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폼리스(Formless) 본편 Review

2020.08.04 - [BL 소설] - [현대물/피폐물] 폼리스(Formless) - 원리드

 

[현대물/피폐물] 폼리스(Formless) - 원리드

출판사: BLYNUE 출간일: 2020.05.13 분량: 본편 3권 ​ ​ point 1 책갈피 ​ 자잘한 유리 조각들은 천장에 달린 화려한 조명을 반사하며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거렸다. 희운은 그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

b-garden.tistory.com

point 1 책갈피

"그때는 겁 좀 주고 옆에 두면 그만이었는데......"

강우의 시선이 못생긴 케이크를 지나 희운의 얼굴에 닿았다.

"이제는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서강우가 눈을 내리깔고 호흡 같은 웃음 흘렸다. 희운은 문득 가슴을 죄는 듯한 알싸한 통증을 느꼈다.

"나중에 선배가 또 도망치려고 하면, 그땐 어떡하죠?"

"... 도망 안 가."

"그렇겠지."

그렇게 물어놓고 서강우는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희운이 모호한 표정을 짓자 강우가 평소처럼 여상히 말했다.

"겁도 많은 게 도망칠 용기나 있겠어?"

그가 눈을 휘어 웃으며 희운의 턱을 톡톡 두드렸다. 희운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서강우 없이 산다는 게 상상도 되지 않는 지금, 도망이란 건 너무 낯선 단어였다.

"혹시라도 그런 용기 생겨도, 가지 마요."

"응."

"잘해줄게."

"......"

"잘해줄게요."

서강우가 꼭 부탁하는 것 같아서 이상했다. 희운은 미소 짓는 강우의 얼굴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나중엔 네가 기라면 기게 생겼으니까."

중얼거린 강우가 못내 우스운 듯 피식 웃었다.

point 2 줄거리

특별 외전 1: 희운은 대기업에 취업한다. 강우는 희운의 취업이 탐탁지 않았지만, 취업을 했다며 가장 먼저 전화해 너무도 기뻐하는 희운을 막지 못했다. 희운이 회사를 때려치우길 바라며, 인내하던 날들... 그러던 어느날 희운이 회식에 가서 술을 조금만 먹겠다고 말한다. 다행히 희운의 애교짓으로 회식은 가고, 술은 먹지 않는 것으로 타협하지만,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희운은 처음으로 술에 취한 강우를 만나게 된다. 인내의 고삐를 풀어버린 강우말이다.

특별 외전 2: 드디어 희운이 벼르고 벼르던 첫 월급날이 왔다! 희운은 강우에게 맛있는 고기를 사주고, 강우는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생겨서 너무 기뻐하는 희운을 보며 감동받는다. 그리고, 희운이 고대하던 두 번째 해외여행 날도 다가온다! 강우는 이탈리아 여행 중 희운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선물로 커플링을 준다. 근래 회사 동료들과 친해진 희운을 보며 불만이었던 강우는, 희운이 모르는 뒷공작과 더불어 결혼반지급 커플링을 채우고 매우 만족한다.

특별 외전 3: 희운은 올해 처음으로 강우의 생일을 준비한다. 3년간 강우에게 받기만 하고 줄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이제 직장인인 희운은 명품관에서 강우의 목도리를 산다. 희운은 깜짝 선물을 주고 싶었지만, 희운이 거짓말하며 숨기는 것을 본 강우가 무섭게 변하자, 바로 실토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희운은, 점심시간 쿠킹클래스를 다니며 생일 케이크를 만든다. 그 구겨진(?) 케이크를 받은 강우는 희운에게 서프라이즈를 금지시킨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사람은 참으로 변하지 않고, 또 참으로 잘 변한다.

두 번째 외전 리뷰를 써 봅니다. 외전을 본편 감상을 돕거나, 본편 이후의 후기를 들려주는 보조적 존재로 여겼기 때문에, 그 자체로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본편과 다른 이야기를 다룬다면, 그건 2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제는 그 생각도 변해야 하나 봅니다. 'Kiss me, Liar 외전' 을 보면서도 생각했지만, 외전이 본편과 다른 메시지를 담고, 단순히 A/S 차원을 넘어서고 있는 것 같아요.

3월 신작 캘린더를 보며, 찜해둔 유일한 작품! 바로 폼리스 외전이었어요. 짧은 분량이라 아쉬웠지만, 희운과 강우를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전광석화 같은 클릭으로 내 서재에 담았죠. 4만 6천 자, 연재로는 13편 내외 단행본으로는 반권 정도의 분량에, 3개의 에피소드를 실어 놓았어요. 신입사원 희운과 강우의, 약간 맵지만 베이스는 달달한 일상물입니다.

이건 리뷰를 써야 하는 외전이다!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시점의 변화 때문이 그렇습니다. 사실, 본편에서도 3권 마지막에 강우 시점의 외전이 있었고, 특별 외전은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서술 시점 변화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본편이 비참했던 희운의 인생이 강우라는 갑작스럽고, 예측불가하며, 비정상적인 존재를 만나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다루었다면, 외전은 반대로 강우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 변화의 차이를 비유하자면 희운의 변화가 불연속변이, 강우의 변화는 연속변이 같았어요.

희운의 변화는 빠르고 명확했습니다. 아버지는 거액의 빚을 남겨 놓은채 죽고, 심신이 아픈 어머니와 쓰레기 형을 의지할 수 없었죠. 희운은 똑똑하고 성실한 명문대생이었지만,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면서 암담하게 추락하고 있었어요. 조폭 할아버지와 기업가 아버지를 둔 강우는, 그런 희운을 가지고 싶었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강우는 희운의 삶에 자신 이외의 존재를 끊어내요. 그 극열한 변화가 희운의 삶을 바꿉니다. 하지만, 희운은 그대로예요. 조금은 편해졌지만 무서운 강우의 눈치를 보고, 조금은 담대해졌지만 아직도 형에게, 직장에서, 생면부지 행인에게도 약자의 위치에 서 있죠.

