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에피루스

출간일: 2020.10.07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그래, 범 같은 사람이 저를 사랑할 리가 없는데, 혹시 속 안에 엄마가 들어찬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선우는 범이 제 입 앞으로 랍스터를 발라 나르는 것까지 의심스러웠다. 말도 안되는 생각이긴 하지만 손가락을 들어 콕 하고 범의 볼을 찔러 보았다. 범이 쳐다보자 그 볼에 쪽 뽀뽀했다. 혹시 엄마야? 빙의했어? 마음으로 물었다.

"씨발. 안되겠다, 상 엎자."

'아, 우리 엄만 예쁜 말만 한다. 고로 엄마는 아니고 범이 맞다.'

선우는 엄마가 아니라 조금 실망했다가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범이 그냥 범인데도 저를 좋아한다. 귀신에 씌지 않은 멀쩡한 범이 맨 정신으로도 저를 좋아한다. 선우가 볼록 광대를 올렸다가 내렸다.

point 2 줄거리

 

기: 선우의 아버지는 카지노에게 도박으로 거액의 빚을 진 채 죽고, 선우는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카지노 VIP 라운지에서 접대부로 일한다. 20살 부터 갇혀 돈을 번 5년 동안 어머니는 죽었다. 선우는 빚을 갚자마자 일을 그만두고, 노쇠한 할머니를 돌본다. 선우는 돈을 벌어야 했지만 할머니의 곁을 오래 떠날 수 없었고, 결국 선우의 우성오메가 형질이 필요한 깡패 유회장의 막내아들인 범의 아이를 낳아주기로 한다. 선우는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한 아이를 출산 할 때까지 범의 집에 묵게 된다.

승: 우성 알파인 범과 선우 사이에서 무사히 우성 아이가 태어 날 수 있도록 유회장은 배려하지만, 고용인들은 고급창남 씨받이인 선우를 무시한다. 그래서 선우는 늘 식사량이 부족했지만, 눈치를 주는 돌봄 아줌마에게 말하지 못한다. 어느날 선우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한밤 중 내려와 냉장고를 뒤지고, 그 모습을 범에게 들킨다. 범은 예쁘고 처연한 선우에게 한 눈에 반한다. 그 날 이후 범은 돈과 먹을 것을 지불하고 선우에게 스킨쉽을 요구하는 나날이 지속된다.

전: 단순히 손님과 접대부라고 생각했던 범과 선우의 관계는, 점점 로맨틱하게 바뀐다. 범은 선우에게 다정했고 선우의 할머니도 살뜰히 챙긴다. 그리고 겉으로는 무심하고 태연하지만, 속으로 상처가 곪아 있는 선우를 보듬어 준다. 선우는 그런 범을 좋아하게 되고, 범의 청혼을 수락한다. 한편, 막내를 견재하기 위해 선우를 찾아 손지검을 한 둘째형 혁은 오른팔이 불구가 되고, 첫째형 랑은 선우의 출신을 빌미삼아 범의 신경을 긁다가 기절할 때까지 맞는다.

결: 선우와 태어날 아기를 위해 범은 깡패일을 그만두려한다. 그리고, 그 전에 선우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접대부 시절 고객들을 찾아 한명 한면 응징한다. 그런 범의 행보를 위협으로 느낀 랑은 선우를 찾아가, 할머니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범을 막으라고 협박한다. 욱한 선우는 병으로 랑을 내리치고 기절 한 후, 병원으로 실려 가서 출산한다. 범은 랑을 사고로 위장해 죽이고, 두 형 대신해 조직에 남게 된다. 출산-결혼-연애, 순서는 뒤바뀌었지만, 선우와 범은 연애를 하기로 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사람은 추억만으로 살 수 있다.

Dips님의 소돔성 리뷰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같은 작가, 유사 소재의 통시적 성장을 보는 일을 제법 즐거운 일 입니다. 막연히 '글이 좋아졌다.'라는 직관적 '감상' 보다는, 구체적으로 성장을 '확인' 할 수 있어서 말이죠. 마치 아이의 작아진 옷을 보며 자라난 키를 체감하는 기분입니다. 담레인님의 전작 '로튼 애플'과 '호랑이 굴'이 그렇습니다. 물론, 갈등의 전개와 해소는 아직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갈등이란 균형을 이루는 대척점 간의 힘싸움인데, 시소를 타기엔 이미 한 쪽이 지나치게 전능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호랑이 굴'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사건'보다는 '에피소드' 중심으로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자존감을 쉽게 '에고'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자아가 미약해 타인이나 외적 기준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지켜 낼 수 없다는 것을 말 할 겁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견고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도 불안감에 휩싸여 사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나'를 자신 안에서 찾지 못하고, 밖에서 헤메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자낮'이겠죠.

