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비애노블

출간일: 2018.07.20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한철아, 사람이 꿈을 위해서 사는 거냐, 사람을 위해서 꿈이 있는 거냐."

박한철은 대답이 없다.

"너한테 내가 어떤 존재인지는 잘 알지만, 그래 봐야 우린 세상 앞에 다 핏덩이인 어린애들이야. 미래에 대해서 우리가 뭘 알겠냐. 지금 자신의 감정과 신념에 최대한 솔직하게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뿐인 거지. 꿈이 변했다고 해서 내가 다른 인간이 된 게 아니야."

스스로를 고정된 존재로 여기기 쉽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은 매 순간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꾸었던 낡은 꿈으로 현재와 미래의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의도야말로 위험하지 않을까. 현재의 자신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면밀하게 살펴 나가는 그 과정이 삶이 아닐까. 변화의 흐름 속에 놓인 핏덩이에 불과한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볼 뿐이다.

"그리고 너, 예전 내 꿈의 진짜 허점이 뭔지 아냐?"

박한철은 나에게 허점 같은 게 없다고 믿는 놈이었다. 그런 믿음이 나를 더 일으켜 세워준 것도 사실이었지만, 가끔은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합쳐진 복잡한 관계가 바로 가족이겠지.

"사랑은 둘이서 하는 거고, 가정도 둘이서 꾸리는 건데, 난 내가 누구와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면서, 사랑의 방식과 형태를 혼자 미리 정해 뒀다는 거야. 아마 사랑을 안 해봤기 때문에 그랬겠지."

사랑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내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안다미로의 얼굴이 떠올랐다. 예전에 나는 사랑의 감정을 떠올릴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방식만을 생각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사랑은 이렇게 해주고 저렇게 해줘야지, 하는 계획이 아니었다. 안다미로라는 구체적인 인간을 중심으로 다시 구축되는 삶 자체였다. 나 같은 놈에게 그게 어떤 행복인지, 안다미로는 알까.

point 2 줄거리

기: 시설에서 동생 한철과 독립한 19세 최무이는 중식집 대흥각 배달원 면접을 보고, 마의 진상 VIP 고객 124 맨션 펜트하우스 배달을 성공하며 채용된다. 속칭, 124맨션 또라이로 불리는 21세 안다미로는 D건설사 막내아들로, 망나니 게이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다. 어느날, 맛 좋은 대흥각 짬뽕 배달을 온 잘생긴, 일반인 형아에 흥미를 느낀다. 하지만, 잘빠진 아들(?)을 보여줘도, 라이브 자위쇼를 해도, 300만 원짜리 파카를 선물해도 이 형아는 요지부동이다.

승: 안다미로는 정글 같은 집 안에서 우아하고 과묵한 첫째 형을 짝사랑했다. 한편, 다미로는 중학교 시절 상류층 자제들이 모인 게이 클럽 다비드에서 첫동정도 떼고 연애도 한다. 그러던 중 첫째 형에게 키스하는 모습을 들키고, 형은 다미로를 보호하며 통제한다. 형의 그런 관심이 좋았던 다미로는 부푼 마음을 형의 그림을 그리며 풀었고, 그 결과물을 형에게 들킨다. 하지만, 형은 묵인한채 결혼하고, 딸 다미를 낳았으며, 이혼했지만 재혼할 예정이다.

전: 한편, 다미로는 무이를 꼬시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반면, 무이는 엉뚱한 짓을 일삼으며 눈앞에 알짱거리는 무개념 도련님이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무이는 곧 다미로는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방만한 성생활에 절여진 늑대소년에게 다른 즐거움을 알려주기 위해, 쉽게 함락당해주지 않는다. 사랑의 신세계에 몸달은 다미로와 이런 무이가 밀당하는 사이, 다미로는 다비드 멤버들과 약에 취해 난잡해진 모습을 무이에게 들킨다.

결: 무이는 다미로에게 독설을 내뱉고, 124맨션에 배달도 가지 않는다. 그러던 중 무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다미로는 무이의 판잣집에서 수발을 들며 반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무이의 동생 한철이 둘의 정사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난관에 부딪친다. 동시에, 이 반동거를 알게 된 다미로의 첫째 형은 역시, 다미로를 유학 보내려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의외로 쉽게 가족들을 설득한다. 그 후 무이는 소설가로 데뷔하고, 다미로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시작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 진짜 너희 나이를 말해봐!

김다윗님하면 차가운 도시를 배경으로 한 관능적 씬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전체적으로 차갑고, 날카롭고, 세련된 느낌... 씬장인으로 불리는 작가님들이 많으시지만, 이런 풍의 정사씬은 김다윗님이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봄보로봄봄'은 의외로 따뜻하고 유쾌한 작품이에요. 물론, 이 작품에서도 시크, 도도, 엣지의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저는 김다윗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내가 얼마나 잘 쓰는지 보여줄게'라는 목소리를 들리는 듯해요. 거만하다기보다는, 자신만만하고 거침없는 필법이라는 인상에 더 가깝죠. 문장에서 여유가 느껴져요. 얼마나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은지,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많은지, 벼르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풀어내는 법에 비해 풀어내는 알맹이는 좀 아쉽습니다.

'봄보로봄봄'은 극과 극의 공수가 만나,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쌍방구원물이자 쌍방성장물입니다. 흔한 클리셰긴 하지만, 극단의 삶을 살고 있는 두 사람이 '보통의 행복'을 찾아가는 개연성이 쫀쫀하고 찰지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많이 가지고 있는 쪽이, 많이 가지지 못한 쪽에게 시혜적 베풂을 내리고, 그 대가로 애정을 얻는 할리킹물이 아닙니다. 돈 많고 철없는 도련님은 첫째 형을 마음에서 떠나보냈고, 염세적 냉소적이었던 고아 소년은 소설가가 되었죠. 두 사람의 보금자리는 124 맨션 펜트하우스가 아닌, 판자촌에 더 가깝습니다.