반면, 강우의 변화는 느리고 모호했어요. 외전에서도 강우는 여전히 가업에 종사 중이고, 여전히 희운을 통제하며, 이유를 불문하고 그 영역을 벗어나려는 희운을 강제하죠. 희운을 다루는 수단으로서 '폭력'과 '협박', '비난'도 멈추지 않습니다. 단지, 강우 안에서 서서히, 하지만 분명히 무엇인가 변합니다. 바로, 강우를 참을 수 없게 하는 것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거죠. '희운의 감정'말이에요.

본편에서도 강우는 희운이 미소에 껌뻑 죽고, 무의식적 애교짓에 건물도 턱턱 바칩니다. 공항에서 희운을 발견한 순간, 온전한 강희운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하고, 절체절명의 타이밍에 나타나 희운을 완벽하게 포획하죠. 희운을 복학시켜줄 수 있었던 것도, 희운이 손 안에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어요. 언제든 다시 집에 감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죠.

하지만, 외전에서 강우는 희운의 표정을 살피고, 기죽은 모습을 보며 '자제'라는 것을 합니다. 과거 희운에게 조활동을 미룬 무임승차자, 사회생활 운운하며 술을 먹인 형, 전화 협박을 일삼던 조폭의 말로를 생각한다면, 강우의 고뇌를 짐작할 수 있죠. 그 결과로, 희운의 회사 선배는 위기를 모면 받고, 과외 학생들과 다르게 베이킹 강사와 백화점 앞 설문녀는 험한 꼴을 보지 않습니다. 강우는 생일초를 불며 희운의 퇴사를 빌면서도, 희운을 퇴사 시키지는 않습니다.

강우는 약자가 됩니다. 하지만, 희운이 강자가 된 것은 아니에요. 그저 강우가 변했죠. 그건 아주 유쾌하고 기분 좋은 패배처럼 보입니다. 강우는 깡패를 멸시하는 아버지에게 싫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불편한 아들이었고, 깡패 할아버지에게는 쓸만한 후계자였어요. 강우는 이들의 품평에 신경 쓰지 않고, 착실히 얻을 수 있는 이득만을 잘 챙깁니다. 잃을 건 그 뿐이었고, 이미 가진 것은 많았으니, 세상에 무서운 게 없었을 거예요.

그런 강우에게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생깁니다. 강우는 이제 '희운'뿐만 아니라 '희운과의 행복한 미래'도 가지고 싶어졌어요. 그 미래에는, 희운이 웃고 있어야 하고, 계속 사랑해야 하고, 렉시를 산책시키고 해외여행을 가고 저녁을 함께 먹고 기념일을 챙겨주는 무사 평탄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야 하죠. 희운은 두 발목을 부러트린다고 해도, 마취만은 꼭 해달라고 대답할지 모르지만, 덜 웃고 오래 기죽고 더 겁 먹기 시작할거예요. 강우는 희운에게 비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독자에게는 작품을 놓아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계속 외전이 나오고, 속편이 나오다 보면, 결국 그 작품 자체가 산으로 갈 때가 있거든요. 그러다 보면, 애정이 실망으로 바뀌기도 하죠. 그래서, 이대로 마무리되어야 충분히 훌륭한 이야기라면, 그대로 떠나보내야 해요. 하지만... 폼리스.... 도저히 놓을 수가 없네요. 작가님... 희운과 강우의 10년 뒤, 한 편만 더 써주시면 안 되나요? 이들의 변이는 아직 진행 중이라고요!!!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0.12.06 - [BL 소설] - [캠퍼스물/삽질물/달달물] 오래된 오해 - 원리드

 

[캠퍼스물/삽질물/달달물] 오래된 오해 - 원리드

출판사: B&M 출간일: 2019.05.08 분량: 본편 2권 ​ ​ ​ ​ ​ point 1 책갈피 ​ ​ 속마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 것도 모르고 은형은 말갛게 태범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상체를 완전히 기댄 탓에 높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BLYNUE 블리뉴

출간일: 2020.05.26

분량: 본편 3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유호가 블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떨리는 손이 유호의 손바닥에 닿았다. 단숨에 블린을 일으킨 유호는 블린의 왼손 약지에 있는 반지를 빼내었다. 블린의 눈에 죄책감이 짙게 물들었다. 반지는 휙 던져져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잡으러 갈 새도 없이. 블린의 몸이 침대에 앉혀졌다. 유호는 블린의 앞에 서서 어깨를 꽉 잡았다. 블린은 허리를 반듯하게 세워 유호를 보며 눈을 깜박였다.

"옷은 직접 벗으세요."

블린은 머뭇거렸다. 차마 거기까진 못하겠는지, 손끝이 덜덜 떨렸다. 땀이 손바닥에 배어 자꾸 미끄러졌다. 용서를 빌겠다고 나선 주제에, 제 주제를 모르는 블린의 턱을 유호가 들어 올렸다. 유호의 눈을 마주한 블린은 당황해서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벗기면, 그거 못 입으실 겁니다."

유호의 눈이 음험하게 반짝였다. 블린이 입을 꾹 다물고, 단추를 떨리는 손으로 풀었다. 유호는 탄탄하게 짜인 어깨 근육을 매만지며 다정하게 말했다.

"로즈하한테 들키면 미안하잖아요. 가릴 게 필요할 테니까, 옷은 그대로 가져가세요."

point 2 줄거리

기: 왕국 북부 변방 지키는 군인 블린 윈체는, 어느 날 설원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한다. 아들 마로가 떠오른 블린은 지나치지 못하고, 그 아이를 데려와 '로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아들처럼 키운다. 로엘은 천사 같은 외모로 블린바라기가 되어, 블린의 가족들에게 녹아든다. 한편, 용의 나라인 제국은 내전이 터지자 황자들을 주변국으로 대피시키고, 그 과정에서 후계자인 유호가 실종된다. 그는 블린의 이복동생이자, 왕국 공주인 이엘리아의 정혼자였다.

