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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8.04 [현대물/피폐물] 폼리스(Formless) - 원리드

출판사: BLYNUE

출간일: 2020.05.13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자잘한 유리 조각들은 천장에 달린 화려한 조명을 반사하며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거렸다. 희운은 그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온전한 형태를 띠었을 때보다, 부서졌을 때 더욱 반짝인다는 것이.

 

 

 

point 2 줄거리

 

: 빚만 남겨 놓고 죽은 아빠, 유약한 엄마, 돈 갖고 튀어 버린 형, 사채이자를 갚기 위해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과외 학생한테 눈총 받아도 사과 밖에 할 줄 모르는 소심한 희운은 자신과 전혀 다른 후배 강우를 스토킹한다. 그러다, 희운은 강우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강우에게 강간과 협박을 당하게 된다.

 

: 강우는 뒷세계 큰손인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에게 반발하여 자수성가한 사업가 아버지 중 할아버지의 일을 돕고 있는 겉만 멀쩡한 대학생이다. 어느날부터 자신을 스토킹 하기 시작한 햄스터 같은 작고 약한 선배를 소유하고 싶은 열망을 느낀다. 하지만, 희운을 최대한 다정하고 세심하게 챙겨 줬음에도, 그 선배는 늘 자신을 무서워하고, 둘의 관계를 강압에 의한 일방적 관계로 치부한다.

 

: 강우는 희운을 완전히 갖기 위해서 계획을 세운다. 희운에게는 아주 저질의 사채업자와 그보다 더 저질인 친형이 있었다. 강우는 희운이 장기가 팔리기 직전에 희운을 구해내고, 희운을 완전히 묶어 두는데 성공한다.

 

: 희운은 그런 강우에게 조금씩 물들기 시작한다. 도망을 포기한 초식동물에게 육식동물은 한없이 너그러워 졌고, 희운 역시 언제나 무섭기만 보이던 강우에게 보호받는다는 안정감과 애정을 느낀다. 이렇게, 이들은 이빨이 다 썩어 문들어 질 것 같은 염병천병 달달한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길의 끝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길

 

살다보면, 이보다 바닥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왜 불행은 손잡고 몰아 오는지... 그럼에도 어떻게든 버텨봅니다. 끝은 안보이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명언을 되세기며, 이 또한 반드시 끝이 있으리라... 그렇게, 이제 끝이 나가나싶을 때 더 나쁜 상황으로 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닥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바닥 조차 없는 낭떨어지였음을 깨닫게 되죠. 이제는 에라모르겠다. 나를 구원할 메시아나 백마탄 왕자가 나타나든가, 아니면 나는 되는데로 구르며 살란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토록 힘들게 손에 쥐고 있던 것을, 허무하게 놓아 버리고 싶어져요. 정확히는 더 이상 쥐고 있을 힘이 없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피폐물에는 이런 상황이 많이 등장합니다. 수가 이보다 박복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상황에 처합니다. 일단, 부모는 없거나 없는것보다 못하고,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고독한 어린시절을 보내며, 그로인해서 신체든 정신이든 병들거나 비정상적인 상태로 성장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매우 비인간적인(?)인 공의 피폐하고 독한(?) 욕구의 대상이 되죠. 수가 불쌍하면 불쌍 할 수록 피폐물의 자극도는 올라가기에, 굴림수보다 더 조마조마하며 보게 되는 작품들도 많지요. 이런 점에서 폼리스는 묘~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었어요.

강우는 희운을 참 잘 때립니다. '잘'이라는 것은 많이 때리거나 쎄게 때린다기 보다는, 공포스럽게 때립니다. 두번 다시 자신을 거스르게 하지 못하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천성적인 깡패인 셈이죠. 다 해결 해 줄 수 있으면서도, 해결 해 주지 않습니다. 생활비랑 카드는 주지만, 거액의 빚은 갚아주지 않죠. 희운이 엄마가 사는 월세방에 에어컨이 없어 걱정하면 에어컨은 달아 주지만, 아파트는 사주지 않아요. 물론, 이 조차 가스라이팅의 한 부분이지만, 요는 희운도 요청하지 않고, 오히려 희운이 점점 인간다운 삶의 시작한다는 거예요.

밥을 늘 굶고 다니는 희운이 초코렛을 사 먹기 시작하고, 공부하거나 과외하지 않은 모든 시간은 쉬기 바빴던 희운이 영화관을 가고 싶어하고, 운동화가 낡은 것을 발견하고, 자신을 도와 준 이모에게 스카프를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죠. 희운은 그 지옥같은 깜깜한 상황 속에서 '일상'을 살기 시작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사육(?)하고 있는 이 폭력적인 후배를 만나고부터 그렇게 변하기 시작하죠. 그것은 강우가 희운을 구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선의의 구원자도 아니고, 그가 희운에게 해준 것들이 그런 결과를 예정한 것도 아닌데 말이예요.

강우는 금이가서 간신이 버티고 있는 희운이라는 유리창을 부셔버린 무법자입니다. 이제는 그나마 있었던 유리창도 없으니, 겨울 칼바람은 막을 수 없고, 분명히 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겠구나 생각 할 지 몰라요. 그런데, 깨진 유리들이 반짝이며 한 편의 명화같은 콜라쥬가 되었던거죠. 때론 부서지고 깨지는 것이 더욱 완전하고 찬란해 질 수 있다. 모두가 유리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끝이 되어야만 시작하는 삶이 있다. 길의 끝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길이 있다 말해 주는 것 같죠.

계략공에 의해 함정에 걸린 굴림수를 다룬 작품들에서는, 그 계략이 들어나는지 아닌지에 따라 해피엔딩과 배드엔딩이 나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열린결말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책을 완독하면, 뭐랄까요.., 기분이 좋습니다. 완벽한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빚은 여전히 갚았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가족들이랑은 함께 살지도 못하고, 강우가 마음에 안들면 학교는 언제든 그만두고, 집 안에 갖혀 있어야 하죠. 강우의 표정과 문자에 전전긍긍한 생활이지만... 어떻습니까? 희운에게는 그런 삶이 선택이었고, 그 선택이 나에게 준 것은 '무엇이 하고 싶다.' 혹은 '잘 살아도 된다.'는 '정상'의 '희망'인걸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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