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시크노블

출간일: 2017.03.29

분량: 본편 1권 + 외전 2권

 

 

 

 

 

 

point 1 책갈피

도영은 지쳐서 발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뒤돌아봤다. 깨지고 뭉개져 상처가 난 모양이 꼭, 자신의 가슴속 깊은 곳과 닮은 전구들이 널려 있었다. 그 알알이 생명력 없는 것들을 그제야 발견했다.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의 해답은 생각의 테두리를 조금 벗어난 곳에 있었다.

도영은 비로소 깨달았다. 빛은 안에서도 출발할 수 있다는 걸. 바깥에서 빛을 나눠 주지 않는다면 내가 빛을 만들면 돼. 그래도 부족하면 밖에 나가자.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터널의 천장을 뚫고 나가면 돼. 전구들이 빛을 비추어 나아갈 길을 알려 줄거야. 그럼 너는 터널 위에서 나를 기다리다 어서 올라오라며 손을 뻗어 주겠지.

point 2 줄거리

기: 도영은 우성과 대학동기로 허름한 빌라 옆 집에 사는 이웃이다. 인기 많고 당당한 네모 우성을, 세모 도영은 불편해 한다. 그러던 어느날 도영은 우성과 함께 듣는 수업에서 우성과 한 팀이 되고, 휴학을 한다고 우발적으로 말한채 자리를 피했다. 그 후 도영은 맹장염으로 쓰러지고, 우연히 집으로 들어가던 우성은 옆집 열린 문틈으로 쓰러진 도영을 발견해 병원에 데려간다. 우성은 수술 이후도 도영을 찾아와 돌봐준다. 퇴원 후 도영은 고마운 마음에 우성에게 밥을 사고, 우성은 간혹 도영을 찾는 대면대면한 관계가 된다.

승: 결국 도영은 휴학을 한다. 어느날 도영은 억울하게 치한으로 몰리지만, 가족과 절연해서 연락할 사람이 없어 우성에게 연락을 한다. 우성은 도영을 도와주고, 도영은 우성 앞에서 서럽게 운다. 이후 우성은 틈 날때마다 도영의 식사를 챙겨 주기 시작한다. 한편, 누나 결혼식에 용기내어 찾아간 도영은 가족들의 냉대를 받고, 결혼식을 보지 못한채 돌아온다. 시름시름 앓는 도영을 돌봐 주는 우성에게, 도영은 게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우성은 도영을 피하지 않고 한결같이 대한다.

전: 도영은 병원장 아버지와 미술관장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아들로 귀여움을 받았다. 도영은 학창시절 동성애에 편견이 없다고 말하는 친구를 믿고 아웃팅을 했고, 그 친구는 도영의 부모님을 찾아가 도영이 게이라고 이른다. 가족들을 도영을 치료하려고 했지만, 도영은 바뀔 수 없었고 홀로 허름한 빌라에 살게 되었던 것이다. 아웃팅 한 후, 도영이 틀리지 않다고 인정해 준 유일한 사람인, 우성에게 도영은 마음을 연다. 솔찍한 도영은 너무 귀여웠고, 우성은 귀여운 도영이 좋아졌다.

결: 우성은 도영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한다. 세모의 세상도 모르면서 세모가 되려는 우성을 도영은 밀어낸다. 하지만, 이미 일상에 깊이 물든 우성을 싫어 할 수 없었다. 도영과 우성은 곧 연인이 된다. 한편, 도영은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찾아가지만, 가족들의 박대를 받는다. 도영은 자신이 세모이기 때문에 받는 괴로움을 우성이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헤어지자고 하지만, 우성은 그런 도영의 곁에서 도영이 그저 다를뿐이라고 말해준다. 도영은 용기를 내 가족들을 찾아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평행선, 그렇지만 언제라도 발을 멈추면 접점이 생길 수 있다.

깅기님의 소설은 은유와 비유가 많아,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곤 합니다. 도형이 가득한 가상의 공간, 작은 사물로 비유되는 비일상적 장면들, 그곳에 묻어나는 주인공의 고뇌가 그런 분위기를 이끌어내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내용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덩어리 진 지점토를 비틀어야 그 점성을 알 수 있는 것 처럼, 이런 깅기님의 '일상 비틀기'는 너무 흔하고 평범한 일상의 일면을 되세김질 하게 만들어 주죠.