할리킹이 보여주는 신데렐라 판타지도 좋습니다. 가진 게 많아서, 내 님에게 주겠다는데 그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주는 것보다 어려운 '공유하는 것'에 깨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더 좋아합니다. 다미로처럼 말이에요. 무이의 공간을 공유하고, 동생을 이해하고, 그의 삶을 공감해 주고, 선택을 존중해 줘요. 판잣집보다 좋은 집을 사주는 것이 더 쉽고, 동생 알바를 묵인해 주는 것보다 노트북 값을 주는 것이 더 쉽고, 배달을 그만두고 소설 쓰게 해주는 것이 더 쉽지만, 그렇게 하지 않죠.

다만, 읽는 내내 적응이 안 됐던 것은 이들의 '나이'입니다. 무이는 헐벗은 남자의 무리들 사이에서도, 돈 많고 태가 다른 상류층의 거만함 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아요. 또, 본능적이고 육감적인 사랑을 너머, 그 사람의 습관과 진로의 방향성이라는 장기적 시점도 고찰해요. 게다가, 극강의 소유욕과 독점욕을 느끼면서도, 다미로가 엔조이 게이 라이프를 단 번에 끊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고, 본인의 거친 언사와 분노를 자제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19살 이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설 생활로 인해 눈치가 발달했고, 폭력 사건을 일으켜 퇴학 당할 정도로 뜨거운 가슴이지만, 반대로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킬 만큼 주관이 뚜렷한 성격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를 참작해도 이것이 정말 19세의 생각이고 행동인가...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다미로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재벌이고 15세에 동정을 뗀 선구자(?)라고 하지만, 21살 나이에 그렇게 많은 경험과 유명세를 가진 게이가 될 수 있을까? 심지어, 다미로가 중학교 때 활동했던 다비드는 비밀 클럽 아니던가요? 게이 클럽, 게이 바 할 것 없이 이 정도의 입지(?)를 가지기 위해서는, 정말 24시간이 모자랄 듯 해요. 물리적 한계도 있는데, 분신술을 쓰지 않고서는, 이 정도의 경험과 노련미는... 그저 대단한 게이라고 인정을 해줘야 하나 싶어요.

다미로의 절친이 무이의 판잣집에서 사회적 지위와 한계에 대해서 설교를 늘여 놓는 장면에서도, 21살이라고 생각하니... 심각한 장면인데도, 묘하게 귀여워 보이더라고요. 어쨌든, 문득문득 나이가 떠오르면 몰입에 방해가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이는 25살, 다미로는 28살이라고 바꿔 생각하고 읽으니, 편안하더라고요.

더불어, 갈등 부분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미로와 첫째 형의 관계는, 무이와는 또 다른 극과 극의 관계였죠. 모범적이지 않아 기대를 받지 못하고, 그 덕에 자유로운 다미로와 모범적이고 우월하지만, 덕에 선택 없는 삶을 살아야 했던 첫째 형... 배다른 두 형제 사이에 애정은 있었지만, 다미로의 것은 성애였고 형의 것은 우애였어요. 형은 다미로를 보호하고 싶어 했고, 다미로는 형에게 관심받고 싶었지만, 둘 다 이루었다고 볼 수도 있고, 모두 이루지 못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다미로에게는 유일하게 진지하고, 인내하고, 상처 입은 사건이었지만, 이런 형과의 갈등은 좀 어이없이 풀립니다. 형의 진심이 담긴 편지 한 장과, 다미로의 설득으로 말이죠. 오히려, 한철과 무이의 갈등이 좀 더 밀도 있게 다루어진 느낌입니다. 다미로는 과거 형에 대한 마음을 정신적 외도라고 생각했고, 형의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 이혼, 다미의 출생, 재혼, 각각의 계기마다 양가적 심정에 혼란을 겪었죠. 그런데, 그에 비해 허무한 마무리였습니다. 다미로와 형이 가지고 있는 깊고 오래된 이야기들이, 급하게 봉합 된 것 같았어요.

그럼에도, '봄보로봄봄'이 가지고 있는 재미를 모른척하기는 쉽지 않아요. 김다윗님의 현재 연재작 '초이스 오브 초이시스'와 비교 할 때, 확실히 초기 작품이기 때문인지 힘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들인 작품임을 틀림 없는 듯 합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수려한

출간일: 2019.03.14

분량: 본편 4권

 

point 1 책갈피

"저... 형들 만나서 정말 좋아졌어요. 걸레라는 별명이 준 트라우마 때문에 목욕 시간이 오래 걸렸거든요. 근데 요즘은 목욕하는 데 10분밖에 안 걸려요. 악몽을 자주 꿨는데, 요즘은 잘 안 꾸고요."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문제지 볼 때마다, 글자가 흔들려서 수능 볼 엄두도 못 냈었는데, 이렇게 시험도 잘 봤어요. 다 형들 만나고 변한 거예요. 그리고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두 분 다 제 은인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이런 솔직한 말이 서툰 윤원의 흰 얼굴에는 가득 홍조가 돌았다. 귓불은 이미 터질 듯 새빨개져 있었다.

point 2 줄거리

: 윤원은 오메가를 혐오한 어머니 탓에, 오메가로 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밝히지 못한다. 그런 윤원은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학창 시절 지독한 학교폭력에 시달렸고, 그 트라우마의 여파로 수능을 망친 채 편의점 알바를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원의 어머니는 은퇴한 재벌 서승택과 재혼을 하고, 윤원은 서회장의 후계자인 장남 서정후와 천재 대학원생 차남 서건민과 한 집에 살게 된다.