승: 그 후 5년의 시간이 흐른다. 어느날 블린의 집에 블린의 옛 동료 앨런이 찾아와 로엘의 친모라는 알리제프 부인을 소개시켜준다. 로엘은 알리제프 부인을 엄마라 불렀고, 그녀는 블린에게 실종경위를 설명했다. 로엘은 정든 블린가를 떠나고, 다시 10년이 지났다. 차일피일 미루던 이엘리아의 결혼은 드디어 성사되고, 블린은 이엘리아의 호위가 되어 제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장성한 로엘을 만난다. 그가 바로 제국의 황자인 유호였다.

전: 유호는 블린을 격하게 반가워하며, 온 몸으로 치댄다. 이엘리아와 블린은 모두 당황하지만, 곧 제국의 주인이 될 유호를 거부하지 못한다. 반면, 유호는 블린의 가족들도 제국으로 초대해, 그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과 즉위식을 함께 치른다. 하지만, 곧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발생한다. 이엘리아는 황제 시해로, 마로는 황실 보물을 절도로, 사형에 처할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유호는 그들의 사면을 대가로 블린에게 반려가 될 것을 요구한다.

결: 블린은 유호의 침실에 반감금되어 정사를 강요받는다. 그리고 블린은 이 모든 것이 유호의 계략이었으며, 제국과 왕국은 각각의 사정으로 블린의 희생을 방조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블린의 가족과 동료는 블린을 구조하려 한다. 그리고 성공 할 뻔 했지만, 결국 블린은 딸을 살리기 위해 유호와 각인을 맺은채 제국으로 돌아온다. 마침내 목표한 바를 이룬 유호는, 언젠가 반드시 블린이 자신을 좋아해 줄 것이라 믿으며, 느긋하게 그만의 신혼을 즐긴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NTR

NTR... BL의 대표적인 지뢰 중 하나죠. '네토라레'라는 일본어의 약자인데, '자다'라는 뜻의 '네루'와 '얻다'라는 뜻에 '토루'의 합성어인 '네토루'의 피동형입니다. '자서 얻었다.' 정도 될까요? 당하는 입장에서는 '내 애인이 다른 이성과 관계를 가짐으로써 빼앗긴 상황'일 테고, 하는 입장에서는 '짝 있는 상대랑 자서 빼앗는 상황'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듯합니다. 막장의 향기가 나죠? 일본 성인 게임에서 나온 말이라 그래요.

뭔가 애로애로하지만 백치 같은 히로인과 주인공 사이에 'NTR남'이 나타나 성적 흥미로 갈취하는, 바람만 불어도 팬티가 보이고 수시로 얼굴 붉히는, 전형적인 남성 판타지의 소산이었죠. 물론, 'NTR여'도 있습니다. 빼앗기곤 못 살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역NTR도 있고요. 적용되는 컨텐츠가 많아지면서, 쓰임도 다양해지는 듯합니다. 심지어 애인을 뺏기는 내용만 있어도 키워드에 NTR이 뜨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어쩄든, 한국에서는 NTR을 '배우자'가 있는 사람을 빼았을 때 주로 쓰는 듯 해요. 장르소설에서는 자주 등장할 것 같은 자극적인 소재지만, 의외로 BL에서 흔치 않습니다. 삼각관계, 스와핑, 다공일수나 집단난교보다도, 제대로 된 NTR이 훨씬 드물어 보여요. 남성들은 NTR을 '로망'으로, 여자들은 NTR을 '분노'로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광염'은 특별해 보였어요. BL을 잘 보면 모럴리스한 피폐나 하드코어조차도, 행복한 가정을 파탄 내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배우자가 죽거나, 별거 중이거나, 정략적 혼인 관계거나,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중이거나, 심지어 두 집 살림을 하는 경우도 '수'의 갈취하기보다는 '공'의 욕심인 경우가 많아요. 완벽하게 잘 사는 부부 사이에 NTR남이 나타나, 선 섹스 후 갈취는.... 분명, 지뢰라 여겨 질 만한 불편함이 있죠.

블린의 가족은 이상적었어요. 블린은 아내 로즈하를 틈날 때마다 무릎에 앉히고, 옆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허리를 감아 당기며, 부대로 찾아오는 날이면 언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어줬어요. 군인인 블린은 딱딱하고 기교 없는 남자였지만, 집에서만큼은 로맨틱한 남편이었고, 자상한 아버지였죠. 왕의 사생아로 태어나 왕실에서 부정 당한 채 군인으로서 살아야 했지만, 애정을 갈구하는 적통의 공주 이엘리아의 따뜻한 오빠가 되어주기도 하고요. 가족에게 한없이 자애로운 블린이었기에, 협박의 수단도 당연히 '가족'이었어요.

블린은 여동생 이엘리아와 아들 마로를 살리기 위해, 인질이 되어 홀로 유호의 침실에 갇힙니다. 여기까지는 자주 보는 설정이지만, 신선한 점은 블린이 바로 이런 가족들에 의해 구출된다는 거예요. 이엘리아는 시간을 벌기 위해 유호와 독이 든 와인을 나누어 마시고, 주부에게 총잡이로 진화한 로즈하는 아이들과 함께 집을 떠납니다. 블린의 동료들 역시 고국을 버리고, 오로지 블린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요. 끈끈한 가족애와 희생정신으로 무장한, 블린 구조대는 거의 성공하는 듯하지만, 말도 안 되는 유호의 치트키에 좌초됩니다.

