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W-Beast

출간일: 2021.04.26

분량: 본편 1권

 

point 1 책갈피

"신경 쓰여?"

이런 내 모습이 좋아 죽겠다는 듯이 얄밉게도 웃는다.

"막, 나 보면 당황하고 긴장되고 평소랑 달라서 죽겠고, 티 내면 쪽팔리니까 숨기고 싶은데, 그럴수록 더 부자연스럽고 그렇지?"

술술 쏟어지는 그의 정답 퍼레이드에 반쯤 포기했다.

"넌 왜 그렇게 잘 알아?"

"다 겪었던 거니까."

새삼 나를 아주 오랫동안 좋아했다는 게 와닿았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친구로 그의 곁에 붙어 있는 동안, 정수범은 무슨 생각으로 고통을 참아낸 걸까.

"뭐, 나도 포기해보려 했고, 너랑 똑같은 온도로 대하려고 죽어라 노력해 봤는데."

스윽.

손을 뻗어 내 볼을 잡는다. 정수범의 손가락은 차가웠다. 아니면 내 볼이 비정상적으로 뜨겁거나.

"안 되겠더라고. 아무리 해도 안 돼. 안되는 걸 매달려도 소용없어. 그래서 결심했지. 나 혼자서는 끝낼 수 없으니까 어디 끝까지 가보겠다고."

볼에 닿은 손이 내려와 테이블 밑에 있던 내 손을 꽉 잡았다.

"너도 끝까지 가. 가보고 나서 안 되겠으면 말해. 근데."

그 꽉 잡은 손가락이 깍지를 얽으면서 빈틈없이 맞물렸다. 정수범은 깍지를 낀 손을 들어 올렸다.

"너한테 도망칠 구멍 주는 그런 어설픈 새끼 아니다, 나는."

쪽.

맞잡은 내 손등 면에 입을 맞춘다.

point 2 줄거리

기: 모범생 이차준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알친구가 있다. 어머니들 배 속에서부터 이미 소꿉친구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하지만, 정수범은 초중고 내내 이차준의 그림자였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거절당한 이유도 모두 정수범이었다. 이차준은 공부머리라곤 조금도 없는 정수범이 절대 올 수 없는 명문대로 도피하려 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정수범은 체육 특기생으로 먼저 그 학교에 수시 합격한다. 이런 이차준과 정수범의 관계는 수능 직후 급변을 겪는데...

승: 정수범은 야동을 본 적 없는 이차준을 집으로 불러 야동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가슴을 만지기 시작한다. 놀란 이차준은 그날 이후 정수범을 피하지만, 오히려 정수범은 태연하게 굴며 차준의 집으로 와 강의를 핑계로 더 대담한 짓거리를 한다. 차준은 그날 이후 면접을 핑계로 정수범을 또 피한다. 하지만, 이미 부모가 절친인 관계! 둘은 안 만날 수 없었다. 결국, 차준은 얼떨결에 12월 31일 수범과 약속을 잡고 만다.

전: 차준은 꾀병으로 약속을 피해보려 하지만 실패하고, 수범이 알바해서 사 준 명품 옷을 입고, 수범과 맛집에서 식사 한 후, 수범이 예약한 호텔에서 술을 마신다. 수범은 차준에게 고백하고, 차준은 술에 취해 수범에게 2번째 강의를 해달라고 유혹한다. 두 사람은 뜨밤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연인이 된다. 차준마저 대학에 합격하면서 두 사람의 동거는 시작된다. 바야흐로, 열혈 CC의 탄생이 되시겠다.

결: 차준은 공부 이외에 뭐든 잘하는, 잘생기고 몸 좋고 인기 있는 수범을 보며 불안해 한다. 동시에 차준은 수범과의 섹스에 빠져들며, 점점 수범에 대한 애정도 깊어져갔다. 반면, 수범은 어려서부터 차준과 결혼하기로 결심했고, 중간중간 시련과 혼란은 있었지만, 차준을 가지기 위해서 치밀하게 계획하고 노력해왔다. 고로, 이미 차준과의 미래 설계까지 끝내 놓은 수범에게 그런 차준의 걱정은 그저 불 쏘시게 일 뿐! 두 사람은 염병첨병 연애를 계속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맑고 밝고 유쾌한

'달콤하게 적셔줄게'는 망태기님의 기존 작품에서 연상되는 하드코어, 고수위, 다공일수와 결이 다른 작품입니다. 또, 기존작들 역시 사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신적 애정보다는 몸정이, 짝사랑과 일편단심이라는 소재에서도 욕망 우선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양상이 다릅니다. 그래서, 망태기님의 '시그니처'를 기대한 독자라면,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망태기님 특유에 색스러움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수범은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차준과 친구 이상의 관계를 시도합니다. 백지와 같은 순수 영혼인 차준이 도망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대학 입학 전까지 승부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죠. 풋풋과 상큼 발랄의 대명사 학원물에서, 이런 경우 아가들은 입맞춤을 하지만... 망태기님은 가슴을 먼저 길들입니다.

또, 모럴리스한 강수는 없지만, 몸정으로 신세계를 연 유혹수는 있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수범은 호텔을 예약하고 차준에게 섹스하겠다며 엄포도 놓지만, 쉽게 건드리지 못해요. 차일 수도 있다고, 싫으면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런 마음으로 문신도 하고, 실제로 그렇게 말도 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관계를 진전 시킨 건 차준이었어요. 차준은 수범이 준 쾌락을 떠올렸고, 수범이 아닌 사람과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죠. 결국, 수범뿐이라는 결론에 이른 차준은 오히려 멈짓하는 수범을 유혹합니다.