승: 정후는 귀여운 동생 윤원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소극적이고 낯을 가리는 윤원을 살뜰히 챙긴다. 반면, 건민은 윤원을 박대하며,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후는 자신에게 서서히 곁을 주며 마음을 여는 윤원에게 보호자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건민 역시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윤원에게 생경한 욕구를 느낀다. 그러다 윤원의 히트에 두 형제가 동시에 휘말리면서, 윤원 쟁탈전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전: 윤원에 대해 알아가면서, 두 형제는 윤원이 방임과 학교 폭력에 시달렸고, 그 어떤 치료도 받지 못해 심신이 망가져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재수 학원을 다니게 된 윤원은, 그곳에서 과거 자신을 괴롭히던 민규과 만나고, 재발한 트라우마로 몽유병을 앓는다. 민규가 주동자 태욱에게 윤원의 거취를 알리면서, 윤원의 상태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정후는 윤원을 설득해 태욱과 패거리를 고소하고, 윤원은 학원을 그만둔다.

결: 윤원의 사정을 알게 된 승택은, 아내의 본성을 깨닫고 그녀와 이혼한다. 정후는 윤원을 위해 지금까지 쌓아 온 것들을 버리려 하고, 건민은 정후와 정후를 좋아하는 윤원을 보며, 윤원을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형들을 좋아한 윤원은 형들의 희생이 싫었고, 결국 도망친다. 정후와 건민은 서로에게 폭발하여 그간 쌓인 응어리를 풀어내고, 합의점(?)을 찾아 윤원을 데리고 온다. 세 사람은 평화로운 동거를 시작하고, 윤원은 우수한 성적을 받아 명문대생이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상처 준 사람은 없고, 상처받은 사람만 있는 세상

'슬로우 데미지'의 기대치는 0였습니다. 1권을 시작한 저의 표정은 (=_=)였죠. 일단, 잉? 윤원? 표지 일러스트부터 도입부의 뻔한 전개, 평이한 서사... 관성에 의한 구매, 그 끝이 씁쓸했던 여러 케이스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읽다 보니 형제들의 티카타카와 윤원의 꼼지락이 너무 귀여웠어요. 그리고, 비현실적 존잘님들이 신데렐라 간택하는 할리킹이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인 형제가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숨겨왔던 자아를 찾아가는 스토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물론, 소심하고 착하지만 자존감은 심해 바닥보다 낮게 깔려 있는, 상처수의 구원물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또 계속 읽다 보니, 그것만이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저의 표정은 (+~+) 변했어요. 이 소설 속에서 자낮수는 단순히 무한한 공의 사랑을 받아 밝아지는 것이 아니었고, 원래 잘난 공들은 진심 어린 애정, 단 하나만이 부족한 이들도 아니었습니다. 윤원은 자신의 오랜 상처를 해결해 준 정후를 스스로 떠나고, 정후와 건민은 인생에 미뤄둔 숙제를 끝내고 나서야 윤원을 얻을 수 있었죠. 참 잘 짜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슬로우 데미지'에서 가장 감탄한 부분은 인물 묘사였어요. 전형적인 듯 보이지만, 개성 있고 일관된 캐릭터가 잘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이소 작가님의 '개 같은 베이비'와 비교해 봤을 때, 정말 엄청난 변화로 느껴졌습니다. 오메가버스, 집 안의 차별, 재벌물, 구원물 이라는 유사한 클리셰임에도, '슬로우 데미지'가 훨씬 설득력 있고 흡입력 있는 작품이었어요.

세상에 상처받았다는 사람은 많지만, 상처 줬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상하죠?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으면 준 사람도 있을 텐데, 모두는 피해자이고 위로가 필요합니다. 몇몇 가해의 기억도 실수로 치부하거나 반성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요.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고, 세상엔 나보다 나쁜 사람도 많다고 믿으면서요. 불행의 원인을 나의 과오보다, 그저 권력도 돈도 없는 사회적 지위에서 찾고, 억울해 하기도 합니다.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객관적으로 보일 만도 하지만, 늘 그 한가운데 있을 때는 그 실상을 깨닫지 못해요. 그렇게 속세의 수레바퀴는 돌고 도나 봅니다.

윤원의 어머니는 피해자예요. 남자 오메가와 바람난 남편으로 인해, 졸지에 외벌이로 아들을 키워야 했죠. 아들을 짐짝처럼 여기고, 그 아들이 괴로움에 허덕이는 것을 무시하지만, 그래도 자식을 때리거나 버리는 사람보다는 낮다고 여겼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재벌을 만나 재혼하기까지 했으니, 윤원은 평생 갖지 못할 부를 자신 때문에 누려보는 거였어요. 그래서, 아들에게 부채가 없다고 여기는 어머니는, 아들의 끔찍한 학교폭력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도, 그 아들을 위로하기보다는 남편에게 자신을 변호해 주길 바라죠.

정후와 건민의 아버지 역시 피해자입니다. 가족을 중요히 여기는 서승택은, 아내 없이 아들들을 훌륭하게 키웠지만, 아들들은 자신에게 박대합니다. 첫째 아들은 회사 경영권을 승계 받은 이후에, 무능하지만 자신이 아꼈던 동생을 내치고, 자신과 다른 스타일로 경영을 하죠. 결혼은 하지도 않고, 결혼 전에 분가 불가의 명을 어기고 웬 남자와 정분이 나서 집을 나가겠다고 합니다. 둘째 아들은, 가족 모임은 고사하고, 말은 귓등으로 듣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왜 아들들이 어머니의 애정에 목말랐고, 그 관심을 독점하기 위해서 어떤 상처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요.