그 치트키도 가관입니다. 제국은 4마리의 용이 건국한 나라였어요. 하지만, 그 용들은 권력을 나누어 가지고 싶지 않았고, 마력을 늘리기 위해 인간들을 죽이다 보니, 인간 제물이 마르는 사태에 직면합니다. 용들은 살기 위해 인간이 꼭 필요했고, 결국 영혼의 반을 인간 반려와 나누어 가지는 '각인'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기로 해요. 최소한의 마력만 근근이 유지하면서요. 유호의 어머니는 독을 먹고 쓰러진 아들을 살리기 위해, 유호를 완전한 용으로 만들려 합니다. 그 대가는 왕국이 내 놓은 1만의 목숨이었죠. 유호는 후다닥 '그 일'을 해치우고, 부활(?)하여 블린과 그의 가족 앞에 등장합니다.

블린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유호와 반려 각인을 맺지만, 유호에게 고분고분 해지지 않습니다. 유호는 5살 때, 죽어가는 자신을 구해준 블린과 각인을 맺었어요. 용은 각인을 한 단 한사람과만 반려가 될 수 있고, 끝끝내 그 반려가 각인을 거부한다면 죽고 맙니다. 이것이 NTR남이 될 수밖에 없었던 유호의 변명일지는 모르겠지만, 죽더라도 블린을 로즈하에게 보내지는 않겠다는 유호를 보면, 결국 생사보다는 블린에 대한 독점욕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다만, 이전 리뷰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듯이, '광염'은 '역키잡'의 배덕함도, '피폐물'에 빻빻함도... 좀 애매합니다. '수'가 정신적 굴복 상태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공에게 날이 서 있습니다. 심지어 외전까지도요. 유호는 블린을 빼앗는 것엔 전력을 다하지만, 블린의 감정이나 태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긴 시간 치밀하게 공들였던지만, 목표도 '블린과의 각인' 결론도 '블린과의 각인' 밖에 없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유아르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유년기를 정말 사랑스럽게 묘사하세요. 이런 몽글몽글한 부자의 시간은, 극적인 관계 반전과 대비될 때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랑스러웠던 네가,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어! 라든가, 그렇게 사랑해 주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변하세요!라고 말이죠. 하지만, '광염'에서는 '어떻게 이렇게 변하니!'라고 외치는 사람은 '수'가 아니라 '수의 가족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짜 희생은 가족들이 하고, 블린은 한거 '실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0/09/15 - [BL 소설] - [현대물/피폐물] 둘만의 밤 - 유아르

 

[현대물/피폐물] 둘만의 밤 - 유아르

출판사: BLYNUE 블리뉴 출간일: 2018.10.17 분량: 본편 2권 + 외전 2편  point 1 책갈피 종착지는 아버지였다.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렸지만,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었다. 그게 슬프고, 기뻐

b-garden.tistory.com

2020/10/24 - [BL 소설] - [인외존재/동양풍/피폐물] 홍염 - 유아르

 

[인외존재/동양풍/피폐물] 홍염 - 유아르

출판사: BLYNUE 블리뉴 출간일: 2019.09.19 분량: 본편 4권 + 외전 2권 ​ ​ ​ ​ ​ point 1 책갈피 ​ ​ 강은 화원에서 가장 어여쁜 자태를 하고 있다고 자부 할 수 있는 홍염을 향해 걸어갔다. 어둠

b-garden.tistory.com

2021/01/17 - [BL 소설] - [동양풍/피폐물/시리어스물] 화비설화 - 유아르

 

[동양풍/피폐물/시리어스물] 화비설화 - 유아르

출판사: BLYNUE블리뉴 출간일: 2021.01.14 분량: 본편 4권 + 외전 1권 ​ ​ ​ ​ ​ point 1 책갈피 ​ ​ "... 달래 줄 수 없으니, 울지 마십시오." ​ 그리 말하면서, 태윤은 묘한 손길로 이세희의 고운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블랙아웃

출간일: 2019.04.15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해 준 게 없다는 말 하지 마세요."

"......"

"이따위 세상인데도."

"......"

"형은 나를 살게 하니까.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니까."

이윽고 그가 고개를 들었다. 창백한 얼굴이 온통 젖어있었다.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저로 괜찮으냐고 했던 말이 한낱 투정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지유환은 넉넉한 손으로 백성현의 얼굴을 감쌌다.

"형 말대로 안 괜찮아요."

"... 응."

안 괜찮은 현실. 이제껏 그런 현실을 발버둥 치며 살아왔다. 괜찮다고, 괜찮아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그런 게 어떻게 괜찮아질 수 있겠어요."

애써 괜찮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과거의 기억들이 범람하듯 넘쳐흘렀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서 시설을 전전한 일. 누군가 쓰다듬어주지 않아도, 사랑받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밤들. 혼자서 이겨낸 스스로가 씩씩하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던 날들.

"......"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같이 괜찮지 않은 것들 투성이었다. 버려지고 싶지 않았고, 누구라도 저를 쓰다듬어 주길 바랐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혼자서 이겨내고 싶지 않았다. 애초부터 자신은 그다지 씩씩하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안 괜찮아도 돼요. 우리는 이대로도 충분히......"

지유환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행복할 수 있을 거예요."

백성현은 햇빛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눈앞의 사람을 응시했다. 이 조악한 방과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던 그는 어느새 이 방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point 2 줄거리

기: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봄 학기, 말아 먹은 수강 시간표 탓에 백성현은 팔자에도 없는 문예과 교양을 듣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같은 수업을 듣는 청각 장애우 지유환의, 월 8회, 150만 원의 고액 노트테이킹 알바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유환은 9살에 첫 시집을 낸 등단 시인이자, 190cm의 잘 생긴 외모, 천재 화가인 친모의 자살과 그로 인해 얻게 된 장애, 비사교적 태도로, 이미 유명인이었다.

