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비하인드

출간일: 2019.01.04

분량: 본편 1권 + 외전 1권

 

 

 

 

 

point 1 책갈피

 

 

남자들의 성기가 입안과 배 속을 후비고 그들의 손이 재경의 유두며 성기를 장난감처럼 주무르는 동안, 재경의 눈동자는 열심히 굴러가며 방안을 훑었다. 거의 생존본능에 기인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 방에는 시계가 없었다. 시간제한도, 단서도 없었다. 그저 벽에 걸린 합성사진과 지독한 약품냄새가 전부였다. 재경은 그저 그를 범하는 이들 사이에 둘러싸여 죽을 것 같은 기분과 죽고 싶은 기분 사이에서 헤매었다. 동창들은 죄다 미쳐버린 것 같았고, 지금 그들이 재경을 범하고 있는 것은 이 방을 탈출하는 것과는 완전히 상관없는 일이었다.

 

 

 

point 2 줄거리

 

 

기: 재경은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겼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4명의 동창들이 있었다. 두루두루 원만했던 송우진, 반장 이준환, 체대를 다닌다는 김태우와 정영호, 모두 별로 친하지 않았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밀실에 갇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눈을 뜬 재경은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타이머와 방의 구조를 보고 방탈출 게임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힌트를 찾기 시작한다. 그때 재경은 자신의 주머니에 든 백신을 발견하고, 혼자 마신다.

 

승: 한편, 4명의 동창들은 본인들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모습을 합성한 사진을 발견하고, 흥분한다. 그리고, 재경이 섹스 토이에 농락당하는 사진이 추가로 발견되자, 탈출을 명분으로 재경을 사진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든다. 재경은 격렬히 거부하지만 중과부적이었고, 그 고통의 시간이 끝나자 탈출구는 개방된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또 다른 방이었다. 그곳은 더 노골적인 퇴폐의 장소였고, 이미 광기 어린 4명의 동창들은 앞다퉈 재경을 유린한다.

 

전: 두 번째 방의 미션이 끝나자 또다시 탈출구가 개방되고, 그들은 세 번째 방에 도착한다. 두 개의 방에서 미미했던 약품 냄새가 심하게 진동했다. 순간, 재경은 Poison이라는 표시, 자신만 먹은 백신을 떠올리고, 4명의 동창을 미치게 한 것이 이 냄새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 약품에 강하게 노출된 4명은 마지막 이성의 끈을 놓고 재경은 강간한다. 그때 3번째 방의 탈출구가 열리며 들어온 누군가는 강간 당하고 있는 재경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웃으며...

 

결: 그는 고등학교 학폭 피해자 김건우였다. 재경은 건우를 때리거나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집단 폭행 당하는 건우의 사진을, 지금의 건우처럼 찍은 적 있었다. 건우는 웃으며 자신의 사진을 찍는 재경을 보며 꼴렸고, 재경을 위해(?) 방탈출 게임을 계획한 것이었다. 건우는 강간 당하는 재경의 입에 키스하며 알약을 밀어 넣는다. 재경은 정신을 잃고, 건우의 집에서 깨어난다. 건우는 참아 온 욕구는 재경에게 무참히 푼다. 그리고, 그곳은 탈출이 불가능한 방이었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흥미로운 소재와 전개에 비해, 점점 싱거워지는...

 

 

하드코어물에 대해 리뷰하면서, '하드코어' 장르에 대한 이야기도 몇 번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도 다양한 소재와 클리셰가 있지만, 결국 비일상, 비상식, 초자극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하드코어라고 불리는 걸 거예요. 확실히 하드코어를 무난한 장르라고 부르긴 힘들 것 같네요. 그런 점에서 마크다운 백포백에서 하드코어 작품들의 등장 빈도가 늘고 있는 것이, 개인적으로 놀랍습니다. 사실, 백포백은 생각 없이 결재하는 사람으로서, '방 탈출 게임'이 하드코어인지 모르고 봤어요. 다 읽고 보니, 제목이 제법 의미심장하더라고요.

 

원래 하드코어는 따지지 않고 봅니다. 상식을 기준으로 하드코어 작품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면, 카오스에 빠질 거예요. 애당초, 그게 그 장르의 재미이고 기발함이니까요. 그럼에도, '방 탈출 게임'은 좀 잉?스럽긴 합니다. 상황과 인물을 납득시키려는 설명이 공연히 아귀가 엇나가게 만든 것 같달까요. 그럴 거면 차라리 분량을 늘리고, 설정을 좀 더 촘촘히 다져서 스릴러물로 만들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드코어치고는 수위나 배덕감은 낮기도 하고 말이죠.

 

'방 탈출 게임'은 흥미진진하게 시작합니다. 밀실에 갇힌, 서로의 학창 시절 치부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대면 대면한 동창들이, 합성 사진 속 잔인하게 죽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공포를 느끼고 있을 때, 그들은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흥분성 마약에 노출됩니다. 줄어드는 시간과, 미션을 완료해야만 탈출할 수 있다는 압박감... 첫 번째 방에서 4명의 동창들은, 법률 조각 사유를 들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재경을 섹스토이에 앉히고 유린해요. 방을 탈출하기 위해, 미션이 요구한 사진 속 재현에 충실하면서요.

 

두 번째 방으로 이동했을 때, 4명의 동창들은 장시간 마약에 노출된 상태였고, 이미 첫 번째 방에서 평소라면 감히 시도도 못할 자극적 쾌락을 맛본 뒤였죠. 게다가, 두 번째 방은 완벽한 퇴폐의 방이었어요. 그곳에는 번호가 매겨진 섹스토이와, 합성된 재경의 사진이 놓여 있었죠. 하지만, 그들은 이제 사진을 재현하는 것에만 몰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호스트가 요구하지도 않은 방법으로 섹스토이를 사용하며, 괴로워하는 재경의 모습을 즐기다가, 준환을 시작으로 재경을 강간하기 시작하죠.

 

넝마가 된 재경이 세 번째 방에 도착했을 때, 자신이 먹은 백신의 정체를 확신해요. 그리고, 세 번째 방에 노골적으로 쏟아지는 마약에 취한 4명의 동창들은 미션도 없이 재경에 달려들어요. 오로지 재경만이, 맑은 정신으로 그 고통을 당하고 있었죠. 그 백신은 재경에게 진짜 Poison이었어요. 그리고, 그때 등장하는 이 게임을 만든 호스트! 바로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글을 그다음부터는 좀 싱거워집니다.