이후로도, 수범은 매일 아침 차준의 이불 속에 들어가 차준의 가슴에 집착하면서도, 과제도 시험도 많은 차준을 걱정하고 배려합니다. 애달프고 끼를 부리는 건 또 차준! 수범은 확실한 계략공이지만, 결국 질투든 섹스든 둘 사이에 트리거를 당기는 건 쾌락에 약한 수인셈이죠. 그런 면에서 망태기님 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체적으로 기존의 작품들이 퇴폐적 분위기가 강했다면, '달콤하게 적셔줄게'는 맑고 밝고 유쾌해요. 짝사랑, 첫사랑, 첫 연애, CC 커플에서 연상 가능한, 의욕과 체력과 호기심이 넘치는 소꿉친구의 연애담입니다. 정상적이고, 일반적이고, 오히려 서로가 너무 잘난 애인이랑 둬서 불안하고, 서로를 추켜세워주기 바쁜 귀여운 커플들이죠. 수시점의 서사가 재치 있고, 공이 입버릇처럼 욕은 하지만 의외로 더티 토크는 많지 않습니다.

학점, 군대, 취업, 결혼...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계획하는 모습이 매우 상식적입니다. 웃으며 므흣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지만... 글쎄요... 이 남모를 아쉬움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장난감에 호기심을 느끼고, 잘난 서로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장면에서, 고 아슬아슬한 선을 넘어 집착광공과 방만한 유혹수가 되길 예상했기 때문이겠죠. 끝까지 맑고 밝고 유쾌한 커플들에게, 못난 어른이라 미안해요.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1.01.10 - [BL 소설] - [현대물/하드코어물] 욕망형제 - 망태기

 

[현대물/하드코어물] 욕망형제 - 망태기

출판사: W-Beast 출간일: 2019.10.03 분량: 본편 1권 ​ ​ ​ ​ point 1 책갈피 ​ ​ "형, 섹스 원래 좋아했어?" ​ 술을 아예 병째로 챙긴 규빈이 2층 계단으로 향했다. ​ "응" ​ "왜?" ​ "기분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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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9 - [BL 소설] - [연예계물/하드코어물/달달물] 불공정 거래 - 망태기

 

[연예계물/하드코어물/달달물] 불공정 거래 - 망태기

출판사: 체셔 출간일: 2019.03.05 분량: 본편 1권 + 외전1권 ​ ​ ​ ​ ​ point 1 책갈피 ​ ​ "거래에 공정한 게 어디 있어요. 결국은 어느 한쪽이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보기 마련인데요. 플러스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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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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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블릿

출간일: 2021.04.06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도후 님은, 가끔 절 이렇게 무는데. 그럼 안 돼요."

금왕자가 하얀 발끝으로 제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늘어놓는 투덜거림에 도후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그래도 화가 난 표정은 아니었다. 그것과 미묘하게 다른, 무언가에 뒤통수를 쾅 얻어맞기라도 한 듯 가벼운 충격을 머금은 그런 표정이었다. 그래서 도후는 방금 자신이 물려고 한 게 아니라 가벼운 입맞춤을 하려고 했다는 반박 같은 건 떠올릴 수가 없었다. 다만, 한가지만이 떠올랐다.

"싫어?"

혹시라도 품에 안긴 이 작은 생물이 자신을 거북하게 생각할까 봐, 도후는 그 순간 태어나 처음으로 불안을 느꼈다. 하지만 다행히 금왕자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어 주었다.

"아니요, 아니요. 싫은 게 아니라...... 도후 님이 그러고 나면 너무 심장이 두근거리거든요. 막, 쿵쾅쿵쾅 정신이 없어질 만큼 뛰어대요.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요."

술에 취한 탓인지 평소보다 더 솔직한 금왕자의 심경 토로에 도후의 눈에서 충격의 빛이 한 겹 걷혔다. 대신 미묘한 기쁨이 차올랐다. 이 작은 생물이 자신으로 인해 심장이 다급해진다는 사실이 어쩐지 무척 유쾌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물면 안 돼요?"

금왕자가 자신의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엄하게 덧붙이는 말에 도후는 다시 미간을 작게 찌푸렸다.

"그건 어려워."

"왜요?"

도후의 단호한 대꾸에 금왕자는 반쯤 감았던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힘드니까."

"힘들어요?"

금왕자가 반대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 널 보고 있으면, 가끔. 너무 배가 고파 견딜 수 없게 돼."

point 2 줄거리

기: 금왕인 아버지와 인간이 어머니를 둔 금왕자 수호! 금슬이 너무 좋은 부모님을 보며 자신도 인간 반려를 찾겠다는 강한 의지로, 호랑이, 독수리 보좌관과 함께 인간계로 내려왔다. 어머니처럼 동물을 좋아하는 반려를 찾기 위해 그들은 동물원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수호는 금왕과 같은 위압감을 내뿜는 검은 인간 백도후를 만난다. 그리고 심한 인간 혐오를 가지고 있었던, 도살자 백도후는 투명하고 맑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호에게 관심을 갖는다.

: 이후 금왕자 일행은 피 냄새가 진동한 살인 현장에서 백도후와 재회하고, 백도후의 집에 가게 된다. 도후는 반려를 찾는 금왕자의 사정을 듣고, 반려를 찾는 동안 자신의 집에 머물 것을 허락한다. 시크하지만 금왕자를 아끼는 츤데레 독수리와 금왕자 덕후 호랑이 호야, 순수하고 맑고 착하고 애교 많고 귀여운 금왕자와의 생활이 이어지면서, 도후는 수호에게 애정어린 소유욕을 느낀다. 한편, 도후는 이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산속 별장으로 이사한다.