승: 성현과 유환은 밥을 먹고, 미술관을 가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성현은 자신에게 다정한 유환을 짝사랑한다. 하지만, 고아원으로 찾아온 친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유환에게 전화해 듣는 이 없는 고백을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현은 감기로 결석한 유환의 집에 찾아가고, 그때 마침 출판사 전화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유환의 휴대폰이 걸려 온 전화를 자동으로 저장하도록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 그와 동시에 녹음된 '그날' 성현의 고백이 부지불식간 공개된다. 성현은 순간 절망한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유환은 성현을 좋아해왔고 숨긴 적 없다고 대답한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한편,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유환은 보청기마저 잘 적응하지 못하면서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지만, 성현에게는 좋아지고 있다고 거짓말한다. 반면, 성현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고장 난 라디오를 알아채지 못하는 유환을 보며 그의 상태를 짐작한다.

결: 그러던, 성현에게 친부의 부고가 들려오고, 성현은 쓸쓸한 장례식장에서 무기력했던 친부와의 마지막 대면을 떠올리며 후회한다. 성현은 유환을 찾아가 유환의 상태를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무능을 고백한다. 상처 많은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의 상처를 내보인다. 한 층 더 단단해진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한다.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봄이 찾아온다. 25살 성현은, 처음으로 축하받는 생일을 맞이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초봄, 봄비는 차갑다.

'꼴라쥬'를 초봄 제철 소설이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사실 '꼴라쥬'는 봄에 만난 주인공들이 여름에 이루어져서, 가을에 동거를 시작해, 뜨거운 겨울을 보내고, 다시 함께 봄을 맞이하는 이야기예요. 사계절을 모두 배경으로 하는 셈이죠. 그럼에도, '꼴라쥬'를 초봄에 읽어 줘야 돼!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성현의 생일이 4월 8일이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무슨 덕후성 발언인가!!! 혹시, 주인공 발 사이즈, 시험 점수, 최애 브랜드명까지 외우시나요? 물으신다면,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기억 안 난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다만, 성현의 생일은 '꼴라쥬'에서 아주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꼴라쥬는 작은 조각들을 모아 부치는 일종의 미술기법입니다. 그리고, 아시나요? 꼴라쥬는 심리치료에도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스스로 솔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상처를 드러내는 일은 더욱 힘들겠죠. 하지만, 하나하나의 시리고 아픈 편린들이 모아보면, 의외로 '끔찍한 자신'이 아닌 '굳세고 단단해진 인생'이라는 작품이 될 수 있잖아요. 소설 '꼴라쥬'에서 성현의 그런 눈부신 꼴라쥬 작품이, 바로 유환과 함께한 '생일 하루'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토록 눈부시게 빛나는 삶의 한조각.

이런 순간을 위해서 그렇게나 어두웠던 밤들을 견뎌왔음을.

색채와 결이 다른 삶을 살고 있던 당신을 찾아내기 위해서,

내 삶의 많은 조각들을 비워뒀음을. - <꼴라쥬>

이 소설은 서로를 위해 비워둔 조각조각의 빈자리를, 너덜너덜한 삶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꼭 맞는 한 편의 꼴라쥬가 되어 주는 이야기입니다.

'꼴라쥬' 는 우연히 문예과 교양 수업을 듣게 된 수가, 시인인 공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예상가능하다시피 매우 서정적이에요. 두 사람은 시를 주제로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며, 낭만적 시야로 잿빛 세상을 바라봅니다. 유환과 성현의 가정사, 떠나 버린 부모와, 남겨진 상흔,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은 그대로지만, 그들은 만났고 변했죠. 유환의 세상은 더 이상 냉소적이지 않고, 사랑니와 비를 핑계로 소리 죽여 서럽게 울던 성현은 서툴게나마 섭섭함을 토로하고 소리 내서 울 수 있게 돼요.

저는 이런 유환과 성현의 변화가 '봄비'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 어느 리뷰에서도 말한 적 있지만, 저에게 봄은 낭만의 계절이 아니라 '증명'의 계절입니다. 그 전 해의 '성적표'를 받고, 무엇인가 새로 시작해야 하는 압박의 시기지요. 어느 때는 박수를, 어느 때는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모두 긴장과 불안이 따릅니다. 학생 때는 시험을, 사회에 나와서는 때마다의 과업을 이유로, 봄마다 안도와 회한의 한숨을 많이 쉬었었죠.

어쨌든, 그래서 저는 멍~ 놓고 볼 정도 봄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저들이 모두 '금메달리스트'이기 때문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많은 씨앗이, 봉우리가, 혹은 묘목이 있었을 테지요. 그들 중에 씨앗 표피를 뚫고, 겹싼 잎사귀를 세차게 밀치고, 찬 땅에 굳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틔운 승자만이 단상에 올라 찬사 받는 무대가 봄 같거든요. 그렇다면, '봄비'는 그들에게 마지막 스퍼트를 내야 하는, 결승선 직전에 가장 가혹한 시련일 거예요.

그때 어쩌면 씨앗은 흙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몰라요. 어차피 겨우내 어둠 속에서 살았는데, 굳이 차가운 비를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지상으로 가고 싶지 않아! 나는 그냥 이대로 계속, 축축하지만 안전한 흙 속에 있고 싶어!라고 말이에요. 그렇게 살아왔다는 건, 살아 본 적 없는 희망보다 강한 관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변화란 늘 쉽지 않은데, 가장 삭막한 계절에서 가장 화려한 계절로의 포문을 여는 '봄비'가 호락호락 할 리가 없겠죠.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그리는 미술 시간이 곤란했던 성현은, 스스로를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 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4살까지 산타클로스를 믿었던 순수함은, 모두가 아는 진실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겪어야만 했던 고독으로 이어집니다. 성현을 찾아온 생부는 반성을 하며 살았노라 용서를 빌지만, 성현은 그 중년의 남성에게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어렸던 어느 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길 바랐었다고... 긴 시간 참고 눌러 온 외로움에 대해 어설픈 투정만 어설프게 남겨요. 그리고, 얼마 뒤 생부의 부고를 듣습니다.

