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조은세상
출간일: 2016.11.16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제 곁에 있는 이들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진 말에 서인학은 침묵을 지켰다. 청우의 목소리만이 방 안을 고요히 맴돌았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또한, 무언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인학이 문득 눈썹을 치켜뜬다.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청우를 바라봤다. 청우가 그런 서인학과 눈을 맞추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제가 지켜야 할 이들이 슬퍼진다면, 그것이 제 반대편에 있는 자들을 위한 행동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순간, 서인학이 두 눈을 부릅떴다. 누군가 커다란 망치로 제 뒤통수를 세게 내리친 것 같았다. 머리가 얼얼했다. 충격으로 홉뜨인 눈이 청우를 향했다.
"그래서 해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지키고 싶은 이들이 슬퍼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이제는 제 어깨가 제법 무거워졌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청우가 단단하게 웃었다.
point 2 줄거리
기: 은제국의 4황자는 사고를 위장해 황위계승권이 있는 형제들을 죽이고, 힘없는 황제는 이를 막지 못한다. 마지막 남은 7황자, 청우를 구하고자 황제는, 속국인 연국의 새로운 왕, 건과 7황자의 국혼을 급히 진행한다. 얼떨결에 국모를 맞게 된 건은 청우를 박대하고,청우는 숨죽인채 살겠다고 한다. 그래서 의비가 된 청우는, 건의 후궁들에게 조롱을 받지만 참으려 한다. 하지만, 숙의 강씨가 실수로 청우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 이를 빌미로 건은 정치적 숙적을 제거한다.
승: 건은 딸인 영빈이 낳은 소명대군을 세자로 만드려는 영의정을 견제 해야 했다. 또한, 외척의 힘만 믿고 암투를 벌이는 후궁들로 인해 세자빈을 잃은 후, 그들을 궁에서 몰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건은 의비를 총애하는 것 처럼 가장하여, 시기심으로 의비를 해하려 하는 후궁과 외척들을 잘라낼 구실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청우는 그 계획에 동참하고, 둘은 연서와 선물을 주고 받으며, 애뜻한 연인을 연기한다. 한편, 세자빈 자살 후 패악질을 일삼는 소현대군을 보며, 청우는 그의 고독함을 발견한다.
전: 청우는 글을 배우겠다는 명분으로 소현대군을 돌보고, 까칠했던 소현대군도 청우의 따뜻함에 조금씩 감화된다. 그러던 중, 청우는 독이 든 차를 마시고 쓰러지고, 깨어나지 않는 청우를 본 건은 자신이 청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편, 은제국에서는 4황자가 황제로 등극을 반대하는 반란군이 역모를 꾸미고, 이들은 청우를 찾아와 황제가 되길 청한다. 건은 청우에게 마음을 쏟아내고, 청우는 건과 연국에 남아 있겠다고 화답한다. 두사람은 진짜 연인이 된다.
결: 청우가 구휼원을 운영하며 백성으로부터 명망이 높아지고 소현대군의 행실이 좋아지면서, 불안해진 영의정은 반란을 일으킨다. 건은 영의정의 반역을 예상했으나 시기를 맞추지 못해 수세에 몰리고, 의비는 소현대군을 보호하려다 다친다. 다행히 반란은 진압되고, 소현대군은 세자에 오른다. 하지만, 은제국의 황제는 남아 있는 유일한 황족인 청우를 죽이기 위해 살수를 보내고, 의비는 또 다친다. 건은 전쟁을 일으켜 은제국을 위협하고, 의비에 대한 공격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무거워지다.
참 예쁜 글을 쓰신 이윽고 작가님의 신작을 오랜 시간 기다려왔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어딘가, 제가 잘 모르는 플렛폼에서 글을 쓰고 계신 걸까요? BL이라든가, 연정소설이든가, 어떤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저 '연'이 막연히 읽고 싶어지는 날이 있어요. 그림을 보듯, 글에도 풍경이 깃드는데, 이윽고님의 글 속 풍경은 아련하고 그립습니다.