전: 첫 만남부터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던 도후와 함께 하면서 수호는 반려 찾는 일을 멈춘다. 반면, 도후와 수호의 관계가 가까워지자, 질투가 난 호랑이 호야는 수호의 반려를 찾아 빨리 인간계를 떠나려고 한다. 수호의 또 다른 덕후 사자 사야가 찾아오면서, 호야와 사야는 적극적으로 반려 찾기에 돌입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존재는, 도후가 속한 조직의 반대파 '서본'에 노출된다. 설상가상 호야와 사야의 바보짓이 더해지면서, 도후가 직접 나서기에 이른다.

결: 도후는 수호의 반려가 '남자'여도 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스스로 반려가 되겠다고 생각했고 이를 수호에게 말한다. 수호는 기꺼이 허락한다. 하지만, 서본의 행동대장 민머리가 산속 별장에 쳐들어 오고, 이 과정에서 수호가 독이 묻은 칼에 찔리면서 위기에 빠진다. 결국, 수호의 해독을 위해 염왕은 내려오고, 도후를 본 염왕은 그가 '금신의 조각을 타고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도후와 수호는 영원을 함께 할, 서로의 반려가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어떻게... 아기 호랭이... 감당할 수 있겠어요?(귀욤사 주의!)

모든 동물의 새끼는 귀엽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품에 꼬옥~들어오는 아기 호랭이가 있어요. 호수처럼 투명한 파란 눈과 온몬을 덮는 푸른빛 검은 털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 검은 바탕 위에는 금줄이 수 놓아져 있지요. 하지만, 역시 최고의 매력 포인트는, 양발을 신은 것 같은 하얀 네 발과 핑크빛 코예요. 특히, 하얀 발바닥 젤리는, 인간 도살자도 조물 조물, 문질 문질, 쪽쪽 발발하게 만드는 마약 같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죠.

그냥, 있기만 해도 이런데... 이 아기 호랭이가 어른 호랑이 목 깃털에 부비부비 하면! 미간 사이를 하얀 발로 꾹꾹이 하면! 촉촉한 콧방울로 콕콕 대면! 작은 얼굴로 갸윳갸윳하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어요? 정말, 귀욤사 대비가 필요한 소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작 '금수의 왕'이 맹수덕후인 호연이 초원, 설원, 사막, 하늘을 넘나들며 각종 금수들을 조물딱거리는 전방위적 덕통사였다면, '금수의 왕자'는 인간계에 내려온 아기호랭이에 제대로 꼬인 인간 도살자의 직진 귀욤사라도 할 수 있습니다. 결론은, 둘 다 좋아 죽는다는 거죠!

'금수의 왕'에는 많은 동물들이 짧게 등장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나열식 전개라 텐션이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호연의 성덕기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금왕과 호연의 애정사는 다소 '깝툭튀'라는 인상을 받았었고, 가족과 친구가 있는 정상적 일반인 호연이 너무 쉽게 인간계를 버린다는 설정이 잉?스러웠어요. '사랑은 위대하다.'라는 것으로 덮기에는, 고모와의 관계가 좋아 보였거든요.

그런 면에서, '금수의 왕자'는 확실한 진화형입니다! 일단, 호수의 반려 찾기라는 메인이벤트로 모든 에피소드가 집중되기 때문에, 몰입도가 있습니다. 또, 등장 동물의 수는 줄었지만, 그 대신 호수라는 매력적 캐릭터가 일당백 합니다.

무엇보다, 도후가 1000년에 한 번, 그중 희박한 확률로 금신의 조각을 타고난 인간이라는 설정이 좋았어요. 그래서 도후는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었고, 인간을 혐오하며 인간 도살자가 되어, 순수하고 맑은 동물들로만 힐링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거죠. 물론, 수호는 그 자체로도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수호를 동물원에서 만났고, 수호라는 '인간'이 신기해 관심을 가졌고, 사랑에 빠져 운명을 성취해 낸 스토리들이, 잘 맞물려져 있다고 느꼈어요.

다만, '금수의 왕'이 19세인 반면, '금수의 왕자'는 15세예요. 그래서 수호를 잡아먹고 싶지만, 참아야만 하는 인간 도후는 꽃을 먹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영화 황해의 하정우가 떠올랐더랬지요. 정말 김처럼 꽃을 우걱우걱 먹으며, 욕망 역시 씹어 삼켜야 했던 도후에게 삼삼한 애도를 표했습니다. 물론, 적극적 씬은 나오지 않지만, 수호는 못 느끼고 독자는 매우 느끼는, 도후의 '활활활'이 있기 때문에 동화틱하지만은 않습니다. 차라리, 마지막에 씬 하나 몰빵하고, 19세 구색을 맞춘 것 같은 '금수의 왕'에 비해, 훨씬 완성도가 높아 보여 나쁘지 않았어요.

산속 별장에 남겨진 수호와 도후가 산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작은 동물들이 금왕자를 반기며 지저귀고, 신이 난 금왕자는 폴짝이며 수다스러워져요. 의뭉스러운 인간이 아닌, 순수한 호의적 금수 사이에서 도후의 감정은 해방됩니다. 그런 도후의 눈에는 빛나는 신성한 생명체가 숲속을 걷고 있었고, 그때 든 격정적 감정은 낯설지만 분명한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었죠.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받으며 힐링하는 기분으로 읽었던 것 같아요. 유독 기억에 남는 씬이었어요.