 

'방탈출 게임'은 하드코어치고는 씬의 특이점이 없어요. 24세 청년들은 그다지 창의적이지 않았답니다. 게다가, '폭행당하는 자신을 찍는 재경의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는 것이 방 탈출 게임을 기획한 이유였다는, 호스트 건우도 좀 허무했습니다. 차라리, 짧게 끝내야 했다면, 호스트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열린 결말로 마무리 짓는 것이 더 완결성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솔직히, 방 탈출 이후 건우의 집으로 이동한 후 이야기는 긴장감도 없고, 의미도 없고... 건우는 절륜하고, 재경은 갇혔다.라는 말을 늘려 쓴 것 같달까요.

 

게다가, 고등학생인 건우가 따돌림당했던 이유는 아버지가 낙선한 의원이었고, 선거 자금을 많이 소진해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라는데, 24살의 건우는 엄청난 재력가이고 약지가 잘린 동창의 고용주예요. 그 연결고리가 너무 헐거웠어요. 차라리 건우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학폭 피해자였던 찌질이가 사실은 사이코였다! 면 미싱 링크는 없었을 듯해요. 잘 조작된 장소, 모호한 관계, 생존 본능과 폭력적 욕구가 가학적 행위를 합리화해주는 '미션'이라는 설정... 정말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은 작품인데, 아쉬워요. 뒷부분에서 너무 많이 희석됐어요.

 

'방탈출 게임'의 외전 격인 '방탈출 게인-보너스 트랩'는 정말 사족이었습니다. 재경이 건우의 집에서 탈출하는 내용인데, 긴장감도 없고, 예상하다시피 건우는 모든 것을 알고 지켜보고 있었죠. 그리고 재경은 건우에게 길들여진 자신의 모습에 안절부절못하면서도, 결국 다시 건우에게 안착합니다. 건우는 손쉽게 재경을 다시 감금하고, 재경은 탈출의 의지를 완전히 포기해요.

 

본권 2/3까지가 좋았어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

출판사: 비하인드

출간일: 2018.11.07

분량: 본편 2권 + 외전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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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근데 제가 아무것도 아니지 않더라고요."

처음에는 손마디가 아파서 제대로 잘 수도 없었다. 그러나 굳은살이 박이고 몇 번 눈물이 쏟어지도록 혼난 뒤부터,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뒤 애쉬는 카펫 무늬를 만들 수 있었다. 손놀림은 더 빨라졌다. 애쉬의 신원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턱없이 후려쳐지던 급료도 올랐다. 그리고 잠은 매일 푹 잤다. 꿈도 없이 잤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에는 발레를 하고 매일 끙끙대며 잠을 청하던 밤이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 저 카펫도 만들 줄 알고 콘크리트 녹여서 평편하게 펴는 것도 할 줄 알아요. 빵도 만들 줄 알고 제 주제에 아이들에게 발레도 가르쳐봤어요. 알아요. 어머니에게는 다 하찮고 보잘것없는 일들이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지랄 떤다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늘 교양 있는 말투와 단어를 구사하는 카밀라 아래에서 절대 배울 수 없었던 단어들을 섞으며 애쉬가 느리지만 한 번도 더듬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카밀라는 설핏 눈살을 구겼다. 저애가 저런 인상이었던가. 늘 제 앞에서 주눅 들어 고갤 숙이고 있으니 어떤 얼굴이었는지, 어떤 인상이었는지조차 흐리다. 원래 이런 이목구비였다고 하기에는 너무 달라 보였다. 심지어 육 년 전 스완 별채에서 보던 때와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제이슨은 이제 팔짱을 끼고 애쉬를 지켜보고 있었다. 패트릭의 걱정이 과했다. 자신은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런 거 다 하실 수 있으세요? 아니, 궁금해해보신 적은 있으세요?"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게 아니니 애쉬는 굳이 카밀라가 입술을 열길 기다리지 않았다.

"그냥 말하고 싶었어요. 제가 할 줄 아는 것도 잘하는 것도 많다는 사실을."

애쉬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덧붙였다.

"저는 '아무것도 아닌 놈(nothing)'도 바이런의 안목이 발바닥에 붙어 있어 엉겁결에 반한 그런 존재도 아니에요. 저는 별거(something)인 존재예요."

point 2 줄거리

기: 자유로운 영혼 바이런 맥마흔은 전통이 빛나는, 시골 대학에, 늦은 나이에, 입학한다. 놀기 위해 어머니와 한 가벼운 약속의 대가였다. 그렇게 적성도 흥미도 없이, 가업을 잇기 위해 입학한 첫날, 바이런은 우연히 폭행 현장을 목격한다. 그 피해자는 자신이 새로운 룸메이트 애쉬 스완이었다. 지친 듯, 무심한 듯, 가녀린 애쉬! 하지만 그의 유두는 핑크빛이었고... 바이런은 그곳(?)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관심의 시작! 하지만, 그의 룸메이트는 매우 까칠했다.

승: 그러던 어느 날 바이런은 애쉬의 몽유병을 알게 되고, 애쉬를 돕기 위해(?) 같은 침대에서 잠들기 시작한다. 바이런과 애쉬는 가까워졌고, 서로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애쉬는 바이런과의 연애를 한사코 거부하며, 바이런에게 가출 계획을 고백한다. 바이런은 스완가가 애쉬를 학대해 왔고, 애쉬가 바보인 척 당해주며 간신히 이곳으로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이런의 마음은 깊어지고, 결국 둘은 풋풋한 연애를 시작한다.

전: 두 사람은 기숙사를 나와, 둘만의 보금자리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스완가에서 애쉬와 바이런의 사이를 눈치채고, 애쉬가 임신을 하면서, 애쉬는 바이런을 떠나 스완가로 돌아간다. 스완가는 한 대에 한 명씩 날개를 단 수인이 태어나고, 그 아름다운 생명체를 팔아 부정하게 부를 쌓아왔다. 그러나 여자가 아닌 남자 수인 애쉬가 태어나고, 대가 끊길 것을 염려한 스완가는 애쉬를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하며, 실험을 자행해 임신할 수 있게 만든다.