'네가 네모인 세상' 역시 네모로 이루어진 세상에 성소수자인 세모로 살아야 하는 도영이 우성을 만나 서로의 별이 되는 이야기를 통해, '다른 것'의 모양을 보여줍니다. 네모로 열 맞춰진 도형판에서 세모는 쓸데 없고 이상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세모와 세모가 모이면 네모도 되고 별도 될 수 있죠. 정형화 된 틀로 가득찬 세상에서, 우성은 겁쟁이 도영을 훌쩍 끌어내, 별이 반짝이는 광활한 우주 아래로 놓아둡니다. 함께 별을 보는 두 뒷모습이 그려지는 잔잔한 여운을 느끼며 소설을 마무리 되요.

하지만, 이 소설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단지 세상에 섞이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떠돌던 도영이 우성이라는 등대를 만나 닻을 내리는 해피엔딩 때문은 아닙니다. 도영은 우성을 보고, 평행선이라고 합니다. 세모는 세모의 길을 가고 네모는 네모의 길을 가서 서로 마주칠 수도, 이해 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이런 평행선은 단지 이성애자 네모와 성수수자 세모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노동자 부모 네모와 대학생 아들 세모, '치료'를 바라는 사랑 네모와 '인정'을 바라는 사랑 세모, 그리고 현생에서 뽀족이며 나를 찌르는 많은 세모와 네모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나'에 대해서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그래서 '나'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를 만들어가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우리', 꿈이 같았던 '우리', 공통점이 많았던 '우리'말이예요.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전혀 다른 것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들' 속에 들어가 '그들'에게 '우리'로 인정 받는 과정이 필요하죠. 공부를 열심히 한다. 친절해야 한다. 약자를 챙기고,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분명, 이런 '모범'의 정의가 존재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그들'의 '모범'은 내가 전혀 모르는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조직 문화'라던데, '문화'의 정의도 이제껏 알던 것과 다른 것 같죠.

그래도, 시계 속 부품이 무브먼트를 탈출하면 그저 무용한 알갱이에 불과하니, 사방의 톱니바퀴와 맞춰가며 모난 부분은 깎아내고 부족한 부분은 덧대가며 삽니다. 반듯한 네모들이 각 잡고 도열한 틈에, 똑같은 모양과 색깔에 네모가 되길 바라며 말이예요. 어느 순간 노력을 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고, 되려 누군가의 '다름'이 불편하게 느껴져 자연스레 비난을 하게 될 때, 아... 내가 네모가 됐구나!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해 지는 것은 세모였던 내가 썩 싫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당초, 세모가 더 좋은지 네모가 더 좋은지 내가 선택했었나? 그냥 네모로 살아야 할 줄 알았지. 그래서, 세모를 비난하다보다. 내가 못했는데, 누군가는 세모로 당당히 살까봐. 뭐, 그런 생각도 듭니다.

대학가는 아들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우성의 부모, 동성애를 고백한 아들에게 치료를 권하는 도영의 부모... 소름끼치게도 현생의 일면입니다. 오메가버스를 처음 접했을 때, 어쩌면 작가는 그 흔함을 판타지로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뀔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코 바뀌지 않는 것이 있어요. 자신의 경험만을 유일한 진실로 믿는 부모님의 생각입니다. 그분들의 살았던 삶은 바뀔 수 없고, 그 삶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 역시 바뀌지 않아요.

결국,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바꾸는 노력이 아니라 벗어나는 시도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눈뜨고 처음 본 사람도, 처음 꺼낸 말도,처음 먹은 음식도 가장 많이 먹은 밥도, 세상을 보는 안경이 되어준 사람 역시 부모님이죠. 부모님이 네모인 세상에 세모로 사는 것은 그래서 '잘 못 되었다.'로 쉽게 귀결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네모와 세모가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 꼭 한쪽이 변해야 할까요? 네모를 비난하는 세모도, 세모를 비난하는 네모도, 서로 바뀌라 다투는 그 논쟁들이 반드시 필요한 걸까요? '네가 네모인 세상'이 왜 '내가 세모인 세상'도 아니고 '네가 세모인 세상'도 아닐까요? 결국은, 없었던 것도 필요한 것도 '접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떠밀려가는 속도에 잠시 서서, 반대편을 직시하고 이해하려는 침묵의 시간말이예요.

어쩌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멀고 힘든 답만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시리어스 모드에도, '네가 네모인 세상'을 '시리어스물'이 아닌 '달달물'로 분류한 이유는, 두 편의 외전 때문입니다. 6남매 장남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막내 도련님의 본태성 귀염질(?)을 마음껏 감상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이해심과 돌봄을 탑재한 우성의 다정함은 말해 뭐하겠습니까? 포도당 사탕을 챙겨 먹지 않아도 정신이 번쩍 드는 달달로, 본편의 다소 씁쓸함을 입맛을 씻어 낼 수 있습니다. 마치, 잘 차려진 한상차림의 디저트처럼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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