금수의 세계에 많은 커플들이 있습니다. 물론, 저는 금왕과 호연 커플도, 금왕자와 도후 커플도 더더더 많이 보고 싶긴 합니다. 호연이 쌍둥이들을 출산했으니, 그들의 우당탕탕 육아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예측컨대 다음 연작은 설왕 커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목은 '설원의 왕'!!!! 예... 저의 희망사항이었습니다. 어쨌든, 더욱 진화된 금수 시리즈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리뷰

 

2021.03.01 - [BL 소설] - [인외존재/힐링물/잔잔물] 금수의 왕 - 몽낙

 

[인외존재/힐링물/잔잔물] 금수의 왕 - 몽낙

출판사: 에피루스 출간일: 2021.01.07 분량: 본편 2권 ​ ​ ​ ​ ​ point 1 책갈피 ​ ​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우스갯소리인데요. 어떤 사람이 호랑이를 두고, 이 녀석이 내 고양이 라면 얼마나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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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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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민트BL

출간일: 2021.04.02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퇴원은 그렇다 쳐도, 침대에서도 못 내려올 만큼 아픈 곳은 하나도 없다니까요."

"절대로 안 돼. 너, 내 말 잘 듣겠다며. 맛있는 거로 잘 골라 올 테니까 착하게 기다리고 있어. 할 수 있지?"

"...와. 형, 진짜 치사하...아니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하하. 제가 설마 하늘 같은 형님께 치사하단 말을 했겠어요? 후. 알겠어요. 형 말대로 얌전하게 침대에 누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얼른 다녀와요."

민서는 부루퉁한 얼굴로 보란 듯이 죄 없는 이불만 끌어다 주물럭거리며 무언의 시위를 했다. 승원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서가 황급히 승원의 팔을 잡았다.

"한 번만 더 해줘요. 아니, 두 번만 더 해 주세요. 이마에만 하지 말고 입술에도 해 주세요."

"착하게 있으면 갔다 와서 해 줄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형이요."

point 2 줄거리

기: 승원은 오토바이 사고로 두 팔이 마비되는 장애를 얻는다. 명문대를 다니는, 성실하고 착한 아들의 비극에 부모님은 슬퍼하지만, 기초 생활 수급자로 생활하는 가난한 살림에 승원의 큰 수술비를 댈 수 없었다. 수술을 포기한 승원은 어머니의 수발을 받으며, 절망 역시 마주해야 했다. 결국, 승원은 중증 장애인 시설로 도망치듯 입소하고,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나온 민서를 만난다. 그리고, 유독 승원에게만 곰살맞게 구는 민서가 오는 날을, 승원은 기다린다.

승: 장애인인 형의 자살 이후, 3월이면 악몽에 시달리던 민서는 자원봉사 차 방문한 시설에서 형과 분위기가 비슷한 승원을 만난다. 낯을 가리고 쌀쌀맞은 민서지만, 승원에게만은 살뜰히 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승원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연이은 불행에 승원은 힘들어한다. 그 모습이 꼭 자살 전에 형 같았던 민서는 승원을 책임질 방법을 찾는다. 한편, 민서는 승원과 특별한 사이가 되기 위해 사귀자고 고백하지만, 승원에게 단칼에 거절당한다.

전: 이후 민서의 서툰 시도들은 승원을 비참하게 만들고, 충동적으로 승원의 자위를 도운 날, 승원은 폭발하고 만다. 하지만, 민서가 너무 소중했던 승원은 결국 민서를 용서하는 한편, 민서는 그 날 승원에 대한 애정이 '성애'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 번 큰 실수를 한 민서는 승원의 눈치를 보며, 승원을 애정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민서는 승원의 수술비를 지원하려 하고, 그를 알게 된 주변인들의 도움이 더해지면, 승원은 수술을 받고 회복한다.

결: 승원은 일상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 일상에는 민서가 있었다. 시설에 나온 이후 승원의 곁을 민서는 떨어지지 않고, 승원 역시 그런 민서에게 이성적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승원은 3월의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민서에게 키스한다. 이후 용기를 얻은 민서는 승원에게 고백하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한편, 민서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승원은 민서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 깨닫는다. 민서의 입대 전날, 승원은 청혼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봄을 찾아서

빗물에 떨어진 벚꽃잎이 흐르는 물길을 따라 길게 띠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처연하면서도 화사해 보입니다. 봉우리가 움 틀 때는 '곧 봄이구나!' 봄 마중에 설레었던 것 같은데, 언제 할 일을 모두 마치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걸까요? 꽃은 어느 날 문득 만개해 있다가, 알아차릴만하면 지는 것 같아요. 좋은 것들은 그렇게 오고, 그렇게 가는 것 같죠? 그래서인지 '봄' 소설도 그 양가적 심상을 모두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

'봄의 열쇠'는 연상수의 비극과 연하공의 악몽으로 시작합니다. 주변엔 모두 착한 사람들뿐이지만, 두 사람은 홀로 분노, 혼란, 체념, 죄책감을 이겨내야 했죠. 그래서 초반 분위기는 회색 도화지에 그려진 도시처럼, 차갑고 외롭습니다. 승원은 친구의 어거지로 오토바이를 타게 되고, 사고로 두 팔에 심각한 장애를 얻습니다. 원망해야 할 친구는 즉사하고, 남은 승원만이 어머니의 오열과 아버지의 줄담배, 비참한 미래를 감당해야 했어요.

가난으로 받지 못한 수술, 생리적 현상조차 처리할 수 없는 무력감, 비통함에 젖은 어머니의 얼굴... 승원은 화나고 슬프고 답답하지만, 삭혀야만 하는 생활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래서, 교회의 도움으로 장애인 시설에 들어갈 수 있게 되자, 그 도피처를 고민 없이 선택합니다.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고 후련하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얼마 뒤... 부모님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고, 장례식장을 지키는 승원은 그 순간을 떠올립니다.