책임은 무겁습니다. 소속이 없이 떠도는 삶은 부유하는 먼지처럼 허무하겠지만, '이름'에 맞는 책임을 지고 사는 삶은 그 나름대로의 무게를 감내해야하죠. 물론, 책임을 회피하고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한때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화가 났고,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책임이라는 것을 지기에 그 그릇이 작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책임이라는 것은 나날이 무거워지지만, 쉽사리 가벼워지지는 않죠. 뭐.. 그래도, 무책임 한 사람을 좋아 할 수 없긴 합니다.
은제국의 7황자 청우는 무거워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미, 권력암투에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인 황제는 늙고 나약해졌죠. 4황자에게 죽을 순서를 기다리면서, 죽은 후에 남아 있을 것들이 무겁게 느껴졌어요. 그것이, 애정이든 사람이든 말입니다. 연기처럼 사라져, 무엇도 남기지 않는, 소리 죽인 삶을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그나마 자신이 가진 것들에 대한 책임있는 행동이라고 여기면서 말이예요.
황제는 홀로 남은 7황자만은 지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양위로 왕에 오르게 된 연국의 세자 건과의 국혼을 밀어부칩니다. 4황자도, 7황자도, 심지어 건조차 알지 못한 갑작스러운 국혼으로 인해, 7황자는 4황자의 마수에서 벗어나죠. 하지만, 7황자는 연국으로 떠나는 길, 은제국에서 7황자로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놓고 갑니다. 심지어, 일생 자신에게 시중을 들었던 시비들 조차도 데려가지 않습니다.
청우에게 연국에서 의비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라기 보다는 자식을 살리고자 아버지의 마지막 수 였을 뿐이니까요. 언제든 4황자에게 노려 질 수 있었고, 갑작스러운 국혼에 건이 못마땅해야하는 것도 알고 있었죠. 하지만, 아버지의 짐을 덜기 위해 떠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곳에서 역시 숨죽여 사는 삶이 변할거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청우는 소현대군을 만납니다. 암투로 어머니를 잃고, 언제든 죽임 당할 수 있는 황궁 안에서, 의지 할 사람 없이 홀로 미쳐가고 있는 8살의 어린아이를 봅니다. 청우는 소현대군이 보이는 거친 행동이 고독에 압사 당하기 전의 몸부림이라는 걸 알아요. 청우는 소현대군을 다독이고 보살피면서, 비오는 날이면 공포에 잠 못드는 소년을 세자로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또, 길거리에 고아 아이조차 동생을 지키기 위해 의지를 다지는 것을 보죠.
청우는 바라는 것을 위해 움직입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로써 가벼워 지기 위해 노력했던 청우 삶이, 무거워 집니다. 소현대군과 건, 구휼원의 아이들, 자신이 죽으면 슬퍼할 사람들을 기꺼이 헤아립니다. 그 수만큼 무거워진 삶을 살고자 선택하죠. 그 의지를 가집니다.
피구왕 통키와 축구왕 슛돌이가 가진 것 중에 제일 탐났던 것은, 그들의 천재적 재능이 아니라 거친폭풍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목표였어요. 저는 언제나 '합리적'이고 '효육적' 선택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동가홍상이라고 '좋은 것'을 찾았지 '원하는 것'을 따라 살지는 못한 것 같아요. '싫어 하는 것'은 확실히 알겠는데, '원하는 것'은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무겁지도 않았습니다.
언제든 떠날 수 있고, 그만 둘 수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강한 책임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래서, 절대적 목표를 가진 사람일 수록, 원하는 바가 대체불가능한 유일무이한 것일 수록, 어깨가 무거워지는 거겠죠.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처럼요. 어쩌면 무거워진다는 것은 힘들지만, 그 만큼 가치있는 삶의 반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우는 각궁도 능숙하게 다루고, 검초식과 시서화에도 재능이 있었죠.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이 많았어요. 그 책임 질 수 있는 그릇은 이미 작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연국에서 청우가 그저 살아있기를 바랐지만, 청우가 그곳에서 얻었던 것은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무거워 질 용기였어요.
무거워지다. 귀하고 친애하는 것이 늘어날수록 삶은 더 무거워집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게 소중한 것들을 지는 어깨가 쉽고 가벼울리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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