24번이나 돌아왔던 생일마다 축하받고 싶었지만, 축하받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던 외로운 아이는, 그 외로움이 굳어져 숨구멍을 막아도 벗어나는 법을 모릅니다. 그래서 생부에게 당신의 칭찬이, 애정이 절실했었다고 원망도 제대로 못하고, 용서할 수 있는 기회조차 상실해 버리죠. 그래서, 성현은 고장 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유환을 보며 덜컥 겁이 납니다. 분수에 맞지 않은 사랑을 탐내다, 유환을 망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죠. 숨겨 곪은 상처는 아프지만, 그건 익숙한 고통이니까요. 그래서, 유환의 상태를 모른척하며 불안해합니다. 그리고, 생부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성현의 둑은 터져버립니다.

성현과 유환은 괜찮지 않습니다. 괜찮아질리 없는 상황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괜찮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은 '괜찮아질리 없는 삶을 이어가는 것'과는 다른 어려움이었어요. 유환이 성현을 믿지만 적응하지 못한 보청기에 대해 고백하지 못한 것처럼, 성현이 유환을 사랑하지만 생부에 관해 언급 한 적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건 두 사람에게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고, 해 본 적 없는 힘든일이지만, 진실로 안온한 땅에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난관이었죠. 마치 봄비처럼요.

봄비는 우아하거나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차갑고 다급하죠. 그 부지런한 알람은 '타닥타닥' 거칠고 지면을 난타하는 터프함을 보이며, 많은 생명들에게 '마침내 곧 너희들의 시절이 도래할 것이다!'라며 준비 사인을 보내는지도요. 그래서인지, 저는 봄꽃을 보면 대견스럽습니다. 예쁘게 펴줘서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올해도 펴줘서 말이에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에피루스

출간일: 2021.01.07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우스갯소리인데요. 어떤 사람이 호랑이를 두고, 이 녀석이 내 고양이 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했대요. 그러자 곁에 있던 사람들이 그럼 그루밍 한 번에 피부과 가야 하고 꾹꾹이 한방에 골절이겠네. 쥐돌이로 놀아 주다가 잘못 깔리면 그대로 사망이고 말이지, 하고 말했대요. 웃기죠?"

"뭐?"

"어, 그리고 이건 또 다른 우스갯소리인데요. 그 호랑이보다 훨씬 더, 훨씬 더 커서 집채만 한 호랑이가 있어요. 그 호랑이를 상대로 꼬리를 조물조물하고, 귀를 문질문질하고, 이마를 부비고, 배를 만지작거리고, 혀를 꾹꾹 눌러 대면, 어떻게 될까요?"

"......설마, 인간!"

금왕이 당황해서 눈을 부릅뜬 순간, 나는 이미 그를 향해 점프하고 있었다.

point 2 줄거리

기: 어릴 때부터 동물을 많이 좋아했던 호연은, 훌륭한 맹수 덕후로 성장한다. 호연은 고양잇과 맹수를 조물조물, 부비부비하는 불가능한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악착같이 알바를 해 돈을 모으고 휴학을 한 채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호연은 체력단련을 위해 오르내리던 동네 뒷산에서 갑툭튀 등장한 삵에게 목이 물리고, 눈을 떴을 때 집채만 한 검은 호랑이(흑호)와 사랑해 마지않는 고양잇과 맹수들이 모인 재판장에 있었다.

승: 금수들의 왕, 금왕 흑호는 삵의 처벌에 관해 호연의 의견을 묻지만, 이미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한 삯을 본 것만으로도 성덕이 된 호연은 쿨하게 용서해 준다. 그 대신 삵을 만지고 싶다고 말하고, 꿈에 그리던 고양잇과 맹수들를 조물조물, 부비부비하며 너무도 행복해한다. 그 모습을 본 금왕은 호연을 등에 태우고 아프리카 초원으로 가고, 금왕과 함께 온 인간에게 금수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몸을 내어준다. 물론, 금왕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전: 금왕은 모든 금수들을 다스리고 있었기에, 사막과 설원, 하늘의 동물 모두 금왕을 찾아온다. 그 일환으로 북극여우가 아프다는 소식이 금왕에게 전해지자, 북극여우를 탐(?) 했던 호연은 금왕과 함께 북극으로 간다. 그리고 호연이 그곳에서 만난, 북극 설원을 다스리는 설왕의 반려는 인간으로 호연과 같은 나라의 동양인이었다. 그는 호연을 친근하게 대해주며, 왕의 반려로서의 삶을 알려준다.

결: 한편, 미어캣의 실수로 호연을 존재를 알게 된 사막의 염왕은 두 사람을 찾아온다. 염왕은 반려도 아닌 인간이 금왕의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을 비난하고, 결국 호연은 꿈같은 시간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온다. 하지만, 호연은 현실에 적응하고 못하고, 금왕을 그리워하며, 뒤늦게 사랑을 깨닫는다. 마침 문조와 미어캣이 준 사막의 꽃마저 잃어버리고 상심에 빠져 있을 때, 금왕이 호연의 앞에 나타난다. 호연은 금신의 머리카락을 먹고 금왕의 반려가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조물조물, 부비부비, 문질문질

일전에 리뷰에서도 잠깐 언급 한 적 있지만, 저는 전형적인 랜선 집사예요. 현실에서 그다지 동물들에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영상으로, 그림으로, 문자로나마, 조물조물, 부비부비, 문질문질을 충전 받곤 하죠. 이렇게 간접적으로도 느낄 수 있는 힐링이 있으니, 실제 동물과 교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애니멀 테라피'는 엄청 날 거예요. 그래서, 관련 산업도 꾀나 다양해진 듯하지만, 싫다는 강아지를 억지로 돈 주고 산책시키는 것까지 '테라피'라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짝사랑은 애틋하지만, 강제성을 띠는 순간 그냥 괴롭힘이에요.