승원에게 남은 건, 혈혈단신 장애인으로서 살아야 할 삶이었어요. 그리고, 민서에게 위태로운 승원은 자살 전날의 형의 모습과 겹쳐졌어요. 민서는 삶을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는 형에게, 형이 더 지긋지긋하다고 모진 말을 내뱉고 학교를 가요. 하지만, 내내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하려 하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이미 형은 돌아올 수 없는 사림이 되어 있었고, 민서에게 3월은 악몽의 달이 되었죠. 문자 그대로 말이에요.

민서는 과거의 실수를 다시 반복할 수 없었어요. 이때부터 민서의 고군분투기가 이어집니다. 소설 초반의 무거운 분위기가 유쾌하게 바뀌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할리킹인듯 할리킹 아닌 전개와 함께 말이에요. 무려 증여받은 건물로 임대료를 받는 민서는 승원을 책임지고 싶어 합니다. 친한 형 동생보다, 더 끊어 낼 수 없는 강한 유대를 원하죠. 하지만, 만 19세도 되지 않은 민서는, 결국 승원의 수술비를 지원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민서는 엉뚱하게도 승원의 연인이 되려 합니다.

BL 소설이기에, 이 발상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민서가 충동적으로 승원의 자위를 도와준 날, 민서는 손이 발이 되도록 용서를 빌고 승원에게 거부당하는 경험을 하지만, 승원에 대한 마음을 확신하기도 합니다. 민서는 승원도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동생계(?)와 우렁각시 전략을 구사하며, 정말 부지런히 뻐꾸기(?)를 날리고 가자미 눈이 되도록 눈치를 봅니다.

그리고, 민서의 노력은 성공을 거둡니다. 하지만, 승원은 자신의 처지에 민서에게 마음을 밝힌다는 것이, 이미 받은 엄청난 은혜를 악의로 갚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역시 BL 소설이기에, 악몽을 꾸며 애절하게 매달리는 민서를 쳐내지 못하고, 교통사고로 민서를 잃을 뻔한 위기를 겪으면서, 바뀝니다. 승원은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끝내 청혼까지 합니다. 시린 겨울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 주죠.

'봄의 열쇠'에서 공수의 심리와 일상의 묘사는 잔잔합니다. 그리고 연하공의 연상수에 대한 치댐은 달달해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할리킹, 구원물, 일상물, 성장물 등등 키워드로 특정하기에는, 다들 어느 정도는 있지만 완전하지 않아요. 저의 경우, 잔잔한 힐링물을 읽고 싶었는데, 승원의 수술이 성공하자 밝고 액티브한 캠퍼스물로 바뀐 것 같아 아쉬웠어요. 서정적 분위기가 안개처럼 깔려 있다가, 뚝 끊어진 느낌이랄까요.

민서는 승원과 애매한 관계일 때 미뤘던 입대를, 연인이 된 후 반년 뒤에 합니다.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보기엔 다소 가혹한 결말이죠. 입대 전날 승원이 민서에게 청혼하긴 합니다만, 결혼 반지 한 번 껴보고 군대에 못 가져간다며 다시 승원에게 맡기는 모습이... 제대 후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봐야만 이 찜찜함을 떨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작가님이 외전을 쓰고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진심으로...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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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글로번

출간일: 2021.03.29

분량: 본편 3권

point 1 책갈피

"저 진짜 말 안 하려고 했어요! 노력하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자초한 거예요! 저 진짜 안 숨겨요. 이제 진짜 안 숨긴다고요! 후회해도 소용없어요!"

"아가."

"아가라고 부르지 마세요! 저 열여덟 살이에요! 알 거 다 아는 나이고 이년 뒤면 성인이니까!"

"......"

"이렇게 된 거 아저씨가 저 좋아하게 만들 거예요. 안된다고 하지 마세요! 아저씨가 저 거둔 거 후, 후회하고 다시 내...... 내쫓는다고 해도 저 취소 안 할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황급히 몸을 돌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허둥거리는지 뒤를 돌아 걸어가다 제 발에 꼬여 넘어지고, 자신이 당기는 문에 이마를 박아 가며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다. 문을 듣기 전에 일하는데 방해해서 죄송하는 말을 끝으로 희서는 완전히 남자의 사야에서 사라졌다.

문이 닫혔음에도 밖에서 요란하게 들리는 우당탕 소리를 들으며 박중권은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꼬았다.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고 나서야 웃고 있다는 걸 깨달은 그는 결국 드물게 소리 내어 짧게 웃음 터트렸다가 아, 하고 자신의 앞머리를 위로 쓸어 올렸다.

"귀여워 죽겠네."