정후와 건민 역시 피해자죠. 정후는 권리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일생을 살아요. 그러면서도, 모난 동생의 뒤처리를 도맡으며, 의젓한 장남의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관심은 하고 싶은 것 다하는 건민에게 향하고, 이렇게 노력해도 아버지는 늘 부족하다 여깁니다. 건민은 애당초 형에게 모든 걸 빼앗겼다고 생각합니다. 후계자의 지위, 어머니의 관심, 그리고 윤원의 사랑까지 말이에요. 그저 자신은 곁방에서 좋아하는 로봇만을, 조용히 만들며 살 뿐이라고요.

어째 죄인은 윤원 한 사람뿐인 듯 합니다. 또, 어머니를 이해하는 것도, 승택의 부를 누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도, 애정을 받는 것에 감사하는 것도 윤원 혼자인 것 같아요. 윤원 인생 그 자체는 만신창이인데 말이죠. 윤원은 어머니에게도, 학교 폭력 가해자들에게도 사과받지 못합니다. 그들은 나름의 인과응보를 당하지만, 그 결과에서조차 그들은 억울한 피해자를 자처해요.

윤원은 오메가라는 사실을 숨긴 채, 부실한 영양 상태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오랜 기간 억제제를 먹고 소취제를 뿌리며 살았어요. 그래서, 오메가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했고, 엉망인 몸은 폭탄처럼 히트를 터트립니다. 거기에 휘말려, 알파인 형들과 잠자리를 하게 되죠. 형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다정하고 상량했지만, 정후는 맞선을 보러 다녔고 건민은 친절하지 않았어요. 윤원은 우유부단하게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면서도, 정착할 근거를 찾지 못합니다.

윤원이 어머니의 요청을 자르고, 승택의 집을 나오며, 정후의 고백을 거절하는 결정을 하는 부분이 저에게는 피크 타임이었습니다. 자낮수가 자존감을 찾는다는 차원이라기보다는, 윤원이 사라진 뒤 나머지 인물들이 어떻게 변할지가 궁금했거든요. 물론, 해피엔딩을 위해서, 예상 가능한 전개로 이어집니다. 어머니는 현실을 도피하며, 승택은 경영권 일부를 돌려받고, 정후는 영화사를 인수하죠. 더불어, 세 사람은 공존과 균형을 이룩합니다.

분명 '슬로우 데미지'는 할링킹입니다. 권선징악의 룰에 따라, 달달물로 끝나는 구원과 성장의 스토리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로우 데미지'라는 제목이, 천천히 끓는 물에 죽어가는 개구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뜨거운 물은 피해지 의식인지도 몰라요. 아픈 것은 감각이고, 아프게 한 것은 인식이니, 당연히 머리보다 촉각이 예민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 감각에만 취해 있으면 칼의 휘두르고도, 사회를 탓하는 망상가가 될지도 모릅니다. 비커를 뛰쳐나온 개구리에게 필요한 건, 비단 용기뿐만은 아닐 거예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BLYNUE 블리뉴

출간일: 2020.03.25

분량: 본편 1권

 

 

 

point 1 책갈피

"형은 나밖에 모르잖아. 나만 보면 발정하고. 아니야?"

"맞...아."

"내가 아니면 말라죽을 거지? 불쌍하게."

채우를 불쌍하다 말하는 이현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이미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 채우와는 대조적인 얼굴이었다. 그야말로 신과 신도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그것이 비록 만들어진 신이라고 하더라도 믿는 자 앞에서 그 신은 진실된 신이었다.

"으흑..."

"그러니 내가 형을 가져줄게. 형은 그냥 지금처럼, 나만 원하면 돼. 쉽지?"

이현의 손이 머리를 쓸어 넘기곤 이내 이마에 입을 가볍게 맞춰주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소유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지금처럼 있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채우에게 이현을 원하는 것은 쉼 쉬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그냥 당연하게 살아있으면 자신을 소유해 주겠다고 하는 이현은 채우에게 있어 다정한 신이나 다름없었다.

point 2 줄거리

기: 16살 채우는 10살의 이현을 만난다. 채우는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세상에, 단 하나에 아름답고 찬란한 존재를 발견한다. 그 후 채우는 오로지 이현에게만 집착하며 가까이 지낸다. 이성적 애정이나 형제의 우애로 설명할 수 없는 맹목적인 관계였지만, 이현의 친누나 우현을 제외하고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나마 우현마저 성인이 되어 독립하면서, 채우와 이현의 이런 관계를 계속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23살의 이현에게 여자친구가 생긴다.

승: 채우는 이현에게 최면을 통해,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이전처럼 자신만을 바라보도록 암시를 건다. 하지만, 최면 중 이현과 키스하게 되고, 채우는 성적 쾌락에 빠져든다. 채우는 완벽한 생명체인 이현의 온몸을 핥고, 이현에게 하인처럼 복종하면서, 사랑을 구걸한다. 그리고, 최면에 깨어난 이현과는 일상적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성애의 열락에 들뜬 몸은, 최면이라는 무기를 얻어, 점점 깊은 쾌락의 늪으로 빠지기만한다.

