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이클립스

출간일: 2018.02.14

분량: 본편 1권

 

 

 

 

 

 

 

 

point 1 책갈피

"사랑해"

청량한 웃음 끝에 이어지는 하나의 수순같은 저 말. 늘 듣는 말인데도 들을 때마다 두가지의 감정이 양극단으로 나를 옭아맨다. 하나는 이상한 설렘으로, 다른 하나는 미칠 것 같은 분노로.

너의 사랑은 나를 좀먹어 들어가고 있어.

나날이 썩어서, 그 껍데기만 남게 되겠지.

언젠가 그것마저 썩어 버리면, 너는 어떤 표정일까.

"나도"

녀석의 말에 부드럽게 대꾸하며 나는 추악하게 쓴 가면 밑으로 떨리는 감정을 숨겼다.

그리고 녀석의 사랑한다는 말에 오늘도 활짝 웃었다.

point 2 줄거리

기: 수혁과 영우는 배다른 형제지만, 수혁은 영우를 살뜰히 챙기고 영우도 수혁에게 의지한 채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어느날 고등학교 동창인 지철이 제대하고, 전화와 외출을 싫어하는 영우도 제대 축하 모임에 나간다. 그리고 그 다음날 평소 수혁을 의식해 영우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학과 동기들이 영우에게 축제를 도와달라고 한다. 수혁은 타인과 교류하려하는 영우에게 갑자기 난폭하게 굴며 당황스러운 스킨쉽을 한다. 영우는 그런 수혁을 달래면서도 뭔가 어긋났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승: 한편,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우를 좋아했던 지철은 수혁으로부터 영우를 탈출시키려하고, 그런 지철이 영우의 앞에 나타날때마다 수혁 집착은 점점 심해진다. 그러던 어느날 지철은 영우를 데리고 무작정 속초로 떠나고, 영우를 찾아온 수혁은 지철을 폭행한다. 서울에 올라온 영우는 지철이 입원한 병원에 찾아가 수혁을 대신해 용서를 빌지만, 그런 영우에게 지철은 본인만 모르는 '사실'을 알려준다. 혼란을 느낀 영우는 수혁에게 따로 살자고 제안한다.

전: 수혁은 영우를 감금하고, 영우는 수혁에게 길들여지면서도 탈출을 노린다. 그리고 수혁이 잠든사이 영우는 탈출에 성공하고, 지철에게 전화한다. 지철은 수혁이 가스폭팔사고를 가장해서 영우를 죽였다고 속이고 장례식까지 치렀다고 알려준다. 지철은 영우를 외가로 피신시키고, 영우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한편, 영우는 자신이 죽은후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으로 가지만, 어머니를 보기 전에 수혁에게 다시 잡혀 온다.

결: 영우는 수혁이 영우를 가지기 위해서 했던 일들과, 자신이 잊고 있었던 원죄에게 관하여 듣게 된다. 충격에 쓰러진 영우는 기억을 잃는다. 그리고, 그런 영우에게 수혁은 다시 거짓말을 시작한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영우는 몸이 약해 밖에 나갈 수 없다고 알려준다. 수혁은 영우를 다시 길들이기 시작하고, 스스로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된 영우는 수혁이 준 안락한 감옥에서 수혁을 사랑하게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원색적 피폐물

개정증보판으로 e-book발간이 된지도 제법 되지만, '꼭두각시'는 훨~~ 씬~~ 이전에 쓰여진 작품입니다. 그래서 '옛날 냄새'가 많이나요. 피폐물에도 트렌드라는 것이 있어, 똑같은 감금이고 근친물이여도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좋은말로 '집착'에만 포커스를 맞춘 농도 진한 피폐물이고, 나쁜말로는 세련미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요.

'꼭두각시'는 BL판 '미저리'입니다. 눅눅하고 어둑한 공간, 비정상을 숨기지 않는 노골적 행동과 도망치지 않는 소극적 사냥물... 제대로 압박감 오는 전개지만, 한편으로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분위기'가 느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저것 머리쓰지 않고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원색적이고 직접적인 배덕감, 피폐감, 공포감 말이예요. 그런점에서 '꼭두각시'는 정말 좋은 작품입니다.

많은 계략 집착공들이 수의 인생을 설계(?)하긴 하지만, 그런경우 공은 월등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이든, 지위든, 아니면 수를 원활하게 통제가능한 초월적 능력이든 말이죠. 그러고도, '트루먼쇼'처럼 완벽하게 개인을 속이는 것 쉽지 않기 때문에, '자낮수'를 설정하거나 공에 대한 맹신, 냉정한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급박하고 절실한 상황을 깔아 놓습니다. 하지만, '꼭두각시'는 쿨하게 이 과정을 패스하죠.