point 2 줄거리

기: 18살, 전 재산 5천 원인 이희서는 5일째 거리를 배회하다, 덩치 큰 박중권과 부딪친다. 배고픔과 추위에 지친 희서는 충동적으로 돈을 구걸하고, 박중권은 그런 희서를 집으로 데려와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 중권의 따뜻한 호의에 마음이 풀린 희서는, 보육원 원장에게 정착 지원금을 뺏기고 술집에 팔렸다가 도망쳤다고 털어놓는다. 중권은 원장 문제를 처리해 주고, 자신에 집에서 살자고 말한다. 희서는 갑작스러운 행운에 의아해하면서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승: 희서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고, 18살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다. 온몸엔 원장의 학대로 인한 멍 자국이 남아 있었고, 중권에게 버림받을까 늘 긴장했다. 중권은 그런 희서가 작은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자신의 처지가 떠올라 거두었고, 예쁘고 귀여워 아껴주었다. 하지만, 희서는 그런 친절하고, 잘생기고 몸도 좋은 중원에게 설레며, 사랑을 깨닫는다. 중원에게 욕정까지 느끼기 시작한 희서는, 곧 마음을 들키고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전: 첫사랑에 스트레스 받은 희서는 쓰러지고, 이를 본 중권은 희서를 잃을까 두려워졌다. 그래서, 희서에게 사랑한다고 거짓말하며 연인이 된다. 희서는 중권과 매일 꿈같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친구도 사귄다. 그러던 어느 날, 희서는 우발적으로 중권의 회사에 가고, 그곳에서 중권과 그의 친구 주산호의 다툼을 엿듣는다. 그리고, 중권이 사랑한다고 거짓말했음을 알고 충격받는다. 반면, 중권은 갑자기 나타난 희서를 보고 당황한다.

결: 중권은 이미 희서를 사랑하게 됐지만, 희서는 중권에게 화를 내며 그의 진심을 믿어주지 않는다. 중권은 끊임없이 희서에게 구애하고, 희서는 중권을 의심하며 계속 시험한다. 그리고, 끝내 중권이 정말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한 희서는, 중권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서로가 서로를 감금하고 싶은 두 사람은, 결박 플레이를 즐기며 사랑(?)의 지평을 넓힌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MSG가 필요합니다!

댕댕함이 가득한 아공&키잡물이 보고 싶어서 충동적으로 선택한 책이었습니다. 여리고, 어리고, 순수한 아가가 나에게만은 상량한 아저씨를 만나서, 아낌없이 사랑받는 이야기! 그 다정한 연애담을 기대했었죠. 물론, 내가 키운 아가에게 조금씩 홀려 드는 아저씨의 격세지감(?)도 말이에요. 역키잡인 듯한 키잡 작품이라, 피폐가 없는 달달 일상물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요? 뭐랄까요... 좀 많이 비어 보이는 느낌입니다.

3권의 분량이면, 줄거리 대비 적지 않은 분량인데도, 진행되다 만 것 같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희서의 건강, 중권과 아버지의 과거, 중권과 산호 사이에 그녀, 보육원 원장의 말로, 중권의 사업 등등... 시작은 있는데, 끝이 애매한 것들이 제법 됩니다. 오랜 폭력에 시달린 데다가 몸이 약해 자낮일 수밖에 없었던 희서의 캐붕도 조금 당황스러웠고요.

많은 자낮수들이, 어마 무시한 사랑을 쏟아붓는 공을 통해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행복해지는 이야기! 흐뭇하죠. 하지만, 독자가 공감하는 부분은 해피엔딩이 자체가 아니라 시련을 극복하고 정상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축적된 세월과 상처로 상실된 자존감이, 그만큼의 세월이 흐르고 문제가 해결된다고 높아지는 건 아니에요. 일단, 기존의 자아를 깨부술 강한 계기와 두려움을 마주하려는 굳건한 의지, 그 의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지해 주고 응원해 줄 사람과 상황도 있어야 하죠.

희서의 정착 지원금을 빼앗기 위해, 원장은 잠시 친절을 가장합니다. 거기에 감동받은 희서는, 돈 500만 원을 건네죠. 하지만, 그때 원장이 한 일은 때리지 않고, 욕하지 않고, 굶기지 않고, 일상적 염려 몇 마디를 건넨 것뿐이었어요. 희서가 중권의 집에 들어가고 사정을 털어놓은 후, 중권은 희서와 함께 보육원 원장을 찾아갑니다. 술 먹은 원장의 고함 소리에, 희서는 학습된 공포와 더불어 중권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공황증을 일으키고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죠. 희서는 극도의 애정결핍과 강박, 망상을 겪고 있었고, 그래서 자존감은 바닥이었어요.

희서가 중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떨결에 중권에게 고백을 하고 난 뒤, 희서는 스트레스로 코피를 흘리며 쓰러집니다. 그만큼 첫사랑은 절실했고, 또 그만큼 희서의 심신은 약했던 거겠죠. 여기까지는 일관된 희서가 갑자기 환골 탈퇴합니다. 특히, 중권과 산호의 대화를 엿듣고, 중권을 거부하는 부분은 놀라워요.

중권은 곧 산호와의 대화가 과장이었음을 설명하고, 지금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희서는 중권과 한 집에서 태연히 일상을 살면서, 중권을 사랑하지만 중권을 믿지 않는다는 우월적 밀당을 합니다. 심지어, 주변인을 이용해서 중권의 진심을 시험하고, 용서의 시점을 계산하죠. 아저씨가 나를 버린다고 하더라도 꼬실 거라고 했을 때부터 의아했지만... 자낮이, 일생 유일한 선의이자 사랑을, 심판대에 올릴 수 있는... 그 설득력 있는 개연적 사건과 사고의 과정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전개도 다소 싱거웠습니다. 희서는 계속 코피를 흘립니다. 건강검진에서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위기에 몰리는 순간이면 희서는 혼절하며 코피를 흘리죠. 그래서 저는 이것이 큰 병의 단초나 무시할 수 없는 트라우마의 발현이어서, 희서가 묻어 둔 상처를 지각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자주 등장했거든요. 그런데, 중권이 희서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계기... 정도로 쓰인 듯합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코피는 흘립니다.