결: 애쉬는 스완가에서 출산하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도망친다. 바이런은 애쉬를 간절히 찾고, 스완가는 실종된 애쉬를 이용해 바이런에게 손쉽게 이득을 얻는다. 바이런은 수모를 감수하고서라도 애쉬를 찾으려 고군분투하고, 6년이 흐른 뒤에서 간신히 재회한다. 바이런은 그간 애쉬가 겪었던 고생과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들 로엘의 존재를 알고, 애쉬를 대신해 스완가를 뭉개 놓는다. 스완가는 제대로 망하고, 애쉬는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짠짠짠 단단단

아니... 이 시국... 이거 정말 실환가요? 약 2달... 21세기 신 암굴왕의 생활이 끝나면, 속 편히 숨 쉴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백신 없던 시절에도 상상 못한 확진자 숫자가... 더불어, 암굴에 들어가기 전 세상에는 없었던 불타는 열돔까지... 인간 세상과의 조우 2시간 만에 다시 암굴이 그리워졌습니다. 제발 이번 고비가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분수령이 되길 바랍니다. 흑... 어쨌든 올해도 휴가는 책 속으로...

그래서일까요? 한없이 밝고, 이가 썩을 정도로 달달하고, 가슴 한편이 간질간질한! 러브 스토리가 땡깁니다! 존재하지 않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꿈과 희망을 주는 유니콘처럼, 한 입에 기분 좋아지는 초콜릿 퐁듀 같은 로맨스 말이죠. 하지만, 제가 진조님이 쓰셨다는 걸 잠시 간과했습니다. 분명히, '미운 백조 새끼'는 제가 바랐던 달달물은 아니었습니다. 성깔 있는 아싸와 엄친아 아싸의 티키타카 연애담이라고 하기엔, 그 이면이 다소 무겁습니다.

'미운 백조 새끼' 속 악의 축은 '스완가'예요. 동정의 여지없는, 완벽한 악역들이죠. 스완가는 이름대로 고고한 백조들입니다. 뛰어난 미색과 은발, 오랫동안 사교계를 주름 잡는 귀족 집안이자 발레 명가죠. 물론, 진짜 주업은 따로 있습니다. 스완가는 모계로 이어지고, 그들 모두가 '어머니들'이에요. 스완가는 한 대에 한 명씩 날개가 달린 여자 수인이 태어나고, 아름다운 희귀품은 '손님'들에게 비싸게 팔립니다. 날개 달린 수인들은 가업(?) 연장을 위해 아이를 낳아야만 하고, 스완가의 어머니들은 그 아이를 빼앗아요.

그러다, 무사태평하고 음습하게 이어져 오던 스완가의 비밀에 문제가 생깁니다. 날개 달린 '남자' 수인이 태어난 거죠. 회색 머리카락에 쳐진 눈, 발레에 재능도 없는 미운 오래 새끼, 애쉬는 그렇게 스완가의 이물질이 됩니다. 물론, 스완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애쉬는 실험실인지, 연구실인지, 병실인지도 모르는 밀실에 갇혀 개조 당해요. 그렇게 애쉬는 스완가에 유령이 되어, 날개 달린 여자 수인을 낳고, 이미 준비된 리스트 속 '손님'에게 장식품처럼 팔릴 예정이었죠. 스완가의 어머님들은 애쉬의 애정결핍을 이용해 끊임없이 가스라이팅 하며, 그 불합리한 처우마저 기꺼워하길 바랍니다.

애쉬는 지옥 속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가출을 꿈꾸고, 기적적으로 기회를 잡습니다. 바로 대학에 가게 되죠. 그리고 운명처럼 바이런을 만납니다. 바이런은 애쉬에게 처음이자 유일한, 조건 없는 시혜자였죠. 바이런은 애쉬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었고, 어떤 애쉬든 사랑스러웠어요. 애쉬는 한결같은 바이런의 애정공세에, 예정된 이별을 앞두고 바이런과 사귀기로 합니다. 물론, 애쉬의 가출 계획을 알게 된 바이런은, 당연히 함께 떠나기로 결정하죠. 애쉬에게 유용한 도망 노하우도 전수해 줘요. 이 조언들이, 애쉬를 6년간이나 꽁꽁 숨게 할 줄 모르고 말이에요.

애쉬는 임신을 합니다. 애쉬는 당황하죠. 실험이야 당했지만, 실제로 가능할 줄도 몰랐고, 병원은 더더욱 갈 수 없었어요. 결국, 애쉬는 아이를 낳기 위해, 그토록 바라던 자유와 사랑하는 바이런을 포기하고, 스스로 스완가에 돌아갑니다. 스완가 역시 남자 수인의 출산은 처음이었고, 예상과 다르지 않게 애쉬는 고통과 조롱 속에서 노엘을 낳습니다. 설상가상, 아이의 아버지가 맥마흔가의 외아들임을 알게 된 스완가의 어머니들은, 바이런의 등골까지 빼먹을 계획을 세워요. 애쉬는 출산 직후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처절하게 탈출해요.

애쉬의 찌롱은 계속되요. 애쉬는 투잡, 쓰리잡을 뛰며, 바이런과 똑 닮은 아들을 키웁니다. 쫓고 쫓기는 스완가와의 숨바꼭질도 멈추지 않죠. 그러던 중 스완가는 도망치려는 애쉬의 발목을 분지르고, 발레리노인 애쉬는 다리를 절게 됩니다. 노엘에게 늘 미안한 아빠,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발레를 알려주는 무대 뒤의 발레리노...애쉬의 6년이 그랬어요. 물론, 애쉬를 찾기 위한 바이런의 6년도 찌롱이긴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미운 백조 새끼'는 확실한! 달달물입니다. 원앤온리 '너에게만 친절한 나' 바이런과, 까칠하고 서툴지만 '널 위해선 다 할 수 있어' 애쉬, 두 사람을 섞어 놓은 것 같은 똘똘이 노엘... 말해 뭐 하겠습니까? 특히, 외전은 상처(?) 입은 독자들 마음에 후시딘이예요.

짠날이 있으면, 단날도 있겠죠. 단짠의 진리를 믿습니다. 어쩌면, 짠짠짠 할수록 달달달 할지도 모릅니다. 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습니다. 달달한 날이 오면, 그때 짰던 날들에 대해 수다를 떨어 보고 싶습니다. 달달한 해피엔딩을 믿기에 견디는 고구마 구간처럼, 현생 또한 그러리라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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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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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미담드디카

출간일: 2018.11.09

분량: 본편 1권 + 외전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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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윤회가 가장 좋지 않을까?"