전: 채우는 최면에 걸린 이현과 섹스를 하며, 완벽한 피조물을 받아들이는 황홀감에 느낀다. 그 뒤 채우는 기구를 사용한 야외 섹스부터, BDSM, 여장 코스튬 섹스까지, 다양한 섹스를 시도한다. 그리고 암시에 걸린 이현 역시, 채우에 대한 집착이 점점 심해진다. 한편, 채우는 이현에게 최면을 걸고 섹스하는 것에 중독돼 그만두지 못하면서도, 완벽한 이현을 망가트리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결: 채우는 이런 중독을 끊어내기 위해, 최면상태의 이현에게 죽을 것처럼 때려달라고 요청한다. 늘 암시에 따르던 이현은, 채우에게 못한다고 말한다. 그날 이후 이현을 만나지 않은 채우는 이 비정상적인 관계를 끝내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이현에게 최면을 걸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자 한다. 하지만, 우현에 의해 실패하고, 이현이 최면에 걸린 적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채우를 소유하겠다는 이현에게, 채우는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드디어 호!박!곰!

하드코어의 명가, 호박곰님의 작품을 드디어 리뷰하게 되었네요! 두둥! 진지충의 Review로 하드코어를 써봐야지~ 생각했을 때, 당연히 호박곰님 작품을 먼저 떠올렸지만, 결국 망태기님의 '욕망 형제'를 썼었죠. 그 이유는 호박곰님의 작품에 지뢰가 많기 때문이었어요. 그 리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하드코어 작품 선택의 최대 난제는, 바로 호불호와 개취가 지나치게 강한 '지뢰요소'를 잘 가려내는 것입니다.

호박곰님 작품의 총체적 지뢰요소 활용(?)은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가장 대표적인 지뢰요소는 '자보드립'입니다. 핥고, 먹고, 맞는 것은 당연하고, 에그나 요도 플래그 같은 기구 사용이나, 처녀드립도 있어요. 장내배설은 없는, 배설 플레이는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것이 10만 자, 단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중 나의 지뢰가 없다면, 제대로 된 하드코어물을 즐기 실 수 있습니다. 하드코어의 매력은 비일상적이고 특이한 소재를, 자극적이고 빻빻한 빨간맛으로 읽을 수 있다는 거예요. 씁쓸한 현실을 반추하게 되는 피폐는 싫지만 빨간맛은 좋다!라고 생각하신다면, It's 따뜻한 쓰레기통 time!

'만들어진 신'은 L이 꼭 필요한 독자나 스토리가 중요한 독자에게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을 듯합니다. 일단, 채우가 최면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장면에서, 이현이 최면에 안 걸렸다는 결말이 예상됩니다. 그러면, 최면에 걸리지 않은 이현과의 대화와 최면에 걸린 이현과의 대화를 보고, 이현이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죠. 결국, 최면이라는 설정은 더 이상 배덕감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채우의 감정 변화선을 따라가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채우는 무기력, 무관심, 무반응의 정서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부모도 이상하다고 여기고 있고, 정상적인 인간관계로 맺지 못하고 살았죠. 그런 채우의 눈에, 처음으로 심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완벽한 피조물이 나타납니다. 그건 나르시스가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나르시시즘을 느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자신 이외의 존재를 하등하게 여기던 채우에게, 자신보다 우월한 절대자가 등장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현이 여자친구가 생기고 나서 느끼는 채우의 절박함은, 사랑을 빼앗긴 고통이라기보다는 완벽한 존재의 훼손 혹은 이현을 만나기 전 무채색의 세계로의 회귀였을지도 모릅니다. 채우가 바란 것은, 이전처럼 '나만의 이현'으로 돌리는 일뿐이었어요. 하지만, 암시에 걸린 이현과 키스를 하게 되고, 채우의 성욕은 깨어납니다. 그리고, 여자친구와 키스만 했다는 이현의 말을 듣고, 입술 이외 이현의 '처음'을 가지고 싶은 욕망을 느낍니다.

그래서 채우는 이현의 몸을 핥고, 타인이라면 더럽다고 생각하는 행동들조차도 쾌락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현의 첫 섹스를 선점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스스로의 성감대를 키우죠. 최면이라는 베일 아래 채우의 시도는 점점 과감해지고, 이에 비례해서 현실 속 이현을 보는 죄책감과 괴리감도 커지기만 해요. 결국, 채우는 이 중독을 끊어내기 위해, 죽을 만큼의 고통과 공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면에 걸린 이현에게 폭행을 요구해요.

물론, 나름 반전이지만 반전스럽지 않게도, 이현은 암시에 걸린 상태에서도 채우의 요청을 거부합니다. 또, 자신에게서 도망가려는, 최면 아래 가감 없이 드러낸 날것의 욕구를 끊어내려는, 채우를 보고만 있지 않습니다. 이현이 채우의 어설픈 연기에 동참해 준 동기는 채우의 절실함이었지만, 이현 역시 채우에 대한 지독한 소유욕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였으니까요.

채우는 '완벽한 예술품'인 이현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현이 채우를 사랑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글쎄요... 단호하게 아니라고도, 기라고도 대답하긴 힘들 것 같아요. 채우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이현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지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며, 그저 이현의 사랑과 자신의 사랑이 결이 다를 뿐이라고 단정합니다.