중권이 희서를 줍게 된 계기인 아버지와의 과거사나, 지금은 잠잠한(?) 가업이나, 산호가 좋아하고 중권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없는 그녀나, 분명 감칠맛을 증폭시켜줄 매력적인 설정들이었는데도, 잘 쓰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인기 배우인 산호는 초반부터 예쁜 희서를 연예인 만들자 불타오르지만, 어느 순간 그마저 사라져버립니다. 차라리 중권이 극렬히 반대했거나, 희서가 생각조차 안 했다면 모르겠지만, 그 의지의 정도에 비해 포기는 과정조차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웠어요.

결박플에 대해서는... 좀 생뚱맞은 감이 있지만, 서로를 너무나도 독점하고 싶은 욕구의 구현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뽀뽀만 연신하더니, 막판에 온갖 장난감들이 총 출현합니다. 어찌보면 몰라 순수한 것과, 정직(?)해 순수한 것을 모두 맛볼 수 있는 셈이죠.

'길 위의 강아지'는 신선했습니다. 희서가 중권에 대한 사랑도 빨리 자각하고, 삽질 구간도 매우 짧아 고백도 빠릅니다. 중권이 싫어해도 친구는 열심히 사귀고, 아저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일을 돕지도 않아요. 게임을 열심히 합니다. 전체적으로, 시놉시스를 보고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저는 좋았습니다. 정말 말 그래도 '순수'해 보였거든요. 사실, 의무라는 거도 학습이잖아요. 다만, 좀 많이 싱거웠어요. 스토리를 쫀쫀하고 찰지게 만들어 줄 디테일이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작가님의 의도를 모르겠더라고요. 초점이 강아지의 구원기 혹은 성장기인지, 강아지와 아저씨의 배덕한 사랑인지, 법대로 처리한다고 원래 스타일도 아닌데 욕은 바가지로 얻어먹으며 길게 끌다가 결국은 섬으로 팔아버린 원장의 응징기인지, 뒤늦게 사랑을 깨달은 아저씨의 변화인지... 뭔가 조금씩 다 있고, 전체적으로는 다 없는 느낌이에요.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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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 빛이 하연준 씨를 좋아하나 봐요. 예뻐서 자꾸 보고 싶은 거겠지, 내가 그런 것처럼."

"......"

"하연준 씨는 내가 알고, 또 내가 생각하던 모든 걸 다 바꿨어요."

"......"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했던 것들이 다 기억이 안 나... 널 본 그 순간만 또렷해."

"저도... 저도 그래요. 배우님을 처음 봤던 그 순간이 아직도 또렷해요. 배우님만 보였어요. 다른 건 하나도 안 중요했어요."

연준의 초점이 평생 저에게만 맞기를 바랐다. 서정원은 식탁 위로 손을 뻗어 저를 향해 손을 내미는 연준의 손가락 끝을 살짝 문질렀다. 고작 손가락이 닿고, 얽혔을 뿐인데 긴장하는 얼굴이 예뻐 눈을 뗼 수가 없었다.

point 2 줄거리

기: 하연준의 삶은 불행했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만, 고모가 가해자에게 합의금을 받아 처벌하지 못했다. 고모는 연준 부모님의 보험금과 합의금을 받고도, 연준에게 눈치를 주며 박대했고, 사이코 사촌 형은 밤마다 연준의 방 문고리를 흔들어댔다. 결국, 연준은 지옥 같은 고모의 집을 나와 달동네에 혼자 살고 있었다. 사촌 형이 달동네 집으로 찾아올까 봐 무서웠던 연준은, 알바비 중 월 15만원만 남기고 모두 고모한테 보내며, 궁핍한 생활을 이어갔다.

승: 그런 연준에게 유일한 행복은 배우 서정원이었다. 중학교 2학년, 따돌림으로 극한에 몰린 연준은 정원의 드라마를 보며 위로받았고, 그 이후로 정원에 골수팬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정원이 연준 앞에 나타난다. 달동네 연탄봉사를 나온 것이었다. 정원의 회사는, 이미지 관리차, 예쁘장한 달동네 팬과 정원의 식사 자리를 마련한다.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는 정원 앞에서도, 좋아한다는 티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연준의 모습에 정원은 죄책감을 느낀다.

전: 인간 자체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던 정원은, 연준에게 마음을 쓰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죄책감이라고 생각하고 잘 대해줬지만, 그 후에도 계속 연준이 떠올랐다. 그리고, 연준이 자신의 손을 어설프게 잡은 날, 연준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한다. 정원은 연준를 집에 감금하고, 매일 좋아한다는 말을 들을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연준을 집에 들이지만, 정원의 사랑은 예상보다 격정적이었고, 연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욕심조차 접게 된다.

결: 한편, 정원은 연준의 사촌 형을 들쑤시고, 결국 공개석상에서 자신을 찌르게 만든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연준은, 정원을 다치게 만든 죄책감에 집을 나와 달동네로 돌아간다. 하지만, 연준과 정원도 이미 서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정원은 연준을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연준의 고모와 사촌 형의 목줄은 정원이 쥐고 있었고, 정원은 연준이 받았어야 할 것들을 받게 해 준다. 두 사람의 격정멜로는 현재 진행 중이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격. 정. 멜.로.

'멜로'... '멜로'의 역사를 풀자면, 근대 유럽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물론, BL을 리뷰하면서, 가치관 전복과 여성운동까지 거론할 필요는 없겠지만, 확실한 건 '멜로'라는 장르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왔다는 것이고, '시대의 거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죠. '여자들의 최루탄' '골 빈 통속 장르'로 비하 될 만한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 요즘은 그마저도 찾아보기 힘든, 화석 같은 존재가 되긴 했지만요.