강은 한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다정히 물었다.

"왜요?"

"글쎄다...... 다음 생에도 다시 태어나 새로운 세상을 살아 보고 싶어서. 궁금하잖아, 미래에는 어떤 세상이 되어 있을지."

"꼭 인간으로 태어나리란 법이 없잖아요."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지. 인간은 너무 골치 아픈 존재야. 머릿속에 잡생각이 많아서 평생을 어지럽게 살아야 해."

한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만약 짐승으로 태어난다면...... 그래, 새가 좋겠다.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니까."

"......"

"이런 이야기 별론가?"

"아뇨."

강이 미소 지었다.

"상상이 되어서 좋아요. 이런 이야기 싫어하면 전 시를 쓰지 못했을걸요."

한도 마주 웃었다. 강은 아까보다 한층 밝아진 음색을 내었다.

"저도 그럼 새가 되는 게 좋겠네요."

"왜?"

"선생님이 새가 되고 싶다 하셨으니까."

"나 말고 네 생각을 해야지."

"네, 생각한 거예요. 뭐가 되었든 선생님 곁에 있으면 좋겠거든요."

강은 한의 손등을 자신의 입가에 갖다 댔다. 그리고 한의 손에 입술을 도장 찍듯이 누른 다음 읊조렸다.

"제 마음 아시죠?"

한은 강의 애정이 마음을 충만하게 만드는 걸 천천히 느꼈다. 한은 강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는 만족감과, 안도, 그리고 기쁨 속에서 담담히 말했다.

"알다마다."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한참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생에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나누는 두 시인의 얼굴은 즐거움이 가득했다. 어느덧 잔별이 하나둘씩 뜰 때까지 두 사람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point 2 줄거리

기: 문학계의 전설인, 시인 한은 북향 작가 강의 시집을 발간한다. 북향 작가에 대한 해금 조치는 풀렸지만, 아직 빨갱이 취급 일색인 부정적 분위기 속에서도 강의 시집은 큰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고령의 대문호 한은 강에 대한 인터뷰에서 과거 이야기를 푼다. 1935년 경성, 25세 한은 경성 멋쟁이로 불리는, 잘나가는 시인이자 기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의 신문사로 무명작가의 시들이 도착한다. 평안도 말씨의 부드러운 시들, 특히 '길'은 큰 파문을 낳았다.

승: 한은 신원불명의 천재 시인 강을 만날 날을 고대했다. 그러나, 실제 신문사에 찾아온 강은 18세의 학생이었고, 한은 어린 천재 시인에게 강한 열등감을 느껴 매정하게 대한다. 하지만, 한을 동경해 시를 쓰게 됐다는 강은, 끈질기게 한을 쫓아다닌다. 그리고, 마치 사고처럼 술에 취한 한은 강을 유혹하고, 몸을 섞게 된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되지만, 강은 곧 시인으로서 한계에 부딪히고, 시인 강의 성장을 바라는 한은 그를 일본 동경으로 유학 보낸다.

전: 한편, 일제의 문화 말살정책이 심화되고, 친일로 돌아선 문학계 변절자들은 그럴싸한 자리를 받아 권력을 누린다. 반면, 사회주의 반일 작가 인혁은 일장기가 뒤덮인 경성을 떠나고, 한은 붓을 꺾는다. 물론, 경성 대표 시인이었던 한에게 친일 전향 압박과 검열은 계속된다. 그렇게 3년이 흘러, 21살의 강이 돌아온다. 그리고, 북녘 고향을 읊은 강의 시는, 1938년 경성에서 최고의 호황을 누린다. 그러던 어느 날, 병든 인혁은 한을 찾아와 소설 한편을 맡기고 떠난다.

결: 한편, 고향을 소재로 시를 쓰던 강은 경성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점점 고향을 잊어갔고 그 불안감은 시에 나타난다. 하지만, 강은 한의 곁을 떠날 수 없었고, 결국 한은 강과 함께 북향을 선택한다. 둘은 산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 그러던 중 한에게 형이 아프다는 전보가 오고, 한은 경성으로 향한다. 강과 한은 서로의 시를 주고받고, 한은 곧 돌아오겠노라 약속한다. 하지만, 곧 전쟁이 터지고 38선이 남과 북을 가른다. 한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딜레마

BL에 배드 엔딩은 드물어요. 하드코어와 극피폐물조차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죠.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를 넣어라서도 말이에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쁨이라는 감정보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강렬하고 여운이 길기 때문에, 사람들은 희극보다는 비극에 더 감명받는다고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받아온 명작들 중에는 비극이 더 많고, 심지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댄스보다 발라드가 더 많은 표를 받는다고해요.

하지만, 저만해도 BL 소설을 선택할 때 배드 엔딩은 쉽게 손이 가지 않습니다. 아마도, BL이라는 장르소설이 감동보다는 오락의 목적이 더 강해서 그런 것 아닌가 예상해 봅니다. 물론, 그 목적에도 불구하고 흠결 없는 설정, 완벽한 구조, 풍성한 줄거리도 요구하죠. 감동적인 버라이어티쇼와 대중적인 예술작품을 바라는 것처럼요. 웃으려고 본 쇼프로에서 울고, 깊이를 바라는 작품이 쉬웠으면 좋겠고... 딜레마는 이렇게 사소한 곳에도 있습니다.

만약 누가 저에게 이런 딜레마 상황에서 지금 당장, 하나만,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고 강요한다면... 멘붕에 빠질 것 같습니다. 더욱이, 이 문제가 여가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이고 영향력 강한 사안이라면, 그리고 그 선택이 불시에 빈번히 강제된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미치거나 자포자기하겠죠. 불행히도, 이 고약한 가정은 누군가에겐 현실이었습니다. 사회의 지식인과 한 명의 작가, 모두를 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들 말이에요.

1935년 경성... 어떤 분위기였을까요? "일본이 어찌 망하겠습니까! 망할 일이 없는 나라에 언제까지 반항하시려고요." 소설 속 젊은 시인 서주영은 한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아마도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 일본이나 조선인 모두 식민지가 끝날 거라고 믿진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분명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 불평등은 있었지만, 조선인들의 숨통은 막진 않았어요. 길들이는 방식일지라도 공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교과서에서 소히, 문화통치라고 불렀던 시기요. 조선인 지주가 더 나쁘냐? 일본인 소작농이 더 나쁘냐? 최인혁도 그때라 이런말을 할 수 있었을테고요.