'금수의 왕'은 조물조물, 부비부비, 문질문질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쓰인 소설입니다. 그것이, 목적이자 줄거리죠. 사실, 이외에 다른 포인트가 있는 글은 아닙니다. 다만, 기왕 시작한 대리 만족이기에, 스케일을 제대로 키웠습니다. 이것이 동물을 좋아하는 정도에 따라 몰입도가 달라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해요. 조연으로서 등장하는 동물, 수인으로서 등장하는 동물이 아닌, 줄거리 자체로 등장하는 동물이라는 것이 흔하지는 않으니까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조물조물, 부비부비, 문질문질에 대한 공감도가 크기 않으면, 지루한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현생에서 절대 성덕이 될 없는 고양잇과 맹수 덕후 호연이, 징한 덕심으로 마침내 성덕이 된 성공신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일단 집채만 한 흑호의 꼬리를 양손에 쥐고 조물조물, 볼에 부비부비는 기본이고, 사뿐히 머리에 톡 닿는 꼬리의 촉감부터, 폭 안겨도 한 아름인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짧지만 충분히 보드라운 털에 얼굴이 문질문질 하죠. 동그랗게 몸을 말린 흑호 이불을 덮고 잘 때면 들리는 들락 날락 숨 쉬는 소리, 콩닥콩닥 심장 소리...

흑호뿐인가요? 표범, 백호, 삵, 설표, 치타, 미어캣, 문조, 사막여우, 늑대, 황제펭귄, 등등등... 모든 동물 새끼는 다 귀엽고,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은 발사만 하면 다 사랑스러워지는 모르겠습니다. 북극곰 배 위에 자고 있는 북극여우는 말해 뭐 하겠습니까? 거대한 북극곰이 기둥에 느슨히 기대서, 육중하고 볼록한 배에 작고 여린 북극여우 올려 두고 토닥이는 둔탁한 손, 그 느리게 껌뻑거리는 근심스러운 눈빛! 엽서로 남기고 싶을 정도로 간질거리죠.

BL이라고 하지만, 금왕과 호연은 주인공이라기보다 동물 소개 가이드 같은 존재였어요. 실상, 둘의 애정은 그다지 촘촘히 다뤄지지 않습니다.

염왕이 등장한 이후, 갑자기 금왕이 호연에게 반려가 되면 계속 만질 수 있다고 말하며, 떠나보내길 아쉬워하는 것을 보며 ".... 금왕이 언제부터"... 뒤늦게 알게 된 절친의 연애 사실만큼 당황했죠. 오히려 금왕이 냄새를 묻히기 위해 한 키스가 첫 키스라, 인간으로 변한 금왕이 너무 멋있어서, 두근두근했던 호연은 '금왕을 만지는 것을 좋지만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 반려가 될 수 없다!'라며 현실로 돌아왔는데 말이에요. 물론, 후일담에 인간을 싫어한 금왕이 곁에 둘 때부터 호연을 사랑한 거라고, 염왕은 말하지만 독자는 알 수 없단 말입니다.

본디, 동화적 소설이 디테일에 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금수의 왕'은 정말 과감한 생략이 많습니다. 사이좋은 가족마저도 고려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랑이 위대해도, 꺄웃했어요. 두 사람이 이루어진 다음은 더더욱 스케일을 키워, 왕들의 파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굳이' 씬이 하나 등장하고, 짤막한 육아기가 등장하죠. 저는 이것이 19세 BL 구색 맞추기처럼 느껴져, 결의 흐름이 튀는 것 같았어요. 구작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틈을 채우고 연결고리를 매끄럽게 하는데 신경을 썼다면, 대체 불가능한 소재의 명작이 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1.04.06 - [BL 소설] - [인외존재/힐링물/달달물] 금수의 왕자 - 몽낙

 

[인외존재/힐링물/달달물] 금수의 왕자 - 몽낙

출판사: 블릿 출간일: 2021.04.06 분량: 본편 2권 ​ ​ ​ ​ ​ ​ point 1 책갈피 ​ ​ "도후 님은, 가끔 절 이렇게 무는데. 그럼 안 돼요." ​ 금왕자가 하얀 발끝으로 제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늘어

b-garden.tistory.com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비욘드

출간일: 2019.05.23

분량: 본편 1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드럽고 치사해서 진짜. 사람이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이제 좀 한가해지니까 옛 생각이 솔솔 피어오르던가요? 내가 무슨 장작불도 아니고 부채질만 하면 다시 활활 타오를 줄 아셨어요?"

"잠깐. 내가 설명하마."

"설명은 무슨.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숨 쉴 틈도 없이 카일을 몰아세우던 레블리가 어깨를 들썩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활짝 웃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며 그의 두 눈이 밤바다와 같이 일렁거렸다. 레블리는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눈을 부릅떴다. 무릎을 꼭 쥔 손에 파랗게 핏줄이 돋았다. 가느다란 손목을 묶은 수갑이 유난히도 잔혹하게 보였다.

"내 몫이 아닌 사랑을 구걸하는 거야."

그렁그렁 고여 있던 눈물이 기어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아, 짜증 나게."

point 2 줄거리

기: 사랑 받지 못한 현생을 사는 민웅은, 집착 광공인 황제공과 미녀 가련수의 피폐 로맨스 '파멸 열애'의 광팬이다. 그날도, 읽고 또 읽은 '파멸 열애'를 읽다가, 책에 머리를 박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이 떴을 때 카일의 지독한 사랑을 받으며, 감금 당한 채 인형처럼 살고 있는 레블리에 빙의 되어 있었다. 장면은, 무슨 수를 써도 카일에게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레블리가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깨어나 카일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승: 괴로운 눈빛을 하고, 광기를 숨기지 않는 카일! 하지만, 빙의 된 레블리는 카일에 대한 참사랑을 깨달았다고 해맑게 웃으며, 카일을 '자기'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카일은 급변한 레일리의 행동을 보며, 도망을 위한 수작, 기억상실, 끝내는 감금과 통제로 인한 정신이상이라는 결론에까지 이른다. 그래서, 카일은 사랑스러움을 뿜뿜하는 레일리를 볼 수록 죄책감을 느끼고 구속구와 감금을 풀어주지만, 되려 레일리는 족쇄에 집착하며 외출을 거부한다.

