아버지가, 영우 대신 영현을 대학까지 잘 키워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4년 뒤 출소 한 영우는 작은 아버지의 집을 찾았으나, 재개발로 폐허가 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문의 남자를 만나게 되고, 우연히 살인사건 용의자가 된다.
승:얼떨결에 살인사건 용의자로 쫒기게 된 영우는, 역시 우연히 의문의 남자 '범영'의 도움을 받아 그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범영은 영우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사촌 신민우가 자신의 동생을 집단폭행하여 자살하게 만들었다고 이야기하고, 같이 복수하자고 말한다. 영우는 범영과 함께 지내면서 범영의 통제 속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길들여진다.
전:혼자 집을 지키던 영우는 창밖으로 청소년 집단폭행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피해자를 구해준다. 그리고, 역시 또 우연히도 이 아이를 통해 자신이 살인용의자가 된 것이 조작된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것을 지시한 것이 범영이며, 그가 살인 청부업자이고, 신민우에게 자신을 죽이라는 의뢰를 받았다는 사실 등을 연달아 알게 된다.
결:하지만, 영우는 범영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그의 일을 도와가며 신민우를 죽이고 더욱 큰 수렁으로 빠져든다. 그의 통제에 길들어 자신이 망가졌음을 알게 된다. 결국, 영우는 자해를 하며 무너지고, 범영은 영우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영우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심이었기에 자수하려는 영우를 대신하여 감방에 가게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가스라이팅의 명가
피폐물 서적 리뷰를 보면, 피폐물 순위를 매기는 독자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기타 유형 보다, 피폐 강도라는 것이 있어서 그런지, '준비 된 쓰레기만 보라!' 도전적인 순위 경쟁처럼 보이기도 하죠. 저의 경우는... 정말 힘듭니다. 짬뽕과 짜장면을 고민없이 골라도, 인생작 3편, 완전 쎈 피폐물 3편, 이런 결정들은 저를 끔찍한 결정장애의 소용 돌이에 휘말리게 하죠. 그래도 간혹 그런 질문을 받아서, 기준을 정해서 답하곤 하는데, 요약하자면 1. 상황피폐 2. 육체피폐 3. 정신피폐 총 3가지 기준으로 각각 순위를 정하곤 합니다. 언젠가 이에 대해서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제가 정신피폐 1등으로 뽑는 것이 바로 '가스라이팅의 명가'인 '피난처'입니다. 폭우가 내리던 날 읽어서 그런지, 오늘 처럼 폭우가 내리면 떠오르는 작품이기도하죠. 오늘은 달달한 오메가버스 한편을 리뷰 할까하다, 급하게 바뀌었다는 것은 여담입니다.
가스라이팅이란 현실 상황에 대한 판단력을 상실하도록 조작하는 정신지배 활동의 일종인데요, 자낮인 경우에는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삽질을 하기 때문에, 가스라이팅을 잘 묘사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스톡홀롬증후군과 세트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스톡홀롬증후군은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느끼는 비이성적 심리적 동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가스라이팅의 경우에는 가해자나 피해자라는 인식이 굳이 필요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가스라이팅은 무섭습니다. 오히려 2. 육체피폐 강압적 유형에서 흔히 나타나는 정신 통제의 경우는, 트라우마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통제당함과 통제의 원인을 알고, 힘들기는 하지만 벗어 날 가능성이 높아요. 진정한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은,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상대방의 의도에 따라 천천히 자신의 손으로 선택한 모든 일들이 통제자의 의도에 따르게 되는 것이죠. 정말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스라이팅이 나오는 작품은 많지만, '진정한' '찐의' 가스라이팅을 다루는 작품은 의외로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진정 파난처를 가스라이팅의 명가라고, 살며시 엄지 척 올려봅니다.