하지만, 1929년부터 사정이 급격히 바뀝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부자가 된 일본의 돈줄이 세계 대공황 이후 막히고, 1931년 만주에 괴뢰정부를 만들면서 일본은 내선일체를 강요하기 시작해요. 1941년 진주만까지, 창씨개명 같은 사상 탄압의 수위가 점점 높아집니다. 1941년부터는... 정말 개싸움이었죠. 추락하는 일본은 조선의 젊은 남자는 징용 징병으로, 젊은 여자는 위안부로, 조선에 있는 것은 문고리까지 떼어가며 바락을 합니다. 1945년 광복까지요.

1935년 경성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30년 뒤의 세상입니다. 어쩌면, 그 사이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그 세상은 만족스럽지는 않았어도 나름대로 적응했을지도 모릅니다. 조선인 한은 경성에서 인정 받는 문학가이자 인기인이었고, 집안은 부유했죠. 한과 형일은 신문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한의 최고 관심사는 어떤 무명작가의 시였어요. 1935년은 숨통을 서서히 조이기 시작한, 하지만 아직은 버틸만한 그 어디쯤 되는 시기였을 거예요.

그리고 드디어 막다른 시기가 옵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흑과 백, 양극단에 섭니다. 박영후나 서주영를 포함한 많은 문인들은 친일을, 최인혁은 항일을 선택해요. 박영후나 서주영은, 뛰어난 글재주를 지닌 작가이자 영향력 있는 경성의 엘리트로서, 교과서나 선동문을 써요. 물론, 내용은 황국신민의 강령이었지만요. 반면, 최인혁은 한에게 작가로서 빛보지 못할 마지막 소설을 맡기고, 독립운동을 하다 광복도 보지 못한 채 차가운 이국땅에서 죽고 말죠.

어떤 이들은 회색 지대에 서 있습니다. 한과 형일처럼 붓을 꺾는 작가들이나, 강처럼 자연과 전통시를 쓴 작가들 말이에요. 이들은 검지도 않았지만 하얗지도 않았어요. 한과 형일은 신문사가 폐관된 이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본이 배급해 주는 쌀 한 자루를 받으러 긴 줄을 섭니다. 그리고, 경찰서에 잡혀간 한을 구한 것 역시, 매섭게 내쳤던 친일파 서주영이었어요. 무엇도 선택하고 싶지 않지만, 무엇인가를 선택하길 강요받는, 고뇌하는 지식인들이었죠.

사실, '1935년, 경성'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씬은, 피난길 찾아간 교회, 무너진 십자가 앞에서 한이 오열하는 장면이었어요. 1938년 28살이었던 한은,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식민지 조선에서 시인이 된, 모던보이였어요. 비판의식이 투철한 깨어있는 지식인이었지만, 어쩌면 한이 경험한 '진짜 상실'은 조국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강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상실감, 그것이 가슴으로 맞는 첫 상실이었을지도요. 그 순수한 절망을 말이죠.

그럼에도 책갈피에는 강과 한의 가장 행복한 시기를 넣고 싶었습니다. 1935년 경성에서 최인혁은 강의 시를 보고 비평하고, 한은 강의 성장을 바라며 그를 동경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3년 뒤 강의 시를 본 최인혁은, 또 한에게 강이 고향을 잊어가고 있다고 말해요. 하지만, 이때는 한이 강과 함께 떠납니다. 추운 북녘의 산속, 강의 시에 녹아 있는 그의 고향, 둘만의 세상으로 말이죠.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었습니다. 읽으면서, 각각의 인물들과 연상되는 현실 속 시인들도 생각나고 말이죠. 그리고, 윤동주 유고 시집에 정지용이 쓴 서문도 떠올랐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구절 담아봐요.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었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일제 시대 날뛰던 부일문사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뿐이나,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가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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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돔성 본편 Review

 

2020.08.31 - [BL 소설] - [현대물/피폐물] 소돔성 - Dips

 

[현대물/피폐물] 소돔성 - Dips

출판사: 연필 출간일: 2020.02.19 분량: 본편 1권  point 1 책갈피 뒤로는 빽빽한 산림과 앞에는 축축한 물안개가 올라오는 호수 사이에 숨겨진 별장만은 성도와 우진의 것이다. 이 눈 덮인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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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책갈피

 

 

걸음을 돌릴까 망설이던 우진은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홀린 듯이 그곳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성도가 있었다. 그는 미친 듯이 별장 안을 헤집으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우진은 헛숨을 삼키며 이성을 잃은 성도와 별장의 내부를 응시했다.

바닥에는 핏자국이 낭자했고, 충혈된 눈으로 성도는 바짓단에 피가 묻은지도 모르고 별장의 모든 방을 들쑤셨다. 우진과 함께 잠들었던 침실, 서재, 거실, 화장실 그리고 옷방까지. 바지에 이어 웃옷까지 전부 피범벅이 된 그는 이내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꼭 이 눈 덮인 별장에 갇힌 것만 같았다. 흡사 광인처럼 빈 정원을 홀로 걸으며 연신 사람을 찾았다. 돌아가려던 우진은 망설여졌다. 온동 눈으로 휩싸인 이곳의 풍경이 어느 전설 속의 장면처럼 신비로웠기 때문이다. 앙상한 나뭇가지들과 황폐한 호수, 삭막하기만 하던 별장 건물이 눈부실 정도로 고독하고 아름다웠다.

어쩌면 나를 찾고 있는지도 몰라. 우진은 제 품에서 꼬물거리는 아이의 온기를 느끼고 이내 그곳에서 걸음을 돌렸다. 아니야. 저쪽으로 가면 나와 아이에게 너무 추울 거야.

별장에서 등을 돌린 채 우진이 다시 눈보라를 헤치고 걸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배경이 뒤바뀌더니 따뜻한 실내로 변했다.

살을 엘 듯 휘몰아치던 바람도 몸에 올라앉아 쌓이던 눈송이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대신 따뜻한 공기와 침대, 그 옆 의자에 앉은 남자가 보였다.