수혁과 영우는 배다른 형제예요. 영우는 본부인의 아들이었고, 수혁은 밖에서 낳아 온 아이였죠. 수혁의 어머니는 수혁의 아버지를 가지기 위해, 수혁의 아버지 앞에서는 가련한 여자를 연기하고, 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목적으로서 수혁을 대합니다. 그리고, 뒤에서는 영우의 어머니를 스토킹하며 협박도 서슴치않죠.

영우는 어릴때 아버지와 함께 수혁을 만나러 갔습니다. 몸이 안 좋았던 수혁의 어머니는, 자신이 죽은 뒤 수혁을 거둬달라고 말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영우는 아줌마가 죽으면 수혁과 함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상식적이고 소심한 모범생인...영우는 우발적으로 수혁과 함께 살기 위해 아줌마의 인공호흡기를 떼서 죽여요. 그리고 수혁은 그 장면을 보죠.

그 사건은 수혁이 영우와 함께 살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지만, 영우에게 집착하는 도화선이 되기도 합니다. 수혁은 영우의 친구들이 모두 알 정도로 유명인사였습니다. 입학 전에는 교문에서, 입학한 이후로는 교실 문 앞에서 매일 형을 기다렸거든요. 영우의 어머니는 수혁을 학대하고, 어린영우는 어머니에게서 수혁을 구해내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있었죠. 그래서, 영우는 어머니가 없는 공간에서만큼은 언제나 수혁을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친구들은 영우의 이상한 동생과, 그 이상한 동생 때문에 늘 친구들을 뒤로 하는 영우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말했지만, 영우에게는 더 강한 의무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영우조차도 어쩔 수 없이 수혁을 떼 놓아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때마다 수혁은 영우를 망가트려요. 껌딱지 동생 말고 자기랑 생일을 보내자는 지철의 애원이 있던 날, 영우는 스토커를 만나고 그 이후에 온갖 협박, 성추행 등에 노출됩니다. 그로 인해 밖을 나가기 싫어하고, 전화 사용을 무서워하게 되죠. 그리고, 군대를 들어가기 몇 일 전 수혁이 운전대를 잡은 차에서, 영우는 사고를 당합니다. 그리고 다리에 큰 부상을 입어 다리를 절게 되요. 따로 살자고 말하는 영우는 가스폭팔사고로 죽은 사람이 되고, 수혁에게 도망쳐 잡혀 온 뒤로는 기억을 잃고 피부병 환자가 되어 반 감금 된 유령으로 살아갑니다.

아쉬운 점은,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수세로 몰아넣은 수혁의 '방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미성년 학생이었던 수혁이 어떻게 영우를 범죄자에게 던져 줄 수 있는지부터, 수혁이 폭행, 살인, 방화, 문서조작 등 엄청한 범죄를 벌임에도 세상은 수혁에게 작은 생채기 조차 내지 못한채 그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 까지...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이사법' 같은 디테일은 제쳐두더라도, 큰 줄기 속에서도 밑작업에 대한 복선이나 암시는 없고, 그저 '수혁의 계획'이라는 '전제'만이 깔려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울하고 칙칙하면서도 공포스럽고 숨막히는 분위기가 끊김없이 누적되는 순효과 역시 생기는 듯 합니다. 마지막, 수혁을 속이고 낮 산책을 하는 영우를 보면서, '여운이 느껴진다.'는 감상을 받는 이유도, 열심히 쌓아 온 '검은 진실의 무게'에 비해 영우의 '하얀 작은 거짓'이 그 차만큼이 공백으로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의 정서적 불안만으로 하드캐리하는 것이 어색한 면이 있긴 하지만, '꼭두각시'는 선택과 집중에 강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수시점으로 바라보는, 점점 늪에 빠져 들 것 같은 침전감도 이 작품의 특징이죠. 형을 위해 치킨을 튀기는 살림꾼 동생이라 동생이 형을 키우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영우의 고뇌에 분명 '동생'이라는 허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역키잡 특유의 배덕감도 있습니다.

가끔 어느 키워드로 분류되기 좀 애매한 작품들이 있어요. 그래서 '꼭두각시'는 그냥 '꼭두각시' 인 것 같아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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