범영은 사이코패스 입니다. 사이코패스는 공감이 부족한 것이지 반드시 폭력적이라고는 보기는 힘듭니다. '괴물의 심연'을 쓴 제임스 팰런 역시 사이코패스였지만, 성공한 사회인이자 가장으로서 살아가죠. 사이코패스 범영이 느끼는 유일에 가까운 감정, 영우에 대한 애정입니다. 공감을 모르는 사람의 유일무이한 애정, 저는 피난처의 설정 자체가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범영은 영우에게 친절하지만 잔인하기도 하고, 영우에게 거짓말을 하지만 그 거짓말로 인해 영우에게 죄책감을 느끼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영우가 자신을 믿길,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길, 자신에게만 의존하길 서서히 밀고 당기며 전략적이고 이성적으로 길들입니다.
정말 흥미진진 에피소드는 많지만, 저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영우를 혼자 남겨 두고 간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혼자 남은 영우는 도망 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버려졌나? 내가 집안일을 안해서 그런가? 고민을 하며, 시킨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자리만 지키는 그를 이상하게 보는 직원들에게 공포를 느끼며, 범영이라는 피난처를 기다립니다. 결국, 2시간 45분 후 식당을 나오는 영우를 범영은 꼭 안아주며 칭찬을 합니다. 영우가 범영이라는 덫에 완전히 포획되는 장면이었죠.
아쉬운 것은 결말입니다. 많은 정신장애나 강박을 벗어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영우의 경우는 충분히 영악하지 못하고, 범영은 정신이 무너져 미쳐가는 영우의 행동을 자신에게서 벗어나려는 수작으로 치부하죠. 그러다, 갑자기 영우가 범영의 정신통제에서 벗어납니다. 깝툭튀 권선징악의 결말을 맞죠. 게다가 외전은 왠걸... 영우가 이렇게 똑뿌러지고, 범영이 이렇게 호구일줄이야... 갑자스러운 캐붕을 오로지 두 사람의 성장이라고만 해석 할 수 있는지, 저는 그다지 수긍이 되지 않았죠. 대작 타는 냄새 난다!!하고 결말로 향하다, 타다만 희나리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그럼에도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간혹 피난처가 생각이 납니다. 우리 모두는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피난처는 '안전'해야만 하죠. 그것이 가족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자신의 신념과 철학이었으면 좋겠지만, 말그대로 '피난처'가 있으면 '전쟁터'도 있어야 하는 셈이니, 피난처를 선택하거나 혹은 거부하는 선택은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목이 마르면, 기생충이 있어도 죽지 않기 위해 오아시스의 물을 마셔야 하는 것 처럼요. 저는 개인적으로, 영우가 범영에게 완벽하게 길들여져 판단과 현실을 버리는 것이 진정한 그의 '피난처'가 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범영은 영우를 아주 많이 기만하지만, 기만의 목적은 영우가 오로지 자신만을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었거든요.
영우에게 세상은 비정했습니다. 부모가 죽고 난 후 작은 아버지 일가는 어린 동생 영현과 영우에게 잔혹하게 굴었고, 16살 뛰쳐 나온 반지하방 생활 속에서 영현을 잘 키운다는 것은 너무 힘들었죠. 결국, 교도소에 가기로 결정 한 것도, 자신이 이 반지하방에서 결코 자신과 다른 미래를 영현에게 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어요. 교도소를 나오고, 동생은 고아원에서 방치되어 교통사로로 죽고, 작은 아버지는 그 사실을 숨기고 사라져 버리지, 사촌은 자신의 약점이 될 영우를 죽이라고 시키죠. 교도소 밖에도 안에도 영우는 끔찍한 고통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어쩌면, 무던히도 노력했던 그의 삶에서 우연히 얻은, 유일하게 그에게 우호적인 것은, 이 사이코패스의 애정이 아니었을까? 통제되는 것 보다 통제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 없는 세상에서도, 자유라는 것이 인권일까요?모르겠네요. 결말과 외전에서 엄청 줏대가 생겨버린 영우가 모든 문제을 해소하기에, 맺지 못한 잡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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