이번에도 성도였다. 성도는 병실에 가만히 누운 자신을 보며 애원하고 있었다. 그가 뚝뚝 흘리는 눈물이 침대에 누운 제 볼 위로 떨어지자, 뒤에서 지켜보던 우진의 볼에도 따뜻한 액체가 묻어 나왔다.

우진은 그것을 손으로 닦아 만져 보았다. 가슴이 아팠다.

"형이 널... 네가...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 예뻐서...'

절망으로 타들어 가는 목소리는 끝을 맺지 못했다. 우진은 슬프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모든 것이 꿈이란 것을 깨달았다.

point 2 줄거리

기: 남성 임신이 늘고 있는 시대, 남성 임신 테스트가 버젓이 약국에서 팔리고 있었지만, 우진은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가 될 줄 몰랐다. 하지만, 임신 테스트기와 다수의 산부인과 의사들은 우진이 임신한 것이 맞다고 재차 확인해 주었고, 곧 우진도 성도와의 아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문제는, 우진이 산부인과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성도가, 우진의 외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성도는 우진이 어떤 여자를 임신시킨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승: 성도는 매정하게 아이를 지우라고 말하자, 우진은 상처 입은채 가출한다. 성도는 결국, 여자에게 양육권을 받아와 자신과 키우자고 빌게 되고, 그제서야 우진은 성도가 오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성도는 오해를 풀고 헌신적으로 우진의 임신 수발을 든다. 하지만, 남자의 몸으로 임신을 한 우진은 많이 아팠고 불안정했다. 성도는 남자 임신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는 한편, 우진의 상태는 자연히 호전된다.

전: 다시 평화로운 생활, 그러던 어느날 돌연 주양그룹 본부장인 이성도의 결혼 발표가 방송 된다. 패닉에 빠진 우진은 성도에게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성도는 결혼은 그저 프로젝트라며 우진을 달랜다. 분노해 성도를 떠나려는 우진을, 성도는 강제로 집에 가두고, 그 안에서 우진의 배는 부풀어만 갔다. 결국, 우진은 쓰러지고 의식불명에 빠진다. 그때, 우진은 꿈을 꾼다. 성남 별장에서 괴로움과 광기에 삼켜진 성도의 모습을, 성도는 울고 있었다.

결: 한편, 성도는 피 웅덩이에 빠진 우진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후 우진이 쓰러지고 깨어나지 않자, 성도는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다. 성도는 우진이 깨어나자, 우진에게 결혼을 하지 않으면 주양그룹 입지가 좁아진다고 말하며, 그래도 나를 사랑 해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우진은 성도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빈털터리여도 사랑한다고, 그걸 여태 몰랐냐고 면박을 주며... 그 후 성도는 파혼 당하고, 우진과 행복하게 산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그때는 몰랐던, 아주 사소한 것

소돔성 외전이 나왔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외전이었죠. 작가님께서 SNS에 외전 계획이 없다고 밝히셨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고 바라고 바랬던 외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외전 발매일 13일 시작과 함께, 무한 새로 고침을 하며 외전 영접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죠. 사실, 5월 캘린더에 소돔성 외전이 나온다는 것을 보고, 저는 계속 13일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소돔성 외전의 첫인상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일단 임신 AU라는 거... 본편이 열린 결말로 마무리됐기 때문에, 그 후의 이야기를 고대했지만, AU! 게다가, 이 임신 AU는 작가님이 블로그에 올리신 적도 있었어요. 물론, 마무리가 되지 못한채 중간에 끊기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이미 본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입꼬리가 3mm 정도 쳐진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지만... 결론적으로 작가님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더라고요.

우진은 성도가 준 돈으로 사치를 부리지만, 친구의 안부도 확인 할 수 없고, 아끼던 강아지를 돌볼 수도 없었죠. 성도가 허락 한 곳에만 있을 수 있었고, 물건을 사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물론, 우진이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건, 성도에 대한 사랑때문이었어요. 그의 공간에 찾아와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상냥한 연인을 위해, 우진은 욕을 하면서도 성도의 곁에 머물러요.

하지만, 성도는 우진이 오로지 돈 때문에 자신의 곁에 있는거라고 믿습니다. 과거 우진은 돈 때문에 성도의 형 현도에게 접근했고, 집안에서 더 큰 보상을 제시하자 현도를 떠났죠. 이를 경험한 성도는 우진을 잃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더 많은 돈을 우진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는 아주 강해져야 했고, 그러려면 정략결혼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성도가 그 결혼을 선택한 순간!'소돔성'은 극피폐로 치닫게 되죠.

외전에서도 성도는 같은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외전은 결코 피폐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시리어스물과 달달물 중에서 갈등하긴 했지만, 역시 달달물로 ... 아무리 생각해도 외전은 달달물이 맞아요.(끄덕끄덕)

외전에서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기억의 단편을 봤고, 그 영상들은 끔찍하거나 고통스러웠죠. 우진은 결혼을 하겠다면 자신을 집에 가둔 성도가 미웠지만, 꿈속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성도의 모습과 자신 품 안에 안긴 '우리 아기'를 보며 그 차가운 땅으로 건너가지 않습니다. 성도는 피 범벅이 된 우진을 보며, 우진을 완전히 가지기 위해 우진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그리고, 너무 묻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회피해 온 질문, 더 강해지고 나면 덜 무서워질 거라며 미뤄왔던 질문을, 드디어 합니다. 나를 사랑하냐는 그 한마디요.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은 참 바보 같습니다. 본편에서 우진은, 그렇게 열심히 도망치다가 잡히고, 약 맞고, 감금되고, 결국 자살할 때까지, 왜 사랑한다고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을까? 헤어지지 못해서가 아니라 널 사랑해서 괴로운 거라고... 성도 역시 우진에게 어차피 돈 때문에 나랑 만나는 거 아니냐고 쏘아붙이기 전에, 돈이 없어도 나랑 만날 거냐고 빈정 되지조차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두 사람은 쿨하게 '응!'하고 행복해졌을 텐데 말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역사 속에서도 사람은 아주 당연한 질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때리는게 당연한건지, 여자가 재산으로 취급받는 게 당연한 건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존재하는게 당연한건지, 그리고 물을 때는 놓쳤던 기간만큼 많은 사람들은 죽거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 사소한 질문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분명 그 이전과 이후는 같지 않죠. 그래서 그때는 몰랐던 아주 사소한 깨달음 하나를 알고 나면, 많은 감회가 소용돌이 칩니다.