'로맨스'와 '멜로'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신파'적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파'를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작위적 설정'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확실히 '신파'가 감정의 폭이 크고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는 극적 전개이다 보니, 세련미나 개연성이 떨어져 보이기도 합니다. 죽을 만큼 사랑하고, 죽을 만큼 슬퍼하고, 죽을 만큼 그리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죠. 왜, 어떻게, 무엇을 같은 질문은 미뤄두고, 오로지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격정'이라는 수식어가 '멜로'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클레어님은 다작의 네임드 작가님이시지만, 개인적으로 저와는 잘 안 맞았습니다. 그럼에도 '격정 멜로'라는 제목에 꽂혀서 읽었고, 결론적으로 만족했어요. 제목을 보고 예상했던 재미를 발견할 수 있었죠. 물론, 그간의 클레어님 작품을 읽을 때면,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요소들이 없기도 했고요. 설정만 잘난 공, 신경과 진료가 필요한 수, 해저터널 같은 고구마 전개 말이에요.

'격정 멜로'는 지독하게 불행한 삶 속에서, 동아줄 마냥 서정원이란 배우를 좋아하는 힘으로 살았던 연준이, 우연히 봉사활동 차 달동네를 찾은 정원을 만나 성덕이 되는 이야기예요. 전형적인 할리킹이죠. 그래서, '격정 멜로'의 포인트는 연준이 아닌 정원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원은 연준과 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집 안이 부유해 가난을 모르고, 넘치는 인기를 누리며,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죠. 하지만, 역시 불행했어요. 부모에게 비난받고, 인간을 혐오함에도 사랑하는 척 연기하고 살아야만 했으니까요. 정원은 거짓말 잘하는 기술을, 최고로 인정받은 셈이었어요.

정원은 까칠하지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런대로 배우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오기로 시작해, 큰 목표나 야망 없이 사는 무미건조한 삶... 너무 오래 사랑을 안 해서, 사랑할 수 있는 줄도 몰랐다... 어느 소설의 대사처럼 말이에요. 그러다, 흔들림 없이, 자신을 좋아하는 연준을 보게 됩니다. 싸가지 없게 굴어도, 욕을 해도, 심지어 아프게(?) 해도 한결 같이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사람... 일생 정원의 심장을 묶은 고삐가 풀립니다.

'결정 멜로'는 고구마 구간이 없습니다. 이것저것 눈치 보고, 복잡한 관계와 복층적 감정에 혼란스러워하고, 이리저리 찔러보는 과정이 없습니다. 가장 긴 삽질 구간이 사촌 형이 정원을 찔렀다는 것을 알게 된 연준이 죄책감에 달동네로 돌아온 부분인데, 하루 만에 해결돼요. 함께 있고 싶으면 동거하고, 걱정되면 물어보고, 화가 나면 복수하고, 미안하면 사과하죠. 사랑을 표현할 때는 사랑하는 만큼, 자존심이나 체면 따위는 관여치 않습니다. 그래서 사건 전개는 단순하고, 캐릭터는 일차원적이에요. 나쁜 놈의 이면도 없고, 좋은 놈이 변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에너지는 '사랑하는 데'만 씁니다. 절절하게 고백하고, 애절하게 만지고, 격정적으로 사랑하죠. 그냥, 연준과 정원의 삶 자체가 한편의 멜로드라마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원의 모든 관심사는 연준이었고, 연준의 유일한 중요사항은 정원이었어요. 연준을 감금할 계획을 세우던 집착공은, 자신이 없는 시간 동안 자신을 홀로 기다릴 연준을 가슴 아파하며, 연준이 원하는 수능 공부를 지원해 줍니다. 또, 대학은 안 보내리라 계획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연준을 보며 아직 나오지도 않은 장학금에 질투도 하죠. 정원의 계획, 살아왔던 삶의 방식, 모두 '연준' 앞에선 무효가 됩니다.

이런 사랑을 받으면, 조금은 변할 것도 같지만, 연준은 오로지 정원만 봅니다. 정원이 하자고 하는 건 무조건 좋고, 정원이랑 같이 있는 시간은 무조건 행복하고,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언제나 뿅~가죠. 연준은 절대적 약자이자 모순 없는 선인이고, 고모와 사촌 형은 반전 없는 악역이자 전형적 속물이에요. 그래서 정원은 밑도 끝도 없이 연준에게 빠져들 수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엔 오해도, 갈등도, 실망도 없거든요. 오로지, 두 사람을 둘러싼 적들이 있을 뿐!

하지만, 이런 점이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매일 연재로 볼 때는 '오늘도 그들을 달달하였다!'지만, 한꺼번에 보자면 씬+애절+씬+애절+씬+애절의 무한 루프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격정적 감정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싶은 날에 선순위로 떠오를 작품임에도, 정주행을 생각하면 망설여집니다. 공수가 예쁘게, 한결같이, 사랑하는 모습만 보고 싶다! 하는 독자에게는 최적의 선택이 될 것이고, 사랑도 좋지만 내용도 필요해!라는 독자에게는 다량의 스킵 구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격정 멜로'는 회당 4천 자 이상의 분량을, 주 7일 연재(초반부는 주 5일 연제)로 휴재 없이, 100화 이상의 장편으로 마무리 한 작품입니다. 물론, 할리킹 클리셰를 '멜로'로 풀어낸 시도도 좋았지만, 작가님의 성실함과 책임감에도 감동받았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진지충의 Review에서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인성이 좋은 작가의 작품이 꼭 '좋은 작품'은 아니지만,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면 작가의 인성은 상관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작가님의 좋은 면이, 작품을 읽을 때 독자에게 주는 선한 영향력이 있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많이 기대하게 되었어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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