만약, 이성에 대한 순수한 애정만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채우와 이현은 '사랑'없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채우의 사랑은 신에 대한 경외적 사랑이었고, 이현은 자신의 것에 대한 독점적 사랑일 테니 말이죠.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보지 않으면 살 수 없고, 같이 있으면 쉴세 없이 요동치는, 심리적 울림이라고 한다면, 두 사람은 격정적 사랑을 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피폐든 하드코어든, 마지막은 달달이길 바라는 독자의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장르든 사랑이 넘치는 알콩달콩 외전이 사랑받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만들어진 신'에 다정한 이현이 채우와 상량한 섹스를 한다면, 그것대로 안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드코어의 묘미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드러내길 주저하는 음습한 욕구를, 비틀어진 주인공을 통해 엿보여주는 거니까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모드

출간일: 2018.03.05

분량: 본편 4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폐하께서 용왕이 아니고, 제가 용왕비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아니, 만났더라고 하더라도 친구가 되었을 겁니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귀엽지 않은 사내에게 어찌 연심을 품겠습니까. 전 이렇게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시얀은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있는 자신이 우스웠다. 반편이 왕족으로 태어나 온갖 구박을 받고 자라면서 이렇게 태어나지 않았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그런데도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랑한다고 고백을 받고, 또 그런 그를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면서 끌어안을 수 있어서 눈물이 날 만큼 기쁘니 말이다.

point 2 줄거리

기: 치엔리운 왕세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기녀인 어머니와 불길한 검은 머리를 타고난 반편이 왕족 세시얀은, 로말쉰에서 차별을 받으며 궁핍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붉은 사막 너머에 국가 랑쿤이 로말쉰의 요충지 유스투안을 공격하고 점령한다. 랑쿤은 유스투안의 반환 조건으로 국혼을 요구하고, 그 대상으로 세시얀을 지목한다. 로말쉰은 치욕스러운 조건이지만 거부하지 못하고, 세시얀은 자예린 한 명만을 데리고 이국의 왕비로 팔려간다.

승: 세시얀은 무리한 일정을 강행하며 제대로 된 설명도 없는 호위대장에게 폭발하고, 랑쿤에 도착해서야 그가 왕인 슈카이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용의 나라 랑쿤은, 호수에 깃든 용이 선택한 용왕비가 없으면 비가 내리지 않는다. 세시얀과 슈카이란이 혼례를 올리자, 3년간 비가 내리지 않은 랑쿤에 단비가 내린다. 로말쉰에서 냉대 받던 세시얀은 랑쿤에서는 너무도 귀한 사람이었고, 만인의 호의 속에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전: 슈카이란과 세시얀은 랑쿤의 평화를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좋아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결실로 부부다운 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슈카이란은 세시얀에게 숨기는 것이 많았고, 세시얀은 그 점이 늘 불만이었다. 한편, 로말쉰은 남자로서 타국의 왕비가 된 세시얀이 수치라며 자살을 종용하는 사신을 보내고, 슈카이란은 상처 입은 세시얀을 위로하고 보호한다. 로말쉰은 자살을 거부한 세시얀을 죽이기 위해 계략을 세우고, 두 사람은 위기에 빠진다.

결: 미래를 보는 보석안을 가진 세시얀은 슈카이란이 절규하는 모습을 보고 알려주지만, 슈카이란은 또 설명 없이 세시얀의 조언을 무시한 채 궁을 비우고, 그 틈을 노린 암살자를 피해 달아나던 세시얀은 오른손을 잃는다. 한편, 세시얀이 죽었다고 생각한 슈카이란은 용의 본신으로 폭주하고, 그런 슈카이란을 세시얀은 따뜻하게 안아준다. 슈카이란은 세시얀을 위험에 몰아넣은 로말쉰과 전쟁을 하고, 승전보를 울린다. 그리고, 용신은 세시얀의 오른손을 돌려준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어른들을 위한 동화

불면증을 앓은지도 제법 시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소싯적 머리만 대면 기절하는 능력으로 많이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숙면 도우미들은 많지만, 제가 애용하는 것은 수면유도제도 라벤더 티도 아닌 바로, 이 책 '꿈꾸는 용이 잠든 나라'입니다. 지루하다고 이해하시면 안 됩니다. 좋은 꿈을 가져다줄 것 같은, 포근한 이야기거든요! 누워 읽다 보면 소록소록 잠에 빠져들어요.

'꿈꾸는 용이 잠든 나라'는 꿈과 희망을 보여주는 예쁜 동화도 아니고, 현실의 이면을 풍자한 신랄한 글도 아닙니다. 비정한 환경에, 현실적 이득을 계기로, 눈치 보고 노력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예요. 다만, 색골 오골계가 사과 덕후이고, 용왕비가 용왕에게 원펀치를 날려요. 태양신에게 받은 보석안으로 미래를 보고, 손짓으로 만든 태양신의 화살을 쏘며, 절대 무적 신체를 가지고 있는 용왕이 나오죠. 그래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표현이 제일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시얀의 아버지는 비극적 죽음을 맞고, 어머니에게 한 아버지의 언약을 지켜지지 못해요. 천한 신분의 어머니는 왕족의 아이인 세시얀을 낳습니다. 하지만, 세시얀은 불길한 검은 머리와, 신성한 보석안을 가지고 태어나죠. 혼란과 갈등은 있었지만, 세시얀은 왕족으로 인정받고 로말쉰 왕자에게 입양됩니다. 그리고, 그 전날 증인 없는 사고로 어머니는 죽어요. 그 후, 떼쟁이 공주에 의해 세시얀의 출생이 폭로되면서, 반편이 왕족으로 조롱당하며 삽니다.

세시얀은 로말쉰 왕국의 계륵이었고, 그래서 왕족이었지만 가난하고, 똑똑하고 아름다웠지만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는 허락되지 않았죠. 심지어, 세시얀이 국익을 위해 타국에 팔려 국혼을 맺을 때도, 로말쉰 왕은 세시얀을 비난하고 상처 줘요. 랑쿤의 왕비가 된 이후에도, 스스로 자진하라며 여러 번 단도를 보냅니다.