외전에서 성도와 우진은, 다른 평행 우주 어딘가에서, 그 사소한 질문을 하지 못해 불행해진 두 사람의 기억을 건네 받습니다. 그 작은 언지를 받고, 두 사람은 곧 해야 할 말을 찾아요. 더불어, 본편에는 없었던 성도와 우진의 아이가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두 사람을 묶은 닻 줄이 되어 주고, 극단적인 우진이 머뭇거릴 수 있도록 브레이크가 되어 주죠. 드디어 소돔성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도와 우진이 아픔을 딛고 성장해가는 스토리를 기대했습니다. AU에서 행복해진 이야기는, 반대로 AU가 아니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요. 본편에 남겨진 두 사람은 복구 불가능!인건가 싶어 찜찜했어요. 불행을 막을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를 잡는 것이 베스트겠지만, 만약 놓친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보고 싶어 그랬나 봅니다. 아쉬움 반, 만족감 반의, 묘한 기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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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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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모드

출간일: 2020.02.19

분량: 본편 2권

point 1 책갈피

"룸 하나 남았다는 호텔 있어."

"안가. 귀찮아. 재미없어. 차 세워."

이우는 들은 시늉도 하지 않고 빗길을 헤쳐나갔다. 지건의 안색이 굳어졌다. 묵묵히 핸들을 올리는 그를 싸늘하게 노려보며 날을 세웠다.

"안 들려? 차 세우라고."

"......"

"이 씨발놈아! 귓구멍 처 막혔어?! 차 세우라고!!"

이우는 이마를 가린 머리칼을 짜증스럽게 흩트려 넘기며 액셀 페달을 길게 밝았다. 투둑투둑-앞면 유리창으로 날아온 빗방울이 속절없이 부딪혀 깨졌다. 빗소리에 묻힌 실내는 짙은 음영에 잠겨 들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차가운 침묵을 뚫었다.

"나를 잃어가고 있어."

저를 보는 지건에게 향한 것인지, 자신에게 뇌까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우는 차분한 음성으로 읊조렸다.

"그 기분이 어떤 건지 알아? 고장 없이 째깍째깍 돌아가던 세계가 어느 날 멈춰버린 기분이야. 지금까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

"......"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그 막막한 기분을, 네가 이해할 수 있겠어?"

가라앉은 이우의 눈동자는 순간순간 드리워지는 가로등 불빛에 반짝였다. 지건은 그의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늘 머물러 있던 미소도, 웃음도 없는 얼굴은 고통에 시달린 자의 모습이었다. 한낱 욕심에 눈이 멀어 무엇보다 소중한 이의 일상을 빼앗은 자신의 이기에 지건은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꼈다. 그는 앞만 응시하는 이우를 바라보며 바짝 마른 입술을 달싹거렸다.

"나는 그 오래전에 나를 잃어버렸어."

꺼질 듯이 낮은 목소리였다. 무거운 빗줄기가 세차게 차 지붕을 두드렸다. 지건은 눈길을 내리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이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어."

"......"

이우는 가만히 옆을 돌아보았다. 반대 차선에서 비춰든 상향등이 차 안을 잠시 밝혔다가 이내 사라졌다. 지건은 창밖으로 눈길을 돌리며 후드를 푹 덮어썼다.

point 2 줄거리

기: 지건, 이우, 태석, 승욱, 병철은 학창 시절 친구다. 그들 중 이우만이 성공한 레스토랑 CEO가 되어 '제대로' 살고 있었다. 지건은 남자에 미친 누나는 둔 전기기사였고, 태석은 돈 많은 집 백수, 승욱과 병철 건달이었다. 하지만, 의리파 이우는 거친 친구들에게도 다정하고 헌신적이었다. 그리고 곧 같은 학창 시절 동창이자 10년 사귄 희수와 결혼할 예정인 품절남이었다. 지건은 그런 이우를 남몰래 사랑하고 있다. 희수보다 훨씬 먼저, 오랫동안, 강렬하게...

승: 그러던 어느 날, 임신한 채 돈을 달라며 찾아온 누나 지혜와 싸우고 집을 나온 지건은 우연히 이우를 만난다. 그리고, 그의 신혼집에서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고백한다. 그 다음날 두 사람은 다시 그 집으로 가고, 지건은 계속 친구로 지내자는 이우에게 강제로 키스한다. 이우는 지건을 밀어낸다. 그 이후 지건은 다시 그 집으로 찾아가고, 이우는 결국 지건의 애원대로 섹스해 준다. 지건은 일을 그만두고 이우의 그 집에 들어가 살며, 이우와 정사를 나눈다.

전: 그러다 희수가 그 집에 오려하자, 이우는 지건에게 돈을 주고 남창 취급하며 내쫓는다. 그렇게 집을 나온 지건은 태석과 만나고, 태석은 지건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 다음날, 이우는 지건을 다시 집에 부르고, 다짜고짜 덮친다. 지건은 자신의 몸에 취한 이우와 다시 그 집에 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집을 찾아온 희수와 마주치고, 희수는 이우와 지건의 관계를 눈치챈다. 희수는 지건에게 사라져달라고 부탁하고, 지건은 짧은 일탈을 정리하려 한다.

결: 지건은 자신을 찾는 이우를 밀어내고, 그럴수록 이우의 집착은 심해진다. 한편, 지건과 이우는 승욱, 병철의 조직 싸움에 휘말리고, 지건은 이우를 구하다 총에 맞는다. 깨어난 지건은 그 집에서 이우와 보낸 기억을 잃어버린다. 이우는 그런 지건을 보며, 그간의 혼란스러운 감정의 이름을 깨닫고, 희수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우는 태석과 해외여행을 떠나려는 지건을 잡는다. 지건은 기억을 찾고, 이우와 함께 그 집에서 살게 된다.

point 3 진지충의 Review: 그 집

'잔물결에 지나지 않는다.'에는 '여혐'지뢰가 있습니다. 최근작들에서는 드물지만, 구작에선 비교적 흔했어요. '여혐'은 단순히 '여성 혐오 표현'만을 지칭하지는 않습니다. 여자를 질투에 미친, 표독스럽고 이기적으로만 폄하하기도하고, 공수의 사랑을 위해 기만적으로 이용당하거나, 임신을 무기로 사랑을 구걸하다 버림받기도 하죠. 이런 설정은 여자는 '악'이고 공수는 '선'으로, 여자는 '가짜 사랑'이고 공수는 '진짜 사랑'으로 대비해서 부각시키곤 합니다. 00버스 시리즈로 제3의 성이 생기면서, 굳이 구도가 불필요 해진 까닭에 줄어 들지 않았나... 예상해 봅니다. 어쨌든, 이런 작품들에서 여캐는 밉거나 비참해요.