그런면에서 선우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입니다. 지켜야 할 존재도 잘 알고 있고, 미래 역시 스스로 선택합니다. 물론, 그 선택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을 겁니다. 누구도 빚쟁이 아버지의 부채를 위해 몸을 팔고 싶어 하지 않고, 폭력과 모멸에 노출 되고 싶어 하지 않죠. 하지만, 평범한 생활로 20년 안에 못 갚는 빛을 5년 안에 상환 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고, 어머니 때 처럼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사태를 차단하기 위해 씨받이를 선택해요. 그리고, 묵묵히 그 일을 해냅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라고 상처 받지 않는 것도 아니고 힘들지 않은 것도 아니예요. 그래도 선우는 내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불평하지 않고 받아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호랑이 굴이 위트 있고 달달한 소설임에도, 웃고 떠드는 선우의 모습조차도 짠~하더라고요. 특히, 배가 고파도 말도 못하고 눈치 보는 모습이요. 요즘은 전국민이 다이어트를 하는 시대인지, 쥐똥만큼 먹는 여자들이 많나 봅니다. 가끔 배식 식당을 가면, 여자라고 정말 새 모이만큼 떠주더군요. 고봉밥을 먹던 선우가 받은 밥상이 상상이 가서, 더 이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우는 배 속 아이와 늘 대화를 합니다. 접대부 출신, 우성 오메가 씨받이... 먹음직스러운 먹이는 범의 집 사람들에게 좋은 구경거리였죠. 선우는 눈칫밥을 주며 텃세 부리는 출산 도우미 아주머니와 외설스러운 말로 조롱을 일삼는 깍두리무리를 담담히 받아드리며, 다락방에서 유일한 친구인 태아와의 시간을 소중히 합니다. 그리고, 낳자마자 사라질 엄마보다는 아빠를 좋아하길 바라죠. 대부분의 일에 굳은살이 배겨 무감한 선우지만, 그래도 아이를 보내는 일은 많이 아파합니다.

그러던 선우 앞에 범이 나타납니다. 냉장고를 터는 예쁜 귀신을 우연히 만난 범은, 선우를 찾기 시작합니다. 선우에게 범은 VVVIP고객이었어요. 선우는 자신을 찾아 온 범에게 무엇을 해드리냐고 묻죠. 그리고 범은 자연스럽게 돈을 주고 선우에게 펠라를 받습니다. 물론, 보너스로 자두도 사다줍니다. 당연히 고객과 접대부인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 과정, 결국 '호랑이 굴'을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은 추억만으로 살 수 있다.' 저는 그것이 선우가 '버텨내는 힘'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사육장 동물처럼 갇혀 손님을 받느라 지키지 못한 어머니의 임종을 견디게 해 준 힘이었어요. 할머니와의 즐거웠던 기억이 다락방 건조한 생활에서도 웃을 수 있는 원동력이었죠. 배고픈 순간, 할머니가 해 줬던 맛있는 음식들을 생각하며 서러움을 추억으로 떨쳐 냈던 것처럼요.

그리고, 선우는 범과의 행복한 순간도 아이를 보지 못하게 되는 미래를 버티게 해 줄 추억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범이 선우를 꼬시기 위해 했던 노력들을, 선우는 그렇게 귀하게 받아 드립니다. 범과 간 드라이브, 바다, 맛있는 음식들 모두 말이예요. 그런 선우를 보면서 범은 '호구'가 되죠. 범은 늘 태연하고 냉정해 보일 정도로 무심한 선우의 상처를 엿보게 됩니다. 그리고 뒷조사를 통해 알게 된 선우의 삶은 너무 아팠어요. 본인이 깡패임에도, 사랑하는 선우를 괴롭힌 놈들은 죽일 놈이 되죠. 이런 클리셰는 흔한데, 유독 내로남불스럽다고 느껴진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말하는 것만 보면, 머리 속에 든건 '떡치기'밖에 없을 것 같은 일자무식인데... 실은 범은 엄청 똑똑했답니다. BL소설에 만능치트키 공은 많지만, '호랑이 굴'은 그 '과정'이 성경 수준이라 아쉽습니다. '신의 뜻'으로 모든 사건이 갈음되는 성경처럼, '공의 뜻'만으로 '디테일'없이 해결 되는 갈등을 갈등이라고 봐야하는지 모르겠네요. 아무리 싸움도 절대 지지 않고, 모략에 빠트릴 지언정 절대 당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 넘치는 돈이라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요. 어쨌든 선우의 출신, 선우를 견재하기 위한 집안 내 갈등, 선우를 무시하는 세력들은 일거에 해결 됩니다.

그럼에도, '호랑이 굴'은 재미있습니다. 유사 성행위까지 씬이라고 치자면, 정말 소설이 통으로 씬인 것 같은 다소 지치는 전개에도... '선우'와 '범'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입니다. 또, 킬탐으로 읽으면 킬탐용이고, 한없이 무겁게 보자면 또 고소와 냉소가 가득해지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주관적으로, 선우와 범이 꽁냥거리는 염병첨병 일화 중심의 유쾌한 어화둥둥 달달물로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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