세시얀은 스스로 태생을 선택한 적이 없고, 미움받을 행동을 저지른 적도 없지만, 불길하고 수치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어요. 그리고, 자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슈카이란도, 세시얀이란 사람이 아니라 비를 내리는 용왕비가 필요했던 거였죠. 슈카이란이 세시얀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것은, 사과농장의 풍작을 바라고, 랑쿤의 평강과 안녕이 간절했기 때문이었어요.

그 자체로 귀한 존재,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나 일편단심 연심을 받고, 노력하면 끝내 인정받고 살 수 있는 세계! 아이들에겐 동화 속 현실, 어른들에겐 현실 속 동화죠. 어쩌면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은 어른들의 마음은, 그 유통기간이 결코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치열한 행복이 삭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시얀은 랑쿤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호의적인 이유가 비 때문인 것을 알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계기는 이득이라도, 세시얀이 얼마나 현명한고 귀여운지 알게 된 사람들은, 어느 순간 용왕비가 아닌 세시얀을 좋아해요.

슈카이란은 용왕비가 랑쿤을 버릴까봐, 많은 것들을 숨깁니다. 알을 낳아야 한다는 것도, 용신의 가호를 받은 괴물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말이에요. 또,

슈카이란은 연애 경험이 많았고, 세시얀은 외롭고 차별받으며 자랐으니, 굉장히 쉽게 꼬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시얀이 바란 건 크리스탈 성과 황금 드레스가 아니었고, 신뢰와 진실이었어요. 사람은 쉽지 않고, 사랑하기는 더 쉽지 않아요. 세시얀과 슈카이란은, 서로 맞춰가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시얀은 아플 정도로 강력하게 느껴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경험해요.

세시얀과 슈카이란은 완벽한 용왕비와 용왕이 아니었고, 그들 주변의 사람들 역시 내기를 하고, 질투하고, 실수하며,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따뜻한 볕처럼 머릿속에서 그려지며, 나른한 기분이 들어요. 분명 이 세계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친구의 연애담처럼 저 세상의 이야기도 아니죠. 물론, 왕자님이 엑스칼리버를 뽑고 마왕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하는, 화려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색골 오골계는 겁이 많습니다.

그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면, 계단을 밟아 수면에 세계로 내려가는 것 같아요. 그 끝에는 랑쿤의 일상이 있을 것 같은...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꿈을 꾼 적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꿈꾸게 된다면, 용왕과 용왕비의 동침 내기판이었으면 좋겠네요. 저는 결론을 알고 있고, 판돈은 크니, 그곳에라도 부자가 되지 않을까요? 어른의 해석법이라고 구차한 변명을 첨언해 봅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이클립스

출간일: 2019.02.28

분량: 본편 1권

 

 

 

 

 

 

 

 

 

 

 

point 1 책갈피

"내 선물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할 것 같았어."

렌레이는 내 얼굴에 키스를 퍼부어 대며 다시 속삭였다.

"그래도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하루. 내가 당신을 섬기고 있잖아."

귀중한 뭔가를 아루듯 애틋한 손길로 내 얼굴을 매만진다. 렌레이는 차가운 입술을 내 입술에 맞대었다.

"......다신 나를 울리지 마."

point 2 줄거리

기: 형사이자 친형인 나루의 부탁으로, 의대생 하루는 마약 하나비라를 입수하기 위해 클럽을 찾는다. 그리고 클럽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루는 해일금융 서해일이 렌레이 조직의 보스 리자오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리자오의 어린 아들 렌레이를 구출해 달아난다. 그리고, 이 사실을 형 나루에게 알리고, 하루는 나루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레인 레이를 보호한다. 그동안 10살인 렌과 친해진 하루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으며 추억을 쌓는다.

승: 하루는 나루를 믿고 렌을 보내려 하지만, 나루가 정부에 렌을 맡기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하루는, 조부모에게 렌을 보내주기 위해 상해로 밀입국한다. 친구 태민이 만들어 준 위조 여권으로 힘겹게 상해에 도착하지만, 렌의 막내 이모 리자영은 렌과 하루를 택시에 태워 도피시킨다. 하지만, 택시는 전복되고, 하루가 깨어났을 때, 렌과 형은 죽었고, 심지어 형이 부패 형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하루는 진실을 찾기 위해 형사가 된다.

전: 14년의 시간이 흐르고, 하루는 강력계 수사 팀장이 되었다. 하루는 가짜 하나비라 유통을 조사하던 중, 하나비라를 먹고 환각 상태에서 마약상이자 사이코 연쇄살인범 김락희를 때려죽인다. 위기에 몰린 하루를 찾은 것은 마약 수사국 최 국장이었다. 하루는 형의 절친이자 짝사랑 대상인 손중원 과장과 중국 측 친이경감과 함께, 가짜 하나비라 수사팀에 참여한다. 하루는 김락희로 위장해 잠입 수사를 진행한다.

결: 그리고 스셴의 차기 수장인 된 렌과 재회한다. 렌은 김락희로 위장한 하루를 강간하지만, 곧 사랑한다며 끼고돈다. 하루는 렌에게 양가적 감정을 느끼며, 렌과 수사팀 사이에서 정보를 나른다. 하지만, 수사가 계속될수록 하루는, 하나비라 이면에 모종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하루는 진실에 도달하고, 형의 누명과 중원의 모략과 부패, 렌의 계략을 확인한다. 하루는 중원을 죽이고, 렌에게로 돌아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만신창이

리다조님은 암흑가 조직을 배경으로, 쫒고 쫓기는 사건물을 참 잘 쓰시는 작가님이죠. 물론, 그래서 '적신'이 그중에 으뜸이냐? 물으신다면, 그건 아닙니다. 쫀쫀하고 밀도 높게 진행하던 사건이, 막판에 중원과 렌의 대사로 퉁쳐진 것 같은... 용두사미라는 인상을 받은 작품이었어요. 단권이라는 분량의 한계도 분명 있었을 테지만, 초중반부에 기대치를 너무 높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결론의 아쉬움을 키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렌의 태도 살짝 잉???했고요.