희수는 집 안과 학벌이 좋고, 예쁘데 착하기 까지 한, 공수의 학창 시절 친구예요. 지건은 희수에게 사랑하는 이우를 소개해 주고, 이우는 희수가 드나드는 집에서 지건과 섹스하죠. 지건과 이우 모두 희수를 기만합니다. 희수는 지건과 이우의 관계를 알고 난 뒤, 지건에게 사라져 달라면서도 이우에게는 모른척합니다. 또, 지건에게 남자 간의 관계가 더럽다고 비난하기도 하죠. 헤어질 때도, 차라리 임신을 먼저 할 걸 후회하며, 결국 지건의 사랑이 더 정당하다는 식의 발언을 합니다. 잘 난 여자 희수는 어리석고, 미우면서도, 비참한 캐릭터로 묘사돼요. 강하진 않지만, 여혐 요소가 있죠. 구작인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래서! '잔물결에 지나지 않는다.'가 색다른 배덕과 광기를 지닌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집'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죠. 결혼 예정인 이우가 새로 산 비어 있는 집, 희수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집, 하지만 이우가 지건에게는 신혼집이 아니라고 말한 '그 집'말이에요.

'그 집'은 배덕과 광기의 장소예요. 그 집에서 일어난 일들이, 지금까지 지켜 온 무사태평한 일상을 뒤흔드는 질척이는 일들뿐임에도, 두 사람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집은 비극의 시작이자, 행복한 결말이죠. 지건의 끈질긴 애걸로 첫 섹스를 하게 된 이우는, 그 다음 모임에 나온 지건을 화장실에서 충동적으로 덮칩니다. 그리고 바로 지건을 그 집으로 데려가, 다시 개걸스러운 정사를 해요. 그 집이 마치, 이우가 지건을 탐하는 것이, 지건이 이우를 가지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 면책의 장소인 듯 말이에요.

왜 이우의 집도, 지건의 집도 아닌 '그 집'일까? 그곳은 이우가 살려고 가구나 짐을 옮겨 놓은 집이지만, 실제로 살았던 집은 아니에요. 이우의 집이지만, '기존'의 이우가 '존재'했던 공간은 아닌 셈이죠. 이우는 그 집을 신혼집이라고 부르는 지건에게 '잘 못 알았다.'라고 말합니다. '그 집'은 도대체 무슨 집일까요? 오로지 그 집을 '신혼집'이라고 생각하고 드나들었을, 희수만이 제대로 대답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장소에서 배제된 유일한 사람 말이에요.

지건은 학창 시절 '좋은 여자' 친구인 희수에게 이우를 예쁘게 소개합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건은 서툴고 거친 방법으로 이우에게 고백하죠. 그리고, 폭주 기관차처럼 이우를 향해 돌진합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그 집에서 이우에게 정사를 간청합니다. 그건 결혼을 앞 둔, 오랜 짝사랑과의 좋은 추억 한 자락을 바란 행동은 아니었어요. 마치, 지건은 이우를 부숴버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여요. 지건은 이우의 다정함을 원하지 않았고, 결혼 하지 말라거나 이 집을 달라는 등의 어떤 '약속'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계속 그 집을 찾아가고, 이우를 한계까지 몰아부치죠.

저는 이것이 지건 스스로 '짝사랑의 종말'을 고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건은 끊어 낼 수 없는 오랜 짝사랑을 하얗게 태워 소멸 시키고, 끝내 이우에게 내쳐지길 바랐을지 모른다고 말이죠. 지긋지긋한 남창, 친구도 아닌 쓰레기로... 평생 어떠한 접점도 만들고 싶지 않은 존재가 되어서요.

하지만, 지건의 계획은 빗나갔어요. 이우는 잘 생긴 외모와 원만한 사회성을 지닌 엄친아였고, 주변에 넘쳐나는 사람들 중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하는, 평범한 삶을 당연히 여겼을거예요. 하지만, 성공한 CEO 이우 안에는 '또 다른 이우'가 있었죠. 그래서, 이우는 학창 시절 자신과 '다른' 친구들을 사귀고, 졸업 후 더 많이 달라진 친구들 사이에서도 '주는' 위치를 고수하며 관계를 유지해요. 희수와 같이 살 집이지만, 신혼집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완벽해서, 깰 수 없는 또 다른 나와의 타협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과묵하고 사려 깊던 지건이 냉소적이고 적대적 태도로 이우를 공격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 죄책감과 자괴감이 범벅 된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죠. 그 뒤 지건은, 마치 내일은 없는 사람처럼 이우에게 막무가내로 굽니다. 이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원색적 감정의 폭격 속에 이우의 틀은 깨집니다. 그리고, 이우는 지건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수록, 지건을 더 그 집에 두려고 합니다. 집 밖에서 지건을 보며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집 안에서는 지건의 상태와 사정을 봐주지 않고 욕정을 풀죠. 그 집은 이우에게 또 다른 나를 방치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섭캐인 것 같은 태석이 진짜 의리 갑인 친구였고, 건달 친구들과 함께 위기에 빠지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영화 '친구'를 떠올리게 합니다. 거칠지만, 순수하고, 함께 일 때 무서울 것 없는 사나이들 말이에요. 기억을 잃었던 지건이 회복되고, 이우와 연인이 될 때도 친구들은 두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감방에 간 승욱과 병철, 게이인 지건과 이우는 함께 똘똘 뭉칠 수 있지만, 희수는 어디에...

어쨌든, '잔물결에 지나지 않는다.'는 매력적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단지, 좀 짧아요. 지건이 기억을 잃은 후 이우가 매달리게 되는 과정이 다소 간략해서, 이우의 급변이 다소 캐붕스러웠죠. 같은 이유로, 갑자기 지건에게 쩔쩔매는 이우와, 이우에게 단호하고 염치 있어진 지건의 외전도 좀 아쉬웠습니다. 3권 정도로 쓰였으면 좋았겠다 싶어요.

Posted by 진지한Bgarden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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