전: 10년간 소설 속 카일을 사랑을 받고 싶었던 레일리는 목줄과 족쇄를 정표로 여기고, 카일이 먹여주는 밥을 먹기 위해 밥을 굶으며, 카일이 보이는 집착에 전율을 느낀다. 다만, 지식으로 커버할 수 없는 물리적 사이즈를 차마 수납하지 못했기에, 레일리의 고민은 카일과의 성공적인 섹스였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카일은 레일리를 피하기 시작한다. 찾아오지도 않고, 찾아가도 만나 주지 않으며, 정원에서 기다리다 마주쳐도 못 본 척 무시한 채 지나갔다.

결: 하지만, 그때 카일은 레일리를 독살하려는 잔당들을 뿌리 뽑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고, 레일리의 안전을 위해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카일은 23일+7시간 만에 레일리와 재회한다.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레일리는 울분을 토하고, 케일의 사과를 받는다. 레일리는 카일에게 청혼한다. 카일은 고자라는 소문을 낸 후 레일리를 잡음 없이 황후로 맞이하고, 10년이 넘도록 염병천병한 황제 커플의 영향으로 카딜록 제국 귀족 출산율은 올라간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집착광수?

아~ 이해 안 가! 솔직히 집 밖에 뭐 좋은 게 있다고, 호화로운 집에 원하는 것 다 사준다는데 얌전히 감금 당하는 게 요양이지 왜 도망을 못가 안달이야? 자유가 뭐 대단한 건 줄 아나? 그리고, 어차피 세상에 제일 중요한 한 사람만 있으면 되지, 기타등등 챙긴다고 긁어 부스럼 만들면 뭐 할 거야? 선택과 집중 몰라? 어차피 사람은 혼잔데,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이미 오바! 쥬분! 총뻔! 이게 성공한 인생이지! 모든 걸 가진, 모든 걸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의 독점적 선택과 지독한 사랑!!! 나도 받아보고 싶다!!!!

라고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 안 해 본 사람도 있을까요? 그렇다면, 할리퀸, 할리킹, 신데렐라 콤플렉스, 주인공이 재벌이고 황제인 무궁무진한 로맨스물이,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사랑받았을 리가 없겠죠. 손해 보지 않고 사는 법에 익숙한 현생이라, 미친 것처럼 직진하는 가상세계를 꿈꾸고, 내 것이 없는 현생이라, 그것을 온전히 그리고 넘치도록 가질 수 있는 가상세계를 그리는 걸 거예요. 그런 점에서, '저스트 핏!'의 설정은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출발에 비해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다.

일단, 집착 강공이 없습니다. 전쟁광, 레일리를 쳐다만 봐도 눈알을 뽑는 잔혹무도한 성정, 레일리의 고향마을을 도륙하고 레일리를 납치 감금한 광기어린 애정...을 가진 황제를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본 황제는, 자살 시도 후 깨어난 레일리에 턱 좀 세게 쥐고 키스하다가, 갑자기 해맑게 웃는 레일리가 걱정이 돼서 구속구도 풀어주고, 산책도 억지로 시키죠. 레일리가 굶으며 밥 먹여 주러 오고, 레일리가 목욕시켜 달라면 기꺼이 수발들고, 레일리가 너무 커서(?) 아프다고 하면 곱게 잠만 자죠. 레일리가 화낼까, 도망갈까, 심지어 나중엔 주름 생기면 싫어할까 전전긍긍해요. 집착광공을 길들이는 집착광수라는데... 집착광공은 어디 계시나요?

더 놀라운 건 레일리의 끼부림입니다. 물론, 민웅은 현생에서 사랑의 기근에 시달렸고, 10년간 소설 속 레일리의 삶을 부러워했죠. 하지만, 이 정도면... 현생에서도 썩 평범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애교를 부리고 싶다!라고 애교 멘트와 표정이 자동 발사 되는 것도 아니고, 법치국가에서 일생을 살았는데, 몸 닦아 줬다는 이유로 시종 손가락부터 밟는 공을 보며, '집착애'라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의아했습니다. 차라리, 빙의 전에 신분제 있는 시대나, 전쟁 같은 비정상적인 환경 속에 살았다면 이해해 볼 법도 한데 말이죠.

그 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수의 '하이텐션 말투'예요. 처음 빙의가 되었을 때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생에서 민웅은 사랑을 구걸하지 않았죠. 고독한 자존심 덩어리... 하지만, 마땅히 나의 것으로 할당된, 넘치는 사랑을 바라지 않은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니, 정말로 그 달콤한 케이크의 주인이 되었을 때, 흥분감을 표현하기 힘들었겠죠. 그러나 10년간, 한치의 변함없이, 계속 하이텐션 말투가 이어집니다. 이것을 어색하거나 조금 지친다고 느낀다면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사랑스럽다고 느끼신다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과하다고 느꼈습니다. 요부도 이런 요부가 없다!라며 봤어요.

하지만, 수에게 쩔쩔매는 공! 족쇄로라도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집착수! 이 들의 달달하고 위기 없는 꽁냥꽁냥을 보고 싶으시다면, 킬링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음악으로 친다면, 소설 톤이 '솔'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 그래서, 다소 '길다.'라는 인상의 피곤감이 있었습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