물론, 그럼에도 '적신'은 몰입도 높은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특히, 제목이 의미심장해요. '적신', '벌거벗은 몸' 혹은 '죽음 직전의 황폐하고 처참한 상태'... 분명히 결론을 암시하고 있지만, 그 해석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있을 듯합니다.

사건물은 해피엔딩과 배드 엔딩이 명확합니다. 해결되면 해피이고, 해결이 안 되면 배드인 셈이죠. 그러면, '적신'은 비밀이 밝혀지지 않고 베일에 가려진 끝나는가? 묻는다면, 아닙니다! 나름 결자해지, 인과응보의 결말을 맞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적신'이 해피엔딩이냐 묻는다면, 글쎄요...입니다.

수인 하루는 형 나루에게 누명을 씌운 범인을 죽였고, 공인 렌은 어머니의 원수를 갚고 스셴의 수장이 되어 하루를 가졌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하루의 모습은 '적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치, 진실의 실체가, 사람의 심연이, 세상의 본 모습이, 사실은 만신창이라는 듯 말이에요.

하루와 나루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하루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나루는, 그 집안과 의절한 채 경찰이 됩니다. 그리고, 형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을 가지고 살았던 하루가, 의사인 부모님이 바라는 의대생이 되죠. 집안 좋은 마약쟁이 친구 태민이 하루에게는 가장 큰 일탈이었었죠. 하지만 예고도 없이, 수동적이지만 평화롭던 날들의 끝이 찾아옵니다.

하루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선택합니다. 살인자들은 무서웠지만, 어린아이를 방치 할 수 없어 렌을 구했고, 형이 렌을 정부에 넘기려 했을때도, 거래의 도구로 아이를 이용하려는 어른들에게서 렌을 보호합니다. 형 나루가 부패 경찰이라는 오명을 쓰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 뒤에 있을 거대한 음모와 맞서기 위해 경찰이 됩니다. 그리고 14년,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죠.

가짜 하나비라 유통 수사를 위해 마약상 김락희로 위장 잠입했을 때도, 가장 희생적인 선택을 합니다. 하루는 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없었고, 수사를 어그러뜨릴 수도 없었죠. 그래서, 렌에게 하루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얼굴 예쁜 창남이 되어 렌에게 몸쓸 취급을 받습니다. 또,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중원이 대시 해 올 때도,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수사를 진척시켜나갑니다.

하지만, 하루는 결국 만신창이가 됩니다. 일반인이면서 동정심에, 해일 금융과 렌레이파, 크게는 상해 스셴과 엉키게 됩니다. 나루의 반대에도, 렌과 함께 상해로 가면서, 나루의 오명을 밝힐 골든타임을 놓치죠. 14년이란 시간동안 중원에게 속아, 나루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에 조금도 근접하지 못합니다. 만약, 렌이 없었다면, 하루는 마지막까지 살인자를 옆에 두고 살인자를 쫒는, 눈뜬 장님으로 살아야 했을 거예요.

그리고 진실은 더 가관입니다. 중원은 좋은 형인척하지만, 실은 금수저로 태어난 하루와 나루를 폄하하죠. 하루가 자신의 만행을 알았을 때, 하루를 향해 머뭇거리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는 비정함을 보입니다. 여자친구와 파혼의 원인도, 나루를 살해하게 된 이유도, 모두 뒷돈을 받고 범죄를 묵인해 준 부패 행각때문이었지만, 가난을 핑계 삼아 스스로를 정당화합니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하루를 흔들기 위해, 하루를 사랑하는 것 처럼, 하루의 애정을 악용해요.

결국, 이타적이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하루가 마주해야 하는 가장 날 것의 진실은, 첫사랑의 추악한 민낯이었고, 비겁하다고 비난했던 형의 정의, 삽질만 열심히 해온 무능한 자신과, 정의라는 가면을 쓴 부패한 공권력이었죠. 그리고 그 설계자는 렌이었고요. 하루의 믿음과 신념, 노력은 모두 허상이었습니다. 하루는 모든 걸을 놓아 버립니다. 그리고 렌을 선택하죠. 렌은 만신창이가 된 하루를 섬기겠다고 말합니다.

벌거벗은 몸, 적신, 죽음 직전의 황폐하고 처참한 상태, 역시 적신... 어쩌면, '꾸미지 않은 본신은 처참한 상태'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화려한 깃털로 스스로를 치장하고, 비싼 옷을 두르며 자치를 높이려는 허세가, 본질을 가린다고 여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실은 그 본질을 덮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면, 거짓은 오히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환상일 거예요. 마치, 매트리스처럼요. 빨간 알약을 드시겠습니까? 파란 알약을 드시겠습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은 기어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마는 것이, 인간의 예정된 비극일까요?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1.08.18 - [BL 소설] - [현대물/스릴러물/시리어스물] 드레스드 투 킬(Dressed to Kill) - 리다조

 

[현대물/스릴러물/시리어스물] 드레스드 투 킬(Dressed to Kill) - 리다조

출판사: 이클립스 출간일: 2016.12.20 분량: 본편 1권 ​ ​ ​​ ​ ​ point 1 책갈피 ​ ​ "악이 떠오르면 무엇이 가라앉을까요?" ​ 데라가 물었다. 간단한 질문에 반해 내 고민은 길었다. ​ "글쎄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